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선교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

2011. 2. 1. 12:31교회사자료/7.한국교회사

"한국기독교선교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

 

 

 “한국기독교선교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

 

  하나님은 한국과 한국인을 지극히 사랑하사, 1784년에 카톨릭의 포교가 시작되었고, 개신교회는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1884년부터 선교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전에 중국을 드나들던 조선의 사신들로부터 성경이 들어와서 한국 초기 가톨릭교 신자였던 이벽·권철신 등이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에 모여 최초로 천주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쇄국정책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밖으로 사람을 불러내어 성서를 번역하게 하시고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벌써 한글성경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이 번역되어 국내로 들어오게 하셨다. 이러한 한국기독교의 선구자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이 바로 서상륜과 이수정이다.


  고려문을 넘나들며 홍삼장사를 하던 의주청년 서상륜은 의주에서 홍삼을 가지고 고려문을 통해 중국에 들어가 물물교환을 하는 무역업자였다. 당시에 서상륜, 서경조 형제뿐만 아니라 백홍준, 김진기, 이응찬, 이성하 등이 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로스와 매킨타이어 선교사는 이들에게 돈을 주고 자신들의 한국어 선생으로 삼았는데, 이 일을 계기로 그들은 예수를 믿어 최초 세례를 받은 한국인들이 되었다.


  또한 한학의 실력이 출중하던 서상륜은 한문으로 된 중국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데 로스선교사와 함께 누가복음을 번역하였다. 그리고 그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오던 중, 경비원에 걸려 성경을 다 빼앗기고 말았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몇 권을 감추어 가지고 의주로 돌아왔으나 감시가 심하여 외가가 있는 황해도 장연군 솔래로 잠입하였다. 거기서 전도를 하여 마침내 선교사가 들어오기 이전에 교회가 설립되었는데 이로써 자생적으로 세워진 최초교회인 소래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한편 조직교회로 새문안교회가 최초설립예배를 드릴 때 참여자 중에 서상륜 등 의주청년들이 14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북쪽에 서상륜이 있었다면, 남쪽에는 이수정이 있었다.

  일본 동경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던 미국성서공회 총무 루미스 선교사와 함께 성경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하여 최초선교사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한국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 이 성경을 한 아름안고 들어왔다. 또한 한반도가 암흑에 잠겨있던 시대, 미국에 한국선교사 유치운동의 편지를 두 번씩이나 보내어 조선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도록 한국선교역사의 초석을 놓았다.

 

1. 임오군란(1882.6.5)

  임오군란은 군인들에게 봉급으로 지급한 쌀에 모래가 섞여 나온 것에 대한 불만이 발단이 되어, 민비일가인 외척에 대한 반감으로 민씨 일가를 쳐 죽이자고 임오년인 1882년 6월5일에 일어난 군대의 난이다. 당시 승정원 승지 신분으로 민비의 경호를 맡았던 이수정은 민비를 무사히 피신시켰고, 후에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제2차 신사유람단의 비수행원으로 일본에 가게 되었다.


2. 신사유람단의 수행원 이수정(1882.9.29)

1881년 최초로 신사유람단 제1진 12명이 편성되어 근대화된 일본을 시찰하였습니다. 일본의 놀라운 발전상을 본 그들은 개화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1882년 9월29일, 2차 신사유람단이 재차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들 중에 이수정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3. 쓰다젠(栗田仙)을 만난 이수정(1882.10월)

  요코하마에 도착한 이수정은 비수행원의 자유로운 신분으로 1차로 다녀온 친구 안종수의 소개장을 들고 일본의 유명한 평신도 지도자이며 농학자인 쓰다젠(津田仙)을 찾아갔다.

  쓰다젠은 이수정을 정중히 영접하였다. 이수정이 거실 벽에 걸린 한문족자를 유심히 살펴보자, 쓰다젠은 마태복음 산상수훈이 적혀 있는 그 족자에 대해 “공자의 빛은 이 방안의 호롱불과 같아서 부분적이므로 일본의 어두운 곳까지 비치지 못하나, 예수의 빛은 태양과 같아서 일본의 방방곡곡, 전 세계, 지구 이 끝부터 저 끝까지 비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때부터 이수정은 쓰다젠으로부터 받은 한문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잘 모르거나 의심스러운 내용이 나올 때마다 쓰다젠을 찾아갔다.


4. 이수정의 개종과 세례(1883.4.29)

  마침내 성경의 교리를 터득한 이수정은 1883년 4월 29일 도쿄 로게츠죠교회에서 일본의 야쓰까와 목사와 미국장로교 녹스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 개신교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가 되었다.

  이수정은 쓰다젠을 비롯하여 동지사대학 설립자 니지마조 목사, 성서학자 우치무라간조 등 40여명이 모이는 성서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신앙지도를 받았다. 1883년 5월, 일본 기독교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이수정이 한국말로 기도하였는데도 사람들은 '아멘'하였다고 한다. 성서연구 모임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일간지나 잡지에 계속 등장하면서 점차 일본에서‘니주데이’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요즈음 말로하면 “욘사마” 처럼 이수정의 이름만 들어도 일본 동경에서 대단히 유명해 졌다. (니주데이 제과점)


5. 미국 선교사 유치 운동을 펼친 이수정(1883.7월,12월)

  한편 이수정은 세례 받던 해 7월과 12월에 미국 교회에 선교사를 파송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선교잡지 <미셔너리 리뷰> 에 실려 소개되었다. 동족의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편지를 보낸 이수정은 서방 기독교 세계에서 유명한 인물이 되었고, ‘조선의 마케도니아인’이란 별명도 얻었다. 무엇보다도 미국 내의 많은 신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어, 마침내 테네시대학 수석 졸업생이었던 혜론이 최초로 조선선교사를 지망하였고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이 줄을 이었으며 땅 끝 나라 조선 선교사 지망하는 신학생들이 계속 생겨났다.


6. 한글성경 마가복음을 번역한 이수정(1885.1.)

  ‘민족구원’에 대한 열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수정은 우리말 성경번역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루미스(H. Loomis)선교사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1884년 한문성경에 우리말로 토를 단 형태의 현토한한성경’4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인쇄되었다. 그리고 1885년 1월에는,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한 최초한글성경“신약전 마가복음서 언해”를 출판하였다.


  한편 같은 시대인 1883년경 북쪽에서는 서상륜이 로스와 매킨타이어 선교사와 함께 누가복음서를 번역하였는데, 이처럼 조선에 기독교선교역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만주와 일본에서 각각 우리말로 성경이 번역되므로 최초선교사가 들어올 때 그 성경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7. 순교로 생을 마친 한국기독교선구자이수정(1886.5.28)

  이수정은 일본에서 성서를 번역하고 미국인 선교사유치운동을 하면서 조선의 개화파인물들과의 접촉이 많았는데, 이것을 이유로 조정의 보수파들은 이수정을 본국으로 소환하게 된다. 그리고 이수정은 1886년 5월28일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경상도 울산에서 정적의 칼에 44세의 젊은 나이에 희생되고 말았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함 같이 그의 희생은 조선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도록 한국선교역사의 초석을 놓았으며, 한국기독교 선교역사에 놀라운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이수정은 국법으로 금하는 기독교를 믿었고 이를 유학생들에게 전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번역하는 등 범법을 했다는 이유로 응징되었다. 그러므로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하고, 조국의 복음화를 위한 활동이 죄가 되어 희생된 이수정은 마땅히 순교자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가 암흑에 잠겨있던 시대, 미국에 한국선교사 유치운동의 편지를 두 번씩이나 보내어 미국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최초한글성경 마가복음을 번역하는 등, 이수정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1885년 4월 5일 한국최초 선교사가 제물포항을 통하여 첫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더욱이 그들은 최초로 번역된 한글성경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조국과 동족을 사랑하는 뜨거웠던 신앙의 열매를 이렇게 거두게 되었던 것이다.


  마케도니아 사람의 손짓으로 바울이 유럽으로 발길을 돌려 마침내 유럽이 세계 기독교문화의 중심이 되어 찬란한 역사를 이룩했던 것처럼 미국을 향한 이수정의 선교사유치운동의 편지가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조선의 마케도니아인 이란 별명까지 얻는 등 대단한 성공이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이 오늘의 선교대국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기독교선교의 초석을 놓은 이수정이나 서상륜의 선구자적인 신앙의 열정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을 생각할 때 크리스천은 물론 온 국민의 추앙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 한다.


 사실은 “한국기독교선구자이수정”/“한국기독교선구자서상륜” 의 거룩한 기념비가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2006년 6월 20일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캠퍼스 안에 한국최초로 자생했던 소래교회 복원기념교회 마당에 건립 되었는데 이 비석은 뜻있는 개인의 봉헌으로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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