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씨 집안 치부사

2020. 7. 16. 15:46회원자료/2.회원게시판

백선엽, 참군인 청빈한 삶?..강남역 수천억대 건물 아들명의 소유

백인엽과 백희엽까지..백씨 집안 치부사

2018년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생일파티 도중 생각에 잠긴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 연합뉴스

‘전쟁영웅’과 ‘친일파’라는 상반된 평가 속에 백수를 넘기고 숨진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일제강점기 독립군 토벌 전문부대였던 간도특설대 출신이라는 비판에 보수세력들은 ‘전쟁영웅인 백씨가 평생 군인으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백씨 삶의 다른 면모들도 있다. 그는 서울 강남역 앞에 2천억원대의 건물을 가족 명의로 소유했던 자산가였지만, 수년에 걸쳐 가족 사이 송사가 벌어지기도 했던 게 대표적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현재 백씨 장남은 서울 강남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덕흥빌딩 소유주다. 지하 5층 지상 16층 규모의 대형 빌딩으로 대지가 853㎡(258평), 건평만 1만1381㎡(3443평)에 이른다. 빌딩 전문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삼성타운이 들어오면서 여긴 부르는 게 값인데 해당 건물은 초역세권이라 평당 5억원은 될 것”이라며 “땅값(2020년 공시지가 683억원) 말고도 건물은 시가로 최소한 2천억~3천억원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백씨는 장남 명의로 돼 있던 땅에 건물을 올려 1994년 12월 역시 장남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다. 당시 장남 나이는 41살이었다. 백씨의 재산 형성 과정을 추적한 전필건 전 교육부 사학혁신위원은 “40대 초반 나이에 강남 한복판에 대형 건물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명의신탁에 의한 차명소유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5·16 쿠데타 당시 미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치담당 참사관은 본국에 보낸 장문의 기밀문서에서 “백 장군은 다른 참모총장들보다도 더욱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기술한 바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악수하는 백선엽. 한겨레 자료사진

차명 소유는 백씨 가족이 2007~2010년 사이 벌인 재산다툼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2007년 4월 백씨 장녀, 둘째 딸, 둘째 아들 3남매는 장남을 상대로 부동산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인용 결정을 받았다. 장남이 자신 명의의 건물의 매매, 증여, 전세권, 저당권 등의 권리 행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3남매는 이어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등기부상 주인은 실제 주인이 아니니, 실제 주인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해달라는 주장이었다. 2008년 8월 서울중앙지법이 3남매의 손을 들어주자 장남은 서울고법에 항소했고, 2010년 1월 다시 3남매가 일부 승소했다. 대법원까지 간 재산다툼 결과, 해당 건물은 장남과 백씨 부인이 절반씩 소유하게 됐다가, 2012년 백씨 부인이 지분을 350억원에 장남에게 매각하면서 지금은 온전히 장남 소유가 됐다. 재산을 장남 명의로 해놓았던 게 사달이 난 셈이다. 장남을 뺀 3남매는 미국 시민권자로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송과정에서 장남과 척을 진 백선엽은 말년에 아내 노씨와 둘이서 지냈다고 한다.

형제끼리의 재산다툼 외에도 백씨 일가에는 유독 돈과 관련해 입길에 오른 인물들이 여럿이다. 백씨의 동생인 백인엽(1923~2013) 전 예비역 중장과 사촌누이인 증권가 큰 손 백희엽씨다. 일본 육군 항공소위 출신인 백인엽은 1956년 6군단장 등을 지낼 때 군수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5·16쿠데타 당시 부정축재자 1호로 검거돼 무기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사실 여기엔 백인엽의 비리와 함께 박정희와의 구원도 일정정도 작용했다. 6군단장 시절, 백인엽은 장병들을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에 집합시킨 뒤 당시 부군단장이었던 박정희의 철모를 지휘봉으로 톡톡 치며 “빨갱이 XX”라는 등의 모욕을 준 일이 있었다. 백인엽으로부터의 수모를 참다못한 박정희가 그의 군수비리를 문제제기했고, 이 일로 박정희는 이듬해인 1957년 9월 제7사단장으로 전보조치된다.

서울 강남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덕흥빌딩. 시가로 2천억원이 넘는다. 카카오맵 거리뷰 갈무리

이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부패군인의 대명사였던 백인엽을 처단하고 싶었으나, 1948년 여순사건 뒤 숙군과정에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백인엽의 형 백선엽을 생각해 선처했다고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자신의 책(<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 적었다. 숙군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이었던 백선엽이 남로당 활동으로 위기에 처한 박정희를 구해준 일화는 유명하다.

한편,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12연대 연대장으로 진압작전에 참가한 백인엽은 구례지역 부역자 색출과정에서 민간인들을 고문하고 학살하는 과정의 최고책임자였다. 2008년 진실화해위는 백인엽을 직접 조사해, 그가 구례지역 민간인학살사건의 가해책임이 있다고 진실규명한 바 있다.

죽다 살아난 백인엽은 교육자로 변신, 이후 인천지역에 선인학원이라는 학교법인을 설립한다. 형과 자신의 이름을 더해 만든 그 사학재단에서 백인엽이 벌인 비리는 상상을 초월했다. 약 5700명의 학생을 정원 외로 부정입학 또는 편입시키고, 졸업장을 팔아 61억원을 받아 챙겼다. 지금 20억원(31평)에 거래되는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가 1847만5천원에 분양되던 시절이었다. 학교를 짓는다며 월남 피란민 판자촌을 철거해 원성을 샀고 확장을 이유로 중국인 공동묘지를 불도저로 밀어 외교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교직원들을 무조건 해고하고, 교사들에게 예비군 군복을 입혀서 보초를 서게 하고 순찰을 돌게 했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총 14개, 학생 수만 3만6400여명에 이르던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사학에서 벌어진 비리는 동양 최대였다. 당시 신문은 백인엽을 두고 ‘인천의 무법자’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선인학원 사학비리로 악명을 떨친 백선엽의 동생 백인엽의 육군 중장시절 사진(1956년). 한겨레 자료사진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1년 3월,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건축법과 중기관리법 위반으로 또다시 백인엽이 구속된 이유다. 이후 선인학원에 관선이사로 내려온 이는 형 백선엽이었다. 동생이 단군 이래 최대 사학비리를 저지른 곳에 형이 이사로 온 것이다. 앞서 형 백선엽이 강남대로에 건물을 올린 1994년은 선인학원 소유의 인천대 등이 논란 끝에 국공립화되던 때였다. 두 형제가 관여한 천문학적인 사학비리의 뒷감당을 국가가 나서서 하고 있는 사이, 백선엽은 강남에 대형빌딩을 세운 셈이다.

백선엽의 사촌누이인 증권가의 큰손 백희엽씨도 돈으로 한국사회를 주름 잡았던 인물이다. 1975년 중동건설붐을 타고 건설주가 폭등하면서 증권가에 이름을 날리게 된 백씨는 동아건설을 비롯, 해외 건설주를 대량매집해 거액을 벌었다. 백씨가 한창 명성을 날릴 때에는 단순히 어떤 주식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만 나도 관련 주식이 폭등할 정도였다고 한다. 1995년 사망한 백씨는 40년대 후반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고 박용학씨의 부인이기도 했다.

천수를 누린 백선엽씨를 마지막으로 치부(致富)의 한 획을 그은 백씨 집안 내력도 한 대가 마무리됐다. 여전히 백씨가 청빈하다고 주장하는 보수세력들은, 미군도 그를 극진히 예우한다며 전쟁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러나 백씨가 군인이었을 때, 미국의 평가는 정반대였던 것 같다. 5·16 쿠데타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치담당 참사관은 본국에 보낸 장문의 기밀문서에서 “(백선엽은) 혜택과 진급, 적절한 사면 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파벌적 역량을 축적했다”며 “백 장군은 다른 참모총장들보다도 더욱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기술한 바 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백선엽 관련 영상] 백선엽 부대가 우리 가족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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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전설9시간전

    이게 나라냐 친일파 개 ♪♬ 들이 이렇게 잘먹고 잘살고있다

    답글32댓글 찬성하기4252댓글 비추천하기112

  • Ryang9시간전

    백군인 일본이 다시 쳐들어 오면 출세를 위해 또 일본군이 돼 백퍼 우리민족을 배신한다

    답글42댓글 찬성하기5123댓글 비추천하기107

  • 사랑이9시간전

    매국노짓 한사람들은 배불리 잘살고 독립운동한 사람들은 겨우 밥먹고 살고 비정상의 나라

    답글41댓글 찬성하기6288댓글 비추천하기76

  • 채채9시간전

    2천억 건물이라.... 청산되지 못한 반역의 결과물..

    답글33댓글 찬성하기4799댓글 비추천하기89

  • PIO9시간전

    정말 서글프다.... 독립운동 후손들은 함들들게 사는데.. 친일.종일 부역자들 자손들은 호의호식 하는지...법만들어 환수 조치해라~~

    답글54댓글 찬성하기9500댓글 비추천하기103

  • 열무김치9시간전

    이런사람들을 통합당은 감싸고도는구나 .

    답글95댓글 찬성하기6532댓글 비추천하기126

  • 석양노을9시간전

    선인재단만 파헤쳐봐라 욕부터 나올겁니다...

    답글24댓글 찬성하기3505댓글 비추천하기64

  • 함께라면 덜 힘들겠지요10시간전

    청빈하네 미통당 청빈이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러니 자식들이 현충원 보내고 1원도 부모한테 돈쓰지 않는거네요. 저정도면 어디 현충원 간다고 할까요

    답글42댓글 찬성하기4436댓글 비추천하기98

  • Jessica9시간전

    친일파들이 아직도 이렇게 활개치는 세상 ,독립운동에 스러저간 조상님들 , 고생고생하는 후손들 얼마나 원통하실까

    답글37댓글 찬성하기6284댓글 비추천하기99

  • ctmdgjs10시간전

    가족 전체가 비리투성이에네.. 저런것들이 어떻게 현충원에 묻힐 수 있지? 대힌민국이 정말 미래가 있는 국가인지 의심스럽다.

    답글42댓글 찬성하기7155댓글 비추천하기113

  • sk29시간전

    친일파에. 부동산투기에. 차명보유에. 증여세 탈세에 ~~~~ 이게 영웅이고 청빈이라????? 눈이 돌아간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나라가 매일 시끄럽구나.

    답글111댓글 찬성하기11401댓글 비추천하기137

  • 이재창9시간전

    수천억대 이게 다 어디서 나온 재산입니까. 기가막히네

    답글30댓글 찬성하기4084댓글 비추천하기72

  • Thucydides9시간전

    매국노짓 하면 어떠냐. 매국노짓해도 대통령 잘만 해먹고 한평생 영웅대접받고 그 돈으로 자식들 대대손손 떵떵거리고 사는데.

    답글43댓글 찬성하기3316댓글 비추천하기174

  • 면면부절9시간전

    친일 수꼴 적폐의 표본

    답글27댓글 찬성하기3389댓글 비추천하기96

  • 고운빛하늘10시간전

    친일행위자 대대손손 부를 누리고 독립유공자는 숨죽여근근히 살아가고 ᆢ

    답글75댓글 찬성하기8323댓글 비추천하기94

  • KANSAN9시간전

    강남역 오가면서 여기 빌딩 주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노력들을 했을까 궁금했었는데... 내가 너무 순진한 생각을 했었네....

    답글30댓글 찬성하기4875댓글 비추천하기75

  • 손정우사살대9시간전

    한겨레 이런보도내라 돌아온다 이거다

    답글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