2006. 7. 8. 23:11ㆍ목양자료/2.설교자료
믿음과 고난
히브리서 11장 33절 - 38절
36절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으로 믿음의 선배들이, 믿음의 선조들이 어떠한 믿음을 갖고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하는 것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여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좋은 상급을 받는다는 것과 믿음으로 살고 있는 당시에는 고난과 역경을 믿음 때문에 당하면서 힘들게 살았고 심지어 믿음 때문에 생명을 바치는 일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믿음 때문에 형의 시기로 인하여 죽었고 노아는 오랜 세월을 방주를 만드는 수고를 하였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려야 하는 가슴 아픈 일을 당하였고 모세는 애굽의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택하였고 입다는 자기 딸을 번제로 드리는 아픔을 당하였습니다.
그 외에 오늘 본문의 말씀은 믿음 때문에 악형과 투옥과 돌로 침을 당하는 것과 톱으로 썰어지고 칼에 목이 잘려 나가고 산중의 토굴 속에서 믿음 때문에 숨어 고생하며 살던 믿음의 선배들의 고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기 때문에 좋은 일도 많이 당하고 기쁨과 소망이 있지만 반면에 예수를 믿기 때문에 고난도 당하며 어려움도 겪으며 심지어 죽는 일을 당할 것도 각오를 하여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혼이 잘되어 천국에 갈 수 있고 범사가 잘되어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받으며 살수 있고 건강하고 좋은 축복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나 자신도 많은 경험을 하였고 이 사실을 담대하게 증거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죽을병에서 고침 받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일은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다가 예수님이 살려준 나사로도 죽었고, 암병도 고침 받고 폐병도 고침 받고 당뇨병도 고침을 받고 죽을병에서 고침 받고 살아났던 사람도 세월이 지나고 수한이 차면 다시 죽습니다.
요한 복음 12장 10절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죽었다가 살아난 은혜를 받은 나사로도 결국은 고난의 길을 걸어 간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능력의 사도도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믿음의 고난의 길을 가다가 결국은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으로 보상을 받은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았다고 하여도 가장 좋은 최고의 축복은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 장차 가장 좋은 상급을 받는 영생의 나라를 위한 축복을 쌓는 길입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23절 - 27절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도 바울과 같은 능력의 종도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을 가장 좋은 복으로 생각하고 이 믿음으로 인하여 오는 고난의 길을 갔듯 우리도 이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 성도가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을 때에 하나님은 이 일을 최고의 영광으로 받으며 기뻐하시며 이러한 사람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십니다.
로마서 8장 17절 - 18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능력 있는 성도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영혼과 질병과 잘못을 고치고 가르치는 종이 되는 것은 모든 목회자들이나 성도의 동일한 소원입니다.
나도 이러한 능력을 추구하여 깊은 산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신령한 체험을 하며 환상도 보며 천국의 신비함을 체험하고 목회를 할 때에나 중국에서 집회를 하며 안수를 할 때에 하나님의 많은 능력을 보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 보다 더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한 단계 높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능력과 기사가 나타나는 성도가 되면 교만하기 쉽고 자만하게 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상급과는 멀어지는 종이 되지만 믿음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종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믿음을 지킬 때에는 하나님의 옳다고 인정함을 받고 상급을 크게 받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나도 많은 능력이 나타나고 뭇 사람이 쫓으며 계시와 환상 속에 있을 때에는 내가 교만하였고 자랑하며 내가, 내가 하며 나를 나타나며 살았습니다.
고난을 당하니 겸손하여지고 그 때에 내가 잘못함을 깨닫게 되고 그 때에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 속에 회개를 하게 됩니다. 고난을 당하니 겸손하여지고 자랑거리가 없어집니다. 이러함 속에서 이제야 내가 하나님의 큰 은혜 속에 들어가 있음을 깨닫게 되니 하나님의 은혜를 더 감사하게 됩니다.
디모데 후서 4장 5절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사도 바울이 말년에 디모데 목사에게 유언과 같이 하고 있는 이 말씀이 뼛속 깊이 새겨집니다. 지금까지의 교만을 근신하고 회개하며 겸손하여 지기를 원합니다. 목회자가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이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물질의 고난, 육신의 질병의 고난, 정신적인 고난 등 고난을 받을수록 하나님의 큰 은혜임을 깨닫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전도인의 일을 하면서 고난을 싫어하는 것은 잘못된 사람이요 잘못된 전도인입니다.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면서 전도인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이렇게 하며 전도를 하는 것이 나의 직무임을 깨닫고 가난한 목회자로 올바름을 보이며 전도하는 것이 목회자의 직무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성도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 축복을 받아 잘 살고 평안을 누리는 것도 좋은 복이지만 이 보다 더 좋은 복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당하는 믿음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을 받으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상의 더 좋고 큰 복은 없는 것입니다.
내가 1990년 초기에 중국에 선교를 하며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고 설교를 하지만 환난을 이긴 성도들을 보면서 나 자신이 더 많은 은혜를 받고 나 자신의 부끄러움을 보며 깨닫는 것이 더 많이 있습니다.
문화 혁명의 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간증을 들을 때에는 나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하는 부끄러움이 앞서게 됩니다.
찬송 383 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 하도 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아멘”
중국 교회의 성도들은 이 찬송을 기쁨으로, 승리의 찬송으로 감격이 넘치게 부르고 있지만 솔직히 나는 이 찬송을 부를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나 자신을 보게 되고 나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그리스도를 인하여 당하는, 믿음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을 기쁘게 여기며 이 고난을 참고 이기어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에 상급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영화 쿼바디스를 어렸을 때부터 여러 차례를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다시 TV로 보았습니다. 이제는 자막을 번역한 것을 읽지 않고 원래의 영어 대사를 들을 수 있게 되어 똑똑히 새롭게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네로 황제의 박해 아래서 사자에게 물려 찢겨 죽는 고난을 당하여도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믿음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면서 감사하며 고난에 참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중국 흑룡강 성에 갔을 때에 공안 경찰에 잡혀서 외국인이 들어 올 수 없는 지역에, 아직 개방(開放)이 되지 않은 곳에 미제국주의자가 들어 온 것이 수상하다고 하며 특무(간첩)으로 몰리어 경찰에 붙잡히고 경찰서에서는 자기네로는 처리가 곤란한 거물급 간첩으로 취급이 되어 상급 공안 경찰 간부가 출장 와서 4시간 이상을 심문을 하고서도 자기로도 취급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며 동경성에서 영안으로 찦차에 태워 호송을 합니다. 이상하게도 연행이 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기쁨과 찬송이 나오며 나도 성도의 고난을 잠시나마 받고 경험하게 된 것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기도한 일이 있습니다.
그 지역의 교회는 교회가 설립이 된지 7년이지만 목사님이 한번도 설교를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제단에 올라가서 화요일에 갑자기 방문하였는데 30분도 안되어 비상 연락망이 동원되어 온 교회에 교인이 가득 차게 되고 설교를 하여 달라는 간절한 소원 때문에 수수한 옷차림이지만 강단에 올라서 설교를 하고 축도를 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이 침투를 하였다고 하여 조사를 심하게 받았습니다. 조사를 받으면서도 두렵지 않고 기쁜 것은 아마 이 일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여성도가 손을 꼭 붙잡으며 한 말이 생각납니다. 내가 예수를 7년 동안 믿었는데 아직 목사님을 한번도 본 일이 없어 목사님을 보지 못하고 죽나 보다 하였는데 오늘 목사님을 만나니 이제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라고 한 말이 귀에서 아직 들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 전도를 하기 때문에 당하는 수모, 선교를 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같이 귀한 고난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고난이 아니라 이것은 기쁨이요 상급입니다.
세상의 다른 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다가 당하는 고난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고난입니다. 이 곳 Phoenix에도 노름을 하다가 돈을 잃고 돈 때문에 심한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은 헛된 고난이지만 그리스도 예수로, 믿음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하나님 앞에 값지고 귀한 것이요 장차 나에게도 이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유익한 갚음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믿음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많이 겪음으로 하나님의 큰 상급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사랑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은 반드시 입으로, 말로만 하여서는 사랑이 아니고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는 것으로 수고라는 것은 일종의 가벼운 고난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값진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는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고난이 동반하는 사랑이 참으로 진실 된 사랑입니다.
1990년 중국에 처음으로 갔을 때에 유 사랑이라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특이하여 공산 국가에서 어떻게 사랑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가 하고 물으니 자기가 어렸을 때에 예배당에 나가니 선교사님이 이름을 사랑이라고 지어 주어 유 사랑이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할머니는 이 사랑이라는 이름 때문에 모진 고난을 공산당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모택동이 정치를 할 때에는 모든 사람의 직업을 공산당이 정하여 주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직업을 선택 할 수가 없습니다. 유사랑 할머니는 나이가 60세가 넘었어도 다른 사람 같으면 은퇴를 하고 일을 안 하고 배급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인데, 은퇴를 시키지 않고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있는 40년간을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쓰레기를 치우는 일만 시켜서 사랑이란 이름 때문에 모진 고난을 겪으며 쓰레기만 치우는 삶을 살은 할머니입니다.
얼마나 고생을 하였던지 이제 나이가 65세인데 걸음을 잘 걷지 못하여 벽을 붙들고 옆으로 걸어다닙니다. 100m을 가려면 한 시간이 걸리는 걸음이지만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오니 유사랑 할머니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의 다리가 불편하니 기도를 하여 달라고 하여 간절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외출을 하면서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유사랑 할머니를 보고 아니 다리도 불편한데 집에서 쉬지 않고 쓰레기를 줍는가 하고 물었더니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다리가 좀 나아서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하여 비닐 조각을 줍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후 몇 주일 후에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이 되어 연길 교회에서 송별 예배를 드리고 집에 오니 유사랑 할머니가 저에게 20원을 봉투에 넣었다고 하며 목사님 돌아 갈 때에 무엇을 사 먹으라고 하며 줍니다. 당시에는 20원은 4 딸라 밖에 안 되는 돈이지만 미국의 돈 가치로 따지면 100 딸라가 넘는 금액입니다.
목사님을 사랑하여 그 불편한 몸으로 쓰레기를 뒤져서 비닐 조각을 모아 이것을 팔아 이것을 나에게 준 것을 생각하니 지금까지 내가 누구에서 받은 사랑보다도 더 진한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분은 다음에 중국에 가니 이미 돌아가시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유사랑 할머니의 사랑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오늘도 이 설교 시간에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내가 수고하고 고난을 당하는 것이야말로 참 사랑이요 특별히 주님을 위하여 이러한 사랑의 수고와 고난을 하면 주님은 영원히 그 사랑을 기억하실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내가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합니까?
내가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합니까?
내가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합니까?
이러한 사랑의 고난은 참으로 주님이 영원히 기억하실 값진 사랑입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기 위하여 당하는 고생하는 것이나 정당한 수고의 대가 없이 돈을 벌려다가 고난을 당하는 일이나 세상의 정욕을 사랑하고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세상을 사랑하다가 당하는 고난은 오히려 나에게 해로운 것이 되고 주님의 책망을 받는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사랑함으로, 교회를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함으로 당하는 고난은 주님께 값진 사랑의 수고로 나타나는 것이요 자기의 욕심과 이익과 편리함을 위하다가 당하는 고난은 오히려 부끄러운 고난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주님이 영원히 기억하실 만한 사랑의 수고, 값진 사랑의 고난의 희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소망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4절 - 25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소망에는 인내가 따라 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내라는 것은 고통을 참는 것이 인내입니다. 우리가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 지리라고 믿고 그 때까지 고난, 환난을 참고 나가는 것이 소망의 인내입니다. 소망을 갖고 꿈을 갖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어려움을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할 때에 잠이 오는 것을 참고 놀고 싶은 것도 참고 변소 가는 것도 참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그 날을 기다리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듯 우리도 천국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있음을 믿고 내가 그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이 주시 마고 약속한 상급을 받기를 원하는 바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에 순종하면서 고난을 당하며 참으며 그 날 그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1991년도에 중국에 갔을 때에 어느 아매(아주머니)가 나에게 청심환이라고 하면서 미국에 가서 급 할 때에 사용하라고 주어 무심히 받아 들고 미국에 와서 짐을 풀면서 보니 “김 주님 목사님께 이것을 드립니다” 라고 써 있어서 깜짝 놀라서 어찌 나보고 “김 주님”이라고 하였나 하여 내가 주님의 이름을 도용한 것 같이 주님께 황송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며 생각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외국인 목사가 설교나 부흥회를 할 때에 주보에도 이름을 올릴 수가 없고 강대상 뒤에도 강사 이름을 써 붙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증거로 잡히면 외국인의 설교를 금하는 종교법을 어겼다고 하여 1,250 딸라의 벌금을 설교한 사람에게와 설교를 하게 한 교회에 인민폐 10,000원의 벌금을 물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연길 교회 목사님이 오늘 설교는 김 준 목사님이 나오셔서 하겠습니다. 라고 말을 하는데 이분은 내 이름을 잘 못 알아듣고 내 이름을 “김 주님”으로 알아들었습니다.
그 분이 누구 인가하고 생각을 하여보니 생각이 납니다.
부흥회가 끝난 후 몇일 지난 후에 숙소로 연길 교회 집사님들과 함께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린 후에 집사님들이 이분이 간암에 걸린 환자이니 안수를 하여 달라고 하여 안수 기도를 한 일이 있습니다. 안수기도가 끝난 후에 그 환자가 가방을 열어 보여 줍니다. 성경책 가방 속에 성경 찬송은 없고 의사가 주는 좋은 약을 가방 가득히 넣고 다니며 시시 때때로 약을 먹고 있지만 차도가 없어서 특별히 안수를 받으려고 숙소로 찾아 왔습니다.
손을 얹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물을 많이 먹게 하라는 감동을 받고 기도가 끝난 후에 물을 많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먹으면 되냐고 하여 하루에 대두병으로 두 개(2Gallon) 이상을 먹으라고 말하고 새벽 기도에 빠지지 말고 나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후에 미국으로 돌아와서 잊어버리고 있는데 중국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 분이 목사님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물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을 하도 많이 먹으니 남편이 죽을 때가 되면 물을 많이 먹는가 보다 하면서 물을 못 먹게 하여 나그네(남편)가 쌍발(출근)하고 없을 때에 물을 계속 많이 먹고, 병중에 있지만 새벽 기도회를 가는 고통을 견디며 목사님의 말을 순종한다고 하며 한 달 이상을 실천하였습니다.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아 도문에 있는 친척이 병원 원장으로 있어서 가족들이 도문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원장이 진찰하는 동안 가족들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안에서 들리는 원장의 소리가 들립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라는 말이 계속 들려서 가족들은 갑자기 진찰을 받다가 죽었나 보다 생각하고 울기를 시작합니다. 한 사람이 우니 따라서 울다가 보니 울음소리가 커지게 되니 원장이 복도로 나와서 “왜 울고 있냐”고 물으니 당신이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소리에 죽은 줄 알고 운다고 말하니 원장은 그것이 아니라 간암이 4 cm옅은데 지금은 1 cm도 안되게 줄어들어서 이해가 안 되어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한 것이라고 하였다고 해명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중국에 가서 그 분을 만나고 간암에서 고침을 받은 간증을 들을 때에 내 이름이 “김 주님”이 아니라 “김 준”이라고 똑똑히 알려 주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린 일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소망을 갖고, 주님이, 하나님께서 하여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나아가며 고통을 당하여도 참고 나갈 때에 이러한 소망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병든 몸을 이끌고 새벽 기도회에 나가는 것이나 물을 많이 먹는 것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병을 고치려는 소망을 갖고 주의 종이 말씀하였으니 그 대로 되어지리라는 믿음으로 나 갈 때에 우리가 이러한 소망의 인내를 갖고 있을 때에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의 인내를 갖고 성공하고 구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충성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2장 19절 - 21절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이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일이 되지만 헛된 욕심을 따라가다가 고난을 받으면 이러한 고난에는 칭찬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이 어째서 오게 되었는가를 한 번 깊이 생각하여 보고 믿음 때문에 오는 고난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인가, 충성하기 때문에 오는 고난인가, 하나님께 대한 소망 때문에 온 고난인가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탐욕을 부리다가 당하는 고난은 일찍 회개하고 이 고난에서 벗어나는 지혜로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충성함으로 믿음으로 인하여 오는 고난이라면 기쁨으로 참고 기도하며 더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중국 연변에 화룡시에 속한 농촌인 팔가자라는 곳에 농촌 교회가 있습니다.
1991년 10월 13일에 2층으로 100 여평이 되는 아름다운 성전을 헌당식을 올리었습니다.
팔가자 교회는 1989년에 저의 숙부님이, 연길 교회 장로님으로 계신 저의 작은 아버지가 미국에 오셨을 때에 피닉스 순복음 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사례비와 선교비를 받은 4,000 딸라를 전부 팔가자 교회의 건축을 위하여 헌금을 하였습니다.
이 헌금을 기초로 하여 예배당을 논 가운데에, 정부 당국에서 정하여 준 장소에다 짓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중국은 모든 땅은 국가 소유임으로 국가가 정하여 주는 장소에다가만 교회를 지을 수 있습니다.
1990년 7월에 팔가자 교회를 들려 보았더니 책임 집사님인 송 용기 집사가 비지땀을 흘리면서 벽돌을 쌓고 있었습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하여 재료만 사 오고 나머지는 교인들이 노력을 동원하여 예배당을 짓고 있습니다. 논 가운데에 있는 땅에 지하실을 만들기 위하여 땅을 파니 지하수가 가득히 밤을 지새면 고이고 하여 도무지 지하수 때문에 지하실을 만들기 위하여 땅을 팔 수가 없습니다.
중국 교회는 한국의 초대 교회와 같아서 어떠한 집회가 있으면 인근 각지의 교회의 성도들이 집회 끝날 때까지 참석하며 예배당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면서 성경을 배우는 사경회를 합니다. 이 지역에서 이러한 집회를 할 수 있는 교회로 짓기 위하여 지하 기숙사를 만들기 위하여 지하실을 팝니다. 그런데 비만 오면 지하실에 물이 가득 고였기 때문에 손으로 퍼낼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는 예배당을 못 지을 것 같아서 온 교인이 예배당 터에 둘러서서 지하수를 바라보면서 철야 기도를 하였습니다. 철야 기도를 하고 나니 물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하나님의 기적으로 물이 빠진 후로는 예배당을 짓게 되고 그 후 몇 년이 지났어도, 장마가 되어 비가 많이 와도 한번도 지하실에 물이 고이지 않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있습니다.
송 용기 집사님은 당시에 50세입니다. 예배당을 짓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돈이 모자라서 큰 일이라고 합니다. 원래 예산은 현재 예배를 보고 있는 집을 팔면 1만원을 받고 4,000 딸라와 그 돈을 합치면 넉넉히 예배당을 지을 것 같이 시작을 하였는데 예배당 공사를 시작하고 나니 예배를 보고 있는 동네에 불이 나서 초가집들로 지어진 농촌 집들이 몽땅 타면서 예배를 보던 건물도 불타 버렸습니다. 집을 팔 수가 없고 불타 버린 집은 땅만 남는 것인데 중국 공산당 정부는 땅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땅은 모두 국가의 소유이고 개인은 임대 권만 있는 것임으로 일전 한푼 건지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던 집을 불에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빈손이 되어 이미 시작한 예배당은 계속 지어야 하는데 돈은 모자란다는 사정을 듣고 제가 미국으로 돌아오면 어떻게 하여서든지 모금을 하여 건축 헌금을 보내 주어야 하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11시가 넘어 연길로 돌아 와서 연길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연길로 돌아오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갈려고 하니 송용기 집사님이 점심을 대접 할 터이니 점심을 먹고 가라고 소매를 잡습니다.
아직 점심때도 아니니 점심을 안 먹고 가겠다고 말을 하니 주의 종이 먼 곳에서부터 왔는데 점심도 대접을 하지 않고 돌려보내면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가 없으니 우리를 축복 받게 하기 위하여 점심을 들고 가라고 하여 더 거절 할 수가 없어서 식당으로 갔습니다.
건축에 쪼들리고 있는 교회와 가난한 집사님에게 점심을 받는 것이 참으로 부담이 되어 속으로 하나님 송 용기 집사님과 팔가자 교회에 복을 주셔 달라고 간절히 점심을 들면서, 돌아오면서 미국에 와서도 그 말이 너무 감격스러워 기도를 하였습니다.
다음해 4월에 팔가자 교회에 남 창대 목사님과 함께 가보니 송 용기 집사가 예배당을 지으며 너무 무리를 하여 병이 나고 지난 동삼에, 1월에 돌아 가셨다고 말하며 송 용기 집사가 죽음으로 더 여력이 없이 교인들이 낙심만 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눈물이 앞을 막아 아무 말도 못하고, 짓다가 중단된 성전에 올라가서 간절히 기도하며 서원하며 이 예배당을 어떻게 하여서 든지 아름답게 지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동행하였던 남 창대 목사님이 이제는 교인들이 짓지 말고 건축업자를 시켜서 지으며 그 비용은 어떻게 하여서 든지 해결하여 줄 터이니 예배당 건축을 다시 시작하라고 말을 하며 연길 교회 건축 헌금을 돌려서 주어서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라고 숙부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후에 연길 교회의 김성하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연길 교회나 팔가자 교회나 하나님의 교회이니 먼저 건축 할 수 있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하면서 흔쾌히 건축 헌금을 돌려주십니다.
그해 가을에 10월 13일에 팔가자 교회는 2층 예배당으로 건축이 완공되어 헌당 예배를 500 여명의 성도들이 인근 각지에서 와서 축하를 드리며 감사와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었습니다.
나는 성탄을 지나고 신정을 보내고 만주 벌판의 가장 추운 때인 1월에 남 창대 목사님이 준비 하여준 1만 딸라의 헌금을 갖고 건축 헌금을 전달하고 남은 돈은 교회 울타리를 하라고 하고 감사와 감격으로 삼일 예배를 드리고 돌아 온 일이 있습니다. 나는 예배당에서 하룻밤을 자며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날 따라 가장 추운 만주의 추위인 영하 30도가 되는 밤이었지만 많은 성도들이 추위를 무릅쓰고 성전에 모여서 새벽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고 미국에 사는 성도들과 너무 비교가 되어 나 스스로 부끄러운 일을 생각하며 회개하고 돌아 온 일이 있습니다.
팔가자 교회를 떠날 때에 송 용기 집사가 손을 잡으며 먼 곳에서 온 주의 종을 그냥 보내면 우리가 축복을 못 받는다고 말하던 말이 귀에 쟁쟁히 들리고 있었습니다. 송 용기 집사님은 교회에 충성을 하다가 하나님 나라로 갔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충성함으로 충성의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환으로 충성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어 가나안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 성도님들도 하나님께 충성하여 많은 사람을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하는 일을 하는 충성스러운 일꾼이, 충성스러운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충성이 있던 사람이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 갈 때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정리:
우리는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을 따라서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기쁘게 받으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어야 참 사랑을 하는 사람, 사랑의 수고를 하는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약속을 바라는 소망이 있기에 세상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바라고 있는 소망 때문에 참고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충성함으로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이 지금 당신에게는 있습니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마태 복음 7장 22절 이하에 보면 많은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선지자 노릇한 사람들 중에도 주님의 부인을 받아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난 사람이 있지만 주님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한 사람은 한 사람도 주님이 부인한 사람이 없습니다.
베드로 전서 4장 13절 - 16절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을 본 받아 고난을 이기며 죽도록 충성하며 주님 앞에 영광의 영과 함께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 앞에 서는 성도가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큰 상급을 고난을 이기고 믿음으로 살고 믿음을 지킨 상급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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