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빌리그래함의 설교세계
2011. 8. 29. 00:34ㆍ목양자료/2.설교자료
빌리그래함의 설교세계 1. 서 론 고속성장을 해오던 한국교회는 최근 그 성장세가 주춤한 가운데 있다. 이제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훈련시키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양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 속에서 전도의 필요성마저 희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의 가장 큰 필요 중의 하나는 전도의 필요성에 대한 믿음의 회복과 전도자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한 믿음의 회복이다. 이전 영국 국교회의 시드니 대주교였던 마커스 로운(Marcus Loane)은 암스테르담에서 주요 연설을 했는데 여기에 그의 말을 인용해본다. "전도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기가 너무 쉽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사고가 비젼을 상실한 교회를 말라비틀어지게 한다. 비젼과 전도를 상실할 때 교회는 그 자체 내에서 명목만 따지게 된다. 자기들끼리만 상관하고, 내부 지향적이 되어 진정한 영적 생동감이 결여되는 것이다."1) 복음을 전하는 것은 중단될 수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21세기가 되어도 중단될 수 없는 것이 전도다. 이런 의미에서 20세기 최고의 전도 설교자인 빌리그래함의 인생과 설교의 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연구를 통하여 전도에 대한 불타는 열정으로 살아온 위대한 전도 설교자의 숨결을 느껴보며 나 자신에게 주는 도전과 교훈도 살펴보고자 한다. 2. 빌리 그래함의 생애와 시대 1) 생애 빌리그래함은 1918년 11월 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샤를로트(Charlotte)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윌리암 프랭클린 그래함(William Franklin Graham)이지만 빌리(Billy)라는 애칭이 평생 강단의 이름으로 인상깊게 남아 있다.2) 그의 부모는 두분 다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의 부친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얻고 있던 명성은 광범위했다. 그의 이웃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프랭크 그레이엄이 자기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원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경건한 장로교인이었던 그의 모친은 자식들을 성경으로 교육시켰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족들을 하나님의 일에 써 주시기를 간구했다. 그래함은 가난 속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그의 부친은 비교적 큰 낙농장을 하고 있었다.3) 1934년 가을 그의 나이 16살이 되었을 때 당시 열렬한 복음전도자인 모르데카이 함 목사가 그가 사는 도시를 방문하여 부흥집회를 열게 되었다. 그 때 까지만해도 빌리는 평범한 학교 생활을 하며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시골 소년이었다. 처음에 그는 함목사를 단지 '열광적인 광신자'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함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요, 자기의 능력으로는 이 죄를 해결할 길이 없다는 인간의 전적 무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달았을 때 그는 곧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죄짐을 내려놓고 그의 전 생애를 드렸다. 1937년 그는 밥존스 대학을 거쳐 플로리다 성서신학교4)에 들어갔다. 플로리다 성서신학교에서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빌리 그래함은 남침례교단의 목사로 안수를 받은 즉시 설교 사역에 뛰어들었다.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되기 위해 밤마다 눅눅한 수풀사이에 나가 나무 등걸과 악어떼 그리고 캄캄한 어둠을 향하여 피나는 설교를 행하던 그는 이제 영적으로 기갈한 심령들에게로 방향을 돌려 본격적인 선포를 시작한 것이다.5) 플로리다 성서 신학교에서 공부를 끝낸 후 그래함은 1940년 휘튼대학에 입학했다. 이 곳에서 그는 인류학을 공부했고 계속해서 설교를 했다. 충실한 학사일정과 보수적인 신학으로 유명한 휘튼대학은 그래함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으면서도 신앙에대한 열정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그는 모든 교파의 사람들에 대한 수용의 정신을 만났다. 그가 휘튼대학에 다니던 시절 가장 중요했던 사건은 아마도 장로교 소속의 중국 선교사의 딸인 룻벨과 결혼한 사건일 것이다. 그녀는 신앙이 깊을 뿐 아니라 용모가 아름다웠다. 룻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교사로 중국에 돌아가도록 인도하시고 있다고 생각했고, 빌리는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라는 부르심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결국 1941년에 빌리 그래함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맺어주셨다고 그녀를 설득하여 약혼하기에 이르렀다. 1943년 8월 13일에 그들은 노스캐롤라이나의 모트리어트에 있는 한 장로교 회의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6) 휘튼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후 빌리 그래함은 일리노이주의 웨스턴 스프링 제일침례교회 목회, 국제 10대 선교회(Y.F.C)운동, 노스웨스턴 성서학교장 직무등의 바쁜 생활이 그 뒤를 따랐다. 웨스턴 스프링즈 교회의 목사로 시무하고 있는 동안 그래함은 '밤중의 찬송'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그가 이 시간을 맡으면서 그 프로그램은 그 지방 전역에 걸쳐 인기를 얻었다. 그래함은 쉼이 없이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른 곳에도 쓰시기를 원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관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십대복음선교회'에서 순회 전도자로 와 달라는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는 미국과 영국 전역에서 설교를 했고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이 일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많은 대중을 앞에 두고 설교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이 후에 노스웨스턴 성서학교장을 잠시 맡으면서도 자신의 부흥전도단을 이끌고 부흥회를 미국 곳곳에서 열면서 복음전도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1949년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래함은 완전히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한 전도집회를 인도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이제까지 해온 것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전도대회를 계획했다. 로스앤젤레스 전도대회는 처음 몇 주 동안에 그런대로 성공을 거두면서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유명한 예능인인 스튜어트 햄블런과 악명 높은 암흑가의 도청자인 짐 바우스 같은 사람들이 회심한 이후로 이 집회의 분위기와 속도가 바뀌었다. 모이는 사람들의 규모는 급속도로 커져갔다.7) 전도집회는 미증유의 사람들이 모여 회개운동을 일으켰고 이 집회를 인도한 그래함은 일약 최고의 부흥설교자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예정을 연장하여 8주간 동안 계속된 이 집회에서 설교자인 그래함 자신이 먼저 변화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마음 한 편에 지워지지 않고 있던 성경에의 의심을 완전히 떨쳐 버렸다. 그리하여 성령의 대언자로서 확신속에 굳게선채 계속 '성경이 말씀하신다'를 외치고 외쳤었다. 그의 설교는 차차 세계의 온 인류를 향해 폭을 넓혀 갔다 1950년에 미네소타의 미네아 폴리스에서 '빌리그래함 복음 전도협회'가 설립되었고, '결단의 시간'이라는 방송 프로그램 또한 개설되어 전도집회와 매스컴 선교가 활기찬 진척을 보였다. 특히 1954년의 런던 집회는 설교의 힘과 회중들의 호응에 힘입어 영국교회에 새로운 이정표를 이룰만한 대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그것은 흔히 지난 세기에 있었던 무디의 설교와 비견되며 새로운 전도집회의 장을 여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일컬어진다. 그 이후 빌리 그래함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다. 주요 국제 사역은 1956년 인도와 극동에서 집회, 1959년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집회, 1966년 베를린 대회, 1972년 나갈랜드 집회, 1973년 한국과 남아프리카 집회, 1974년 로잔대회, 1977, 1978년 헝가리, 폴란드 집회, 1982년 모스크바 일차 공식방문, 1983년, 1986년 암스테르담 대회, 1988년 중국방문, 1989년 런던에서 제1차 미션 월드 집회, 1992년 모스크바 올림픽 경기장 집회, 1993년 에센과 도쿄에서 미션 월드 집회8)등이다. 그는 어디든지 가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모든 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던 것이다. 선교의 문제와 인종의 문제로 갈등을 겪는 세계를 위로하였으며(1974년 로잔대회), 철의 장막을 넘어 모스크바로 베를린으로 전혀 외국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인도의 나갈랜드로 그는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였다. 한국과 세계의 크리스찬들은 대부분 그를 가리켜 금세기의 위대한 설교자요 가장 효과적인 복음 전도단의 중심 선포자라는 점을 즐겨 인정한다.9) 현재 그는 북부 캐롤라이나 산악 지대에서 아내 루스 벨 그래함과 살고 있다. 2) 시대적 배경 20세기 중엽 로스앤젤레스 전도 집회를 통해 빌리 그래함이 국가적인 인물이 되었을 때 북미 바깥 세계에서는 기독교가 인간사에 영향을 끼치는 한 세력으로서 사실상 가는 듯 했다. 기독교를 천년 이상이나 꽃피워 왔던 서구에서 그 동안 중심적 위치에 있던 교회들이 그 숫자나 영향력에서 쇠퇴일로를 거듭하고 있는 반면 동구의 교회들은 무신론을 신봉하는 정권의 탄압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기독교는 미국과 유럽의 선교적 노력에 의해 지난 세기에 급속도로 팽창해 왔으나 식민주의와 민족주의간의 긴장 그리고 선교사들과 그들이 설립한 교회들과의 갈등의 와중에서 그 목표가 흔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역사적 진리성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고 우선 순위를 사회개량에 두게 됨에 따라 세계 복음화에 대한 비젼은 희미하게 사라져가고 있었다.10) 1965년 11월에 행한 설교로 알려진 '구원을 얻었는가, 잃었는가'를 보면 그 당시의 미국 사회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 세계는 엄청난 생물학적 환경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인간성도 갈수록 타락해 갑니다. 범죄와 욕심과 음란과 증오와 사탄의 횡행함은 갈수록 증가하고 온 세상을 뒤덮을 지경입니다. 우리는 미국을 성적 문란으로부터 구원해야 합니다....미국은 또한 인종적인 갈등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 문제가 호전되고 있는데 우리는 악화되고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그러한 시대 속의 문제를 안고 복음을 선포했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말엽에 이르러 기독교는 그 활력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공산주의가 동구 전역과 소련에서 붕괴되었다. 사회의식과 균형을 이룬 전도가 다시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는데 많은 인물들과 기관이 일익을 감당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곧 빌리 그래함이다.11) 빌리 그래함의 사역 가운데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아마도 제국주의 시대가 지나고 반미감정이 비등하던 시기에 개신교 미국인으로서 가장 성공적인 세계적 전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그는 다른 사람들이 실패했던 원인을 알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메시지를 변경하거나 타협함 없이 간직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문화와 국제 정세 속에 적응시켰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빌리는 복음에 충실한 일꾼이었다. 분명히 하나님은 빌리 그래함의 이같은 장점을 사용하시고 축복하셨다. T.W.윌슨은 빌리 그래함을 이렇게 평했다. "그의 행적은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증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지나간 40여년 동안 특히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거나 오직 소수의 믿는 무리만이 있었던 국가들 속에서 전례 없는 성장을 보였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전례 없이 보여주는 오늘의 시대에 빌리 그래함은 여러 국가들에 보내진 하나님의 사신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도 그 보다 더 고귀한 찬사를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12) 3. 빌리 그래함 설교의 배경 1) 기도의 설교자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기도를 중요시할 뿐 아니라 자신의 전도활동을 위해 수백만 사람들로부터 기도 지원을 받아내는 기도의 사람이다. 1940년대 미국에서는 자유주의가 퍼지기 시작하여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는 사상들이 일고 있었다. 그 때 빌리의 마음에도 의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담대히 주님께 나아가 올바른 영적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 때 하나님은 빌리에게 확신을 주셨고, 그 이후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복음전도자로서 성공한 빌리 그래함은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13) 2)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한 설교자 그는 교회를 비난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부 복음전도자들과는 달리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교회로 이끄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는 전도대회를 계획하는 도시들의 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에게 협조를 요청하여 지역 교회를 협조를 얻지 못하는 한 큰 집회를 사절한다. 그는 자신의 집회에서 회심한 자들을 자기에게 묶어 두려고 하지 않고, 그들을 교회로 보낸다.14) 3) 겸손한 설교자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실을 항상 살펴 흠 없이 살려고 했던 겸손한 사람이었고 언제나 사람들에게 겸손함이 느껴지게 했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전도 대회가 거둔 성공을 늘 하나님의 공적으로 돌렸다. 그의 주제 찬송인 '하나님께 영광 있으라'는 그 자신의 느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비록 많은 보도 기자들과 저널리스트들이 그의 성격상의 결점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을지라도 그들은 대부분 그가 성실하다는 사실에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15) 4) 변화에 대해 개방적인 설교자 그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 및 사회적 입장을 변화시켜 왔다고 했다. 초기 설교에서는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심판을 강조하였으나 최근에 와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 전도를 향한 그의 열성은 점차 그에게 보다 큰 사회적 관심을 갖게 해 주었다. 빌리 그래함 자신이 직접 이렇게 이야기했다. "복음은 수직적이면서 수평적이다. 수직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계를 의미한다. 수평적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원리를 우리의 일상 생활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내 설교의 삼분의 일은 기독교의 원리를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에 적용시키도록 사람들을 격려하고 가르치는데 사용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직적인 관계만을 가르치는 복음은 반쪼가리 복음이고 수평적인 관계만을 가르치는 복음 역시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복음전도의 메시지는 온전한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는 계속해서 "내가 전하는 모든 메시지는 사회적 의미와 사회적 책임 또한 동시에 전한다."고 덧붙였다. "확신컨대 우리들은 그리스도인 시민들로서 그리스도의 원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때까지 우리의 사회 질서에 만족하고 앉아 있을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자유를 얻어야 할 노예가 있는 한, 슬럼가와 빈민지구가 있는 한, 밤에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사람이 있는 한, 인간의 피부 빛깔이 그가 구속당하는 원인이 되는 한 반드시 거룩한 불만족이 있어야 한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인들로서 두 가지 책임을 갖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곤경에 대한 유일한 해답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선을 다해 기독교의 원리를 우리 주변의 사회적 상황에 적용시키는 것이다.16) 5) 성경의 권위를 깊이 인정하는 설교자 그는 성경을 모든 결정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으나 성경해석에 있어서 극단적인 축자적 해석가는 아니다. 그는 근대적인 해석을 받아들여 자기 설교에 이용한다. 그래함은 성경을 인간의 기본적인 안내서로서 강조한다. 그의 설교 대부분은 그의 상징이 되어버린 표현 즉 '성경에서 말하기를!'이라는 말을 통해 중요한 부분에 대한 강조가 이루어지고 있다.17) 6) 전도 설교자 그는 전도자이면서 설교자였다. 빌리는 그의 저서 '전도자의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도란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방법만은 아니며 또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도라는 용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깨닫고 믿음과 제자됨을 통하여 응답하게 할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모든 노력을 포괄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함은 강한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했고 그것을 통하여 믿음의 응답과 그 다음에 제자됨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또 그래함은 저서 '하나님과의 평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목적하는 바는 여러분을 어떤 특정한 교파나 교회 속으로 이끌어 주자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여 구원을 얻게 하고 또 가장 거룩한 믿음 안에서 이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권고하고 격려하자는 데 있다."18) 그래함은 설교를 통해서나 저술을 통해서나 오직 복음을 전하고 구원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전도자이면서 설교자였던 것이다. 4. 빌리 그래함 설교의 특징 1) 성경 중심의 설교 빌리 그래함은 로스앤젤레스 전도대회 기간중에 그의 목회를 변혁시킨 비결을 발견했다. "나는 성경이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하던 노력을 멈추었다. 나는 나의 심중에 성경이 참되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이 신앙은 회중에게 전달되었다. 거듭거듭 '성경이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말하는 자신을 나는 발견했다." 빌리는 그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영의 대변자인 것처럼 느꼈다. 그는 또한 그러한 종류의 설교에는 권위가 있었음을 발견했다. 성경은 그의 손에서 불이되어 불신앙을 녹여 없애 버렸고, 사람들을 감동시켜 그리스도께로 결심토록 했다. "나는 재주, 웅변술, 군중에 대한 심리적 조종 또는 적당한 예화 또는 유명인들의 경귀들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더욱 더욱 힘써 성경 자체만을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다."19) 이처럼 그는 기독교의 메시지가 권위로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었고 또 권위를 가지고 성경을 선포하면 현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확증을 지닌 설교자였다.20) 2) 선포적인 설교(Kerygmatic Preaching) 전도설교라고 불리우는 이 설교의 내용은 성서적으로 누가복음에 기록되어진대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란 그리스도의 명령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설교에서 특별히 다루어져야 할 요소들은 예수의 구속사건과 거기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21) 빌리 그래함은 교회에 속해 있지 않고 교회에서 오지 않은 사람들, 자기들을 교육시켜 줄 교회를 갖고 있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그의 설교는 일반사회에 속해 있으면서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대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케리그마적으로 설교하려고 시도한다. 즉 실질적으로 모든 설교에서 복음의 핵심적인 사실들을 이야기한다. 어떤 본문을 채택하던지간에 그래함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라'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는 하나의 설교를 전하고 있다. 이 설교의 형식은 단순하다. 여러분이 고통 중에 있다는 증거가 있다. 그 고통은 여러 가지 명칭으로 묘사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죄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대해 무슨 일인가 하시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도움을 제공해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자기에게로 나아오도록 초대하신다. 여러분은 이 사랑에 응답함으로 회심할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설교의 일반적인 공식이다.22) 3) 준비된 설교 그는 설교의 대상자들에 따라서 설교 스타일을 바꾸었다. 1955년 그래함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설교했을 때 자기 스타일을 그 학교와 대상자들에게 맞게 바꾸어서 전했다. 그는 학자적인 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그리고 조용하게 이야기했다. 야단스런 선전 없이 등장했다. 그의 음성의 높이는 낮았고 내용은 보다 지적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다. 초기에 그는 설교에서 불과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21가지의 몸짓을 보인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그는 현란한 스타일에서 조용히 서 있고 보다 적은 몸짓을 사용하는 스타일로 바꾸어 나갔다. 설교를 준비할 때 그래함은 노트에다 수백가지의 설교 요점을 기록해 둔다고 한다. 그의 독서는 주로 경건 서적과 몇 세기에 걸쳐 있는 설교자들의 설교집과 소수의 전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언제나 뉴스 기사를 밝히 알고 있고, 종종 현재의 사건을 설교에서 인용하기도 한다. 유행되고 있는 책이나 고전문학에서 따온 인용문이나 예화는 그의 설교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구체적인 설교 준비는 신앙적인 연구와 일반적인 성경 연구를 지향한다. 그는 여러 종류의 성경 번역판을 읽고 제목별 성경에서 관련 구절들을 읽은 다음 용어 색인을 통해 이 구절들을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23) 4) 탁월한 전달력 빌리 그래함의 설교를 말할 때 우리는 그의 완벽에 가까운 전달력에 대해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다양한 성경연구로서 원고의 준비를 끝내면 곧장 자신의 집 3층에서 연습시간을 갖는 것이 상례였다. 그래함은 결코 자만하거나 소홀한 준비로 강단에 나서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하였고 때때로 한 밤 중에도 소리쳐 설교를 행하였다. 이러한 연습이 그를 역동적인 설교자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며, 회중에 따라 전달방법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능숙한 선포자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회중에게 감동력을 안겨 주는 강조의 어투를 계속 유지하면서도 말 한 번 더듬는 일이 없고 그토록 명확한 음성을 발할 수 있는 설교자가 바로 그래함이다. 그의 제스처와 어휘는 점차 중후해 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활화산같은 감동의 전달력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24) 그의 음성 또한 큰 재산이었다. 그것은 분명하고, 분절이 뚜렷하며 노스캐롤라이나 억양이 가미되어 있고,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음성의 범위에 있어서 아주 큰 다양성을 보여주고, 음성의 높이 또한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다. 그의 음성은 역동적이고 강렬하지만 그의 감정은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유발되어 나타난다.25) 5) 많은 예화 사용 일반적으로 그래함의 설교는 예화로 가득차 있다. 그래함은 가장 개인적인 예화에서 국가적인 또는 국제적인 언급으로 쉽게 옮겨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예화가 아무리 개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주제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관련성을 전달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6) 동시대적인 설교 그의 설교는 동시대적이다. 따라서 그의 설교 거의 모두에 대해 어떤 정보를 더 듣지 않아도 정확히 그것들이 속해 있는 연대를 알아낼 수가 있다. 그는 흔히 신문 기사나 전도 대상 지역의 관심사를 인용한다. 특히 그는 묘사력을 충분히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아주 뛰어난 묘사력을 보여준다. 그의 설교는 일반적으로 그 자신이 서술이나 묘사에 몰입하게 될 때, 구체적으로 인명을 언급하고 장소와 인물과 정확한 사건을 언급하고 부분에서 최상의 상태에 달하게 된다.26) 7) 호소력 있는 결론 그래함은 메시지의 결론 부분에서 자신의 요점을 요약해서 말하고, 대개 보다 큰 효과를 얻기 위해 주제를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반복법은 대부분 중심이 되는 주제를 강조하거나 인간의 곤경 및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확증할 때에 사용된다. 그는 수 만명이나 되는 청중을 앞에 두고도 마치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이 설교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27) 이런 것이 더욱 호소력 있는 결론을 만드는데 효과를 발휘한다. 8) 확신에 찬 설교 그래함의 설교는 박진감이 있으며 권위의 느낌을 전해준다. 그는 강력한 신뢰성을 투사하는데 이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그 자신의 내면이 메시지와 일치하기 때문이고 자신이 서 있는 권위에 대한 흔들림이 없는 개인적인 믿음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최고 군주가 보낸 사자, 대사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한 사자로서 그는 자신이 전하도록 명령받았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내적인 확신을 갖고서 전한다. 그가 그 메시지와 그것의 원천을 그토록 강력히 믿고 있기 때문에 회의적인 경향을 띤 많은 사람들이 깊이 영향을 받는다.28) 9) 평범한 용어 사용 그래함은 메시지를 시작하면서부터 청중과 일체가 되어 상호 신뢰하는 관계를 세우고자 노력한다. 그는 그때 그때의 일시적인 서언을 통해서나 혹은 인물, 장소, 사건에 대한 형식적인 언급을 통해서 청중과의 공동 기반을 형성하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공통적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청중과 일체가 되고자 노력한다. 비기독교 청중에게 이야기하든지, 적대감을 갖고 있는 청중에게 이야기하든지 또는 근본적으로 무관심한 청중에게 이야기하든지 그래함은 기독교 복음을 나타내는데 평범한 용어를 사용한다.29) 그는 개성이 뚜렷한 개개인과 각양 각색의 청중 모두에게 공통적인 감명을 줄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하여 철저히 성서적이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메시지를 설교할 수 있는 능력30)이 있었던 것이다. 10) 예표론과 상징적인 성경해석 그래함은 성경해석에 예표론을 사용한다. 예를들면 피에 대한 설교에서 그는 말한다. "유월절 밤에 문설주를 건너뛰게 했던 양의 피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의 피의 예표였다....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예포로, 상징으로, 예화로, 자신에게 가까이 가는 길은 오직 이 피흘림을 통해서라고 가르친다." 더 나아가 그는 말한다. "구약성경의 모든 예표와 사건들은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된다." 이 기본적인 접근은 그래함에게 신구약 성경 모두를 해석하는데 있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보도록 한다. 그래함은 또한 그의 설교에서 성경을 상징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는 지옥을 묘사하는 '불'이라는 단어를 매우 상징적으로 생각한다. 그래함은 지옥에 "불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 말을 매우 나쁜 어떤 것을 가리키기 위해 상징적으로 쓴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지옥은 본질적으로 두 번째 죽음이라고 말한다. 불이란 말은 하나님을 목타게 갈망하는 것을 묘사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갈증을 풀지 못하면 실제로 지옥에 사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지옥에 문자적으로 불이 있든지 없든지 그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이고, 존재하는 진리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래함이 문자적이며 역사적인 사실들을 일차적으로 신앙적인 상황에서 경건주의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예표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을 사용한 것은 당연하다.31) 5. 설교에 대한 평가 일반적으로 그래함의 설교에서 설교학적 우수성을 거의 발견하지 못한다. 그의 설교는 흔히 식별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때로는 논리적 진행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도 하다. 그래함은 스스로 "나는 위대한 설교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목사인 톰 앨런 경은 그래함의 설교가 현재 인정되고 있는 기준에 따르면 높은 수준에 속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설교는 흔히 형식이 없다. 그는 문법적으로 가끔 기벽을 보인다. ...... 예화는 결코 일반 문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성경이나 삶 자체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로 그의 설교는 신약적인 의미의 설교에 속한다. 그것은 일단 성도들에게 전해진 신앙을 선포하는 것이고, 관계없는 것은 모두 제거하고 양보는 일절 허용하지 않은 채 복음을 핵심적으로 확언하는 것이며, .... 믿음의 사실들이 어수선하지 않게 증거되도록 아주 단순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이 설교에 대한 답신은 단순히 "우리는 이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다."32) 빌리 그래함의 설교는 쉽고 단순하며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들어도 이해할 수 있고 감동 받을 수 있는 설교를 한다. 빌리 그래함의 설교를 들은 헬무트 틸리케는 이렇게 말했다. " .... 그것은 모두 아무런 압력이나 감정적 호소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방황하는 자들에 대해 사랑으로부터 연민을 갖고 부르는 목자의 음성이었습니다. 저는 그들 모두가 우리 기독교인들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 보았고, 그들의 감동이 넘치고 진정으로 결심의 빛이 어린 얼굴들을 보았으며 그들의 진리를 찾고 명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33) 헬무트 틸리케는 빌리 그래함이 사람들을 앞으로 불러내어 결신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인위적이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빌리 그래함의 설교를 듣고는 그것이 오해였음을 고백한 것이다. W.E. 생스터도 이런 글을 썼다. "이 빈약한 설교의 뒤를 좇아가면서 나는 내가 보리라고는 결코 기대하지 못했던 일, 즉 오순절 이래로 본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게 생각될만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 설교를 듣기 위해 한 장소에서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추위와 비 속에서 서 있었다. 설교가 끝날 무렵 나는 3,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억수같이 내리는 비 속에서 흠뻑 젖은 잔디를 가로질러 십자가의 밑부분 같은 조잡하고 칠하지 않은 연단 앞으로 나아오는 광경을 보았다. 그 같은 설교에 대해 '아멘', '아멘'이라는 표현말고 내게 무슨 다른 할 말이 있겠는가?"34) 빌리 그래함의 설교는 논리적이며 완벽하고 멋진 구성을 가지고 있는 설교는 아니었다. 다소 어설퍼 보이는 듯한 설교 구성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설교를 듣는 대상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설교자였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 위치하고 있는 대상자들에게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설교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설교는 많은 기도와 준비를 통해서 나왔을 것이며 분명 하나님께서 빌리 그래함을 통해 주신 말씀이었다. 6. 나에게 주는 교훈 유명한 설교학자 도널드 밀러(Donald Miller)는 현대 설교자들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설교를 한다는 것은 역동적인 사건(dynamic event)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역동적인 사건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은 설교자를 통하여 한 인간과의 생생한 만남을 갖게 되며 이 만남 속에서 구속의 역사를 집행하신다. 그러므로 진정한 설교는 현재의 순간 속에 말씀이 육신이 되는 연속적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오늘의 현장 속에서 살아 있는 사건으로 그 실재성을 드러낸다." 진정한 설교의 사역은 특별한 부름을 받은 존재가 언제나 성경에 기록되어진 대로 살아 있는 하나님과 그 분이 행하시는 구속의 역사를 증언해야 하고 그 기록에서 주어진 말씀을 전달하기 위한 운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35) 빌리 그래함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설교의 사역을 감당했던 사람이다. 그는 기본 진리를 늘 가슴에 간직한 사람이었다. 즉 하나님은 구약이나 신약의 시대와 동일하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영혼들을 사랑하시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경륜을 지금도 펼치고 있다는 사실36)을 품고 설교했던 사람이다. 그러한 기본진리는 나의 가슴 속에도 간직되어야 할 사실이다. 빌리 그래함의 설교를 통하여 오늘 나에게 주는 교훈은 과연 무엇인가? 첫째, 성경의 권위로 선포하는 설교자가 되라는 것이다. 칼 바르트는 설교를 정의할 때 "하나님이 선택한 설교자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들려준 하나님 자신의 말씀" 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곽안련교수는 "설교는 청중에게 향하여 마치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아는 바를 너희에게 말하겠다'와 같은 태도"는 절대 금물임을 강조해왔다.37) 빌리 그래함은 신언(神言)을 선포한 설교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성경은 말씀하신다', '성경은...'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성경의 권위를 선포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성구 인용이 많은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오늘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는 신언보다 인언(人言)이 선포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가 된다. 그것은 본인에게도 부족한 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내가 주체자가 되어서는 안되겠다. 반드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라는 성경의 권위로 선포하는 설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둘째, 준비된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되라는 것이다. 본인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유혹 받는 것 중의 하나는 좀 더 수려한 문장, 교훈적인 명언, 명쾌한 논리적 전개를 어떻게 해 나갈 것이냐이다. 그것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다른데 있다는 것이다. 빌리 그래함의 설교를 보면 나에게 '무엇을 좀 더 중요시 여겨야 하는가'를 제시해 준다. 먼저 그는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가 분명했으며, 확신에 찬 설교를 했다. 즉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증거하였으며 거침없는 확신 속에서 선포했다는 것이다. 전도 설교의 필요요소는 예수의 구속사건과 거기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빌리 그래함은 전도 설교의 핵심적 요소를 준비해서 전하였고 그 말씀에 인간들은 회개와 결신으로 응답했다. 설교할 때 내가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전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내가 먼저 믿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선포해야 하겠다. 또 그는 기도로 준비했다. 그의 변함없는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 저로 하여금 위대한 설교자가 아니라 영혼의 추수꾼이 되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모든 영광은 주님이 홀로 받으소서"38)였다. 그는 화려한 설교자가 되기 보다 한 영혼을 건지기 위한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 늘 기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빌리 그래함은 노력하는 설교자였다. 그는 설교를 선포하기 전까지 많은 연습을 했으며 단순하며 평범한 언어를 구사하여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설교를 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종교를 복잡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더 위대해 진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신학자들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신학자들이 쓴 책을 읽어보고 있노라면 평균적인 정신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신학자들이 한 말 가운데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쉽게 분간해 낼 수 없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어렵게 이리저리 비틀어놓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따랐다가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못 들어갈 지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단순하고 쉽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설교 '구원을 얻었는가 잃었는가'중에서) 본인은 설교를 작성하기까지의 노력에 비해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경우가 많았다. 빌리 그래함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회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다. 10만 이상의 사람들이 밀폐된 공간도 아닌 장소에서 집중하여 들을 수 있고, 그 가운데서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결신할 수 있었다면 그의 설교가 얼마나 준비된 설교인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셋째, 전도설교를 회복하는 설교자가 되라는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는 교인은 많으나 신자가 적다. 그러한 현상은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들의 비윤리적인 행위로 증거되기도 한다. 교회는 드나들지만 구원의 확신 속에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빌리 그래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라는 설교를 행함으로써 불신 속에 방황하던 영혼들을 수 없이 건져내었다. 오늘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라는 메시지가 살아서 선포될 때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구원의 확신은 구원 받은 감격의 행위로 이어질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죄인됨을 깨닫고 구원의 감격을 체험하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넷째, 동시대적인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되라는 것이다. 빌리 그래함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설교를 했다. 그는 신문기사나 전도 대상지역의 관심사에 민감했으며, 예화도 동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많이 사용하였다. 빌리 그래함이 사회적인 메시지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렇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예도 많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는 그 시대속에서 '왜 구원받아야만 하는가'라는 이유를 시대의 상황과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제시하고 동감할 수 밖에 없는 설교를 선포했다는 것이다. 시대와 상황은 바뀌어도 복음의 핵심은 변할 수 없다. 21세기 강단을 지킬 나에게 빌리 그래함은 중요한 점을 보여준 것이다. 과학 문명의 발달과 여유 있는 삶으로 인한 신앙에서의 일탈현상과 도덕성의 회복이 요구되어질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하는 것은 동시대적인 설교를 선포할 때 더욱 힘이 있을거라는 것이다. 7. 결 론 역사상 그 어떤 설교자도 빌리 그래함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한 사람도 없었고, 더 많은 생명을 그리스도께 인도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빌리 그래함 자신이 설교자로서의 삶과 자신의 삶 자체를 늘 동일시하는 일체감 속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 시대의 설교자로 세우셨는가?'라는 질문을 늘 자신에게 해 보아야 하겠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바르게 응답하는 설교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도 설교자로서 빌리 그래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바르게 응답했던 설교자다. 그의 말은 오늘을 설교자로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 된다. "내가 할 일이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내가 서 있는 곳이면 어디든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바로 지금이 수 많은 영혼의 구원을 위해 떠나야 할 때입니다. 언제든지 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은 부족하고, 미흡한 마음은 있지만 대단한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39) |
출처 : 청년아 부흥을 꿈꾸라
글쓴이 : 이상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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