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세기의 위대한 가수들

2013. 5. 8. 10:59찬양자료/5.명곡목음

20세기의 위대한 가수들

  

**** Disc
세기(世紀)의 위대한 목소리          
  수록된 가수 : 유시 비욜링, 엔리코 카루소, 에찌오 핀짜 등 14명
  수록된 작품 : 아베 마리아, 하느님의 어린양 등
  제작 : Memoir Classics, 1991년, AAD , (영국),CMOIR 411

20세기 초반기에서 중반기에 걸쳐 세계 최정상급의 가수로 활약했던 14명의 남성 가수들이 노래한 역사적 명연주(名演奏)가 담겨진 음반이다. 레코드 역사를 대입시켜 보면, 이들 14명의 면면은 SP시대에 황금기를 구가하였던 명가수들이다. SP명반을 CD로 복각해서 시장에 내어놓는 것이 요즘 레코드 비지네스의 중요한 부분인데, 이 음반도 그 중의 하나인 셈이다. 어찌됐든 옛 향수를 목말라하는 올드 팬들에겐 반갑고 그리운 음성들이다.

수록된 작품들은 한결같이 종교음악이다. 독립된 종교음악으로는 포레(Faur )의 [십자가, Crucifix]와 구노의 [아베 마리아] 등이며, 오라토리오와 칸타타의 아리아로는 프랑크의 [천상의 양식]과 헨델의 [라르고] 등이다. 카루소, 질리, 스키파, 비욜링 등 SP시대의 명가수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특히, 종교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더욱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선곡이라고 생각된다. SP에서 옮긴 복각(復刻)인데도 음질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 작품과 가수들
조르주 틸(Georges Thill, 1897∼1984) ----
프랑스 이외의 나라에서는 다소 과소평가 되었던 프랑스 출신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레코드 중에서 베를리오즈의 [트로이 사람]과 글룩의 [알체스트]를 들어보면 그가 매우 뛰어난 음악 해석력을 지니고 있는 가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발성에 있어서도 그의 레가토(legato)는 경탄 할만한 것이다. 이 음반에 실린 비제의 [하느님의 어린 양]은 어떤 가수의 노래도 따라 올 수 없는 가장 프랑스적인 것이다.(1932년 녹음)

유시 비욜링(Jussi Bj rling, 1911∼1960) ----
20세기 초반기 세계 오페라 극장을 석권했을 뿐 아니라, 그의 노래는 그 시대의 가장 새로운 감각으로 평가되었다. 오페라 가수로서 그는 가장 활력 있는 연기자였고, 그의 톤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흠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그의 레가토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그의 예술성을 꽃 피웠던 비욜링의 노래는 여기에 실린 베르디의 [레퀴엠] 중 '내가 지은 죄로 얼굴 붉혀 구하나니(Ingemisco)'에서도 감동으로 빛난다.(1938년 녹음)

에찌오 핀짜(Ezio Pinza, 1892∼1957) ----
핀짜는 이 음반에 실린 베르디의 레퀴엠을 네번이나 녹음했다. 그 중에는 1929년에 녹음된 레퀴엠 전곡(全曲)이 포함되는데 '악인들을 골라내어(Confutatis maledictis)'는 네 번째의 녹음이다. 이탈리아적인 따뜻함을 지니고 있는 그의 바리톤 음색은 천부적인 음악성과 발성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것이었다.(1929년 녹음)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 ----
1902년부터 1920년에 걸친 그의 음반들은 문자 그대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명연주 였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커다란 성공을 거두어 결과적으로는 레코드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의 노래는 농밀(濃密)하며, 열정적이며, 비범한 힘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이 음반에 실린 롯시니의 [성모애가(聖母哀歌)] 중 '섧고 슬픈 성모 성심(Cujus animam)'에서 카루소가 얼마나 위대한 테너였는가를 실감하게 만든다.(1913년 녹음)

프로렌스 오스트랄(Florence Austral, 1894∼1968) ----
영국 국립 오페라의 가장 중요한 포스트를 차지했었던 오스트랄은 비록 레코드를 통한 명성에는 별다른 욕심을 내지 않아 세계적인 명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손해를 보았던 소프라노 였다. 참으로 찬란하고 풍요한 소리를 갖고 있었고 바위처럼 견고한 기교를 구사했다. 때문에 극적인 발성을 요구하는 베르디와 바그너의 작품에 그녀가 없어서는 안되었고, 모차르트에서도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여기에 실린 롯시니의 [성모애가] 중 '오, 성모여, 당신의 보호하심으로 불꽃을 면케 하소서,Inflammatus'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기교적인 트릴은 실로 놀라운 것이다. 더욱이 스튜디오 녹음이 아니고 대극장에서의 녹음이어서 오스트랄의 막힘 없는 시원스런 음악을 이 음반은 들려준다.(1928년 녹음)

베니아미노 질리(Beniamino Gigli, 1890∼1957) ----
따뜻하고 정감 있는 소리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질리는 [대중의 테너(People's tenor)]라는 애칭으로 불려졌던 인물이다. 질리는 문자 그대로 20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릴릭 테너였다. 여기엔 프랑크의 [천상의 양식]과 구노의 [아베 마리아]가 실려 있는데, 사랑스러운 소리임에는 틀림없으나 한편으로는 그의 가장 훌륭한 연주와 최악의 연주를 동시에 들려준다. 지나친 애상조(哀想調)와 과다한 장식이 오히려 식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연주가 들려 주고있는 것이다. (1936년 녹음)

티토 스키파(Tito Schipa, 1888∼1965) ----
회화로 말하자면 스키파는 비길 데 없이 완벽한 세밀화(細密畵)를 그리는 화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질리에 비해서 그의 성량(聲量)이 적고 덜 달콤하지만 정밀한 기교와 따뜻함으로 질리와는 또 다른 음악세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그의 음악의 가장 두드러진 개성은 지긋이 자신의 열정을 조절하는 엄청난 [억제력]에 있다. 여기에 실린 헨델의 아리아에서 그의 [억제의 미(美)]를 만나게 된다.(1926년 녹음)

마르셀 주르네(Marcel Journet, 1867∼1933) ----
프랑스 바리톤·베이스 유파(流派)의 마지막 인물이다. 주르네는 배역에 따라서 바리톤과 베이스를 두루 맡았으며, 당시 독일의 저음 가수들에 비해 소리의 질감이 가벼웠던 특징을 갖고 있었다. 긴 호흡, 결코 끊어짐이 없는 레가토, 크게 공명되는 발성을 자랑했던 그는 카루소의 훌륭한 파트너였다. 이 음반에서는 카루소와 함께 포레의 [십자가]를 노래하고 있다.(1912년 녹음)

존 메코맥(John McCormack, 1884∼1945) ----
오페라 무대에 선 경력은 짧은 대신 리사이틀 싱어로서는 화려한 경력을 쌓은 테너이다. 세상을 떠나기 7년전까지 무대에 섰는데, 이로써 근 40년간에 이르는 세월을 리사이틀과 레코딩에 바쳤다. 매력적인 아일랜드식 발음을 구사했던 그는 완벽한 기교를 구사하여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연주했다. 여기에 수록된 바하의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여]는 그가 은퇴하기 직전에 레코딩 한 것이다. 때문에 소리결의 결함이 다소 들려 온다.(1941년 녹음)

프리드리히 쇼르(Fridrich Schorr, 1888∼1953) ----
따뜻하고 품격 있는 음색으로 바그너의 작품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인물로서 대전(大戰) 중의 세계를 풍미하였던 테너였다. 바그너의 주인공인 보탄의 분노, 한스 작스의 소박한 인간미를 그처럼 기막히게 표현했던 가수가 없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부드러운 벨벳과 같은 톤과 상냥한 표현은 이 음반에 녹음된 [엘리아의 아리아]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1931년 녹음)

엘리자베스 슈만(Elizabeth Schumann, 1885∼1952) ----
밝게 빛나는 슈만의 음색은 모차르트의 [알렐루야]와 너무나 멋지게 어울린다. 이런 특성 때문에 때때로 짙은 감성의 표현을 요구하는 작품에서 그녀의 기교는 제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 할 만큼 음 빛깔이 너무도 투명하다. 슈만은 다른 성악가들과 즐겨 레코딩했던 흔치 않은 성악가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이런 경우에도 그는 완벽한 파트너 였다.(1926년 녹음)

피터 도우슨(Peter Dowson, 1882∼1961) ----
수많은 극장에서 주로 발라드를 연주했던 가수였다. 때문에 상업적인 효과가 있을법한 레퍼토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가수였다. 그는 자기의 소리에 완벽하게 맞는 작품만을 노래했다. 그는 참으로 보기 드문 뛰어난 가수였다. 여기에 수록된 헨델의 [메시아] 중의 아리아 '어찌하여 모든 국민은 떠들썩거리고,Why do the nations'는 그의 대가적(大家的) 기질을 유감없이 들려준다.(1934년 녹음)

이조벨 바일리(Isobel Bailli, 1895∼1983) ----
마치 플루트와 같은 투명한 음색을 자랑하는 소프라노 이조벨은 영국 오라토리오 연주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녀의 눈부신 활동은 30년간에 달했다. 투명한 음색, 균등한 스케일 구사(驅使), 기교적인 트릴(Trill)로 노래되는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중 '신록은 대지 위에,With verdue clad'는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훌륭한  가수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1941년 녹음)

폴 로브슨(Paul Robeson, 1898∼1976) ----
깊고, 따뜻하고, 품격 있는 베이스, 로브슨은 오페라 무대엔 서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베이스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에 실린 흑인영가 Swing low Sweet chariot에서 그가 들려주는 위대한 음악성과 만나게 된다. 마치 흑인영가를 위해 그가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1933년 녹음)

페오도르 샬리아핀(Feodor Chaliapin, 1873∼1938) ----
청중들을 매혹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오페라 가수이다. 그의 음악적 개성은 몇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다양하다. 때때로 그는 거의 정상적이 아닌 방법으로 노래하기도 할 정도로 표현의 변신을 즐기는 가수인 것이다. 그의 수많은 레코드가 이를 증명한다. 희랍 정교회의 옛 성가인 [연도(年度)]에서 샬리아핀은 가장 정중하고 상상력 높은 향훈(香薰)으로 우리에게 다가선다.(1932년 녹음)

비제 / 하느님의 어린양
프랑스의 문호 알퐁스 도데(Alfonse Daudet)의 희곡 [아를르의 여인]을 위해 비제는 27곡의 극음악을 썼다. 이중에서 4곡을 골라 비제가 직접 편곡한 것이 제 1 모음곡이며, 후에 또다른 4곡을 선정해서 기로(Ernest Guiraud, 1837∼1892)가 편곡한 것이 제 2 모음곡이다.

파리 태생의 비제(Georges Bizet, 1838∼1875)는 오페라 '카르멘'의 작곡자로서 극음악 분야에서 특히 훌륭한 작품을 많이 쓴 인물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제 2 모음곡의 제 2곡 [간주곡]을 편곡한 것으로 가사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문(典禮文)을 차용한 것이다. 힘이 넘쳐있으면서도 매우 극적인 분위기가 강해 연주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테너 가수들이 애창하는 레퍼토리의 하나이다.

베르디 / [레퀴엠] 중 '죄인 내가 지은 죄로, 얼굴 붉혀 구하나니''악인을 골라내어'
이탈리아 오페라 거장인 베르디가 쓴 진혼 미사곡은 그간 여러 가지 표현들로 평가되고 있었는데, 한스 폰 뷜로는 "법의(法衣)를 입은 오페라"로 평했다. 그것은 일종의 경멸이었다. 그러나 그도 나중엔 이 작품의 진가를 인정하고 자기가 했던 발언을 크게 후회하고 사과했다고 전해진다.

죽은 자의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는 레퀴엠에서 베르디는 최후의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기를 간절히, 한편으론 매우 극적으로 호소하고 기원한다. 종교적 정서를 역시 그답게 극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1868년 11월 13일,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롯시니가 영민 했다. 베르디와 리꼬르디(출판업자)는 이탈리아 작곡자 12명을 모아 각자가 한 악장의 레퀴엠을 쓰도록 했다. 그것은 유례가 흔치 않은 연작(連作)의 시도였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은 해마다 그의 기일에 연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좌절되고 말았다. 베르디는 'libera me,나를 자유롭게 하소서'를 완성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작업이 지지부진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베르디가 전곡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완성이 자꾸 지연되기만 했다. 그러던 중에 그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애국 시인 알렉산드르 만조니가 세상을 떠나자 완성을 서둘렀다.

그의 유택 앞에서 내년 1주기 때 자기의 레퀴엠을 연주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1874년 4월에 드디어 완성을 보게 되었다. 베르디의 나이는 60세였다. 이 작품은 약속대로 만조니의 1주기인 5월 22일 밀라노의 {싼 마르코}성당에서 초연 되었다. 지휘는 베르디가 맡았고 독창은 스칼라 가극장의 협력으로 1872년의 아이다 초연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4명의 가수가 맡았다. 초연의 결과는 열광적인 것이었다. 3일 후인 25일 까지 3회에 걸쳐 재연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그의 창작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의 걸작일 뿐 아니라 인간의 죽음과 영원에 대한 과제를 체험하도록 하는 위력을 갖고 있다.

'죄인 내가 지은 죄로'는 오페라 풍의 서정성과 테너의 미성(美聲)을  강조하는 아름다운 악곡이다. 현악기의 분위기는 매우 전원적이다. '악인을 골라내어'는 앞의 테너 독창곡의 다음 곡으로서 심판의 공포를 나타내는 유명한 베이스 독창곡이다.

롯시니 / 성모애가(Stabat Mater) 중 '섧고 슬픈 성모 성심(聖心)' '오, 성모여, 당신의 보호하심으로 불꽃을 면케 하소서'
젊었을 때, 롯시니는 페르골레지의 성모애가를 듣고나서 이처럼 훌륭한 작품이 있는 분야엔 손을 대지 않겠다고 작정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1831년에 친구의 소개로 스페인의 부호이며 호사가로 유명한 돈 바렐라(Don Varela)를 알게되고, 그로부터 성모애가 작곡의 의뢰를 받게되자 청년시절의 결심을 잊은 채 곧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심한 허리 신경통에 시달리는 통에 진척이 이루어지지 않자 베렐라의 극성스런 독촉에 몰리게 된다. 하는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친구인 타돌리니(G.Tadolini)에게 부탁해서 제 7장 이하를 쓰게 했다. 결국 바렐라의 손에 넘겨진 작품은 제6장까지는 롯시니의 작품이, 제 7장 이하는 타돌리니의 작품이 꿰어 맞춰진 형국이 되고 말았다. 1841년에 바렐라가 세상을 떠나자 그가 생전에 수집했던 악보들이 출판사에 넘겨지게 되었다. 당연히 성모애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친구와의 합작이 자기의 이름으로 악보화 되는 것에 가책을 받은 롯시니는 서둘러서 제 7장 이하를 다시 썼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10년만에 완성의 기회를 잡게된 것이었다. 1942년 1월 7일, 파리의 방타두르에서 초연 됐고, 공연은 눈부신 성공을 거뒀다. 롯시니의 성모애가는 페르골레지, 비발디 등의 작품에 비해 심오한 종교성이나 심각한 비애감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세속적이라고 할만큼 밝은 표정의 분위기, 아름답고도 친근감 주는 선율, 색채적 감각과 감정의 기복이 심한 오케스트레이션은 단연 이 종교음악을 친화력 짙은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을 성공작으로 이끌었고, 종교음악에 새바람을 일으켰다고 평가받게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전곡은 10장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2관 편성의 관현악, 합창, 중창, 독창에 의해 20절로 된 3행시 성모애가 전편이 연주된다.

테너의 아리아 '섧고 슬픈 성모 성심'은 이 작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서 명암의 대비가 뚜렷한 전주에 이어서 단호한 기품과 생명력을 갖고 노래한다. 소프라노 독창 '오, 성모여 당신의 보호하심으로'는 고음의 기교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악곡이다.

세자르 프랑크 / 생명의 양식
1872년에 작곡된 [미사 가 장조] 작품 12 중의 한 부분인 '생명의 양식'은 오르간, 하프, 첼로, 콘트라바스의 반주를 타고 테너가 노래한다. 생명의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聖體)와 보혈(寶血)을 영(領)하는 영성체(領聖體) 의식에서 불려지는데 "천사의 빵은 사람의 빵이 되었네. 천사의 빵으로 하여금 구약의 전표(前標)를 이룩하였도다. 아아, 감탄할 일이로다. 가난한 자나 비천한 자 주(主)를 음복하고 받들고 있다." 는 가사의 내용이다.

작품의 수효가 그리 많지 않은 프랑크(C sar A.Franck, 1822∼1890, 프랑스)의 성악곡 중에서 가장 널리 불려지는 서정적이며 경건한 성가곡이다.

헨델 / 오페라 [세르세(Serse)] 중에서 '포근하게 무성한 숲'
동생의 연인을 차지하려는 페르시아의 왕 세르세의 계략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코믹한 내용의 오페라 [세르세]는 1738년 4월 15일에 런던에서 초연 됐다. 제 1막 1장에서 노래되는 이 아리아는 세르세가 별궁의 정원을 거닐면서 부르는 것으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구성되어 있다.
레치타티보
   저 푸른 숲이 서늘해, 나의 영혼 쉬겠네. 항상 편히 쉬겠네.
   괴롭거나 슬프거나 어머니같이, 저 푸른 숲 그늘에 편히 쉬겠네.
   어느 때든지.
  
  아리아
    포근하게 무성한 숲 그늘, 이 숨결과 넋은 고이 쉰다.
    깊이 깊이 깊은 저 숲 그늘, 그는 내 생명
    내 고요히 저기 저 푸른 숲 그늘에 물어서 쫓아 온
    이 내 몸과 마음은 즐겁도다.

포레 / 십자가
구노 / 아베 마리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 1권 제 1번 다장조의 전주곡을 이조(移調)해서 반주로 사용하고 여기에 적합한 선율을 만들어 붙인 작품인데,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성총을 가득히 입으신 마리아여, 하례(賀禮)하나이다.
   당신은 여인 중에 축복받아, 당신이 잉태하신 아기 예수님은 복이 있나이다.
   하느님의 어머니, 성스러운 마리아여
   우리들 죄인을 위하여 지금도 임종시에도 기도해 주소서. 아멘.

바흐 /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여
1723년에 초연된 칸타타 제 147번 [마음과 말과 행동과 생명으로] 중에서 제 6곡과 제 10곡에 등장하는 코랄(CHORAL)이 여기에 실린 저 유명한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여'이다. 독일어 대본을 번역하면 '예수를 가진 나의 기쁨, Wohl mir, da  ich Jesum habe'인데, 흔히 영역(英譯)인 Jesus, Joy of Man's Desiring을 번역하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위의 번역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 코랄은 마르틴 얀(Martin Jahn)이 쓴 것인데, 그의 코랄 가운데 제 6절이 바하에 의해서 차용되고 있다. 상처받은 영혼을 씻어주기에 너무도 알맞은 것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깊은 감동을 준다.

멘델스존 / 오라토리오 [엘리아] 중에서 '아브라함의 주 하느님'
멘델스존은 비를 내리는 기적을 일으킨 선지자 엘리아를 소재로 삼은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된다. 그의 머리 속엔 기적의 비를 내린 엘리아가 베드로보다도 훨씬 좋은 대상이라는 생각이 계속 머물고 있었다. 엘리아는 분명히 드라마틱한 소재가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보다도(모세를 제외하고) 엘리아의 존재는 압도적으로 극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성서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마치 현재에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말하고 행동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멘델스존은 자신의 전작(前作)인 '성 바울'의 경우와 같이 모든 등장 인물들에게 역동적인 에피소드를 제공 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중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바알 신전에서 바알의 사제(司祭)들이 아무런 응답도 없는 무익한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다. 사제들은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을 주소서(Baal gib uns Antwort)"라는 기도를 거의 울부짖으며 올린다. 이 기도는 일정한 휴지부를 두고 반복되는데 이를 통해서 바알의 예배자들이 어떻게 신을 버리는지를 명확하게 알려 준다. 그 효과는 엄청나게 장엄하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엘리아의 기도는 매우 단순하게 표현된다. "아브라함의 주 하느님(Herr Gott Abrahams)" 이라는 짤막한 기도에 응답하여 하늘에서 불길이 내려온다.

멘델스존은 이 작품을 1846년, 영국의 버밍험 음악제에서 발표하였다(영어판). 영국이야말로 오라토리오의 풍요한 전통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헨델로부터 영향을 받고 이 세계에 뛰어든 멘델스존을 한 사람의 우뚝 선 오라토리오 작곡자로서 받아들이는 청중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천여명의 청중들은 연주가 끝나자 환호하고 열광했다. 그들의 앙코르 요청에 응해서 [비의 기적] 부분부터 제 1부의 마지막까지가 다시 한번 연주되었다.

등장인물 / 예언자 엘리아(바리톤), 王臣 오바디아(테너), 아합 왕(테너), 여왕 이제벨(알토), 천사(소프라노, 알토), 과부(소프라노), 소년(소프라노)

예언자 엘리아의 행적은 구약성서 [열왕기 상·하권]에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9세기, 이스라엘은 인접해 있는 강국(强國) 앗시리아의 세력을 경계한 나머지 페니키아와 동맹을 맺고 이를 더욱 확실하게 굳히기 위해 아합왕과 페니키아의 여왕 이제벨이 정략 결혼을 하게 된다. 이 결혼은 모세 이후 전통적으로 여호와 신앙을 지켜 오던 이스라엘에 이교(異敎)인 바알神이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합왕 자신도 이 사교(邪敎)에 깊이 빠져 바알의 신전을 짓고, 백성들에게 바알 신앙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엘리아의 가슴을 몹시 아프게 만들었다. 그는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된다. 그는 백성을 향해서 "여호와냐?,  바알이냐?" 라고 외치며 신의 선택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에 여호와 신앙을 확고하게 심어주기 위해 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그 기적을 통해서 바알신이 한낱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증 해 보였다. 결국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스라엘은 여호와 신앙을 되찾게 된다.

엘리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여호와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선민(選民)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서 신학적으로는 예수 다음가는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주 하느님'은 제1부 제14번, 엘리아의 아리아로서 바알신을 응징해 주십사 하고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내용의 감동적인 독창곡이다.

모차르트 / 모테트 [춤추고, 기뻐하라, 행복한 영혼이여] 중에서 '알렐루야'
모테트이긴 하지만 텍스트만 전례용의 것일 뿐 음악성이나 형식에 있어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작품이다. 전체적인 인상은 거의 오페라적일만큼 세속적인 경향이 강하고, 형식적으로는 3악장의 소프라노를 위한 협주곡에 매우 근사하다. 이것은 모차르트가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받은 영향이라고 분석되는데, 아무튼 모테트로서는 다분히 파격적인 작품이다. 1773년 1월 16일, 밀라노에서 작곡되어 이튿날 밀라노의 테아치노 교회에서 초연 됐다.

알렐루야는 제 3악장의 악곡으로 "아 아 아 아 -- "라는 단음 가사가 화려한 스타카토와 보칼리즈의 효과적인 배합으로 노래된다.

헨델 /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어찌하여 모든 국민은 떠들썩거리고'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3부작으로 된 장대한 작품으로 "전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존재를 강렬하게 호소하는 감동적인 종교성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전 인류를 향해서 무한(無限)의 감화력을 발휘하고 있는 보편적인 음악으로서의 부동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메시아는 1741년 4월 13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초연 되었다.

제2부에서 노래되는 베이스 아리아 '어찌하여 모든 국민은 떠들썩거리고'는 헨델의 가장 뛰어난 독창곡의 하나로 섬세하고 급속한 음형을 반주로 하여 노래의 가락이 격렬한 기복을 그리면서 진행된다.

하이든 /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중에서 '신록은 대지 위에'
1798년 4월에 초연된 이후 10년만에 천지창조는 하이든의 어떤 작품보다도 유명한 작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1808년 3월 27일, 빈(Wien)에서 이 작품이 상연됐을 때 연주홀엔 하이든에게 찬사를 바치기 위해 음악계의 거물들 --- 베토벤, 훔멜, 귀로베츠 --- 이 대거 참석하였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제 1부가 끝날 무렵 하이든 왼쪽에 앉아있던 베토벤이 그의 손등에 키스하였고, 청중들은 열광적으로 환호를 보냈으며 이에 하이든이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가르치면서 "저 높은 곳에서" 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것이 청중들이 본 하이든의 최후의 모습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75세 였다. 실제로 천지창조는 그의 생존시에 거의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장 유명한 오라토리오 였으며, 빈의 중심적인 레퍼토리 였다.

하이든은 메시아 등의 헨델의 오라토리오를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헨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인물은 고트프리트 판 스비텐 남작(Gottfried van Swieten, 1734∼1803)이었다. 1799년, 스비텐은 영어로 된 천지창조의 대본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하이든에게 주었다. 그러나 말이 번역이지 거의 창작이나 다름없을 만큼 원작을 토대로 뺄 것은 빼고 첨가할 것은 보태기를 과감히 이행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이든의 전기를 최초로 쓴 그라이징거(Greisinger)에 따르면 런던의 오라토리오 지휘자이며 작곡가인 리드리(Lidley, 그러나 실제의 이름은 Thomas Linley, 1733∼1795)가 밀튼의 소설 {失樂園}을 토대로 천지창조의 영어 대본(臺本)을 썼는데, 다시 이를 토대로 스비텐이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받아서 최종적인 대본은 하이든이 직접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이든이 천지창조를 헨델의 영향 밑에서 쓴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헨델의 오라토리오와 다르다. 오히려 이 작품은 놀랍게도 모차르트의 오페라 '요술피리'와 많이 닮아 있다. 천지창조의 풍요하고 다양한 음악은 더 이상의 언급이 필요 없겠으나 몇 가지 특이한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그의 관현악 용법이 대단히 열정적이다. 제 3 플루트엔 이미 하나의 독립된 역할을 주고 있고, 사자의 포효 때 쓰이는 2개의 바순 역시 일상적인 것이 아닌 독립적인 것이다. 둘째, 혼돈을 묘사할 때의 불협화음은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곡 C장조 K.465를 연상시킬 만큼 파격적이고 효과적인 것이다. 셋째, 몇곡의 아리아는 슈베르트의 가곡 이상으로 아름답고 가곡적이다. 제 8곡 우리엘의 아리아 <신록은 대지 위에> 가 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넷째, 이중창은 이탈리아적일 뿐 아니라 독일 민요풍의 성격도 포함하고 있어서 모차르트의 요술피리에서 노래되는 파미나와 파파게노의 이중창을 연상하게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합창곡 <하늘은 주의 영광 나타내고>의 경우와 같은 역동적인 대위법의 사용이다.

3부작인 천지창조는 제 1, 2부에서는 6일간에 걸친 하느님의 천지창조의 경과가 세 천사(라파엘, 우리엘, 가브리엘)에 의해서 이야기되고, 제 3부에서는 아담과 이브의 낙원 생활을 그린다. 하이든은 1795년에 작곡에 착수하여 1798년에 작품을 완성하였다. 헨델이 메시아를 불과 3주간에 완성한데 비해 하이든은 3년의 세월을 이 작품에 쏟았다.

'신록은 대지 위에'는 제 1부 제 8곡, 우리엘의 아리아로서 목가적(牧歌的)인 분위기의 아름답고 매력 있는 아리아이다.

흑인영가 / Swing low, Sweet chariot
짐승 같은 삶, 오로지 절망만을 바라보며 살아야하는 삶이 그들의 전부였다. 흑인 노예들에게 있어서 현세는 "어서 떠나고 싶은 때"일 뿐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위안과 희망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었다. 기독교가 들려주는 천국이야말로 어서 가고 싶은 그들의 본향(本鄕)이었던 것이다. 엄청난 절망과 비참한 현세에서 그들이 스스로 찾은 위안과 간절한 소망을 담은 노래가 바로 흑인 영가인 것이다. 단지 피부색이 검을 뿐, 그들도 엄연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백인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무시된 삶. 이러한 비극은 한편으로는 흑인들 스스로에게 자유를 향한 투쟁에 처절하게 나서는 자각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흑인 영가는 그 어떤 민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음악상의 독특한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서 하나의 선언적 의미와 메시지를 갖는다고 보아진다. 노예의 멍에를 벗기 위한 싸움에서 그들이 외쳤던 "주여 나는 권리를 가졌습니다"라는 절규에서 우리는 흑인 영가의 음악적, 문학적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민요에서 이러한 절규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러한 점이 흑인 영가를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흑인 노예들의 절망과 고통, 恨, 위안, 희망이 구구절절 담겨있는 영가(靈歌)들은 입에서 입으로 世代에서 세대로 구전되어 그 생명을 지켰다. 또한 이 노래는 두 세기를 거쳐오면서 미국의 전역으로 번져갔다. 그것은 노예의 모진 목숨만큼이나 질기고 강인하게  구전되고 널리 번져 왔던 것이다. 흑인 어린이들은 말과 함께 이 노래를 배웠다.
      "주님을 찾을 때까지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 위대한 아침이 오고"
      "가라, 모세"
      "내 머리 위를 넘어 하늘의 고통이 보이네"
      "기도할 때마다 나는 성령을 보며 내 마음이 움직입니다"
      "내가 당한 고통 아무도 모르네"
      "깊은 강"
      "Swing low, Sweet chariot"
등 수많은 흑인 영가들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흑인 영가는 남북전쟁 당시인 1860년대 까지만 해도 아직은 체계화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체계화된 최초의 작업은 1871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네쉬빌의 흑인 대학인 피스크 대학의 주빌리 싱어즈(Jubilee Singers of Fisk University)가 흑인 영가를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연주하고 악보를 보급하기 시작한 때가 1871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몇몇 성악가들이 그들의 연주회에서 영가를 노래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이 영가는 영국에까지 소개되었다. 물론 오늘에 와서 이 음악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음악언어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을 뿐 아니라 미국 출신의 흑인 성악가들에겐 그 어떤 레퍼토리보다도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 사진 / 엔리코 카루소

출처 : 코람데오행복한동행
글쓴이 : 행복한동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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