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정통주의

2020. 11. 7. 16:31신학자료/1.신학자료

 

기독교 정통주의

신약성경이 전하는 기독교 신앙은 인간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특단의 방법으로 인간의 삶 속에 들어오셨다는 고백에 기초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계시를 통해 구원의 메시야를 인류에게 보내실 것을 언약했고, 그 언약의 메시야가 왔는데, 그가 나사렛 예수라는 것이 사도들의 증언이다.

초대 교회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고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면 나사렛 예수에게서 일어난 부활이 곧 그가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의 메시아’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로 악의 세력은 결정적인 싸움터에서 패배 당했다. 악의 세력은 아직도 싸움터에 남아 있어서 우리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악의 세력이 완전히 파멸될 것을 믿고 예수의 재림을 대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승리에 대하여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천지와 인류를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영생을 주었으나 선악과로 인해 죄가 들어와 타락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에게 닥친 타락의 결과는 가난, 고통, 질병, 죽음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인류를 사랑하셔서 구속자를 보내겠다고 언약하셨다.

유대교는 아직 이 하나님의 언약의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는 것이고, 사도들은 언약의 메시야가 이미 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대교와 기독교가 갈라졌다. 마태는 그 언약의 메시야가 약속대로 왕으로 오셨다는 것이고, 마가는 그 언약의 메시야가 약속대로 종으로 왔다는 것이며, 누가는 그 언약의 메시야가 약속대로 인자로 왔으며, 요한은 그 언약의 메시야가 약속대로 하나님의 아들(독생자) 곧 말씀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가 바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나사렛 예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초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주’ ‘구세주’ ‘독생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도들의 증언을 담고 있는 복음서의 기독교를 해석한 바울의 신학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정통을 수립하게 된 믿음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의 본질을 전복하려는 세력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곧 노스틱주의(영지주의)이다. 여기에 맞서서 이루어 놓은 신학적 체계가 정통주의(Orthodoxy)이다. 삼위일체 논쟁과 기독론 확립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하면 된다. 이 정통주의는 초대 교부들과 어거스틴, 초기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거쳐 다시 종교개혁자들에게로 이어진다.

위협에 직면한 정통주의

현대에 이르러 정통주의는 두 가지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 하나는 교회 밖에서부터 흘러 들어온 것으로 이성주의에 바탕한 세속적 철학에서 연유하였고, 다른 하나는 종교개혁의 부산물로 나타난 교회 내부의 종파주의와 급진적 신학이었다.

이성주의자들은 성경의 기적을 부정하고, 이성의 한계 내에서 종교를 원했다. 이성주의가 정통주의 종교를 공격할 무렵, 자연과학이 대두되었다. 과학은 언제나 진리를 증명하는 무사이고, 종교는 진리를 삼키려 하는 우매한 용으로 묘사되었다. 그것은 중세 가톨릭교회의 교권주의가 낳은 맹신이 한 몫한 부분도 있다.

종교개혁 당시 루터파와 칼빈파 그리고 영국의 성공회 운동을 제외한 종파주의, 즉 재침례파, 침례파, 회중교도, 퀘이커교도, 메노나이트교도 등 수십개의 종파들이 정통주의가 내세워온 신학에 다른 설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특히 1600년경 쏘시너스(Fautso Socinus)에 의해 제기된 쏘시니스주의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했으나 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성경에서 이성과 상식에 위배되는 내용들은 신의 계시로 볼 수 없다며 부정했다. 이 운동은 현대 자유주의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이들은 삼위일체에 대한 정통교리마저 거부하고, 예수가 초자연적 최상의 인간이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예수의 신성에 대해서는 부인하였다. 또 원죄의 교리는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무시되고, 유전죄는 모순이며, 더 나아가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였다는 생각은 부도덕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주장하였다. 신은 인간이 신에게 귀의 하기만 하면 그를 자유롭게 용서하려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러 ‘성서비평학’이 성경연구에 도입되었다. 처음에 이것은 후기 르네상스에서 역사학도들에 의해 고대 서적들을 연구하는데 사용된 방법론이었다. 그것이 성서비평에 도입되면서 모세오경이나 예언서들이 언제 누구에 의해 기록되었는가. 혹은 요한복음이 과연 사도 요한에 의해 쓰여졌는가 등을 연구하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서에 쓰인 예수가 나사렛에서 태어난 ‘역사적 예수’와 다른 예수는 아닌가 하는데까지 나아갔다. 그로 인해 19세기에는 “예수의 생애”(프리드릭 스트라우스, 르낭 등)나 “역사적 예수의 탐구”(알버트 슈바이쳐) 등의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더해 슐라이마허, 리츨, 하르낙 등의 자유주의 학자들의 영향으로 칼빈주의적 정통사상이 의혹을 받기 시작하였다.

자유주의 혹은 현대주의

자유주의(Liberalism) 혹은 현대주의(Modernism)라는 말은 매우 복잡한 말이긴 하지만 이 둘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20세기 초 대다수의 자유주의 옹호자들은 자유주의를 정통주의의 재건을 의미한다고 했다. 왜냐면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일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을 기독교 신앙을 와해시키는 무리로 보고 격렬히 비판했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들이야말로 기독교를 강제로 과거의 틀 속에 집어 넣고 과학시대에 사는 지성인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멀리하게 만드는 장본인들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기독교 신학의 현대화라는 기치를 내건 자유주의는 정통주의가 보수하려는 기독교 초기 신조가 작성된 때에 비해 세계가 급속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정통주의가 내건 기독교 신학은 구식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주의는 기독교 교리가 인간 이성에 알려진 이성적 진리의 상징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예수의 신성은 모든 인간의 성품 속에 신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상징적 표현이며, 하나님이 어느 역사적 사건 속에 자신을 계시하였다는 관념은 한갖 유치한 철학 이전의 개념으로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내재성은 자연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고, 극단적인 내재성은 범신론(Pantheism)을 의미한다. 곧 ‘하나님이 세계이고 세계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또 초월성이란 세계에서 떠나계신 하나님의 실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극단적 초월성은 시계를 만든 자가 시계를 떠나 있다는 이신론(理神論)자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은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때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를”이라는 표어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스도’는 교리를 대표하는 분이지만, ‘예수’는 갈릴리의 예언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다른 표어로서는 “바울의 신학이 아니라, 예수의 종교를”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자들은 바울이 예수를 신학이라는 검은 안개 속에 가두어버린 잘못을 저질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참다운 예수, 혹은 역사적 예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자유주의들의 왼편에는 인본주의 단체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실재, 영혼 불멸, 초자연적인 힘을 부인했다. 또 하나는 소위 경험적 종교철학파가 생겨났다. 이들을 경험주의 학파라고 부른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복음적 자유주의’라고 부르는 학파로서 이들은 내재적 하나님과 동시에 초월적 하나님을 믿었다. 그들은 예수를 그들의 주님으로 수락하는데 있어서는 정통적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가 전한 정통적 신조 전부를 따르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그리스도교의 중심인 예수를 잃어버리고 예수의 신성이라는 근본적 교리를 상실하였다고 비난했다.

정통주의의 방어 : 근본주의와 보수주의

근본주의(Fundamentaiism)란 20세기 초에 자유주의 혹은 현대주의에 대한 신학논쟁으로 미국에서 일어난 신앙운동을 말한다. 근본주의는 정통주의가 전해 준 예수의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 성경의 무오설 등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고 따르는 운동이다. 근본주의란 말은 기독교의 기본적 신앙, 즉 기독교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신앙의 원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이미 자유주의자들이 각 교단이나 신학교에서 득세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근본주의자들은 그들 교단과 신학교에서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것이 메이첸(John G, Machen)이 프린스톤신학교를 떠나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설립한데서 잘 드러난다.

근본주의자 또는 보수주의자란 말은 일반적으로 성경의 축자영감을 믿는 사람들이다.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의 어떤 기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긴다면 끝내는 하나님을 부인하는데 이르고 말 것이라고 믿었다. 근본주의나 현대주의 논쟁은 수많은 교단을 갈라놓았고 교파를 양산했다. 한국도 예장과 기장의 분열은 이 논쟁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신정통주의 : 정통주의의 재발견

신정통주의(Neo-Orthodoxy)는 낡고 인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정통’에 새롭고 다르다는 말의 ‘신(Neo)’을 붙인 말이다.

대표적 신정통주의자들 가운데는 덴마크의 철학자요 신학자인 키엘케고르(Soren Kierkegaaed), 스위스의 에밀 브루너(Emil Brunner), 독일의 칼 바르트(Karl Barth), 미국의 라인홀트 니이버(Reinhold Niebuhr)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자유주의자로 시작하였으나, 결국은 자유주의자와 근본주의자 양쪽을 모두 배척했다.

신정통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사도들과 바울과 어거스틴과 칼빈으로 이어지는 정통주의를 재발견했다고 말하지만, 근본주의자들은 그들을 여전히 자유주의자로 보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칼 바르트가 보수주의 교회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과거를 보존하려는 하나의 세력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 자체의 복리만을 위할뿐 교회 밖의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생명의 모험을 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교회는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이 시대에 필요한 증언을 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교회에 맡긴 사명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세계 기독교는 기후와 환경문제, 테러와 폭력문제 등 생명을 위협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아무런 신학적 해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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