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죽이기 (존 오웬)
2006. 1. 26. 00:59ㆍ일반자료/6.좋은글 자료
죄 죽이기 (제2장 (4) 와 (6) 중반 부분부터 )
(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허락하시고 새로운 성품을 주신 주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곧 우리로 하여금
죄와 정욕을 대적할 원리를 갖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갈 5:17).
성령, 또는 영적인 새로운 성품 안에는 육체를 대적하여 활동하는 한 성향이 있습니다. 아울러 육체 안에는 성령을 대적
하여 활동하는 한 성향이 있는 것 같이 말입니다.
베드로후서 1:4,5에서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정욕으로 말미암아 세상안에 존재하는 더러움에서 피하도록" 하려 하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죄의 법과 마음의 법이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롬 7:23).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불의하고 이치에 합당치 못한 것입니다.
이둘이 서로 전투를 벌여 서로간에 상대를 묶어 두어 힘을 쓰지 못하게 하고 원하는대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혀 아무 힘도 쓰지 못하게 될 정도까지 나가게 하려 합니다.
첫째로, 죄를 정죄하는 세력으로부터 분명하게 자유한 참 신자들은 여전히 죄의 내주하는 세력 죽이기를 자기의 책무로 여겨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일은 우리의 영원한 상태를 위해서 싸우시는 분을 묶어두고 우리를 영구히 파멸시키려 추구하며 포학하게 그일을 진행하는 자를 풀어두는 것입니다.
그 싸움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죄를 죽이는 일을 위해서 성령께 의존하고 새로운 성품을 적용하는 일을 매일 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가장 큰 원수를 대적하여 이기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탁월한 지원군을 만홀히 여기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받은 것을 만홀히 여겨 활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것을 주시길 꺼려 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은사뿐 아니라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활용하고 행사하고 장사하게 하려 함입니다.
죄를 죽이는 일을 매일 같이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과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와 사랑을 대적하여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일을 행할 원리를 갖추어 주신 분입니다.
-------------------중간 부분 생략------------
선하신 주님께서 죄를 죽이는 영을 보내신것은 우리의 병을 치료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그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우리는 서글픈 상태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죽이지 않는 신앙고백자에게 분명하게 따라 붙는 악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자신 속에 있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부분에 있습니다.
1) 자신 안에 있는 악을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죄에 대해서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그는 매일 연약의 죄에 빠지게 됩니다.
죄 죽이기를 하지 않는자의 생활의 근원을 추적하여 보면 죄에 대해 아무런 마음의 아픔을 겪지 않고 죄를 소화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은혜와 자비 때문에 매일의 죄를 아무런 아픔도 겪지 않고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런 상상에 자신을 매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음란한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위험천만한 벼랑에 서 있는 사람이고, 죄의 기만성으로 마음이 굳어져 있습니다. 그러한 거래를 서둘러 해버리는 것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의 세계를 보여주는 더 큰 증거는 없습니다.
죄를 무마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의 피(요일 1:7: 딛 2:14), 우리에게 회개토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행 5:31), 우리로 모든 경건치 않는 것을 부인하라 가르치는 은혜의 교리(딛 2:11-12)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의 모반이고 결국에 가서는 큰일을 저지르고야 맙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배도한 이들 거의 대부분은 바로 이 문 앞에서 우리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들 거의는 한 동안 죄를 깨닫고 죄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마땅한 바에 자신들을 붙들어 매게 하고 결국 신앙고백도 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앏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말았습니다(벧후 2:200.
복음의 교리에 친숙해졌다고는 하나 원리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하는 도리에 대해 진력을 내게 되니 은혜의 교리에서 떨어져 여러가지의 게으름에 동조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그러한 악이 그들을 사로잡게 되면 그들은 신속하게 나뒹굴어 파멸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2) 다른 이들에 대해서 악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두가지 방면에서 그러합니다.
(i) 다른이들 보고 '너희는 가장 훌륭한 신앙고백자들과 같은 좋은 조건에 처하여 있으니 걱정 말라' 식의 확신을 그들 속에 생기게 하여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이들에게서 발견되는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더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죄 죽이기를 생략해 버리면 그들 속에 가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에 대한 열심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거나 보편적인 의를 견지하는 일은 수반하지 않은 열심입니다.
그들이 방탕한것은 부인하면서도 세상적인 정신과는 짝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분리는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살고, 땅에서 인내하심을 베푸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아니면 그들은 영적으로 대화는 하면서도 삶은 헛되게 삽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은 하면서도 모든 방면에서 세상을 따라가고, 죄 용서 받은것을 자랑은 하면서도 다른 이들을 용서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 불쌍한 이들은 그런식의 사고방식들을 가지고 자기들의 거듭나지 못한 마음의 상태를 강퍅하고 굳게 만듭니다.
(ii) 그들은 다른 이들이 자기들이 처한 조건에 이르기만 하면 모든것이 잘될것이라는 식으로 믿게 만들어 다른 이들을 속입니다.
그리하여 종교 안에서 평판을 얻는 것을 씨름할 주요한 문제로 여기는 큰 시험에 빠지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갑니다. 그들 속에 나타나 겉으로 보기에 그들이 남들보다 훨씬 더 나아가기는 하였지만 영생에는 미치지 못했을 경우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 끝부분 생략 ---------------
* 존 오웬의 죄 죽이기 ( SFC) 중에서
(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허락하시고 새로운 성품을 주신 주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곧 우리로 하여금
죄와 정욕을 대적할 원리를 갖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갈 5:17).
성령, 또는 영적인 새로운 성품 안에는 육체를 대적하여 활동하는 한 성향이 있습니다. 아울러 육체 안에는 성령을 대적
하여 활동하는 한 성향이 있는 것 같이 말입니다.
베드로후서 1:4,5에서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정욕으로 말미암아 세상안에 존재하는 더러움에서 피하도록" 하려 하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죄의 법과 마음의 법이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롬 7:23).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불의하고 이치에 합당치 못한 것입니다.
이둘이 서로 전투를 벌여 서로간에 상대를 묶어 두어 힘을 쓰지 못하게 하고 원하는대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혀 아무 힘도 쓰지 못하게 될 정도까지 나가게 하려 합니다.
첫째로, 죄를 정죄하는 세력으로부터 분명하게 자유한 참 신자들은 여전히 죄의 내주하는 세력 죽이기를 자기의 책무로 여겨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일은 우리의 영원한 상태를 위해서 싸우시는 분을 묶어두고 우리를 영구히 파멸시키려 추구하며 포학하게 그일을 진행하는 자를 풀어두는 것입니다.
그 싸움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죄를 죽이는 일을 위해서 성령께 의존하고 새로운 성품을 적용하는 일을 매일 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가장 큰 원수를 대적하여 이기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탁월한 지원군을 만홀히 여기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받은 것을 만홀히 여겨 활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것을 주시길 꺼려 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은사뿐 아니라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활용하고 행사하고 장사하게 하려 함입니다.
죄를 죽이는 일을 매일 같이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과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와 사랑을 대적하여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일을 행할 원리를 갖추어 주신 분입니다.
-------------------중간 부분 생략------------
선하신 주님께서 죄를 죽이는 영을 보내신것은 우리의 병을 치료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그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우리는 서글픈 상태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죽이지 않는 신앙고백자에게 분명하게 따라 붙는 악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자신 속에 있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부분에 있습니다.
1) 자신 안에 있는 악을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죄에 대해서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그는 매일 연약의 죄에 빠지게 됩니다.
죄 죽이기를 하지 않는자의 생활의 근원을 추적하여 보면 죄에 대해 아무런 마음의 아픔을 겪지 않고 죄를 소화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은혜와 자비 때문에 매일의 죄를 아무런 아픔도 겪지 않고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런 상상에 자신을 매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음란한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위험천만한 벼랑에 서 있는 사람이고, 죄의 기만성으로 마음이 굳어져 있습니다. 그러한 거래를 서둘러 해버리는 것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의 세계를 보여주는 더 큰 증거는 없습니다.
죄를 무마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의 피(요일 1:7: 딛 2:14), 우리에게 회개토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행 5:31), 우리로 모든 경건치 않는 것을 부인하라 가르치는 은혜의 교리(딛 2:11-12)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의 모반이고 결국에 가서는 큰일을 저지르고야 맙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배도한 이들 거의 대부분은 바로 이 문 앞에서 우리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들 거의는 한 동안 죄를 깨닫고 죄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마땅한 바에 자신들을 붙들어 매게 하고 결국 신앙고백도 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앏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말았습니다(벧후 2:200.
복음의 교리에 친숙해졌다고는 하나 원리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하는 도리에 대해 진력을 내게 되니 은혜의 교리에서 떨어져 여러가지의 게으름에 동조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그러한 악이 그들을 사로잡게 되면 그들은 신속하게 나뒹굴어 파멸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2) 다른 이들에 대해서 악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두가지 방면에서 그러합니다.
(i) 다른이들 보고 '너희는 가장 훌륭한 신앙고백자들과 같은 좋은 조건에 처하여 있으니 걱정 말라' 식의 확신을 그들 속에 생기게 하여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이들에게서 발견되는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더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죄 죽이기를 생략해 버리면 그들 속에 가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에 대한 열심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거나 보편적인 의를 견지하는 일은 수반하지 않은 열심입니다.
그들이 방탕한것은 부인하면서도 세상적인 정신과는 짝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분리는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살고, 땅에서 인내하심을 베푸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아니면 그들은 영적으로 대화는 하면서도 삶은 헛되게 삽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은 하면서도 모든 방면에서 세상을 따라가고, 죄 용서 받은것을 자랑은 하면서도 다른 이들을 용서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 불쌍한 이들은 그런식의 사고방식들을 가지고 자기들의 거듭나지 못한 마음의 상태를 강퍅하고 굳게 만듭니다.
(ii) 그들은 다른 이들이 자기들이 처한 조건에 이르기만 하면 모든것이 잘될것이라는 식으로 믿게 만들어 다른 이들을 속입니다.
그리하여 종교 안에서 평판을 얻는 것을 씨름할 주요한 문제로 여기는 큰 시험에 빠지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갑니다. 그들 속에 나타나 겉으로 보기에 그들이 남들보다 훨씬 더 나아가기는 하였지만 영생에는 미치지 못했을 경우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 끝부분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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