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22. 11:52ㆍ회원자료/1.휴게실
┠────────────────────────────────┨
"사실 삶 자체가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온갖 것들과 관계를 맺는다.
지금 당신이 이 글과 나, 그리고 개념들과 관계를 맺고 있듯이.
그런데 당신이 물건과 음식, 기후, 교통기관, 사람들과 맺는 모든 관계가
당신이 당신 자신과 맺고 있는 관계를 반영한다.
관계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끌어당기는 것은 언제나 우리가 갖고 있는 특성이나
관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비추기 마련이다.
이것은 관계의 상대방이 사장이든 동업자든 종업원이든 친구든 애인이든
배우자든 자식이든 상관없이 다 해당되는 진리다.
이 사람들에 대해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부분은
당신 자신도 하고 있는 일이거나 하고 싶어하는 일,
혹은 그럴 것이라고 믿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당신 자신의 삶을 보완해주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들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
[루이즈 L. 헤이]
낡은 세계의 인간관계는 초점을 밖으로 향한다.
자기 바깥에 있는 무엇을 얻어서 자신을 온전하게 채우고 행복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어쩔 수 없이 낙심, 후회, 실망을 가져다주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이런 감정들을 껴안고 계속 싸워나가거나 아니면
그것들에 억압당하여 정서적 마비상태에 도달한다.
여전히 우리는 감정의 상처들을 주고받으면서,
이 사람한테서 얻지 못한 것을 저 사람한테서 얻고자 상대방을 바꿔나간다.
우리는 적어도 수천 년 동안 이런 상태로 비틀거리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결정적인 위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가족이나 인간관계들이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며 두려움을 느낀다.
어떤 이들은 질서와 안정을 잃지 않기 위하여
오랜 전통과 가치체계를 다시 세우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쓸데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이,
그렇게 살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차원을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물질적 정신적 안정을 위해 자신의 남은 인생 동안
사실상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는 인간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지금은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더 깊은 친밀감과
지속적인 열정을 맛볼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위해
낡은 세계의 인간관계를 기꺼이 떠나 보낼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잘 모르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만 잘 만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부모를 잘 만나거나 자식을 잘 두면 괜찮은 인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자기 바깥에서 그것을 찾는다.
끊임없이 당황하고 낙심하면서, 혼란에 빠진 인간관계를 지속하면서,
낡은 전통에 기대지도 않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지도 못한 상태에 있다.
그래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전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미지의 내일을 향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인간관계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알고 받아들여야 할 단순한 진리이다.
참된 인간관계는 나 자신과 맺는 관계이다.
다른 관계들은 모두가
이 관계를 비추는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 때
나는 저절로 내가 바라는 사랑과 인정을 남들한테서 받는다.
내가 나를 신뢰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나를 신뢰하게 된다.
나 자신의 중심 느낌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쓰는 만큼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 가까운 사이를 유지할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자신과 좋은 관계를 즐기면
누구를 만나든지 그와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다.
내 속에 우주의 생기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면
내가 관계맺은 모든 사람과 다정하고 만족스런 인생행로를
함께 걸을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을 돌보기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살피는 방법에 대하여 제대로 배워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자기를 돌봐줄 누군가를 찾아 인간관계를 시도한다.
젖먹이들은 매우 직관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정서적 아픔이나 결핍을 인지하고,
부모를 기쁘게 하고 욕구를 채워주려고 노력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계속해서 돌보는 것이다.
그 뒤로도 같은 선상에서 인간관계가 진행된다.
자녀와 부모 사이에 다음과 같은 묵계가 이루어진다.
"당신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내게 필요한 것을 준다면,
나도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해주며 당신이 바라는 모습의 사람이 되겠다."
이런 식의 인간관계는 좋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욕구를 한결같이 제대로 채워줄 수는 없는 일이므로
우리는 낙심하고 실망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자신의 빈자리를 메워줄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거나
아예 빈자리를 채워보려는 마음을 포기한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고 시도할 때는 거의 틀림없이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알게 모르게 상대방을 실망시키고 만다.
이때 우리는
남들을 돌봐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돌보려는 시도가
제대로 먹혀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야말로 나를 돌봐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내가 나를 돌보고 남들도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자기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내게는, 내 직관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다.
시간을 들여서 내 모든 느낌들 - 때로 상처받고 겁을 먹기도 하는
내 속의 아이가 갖는 느낌을 포함하여 - 에 귀를 기울이고,
사랑과 적절한 행동으로 응해주는 것이다.
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먼저 채워주고,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제대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으며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슬픈 느낌이 들면 나는 침대에 누워 울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에 충분히 시간을 쓰겠다.
아니면, 응어리진 감정이 모두 풀어져 가벼워질 때까지 누군가에게
계속 말을 할 것이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지쳤으면,
그 일이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 해도 일단 옆으로 밀쳐두고서
밖에 나가 놀거나 온천욕을 하거나 아니면 소설을 읽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주고 싶지 않은 것을 요구할 때는 그에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거절한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리라고 믿는다.
물론 그의 요청에 기꺼이 그러마고 대답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말해둬야 할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나로서는 꽤 오랫동안 혼란스러웠다가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된 사실이다.
당신 자신을 돌보는 것은 '모든 일을 혼자서 하라'는 뜻이 아니다.
당신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은
진공 상태에서 남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신과 완벽한 관계를 지니게 될 때까지
몇 년 동안이고 은자로 숨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람과 완벽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물론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건 중요한 일이고, 자기 자신에게 평안함을 느끼기 위해
외부와의 관계를 잠시 끊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만간에 당신은 당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줄 타인이 필요할 것이다.
이 물질계에서 당신은 타인과의 교제를 통하여 자신과의 관계를 수립하고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다른 점은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
낡은 세계에서는 인간 관계의 초점이
'다른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에 있었다.
남들로 하여금
당신을 이해하도록 하고,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더 많이 얻기 위하여 남들과 인간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인간관계의 초점을 당신 자신과의 관계, 우주와의 관계에 둔다.
당신의 채널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더 많이 주기 위하여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다.
말은 같아 보일지는 모르나 에너지가 다르고, 따라서 결과도 다르다.
예를 들어,
오늘밤 연인에게 다른 계획이 있는 줄 알지만
내가 외로워서 나와 함께 있어주기를 바란다 하자.
전 같았으면 그런 바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혼자 집에 있으며 외로움을 달랠 다른 방법을 생각했을 것이다.
나중에 연인에게 말하면 후회를 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신이나 연인에게 이 사실을 감출 것이다.
결국 나중에 언쟁을 하다가 내 입에서,
"당신은 내 감정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지? 나하고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거야" 하고
불만이 터져 나올 때까지는 그냥 묻어 두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아직은 희망사항이지만)
처음부터 좀더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당신에게 다른 계획이 있는 줄 알아요.
그래도 오늘밤 너무 외로워, 당신이 내 곁에 있어주었으면 해."
나는 내게 필요한 것을 요구할 책임을 행사한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연인한테 무엇을 청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나 자신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열쇠는
초점이 나 자신에게 - 내 느낌과 내가 바라는 것에 - 모아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하려면 자기만 생각한다는 비난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내 느낌과 내가 바라는 바를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나 자신을 제대로 대접할 수 있음을 나는 알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과야 어찌 되든 벌써 나는 충족감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털어놓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상대의 솔직한 반응인데,
그것은 더이상 내 문제가 아니다.
그가 만일 내 요청을 들어준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이요,
만일 거절한다면 나는 슬픔이나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내 속에 감정 찌꺼기를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
내 느낌을 전할 것이고 그 다음은 내버려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을,
나 자신 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서
우주와 깊게 연결되는 시간으로 사용할 것이다.
나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말할 경우,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내가 바라는 것과 정반대의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나 자신을 돌보았기에
개운하고 힘이 나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쉽다.
내가 만일 계속해서
연인이나 가족, 친구들에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살아간다면
더이상 감추어진 욕구와 후회 따위에 짓눌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돌본다면,
돌보지 않았을 때보다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음 단계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 내면으로 들어가서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보라.
그러면 당신 자신과 그리고 우주와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당신 자신과 사랑하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 당신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지 알고 원하는 바를 요구할 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너무나도 결핍된 사람으로 보일까봐서 그렇게 하기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결핍을 느끼게 하는 것은 감추어진, 인식되지 않은 욕구들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입 밖에 내어 표현하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또는 이심전심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 채고서 우리에게 등을 돌린다.
우리가 나타내지 않는 욕구를 채워줄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에게 필요한 것들을 알고 곧장 도움을 요청할 때
실제로 우리 자신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기가 그만큼 쉬워지고, 우리는 더욱더
자신이 충실해지는 것을 느낀다.
에너지를 따르기
내가 내 속에 있는 에너지를 신뢰하고 기꺼이 따르기로 할 때에,
그 에너지가 나를 이끌어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한다.
매력이 많을수록 거울 앞에 자주 서는 법이다.
에너지는 내가 저를 신뢰할수록 더욱 적절한 배움터로 나를 데려간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사는 것에 겁이 날 수 있다.
특히 인간관계를 맺고 성 관계를 맺을 경우에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기란
망설여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에너지가 너무나도 격렬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엄청난 혼돈에 떨어지지 않을까 불안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상처를 입을까봐, 또는 남에게 상처를 입힐까봐 염려한다.
우리는 과연 우주가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하여 알고 있을까 의심하고,
과연 자신이 내면의 안내자를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를 의심한다.
우리가 이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우리 안에 아직도 낡은 세계의 버릇이 많이 남아 있어서
내면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기가 여전히 어려운 것이다.
우리 속에 있는 우주의 에너지를 신뢰하는 데 대한 두려움을 해소할
쉬운 길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이 길을 피해 가든지, 아니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당신의 에너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 많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배우고
두려움을 물리치고 깨끗한 채널을 만들든지,
두 길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엄격한 틀 속에 규제함으로써
이 두려움을 직면하려 하지 않았다.
모든 인간관계를 어떤 카테고리 속에 집어넣고,
모든 카테고리마다 해당된 규범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 사람은 내 친구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해야 한다.
이 사람은 남편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주어야 한다.
이 사람은 가족이다. 그러니까 서로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
개중에는 이런 규범들에 항거하여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인간관계들에 반대되는 관계들
- 여럿을 상대하는 성 관계, 동성관계, 양성관계 등 - 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만일 그 동기가 반발과 거역에 있다면,
이런 관계들은 규범에 반하는 것들에 그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내면의 에너지에 따른 결과라고 불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독특한 존재인 까닭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독특할 수밖에 없다.
어떤 관계도 서로 같을 수 없고 같아야 할 이유도 없다.
나아가 우주 자체가 끊임없이 변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바뀌어왔고 인간관계 또한 바뀌는 게 정상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
어떤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그 생명력을 죽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들을 다시 살려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해야 한다.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관계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기꺼이 해야 한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주파수를 맞추고,
자신을 신뢰하며, 자기를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스스로 독특하고 매력 있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놀라운 모험이다.
그것이 당신을 어디로 이끌어갈지, 당신은 모른다.
그것은 순간마다, 날마다, 해마다, 그 기분과 맛이 바뀐다.
어떨 때는 서로 가까이 다가가게 하고 어떨 때는 멀리 떨어지게 한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면의 에너지가 이끄는 대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그럴수록 더욱 깊은 중심으로 들어가 우주를 신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더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서약과 친밀한 관계
자기 내면의 에너지를
신뢰하고 따르는 것에 대하여 말할 때,
사람들은 그러면 (혼인)서약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언제나 초점을 외부 현상에 두고 살기 때문에
서약도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에 제한하려고 한다.
그래서 서약이라고 하긴 하는데 대개 어떤 규범을 지키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하여 이러 저러한 행동을 하겠다'는 이런 약속들은
거의 제대로 지켜지는 법이 없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려니 할 따름이다.
사람들은 약속된 인간관계를 맺고 살지만,
진짜로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고 또는 하지 않겠다고 서약한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살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혼외정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도 모호한 상태다.
아무도 '성교를 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성적인 욕구를 느끼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여질 경우도 있다.
그런데 과연 당신은 그런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
감정이란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다.
이런 식의 서약이 가지는 진짜 문제는
그것이 불가피한 변화와 관계의 성숙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어떤 규범을 지키기로 서약했을 경우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할 것이냐 그 약속에 충실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당신이 자신에게 정직하고 충실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인간관계 또한 더이상 정직하고 충실할 수 없다.
텅 빈 조개껍데기 - 훌륭하지만 그것을 지킬 사람은 없는 서약 - 만 남을 뿐이다.
이런 식의 서약은
관계의 '틀'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지속되지 않는다.
관계의 틀은 바뀌게 되어 있고 어떤 서약도 그것을 바뀌지 않게 해줄 수 없다.
관계의 틀은 우리가 찾는 안전한 관계를 제공하지 못한다.
결혼한 지 50년이 되었다 해도 51년째 되는 해에 당신의 아내가(혹은 남편이)
당신을 떠나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 우리는 많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혼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결혼생활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모든 결혼이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혼을 함으로써 더이상 낡은 세계의 굴레에 묶여 있지 않게 되었다면,
그들의 결혼생활은 그 자체로서 성공인 것이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고통을 겪는 까닭은,
'속으로 사랑이 흐르게 하면서' 관계의 틀이 바뀌도록 내버려둘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과 깊이 내면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그와의 관계는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그러나 그 관계의 농도는,
관계를 통해서 당신이 배울 바가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만일 어떤 사람을 통해서 배울 것을 충분히 다 배웠다면
그와 더이상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될 만큼 두 사람 사이의 에너지가 약해질 것이다.
그래도 두 영혼 사이의 관계는 견고하게 맺어져 있다.
때로는 다른 차원에서 에너지가 다시 활력을 찾아 두 사람 사이를 이어줄 수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 못하고,
관계의 틀이 바뀔 때 낙심하거나 죄의식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는다.
우리는 속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는 효과적인 방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상대방과의 관계를 잘라버리는 것으로 자기 감정에 대응하곤 한다.
이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고통스럽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잘려진 것은 관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깊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을 때,
관계의 외형적 변화가 상대적으로 덜 고통스러우며 때로는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나는 발견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희생과 양보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희생과 양보란, 우주의 본성을 오해한데서 나온 개념들이다.
우주에 사랑이 충분하지 않아 진실이 상처를 입을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실 우주는 사랑으로 가득하며 진실은,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다면, 언제나 스스로 치유한다.
우리의 한계와 두려움이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내가
자신에게 솔직하고
그때그때 원하는 바를 요구하며
내 느낌을 터놓고 이웃과 나룰 때,
나는 '언제나'
모든 상황의 바닥에 흐르고 있는 진실이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진실임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른 사람이 바라는 것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이 서로 느낌을 솔직하게 말하다보면,
머잖아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함께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나와 상담을 하고 있는 한 부부는
둘이 함께 일을 하면서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두 사람은 꽤 성공적인 사업의 파트너였다.
그런데 아내 쪽에서 그 일에 지쳐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졌다.
반면 남편은 사업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 없이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아내가 바라는 대로) 회사를 팔아넘길 것인지,
(남편이 바라는 대로) 둘이서 사업을 계속할 것인지를 놓고 끊임없이 다투었다.
일단 좀더 깊은 차원에서 자신의 느낌을 상대와 나누게 되자,
그들은 자기네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내는 자신의 창조력을 다른 방식으로 꽃피우고 싶은데 남편의 지원 없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또한 자기가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 못해서
남편에게 실망과 함께 가계 부담을 안겨주게 될까봐 두려웠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의 도움 없이 과연 사업을 계속 꾸려나갈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는 아내의 능력을 믿었고, 자기에게는 직관적인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늘 생각했다.
또한 그는 아내의 따뜻함과 유머가 없으면 자신의 삶이 메마르고 멍청해질 것만 같았다.
자신의 느낌을 서로 털어놓고 나눈 끝에 그들은 새로운 차원의 독립과 창조생활로
둘이 함께 도약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피차 상대방에게 덜 의존하고
각자 자기 자신을 좀더 신뢰하기로 합의했다.
아내는 단계적으로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다.
남편은 남편대로 사업을 계속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렇게 서로 독립하면서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되자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친밀해졌다.
내 경우에
서약의 상대는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보살피고
나 자신에게 순종하기로 서약한 것이다.
관계 속에서 내가 하는 서약은 진실하고 정직하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관계의 틀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진실을 말하고
내 느낌을 정직하게 나누고,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을 성실하게 지고, 그 사람과 맺는 연대감을 존중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서약한다.
진정한 서약은 오히려
관계의 틀이 끊임없이 바뀌며 우리가 그 변화의 과정을
신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허용한다.
사람들이 서로 깊고 정직하게 모든 것을 나눌 때
참되이 이루어지는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다.
두 사람이 함께 이 바탕 위에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그들이 참으로 함께 있기 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뀌고 성숙해가면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가운데
진실한 사랑을 끊임없이 발견할 것이다.
일부일처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
인간관계에 대한 내 생각을 처음 듣고,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매우 급진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대화를 계속하다보면 내 말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내가
'일부일처제'를 반대하여,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를 옹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지지하는 것은 '진실'이다.
나는 자신의 느낌과 반응에 정직하고 자기에게 진실할 것을 주장할 뿐이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한 아내 한 남편으로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한 사람과 깊고 성실한 사랑을 나눈다.
다른 사람들을 욕심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성 관계의 대상을 한 사람으로 제한하는 것을 힘겨워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사람이 어느 정도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이 문제로 갈등을 빚으며 살아간다.
그들은 한 상대방과 깊고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면서
다른 사람한테 이끌리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또 자기 파트너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매료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런가 하면, 현재 상태에 답답함을 느끼고
다른 관계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여러 상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오직 당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 사람을 갈망하는 경우가 있다.
이 모든 느낌들은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것들이요 적어도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정직하게 드러내놓아야 한다.
저마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때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들은 저절로 해소된다.
진짜 문제는 관계의 틀을 유지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실을 신뢰하고 따르는 법을 배울 때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풀려 나간다.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관계된 모든 이들에게 적절한 형태로
인간관계를 창조해 나갈 것이다.
로맨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비춰주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에게서 강한 매력을 느낀다(또는 반대로 거부감이나 증오심을 느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 감정은 격렬하게 마련이다).
만일 상대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에게서 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에너지가 특별히 강렬할 때 우리는 이른바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우주가 당신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상대방은 당신을 위한 채널이 되고
당신 안에 있는 사랑, 아름다움, 열정의 방아쇠를 잡아당기게 하는 촉매가 된다.
당신 자신의 채널이 활짝 열리고 우주의 에너지가 그 안을 힘차게 흐르면,
당신은 오랜 명상 끝에 얻는 경험과 매우 비슷한 '깨달음'의 순간을 맛본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짜릿하고 황홀한 경험이고,
물론 누구나 그것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것이 우리 안에 있는 우주를 경험하고 있는 것임을 모르고,
상대방이 그 경험을 가져다준 줄로 알아
그를 또는 그 여자를 아주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사랑에 빠질 때 상대방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것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와 함께 있을 때에 그런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가 그런 느낌을 주는 줄 알고서,
우리 내면의 힘을 그에게 건네주고 행복의 원천을 자기 바깥에 두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곧장 우리가 소유하거나 붙잡아두고 싶은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관계는 중독으로 바뀌고,
마약처럼 더 많이 더 많이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이 우리 내면의 '에너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게 문제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겉모습에 집착하여 그것을 계속 붙잡고 있으려 한다.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 내면의 에너지는 봉쇄되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채널로 다가온 사람을 너무 꽉 움켜잡아서 실제로는 그를 질식시키고
그리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틀어막는 것이다.
처음에는 순수한 열정이 두 사람을 가까이 하게 했지만,
얼마 못 가서 바닥 모를 허기가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어온다.
그렇게 관계는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시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겁이 잔뜩 나서 더욱더 힘껏 상대를 움켜잡으로 한다.
첫사랑의 달콤한 시절이 너무나도 그리워 그것을 되살려보려고
몇 년씩 노력해보지만 애를 쓸수록 멀어져가기만 한다.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버려두기로 했을 때 비로소 막혔던 에너가 다시 흐르고
우리는 처음에 느꼈던 것들을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낡은 세계에서
사람들이 겪어온 로맨스의 본질이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이런 로맨스를 경험해왔다.
수많은 노래, 연극, 이야기들이 이와 같은 사랑의 아픔과 좌절을 그려 보이고 있다.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는
이 모든 아픔과 좌절을 치유할 수 있는
아름답고 단순한 방법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빛 속에서 살아가는 삶Living in the Light,
그것이 참된 로맨스이다.
연애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우주와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 속에 있는 남성과 여성, 내 몸과 내 영혼이 연애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내 채널을 활짝 열어둘 때 에너지는 힘차게 흐르고,
나는 더욱 격렬한 느낌과 열정을 맛본다.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내게 매력을 느끼고,
내 안에 있는 생명력을 더욱 힘 있게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럴 경우 나는 그들이
나의 참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요 내 속에 있는 에너지를 흐르게 하는
채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내가 그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그들과 함께 내면에 있는 에너지를 경험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나를 통해서 그들에게로, 그들을 통해서 내게로 흐르고 있는 우주의 에너지를 느낀다.
그것은 대화, 애무, 섹스 등 모든 종류의 교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에너지가 내게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이 적절한지를 알려준다.
우주는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골고루 적절히 제공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내면의 에너지가 이끄는 대로 관계를 가지면 서
로 흡족한 교환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낯선 사람과 스쳐 지나듯이 짧게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날 수도 있고,
수년 동안 지속되는 깊고 오랜 경험일 수도 있다.
나는 서로 다른 여러 채널들을 통해서 내게로 다가오는 우주를 거듭 거듭 경험하고 있다.
여기까지 쓴 것은 하나의 이상적인 장면이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러 차례 나는 인간관계 속에서 집착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내가 이상적으로 그린 장면을 좀더 자주 연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연습해보기 Exercise]
<1>
어느 날 하루를 자기 자신과 연애하는 날로 정한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이고 사랑스런 파트너와 데이트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로 하라. 고급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꽃도 사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달빛을 감상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런 다음, 당신이 얼마나 당신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말해주고
사랑하는 당신한테서 듣고 싶은 말을 들으라.
우주가 바로 당신의 애인이고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주고 있다고 상상한다.
<2>
어떤 사람과 사랑을 나눈 뒤에는,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상대가 되어준 사람이 아니라
당신 안에 있는 우주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것이 당신의 삶과 나누는
참된 연애의 한 부분임을
기억하라.
[샥티 거웨인 / Living in the Light]
"여러분이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 서로에 대한 끌림입니다.
그런데 서로에 대한 끌림은 서로에 대한 밀어냄을 동반합니다.
이 두 가지는 따로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이런 '끌림과 밀어냄'의 메커니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올 때 그 느낌을 '사랑'으로 여기는 것은 순진한 가정에 불과합니다.
그 느낌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본다면, 여러분은 자신 안에 어둡고 부정적이며 분노에 차 있는,
자기중심적인 생각들이 떠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입니다.
사랑은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전구 같은 것이 아닙니다.
참사랑은 어느 날 생겼다가 다음날 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감정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마음이라는 거울에서
사랑에 관한 모든 환상을 걷어내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에 대한 온갖 환상이 흩어지고
삶에서 만나 소중한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인식하기 전까지,
여러분은 사랑 아닌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행하는 자신의 행위로부터 환상을 걷어내십시오.
그럼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완벽한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런 변화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감정의 영역 속에 사랑 아닌 것이 있음을 솔직하게 보는 사람만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여러분의 어떤 행동이나 생각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여러분이 자신을 통해, 그리고 자기 주변에 일어나도록 허용한 에너지입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본성은 신성한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허구에 사로잡혀 사랑의 제한된 의미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한 육체가 다른 육체를, 혹은 주변의 몇몇 선택된 육체만을 보살피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여러분이 하는 어떤 행위가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의 상태에 있을 때
여러분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인식하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은,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이 아닌 다른 존재일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여러분의 본질이며 여러분의 존재 자체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근원자가 여러분에게 부어준 본연의 자질입니다. 그 사랑으로부터 모든 존재가 창조됩니다.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때
여러분은 사랑을 행할 수도, 사랑하고자 의도할 수도,
사랑을 요구할 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랑이 발현되기를 소망하며 길을 따라가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이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환상의 너울이 벗겨질 때 여러분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역동적인 힘이 바로 사랑입니다. 이 힘은 신적 근원Divine Source의 신비로운 작용입니다.
어떤 관계, 어떤 우정에서든지
사랑할 때가 있으면 사랑이 식을 때도 있습니다.
이렇듯 왔다가 사라지는 것은 에고에 근거를 둔 감정이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이 근원에서 나온 것인지 단순한 에고의 환상인지 검증해보려면, 그 느낌이나 생각을 마음에 품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느낌이 결코 내게서 떠나지 않을 것인가?"를 물어보십시오.
그런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잠시 피어올랐다가 꺼지고 마는,
지구 차원의 창조 놀이로 아십시오."
[바톨로뮤]
"여러분은 왜
여러분 자신이나 파트너에게 더 이상 봉사하지 않는
관계에 그토록 매달리려 하시나요?
한번 결혼하면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규칙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과거에는 여러분에게 결혼할 하나의 파트너가 주어졌으며,
그리고 일단 결혼하면 그 파트너와 영원히 함께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것은 어떤 경우에 있어선 기쁨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결혼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이해한다면,
그 관계가 끝나는 걸 허락해주세요.
여러분이 놓아버리게 되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모든 것이 되느냐 또는 어떤 것도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자유롭습니다.
더 이상 작용하지도 않는 것을 겉만 그럴듯한 어떤 모양새로 만들어 지속하는 걸 그만두세요.
우리는 어떤 걸 놓아버린다는 것이 처음에는 고통스럽게 다가선다는 걸 이해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의미에서, 과거의 패턴들을, 낡은 에너지의 패턴들을 풀어놓아버리는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파트너를 아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들을 놓아주는 건 진실로 사랑의 가장 깊은 형태의 표현이랍니다.
그들을 놓아주시고, 그리고 여러분 자신도 앞으로 나아가게끔 놓아주세요.
이렇게 할 때 여러분은 놀라게 될 겁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사랑 속에서 그들을 놓아주게 되면
그들은 다시 여러분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까요.
그것도 그들이 새로운 에너지 속에서 그리고 투명한 사랑과 함께 말입니다."
[Message from Tobias]
'회원자료 > 1.휴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공한 사람들은 이 6가지가 다르다 (0) | 2007.11.22 |
---|---|
마음속의 표적을 그려라 (0) | 2007.11.22 |
책을 읽으며 얻어지는 고마움 12가지 (0) | 2007.11.22 |
풍요로운 삶을 위한 7가지 지혜 (0) | 2007.11.22 |
사랑 A to Z (0) | 2007.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