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육이 죽어 영이 사는 길

2010. 8. 24. 20:21일반자료/6.좋은글 자료

육이 죽어 영이 사는 길


'얼마나 빠르게 가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바르게 가느냐'이다.

마찬가지로..

얼마나 '열심히 믿느냐' 보다, 얼마나 '바르게 믿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 딸 아이가 보름째 기침을 하고, 코가 막힘의 증상으로 내과를 다녔다.

그래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뿐 아니라, 날로 더 심해지는 것이었다.

급기야,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내과(內科)에서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로 전과(轉科)하기로 결정을 하고..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결과는, 안 좋았다.

아이는.. 감기가 아니라, 심한 축농증(蓄膿症)으로 코에 물혹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물혹을 제거하고, 조직검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애비된 자로 부끄러웠다.

내가 미련하여 열심히 병원은 다녔지만, 바르게 다니지 못해..

아이의 병만, 더 키웠다는 자책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좀 심각한 듯 말씀하셨고, 앞으로 상당한 치료가 필요하다 하셨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감기인줄 알고, 계속 내과를 다녔다면..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하나님은, 작은 자를 통해..

이비인후과로 전과할 것을 인도하여 주셨고, 나는 즉시로 순종하고 적용하였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빨리 가고 멀리 갈수록 빨리 망하는 길이 된다.

느리게 가더라도 바르게 감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실감한 날이었다.

빨리 가면 못 보는 것들이, 너무 많고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막힘없이 달리다 보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천천히 가거나 지독히도 길이 막히면..

길가에 핀 수많은 들풀들과, 먼 산의 청록색 화폭을 마음에 담을 수도 있다.

그리고, 오징어와 호두과자도 맛볼 수 있다.

이것이, '막힘이 주는 은혜'이다.

 


요즈음 들어..

길가 담장에 외로이 핀 이름모를 풀들이,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없다.

사형수들은, 담장 밖에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서 운다고 한다.

또한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면, 일부러 신고 있던 운동화 한 짝을 벗어 흘린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기 위해서란다.

동일한 들풀과 시간이건만 상황에 따라, 이렇게 느낌과 감동과 해석이 다른것이다.

살아보면 별것 없는데, 왜 이렇게도 아웅다웅 사는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죽으면 한줌의 재로 남아, 흐르는 물에 뿌려질 인생인데..

무엇이 그리도 귀하다고, 육신을 위해.. 안달복달 사는지 모르겠다.

'한뼘'밖에, 안되는 인생인데..

천년만년 사는 것처럼, 새가슴이 되어 사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는 아니더라도..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살순 없을까?

 


지금까지는, 엉망진창으로 살아왔고 믿어왔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라도, 반듯하고 여유 있게 살순 없을까?

세상에 '내려놓는다는 것' 만큼, 좋은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내려놓는것'만큼, 어려운 일 또한.. 없을 것이다.

악착같이 공들여 '움켜쥐고 쌓아올린 것'들을, 저절로 내려놓을 수 있는가?

차라리, 죽을때까지 용서못할 사람..

인간적 의지로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방성대곡으로 용서할 수 있는가?

이것이 안되니, 우리 마음은 숯껌뎅이가 되는 것 아닌가?

 


어디 이뿐인가?

한번 받은 상처..쉽게 아무는 법, 보았는가?

상처 받는 일은 쉽지만..

받은 상처가 아무는 것은, 죽음을 방불케 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몇년을 가도, 평생을 가도..

아물지 못한 채로, 하늘나라 가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상처 또한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인생일까?

말로 받은 상처,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 물질로 받은 상처..

오해로 받은 상처, 실망과 거절로 받은 상처, 배신과 무시로 받은 상처..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특히..

말(言)로 받은 상처는, 평생을 두고 아프고 시리게도 할만큼, 위력이 대단하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로, 말로 상처를 주지 않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여, '입에 파숫꾼을 세워 달라'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겉으로 초연한듯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헤집어 보면..

'주먹막한 심장에, 바다만큼 가득한 것'이.. 상처이다.

실로 우리의 마음은, '상처의 바다'이다.

치유되지 않은 채, 덮어두고 봉합한 상처들이..

울컥~ 울컥~ 고개 내밀 때마다, 몸서리가 처지고.. 치가 떨린다.

누가, 무엇으로.. 나만의 상처들을 아물게 할까?

용서하지 못함으로..

아물지 않은 상처로..

얼마나, 우리의 마음이 뭉개지고,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오죽하면, 병이 들고 뼈가 상할까?

남을 용서한다는 것이, 그만큼 힘이 들다는 뜻이며..

한번 받은 상처가 아물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이 두가지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래도 삶이 희망적일 것이며, 지금보다는 훨씬 더 풍성할 것이다.

야속하게도 우리는, 이 두가를 비롯해, 너무 많은 것들을, 내려놓지 못함으로..

'잃는 것'과 '못보는 것'들과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 상처의 무게와, 미움의 중압감이 너무 중하여..

파아란 하늘과, 반짝이는 별들과, 보석같이 피어있는 들플과..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우리는 놓치고 산다.

한꺼번에는 힘들겠지만, 하나씩 내려놓는 훈련을 받고.. 그런 은혜를 구하자.

'쌓는 은혜'보다는, '내려놓는 은혜'가.. 더 크기 때문이다.

 


벼랑 끝과 같은, 삶의 기로에 서 있는가?

하나님이, 당신을 만지시는 순간이다.

미움도 상처도, '다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 순간이다.

우리의 심장에 박힌 수많은 못들을, 누가 빼어줄 수 있을까?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신 '주님 외에는'..

그 아픔과 고통을 알 수도 없고, 안다 해도 빼어줄 수가 없다.

오직, 굵은 못에 못박혀 보신, 그리스도 외에는..

나의 상처와 이글거리는 미움의 마음들을, 아물고 잔잔케 할 분은 없다.

하나님께 받은 상처까지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라.

 


아니, 우리의 힘으로는.. 내려놓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은혜가 아니면, '내려놓음'도 위선이다.

'내려놓음'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내려놓음'의 은혜로, 허기를 느껴야 한다.

아니다 싶으면, 빨리 U턴을 하라.

고단하고 체념할 정도의 삶의 무게들을, 주 앞에 내려 놓으라.

심지어는..

인생의 장단도, 건강도, 사역도, 직장도, 미래도, 결혼도, 자녀도, 물질도..

남편도, 아내도, 내려 놓으라.

 

'내려놓음'은, 포기이다. 항복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 앞에..

양도이며, 위탁이며, '육이 죽어 영이 사는 길'이다.

육(겉사람)이 죽지 않고야, 어찌 용서가 되며, 골 깊은 상처가 아물까?

육이 죽어 '영이 사는 길'은, 곧 '영이 살아'.. '육도 사는 길'이다.

포도 알갱이가 부셔지고, 응개져(죽어) 포도주가 되고..

포도주로 거듭난 포도는, 잔치집을 풍성하게 하는 자원으로 쓰임받게 되듯이..!

 


육은, 지질이도 못살고, 죽은 자와 방불하면서..

영만 사는 길은, '균형 잡힌 복음'의 본질은 아니다.

'육이 죽어 영이 삶'으로 육도 잘되고, '풍성하게 되는 삶'이..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이며..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처절하게 피흘려 돌아가신 참된 의미가 아닐까?

이 사실은, 복음의 비밀이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대명교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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