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의 두 왕국론

2011. 7. 10. 18:27교회사자료/4.종교개혁사

마틴 루터의  두 왕국론

들어가는 말

 

'두 왕국'이란 용어는 루터가 직접 언급한 말은 아니다. 루터는 ‘두 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루터의 ‘두 정부’ 사상을 ‘두 왕국’으로 오해함으로써 ‘하나님의 왕국’과 ‘세상왕국’이란 이원론으로 기울어 역사 안에서 엄청난 파국을 초래하기도 했으며 기독교 신앙의 현재성에 대한 강조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기도 하였다. 루터의 ‘두 정부론’은 지배양식의 문제였다. 이것은 동일한 하나님의 한 지배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본 논문에서는 ‘두 왕국’이란 용어를 함께 사용하고자 한다. 그것은 기왕에 사용되는 이 용어가 어떻게 오해되어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용되는 ‘왕국’이란 용어는 공간적인 의미보다는 ‘정부’ 혹은 ‘통치’라는 의미에 더 근접하다. 글의 진행에 따라 루터가 사용한 참된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 루터의 용어 ‘두 정부’를 논의하게 될 것이다.

 

루터의 두 정부론은 어떤 체계적인 신학적 서술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말하여진 것으로서 아직까지 논쟁의 주요한 주제가 되어오고 있다. 실제에 있어서 그의 두 정부론을 이해함에 있어서 곡해된 결과는 루터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전개되기도 하였다.

 

루터는 개혁운동 후기에 접어들면서 점차 신앙과 사회와의 관련성을 생각하고 그것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초기의 율법과 복음 사이의 극단적 구별이 사라지고 둘 사이의 통일성이 모색되었다. 구원의 영역에 있어서는 인간의 의와 업적이 아무 효력이 없으나 구원받은 후의 윤리적 생활에 있어서는 사회에 공헌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루터의 두 왕국사상은 크리스챤의 윤리적 삶에 대한 견해이기도 하다. 그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은 크리스챤이 어떻게 이 세상과 관계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양자의 관계에 대한 해석에 따라 크리스챤의 삶의 양상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루터가 말하는 두 왕국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은 당대의 루터에게는 물론 오늘의 크리스챤에게도 간과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 됨’의 지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루터의 두 정부사상을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루터가 간파한 것처럼 우리 삶의 전 영역 즉 영적영역이라 할 수 있는 신앙의 삶과 세상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피조세계와 관계되는 모든 요소들은 하나님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을 형이상학적 세계에 고정시키는 한 우리는 더이상 루터의 두 정부를 바르게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루터에게 있어서 우리 삶은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벗어날 수 없다. 비록 그것이 현상적인 면에서 우리의 이해와 다르게 전개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은 변함이 없다. 하나님의 관심과 역사의 영역은 무한하기에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coram Deo)의 모든 몸과 정신과 행위 그리고 일체의 피조물과 이 모든 것들에서 파생하는 것들은 신앙의 행위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라는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비록 인간이 하나님을 대하여 치명적인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때로는 어루만지는 사랑으로 때론 징계의 칼날로 정의를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루터의 두 왕국은 곧 하나님의 오른팔과 왼팔이며,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며, 하나님의 전적통치에 대한 인간의 복종을 요구하는 이정표이다.

 

1. 두 정부 사상의 배경

 

1) 중세의 신분이해

 

세상 안에서 사는 크리스챤의 상황을 기술한 루터의 두 정부 사상은 중세의 신분적 이해를 전제하지 않으면 그 진의에 다가가기 어렵다.

중세의 신분은 크게 세속적 신분과 영적 신분으로 나눠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심화된 중세 정치권력의 우경화 즉 종교와 정치의 밀접한 관계 하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성직자들은 '영적 신분'에 속하고, 평신도들은 '세속적 신분'에 속한다는 단순한 이해를 바탕으로 영적 신분은 세속적 신분의 일들에 간섭할 수 있지만, 세속적 신분은 영적 신분의 일들에 간섭해서는 안 되었다. 이러한 이론의 배후에는 세속 군주들과 교황의 오랜 권력투쟁, 특히 아비뇽의 기억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루터는 이러한 벽(wall) 앞에서 “만인 사제설”의 교리를 통하여 신분의 왜곡 혹은 고착을 극복하고 있다.

 

루터는 통치 권력의 이중 왜곡에 대해 반대한다. 주교들은 영혼들을 말씀으로 다스리는 대신에 “성과 도시, 토지, 백성을 외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또한 세속권력자들은 그들의 영토를 성심껏 다스리는 대신에 교황주의자의 신앙을 강제하고 --- “영혼들에 대해 영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려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교묘하게도 맞지 않는 신발을 엉뚱한 발에 신기고 있으며, 칼로 영혼을 다스리고 문자로 육신을 다스리고 있다”

 

루터의 간파는 중세의 신분에 대한 중세적 구별을 철폐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결코 루터에게 있어서 단순한 체제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두 왕국’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대안적 신분체계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2) 어거스틴의 영향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은 어거스틴의 사상에 많은 부분 빚을 지고 있다. 어거스틴은 그의 책 신의 도성에서 세계를 Civitas Terrae와 Civitas Dei로 나누어 설명한다. 여기서 그는 단지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 또는 그 자신의 용어대로 지상적인 것과 천상적인 것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에 관심을 갖는데 제후의 지배와 성직의 지배 사이의 중세적 긴장은 그에게는 아직 미래에 놓여있는 문제였기에 그의 관심은 지극히 평면적인 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두 도성간의 대립은 “세속도시의 창시자인 가인과 더불어 시작하며 천년왕국까지 확장되어 간다. 하나님의 참된 도시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아직 '위에' 있고, 그 시민들은 참으로 때가 올 때까지 여전히 순례자이며 부활한 자들이 그 도시 안에 모인다.” “가인과 함께 시작된 '지상의 도성'은 사탄과 함께 영원히 다스릴 것으로 예정되었고, 아벨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과 영원히 다스릴 것으로 예정되었다. 두 도성가운데, 지상의 도성은 하나님을 멸시하기까지 하는 amor sui(자기애)에 의하여, 하늘의 거룩한 도성은 자신을 멸시하기까지 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amor Dei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어거스틴의 두 도성은 지극히 종말론적이고 도식적이고 대립적이라 할 수 있다. 어거스틴의 ‘두 도성’은 서로 구별과 대조를 이루는 이원론적 역사이해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현실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비록 어거스틴의 이러한 개념에서 루터의 두 정부 사상이 발전하였지만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루터의 두 정부는 평면적인 한계를 넘어 상호 작용한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현실 안에서 - 그것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혹은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간에- 하나님의 통치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의 선물은 시초부터 본성에 심겨져 있고, 국가의 권력은 그 근원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 두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신학적으로보다는 존재론적으로 말한다. 그러므로 루터는 정치 질서를 하나님의 현재의 활동과 직접 연결 짓고 있으며 정치적 직무에 종사하는 크리스챤은 동시에 그 직무를 이용하여 세상을 보존하시고자 하는 하나님께 봉사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루터의 ‘두 정부론’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중적 지배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구별되면서도 통전적이다. 절망으로 이끌리고 하나님과 대적하며, 언젠가는 망하게 될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직접 미치는 현장으로 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루터의 ‘세상’이 인간을 완전히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복종, 즉 하나님의 말씀(사랑)의 지배가 주된 관심이며 그 사랑은 ‘정의’의 형태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가면’인 것이다. 또한 루터는 어거스틴의 두 도성이 가진 금욕적 일면 즉 산상수훈에 대한 개인 윤리적 적용에서 더 나아가 ‘나’에서 ‘너’로 이행하는 논구를 함으로써 책임적 존재로서의 크리스챤을 설명하고 있다.

 

2. 영적 정부와 세상의 정부

 

“하나님은 사람들 사이에 두 정부를 세우셨다. 하나는 영적인 정부이다. 그것은 칼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말씀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에 의하여 사람들은 선하고 의롭게 되어 그 결과 사람들은 이 의를 가지고 영생을 얻는다. 하나님은 설교자들에게 위임한 말씀을 통하여 이 의를 관리하신다. 다른 종류는 세상의 정부인데, 칼을 통하여 일하며 그 결과 영생에 대하여 선하고 의롭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의 눈에서 의롭고 선하게 되도록 강요받는다. 하나님은 칼을 통하여 이 의를 관리하신다.”

 

루터의 초기 견해, 즉 1523년 「세속 권위에 대하여: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나」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의 나라는 기본적으로 대립관계에 있었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다운 신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의 나라에 속해 있다. 이는 세상이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고 죄악으로 가득차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인류가 이 세상의 나라에 속해 있는 한, 인류는 율법 아래 있기에 율법은 세속정부 안에 나타난다. 그래서 루터는 만일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챤이라면, 세속정부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초기 견해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나라를 이원론적으로 이해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루터의 견해는 그가 세속 정부 속에 결혼과 재산 등을 첨가하면서부터 그 지평이 넓어졌다. 이런 것들은 낙원에서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죄 혹은 타락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이제 루터의 견해는 대립적 이해를 벗어났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통치와 축복은 서로 서로 다른 영역인 것처럼 보이는 두 영역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이중적 통치방식'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1) regnum

 

두 정부란 루터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정부와 세속정부를 지칭하는 용어로써 regnum Christi와 regnum mundi로 표시된다. 루터에게 있어서, regnum이란 '지배'(realm) 또는 왕국(kingdom)이란 뜻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용어로서 우주적인 의미를 지닌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 'regnum'이란 용어가 단순히 'kingdom'이란 의미로서만 이해되어질 때 두개의 나누어진 영역으로 이해되는 잘못을 범하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루터는 한번도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두 다른 평면이나 두개의 분리된 영역에 관해서 문제를 삼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하여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regnum 개념은 하늘과 인간 세계역사의 전 지평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개념이 하나님의 '통치'가 아니라 평면적이고 정치적인 국가 혹은 정부라는 의미의 '왕국'으로 축소될 때 거기에는 많은 오해를 초래하여 결국에는 루터의 본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2) regnum christi

 

루터는 때로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나라(혹은 통치)'를 '믿음의 나라'(regnum fidei)라고도 하였다. 이 믿음의 나라는 '은총의 나라'(regnum gratiae)이며 '영광의 나라'(regnum gloriae)이다.

 

“은총의 나라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통하여 넘겨 받아 다스리는 신앙의 나라이고 영광의 나라는 하나님이 더 이상 안에서 인간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자신이 직접 다스리고자 하는 나라이다. 그 나라는 지금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하여 신앙과 신비 가운데 존재하나, 그 때에는 하나님의 본래의 모습과 계시 가운데서 존재할 것이다. 또 지금 지상 가운데 존속하는 믿음의 왕국은 말씀 가운데 우리에게 제공된 나라로서 믿음을 통해 그 나라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말씀을 통해 그 나라에 들게 된다. 장차 완성될 미래의 영광의 왕국은 계시 가운데 나타날 것이고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이며 모든 거룩한 천사들과 선택된 자들과 그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나라는 현재와 미래에 동시에 존재 한다. 현재에는 시간 속에서 말씀과 신앙을 통하여 형성되고 있으며 미래에는 영원 속에서 영광을 통하여 완성될 것이다. 이 나라는 신앙으로 볼 수 있는 비가시적 나라이며 자연적인 이성을 통하여는 식별할 수 없는 불가시적 나라이다.

 

3) regnum mundi

 

하나님의 역사 개입은 피조세계 전체에 미친다. 하나님은 영적 왕국 뿐 아니라 세상의 왕국에도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대한 관심은 세속정부라는 합법적 기관을 통해 표현된다. 하나님은 이 세계를 법과 질서를 통하여 이끌어 가신다. 그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통치는 세속정부에 유보되었다.

 

그런데 루터의 regnum mundi는 단순히 정치적 권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 가정, 예술, 모든 학문을 포함하는 세속적인 영역 전부를 나타낸다. 이 세상 왕국은 하나님의 창조시기 즉 낙원 안에도 있었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있어서 이 나라는 '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다른 한 면이다. 하나님은 regnum mundi를 통하여 인간의 혼돈과 무질서로부터 칼과 법으로 외적인 평화를 지켜내신다.

 

세상 즉 정치 당국은 백성을 기르고 돌보는 갖고 잇는 한 아버지 또는 부모의 직임을 행사한다 이런 개념은 세속 정부가 하나님이 만드신 삶의 질서임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지으신 창조질서의 보존을 원하시고 그것을 위하여서는 세속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루터는 세속정부를 죄의 지배 이전에 이 지상의 삶의 기본적 필요에 있어서 존재하는 질서로 이해 한 것이다.

 

3. 두 정부의 통치 원리

 

루터의 '두 정부사상' 은 하나님의 '영적 정부'와 '세상적 정부'의 구별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타락하고 죄악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가 갖는 두 가지 측면을 의미한다.

 

'영적 정부'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에 의해서 집행된다. '성령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의지와 완전히 일치하며,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 반면에 '세상적 정부'는 왕들, 제후들, 그리고 관료들을 통하여, 검과 시민적 법률을 사용함으로써 집행된다. 이들은 참된 신자이건 아니건 간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역할을 시행하는 것이다.(롬 13:1-7, 벧전 2:13-14)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유지하고 죄악을 억누르기 위하여 창조에 질서를 부과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검과 세속적 권위를 사용하여 다스리신다. 관료들은 법을 시행하기 위하여 검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폭력이 본래 정당화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죄가 완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결과인 인간의 탐욕과 사악을 억제하기 위하여 정치적 질서를 확립하신 것이다.

 

루터에게 있어서 크리스챤의 자세는 두 가지 관계성 안에서 설명된다. 즉 개인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데 전자는 사랑 안에서 그리고 후자는 정의라는 원리 안에서 상호 연관된다.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용서, 인내, 희생이라는 무조건적인 계명에 따라야 하는 것과 사회적 측면 즉, 공동생활에 있어서 요구되는 이웃에 대한 책임으로서의 사랑이다. 이 사랑의 행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칼을 통한 보호와 질서의 유지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은 "내적인 질서를 위해 처벌권에 기초된 법과, 외부 적의 위험에 대처하는 집단적 자기 방어의 권리"로서 "동요를 막고 외적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비 크리스챤들과 악인들을 억제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직무는 악인들에게는 공포이지만 동시에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의의 법은 하나님이 창조물을 보존하기 위해 창조물들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인간 영혼의 내적 통치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은 세상의 왕국 안에서 지배자들에게 주신 칼을 통하여 질서를 유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중적 통치는 동시적 사건이 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구원자로서 역사하고 세상왕국에서는 창조자와 보존자로서 역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왕국은 사랑과 신앙이 지배하고 세상왕국은 정의가 지배한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모든 것이 자발적인데 반해 세상왕국은 법과 정의를 보존하기 위해 강압적인 힘이 수반되고 보복과 징벌이 행사된다. 그리스도 왕국에서 그리스도는 그듸 성령을 통해 복음으로 인격적인 통치를 하는데 반해 세상왕국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이나 그의 성령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이성으로 통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루터의 '두 정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윤리적 측면이 융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는 산상수훈에 구현되어 있는 사랑의 지배를 반영하고 있으며, 인간적 정의의 개념에 도전하는 기독교의 개인윤리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적 정의의 개념을 승인하는 것으로서, 무력에 근거한 공적 윤리이다. 이 둘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상호 보완적이다.

 

하나님의 동일한 뜻이, 다른 수단을 사용하지만 두 정부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다. 루터에 있어서 '사랑'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와, 세속적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일에서도 크리스챤이 갖는 책임성을 묶어주는 꺾쇠이다. 사랑은 영적 정부와 세속 정부안에서 두 가지로 활동하지만, 동일한 사랑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 사랑은 세속정부 안에서는 보호와 정의로, 영적 정부안에서는 희생과 고통으로 나타난다.

 

두 정부는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특히 세속정부는 "하나님 자신의 일이며 제도이며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속정부의 강제력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갖는 진노와 같다. 세속정부의 진노와 엄격성이 비록 무자비해게 보일지라도 우리들이 그것을 바르게 볼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속정부는 하나님의 자비를 이루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정부는 상호 의존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정부는 진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진리는 세상의 정부에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진리를 제공한다. 이와 병행하여 세상의 정부는 그리스도의 정부가 진리를 강제하지 않는 까닭에 소수로 남을 수 밖에 없고 계속해서 존재하는 크리스챤의 악과의 싸움을 선도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이리하여 양립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정부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전제 아래서,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방법의 다른 양상으로서 융화된다. 그것은 구별될 수 잇는 것이지만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다.

 

4. 두 정부 사상에 대한 오해와 오용

 

루터의 두 정부 사상은 상황에 따라 기술된 것으로 다분히 실용적 측면이 강하다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것은 그 사상에 대한 왜곡과 오용의 여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국가 혹은 세속 권력의 전횡에 대한 초기 루터의 입장은 농민전쟁에 대한 루터 자신의 견해에서 드러난다. 루터는 "평화에의 권고"(1525)를 통하여 농민들에 대한 제후들의 학정을 비난하면서도 농민들이 군주들에 대하여 반란을 모의하는 것에 대하여는 반대하고 있다.

 

“지배자들이 사악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무질서와 폭동을 정당화시켜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악함을 처벌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책임이 아니라, 검을 갖고 있는 세속 지배자들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루터의 견해는 세속 정부가 하나님의 ‘왼 팔’임을 염두에 두는 말이다.

 

“지배자들이 복음을 억누르고, 세속적인 일들에 있어서 당신들을 억압할 때,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발 밑에 짓밟아버릴 때, 당신들은 훨씬 더 큰 잘못을 범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권위와 법을 침해하고, 당신들을 하나님보다 높이 두는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당신들은 지배자들로부터 그들의 권위와 권리를 박탈해 버린다 : 당신들이 판단을 내리고, 당신들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당신들 스스로 복수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세우신 당신들의 지배자들에게까지 보복하게 될 때, 하나님과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리라고 당신들은 생각하는가?”

 

이것은 철저히 산상수훈의 직접적 적용을 바탕에 둔 것으로서 지극히 개인 윤리적 측면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산상수훈의 개인적 적용은 유용한 것이었지만 공적윤리에 있어서는 오히려 사회의 질서를 재확립하기 위하여 폭력적인 강제수단을 용인함으로써 1930년대 독일교회가 히틀러의 폭압에 저항하지 못하고 히틀러조차도 하나님의 도구로 여길 수 있게 하는 왜곡을 초래하였다.

 

루터의 이 같은 보수적 견해는 다분히 자신이 처했던 상황에 그 원인이 있었다. 카톨릭의 위협 앞에서 루터의 개혁 수행을 지켜준 것은 다름 아닌 제후들의 지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루터에게 제공된 바르트부르크 성은 세속 군주에 대한 루터의 다소 편향적인 태도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좋은 요소였다.

 

로제는 그의 책 「루터연구입문」에서 그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또한 우리는 루터의 세속 권력자들이었던 특별한 인물들에게 주목하여야만 한다. 투박하게 말하자면, 루터의 세속 권위에 대한 견해는 분명히 그의 현자 프리드리히와 작센 선제후국 정부와의 경험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루터는 정부가 백성들을 돌보고 그들의 실제적인 상황들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평화 유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우리는 루터가 만약 다른 경험을 하였다면 두 왕국론에 관한 문제들에 다르게 반응하였을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루터의 견해가 보수적 일변도의 초기 견해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제후의 역할에 대한 루터의 견해를 보면 대략 4가지로 압축되는데, 제후는 “첫째, 하나님께 향한 참된 확신과 열심있는 기도가 있어야 하며, 둘째, 백성에 대하여 사랑과 크리스챤적 봉사가 있어야 한다. 셋째로 제후는 고문과 각료들에 대해, 방해받지 않는 이성과 속박 받지 않는 판단력을 유지해야 한다. 넷째로, 악행을 하는 자들에 대해 자제된 엄격과 굳건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세속적 권위'가 비록 하나님에게로부터 주어진 것이지만 그것은 다음의 선에서 루터가 말한 '두 왕국'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크리스챤은 자신의 인격과 일이 연관되어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법과 강제를 버려야 하며, 여기에서 선을 행하고 불의에 견디라는 예수의 명령 외에는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다. 반면 이웃이나 공동체의 대의가 걸려 있을 때에는, 크리스챤은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하여 불의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이 말은 "참된 크리스챤으로서 자신에 대한 불의에 견디어야 하지만, 당신 이웃에 대한 불의를 관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특히 크리스챤이 정부의 직위를 가질 때 그러하다.

 

루터는 또한 “군인들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1526)라는 논문에서, 군인들이 그들의 지휘관이 전투에 나가는 데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그는 양심적으로 전투하는데 불참할 수 있다. 만약에 전투에 참여해서 그가 그 이유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 역시 “전투에서 도망을 쳐서---그의 영혼을 구원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원칙적으로 루터의 입장은 “두 왕국의 명령이 충돌할 때마다 기독교인들은 베드로와 함께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에게 순종해야만 한다”(행 5:29)고 말해야만 하며, 독재자들이 하나님에 의해 그 직책에 임명되었고 그들이 그들의 목적에 봉사했을 때 하나님에 의해 폐위될 것이므로 독재자들에 대해서조차 반란이나 능동적인 저항을 인정하는 데 극단적으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상운은 그의 논문에서 루터의 두 정부 사상의 한계 혹은 그 오용에 대하여 다음의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은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한 것인데 다음과 같다.

 

첫째, 두 왕국설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몰트만에 의하면, 결국 신앙을 타계적, 세상은 무신론적으로 만들어서 결국에는 히틀러의 국가의 악용과 민족사회주의적 정치적 종교를 반대한 종교적, 정치적 근거들을 발견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두 정부’를 ‘두 왕국’으로 오해함으로써 교회는 제3제국의 전횡에 그 신학적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동시에 그것에 반대하지 못하는 교회의 우경화를 초래하였다. 농민전쟁기의 루터의 수구적 태도는 독일 민주주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며 제3세계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과 자유를 향한 혁명운동에 많은 루터교인들이 보수적 태도를 취하게 하였다. 나아가 이것은 교회의 ‘비정치화’라는 일종의 도피적 형태로 오도되어 정치와 종교, 행위과 신앙의 분리된 고착을 초래하였다.

 

둘째, 모든 영역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세속화의 위험성이다(틸리케).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 왕국과는 무관한 것으로써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에만 관계하는 것이 되고, 세상은 시민적인 법에 의해서만 통치되는 것으로 이해될 때 이 두 정부론은 서로가 무관한 것이 된다. 그래서 세상은 복수와 강압의 법칙이 지배하며, 반대로 은혜는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에만 지배하게 된다. 이와 같이 율법이 복음으로부터 떨어질 때 세상은 자기법칙성 가운데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세상은 복음에 복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이러한 결과는 교회가 세속에 저항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셋째, 루터의 두 정부가 두개의 나누인 평면적인 다른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중의 지배방식을 표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였을 때 “세계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협력자로서 이 세계를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의 행위는 그것 자체의 정당성을 얻을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복음에 대한 이해가 단지 인간의 내면적이며 초월적인 구원의 방편으로만 이해되고, 그리스도가 이 세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나가는 말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이중적 통치현실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마치 루터의 인간이해가 '신과 악마 사이에 있는 인간'을 보는 것처럼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의 왕국 시민인 동시에 세상의 시민이다. 그렇기에 루터는 크리스챤이 이 세상 속에 살아야 하며 이 세상의 삶을 위하여 필요한 직임과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임을 맡은 크리스챤은 자신의 직임을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으로 믿어야 한다. 여기에 크리스챤 삶의 역동성이 있다. 이것은 크리스챤의 삶이 철저히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성(聖)과 속(俗), 영적 세계와 세상의 삶이 한가지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질서 안에, 그리고 그 분의 뜻 안에 있음을 고백할 때에, 그리고 두 왕국이 결코 별개의 적대적 세력이 아닌 하나님의 관심 안에 있는 존귀한 세계임을 인식할 때에 크리스챤의 책임적 존재로서의 지평이 열리는 것이다.

 

초월(超越)은 우리 안에 내재(內在)해 있으며 그것은 장차 도래할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기대하는 우리의 에너지이다. 동시에 내재는 초월을 인식하게 하는 디딤돌이다. 바라보는 세계가 초월에만 고정될 때 내재는 이미 존재로서의 의미를 상실하며 내재에만 몰두 할 때 진리의 다스림을 거역한다.

 

인간의 한계는 하나님 안에서 극복되었다. 장벽은 허물어지고 무너진 성벽에 움트는 새싹처럼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넘어 존재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때론 사랑으로 때론 정의의 칼로 현현한다. 루터의 이해 안에서 하나님의 초월과 내재는 결코 인간의 선 자리를 비껴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선 그 자리마다에 거침없이 임하는 하나님의 현존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십자가를 지는 겸손뿐이다.

 

루터의 두왕국론

 

 

1. 서론

 

1983년 10월 30일,루터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독일(서독) 개신교는 보름스(Worms)에서 기념대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독일 대통령이던 카르스텐(Carstens)은 이 대회에 참석하여 말하기를 그 자신이 개신교 신자로서 "믿음의 형제들"에게 루터를 기념하는 일을 각자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로 삼자고 당부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어서,기독교인으로서 교회의 울타리 밖에서 무엇보다도 "복음"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그 대신 정치가,사회학자,정신과 의사들의 소관 상항에 개입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그는 말하기를,루터는 "세계를 이성(Vernunft)대신에 복음(Evangelium)으로 다스리려는 것"은 매우 불운한 과오로 간주하였다는 것이다. 카르스텐은 다음과 같은 루터의 말을 상기시켰다 :

 

"온 나라와 세계를 복음으로 다스리려고 모험을 하는 것은 마치 목자가 한 우리 속에 늑대,사자,독수리,양들을 함께 넣어 놓고 각기 자유롭게 뛰어 다니게 하면서 '풀을 뜯어 먹어라. 너희는 공평하게 행하여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편,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이던 필립 포터(Philipp Potter)는 같은 해 11월 10일 동독의 아이슬레벤(Eisleben)의 광장에서 개최된 루터 탄생 기념 모임에서 개신교 목사로서 “정치적 문제들”에 대하여 발언하였다. 그는 1983년을 세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징표와 이웃에 대한 사랑과 신뢰의 표시가 적었던 한 해였다고 평하면서 “우리는 그러한 일들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전멸시키려는 일에 더 몰두하였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매일 수 천명의 사람들이 “무기를 갖고 수행되는 전쟁터에서, 그리고 무기 없이 수행되는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참석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해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므로 그는 루터 탄생을 축하하러 모인 사람들에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를 호소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Gabe)을 보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하였다.

 

아마도 필립 포터 목사의 마지막 말을 카르스텐 대통령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카르스텐의 그러한 발언은 결코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는 말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포터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면 인간을 사랑하는 능력을 보전한다는 것은 분명히 인간사랑을 위한 정치적 참여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루터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두 사람의 입장이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한 사람은 정치가이고 다른 한 사람은 종교지도자 이기 ?문인가? 루터를 기념하면서,그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어떻게 이렇게 상반되는 입장과 태도들이 가능한 것일까? 만일 루터가 살아 있다면 그는 누구의 입장을 지지할 것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과 삶, 종교와 정치, 거룩과 세속 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에 익숙한 서구 신학의 전통과 그것을 뛰어 넘어 삶의 영역, 정치의 영역을 신앙과 종교적 확신으로 새롭게 변혁시키려는 시도 사이의 갈등을 보고 있다. 과연 루터는 어떤 입장을 취하였던가? 아마도 카르스텐은 루터의 소위 "두 왕국론"을 염두에 두고 그의 확신을 표현하였는지 모른다. 루터는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신앙인들의 무관심을 조장하기 위하여 소위 "두 왕국"론을 제기하였던 것일까? 우리는 여기에서 흔히 루터의 신학적 입장으로 소개되고 있는 "두 왕국"론의 문제를 연구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무관심 내지는 불감증 혹은 기피증이 종교개혁의 전통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2. "두 왕국론"(Zwei-Reiche-Lehre) 개념의 문제성

 

1930년대 이후 "두 왕국론"은 "루터의 정치윤리를 위한 포괄적인 지향의 도식(Orientierungsschema)"으로서 간주되고 있다. "두 왕국론"이 루터교 신학의 열쇄만이 아니라 루터신학의 열쇄로 된 것은,제1차 세계대전이후 시작된 전통적인 루터교회에 대한 비판이 1920년대 이후 루터를 원용함으로써 더욱 급진적 저항으로 발전하면서 부터이다. 즉 이 과정은 기존의 신학적 국가론의 해체와 함께 새로운 과제로 등장한 독일 개신교의 새로운 정치적 입장결정을 위한 시도에 의하여 촉진되었다. 그러므로 자우터(G.Sauter)는 "두 왕국론"은 엄격히 말한다면 "우리 시대의 사회윤리적 문제 상황을 16세기로 재투사(Re-Projektion)시킨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두 왕국론(-Lehre)"이라는 용어는 루터가 사용한 것이 아니며, 루터교의 교의학이나 윤리학에서 하나의 고정된 개념(Topos)으로서 수 세기 동안 전승되어 온 것도 아니다. 이 개념은 나치 독일의 이데올로기인 "국가 사회주의"에 저항하는 독일교회의 투쟁기인 1932년- 1938년 사이에 비로소 형성된 것이다. 1930년대에 이 개념을 둘러 싼 신학 논쟁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세계"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루터가 "두 왕국"의 테마에서 늘 날카롭게 제기한 문제는 "하나님의" 세계통치(Regiment)에 관한 것이었다. 즉 루터는 하나의 "하나님의 영적인 왕국"을 하나의 "세속적인 세계"에 대립시켰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왕국론"을 둘러 싼 신학 논쟁에서 "루터의 문제제기에 비하여 일종의 현저한 변위(eine erhebliche Verschiebung:變位)"를 목격하게 된다. "두 왕국"에 관한 루터 자신의 입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터 당시의 역사적 맥락(Kontext)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루터 자신이 이해한 "두 왕국"에 관한 이해는 어떤 것이었는가?

 

3. 루터의 "두 왕국"이해

 

3. 1. "두 왕국"에 대한 이해의 전승사 개요

 

"두 왕국"에 대한 논의는 루터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세속적(weltlich)" 영역과 "영적인(geistlich)" 영역을 대립 혹은 병립시키는 것은 "유대교적- 기독교적 전통"의 중요한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종교적 전통 아래 있는 문화권들에서는 두 영역이 서로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거나 심지어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예를 들면 로마제국 시대에 성행하였던 황제 숭배).

 

때때로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두 영역을 일치시키려는 이교도적 전통들이 되살아나곤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영적인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 사이의 근본적인 구분은 국가교회(Staatskirchentum)에서도 여전히 유지되었다.

 

특히 어거스틴의 "두 국가"개념(Konzeption der beiden civitates)은 중세기 신학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므로 루터의 소위 "두 왕국"에 관한 논의는 다름 아니라 기독교 전통의 중요한 한 주제를 성서에 의하여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적 문제들에 비추어 새롭게 표현하려는 시도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두흐로(Ulrich Duchrow)는 “두 왕국론”에서 다루어지는 서로 상이한 세 가지 관념복합체(Vorstellungskomplexe)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1. “두 종류의 인간집단”-- 두 왕국은 각기 피지배 백성들을 갖고 있는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지배력이다.

 

2. 하나님의 서로 다른 “통치”--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유래하는 상호 보완적인 운동(die komplement re Bewegung)으로서의 “두 종류의 통치”, 즉 하나님의 “영적인” 통치와 “세속적인” 통치.

 

3. “인간의 제도들과의 협동”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세속적 통치의 구분-- 교회와 정치적, 가정적 제도들. 이 제도들은 각기 정해진 한계 속에 있으나 모두 악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통치도구들이다.

 

3. 2. 루터의 "두 왕국"론의 "삶의 자리"

 

루터는 조직적인 이론가라기보다는 종교개혁을 위한 투쟁에 뛰어 든 활동가였다. 그가 남긴 글들은 모두 신학이론을 체계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투쟁 중에 수시로 필요에 따라 쓴 것들로서 그의 투쟁의 무기들(gelegentliche Kampfmittel)이었다. 루터의 의도는 결코 한결같이 모든 상황과 모든 시대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들을 체계화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의 신학을 체계화시키려는 작업들은 항상 비역사적 추상화에 떨어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두 왕국"에 관한 루터의 이해도 그의 시대적 상황과 삶의 자리를 고려하지 않고는 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루터는 평생동안 "두 왕국"(혹은 "두 통치")사이의 근본적인 구분에 대한 견해를 간직하였으나, 이러한 그의 견해는 항상 구체적인 사건을 철저히 염두에 두고 전개되었던 것이다.

 

1520년대 초의 긴급한 현안 문제는 폭동과 지배당국(Obrigkeit)에 대한 복종의 문제였다. 루터는 1520년 7월, 학생들 사이에서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서 발생하였던 몇 가지 충돌사건에 직면하여 폭동과 반란에 대하여 거부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왜냐하면 루터는 그 폭력사태에서 “사탄이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1521년 말, 루터는 폭동계획에 반대하여 “폭동과 반란을 경계할 것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충심으로 훈계함”이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서 그는 한 편으로는 교황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하나님의 징벌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반란은 하나님이 금지시키셨다고 주장한다. 단지 세속적인 지배당국과 귀족들은 마땅히 "그 뜻에 따라 행하여야 한다(dazu tun)"는 것이다.

 

그러나 1522년 말에는 루터의 입장은 전혀 다르게 표명되었다. 왜냐하면 후작들,특히 작센의 반쪽국가(Halbstaat)를 지배하던 공작 게오르그가 "복음을 박해"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폭군"들은 루터에게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서의 견본을 제출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제는 반란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권력의 "한계"설정이 문제로 등장하였다. 루터는 이 문제를 후에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세속적인 지배당국에 대하여 어느 정도 복종해야 하는가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다루고 있다. 이 글은 작센의 나머지 반쪽국가를 지배하던 후작 요한이 루터에게 세속적인 지배권력의 권리와 한계에 관하여 가르쳐 줄 것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씌어진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세계의 기독교화(Verchristlichung)"의 문제나 세계의 자기법칙성 혹은 세계의 자립성의 문제가 아니라 세속적인 지배권력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글을 루터의 국가론으로 취급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정치적으로 고정된 어떤 견해를 가졌던 것이 아니며, 그는 또한 국가(Staat)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현대적인 의미의 "국가"개념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3.3.루터의 저술에 나타난 "두 왕국"

 

젊은 루터는 두 지배력에 대한 종말론적인 견해를 어거스틴적 전통으로부터 이어받았다. 루터는 주기도문 해설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악마의 왕국"으로부터 구분한다. "악마의 왕국"이란 "죄와 불순종의 왕국"이다. 루터는 "자유의지에 관하여"라는 글에서도 이 세계 위에는 상호간에 매우 격렬하게 투쟁하는 "두 왕국"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한 왕국은 사탄이 지배하고 다른 왕국은 그리스도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계속적으로 온 힘과 정열을 기울여 상호 투쟁하고 있는 이 "두 왕국"에 대한 깨달음과 그것에 대한 신앙고백때문에 루터는 자유의지론에 대하여 반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사탄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우리는 사탄의 왕국을 섬기도록 강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또한 하나님의 통치(Regiment) 방식을 두 가지 형태로,즉 "영적인" 통치와 "세속적인" 통치로 구분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이 두 형태의 하나님의 통치는 모두 "악마의 왕국"에 대항하기 위한 것들이며 인간들의 제도들은 "악마의 왕국"과의 싸움을 위한 도구들이다. "영적인" 통치에서 하나님은 스스로가 인간을 해방시키는 주님이시며 교회는 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Dienerin)이다. 여기에서 루터는 권력으로서의 "영적인 직무(Amt)"라는 로마 카톨릭적 관념을 철저히 배격한다. 루터는 교회의 영적인 지배당국을 설교의 직무에서 구체화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 통치로 축소시킨다. 1522년 10월 24일에 행한 설교에서 루터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영적인 왕국은 하나님이 지배해야만 한다. 그 밖의 다른 존재가 (지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왕국이지 "교황의 왕국이 아니다!" 루터는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제(제사장)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제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우리로부터 선택된 종(Diener)들로서 모든 것을 우리의 이름으로 행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사제직(Priestertum)은 다름아니라 봉사(를 위한 것)이다."

 

루터의 두 왕국론과 농민 전쟁

 

1.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결코 이론적인 문제만은 아니었으니, 특별히 유신헌법 시절에는 이 문제가 특별히 세인들의 논란거리로서 우리의 관심을 끈 바가 있거니와, 교회 역사는 이 문제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실천에 관한 문제임을 잘 증명해 주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 문제는 사도 바울의 신학적 유도 동기가 되었으며, 이 문제는 복음 선포를 통해 신앙을 얻은 인간들에게는 언제나 영원한 숙제가 되어 왔다: 곧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이 산상 교훈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통해서만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곧 그것은 예수의 산상 교훈을 이데올로기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 초대 교회가 국가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구절을 찾는다면, 마가 12:13 이하와 로마 13:1 이하를 들 수 있다.

 

마가 12:13 이하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와서 조세의 의무를 이해함이 옳은지에 관해 묻는다. 예수는 황제의 것을 황제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 옳다고 대답한다. 여기서 예수는 하나님의 영역과 국가의 영역을 분리하지 않는다. 인간은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이요, 소유, 하나님의 권세 아래 속한다. 여기서 언급되지 않았을지라도 황제조차도 인간이기에 결국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서 옆에 또 다른 질서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복종함이 우선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는 한에서, 세상에는 국가가 존립한다. 예수는 정치 현실을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세상은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을 얼마나 섬기는가를 입증하는 무대―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로마 13:1 이하에서 보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로 이해되고 있다. 이 섬김은 이 세상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입증되어야 한다. 여기서 사도 바울의 시선은 교회의 벽을 넘어서고 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다. 사도는 이 세상이 바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낸 세상임을 지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질서의 일부분인 국가에 복종함이 바람직하다. 여기서도 국가는 하나님이 허락하는 한에서 존립하는 세상의 일부분, 하나님의 창조물일 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이웃을 섬기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돌입과 더불어 그 의미를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핑계하여 국가 질서를 부정하는 것은 그릇되다. 신약성서는 거듭하여 인내와 복종을 말한다. 이것은 자포자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고난의 길로 이해된다.

 

로마 제국이 네로 황제 이후 박해기를 거쳐서 콘스탄틴 황제에 이르러 신앙을 허락하게 됨으로써, 교회는 국가와 황제에 대해 경배와 찬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의 충실한 신하가 되었다. 황제는 "하나님에 의해 부름받은 하나님의 사자," 신앙의 충실한 수호자였다.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 황제의 교회 섭정 전통은 동방 교회에서 지속되었다. 서방 교회에서도 입장은 거의 유사했다. 레오 1세는 황제 마르키안 1세에게 보낸 서한에서 '하나님은 황제에게 황제 관 외에 사제의 손을 넘겨주었다'고 기술하였다. 또한 그는 주교의 임무는 '황제의 의도하는 바를 알리고 황제가 믿는 바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회 위에 황제가 있다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신앙이 교회와 일치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게르만족의 침입 이후 지배자들이 아리안주의를 신봉하면서 상황은 변하였다. 이제 교회는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되었다. 이로써 교회의 자율성 의식이 자라나게 되었다. 교회는 신정주의적 요구를 관철하게 되고 국가는 이를 위한 도구라고 천명하기에 이른다. 물론 교회가 국가 위에 있고 국가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하녀라는 의식이 심어 주기까지, 그리고 더 나가서 교회가 국가와 같이 권력을 요구하고 정사에 개입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로써 전제 조건이 이미 마련된 셈이었다.

 

1302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의 칙령 'Unam sanctam'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하나님은 두 개의 칼을 가졌으니, 하나는 교회에 의해, 또 하나는 교회를 위해 사용된다." 국가는 오직 교회와 일체를 이루고 의존함으로써만 그의 본래적 사명을 이해할 수 있다. 이로써 교회는 국가 위에 있다. 또한 서방 사회 전체는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anum)이다.

 

2.루터에 있어서 두 왕국론(zwei-Reiche-Lehre)의 정의부터 내려보자. 여기서 Reich(라틴어 regnum)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곧 군주가 통치하는 영역, 백성을 의미하거나, 또는 군주에게 속한 권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첫 번째 의미로 루터는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고 그것의 반대 개념으로서 '세상 나라', '악마의 나라'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곧 하나님 나라는 참 교회,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communio sanctorum이며, 그 반대로 세상 나라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러므로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로 구성된 세상을 의미한다. 우리말의 '두 왕국론'은 이런 의미만을 지시할 따름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의미로 루터는 영적 정부와 세상 정부라는 개념을 말한다. 우리말의 '두 왕국론'은 이런 의미를 잘 드러내지 못한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인류를 다스림에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 두 정부, 두 질서를 지시한다.

 

하나님은 세상에 두 정부, 두 질서를 통해 인류를 다스린다. 곧 하나님은 영적 정부를 통해 말씀과 성령으로써 다스리고, 세상 정부를 통해 법과 칼로써 다스린다. 영적인 정부, 혹은 나라는 구원 사업을 위하여 존재하는 하나님의 오른편 나라이다. 이것은 비가시적으로, 내면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통치한다. 이 나라는 인간의 외적 삶과는 상관없이 영원한 구원을 목적한다. 하나님은 인간 마음 속에서 은밀히 역사하여 인간을 죄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믿음을 통해 의롭게 만든다. 루터가 누차 강조하는 대로, 인간은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세상 나라 혹은 세상 정부는 하나님의 왼편 나라다. 하나님은 악을 처벌하고 세상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세상 정부를 세웠다. 이 정부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의 일상적 삶을 가능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위하여 칼과 율법을 세상 정부에게 위탁하였다. 그러므로 세상 정부는 오직 외적인 질서요 힘의 권세다. 그것의 일차적 기능은 세상에서 법과 정의를 관철함에 있으니, 이것이 없이는 인간 삶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 정부는 오직 인간의 외적 행동을 통치함에 상관할 따름이고 영혼의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 정부와 세상 정부는 대립 관계에 있다고 볼 수가 없다. 루터는 누차 두 질서를 혼동해서는 안됨을 강조하면서, 두 질서는 상호 보완 관계에 있음을 강조한다. 두 질서는 모두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으며 각 질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룸에 있어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저 첫 번째 의미에서의 두 왕국론은 종말론적 도식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의미의 두 왕국론은 아우구스틴에게서 왔다. 아우구스틴은

 

[신국론](De civitate Dei)에서 세상의 역사를 하나님 나라와 악마의 나라의 투쟁으로 보았다. 여기서 두 왕국은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더불어서 이미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인류는 두 왕국으로 분류된 것으로 간주한다. 아우구스틴에게 있어서 두 나라는 가시적인 나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나라, 혹은 corpora mystica이다. 이 두 나라는 세상에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처럼 뒤섞여 있다. 하나님만이 누가 하나님 나라에 속하고, 누가 사탄의 나라에 속하는지를 안다. 두 나라의 투쟁은 결정적으로 인류 역사의 성격을 규정한다. 이 투쟁은 결국 사탄이 궁극적으로 정복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지상에 영광 중에 수립되기까지, 지속될 것이다.

 

첫 번째 의미에서의 두 왕국론은 다분히 묵시문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자 하나님이 직접 자신이 창조한, 그리고 타락한 세상에 개입했으니, 이 세상은 사탄의 적대적이고 생명 파괴적인 권세 아래 고통을 받고 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그의 나라는 시작되었으니, 지금이 곧 종말의 때요,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통해 그의 창조 사업을 완성을 향해 이끌어 간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로운 에온이 시작되었으며, 여기서 하나님의 새로운 영적 통치는 시작되었다―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아담이 탄생한다. 그러므로 세계가 이처럼 두 우주적 질서가 마니교적으로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투쟁하는 과정에서 옛 에온이 새로운 에온에 의해 점차 정복당하여 간다. 인간적으로 볼 때 우리의 옛 아담은 날로 날로 죽고 새 아담이 우리 안에서 자라간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았을지라도 옛 인간을 단번에 벗어버릴 수 없고, 계속적으로 그의 믿음을 통해서 나날이 성화되어야 한다. 지상의 어떤 인간도 무조건 "순전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될 수 없다. 지상의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본성을 가진다, 곧 그는 동시에 영과 육, 혹은 옛 인간과 새로운 인간으로서 두 본성은 그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상호 투쟁을 벌인다. 따라서 누구나 이 세상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simul iustus et peccator이다. 비록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를 의롭다고 여길지라도, 그는 죄인이며 결코 그의 죄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로지 종말에서 그의 성화과정이 완료되고 그의 죄성의 잔재가 완전히 소멸될 것이다.

 

그렇다면 두 왕국론을 이중적으로 구분해야 하고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할 때, 양자의 관계는 어떠한가? 루터의 두 정부론은 다분히 종말론적 투쟁의 도식 속에 서술되는 (첫 번째 의미에서의) 두 왕국론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두 나라의 투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지상에 두 정부를 세웠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 인류의 창조자요 통치자이다. 이 세상은 원래적인 상태,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한 그런 상태에는 이미 처해 있지 않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아래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을 죄와 그 결과에, 사탄의 권세에 내어준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심판이 전부요 그의 궁극적 판결이라면, 인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셈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궁극적이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서도 인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에 의해 존속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심판에 제동을 걸고 죄의 파괴적인 작용에 맞선다. 이로써 세상과 인류는 적어도 외적으로 그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세상과 인류,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을 보존하려는 의지의 결과다. 하나님은 세상 정부라는 도구를 통하여 궁극적인 창조의 완성을 위하여 세상을 유지한다. 하나님이 세운 세상 정부는 죄를 근본적으로 뿌리뽑지는 못하며, 구원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의 삶을 가능케 만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창조물을 두 가지 방식으로 통치한다: 세상 정부가 하나님의 유지와 보존 의지의 표현이라면, 영적 정부는 하나님의 구원과 완성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루터가 하나님의 세상 사역을 이중적으로 파악했으니, 이는 시간을 옛 세상과 새로운 세상이 중첩되는, 예수의 부활과 재림 사이 중간 시기로 이해한 종말론적 관점에서 비롯한다.

 

두 정부는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을 유지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 적대적인 세력과의 싸움에서 사용하는 도구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사탄의 세력과 싸우고 인간을 죄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자신에게로 인도한다면, 하나님은 칼을 통하여 사탄의 무리의 활동을 무력으로 제어하고 그들이 세상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을 방지한다. 다른 한편으로 루터는 두 정부가 직접 투쟁에 참여한다고 본다. 두 나라는 언제나 사탄의 공격을 받고 있으니, 사탄의 공격은 두 가지다: 첫째로 사탄은 이단과 반란을 선동함으로써 두 정부를 전복시키려 한다. 따라서 무지한 대중은 이단으로써 복음에 대항하고, 또는 하나님이 세운 정부의 권위를 배척한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두 나라를 위탁받은 성직자와 세속 정치가들이 그들의 거룩한 소명을 버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거룩한 권위를 왜곡시켜 사탄을 섬긴다.

 

그러므로 두 나라, 혹은 두 정부는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투쟁의 중심에 서 있다. 하나님은 사탄의 공격에 맞서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서 두 나라를 세웠으며, 또 한편 사탄은 지속적으로 그들을 전복시키고 자기 권세 아래 굴복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두 왕국론의 문제를 신의 통치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인간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인간 삶의 두 가지 방식의 표현이다. 곧 이것은 인간이 두 가지 본성을 가진 것에서 비롯한다. 곧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적 인간과 자연인으로서 세상 인간. 그리스도인은 영적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하며, 세상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세상 정부에 속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지상의 그리스도인을 두 나라의 시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적 통치를 받을 뿐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세속 정부의 권세 아래 굴복하여야 한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영적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에 살며 육신적 욕구를 가진 인간, 다른 사람에 대해 사회적인 책임을 가지는 세속적 인간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인간으로서는 그리스도에게만 속하지만, 세상 인간(Weltperson)으로서 그는 아버지, 아들, 남편, 주인, 종이 된다. 그는 세속적 직무(Amt), 혹은 소명(vocatio)을 가진다. 그는 세상에서 이웃을 위해 섬겨야 할 의무를 가지며 다른 인간들과 동일한 법과 의무에 얽매인다. 이로써 이론적으로 본다면, 인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로지 영적인 정부에 속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칼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는 실제적으로는 완전한 영적 인간이 아닌 이상, 세속 정부의 권세에 굴복해야 한다. 그는 세상 인간으로서 복잡한 사회의 외적 질서에 굴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루터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두 왕국 혹은 두 정부는 하나님이 인류를 통치하기 위해 세운 두 가지 질서를 표현할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세상 안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영적 질서를 통해 하나님은 그의 본래적 일, 곧 구원의 역사를 수행한다; 세속 질서를 통해 그는 창조 역사를 수행한다. 곧 이로써 그는 인간의 지상적 삶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 나라는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이며, 한편 그리스도인은 동시에 두 나라의 시민이다.

 

3. 1523년 루터는 인간이 그리스도인 군주로서 혹은 신하로서 과연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옳은가를 그의 글 세속 권세에 관하여, 인간이 세속 권세에 얼마나 복종해야 하는가에서 자세히 개진하였다. 이 글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1522년 11월 작센의 게오르크(Georg von Sachsen) 공작은 루터가 번역한 신약성서의 매매, 소유를 금지하는 명령을 선포한다. 이밖에 당시 아이제나하의 설교자 야콥 쉬트라우스(Jakob Strauss)는 세상 법을 폐기하고 모세 법만으로 모든 시민 생활을 다스릴 것을 주장하였고, 이 사상은 당시 작센의 요한 대공(Herzog Johann vom Sachsen)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에 루터는 이 글을 요한 대공에게 헌정하였다.

 

루터의 글은 전체 3부로 구성된다. 우선 제1부는 영적 정부와 세속 정부의 관계를 진술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6가지 명제를 진술한다. 첫 번째로, 하나님이 세속 정부를 세운 이유는 창조된 자연을 보존하기 위함이니, 곧 악한 자를 처벌하고 경건한 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의 산상 설교를 오직 완전하고자 하는 자들만을 위한 충고로 이해함은 완전한 왜곡이다. 그의 말씀은 모든 제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 세상 나라에 속한 인간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인간의 두 부류가 있으니, 하나님 나라, 영적 정부에 속한 사람에게는 세속의 법과 칼, 세상 정부가 불필요하다. 여기서 세상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대립 개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세상 나라의 법은 두 가지 기능을 가진다: 곧 악을 억제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니, 세상 정부는 인간의 구원이 아니라 창조의 보존을 위하여 필요하며, 또한 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네 번째로, 영적 정부와 세속 정부는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음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정부에 속하고, 비그리스도인은 세속 정부에 굴복한다. 세상은 세속 정부가 없으며 혼돈에 빠질 것이다. 세상에는 그리스도인보다 비그리스도인이 더 많으므로, 세상의 보존을 위하여 세속 정부가 없을 수 없다. 영적 정부는 인간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고, 세속 정부는 평화와 악의 방지를 위하여 제정되었다. 여기서 두 나라의 기능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영적 통치 없이 세속 정부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될 수 없다." 세속 정부의 기능은 인간, 신앙과는 상관이 없다. 마태 5:39의 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계명이니, 왜냐하면 그들은 칼과 율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악에 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은 세상에서는 실천되어질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이중 정부 아래 굴복해야 한다. 즉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복음만이 지배하지만, 비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에서 세속 정부에 굴복한다. 다섯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세속 정부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종으로서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세속 정부에 굴복한다. 만일 그가 만물의 주로 자처하여 권세에 복종하지 않으면 비그리스도인에게 나쁜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여섯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칼을 사용할 수 있는가? 우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칼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 칼은 필요하다. 즉 그리스도인은 공직자로서 칼을 사용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인은 사인(私人)으로서는 세속 정부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세상에 속한 인간으로서 칼을 필요로 한다―이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선하다. 위정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다른 세상의 직무처럼 세상의 보존을 위하여 봉사하는 직무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제2부에서 루터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경우를 들어서 본 주제, 곧 정부의 명령에 인간이 어느 정도나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여기서 그는 세속 정부와 영적 정부의 권한의 구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곧 세속 정부는 영혼에 대한 권세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세속 정부는 양심의 문제에 대해서 강제할 수 없다. 세속 정부는 인간 구원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보존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 정부는 그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루터는 세속 정부와 영적 정부의 일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지시하고 있다.

 

제3부는 루터가 제후에게 주는 군주론이다. 제후들은 그의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그는 여기서 제후들이 백성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것이 올바른 그리스도인 군주로서의 자세이며, 이로써 그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루터는 이 글을 통해서 세속 정부의 정당성을 변호하였다. 그는 로마서 13:1에 따라서 세속 정부의 정당성을 이 세상의 혼돈과 죄악에 대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이해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여기서 분명히 정부의 한계를 지적한다. 세상 정부는 영혼에 대하여 권한이 없다.

 

루터는 정치가들이 국가 권력을 남용함에 대해 이미 [로마서 강의](1515/16)에서 지적한 바 있다. 루터는 이때 그의 주장을 통해 의식적으로 당시의 사회 상황을 시사한다: "만일 이 구절이 권좌에 앉은 자들에 적대적인 말로써 이해되며 일반 교회 설교 방식에 준해서 사용될 수 있다면, 이것은 자신들의 신하들에게 납득할 수 없으리 만치 엄격한 심판을 내리며 자신은 사소하지 않은, 훨씬 사악한 행위를 아무 처벌도 받지 않으면서 자행하는 현재의 권세가들에 대항하여 훨씬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는 당시 수도원의 강의실에서 이같이 권세를 공격했다. 그러므로 그는 권력과 정치 자체를 사탄시하지는 않았다. 루터는 개인의 불의와 은혜의 필요성 때문에 현실적 불의와 폭력에 직면하여 개인 윤리적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시한다. 그러나 1524년이래 농민 봉기는 그로 하여금 자신의 신학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모든 것은 보다 분명히 분명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앞서 말한 대로 중세 이래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있어 국가 종속적 구조가 지배적이었으나, 민족 국가의 대두와 더불어 현실 정치는 변화하고 있었다. 이제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루터는 세속 영역과 영적 영역의 혼동을 극렬히 비판했다. 사제는 다른 모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국가에 예속되며 거꾸로 인간은 모두 사제다. 이처럼 루터는 로마 교회의 세속화에 대항하여 싸웠다. 루터는 그러나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권세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으므로 법을 선포하고 관철할 임무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는 이런 면에서 여전히 시대의 아들이다. 그는 민의에 의해 선출되는 정부를 알지 못하였다. 세상 정부에 대한 이러한 적극적 평가 때문에 루터는 뮌처로부터 군주의 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본대로, 루터는 분명히 그의 글을 통하여 국가는 세상의 파괴가 아니라 유지와 보호를 위해서, 국민을 착취하기 위하여가 아니라 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케 한다.

 

4.농민 봉기는 1525년에 들어와서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남부 독일에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농민군은 제후의 군대를 무찌르게 됨으로써 독일 전역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해 2월말 메밍엔(Memmingen)의 설교자에 의해 집필된 바 농민의 요구사항을 담은 [12개 조항](Die zwolf Artikel aller Bauernschaft)이 선포되었다. 이에 루터는 그해 4월 [쉬바벤 농민의 12개 조항에 답하는 평화의 훈계](Ermahnung zum Frieden auf die zwolf Artikel der Bauernschaft in Schwaben)를 썼다. 루터는 농민들이 성서의 가르침을 받고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의 글은 경고적 호소의 성격을 가진다. 이 경고는 동시에 군주들과 농민 모두에게 해당된다. 루터는 모든 재앙의 일차적인 책임은 바로 군주들 편에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루터는 중세의 회개 설교자로서 말한다. 군주들은 불쌍한 농민의 가죽을 벗기고 과세하였다. 그러나 농민들의 봉기는 하나님이 개입함의 징표다: "내가 염려하는 대로 그가 너희의 행한 대로 징벌하려고 한다면 설령 농민들이 너희보다 100배나 적다고 할지라도 징벌한다. 그는 돌들도 농민으로 만들 수 있으며 거듭 한 명의 농민을 통해 너희 백 명을 목졸라 죽여서 모든 너희 갑옷과 병력이 너희에게 부족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루터는 농민을 향하여, 세상 권세의 불가침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일 뿐 아니라 자연법의 명령이다. 이밖에 그리스도의 명령은 악에 대항하지 말고 고난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 도당"(Christliche Rotte)이라 칭할지라도 그런 것과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복음적 동기는 다만 위선일 뿐이다. 복음은 그들의 이기심, 불의를 미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일시적 재화, 권력에 있다. 그러므로 루터는 단호하게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혼동하는 것을 떼 놓으려 한다. 농민들 배후에서 역사하는 것은 바로 사탄이다. 그들은 영원한 복락을 잃게 될 것이고 전 독일을 파멸로 몰아 놓을 것이다. 복음은 대중을 위한 값싼 호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루터는 농민들의 가장 정당한 요구에조차 이기심이 섞여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그는 군주들이 농민군을 두려워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쉬바벤 지방에서 시작된 농민 봉기는 프랑켄(Franken)과 튀링엔(Thuringen)으로 확산되고 작센 지방까지 근접하였다. 4월 24일 잘찡엔(Salzingen)이 농민군에 항복하였고, 같은 날 발터스하우젠(Waltershausen)에 집결한 농민군은 한 수도원을 파괴하였다. 4월 25일 농민군은 요한 대공에게 요구 사항을 전달했고, 같은 날 에르푸르트(Erfurt)가 항복하였다. 뮐하우젠(Muhlhausen)에서는 뮌처와 파이퍼(Heinrich Pfeiffer)가 군대를 이끌고 아이히스펠트(Eichsfeld)를 약탈했다. 그의 군대 앞에서 비텐베르크 역시 안전할 수 없었다. 전세가 제후군 편에 불리해지고, 군주들은 두려워 떨기 시작하였다.

 

뮌처(Thomas Muntzer) 는 이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 하나님의 형제들아 기뻐하라. 십자가의 원수들의 의기가 꺾였다." 농민들은 전투 과정에서 지나치게 잔인한 행위를 자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루터는 튀링엔을 통과하며 농민들에게 설교했으나 허사였다. 노르트하우젠(Nordhausen)에서 설교 도중 그는 조롱을 당했고 생명의 위협마저 느꼈다. 그는 더 이상 타협은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이제는 정부가 무조건, 가차없이 개입해야 한다. 그는 1525년 5월초 [강도와 살인을 자행하는 농민 폭도들에 대항하여](Wider die rauberischen und morderischen Rotten der Bauern)를 집필하였다. 루터는 이 글로써 제후들의 용기를 북돋아주고자 하였다. [평화의 훈계]와 이 글을 비교할 때, 그 동안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달라진 상황이 얼마나 다른 언어와 행동을 요구하는가를 볼 수 있다. 이 글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 결전을 앞두고 집필되었다. 그러나 이미 헤쎈의 필립(Philipp von Hessen), 브라운쉬바이크의 하인리히(Heinrich von Braunschweig), 작센의 게오르크(Georg von Sachsen), 만스펠트 백작(Graf von Mansfeld)의 군대가 출동을 준비 중에 있었다. 결과는 불투명했다.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Friedrich der Weise von Sachsen)의 군대는 빠져 있었는데, 그는 당시 임종의 가까움을 느끼면서 이 일에 있어서는 가능한 한 협상을 최선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후에 이 글이 출간되었을 때 사람들은 루터의 글이 너무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독자는 달라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한편 이 글은 단순히 상황에서 나온 글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질서로서의 권세에 대한 복종을 고려한 논리적 결과이다. 하나님의 질서가 심히 위협받고 있다. 그러므로 군주들은 그 질서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한다. 군주들은 그들의 직무의 신적 임무를 아는 것, 즉 자신의 생명을 치르고라도 인간 세계의 혼돈을 저지하고 이로써 자신들의 직무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 군주들은 지금 전투에 임함으로써 순교자가 될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는 이런 호소로써 끝맺는다: "친애하는 군주들이여, 할 수 있는 자는 경청하라, 구출하라, 도와라, 불쌍한 인간들을 동정하라, 찌르라, 치라, 목 조르라, 그대가 그 때문에 죽는다면 행복하다. 그대는 이 보다 더 복된 죽음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로마서 13:4의 하나님 말씀과 명령에 복종하여 네 이웃을 지옥과 악마의 사슬에서 구하는 사랑의 봉사 속에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1525년 5월 15일 농민군은 프랑켄하우젠(Frankenhausen) 부근 전투에서 완전히 패배하였다. 이제 농민들은 강도로 취급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뮌처 역시 포로로 잡혀 처형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군주들의 복수가 너무 잔인하다고 느꼈고, 농민들은 루터가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분노했다. 루터는 군주들에게 살상을 중지하도록 요청했다. 그는 승리자들에게 너무 오만하게 굴지 말 것과 패배자들에게 관대할 것을 호소했다. 그의 악명 높은 두 번째 책자는 농민들이 패배한 후에야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 심지어 루터의 친구들조차 루터의 글이 너무 심하다고 비판했다. 루터는 그들에게 군주의 종으로 비쳤다. 루터는 동년 7월 자신의 두 번째 글을 변증하기 위해서 [농민에 대항한 가혹한 책자에 관한 공개 서한](Ein Sendbrief von den harten Buchlein wider die Bauern)을 집필했다. 그는 주장한다: 자신의 글을 비난하는 자는 선동적이다. 폭도를 정당화하거나 비호하는 자는 그들과 한 통속이기 때문이다. 소요를 일으키는 자는 이성적으로 대화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여기에는 자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정의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권세를 세웠으므로 거기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자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도 선포해야 한다. 세상 나라에는 진노가, 영적 나라에는 자비가 지배한다. 열광주의자들은 이 두 나라를 혼동하고 있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세상 나라는 혼돈에 빠지게 되고, 악한 자들이 세상을 파괴할 것이다. 악한 자들에 대해 사람들이 요청하는 자비는 참된 의미의 자비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악을 조장할 따름이다. 오히려 악한 자에 대한 징벌은 선한 자들을 보호하므로 선한 자들을 위해서는 구원이다. 이처럼 자비는 항상 상대적이다. 루터는 또한 어떤 피에 굶주린 인간도 자신의 말을 원용할 수 없다는 것을 지시한다. 자신의 말은 오직 경건한 위정자에게만 해당된다. 그는 다른 위정자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루터는 자신은 그들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나는 싸움이 끝난 후에도 피에 흡족하지 않는 폭군들, 그들의 온 생애에 그리스도를 별로 찾지 않은 미치광이 같이 날뛰는 어리석은 폭군들을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잔인한 인간들에게는 죄 있는 자를 죽이건, 무죄한 자를 죽이건, 하나님 마음에 들건 악마 마음에 들건 상관이 없다. 이들은 다만 자신들의 욕망과 용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칼을 가졌을 뿐이다. 나는 그들의 두목인 악마가 그들을 지금까지 이끌어 온 대로 이끌도록 내버려둔다.”

 

이렇게 루터는 농민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 위정자들에게 두 가지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위정자들이 전적으로 봉사적 기능을 가졌음을 알게 한다. 그들은 인류의 보존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의 한계와 약함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세상 인간으로서 취약하고 악의 위협을 받는다. 루터는 그들에게 피에 굶주림에 대해, 권력욕에 대해 경고한다. 그렇다면 루터는 농민전쟁시 그의 두 왕국론에 얼마나 철저했는가? 또 그의 두 왕국론에 맹점은 없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5.루터는 [세속 권세에 대해서]에서 권세는 하나님이 세운 것이지만 영혼에 대해서는 아니며, 따라서 절대적 무조건적 복종은 요구할 수 없고, 세속 정부는 다만 외적 행위에 대해서만 권한을 가진다고 말했다. 당시 루터는 자신이 구교 군주들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비록 이단일지라도 강제로써가 아니라 말씀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그는 [평화의 훈계]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저들이 복음을 듣고자 하며 사제를 선출할 권리를 원하는 첫 번째 조항을 거절할 수 없다. 비록 … 이기심이 저변에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들에게 복음을 설교하도록 해야 한다. 거기에 대해 어떤 위정자도 반대할 수 없다. 위정자는 누구나 가르치고 믿으려고 하는 것을―그것이 복음이든 거짓이든 간에―막아서는 안 된다. 위정자는 소요와 불화를 가르치는 것을 저지하는 것으로 족하다." 복음에 관한 문제는 영적인 사항이므로 군주들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루터는 군주는 이단자들을 소요죄를 빙자하여 처벌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전의 원칙을 벗어났다.

 

루터는 [세속 권세에 대해서]에서 영적인 사항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항거, 폭력을 불허한다. 그러나 비폭력, 무저항은 비굴한 굴종을 뜻하지 않는다. 그는 여기서 분명히 수동적인 항거의 가능성을 지시했다: “그리스도는 헤롯의 손에 넘겨주는 자는 헤롯처럼 그리스도의 살해자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도리어 사람들이 그들의 집을 수색하고―책이든지 재물이든지―강제로 빼앗을지라도 감수해야 한다. 악에 대항하지 말고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악을 시인하지 말고 또한 그것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거나 따르지 말고 복종하지 말아야 한다.” 수동적 항거는 또 다른 의미의 항거이며 그것은 폭발적인 잠재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화의 훈계]에서 농민들에게 철저한 인내와 복종만을 가르치고 있다. 루터는 세상에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극소수이므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산상 설교를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상에는 칼이 지배할 수밖에 없고, 비록 불의한 군주가 지배할지라도,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루터는 군주와 농민들을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명령이 적용되어야 할 형제로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두 가지 잣대를 적용한다. 군주들은 자신들의 직무를 통하여 세상을 유린할 수 있으나, 농민들은 거기에 저항할 수 없고 오로지 희생만을 강요당한다. 여기에 두 왕국론의 맹점이 있다고 본다.

 

루터는 5:39 이하를 인용한 후에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듣는가, 그리스도인 집단이여? 너희의 계획이 이 법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겠는가? 너희는 사람들이 너희에게 악과 불의를 행하는 것을 감수하지 못하고, 자유롭기를 원하며 다만 선과 정의만을 바란다." 그는 농민들에게는 산상설교 준수를, 고난과 십자가만을 요구한다. 반면에 군주들은 비록 그가 불의한 위정자일지라도 농민군과 싸우다가 죽을 경우, 그의 죽음은 순교자의 죽음 못지 않게 고귀하다고 예찬한다. 그러므로 루터는 농민들에게는 산상설교의 자세를 주장하였으나, 그것이 군주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직무의 미명하에 면제되었다고 보여진다. 뿐만 아니라 군주들이 자신의 직책상 칼을 쓰다가 죽는 것을 순교라고 평가하는 것은, 루터가 두 왕국을 혼동한 것이다. 즉 군주의 칼은 세상을 유지하기 위함이며, 하나님 나라를 수립하는 것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살상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칭의론에도 모순된다.

 

루터는 그의 세 번째 글에서 말했다: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는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 나라의 권한과 일을 저지하지 말고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세상 통치자에 대한 교회의 관계는 기도로써 협조하는 것이 전부이며, 자비의 이름으로 개입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가 불의한 경우, 교회는 여기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다. 악한 정부에 대한 자비는 참된 의미의 자비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악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루터는 산상설교를 농민들에게만 적용하여 그것을 개인적 윤리로 축소하였으며 정치 사회적 차원에까지 적용하지 않았다. 그는 정부의 주체가 되는 군주를 인간과 직무로 분리시켜 놓음으로써 군주들은 원하면 언제라도 그들의 직무 뒤에 자신을 보호할 여지를 마련해 놓았다. 그러므로 그는 정치적 저항 이론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기를 포기하였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오늘까지도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탁상에서 고안된 신학 이론이 아니라, 상황에서 배출된 산물이었다. 그가 교회의 후견으로부터 세속 정부의 독립을 주장한 것은 그 시대의 요청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정치 현실 배후에는 하나님의 현재함은 강력히 지시하였다. 정치 현실도 무신의 영역으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루터는 두 왕국의 현실을 혼동해서도 안되며 분리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거듭 역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두 왕국론은 제3제국에서 자신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악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루터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잘못은 어디까지나 루터의 상황 이론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적용한 인간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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