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30. 23:53ㆍ선교자료/5.선교자료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소고
이태웅 (GMTC 원장)
서론
한국 선교가 시작된 것은 1900년대 초이다. 하지만 한국 선교가 운동으로 활성화된 것은 불과 25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교는 그동안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숫자로만 본다면 200여년 동안 선교를 해온 일부 기라성 같은 선교 국가들을 제치고 당당히 제2의 선교 파송국가로 부상을 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발전에 대해서는 우리 뿐만아니라 세계 교회도 경악을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이런 성장 속도가 앞으로 25년간도 계속 될까 하는 점이다.
이에 반해 서구 교회의 선교는 그 발전 속도가 느린 것에 비해 오랜 기간동안 계속적 성장을 유지해왔다. 미주의 경우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선교 활동은 절정에 도달했었으며, 그 같은 상태가 최근까지 유지되었다.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하강세를 보이고 있다. 숫자로 봐서는 단기 선교 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 감소하는 장기 선교사들의 자리를 단기 선교사들이 어느 정도 대신 메우고 있기 때문에 약화되었다고만은 볼 수 없다.
최근 미주 선교 핸드북에 나타난 미주 선교사의 숫자를 40만명으로 보았다. 그 중에 35만명은 단기 선교를 하는 인력이다. 장기 선교사는 약 5만-6만명 정도가 된다. 한편 간접, 직접적으로 선교인력 전체를 통틀어서 봤을 때 100만명까지 보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장기적이며 지속적인 것이 서구, 특히 미주 선교에 나타난 성격 중에 하나이다. 이것에 비해서 우리는 25년 내에 엄청난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앞으로 25년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국 선교는 전환기를 맞이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 전환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계속 상승세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급속도로 하강 곡선을 그릴 것인가가 우리에게는 지대한 관심사이다. 물론 우리는 한국 교회의 선교가 계속해서 상승 곡선을 그릴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만 될 것이다.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도 바로 이와 같은 상황(context)을 감안하여 다루어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것은 최소한 다음 두 가지 문제들에 대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1. 선교사들의 탈락을 방지하여 더 안정적으로 선교지에서 사역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2. 선교를 위한 동원에도 이런 정체성 확립은 도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무엇이 한국 선교사의 존재의 핵심 요소인가? 한국 선교사는 누구인가? 한국 선교사가 자긍심을 가지고 선교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외에도 한국 교회가 한국 선교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멀게는 세계 교회, 가깝게는 아시아 교회, 더 나아가서는 2/3세계 교회가 한국 선교사를 어떻게 보는가? 이러한 여러 가지 질문들은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속시원하게 해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 중요한 것들을 골라서 고민하며 해답을 찾아보려고 시도하는 과정 중에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더 나아가서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의 부정적, 긍정적 요인들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시도가 한국 선교사들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의 부정적인 면들을 미연에 방지해주고 더 나아가서 보다 나은 방법으로 그 정체성을 형성해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를 위하여 먼저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작업을 위한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I.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작업을 위한 정의(working definition)
1. 정체성의 의미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이것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인식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자아의식(self-concept)과 자긍심(self-esteem)과 그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에 관한 소속감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해외 한인의 민족 정체성과 애착 : 미국과 독립 국가 연합 한인의 비교”라는 글에서는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정체성은 사회와 세계에서(이 세상에서)느끼는 개인의 위치를 의미하며, 순간적 상황에 따라서 주어지는 상황적 정체성과 오랜 시간 다양한 역할, 상황, 집단들과 관계 중에 남는 사회적 정체성과 개인적 정체성, 민족 정체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에 민족 정체성은 “인간이 갖는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 민족 정체성은 광범위하게 정의를 한다면, 공유된 민족적 특성으로 인해 한 개인이 어느 특정 민족 집단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a sense of belonging)이다." 이와 같은 것은 한 개인이 갖는 자아개념(self-concept)의 한 부분으로서 이것을 통해 자신의 민족적 정체를 실감하게 된다. 또 얼마만큼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정체성의 성격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가령 자기 존재에 대한 개념은 어떻게 생기는가? 대개 자기 정체를 위한 성장 과정 중에 느꼈던 소속감과 자기에 대한 의식들, 더 나아가서 자신 가운데 형성된 자긍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를 한국인에게 적용시켜 본다면 우리가 어떤 민족이며, 우리 민족 가운데 어떤 영웅들이 있었으며, 어떤 수난의 발자취를 겪어 왔는가, 또 우리 문화의 기본 속성이 무엇인가와 관련된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의 존재와 소속감과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자긍심을 가져다주는 요소들이 될 것이다.
즉,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한국인의 역사의식과 한국 문화와 사회, 교육, 작은 공동체들, 가령 한국 교회나 동창들, 가족 등의 상황 속에서 점진적으로 생기는 의식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2. 정체성의 상황적 변화
우리의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2002년 월드컵 대회에서 우리가 4강에 들었을 때 우리의 정체성은 갑자기 상승효과가 일어났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자긍심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가가 좀 더 강하게 부각되었다고 생각이 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나는 시카고에 있었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하거나 거의 없던 사람들까지도 갑자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높아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어떤 한인 2세의 경우 심정으로는 한국 사람이지만 머리로는 미국 사람으로서 한국에 대해 혐오감마저 느끼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월드컵 대회 동안 그가 몇 차례씩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을 응원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심지어는 경기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경기장 바깥에서 응원만하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런 경우 순간적으로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강해졌는데 이것을 상황적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앞에 말한 긴 시간에 걸쳐서 형성된 사회적 정체성과 합쳐졌을 때 한 개인의 정체성이 되며, 한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으로 발전된다.
3.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
결론적으로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작업을 위한 정의를 내려본다. 한국인은 누구인가?, 한국인은 김치를 먹고, 화끈하며, 희생정신이 투철하며, 정이 두텁고, 친분이 있는 사람끼리는 조건 없이 서로 돕거나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또한 부정적인 면들도 있다. 한국인들은 잘 싸운다. 팀웍이 안 된다. 경쟁심이 강하다. 지연과 학연과 가족 속에서는 이 세상의 어느 민족 못지않게 집단주의적이다. 그 테두리 밖에서는 서구인보다 더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 곧 한국인이다. 이런 한국 사람들 중에 선교의 소명을 받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서 주님이 원하시는 타문화 선교를 지향하는 자리에서 한국 교회의 지원과 파송을 받아서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곧 한국 선교사들이다.
이처럼 간단하게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에 관한 작업을 위한 정의(working definition)를 내리고 이를 근거로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구체적인 면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II.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 형성 과정 중에 나타나는 부정적 요인들
1. 선교 역사적 상황과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과의 관계
선교사의 정체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여건과 소속감과 자존감과 자아의식과 자긍심 등 여러 가지 연관된 것 이외에도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선교 역사적인 상황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서구 선교사의 경우,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은 현대 선교운동이 시작된 18세기부터 시작해서 형성되어왔기 때문에 그 뿌리가 깊다. 특히 기독교권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비기독교권인 선교지 쪽으로 선교사가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파송하는 교회나 파송을 받아가는 선교지나 파송을 받는 당사자들에게도 그들의 존재의 의미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이었다. 이로써 선교지 교회도 “선교사는 곧 백인이다”라는 인식이 높았다. 아마도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는 백인 이외 다른 유색인종은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한국 선교사의 경우 1980년대부터 그 수가 증가하였다. 그 당시 경제 성장이 한참일 때라 그런지, 또 선교가 아주 희귀한 때라 그런지 그들의 정체성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프로젝트성 선교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과 프로젝트성 선교는 연관성이 큰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양상은 그 후 한국 선교사가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있어서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곧 선교지의 오염으로 이어지고 선교지민들의 타락으로 치달았다.
2. 선교지 문화가 주는 정체성의 혼돈
서구 선교사들의 경우 긴 선교 역사를 갖고 있음으로 인해 그 정체성이 한국 선교사들보다 훨씬 더 쉽게 확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에 도착해서 타문화권에 돌입했을 때 자문화와 타문화 사이에서 오는 압력에 따라서 정체성이 흔들릴 수가 있다. 자문화 우월주의로 가게 되면 문화적 갈등문제는 일시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나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긴다. 반면에 타문화로 완전히 전환된다면 자신의 문화에 대한 정체성이 사라지게 되고 자기가 누구인가를 인식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중 문화, 삼중 문화, 다중 문화권에서는 더욱 더 이것이 어려울 수가 있다.
따라서 이것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폴 히버트(Paul Hiebert) 박사는 문화적 통합(culture integration)을 촉구하고 있다. 즉 이중 문화권에 있는 사람은 두 문화를 통합해서 두 문화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면들을 숙지하고 이를 실제 생활 가운데 적용시켜야 한다. 이 때 성서적인 기준에 따라서 통합된 두 문화를 평가하여 옳은 것은 받아들이고, 반기독교적인 것을 거부하게 된다. 즉 한 사람이 두 인격체를 몸에 지니고 있는 것처럼 각 각 다른 두 문화를 지니고 필요에 따라서 다른 한 문화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인격체가 두 문화를 골고루 활용하며 즐기며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화 과정을 제대로 통과하기까지 선교사에게는 이중문화 내지는 다중문화권에서 정체성의 혼란이 올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이들이 자문화를 소홀히 대하는 가운데 선교지에 갔을 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이 약해질 수 있다. 반면에 자문화 우월주의를 택하고 선교지 문화와 통합을 하지 않는 경우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경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지 모르지만 한국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은 일그러지고 말 것이다.
3. 세계화와 문화의 정체성 소홀 현상
최근에는 세계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문화마다 문화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경향이 높다. 최근의 정치, 사회 상황과 세계화의 현상이 강하게 불어서 우리의 정체성이 약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선교계에 입문할 젊은층들은 바로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자라난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자기의 의견이 뚜렷하고, 포스트모던 문화 속에 깊이 잠겨 있고,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과 친밀하게 살아온 젊은이들이다. 우리는 이들이 우리와 상당히 다를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가운데 건전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은 필요하다. 혹시라도 그들이 자문화를 소홀히 대할 때 그들의 정체성은 희미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자문화 정체성에 대한 혼돈의 문제를 가지고 현지에 갔을 때 자문화를 그렇게 대하였듯이 현지의 문화를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가 있다. 자신의 문화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은 곧 타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존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4.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과 가시적 업적과의 상관관계
우리의 정체성이 약할 때 우리 존재 자체에서 정체성을 찾기보다는 우리가 형성해 놓은 업적을 통해서 정체성을 찾기가 쉽다. 이와 같은 경향은 서구의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구에서는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할 때 내가 무엇을 성취했는가를 동시에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 비해서 그룹 문화권에서는 개인의 업적이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그룹에 속해 있는 것으로 그 정체성을 찾기가 쉽다"라고 문화인류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한국 선교사는 그룹 문화권에 속해있으면서도 자신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구 사람들 못지않게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한국 선교사들도 어디에 속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무엇을 성취하는가를 매우 중요시 할 수가 있다.
이런 경우 선교사들은 커다란 프로젝트를 통해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또 “얼마나 많은 교회를 개척했는가, 몇 명을 구령하였는가”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가 있었고, 이것이 곧 그들의 정체성인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최근에 와서는 이런 경향들이 많이 사라지고 진정한 의미에서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우리가 이것에서부터 완전히 자유하지 못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업적중심의 정체성을 가진 경우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평생 동안 내놓을만한 업적 없이 선교를 하는 사람에게는 심한 내적 갈등을 안겨줄 수 있다. 한국 교회도 이런 업적 중심의 오류에 빠질 수 있고, 그러한 잘못된 잣대를 가지고 한국 선교사를 잴 수 있다. 한국 교회와 한국 선교사가 하루 속히 이런 오류에서 벗어나서 올바른 방법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5. 모금 능력과 정체성의 연계
어떤 선교사들은 그들의 모금능력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국 교회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주일 헌금이 얼마나 되는가? 얼마나 큰 교회를 가지고 있는가? 또 성도 수가 얼마인가? 이런 것들과 그들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 선교사의 경우도 자신이 모금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선교사로서 자신만만할 수가 있다. 반면에 모금이 잘 안되는 사람은 정체성이 부족할 수가 있다. 간혹 하나님께서 재정적인 부분을 가지고 선교사의 정체성을 규정지을 때도 없지 않다. 가령 내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서 하나님이 책임진다고 말씀하셨다면 재정적인 면은 마땅히 따라올 것이다. 그런데 전혀 모금이 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때에 따라서는 선교사를 이제 그만두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선교사의 정체성을 이와 같이 단순한 잣대로만 재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책임진다고 하시더라도 모금이 반드시 쉬울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쉬울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금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금이 잘 안 된 경우도 얼마든지 훌륭한 선교사로서 사역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선교사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그릇된 정체성의 기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깊이 의뢰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할 때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이야말로 선교사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6. 학위와 능력 위주의 유교적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돈
우리 문화의 경우 외형이나 성취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신학 공부나 안수 등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보려는 오류에 빠지기가 쉽다.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도 균형을 잡아야 한다. 우리는 정체성을 학위나 우리의 외적인 요인에서 찾지 말고 보다 근본적인 것에서 찾아야 하겠다.
학위나 외적인 요인은 내가 선교사로서 보다 효과적인 사역을 하기 위해 구비해야 되는 것 중에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말아야한다. 실력만 있으면 되고 외적 지위나 자격이 전혀 필요 없다는 극단으로 갈 필요도 없고 반면에 내가 가진 지위만 믿고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금물이다. 학위나 지위가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좀 더 종합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7. 극단적 생활을 통한 정체성의 추구
극단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의 근거로 삼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다른 선교사들과 다르다. 다른 선교사들은 누릴 것을 다 누리고 희생을 하지 않고 살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누릴 것을 다 누리지 않고 희생을 많이 하고 살고 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선교비를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선교사다운 선교사다.” 우리는 이것에도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만일에 극단적인 생활만을 고집한다면 선교사의 수명이 그만큼 짧아질 가능성이 있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선교사가 약화되어서 선교단체와 한국 교회에 커다란 누를 끼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누릴 것을 다 누리고, 모든 것을 다 갖추고, 가장 좋은 것으로 영양을 취하여야 한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는 이것에서도 균형을 유지하여야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체질, 가족의 건강상태, 연령, 상황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마땅한가를 고려해서 그에 따른 적정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선교사와 선교단체와 한국 교회에 최소한의 누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을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극단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에서 찾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자랑거리가 아니다. 이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속한 것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더 돈독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께서 골방에서 기도하고, 금식하라고 하셨는데 바로 그런 개인적인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 국한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이상과 같이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 몇 가지 대표적인 것들을 지적하였다. 이런 오류들은 한국 교회 전반에 걸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로서 다만 선교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나 교인들, 그리고 장로님들이나 그 밖에 또 다른 사람들 중에도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우리의 생활 가운데 최소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 왕국의 가치관에 입각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정체성이 이상과 같은 부정적인 것에서 오는 것을 막고 보다 긍정적인 것에서 찾게 될 것이다. 건강한 한국 선교사일수록 그 정체성이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성숙도와 소명과 그들의 존재 자체로부터 생기게 될 것이다.
III.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 형성 과정의 긍정적 요소들
한국 선교사가 긍정적인 정체성을 갖지 못했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몇 가지 경우의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하였다. 한국 선교사는 정체성을 긍정적인 방법보다는 부정적인 방법으로 해왔을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이런 경우 정체성이 올바로 형성되기 보다는 오히려 일그러진 정체성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선교사는 자긍심과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명감을 잃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정신적인 문제까지 야기 시킬 수 있다. 선교사에게 필요한 자신력이나 인내력, 팀을 향한 애정, 신축성, 정직성, 창의력, 강한 의욕, 긍정적인 시각 등이 결여되는 경우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한국 선교사들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긍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몇 가지를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1. 성서적 모델로부터 오는 교훈들
우선, 성서적인 모델들을 몇 가지 찾아보겠다.
첫째로,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자신의 정체성의 유무에 따라서 현저하게 다른 삶을 살고, 사역을 한 사람을 든다면 아마도 모세일 것이다.
모세의 경우 인간적으로는 갖출 것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히브리인의 자녀로 태어난 모세는 준수한 용모의 아이였음에 틀림없다. 모세의 어머니는 히브리인의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죽이라는 바로왕의 명령을 어기고 그를 바로의 궁정 하수가로 떠내려 보냈다. 그리고 숨어서 바로의 공주가 그 아이를 데려가기까지 지켜보았다. 그 후 모세는 궁전에서 그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건강 상태도 최상의 상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서서히 자기 민족에 대한 의식이 들기 시작했다.
민족에 대한 의식이 들면서 그는 자기 민족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았고 더 이상 방관자로 남아있을 수가 없어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 민족을 구해보겠다고 한 것이 결국 살인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후 생명을 건지기 위해서 광야로 피신하여 40여년 간을 그 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의 삶을 통해 나타난 정체성에 관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정체성이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관한 사역 목표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모세가 만일 바로 왕으로 즉위할 경우였다면 그가 그 동안 받았던 모든 교육, 문화 습득 등이 그의 정체성을 갖다 주는데 충분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기 민족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사역을 하게 되었을 때 그가 이제까지 받았던 모든 교육만으로는 그 일을 하기에 불충분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각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다음, 전반적인 의식의 변화가 따라오지 않고는 그 정체성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모세의 경우 근본적인 세계관의 변화는 그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한 것으로부터 왔다고는 볼 수가 없다. 그 기간동안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다”라고 자신력을 잃게 되는 과정을 통과해야했다. 어느 날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생생한 만남은 모세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고, 하나님을 통해서 계속 도움을 받는 시각을 갖게 해주었고, 또 하나님을 통해서 계속 도움을 받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 후로 모세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 역사상 아브라함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에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사람이 되었다. 모세의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결국 선교사의 정체성 형성도 일반적인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하나님과의 개인적 만남을 통해서 우리의 세계관 자체가 변하지 않고서는 최소한도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은 형성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둘째로, 아브라함의 경우를 검토해볼 수 있다.
사실 아브라함은 모세처럼 위대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는 평범한 가장으로서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는 믿음으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좇아서 살게 되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라이프 스타일은 곧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시대로 자기의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갔고, 급기야는 그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믿음을 좇아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동안에 그는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그 후손을 낳은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씨가 그 가운데 뿌려졌다. 마침내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신 말씀의 장본인이 되었다. 그가 그 말씀의 의미를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나 희미하게나마 구세주가 자신의 후손을 통해서 나올 것에 대해서 알고, 구세주가 나오기 위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지식이 충분치 않았을 수도 있고, 그것이 단지 안개 속에서 거울을 보듯 희미하게 밖에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후손”에 대해 믿고 살았다. 이런 믿음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게 했을 것이다.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도 역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없이는 제대로 형성되리라 볼 수 없다.
셋째로, 신약에 와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모범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하셨다. 이는 예수님도 성장하는 과정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 쪽에서 봤을 때 그는 정체성의 문제가 전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 쪽에서 봤을 때 그에게도 역시 모든 사람이 겪는 정체성의 문제들을 당면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성경 말씀 가운데 정체성 확립을 위해 주님이 겪으셨던 내적 갈등은 잘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그가 마지막 십자가를 지고 구세주로서 모든 인류의 죄를 그 어깨에 짊어지시게 되었을 때 아주 심한 정체성에 대한 씨름을 하신 것 같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상징인 잔을 놓고 씨름한데서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뜻”과 “아버지의 뜻”을 놓고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주님께서 마음의 평정을 찾으신 것은 자신의 뜻과 아버지의 뜻이 일치된 다음이었다. 주님의 정체성은 결국 아버지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완전히 아버지께 순종하는데서 왔다. 특히 마지막 3년간은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주님께서 사역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주님께서는 3년간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한시도 의심하지 않으시고 사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아버지의 뜻과 일치되는 삶을 한시도 빼놓지 않고 사신 것이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을 곧 내가 하기를 원합니다” 라는 자세를 가지고 사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보내시어 하라고 하신 일을 아버지 뜻대로 행함으로써 그의 정체성을 고수하셨다.
넷째로, 우리는 바울 사도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날 때까지는 정체성이 분명치 않았거나, 혹은 삶의 다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후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임으로 주님을 좇아가는 동안 그의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가 성경에 나타난 몇 몇의 예를 통해서 보았듯이 그 정체성은
⑴ 하나님을 아는 것과,
⑵ 믿는 것과,
⑶ 소명과 아울러 계속해서
⑷주님의 뜻을 좇아가는 것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계관의 차원에서 이는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성서적이면서도 천국적인 세계관을 갖는 사람들은 정체성에 대해서 커다란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선교사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무엇보다도 성서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성서적인 세계관을 소유한다는 것은 성서적인 가치를 토대로 하여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가 우리 속에서 하나로 통합되어 나타날 때 우리의 정체성은 가장 분명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를 표현한다면 먼저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고유의 문화와 경험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들, 위인들을 포함하여 역사적인 것에 대한 의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것을 우리의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함을 의미한다.
그 다음 이 모든 문화적인 요소들을 성서적인 가치에 비추어 올바로 걸러낼 때 비로소 우리의 세계관이 성서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성서적 세계관이 형성되면 될수록 우리의 정체성은 그만큼 더 확고해질 것이다. 거기에 선교사의 소명까지 합쳐졌을 때 우리는 다른 어떤 것에 비교될 수 없는 강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될 것이다.
2.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과 범세계적 공동체와의 연관성
우리는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과 범세계적 공동체와의 관계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한국 선교사가 속해 있는 한국 선교 공동체부터 살펴보자. 한국 선교 공동체가 이미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운동으로서 25년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다수의 선교사들이 선교 현장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이들은 많은 성공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또 동시에 많은 아픔들을 가지고 있다. 여러 번 모였던 선교대회를 통해서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의식들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 한국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들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누구인가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우리의 신분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그 결과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내게는 공동체가 있고, 이 공동체는 한국 교회가 공인한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바로 이런 인식이 우리의 정체성을 크게 강화시켜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이런 인식은 좀 더 확대되어서 2/3세계 선교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3세계운동이 1970년대부터 일어나서 한국 교회의 선교운동과 거의 같은 시기와 같은 속도로 성장을 해온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에 와서는 서구 선교사의 숫자와 거의 비슷한 수의 2/3세계 선교 공동체가 있는데 우리는 바로 그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가 처해있는 일상생활 가운데서 잘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로잔대회나 세계복음주의연맹 선교위원회가 개최한 대회들, 기타 국제 대회들을 참가하면서 우리는 그 공동체 속의 한 일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소속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불과 25년 사이에 2/3세계 선교 공동체가 형성됨에 따라서 그 일원인 우리의 정체성을 보다 강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같이 스스로 갖는 정체성과 더불어 상대방들이 우리를 인정하는 것에서 오는 정체성이 상황적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과 합쳐져서 한국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범세계 선교 공동체가 형성되어서 이제는 2/3세계 선교운동과 서구 선교 운동이 하나라는 의식이 강해지고 있다. 소위 선교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서서히 범세계 선교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범세계 선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책임을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초기에는 한국 선교사들이 너무 저돌적이고, 문화적인 면에 민감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서 우리의 긍정적 정체성에 역행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선교사들이 속해 있는 국제단체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한국 선교사들이 갖고 있는 높은 학력과 사역에 대한 열정을 서구 선교 공동체가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범세계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주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된다. 이런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범세계 선교 공동체 속에서도 자신이 한국 선교사인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약점과 강점을 모두 인정하는 가운데 자신을 일부러 과시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의 정체성은 좀 더 확고해진다.
3.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과 선교사 자신의 성장과의 관계
지금까지 한국 선교사의 긍정적인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들을 잠시 이야기하였다. 성서적인 면과 세계관 차원에서의 변화와 세계 선교 공동체에서의 상호 인정 속에 오는 정체성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상황적인 것과 그룹적인 것, 민족적인 것을 통해서도 오지만 자기 자신의 성장 과정 중에 정체성이 더 깊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세계복음주의연맹 선교위원회가 내는 선교사 멤버케어의 통계를 보면 선교사들이 연장 교육을 계속 받고, 학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대체적으로 탈락하지 않고 안정된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가 알 수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그만큼 성장 과정을 통해서 한국 선교사들의 정체성이 좀 더 강해진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고 본다. 가령 한 선교사가 발전을 거의 하지 못하고 성장도 못했다고 가정하자. 그런 사람일수록 사역 하는 중에 벽에 부딪치게 되고, 문화적인 적응도 잘 못하고, 언어도 잘 배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선교사는 틀림없이 정체성이 약할 것이다.
반면에 자신이 계속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선교사일수록 그 정체성은 강해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느 정도는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의 유능성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능성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유능성과 신앙의 성숙은 우리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는 밥 클린턴의 지도력 출연 시간표를 통해서 어느 정도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
밥 클린턴의 지도력 출연의 시간 좌표를 보면 먼저 섭리적인 단계가 있다. 이 섭리적인 단계는 어떤 부모를 만났는지, 유년기에 어떻게 성장했는지 등 아주 기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선교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때는 이런 기초적인 면까지도 소급해서 뜯어고칠 것은 뜯어고치고, 다시 조성시킬 것은 조성시켜서 과거에 형성하지 못했던 기초들을 좀 더 확고히 할 필요성이 있다. 그 이외에도 사역의 성숙이 있어야 될 것이며 이러한 것을 통해서 삶의 전반적인 성숙이 오면서, 필요한 은사와 더불어 영적 권위를 더 많이 갖는 단계들이 오게 된다. 그 다음은 이것이 극대화 되는 수렴 단계가 오게 되고, 마침내 결실하여 축제의 단계가 오게 된다고 클린턴은 아래의 표와 같이 이야기 했다.
이런 과정을 제대로 밟아감에 따라서 지도자로서 성장하면 할수록 우리의 정체성은 그만큼 강화될 것이다. 특히 은사에 따라서 나의 사역의 현장에서 효과가 나타났을 때 더욱 더 정체성은 강하게 될 것이다. 가령 한 사람이 해당 문화와 독특한 문화 상황을 잘 파악하고 그 중에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 하자. 이런 사람은 필경 정체성의 혼돈으로 고민하지 않고,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자기가 속한 해당 문화권에서 계속 사역할 가능성이 크다.
4.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과 현지인의 의식 변화
그 밖에도 현지인들이 보이는 반응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한국 선교사들에 대해 더 나아가서는 2/3세계 선교사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이 모호할 수가 있었다. 그들이 줄곧 백인 선교사들만 봤기 때문에 동양인이나 유색 인종이 선교사가 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선교사가 처음 파송될 때만하더라도 바로 이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와서 약 164개국에 한국 선교사들이 파송되고, 한국 선교사들은 이미 현지인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음에 따라서 이제는 현지인들이 한국 선교사들에 대하여 많이 익숙해졌다. 이처럼 선교지민들의 긍정적 호응은 한국 선교사들의 정체성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동안 한국 선교사가 범한 시행착오 때문에 선교사들에 대한 비판도 많았지만, 한국 선교사들의 질과 선교단체의 전문성이 향상됨에 따라서 대체적으로 한국 선교사들에 대한 호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로써 한국 선교사들의 정체성은 상대적으로 강해졌다고 볼 수 있겠다.
5.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과 전 기능을 발휘하는 선교 관리 체제
한국 선교계의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아마도 기본적인 면에 있어서의 취약성일 것이다. 본국의 경우이든, 선교지의 경우이든 기본적인 면에 대하여 충분한 투자를 하지 못한 것이 한국 선교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뜻있는 기관/교단 일수록 전 기능(Full function)을 발휘하는 단체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가져다주는 혜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기관은 본국에서는 선교사의 대리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선교사의 멤버 케어도 감당한다. 위기를 만난 사람이 정상적인 멤버 케어를 받았을 때 그 선교사는 그 단체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이 커질 것이다. 이는 곧 선교사의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이런 선교사일수록 자신이 선교사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어떤 어려움도 견디게 될 것이다. 이처럼 선교사의 관리 체제의 활성화는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을 강화시킬 것이다.
결론
한국 선교는 이제 성년기를 맞이하였다. 과거에는 우리가 유년기 혹은 사춘기에 있었기 때문에 실수가 허용되었고, 우리 자신들도 실수에 대해 그다지 부끄럽지 않게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선교대국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한지 벌써 수년이 되었고, 세계 교회가 한국 선교계에 거는 기대도 매우 커졌다. 이제는 더 이상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 있는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시점에서 선교에 대한 전문성을 쌓고, 우리들 스스로가 개혁하지 않는다면 이제는 한국 교회도 선교에 대해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서 선교지의 세계 선교 공동체도 더 이상 인내를 갖고 우리를 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대적인 필요에 의해서, 또 우리 자신들의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서도 이제 우리는 한국 선교사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자로서 선교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써 우리는 다가오는 25년을 바라보며 선교학적으로, 선교 전략적으로는 물론이고 성숙도에 있어서나 효과 면에 있어서 그 위상을 한 단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는 우리의 선교가 성숙해져서 한국적인 선교학이 형성되며, 다른 2/3세계가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선교 한국이 되어야만 하겠다.
따라서 한국 선교사가 올바른 정체성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은 단지 우리끼리의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내지는 2/3세계가 기대하며, 바로보고 있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항이기도하다. 부디 이 포럼을 통해서 올바른 한국 선교사의 정체성을 갖는 것에 대한 의지가 다른 선교사들에게도 계속 확산되어 한국 선교사하면 정체성이 있는 선교사라는 말을 한국 교회로부터, 세계 교회로부터 들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출처: GM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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