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회사강의안총정리

2011. 3. 18. 18:15교회사자료/6.장로교회사

총정리 강의내용 전체부분입니다 이은선, 스코틀랜드 교회사, 재번역하면 좋을 책 오덕규 장로교회사, 합신 통합측교재였고 금기시되었었던 (5년전 해금된)손병호 , 장로교회사, 포괄적 내용 특징 르웨치,김남식 역, 세계장로교회사, 성광 홍치모,스코틀랜드 종교개혁사, 생명의 말씀사 81년(?) 실제는 권성수 가 번역했을 것(당시 학생) 홍치모, 영국교회혁명과 종교개혁, 청교도관련내용 내가 참고로 하는 서적 소개 1. J.H.S Burleigh (벌레이) A History of Church of Scotland, Hope Trust, 1983 2. 핸드슨 G.D Henderson 교수, 동일제목의 책(?) 일인칭으로 표현하겠습니다. 나는 서창원교수이며 서철원교수와는 같은 항렬이다. 같은 조상을 갖고 있는사람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안에 형제이지요. 강의는 11년을 하고 있고 장로교회사는 6년동안 선택과목으로 실시 후 열심히 전공필수로 해야 한다고주장한 결과 3년전부터 필수로 되었습니다. 심창섭교수가 안식년이라고하여서 여러분을 맡아 강의하게 되었습니다.물고기가 물을 만난듯 이런기회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담당교수중 설교학을 의로하는 분도 있어서 설레는 마음으로(비전공이지만) 임할려고 합니다. 총신에는 좋은 설교자 배출이 중요합니다. 요즘처럼 신학자 많은 시대는 없어요. 영적인 축복을 우리는 받고 있어요. 전공은 역사신학이지요. 17세기가 내 전공입니다. 청교도가 전공이입니다. 가르치면서 설교부분을 많이 다룹니다. 만 9년동안 개혁주의 입장에서 바른 설교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매년 2월 정기세미나에서 목사님들에게 설교훈련을 강의합니다. 안양대 신대원에서 강해설교를 가르칩니다. 올바른 설교자 양성이 꿈입니다. 진리의 깃발이라는 잡지를 배부하는데 여러분에게 한권씩 무료로 증정할 계획입니다.영국교회 재건위한 로이드 존즈 목사님이 1955년 창간한 개혁주의 잡지인데 한국판으로 제작하는 것입니다. 장로교회사에서는 잘 못듣는 내용을 많이 말할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이하 스콧 이라 약칭. )는 장로교회의 모판이지요. 장로교의 시작점입니다. 뿌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해요. 개인적으로는, 장로교회의 모든 문제는 스콧 교회사에 다 있다고 느껴요. 스콧 교회사 읽어보세요. 80년대 영국생활하면서 17세기 청교도와 스콧의 언약도를 중점공부했어요. 개혁주의 신학철저하고자 하는 염원의 바탕이 영국공부에서 많이 도움되었어요. 90년초 귀국후 가르침(목회병행과 함께 중요한 지침을 만난것 주님께 감사하면서)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왜 장로교회가 중요한가. 근본을 알자는 것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로서 명칭에만 만족하지 말고, 왜 장로교회를 택했나 하면 대개가 "어려서부터 배운곳이다. 일자리가 많지 않는가" 하는 대답이고작이다. 70%를 한구겡서 차지하는 현실이긴 하지만 이런 대답에는 가슴이 아프다. 선배들은 선택과목이었지만 여러분은 필수니 다행이다. 장로교 목회를 신학교에서 배웠던 것과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여러 분파중의 한 교파에 불과한 것이냐? 장로교회 골수분자라는 혹평을 받을 준비가 나는 된 사람이다. 자랑스럽다. 이런 확신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귀족일 수록 가문의 배경을 중시한다(영국). 뼈대있는 집안일수록 그렇다. 목회자들은?여러분은 장로교의 역사를 심도있게 취급하라. 영국도 세부분으로 나뉘다. 우리나라를 예로들겠다.고구려지역이 스콧이다. 스콧출신이 세계사에 걸출한 인물이 많다. 잉글랜드는 신라지역, 웨일즈는 백제지역이다. 스콧은 잉글랜드의9분의 1밖에 안되는 인구이다. 그러나 전체역사인물의 대다수는 이지역출신이다. 우리가 장로교하면 캘비니즘이다. 장로교의 유래, P. Carson(폴 칼슨) 참고하라 미국장로교회사 이야기다. 미국건설자들은 장로교회 목사였다는 주장이 재미있다. 위더 스폰이라는 목사는 미국 독립선언자들 중 유일한 성직자이다. 조지 워싱턴이 미국건국의 아버지가 아니라 존 칼빈이 아버지라는 주장이 흥미롭다. 지금은 책이 품절되었을 것이다. 생명의 말씀사, 장로교회사 배우는 것은 신학적으로도 중요하다. 뼈대형성이다. 신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몸을 형성하는 것이다. 칼빈주의 신학이 우리의 기본이다. 한번도 읽지 않으면 안된다. 개혁주의 신학은 칼빈주의신학과 동일하다고도 할수있다. 참고서적 서구사회에 미친 칼빈주의 영향, 오늘날 자유주의 실용주의가 교회로 유입된다. 교회성장학이란 이름으로 들어온다. 개혁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소위 복음주의 운동에도이런 위험이 있다. 예수믿음 공동체는 연합가능하다는 주장하에 복음주의운동에도 이런 위험이 있는 것이다. 공통분모만 가지고 얘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교회와카돌릭 연합 관련 글이 진리의 깃발에 실려있다. 그 과정에서 늘핵심은 놔두고 가지만 잘라낸다. 성공회와 카돌릭이 대화하더니 칭의, 구속 부분에서 카돌릭에 양보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우리의 독톡성까지도 상실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한국엔 오직 한국교회만 있다. 공부할때 이런 개혁주의전통을 깊이 다루자. 교파주의는 비판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파는 필요한것 아닌가. Diversity in Unity 하나의 근거 속에 다양성 인정한다. 우리 합동측 신학의 심각성은 개혁주의엥 대한 일관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마다 의견이 다른 현실은 안된다. 영국의 인상적 모습중 하나가 동일한 교단신학을 한사람은 동일한 목회의 패턴과 내용을 담는다.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같은 교단 교회라고 해서 자신있게 추천할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엉터리를 배출하는 경향있다. 시대조류흐름에 따라가는 현실이다. 말만 개혁교회다. 우리 현실에 과영 개혁교회가 있는가. 다음시간엔 장로교가 성경적인가 하는것을 다루자. 칼빈, 존낙스의 원리, 실천, 장로교처음에 지상에 세운 낙스의 종교개혁 원리, 17세기 장로교신앙 순교자들, 18세기 장로교 형성과정 , 발달시 형식주의 폐단발생시 각성운동, 19세기 교회분열, 아픔, 영적독립성, 추구한 노력, 20세기 미국 장로교 시작, 잉글랜드 장로교 문제, 한국장로교의과제 등등 강의 예정 나는 학자라기보다 설교자 목회자이고 싶다. 스콧 중심이르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고다듬자. 장로교회의 기원 장로교는 presbytery 우리말로 옮기자면 장로회, 노회 등으로 가능하다. 장로회는 목사와 장로는 함께 장장로회 정치로 본다. 유형교회의 통일성을 이루는 통일형태로서 장로회다. 이 제도는 칼빈, 낙스등에의해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는 그 기원은 성경에서부터 비롯된다. 장로라는 말 / 구약에 100여번 등장하며 모세오경에 절반이 있다. '가돌' 은 손윗사람, 형, 위대함을 말한다. 손윗사람은 창10장 21절, 왕상27장42절, 삼상18장 17절에 , 겔16장42절에 나온다. 한편 자켄이라는 단어는 연장자, 수염이 난자를 의미하며 이것은 전문적용어로 사용되어 실명사로 쓰인적도 있는데 문맥에 따라 한사람을 , 또는 전체로서의 모임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것이 한정형용사로 사용되면 젊은자와 구별되는 늙은 사람, 조언자, 예컨대, 욥기의 엘리후의 태도를 보면 그가 노인을 존중하여 기다린 것을 본다. 그때의 노인을 보라, 백반은 노인으 영화라는 말, 자녀는 그의 면류관이라는 말 등 종교적 지도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증인노릇, 안수, 예언 예를 들어 통치기구로서 기능하는 것인데 처녀성인정,재산분배,재판 등에서 종교지도력을 실시하는 것을 성경에서 본다. 즉 입법,사법,행정이 형성된다. 모세오경에서 실례를 보자 모세는 반석에서 물을 냈다. 이때 증인들이 있다. 모세가 70인의 장로를 데리고 하나님앞에 나간다. 지도력을 행사한다. 모세가 시내산에 있는동안 재판권행사는 장로들이 했다. 출24장14. fp4장15절 속죄제시 제물에 안수한다. 나단과 아비람의 가족의 최후에 증인이다 여호와의 신이 장로들에게 임한다. 민수기11장 여호수아 율법낭독시 함께 서서 들었다. 죽기전에 유언한 모세앞에서 하나님말씀을 당부받는다. 여23장1 결국 장로의 기원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하나님백성가운데 통치기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에스겔 10장8,14 회당에서 그들의 역할이 신약시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민의수렴,의회제도 모형과 가까움, 구약에서 종교제사관련도 시행정과 관계있는 것으로 보는게 타당. 신약에 와서 자켄이라는 단어를 프레스부테로스로 번역한다. 이것은 손윗사람,공직자,영광받을 자들을 의미. 신약에서 그야말로 종교적 업무에 한정되는 것을 본다. 교회와 관련되어 등장한다. 교회직분 용어로 정착된다. 자켄이 직책을 말한다면 기능을 강조하는 것은 에피스코포스이다.(여기서 감독제가 나온다). 신학에서 장로의 역할알려면 교회본분을 알아야 한다. 구약의 통치기능이 신약에서는 산헤드린공회이 된다. 제사장,서기관,백성의장로들이 총 71명으로 구성. 그해 대제사장이 수장이 된다. 백성자치기구로 사법기능이 주업무였다. 종교,거짓선지자문제,고위성직자비리,선전포고,성전,우상문제 등 다룸. 공회자체가 임원을 선출하는 방식,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중에 순아고게가 있다. 회당이다. 이것은 자연발생적이다. 언제? 여러얘기들있다. 회당자체는 집회장소였다. 통치기구는 아니다. 행정면에서 자치기구의 성격드러내는 것이다. 종교적 의미 부각시키는 것은 교회의 역할통해 알아야 한다. 구약의 왕,선지자,제사장은 민의통치기구역할, 종교적 일 담당 신약의 사도 장로는 자연스레 등장한다. 이런 것이 교회로 들어오게 된다. 교회직분과 관련해 이해할 것, 신약교회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장로회는 교회조직과 관련.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면서부터 교회시작, 유대교에서 출발한다. 예수님이 유대인, 구약수용, 유대교배경이 중요하다. 메시아대망하면서 신약교회는 시작, 오순은 우주적 대도약, 대선언이다. 자국어복음청취가능하다. 여기서 교회시작한다. 초기유대인과 기돌교인 관계설정이 어렵다. 기독교와 유대인 분리된 방법 매우 복잡 구약수용하면서도 바리새전통거부하는 예수님을 보라. 고르반을 비판하고 안식일로 충돌하고, 불순종회개촉구하고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강조하고, 초기에 예수추중자들은 유대교의 내용을 어디까지 수용할것인지 고민. 유대교의 한 분파로 남기원한자도 있다. 화해추구자도 잇다. 어디까지 율법지킬것인가., 사도행전에 이런 고민나타난다. 완전히 단절된 출발이 아니다. 유대교전통에서 제자가 나온 것이다. 예수와 그의 추종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 인식 필요. 우리가 유대인의 고민 다알수는 없다. 그리스도추종하는 유대인은 예수가르침을 율법 근본원리로 받는다. 메시아를 전도하겠다는 사명을 받는다. 예수죽음이 하나님 율법완전 순종- 구속의죽음. 믿으면 영생, 부활한다는 것을 유대인에게 전했다. 오순절이후 유대기독교인은 이방기독교인으로 그 축이 옮겨진다. 하나님께서는 오순절사건이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사건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움직이지 않자 제자들 생각을 바꾸고 그들을 흩으신다. 대전환이 있다. 1. 회당중심으로부터 회중중심으로 이동. 회당,성전어ㅔ서 교회로 전환 2. 지역,국수적 성격에서 우주적 구원으로 . 제사장은 설교자로 전환 3. 제단이 강단으로 이것이 신약교회의 틀이다. 제자들은 여전히 유대인의 틀을 갖고 있었다. 구원문제와, 아나니아사건 등으로 교회는 혼란있었다. 히브리파, 헬라파 유대인의 차별로 구제차별발생, 이들은 자리에 마주앉는 것도 꺼려했다. 문화적 의식적 차이 때문이다. 스데반순교시 돌던진사람은 헬라파유대인이 대개였다. 교회밖에서도 헬라파와 유대파의 대립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스데반은 헬라파유대인의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손에 죽었다. 헬라파유대인은 히비리파 비 기독교인보다 더 교회를 박해한다. 교회가해진 핍박의 기능은 복음확장이다. 베드로는 고넬료, 빌립을 전도한다. 그의 거만한 모습은 사도행전에 나타난다. 아직도 제자의 마음에 복음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오순절경험이 이방인에게도 나타나는 것을 보라.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의식을 다 버리지 못함, 안디옥에 바나바를 파송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이방인 개종자에게 율법강요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팔레스틴 지역에서 기독교의 쇠약을 가져온다. 예루살멤에서 기독교는 오순절후 점점 쇠퇴한다. 점점 이방으로 확산된다. 자기속으로 제한시켜버리면 복음능력 제한하는 것이다. 62-70년간의 대사건을 거치면서 갈라디아서에서는 유대, 헬라인 모두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강조, 헬라파와 히브리파의 분열이 심했음을 드러낸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민족주의자들의 압력에 고민했다. 기독교인은 62-70년 격변기에 예루살렘을 떠나버렸다. 유대인은 기독교유대인을 그래서 더욱 증오하게 된다. 유대국수주의자는 기독교를 저주한다. 완전결별이다. 초대교회생활엔 조직이 없다. 설교통해기능. 교회가 커지면 조직이 필요하다. 행7장의 7대표를 보라. 집사라는 증거는 성경에 없다. 빌립과 스데반 말고 나머지는 그렇다. 7명이 공궤담당한 것이다. 복음전도자와 구제자로 구분한 것이다. 조직은 사도들의 요청에 의해, 사도의 가르침에, 사도의 명령에 의해 이뤄진 것임을 우리는 명심하자. 신약에서 직분은 언제 등장? 사도바울의 목회서신. 그리스도의 몸인데 몸이 자라도록 여러 직분은 주심. 엡4장. 하나님께 받은 은사대로 섬기는 모습언급 롬12장, 고전12장, 초기의 예루살렘은 특별한 조직이 없었다. 오직 7대표선출, 구제업무. 사도와 7대표만이 조직이다. 땅끝까지 복음전하기 위해 지역에 복음증거위한 교회설립 필요. 교회직분은 예루살렘교회가 이방으로 확산되면서 이것을 위해 생기게된 것이라 본다. 교회자체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유기체적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기능을 생각해야 한다. 사도행전7장에 광야교회가 언급.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기능이 중요하다. 전통적 교회직분은 기능적 면을 갖는다. 반면 사도,선지자는 단회성이고 한시적이다. 오늘날 항존직이 목사( 강도장로),. 장로(치리장로) 집사 셋이다. 도도권계승문제는 별개문제로 로마교황이 베드로를 승계했다고 주장하지. 사도적권위는 목사관련설명하는 것은 가능, 그러나 직분에서보면 사도는 한정, 단회적. 직분은 다음시간에 설명하겠다. 신약교회에서 말하는 직분 살펴보고 칼빈,낙스의 장로교회사상으로 넘어가겠다. 강의안이 좀 늦어질 것, 3/27 교회의 직분 오늘 강의한 부분중 앞부분은 곧 올리께요(노트가나뉘어져서 편집상 이유때문이에요. ) 이것은 강의부분중 중반이후부터 끝까지에요. 참 교재는 4월 경에 준다 값은 미정 그럼 그 직책은 어떤것? 기능은? 신약성경에서말이다. 1)하나님의 교회 목자- 목자란 돌봄의 개념이다. 행 20:28 감독자 벧전 5:2 베드로가 장로에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목양을 위임하는 장면이다. 2)감독자 행 20:28 빌1:1 딤전 3:2 교회다스리는자. 3)치리자 딤전 3:5 5:17 벧전 5:3 히13:7 잘다스리는자 롬12:8 고전 12:28 다스리는 은사. 등과 동일시기능 , 장로와 잘 다스리는 자를 구분할수는 없는것이다. 장로는 잘 다스리는자여야 한다. 불가분의 관계다. 4) 하나님의 청지기, 하나님의 것을 위임받아 수행하는자, 앞의 세가지와 달리 하나님의 자산을 잘 관리하는자. 데오 오이코노몬은 집사장을 가리킨다. 고전 4:1에 그리스도의 일군, 갈4:2의 청지기, 즉 복음맡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맡은 관리인이다. 5)잘 가르치는 권위자(교사), 딤전3:2 5:17 딛1:9, 모든 장로는 잘 다스려야 한다. 근데 다 잘가르치는 자는 아니다. 딤전 5:17에 잘 다스리는자, 말씀을 잘 가르치는자가 나온다. 전통적으로 이것을 둘로나누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잘 다스리는자 두개의 직분을 설정하였다고 해석해왔다. 그러나 다스리기를 잘하는자중에 잘 가르치는 자가 있다. 칼빈이 두가지로 구분하여 해석한것이 큰 오점이다. 이것이 과연 오늘우리가 보는 두 종류의 장로의 (강도장로, 치리장로) 원형인가? 아니다. 한종류의 장로의 두 다른 기능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엡4:11에 목사와 교사가 있다. 누굴 염두에 두고 목사라는 말을 바울이 했겠는가? 에베소 장로들에게 편지하는 내용인데 말이다. 생각해보라. 딤전 5:17에 잘가르치는자와 잘 다스리는자를 언급한다. 목사와 교사로 언급될수있다. 목사와 교사- 한가지 직책에 대한 두가지 다른 기능을 말한다고 보여진다. 모든 장로는 치리의 측면이 있다. 은사적 측면에서는 교사의 자질갖고 있는 자들이 있다. 역할 분담측면에서 이해해야지 직위적 이해는 그릇되다. 목사 장로는 다 하나님앞에 평등하다. office / fosition 이 아니다. 그리스도앞에서 서열이 아니다. 단 function 기능면에서 다른것이다. 유교적 전통에 입각해 교회직분설명은 옳지않다. 성경대로 해야지, 유교대로 하면 안된다. 목사도 장로다 잘 다스리는자여야 한다. 목사는 잘가르치는자도 되어야 지된다. 하나님앞에서 평등위치에서 주어진은사따라 하나님 교회섬기는 것이다. 섬기는 대표선출시 우리가 아는대로 당시 사도는 구제도 다 감당했었다. 목사도 교회에서 행정전반을 관리할수있는 것이다. 본래 성경의 취지를 잘보라. 목사 장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아니면 교회가 쑥밭이 된다. 종교개혁이후 스콧 교회 장로선출시 마을에 이름을 게시한다. 이의시 교회에 알리라는 것이다. 초대교회 장로선출은 투표? 임명? 행14:23 바울과 바나바가 임명한다. 디도가 그레데에 남은이유는 각 성에 장로세우기 위해서, 장로의 자격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제시되고 있다. 디모데, 디도도 다 떠나면 장로임명권위는 누구에게 이양? 사도, 속사도 다 떠난후엔? 이때 장로회가 등장하였다고 추정된다. 딤전2:2 딤전4:14 장로회에 대한 언급나온다. 장로임명시 손얹고 안수한다. 신령한 은혜와 복을 받는 것이다. 은사수여시 그렇게 한다. 7명 대표선출시에도 바울과 바나바 선교파송시에도 (행13) 안수기도햇다. 딤전 4:13에도 장로회에서 안수기도함. 교회돌보고 관리하는 것은 장로이다. 대목자장인 그리스도의 감독과 다스림을 매일 받아야 하는 자들이다. 명심하라. 이것을 잊은 장로는 옳지 않다. 집사> 종과 관련하여 디아코니아, 추상명사, 섬기는 직분, 이 근원은 잘 모른다. 행6에서 7대표가 집사직과 연계되지만 집사로 그들을 호칭한적이 없다. 삽비라사건에서 시체옮기는 젊은자들 나온다. 호이 에오테로스라고 적혀있다. 궂은일하는 젊은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집사로 부루지 않았다. 구제는 교회의 중점사역이었다. 성경에서 집사의 의무보다 자격을 강조하는 것을 우리는 유의하라. 깨끗한 양심, 믿음의 비밀을 가진자가 자격이다. 교회안에주어진 항존직은 장로, 집사이다. <강조> 이 직책은 다 받은 은사에 따라 세워진 것이다. 섬기는 직은 다 같다고 할수있다. 그러나 장로와 집사는 명백하게 구분된다. 집사에서 장로가 된 경우를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하지 못한다. 한국만 독특한 서열이 있다. 집사-안수집사-장로 참으로 이것은 성경에 없다. 유교적 영향, 직분을 포지션으로 보는 것이다. 여성안수주장시 남녀차별대우를 언급들 하는데 잘생각해보라. '깨어있는 예수의 공동체' 참고해 읽어보라. 나의 책이다. 직분을 서열로 보지말라. 고린도 편시시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주고 그리스도는 자라게 하신다. 고전 3장보면 우리의 수고로 상을 받는다고 기록되었다. 얼마나 감사한 은혜되는 말씀인지...... 고전 3:8 보라. 스콧에서는 은사에 따라 실행한다. 은사없으면 직분 맡으면 안되는 것이다. 나도 목회시 이렇게 강조한다. 아무나 후보될수있다고. 은사가 있어야한다고. 양을 잘 돌봐야 한다고. 이미 은사는 각 개인의 삶속에 드러난다.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누구누구의 은사를 발견하게 된다. 본인도 기쁨으로 일한다. 이것을 외부적으로 대외적으로 공적으로 선언하고 알리는 것이다. 이것이 직분이다. 성경적 직분수영의 의미다. 은사가 없는자를 직분자로 세워서 가르쳐서 키운다는 것은 성경의 원개념이라고 하기 곤란하다. 4/3 사도행전 21장 8의 집사는 잘못된 번역임. 헬라어성경엔 없다. 오늘은 칼빈의 장로회 장의다. 스콧영어로 JOhn 은 Iain 입니다. 낙스의 비문에도 이렇게 쓰여있지요. 칼빈과 장로회: 칼빈과 장로회 체제. 정치와 관련하여 장로회 체제를 보자. presbytery 는 Strassburg 체제(1538년 8월-1541년 9월) . 이 도시의 종교개혁자 마틴 부써 M.Bucer. 와 카핀터가 있었는데 칼빈이 스트라스부르그 로 망명시 둘에게서 장로회 체제를 배웠다. 부써가 많은 역할을 하였다. 부써는 잉글랜드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할깨까지 잉글랜드 개혁위해 일하였다. 스트라스부르그는 여러 교구로 나위어져 있었고 교구별로 장로가 있었다. 그들은 치리사역, 심방사역이 주였다. 교구별로 세명의 평신도를 장로로 세웠는데, 평신도 지도자로서 독어로 kirchenpfleger 이다. 피르켄플레거 . 1537년 칼빈이 제네바에 제출한 문서인 제네자에서 교회의 예식에 관한 지침 ( Article Concerning Organisation of the Church and Worship at Geneva 이것은 일부 기독교강요에 나와있다) 이 있다. 거기 보면 '평신도중 윤리적으로 바른 사람을 선출하여, 그들이 기독교인들의 삶을 감찰하고 목사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즉 스트라스부르그로 가기 이전에 칼빈은 평신도를 지도자로 세운다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던 것이다. 다시 제네바로 그가 돌아왔을 땐 스트라스 부르그의 경험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었다. 1541년 문서인 'Ecclesiastical ordinance of the Church at Geneva' , 즉 제네바 교회 예식서를 만들었는데 12명의 평신도 지도자를 세워서 장로로 불렀다. 제네바 의회 의원들이 교회의 12명 평신도 지도자를 장로로 선출하였는데 잘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해임할권한도 있었다. 그 때 문서에 장로 호칭이 사용되었다. 사도적 사역자로서가 아닌 의회의 감독관으로 commisioner, deputy 로서 용어가 사용되었다. 정치적 으로 의회에서 임명된 것이긴 하지만 그들 지도자들의 임무는 종교적 인 것에 국한 되었다. 영적 지혜가 있고 행실이 선한 사람이어야 했고무절제, 무질서한 시민을 감독, 훈계 , 권고, 사랑하는 것이 의무였다. 딤 5:17에 기독교 강요 4, 4에 다스리는 사람을 잘 선택하여 도덕적 견책을 맡아야 하고 다스리는 장로의 조건은 경건하고 근엄하며, 칼빈의 견해로 장로직은 목사를 보좌하고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는 성화를 강조( sanctification)하고 communion service 즉 secrament 로서 성찬예식 집전시 성도들의 성결된 섦을 점검하는 것이다. 후에 스콧 장로교회에서 장로의 큰 역할은 심방이었다. 성도들의 성결된 삶을 점검하고 치리와 권징이 임무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윤리도덕적 삶을 촉진 하려는 의도에서 평신도지도자들을 세운것이다. 목사와 장로의 구별은 장로는 치리를 전담하고 목사를 보좌하는 것이다. 장로회를 통해 법적 처벌권이 주어지 넋은 물론 아니다. 국민의 윤리 도덕위한 조직체게를 도입한 것이다. 칼빈은 교회,권쟁과 치리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교회의 표지로서 권징을 두지는 않는다. 권징은 낙스에 의해 교회의 표지로 선정된 것이다. 칼빈은 말씀선포와 성례거행만을 교회표지로 삼았다. 칼빈은 권징을 교회를 방어하고 성화의 수단으로만 이해했다. 스트라스부르그의 부써도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이해하지 않았다. 교회직분은 칼빈에 의하면 (그의 초기 기독교강요) 목사와 교사 장로 집사로 구별된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교훈하고 성례집행한다. 교사 또는 박사는 신학적 정통성을 가르치고 지키며 목사의 계승을 보살핌과 신학적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그의 최종판 강요에는 교사 또는 박사직이 삭제된다. 이유는 목사는 당연히 교사,박사여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라고추정된다. 이에 관해 , 한마디, 오늘날 일부에서 조직신학을 선택과목으로 하자는 의견이 있다고하는데 사탄의 일이다. 신학없는 목회는 없다. 신학모르면 목회못한다. 이리저리 춤춘다. 낙스는 교회직분을 목사 장로 집사로 설정한다. 스콧 재직시 본인이 한 광고를 보고, 충격, 목사구함, 자격 1번 , 크리스쳔이어야 함. 충격을 받았다. 근데 살아보니 크리스찬 아닌 목사가 많더라. 교수도 그렇고,.....일전에 목회자들의 설교를 모니터하는 숙제냈는데 그중 95% 목사님들이 설교에 신학이 없더라. 개탄스럽다. 중의설법과 목사의 설교가 동일하다. 강화도 한 전도사의 충격보고 ( 원우에게 물어볼것: 궁금하면) 목사로서 신학모르면 안된다. 예날엔 박사는 다 알았는지 지금의 박사는 한정된 분야만 안다. 그게 무슨 박사냐? 세상은 그렇지만 목사는 그렇지 않다. 신학을 알아야 한다. 인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유학가서 박사학위따려면 쓰레기같은 책(자유주의, 기독교 허무는 책들)들과 3년이상을 씨름해야한다. 그렇게 하고 돌아오면 설교시 그동안 읽었던 사상이 왜 나오지 않겠는가? 총신교수들 참 고민 많을것이다. 배운것은 자유주의로 박사따왔는데 칼빈주의를 가르치라니....아예 박사학위조건을 교수체용요건에서 빼든지.... 이문장 씨도 내 후밴데 영국에서 지금 고민, 그만드려고 한다더라. 목신에 글도 내곤 하는데.... 집사직은 교회위해 구제와 돌본다. 제네바교회의 두 기능을 하는 집사가 있다. 구제품 분배기능과 병자돌봄기능이다. 낙스의 장로교는 다음에. 본격적 스콧 무대로 옮겨진다 4/10 존낙스 스코틀랜드 마틴 부서는 장로교 모체역할, 이론화는 칼빈이, 낙스는 구체화하였다.현장화하였다. 천주교신부출신 죠지 위샤르트의 설교후 개종했지요. 낙스가요. 위샤르트는 스콧 개혁의 선구자. 해밀톤과 함께 세인트 앤드류대학에서 전도하였고 이곳은 종교중심지였습니다. 잉글랜드의 캔터배리격이죠. 앤드류에 추기경이 있었음. 예배당 끝과 끝이 150미터나 되었던 유적이 지금도 있어요. 위샤르트는 여기서 설교하다가 체포되어 화형에 처해졌어요. 후일을 대비하여 함께 순교하겠다는 낙스를 보내지요. 잉글랜드로 낙스가 피신을 합니다. 거기서 에드워드 6세의 왕실목사로 섬깁니다. 헨리8세죽고나서 에드워드6세가 왕이 된건데 어린나이였죠. 이왕은 금방 16세에 죽고 메리가 등극, 피의여왕이라는 악명을 날리죠. 토마스 크람머, 마틴부서, 휴래티머, 니콜라스, 존 후퍼 등 화형이 줄줄이 이었죠. 많은사람이 대륙으로 도망. 결국 낙스는 제네바로 피했습니다. 거기서 칼빈과 교제기 이뤄집니다. 1553년이죠. 후에 영국으로 돌아와 목회하였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처럼 칼빈과 이웃한 지역에서 함께 목회한 시기가 있었지요. 참 부러운 순간이었지요. 지금 한국의 수평이동 현상을 보면 특히 그래요. 아름다운 교제의 순간이 었죠.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니까 누가 전하든 청중도 상관을 하거나 쏠리지 않았던 것이죠. 멋있어요. 존로스목사가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고집하던 한국교회사의 부분도 있는데. 제자훈련은 누구제자 만들것인지요? 예수제자 만들어야 되는데 현실은? 1559년 5월 리쓰 항구에 낙스가 도착하죠. 스콧신앙고백서를 만들죠. Scot Confession 6명이 만들었는데 다 죤이죠. 일명 식스 죤스 컨페션이라고도 불러요. 이들이 당시 개혁목사의 전부였지요. 칼빈과 낙스의 차이점; 범위에서 차이(칼빈은 제네바라는 도시를 대상으로, 낙스는 스콧 전역을 대상으로 개혁), 교회의 표지(칼빈은 성례와 말씀, 낙스는 거기다 권징추가) The First Book of Discipline 제1 치리서; 낙스개혁 이상을 담음. 총 9장구성, 앞 3장은 교리적 3장은 직분, 의무교육강조내용 , 그의 교회이상은 한마을에 한교회, 한학교입니다. one church, one school, in one village. 당시 스콧인구는 100만명, 지금도 550만명인데 당시 잉글랜드는 10배였지요. 지금도 4500만명이구요. 근데 대학이 스콧에는 4개(글래스고, 아그린, 애딘버러, 새인트 앤드류) 에 학생 1800명이었어요. 당시 잉글랜드는 캠브리지와 옥스퍼드에 1000명이 다였어요. 스콧은 엄청난 인적자원을 보유한거죠. 낙스의 사상이 그 배경입니다. 가난한 자들도 의무교육실시, 교회의 부담강조, 대영제국 영향력은 스콧의 영향력이라고 해도 과언아님. 6-70%를 차지함. 마지막 2장은 권징과 정책언급하고 있음. 당회 노회 대회 총회등 교회직분은 목사 장로 교사 집사 독경사(설교권은 없고 읽어주는 자격만 ) 감독 언급 제 2치리서 발간 및 개혁완성시기에는 목사 장로 집사만 남게 됨. 감독은 독경사가 예배인도를 잘하는지 순회, 감독 성공회의 감독제도와 다르다. 낙스는 1572년 세상떠난 후 후계자 앤드류 멜빌이 등장, 그는 낙스원리 구체화함. 멜빌의 제2치리서 The Second Book of Discipline 1578년 여기서 최초로 장로회주의 등장. presbyterianism 이책은 반석과 같은 역할을 함. 1581년 총회에서 인준됨. 국가정치와 교회정치를 구분한 것이다. 명시한 것이다. 교리교육, 권징, 성례 등과 목사 장로 집사 박사 교사 등 직분을 설명한다. 제1치리서는 당회 대회 총회를 언급 제 2치리서는 노회가 삽입된다. 노회가 presbytery. 노회는 목사와 교회장로로 구성-여기서 목사안수, 치리담당 대회는 총회산하 목사와 장로로 구서- 연 2회 모임 총회는 연 1회모임 노회대표가 참석 이상 세개의 주요문서가 중요 장로교 원리는 다음시간에 함 그럼 개혁원인은 무엇? 스콧은 암흑세계였다. 초대교회는 단순, 소박 (유대교는 화려하다. 기독교는 소박할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한 이유) 심령의 종교를 강조하니 소박, 교회의 순수성없고 , 말씀선포소홀히 하고 외적 강조를 하던 시기가 중세다. 스콧도 마찬가지. 고위성직자의 반대 핍박. 휴 라티머는 화형당할시 "이 시대에 가장 성실히 일하는 성직자는 마귀'라고 함. 4가지 개혁의 필수요소로 정리해보자 1. 성직자의 무지, 무능 1552년 대주교 죤 해밀톤의 [교리문답서] 십계, 사도신경으로 구성, 출판동기는 에딘버러 하급성직자가 성경에 능통하지 못하므로 구원에 관한 신앙의 올바를 지도가 불가하여 이것을 만듬. 정기적 읽을 것 권유함. 1549년 교회종교회의, 학력, 분별력 부족한사람많다는 지적, 뷰캐년의 지적, 신약을 루터가 썻다고 믿을 정도로 무지. 파렛은 재판에 소환됨. 소매속에서 신약이 나오자 재판정에서 외침이 나왔다. 이단서적이 있다. 엄청난 무지였다. 알파벳순서도 모르는 신부들이 많았다. 2 설교가 없다 의식만 강조하니가 3 윤리적 타락 4 성직 수여권 4-17 화 장로교회의 개혁원리 낙스는 메리와 대적하였다. 나중에 자세히 말하겠다. 그런 아픔이 있었다. 그녀의 핍박으로 많은개혁자 피신하였다. 낙스는 칼빈과 제네바에서 사역하였다. 그녀 사후 엘리자베스가 즉위후 스콧틀랜드로 복귀함. 1558년 잉글란드에는 엘리자베스 1세가 등극하였고 스콧에는 메리(피의 여왕메리와 동명이인) 여왕이 등극함, 그녀는 천주교인이고 불란서에서 자라서 루이15세와 결혼함. 스콧의 메리는 일만인의 군대보다 낙스의 설교와 기도를 두려워했다. 낙스는 스콧을 카톨릭화시키려는 메리왕과 다투었다. 하나의 미사는 나에게 일만군대 침입자보다 더 무섭다고 낙스는 고백. 그는 미사를 척결하는데 온 힘을 다할 것 천명, 즉 미사가 스콧 국민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말하는 대목이다. 1560년 8.17 의회가 six Johns' 신앙고백서 승인. 이날이 스콧의 생일이다. 토마스 맥클(19세기 역사학자)-스콧은 이미 개신교로 개종, 그 통치자들에 의해 개종, 의회가 복음을 비준한 것이 아니다. 복음의 선언을 비준한 것이다. 이미 개신교 사상을 전 국민이 수용한다는 것을 의회가 인정했다는 것이라는 말. 8.24 세가지 법이 통과된다. 1)하나님의 말씀과 최근에 채택된 신앙고백서에 위배되는 의회법령 모두 취소, 2)교황은 스콧 내 어떤 재판권, 권위 행사할수 없다. 3)미사를 금하여 미사를 말하거나 듣는 것을 금지. 예) 입으로 미사를 말하면 재산을 압수한다. 직접 참가하여 듣기만 해도 추방된다. 미사에 직접참여하면 사형이다. 스콧에서 사실 이것으로 사형당한 사람은 없다. 즉 개신교 신학으로의 무혈혁명이 완성된 것이다. 스콧에서 내가 공부당시 대처시절이었는데, 삼부요인 중 정말 장로다운 사람이 있었다. 대법원장으로 미사참석하였다. 스콧장로교회 파문이 일었다. 총회에서 그를 수찬정지 6개월, 장로정치 6개월결정 내렸다. 한국가의 대법관이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200개도 안되는 교단의 총회인데 총회의 권위가 그렇게 세다. 사탄 최고의 걸작품이 미사라고 하였다. 제1치리서에서 나타난 것은 솔라 스크립투라이다. 중세교회 지배, 교리, 삶의 표준이 더 이상 전통, 교황의 권위에 있지 않고 오직 성경에만 최고권위가 있다고 믿은 것이다. 낙스에 있어서 철저히 성경에 근거해야 함 강조함. 종교개혁 모든 원리 판단의 궁극적 표 준은 성경이고 수정도 성경에 입각 필요 주장하였다. 신구약이 유일한 규범이다. 인생의 지침이다. 최고의 권위다. 로마교회는 성경과 전통 그리고 교황을 인정한다. 교회가 인정해야 성경이 된다. 어긋나는 조항 발견시 부드러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글을 통해 조언해달라고 기록함. 혹 질문자가 잘못되었을 지라도 잘 가르쳐주겠다고 함. 하나님 말씀의 신실한 선포를 강조한 것이다. 예배당 지을 때 최고높이는 강단이다. 천주교는 미사강단이 낮다. 종교개혁이후 개신교교회는 강단이 높아졌다.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다. 예배갱신이다 하여 강단을 낮추는데 개혁전통과는 맞지 않은 것이다. 개혁자들이 왜 위대한가.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론적으로 성경제일주의를 인정한다. 칼빈, 낙스는 교회성장 기준을 중요시하지 않고 철저하게 성경대로 하였다. 성장, 발전도 성경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국교회가 성경적인가. 로이드 존즈목사는 연예인이 강단에 서면 망조라고 했는데... 삶과 이론이 유리된다면 안된다. 주님의 심판을 상기하자. 불법을 행하는자들이 혹 나는 아닐는지. 랩뮤직은 미친 것이다. 고전음악이 내 스타일이다. 고전음악팬은 적다. 그러나 음악회가 열리면 어디서들 나타나는지 다 채워진다.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거룩한 것을 싫어한다. 대중화가 교회를 갉아먹는다년 안하는게 좋아. 유교제사에도 법도가 있다. 이방제사에도 있다. 하물며 하나님 섬기는데 법도가 없단말인가.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드려라. 장로교원리붙들자. 메리여왕의 편지-성경해석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지적하자 낙스의 대답은 이렇했다-하나님 말씀 자체가 명백하다. 성경의 다른 부분이 분명히 밝힌다. 오직 성경에 대한 우리의 무지가 있을 뿐이다. 어떤 법령도 말씀에 없는 것을 강요한다면 부당하고 추방되어야 한다. 4월 마지막주 강의는 잘 기억이 안나네요. 5월 1일은 휴강, 석가날이었어요 5월 8일 강의 강의안 20쪽, 제1치리서의 교회의 원리는 강의햇지요. 나머지는 한번 읽어보세요. 재산문제를 얘기하겠다. 솔라 스크립투라가 무엇? 교회부흥이 우선? 우리가 개혁교회자처하는 이상 말씀회복이 과제. 교회의 재산에 대해 낙스는 3등분. 생활비/교육비/구제비. 성직자 후원제도-돈많은 귀족과 영주가 지급, 영주의 좌지우지할수있는 폐단. 교육비는 한학교에 한교회운동이었다. 교회가 학교 비용을 부담하는 것, 특히 가난한 학생은 무료. 의무교육을 실시한것이다. 구제비-가난. 낙스의 장로교회 재정관은 개교회가 아닌 총회적 관점이다. 최소경상비 빼ㄱ고 총회로 다 올라간다. 우리는 회중적 장로교회라고 할수있다. 한국은 왜 원래정신벗어난 장로교회인가? 자본주의 농후람이 배어있는가? 왜? 미국에서 왔기때문이다. 스콧은 좁은 땅이다. 그러나 미국은 크다. 노회소집시 상당시일소요. 자동으로 개교회의 권한 강화될수밖에 없다. 지역여건이다. 한국에 소개된 것은 변질된 미국 장로교회다. 한국은 합동만 5000개교회다. 모든 헌금 총회보낼때 관리능력이 과연 있을까? 이것도 의문이다. 세례교인 의무납부금은 중세교회 인두세처럼 비유된다. 성경에 없는 징수다. 나의 글에 이것에 대한 반대를 표력한 바있다. 스콧에서 30년 넘게 총회회계담당한 장로가 있다. 부정없다. 그러나, 우리는 돈떼먹은 일많다. 하나님의 헌금을 쉽게 사용하는 죄다. 영락교회, 장학기금담당자가 4억 횡령한 사건있다. 정말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깨끗한가? 실질적인 사람들 총회에 상주하며 연구해야 한다. 변동이 잦을 수없어야 한다. 부서를 총괄하여 다 총회이름으로 나와야 한다. 총회의 권위와 연구가 필요하다. 에딘버러에서 백파이프연두대와 기마부대1개소대 이상이 총회장소에서 총회기간이 열리기 시작하는 5월 18일 즈음에 에딘버러를 한바퀴돌며 총회가 시작됨을 선포한다. 똑같은 장소에서 매년 열린다. 스콧 BBc방송에서 중계한다. 그 장소에 여왕특사도 온다. 1000명 대표는 정책토론에 열심이다. 5분내 임원선거는 종료된다. 총회장 취임 담화문-일간지에 발표된다. 성경의 정신대로 철저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 이름 존중하면 우리도 존중받는다는 것을 느낀 생생한 체험이다. 스콧은 3개의 장로교회다. 처치 오브 스콧틀랜드와 여기서 19세기에 이탈한 프리처치 오브 스콧틀랜드, 그리고 프레스비테리언 처치 오브 스콧틀랜드(군소교단)가 있다. 같은날 총회한다. 16세기 낙스의 최후, 22, 23쪽 읽어라. 낙스는 한번의 미사가 군대보다 무섭다고 했다. 올바른 종교기원은 하나님으로부터다 라고 주장한다. 힘에의해서 항거할수있다고 했다. 지식있는 양심이 낙스다. 성경해석다양하다는 메리여왕의 비판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모르면 다른곳에 있다고 응수했다. 나는 누구인가-정체성필요. 메리는 잉글랜드로 쫓겨나고 처형된다. 그 신랑이 정권에 눈이 멀었기도 했다. 낙스의 정신. 유신체제의 목사와 대조된다. 군주제와 싸운 낙스다. 1572년 사망. 1546년 이후 노예로 2년 고생. 탈출, 정말 불굴의 신앙인이었다. 멜빌은 24쪽 보라. 1545년 출생, 앞으로 연구필요와 가치있는 대목이다. 제임스 6세를 가리켜 하나님의 바보같은 신하라고 했다. 메리여왕의 아들 제임스 6세, 스콧에서 권력행사 욕심있었다. 킹제임스 성경만든자다. 왕권신수설 최초 주장자다. Two kings, two kingdoms. 여기에 대항하여 No bishop, no king. 이라고 응수한 왕이다 1603년 제임스6세가 잉글랜드도 통치함. 제임스6세가 잉글랜드로 가면서 제임스 1세로 바뀐다. 잉글랜드 교회법에 교회의 머리는 왕이라고 되어있다. 감독교회특징, 제임스 6세는 장로교를 지키겠단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음. 그러나 그는 감독제 선호. 시험에 나올확률높다. 스콧에는 두왕있다. 만왕의 왕 예수와 스콧와 당신. 당신은 오직 성도. 라고 주장 우리는 제대로 된 신앙인 없는가? 김중권의 불상참배개탄스럽다. 다니엘같은 자 없느냐?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제네바 성경이 당시 개혁교회에서 통용되는 상황이었다. 1618년 Perth 지역을 방문시 Perth 5 Articles 발표함. 25쪽보라. 이것은 로마교회로의 회귀를 보여준다. 1625년 그가 죽을때까지 다시는 고국에 못갔다. 1620년 신대륙으로 간 메이플라워호가 이자 때문에 생긴것이다. 절기가 과연 성경적인가? 우리에겐 오직 주일뿐이다. 나는 절기설교하지않는다. 절기준수는 복음선포적인 면에서 해악이 많다. 오직 그리스도의 오심, 고난, 부활, 선포를 포함하는 복음선포가 중요하다. 후기언약도 운동사다. 1651 이후 찰스의 처형은 스콧국민을 하나로 만듬. 잉글리시가 스콧티시를 죽였다는 분개. 찰스 2세를 화란에서 데려움. 누가? 언약도가. 도리에 크롬웰의 침략을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1651 울스터 전투에서 언약도 대패. 스콧까지 지배당하게 됨. 분열사건: 찰스 2세 언약사상 지키겠다고 서약했으나.일부언약도는 그런 왕의 약속을 믿을 수없다고 문제제기함. 1661년 통일령, 스콧의 장로교회를 없애려는 시도. 잉글랜드에서 더이상 NO Confirists (Puritans) 주장 2004명이 축출됨. 스콧에서는 무력으로 통일령 집행함, high landers 들 약 8000명을 동원하여 - 이들은 당시 야만인, 중세의 천주교 미신적 신앙소유자들, 미개화상태- 남부 언약도 지역인 로우랜드에 투입하여 무차별살륙, 약 18,000명의 희생야기. 1661-1668 을 킬링타임이라고 부른다. 스콧역사의 비참한 시기다. 종교개혁당시에도 카톨릭이 개신교를 이렇게 죽인예가 없는데 개혁하겠다고 하는 너희는 그게 뭐냐는 조롱섞인 비판을 카톨릭측으로부터 받기도 하는 빌미가 되는 사건이다. 당시 인구가 80만인것 감안하면 엄청난 만행이다. 어린이도 또렷하게 장로교의 우월성을 설명하고 순교할 정도였다. 신앙고백과 교리교육이 한국에 없는데 참 개탄스럽다. 개혁교회 양산이 불가능한 체제다. 철저히 교리공부필요. 천주교는 철저하다. 가장 진실을 말해야 할 목사안수식에서 성경소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믿느냐는 물음에 읽어보지 도 않은채 아멘으로 대답하는데 이것이 목회출발점부터 사기치는것 가르치는것 아니고 무언가? 알지도 못하고 뭘 믿는다는지원..... 여러분 꼭 읽어보라. 실지로 강단의 신학이 번영신학만 난무하는 이유기도 하다. 다시 교재로 돌아가서 그러하여 옥외집회가 성행, Conventicles 산상수훈 이후 조지 휘필드 이후 이런전통이 스콧에서 생기게 됨. 내용읽어보라. 37쪽 읽자. cameronians 카메론 추종. 반역자 선동분자 광신자 언약도 매도한 문건.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카메론은 평화를 추구. 이것이 다니엘 대포의 현지답사후 기록한 평가이다. 스콧틀랜드 교회약사 기술한 사람이다. 전반부 언약도는 정치색, 후반부는 정말 종교적인 성향. 1680년 리차드 카메론이 마지막으로 순교당함. 37쪽 중간. "나를 위하여 울지말고 너와 네 자매, 죄악의 관영한 이 나라위해 울라" 유언함. 우리는 진리위해 죽어야 한다. 이 당시 순교당한 와리스트 장로님 57쪽 1663 7 22 사형 최후진술-올히려 그리스도위해 고난받기를 환영한다. 38쪽 보라 화란에 있던 오랜지공 환영 제임스 7세 물리침. 언약도의 정의 Living truth for dying world 웨스트 민스터 종교회의 1643년 런던개최, 잉글랜드의 소집 대소요리, 예배모범, 정치, 조례 다 이것에 기초됨 잉글리시에 의해 만들어진 이것이 왜 스콧의 신조로 채택되지? 곡 읽어보라. 이유를 알것이다 중요하다 다음엔 당시의 교회생활 강의예정 17세기 영국의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인물로 평가될수 있을 정도의 신실한 자들이다 5-29장로교회사 강의안 없는 분들은 저한테 오면 그냥 드린다고 했는데 한명왔다 17세기 64쪽 보자 17세기 스콧과 잉글랜드 기독교 역사 2000년간 가장 신실한 정말 성경인물같은 자들이 배출됨. 장로교 선배들의 삶, 목회현장이다. 당시의 교회생활을 한 전도사님을 지목하여 읽어가게 함. (흑흑, 강의안 없는 이 처지가 안됐다) 우리와는 차이가 물론 있지요. 도전적 내용이 있다. 우리에게는 없는 후원자 제도가 있다. 목사와 장로관계가 협력관계가 거의다. 조력자로서의 장로다. 무신한 장로아니다. 스콧의 장로절반이상이 헬라어 안다. (편집자의 개인적 의견;영어권이니까 그러리라고 봐요. 우리도 중국어 한문 읽잖아요. 미국인이 얼마나 신기해 하는데요. 자부심을 가집시다) 존머리 총회, OPC 총회시 특강대목 참조하라. 시편찬송불러야 한다. 안부르는 한국교회의 죄가 있다. 복음송가는 가요수준이다. 시편은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다. 복음송은 영감된 말씀 아니다. 그레고리안 챤트도 있다. 스콧에서는 시편찬송만 부른다. 가사가 성경적이지 , 개혁주의적이지 못한 찬송가도 있다. 조심하자. 364장 내주를 가까이 하게함이냐, 하려함이냐 문제에서 신학이 바뀐다. 중요성을 인식하고 살자. 막달라마리아가 향유를 깨뜨렸다는 찬송도 100% 정확성이 없다. 그래서 나는 베다니 마리아라고 고쳐 부른다. 내 맘을 주께 엽니다. 라는 가사도 틀린다. 내맘을 내가 못연다. 모든 사람이 다 부른다고 우리도 부른다는 식의 태도는 분명 개혁주의 신학은 아니다. 지난 스승의 날 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렀는데 지나간일이지만 옳은 선택은 아니었다. 아가페에서 시편찬송이 발간된게 있긴 하다. 1860-1900 약 40년간 가장 보수적 스콧에서 자유 대 보수의 싸움이 있었다. 결국 자유주의가 이겼다. 그 결과가 시편찬송이 밀리고 일반찬송이 들어온 것이다. 교회분열인 것이다. 당시 29총대만 반대했고 나머지 800명은 찬성. 1929 , 당시 국가교회와 이 교단이 통합하였고 나머지 남은교단이 지금약 250의 목회자가 있다. 신학의 상황화를 선교지와 여러분야에서 말들하는데 , 즉 포장은 변하여도 효과적이지 않느냐는 얘긴데 포장은 내용에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금덩이를 신문지에 싸지는 않는다. 보수교단의 약점-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이것이 다 들어있을수 있다. 똑똑해보이고 뭔가 있어보인다. 그러나 보수는 안그렇다. 성경진리를 포용할 수 없다. 충돌이다. 주일학교 구조갱신-안 믿는집의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는 확률과 신자가정의 출석비율이 벌어지는 추세다. 결코 다시 옛날처럼 반반 비율로 나오지 않는다. 99.9 대 0.01 %의 비율로 신자가정에서 나오는 자녀가 많을 것이다. 많이 낳아라. 잘키워라. 이것이 가장 효과적 전도다. 부모는 자녀를 책임지고 교육하는 것이다. 세상문화는 다른 목소리를 낸다. 남자가 애보고 여자가 돈번다? 틀린다. 세상목소리 따라가지 말라 시험 주관식 문제- 한문장에 10-15글자로 쓰는 것이다. 막 쓴다고 점수나오지 않는다. 객관식도 나온다. 장로교회사와 연관이 있기에 올려봅니다 언약도운동사 강의 -3/20 party-colord mind 1983 읽을 것 과제물, 이번 화요일 수업후 5층로비에서 복사물받기로약속 17세기 교회와 국가와의 충돌이 가장 심한 시기. 교회의 영적독립성 추구.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자료등 수록된책이다. 연도별정리, 희귀자료, 교회사적으로 중요한자료, 1달에 1번 만나서 수업하자, 매월 세째주다. 나의 홈페이지 진리의 깃발 kirp.org 전화 984-2590 17세기 스코드틀랜드의 언약도 운동 앤드류 멜빌, Andrew Melville 이 presbyterianism이란 말을 썼다. 또한 Two kings, two kingdoms. 너무 유명한 말 스콧틀랜드안에 두 왕이 있고 두 왕국있다. 제임스6세에게 한말이다. 그왕은 왕권신수설 주장, Divine Right of King 교회와 왕국 동시 통치욕망, 만왕의 왕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당신, 즉 제임스6세는 스코틀랜드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입장의 말이 No Bishop, No king. 감독없으면 왕도 없다. 감독제로 통일하고자 하는 종교통일정책, 장로교회사 시험단골문제. 장로교없애고자 할때 구호가 이것이다. 그러나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The 2nd book of Discipline 발간. 엘리자베스는 1603년 세상떠나 서열 1순위가 제임스 6세다. 그가 잉글리쉬의 왕으로 즉위, Royal unity 형성(잉글리쉬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국교는 성공회, 스코틀랜드는 프레스비테리언, 제임스6세는 1619년 조국떠나 스콧틀랜드에 올라가서 Perth 5개조항이라는 것을 발표한다. Five Articles. 로마 카톨릭, 에피스코팔 회귀하자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성일회복, 성찬시 무릎꿇고, 종부성사 등등. 이것을 시행명령하자 스콧틀랜드 국민의 저항있고 1603년에 쫓겨난후 다시는 못올라간다. 그리고 1625에 죽는다. 그 아들 챨스 1세가 즉위하는데 참고로 그는 1603년 당시 나이 3개월이었다. 삶의 태도가 잉글리쉬의 영향이엇고 스코틀랜드이 왕이면서도 별 영향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1625년 메이플리워가 더나고 챨스는 스콧틀랜드 정신을 잘 몰랐다. 잉글리쉬를 좋아했다. 잉글리쉬적 통치를 해서 스콧틀랜드의 반항을 산다. 종교통일정책 실시일환으로 스콧틀랜드에 장로교없애려 라우드 켄터베리 주교와 기도예식서 가지고 스콧틀랜드에서도 시행하려 공포한다. 스콧 장로교인들이 할수없이 1637에 그 예식서대로 예배드리려 ST. Giles 에 모였는데 참고로 이곳은 낙스가 목회하고 은퇴후 죽기까지 살았던 교회이기도 하다. 회중가운데 J. Geddes 라는 18세 소녀가 의자를 집어던지며 우리는 감독적 예배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장로교 예배를 원한다고 외쳤다. 이것이 전국의 폭동의 도화선이 된다. 그후 1638 2 28 National covenant St Giles 옆에 the Greyfriar kirk 교회에서 귀족 종교지도자 시민대표 모여 서명. 이들을 Covenanters 라고 부른다. 이것이 전국토에 퍼진다. 모든 국민이 서약, 서명, 국가언약, 교회의 머리는 예수뿐. 우리는 그의 가르침따라 스코틀랜드 교회지킨다. 언약정신 그대로 지킨다. 찰스 1세 는 당황해 군대소집, 침략, 스콧틀랜드 승리, 재 침략시도, 군대소집, 분란, 교회와 국가의 충돌, 당시 Headship of the Church 가 당시 중요한 문제였다. 감독교회에서는 교회머리가 왕이다. 언약도들은 종교적 신념으로 나아갔다. 왕이 감독임명, 이것에 반대한자가 언약도다. 1638-1688 이 언약도 운동기간이다. 일명 Revolution settlement 1651년 챨스1세는 처형당함. 재정파탄과 왕당파와 의회파 대립와중에 의회파는 의회권한을 축소하려는 왕에 반대, 잉글랜드 국회의원대부분은 장로교신봉자였다. 크롬웰이 폭동진압후 쿠데타로 왕정없애고 공화정실시, 호민관 됨, 이사이 스콧에서는 챨스2세가 망명생활. 스콧인들은 크롬웰을 좋아하지 않음. 잉글리쉬니까 싫어했다. 언약도와 크롬웰이 전쟁한다. 언약도중에도 왕정옹호자가 있고 반대자가 있다. 분열된다. 1651년까지 스콧귀족중 일부가 챨스 2세를 데려온다. 그리고 스콧 장료교를 지킨다고 약속을 하는 조건으로. 즉위했다. 1660년 크롬웰 사후 그의 아들이 영 무능하여 추방당한다. 왕정복귀된다. 챨스2세를 왕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그는 종교통일령, 추방령등 잉글랜드의 청교도를 박해하고 스콧의 언약도가 모여사는 로우랜드에 야만인인 하이랜더들을 풀어 무차별 살육하게 지시한다. 1661-1688이 킬링타임이라 불리며 18000명이 순교했고 제임스 목사가 26의 나이로 순교함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감독제를 따르지 않고 장로교를 주장하는 사람을 다 죽인 것이다. 로마기독교박해 그 이상이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지키다 죽은 것이다. 이기간 교회는 쑥대밭이 되었다. 당시 옥외집회 field preachers 가 유행한다. 당시 언약도는 지붕없는 감옥에 갇혀 고생한다. 이 후 종교자유령에 의해 조금씩 탄압을 약화한다. 1200명의 언약도중 1000명이 타협하고 200명정도는 노예로 끌려간다. 자메이카 서인도 등으로 끌려간다. 이들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이유는 그들은 늘 쫓겨다니느라 청교도처럼 글을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단도 조립이어서 도망시 한도막식 들고 튈정도이니까 그상황을 알만하다. 다음엔 4월 셋째 화요일 만납시다. 1, 2 장 읽어오세요 토론합니다. 참고 당시 감독제는 로마로 가는 halfway로 인식하였다. 종교개혁을 무효화하는 것이라 믿었기에 목숨걸고 반대한 것이고 반대파들은 목숨을 빼앗으면서까지 강요한 것이다. 예배문제, 수장권문제, 선민의식등의 이슈가 있었다. 성경밖에서 볼 수 있는 성경속 인물이 그들이엇다. 원래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 이전까지 청교도와 언약도는 좋은관계였다. 잉글리쉬 청교도들이 4분5열되면서 장로교만이 옳다는 주장이 사그러들게 됨. 대부분 청교도들은 장로교 포기함. 인간성, 잉글리쉬 - 변화무쌍 스콧-정신이 올곧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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