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허물

2006. 1. 26. 01:08운영자자료/1.운영자 자료실 1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다"

죄는 길을 잃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부끄러움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허약함이나 허영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만큼 죄를 부끄럽게 생각하지를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죄를 지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노발리스는 그의 저서 "단편"에서 "죄를 이해하는 사람은 덕과 기독교를 이해하고, 또한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한다"고 했다.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신앙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고 자기도 알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죄는 인간성의 황폐이며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장 고귀한것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가까이 하는것은 스스로를 죽이고 상실하는 것과 같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죄에 대한 용어는 아주 다양한데 그것은 그만큼 이 세상에 죄의 종류가 많다고 하는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죄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을 모르는것,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하지 않는것,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하는것이 죄이다. 죄는 잘못된 욕구의 결과요 그것은 곧 그를 죽이는것이다.

그래서 성경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1:15)고 기록하고 있다

. 죄의 모형은 디모데후서 3:1-7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품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하므로 죄의 속성을 밝히고 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쌓인 것은 죄의 담이다, 그런데 그 담을 누가 쌓는가? 하나님이신가? 아니다.

죄의 담은 나의 잘못된 욕구로 인해 내가 쌓는데 결국 쌓이는 그 죄의 담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그를 향해 외쳐도 그 외침이 하나님께 들리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쌓여 가는 죄의 담을 허물기 위해 늘 스스로를 돌아보아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보존할 수가 있다.

회개하지 않고 죄를 그대로 두면 그죄는 다음 세대에 복사가 되고 전이가 된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20:5)

죄의 복사란 다음 대에 습관으로 나타나는것을 말하는 것이고 죄의 전이란 유전하여 다음 세대에 행위로 나타나는것을 말한다.

죄는 부패한것을 더욱 더 부패케 한다. 그러므로 죄를 "그럴 수 있다"는 이해를 가지고 그대로 방치하거나 스스럼없이 하는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일이 된다.

어떤 이들은 죄와 허물에 대한 구분을 원하는데 사실상 이둘은 구분할 성질의 것이 아닌 같은 류의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구분한다고 하면, 죄를 강요당하는죄, 타의에 의히서 범하는 죄, 모방하여 짓는 죄로 구분하는 것이 비해 허물은 잘못된 선택이나 하나님의 과녁을 빗마추거나 미치지 못하는것을 말한다 할 수 있다.

사실 죄는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죄의 의미 외에도 과오, 실수, 부정, 블법, 죄악, 불법적인 행위, 침입, 침해, 방해, 위반, 허물, 범죄, 타락, 위선, 탈선등 모든것을 포함한다.



주님은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1-23)

왜 주의 이름으로 일을 했는데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셨을까?

하나님의 영광을 휘해 일한 것이 아니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벗어야 한다.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하신 말씀대로 진리이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방법밖에 없다. 믿는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뜻을 따라 그가 원하는 삶을 산다고 하는 이아기이다.

죄를 청산하지 않으면 죄는 우리 속의 쓴뿌리를 더욱 쓰게 자라게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 하라" (12:15)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회개치 않은 것을 사단이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사단이 지은 네가지 큰죄가 무엇인가?
1) 교만의 죄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 (사 14:14))
2) 아담과 하와를 미혹한 죄 '네가 하나님 같이 되리라 ' (창3:5)
3) 둘째 아담이신 주님께 도전한 죄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눅 4:7)
4) 성전을 어지럽힌 죄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살후 2:4)

사단의 활동 영역은 지상의 만국과 공중 권세까지이다. 사단은 주님마저 시험했던 존재이다. 그러니 죄 많고 허물 많은 인생들이야 그의 쉬운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신앙 생활을 하는데도 우리는 왜 아파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어지는 시련이라고 하면 그것은 욥처럼 하나님 앞에 큰 상급을 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그것은 내게 위기요 실패이다.

우리는 성공 하기 위해 산다. 그리고 그 성공은 내가 죄나 허물로부터 멀리 이탈할때 주어진다. 죄를 짓고 떳떳하게 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영국 속담에 "죄 있는 자는 다른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난하는 줄 안다." (He who guilty believes that all men speak ill of him)거나 "도둑은 생쥐조차 무서워한다"(The thief is frightened even by a mouse)는 말이 있다.

죄는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고 그를 더욱 깊은 죄속에 얽매이게 하는 것이다. 숨겨진 죄에는 하나님이 증인으로 계신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죄나 허물은 숨길것이 아니고 찾아 버려야 한다.

그대로 두어 사단에게 자신을 공격할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나 자신을 아름답게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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