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에큐메니칼을 경계합시다

2007. 10. 20. 18:27참고자료/7.이단·타종교

각교단의 수장들은 이미 자신들의 영이 서로 같은 영임을 인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가 가까이 이르매 배후가 모습을 드러내되
우매한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꼬리물고 절벽을 향하는 쥐들의 행렬과 같이 가던길을 계속 가고 있습니다.

도통한 성철종정이 극락은 고사하고
위대한 사탄?과 지옥을 찬양하는 법어를 내어도
우매한 불교도는 그 길을 계속 좇지요.

천주교의 속이는 영이 속이되 성인이라는 자들의 귀신들림과
그 고뇌들과 추함을 계속 고백하나
천주교인들은 도리어 너무도 인간적이라며 높이고 우매를 계속합니다.

이미 종교기독교영에 붙들린 자들은
천주교의 영이 자신들을 붙들고 있는 영과 같은 영임을 감지하고
천주교의 교회일치운동(에큐메니칼)에 영적 협조가
자신들의 신에 충실하는 것임을 알고 있으며
아직은 드러날까 조심하지만 조만간 더욱 담대히 드러낼것들이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지요.

물론 종교단체 등록교회의 교단과 교회에 몸담고 있는
소위 직분자와 성도라는 자들도 우매하여
어찌하든지 자신들의 속해있는 단체의 세가 커가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일을 자신들의 손을 들어하는 것으로 감사하며
그 일에 더 협조하는 말들을 하며 충성을 행하는 우매를 계속하지요.

후로 결론은 깨어있는 우리가 대비해야 하는데
천주교가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던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령의 사람들을, 이단자와 마녀사냥으로 처형하듯
에큐메니칼이 점점힘을 발휘하면 후로는 교단밖의 성령안에 깨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참 그리스도인들을 도말하는 것이며
어차피 알곡과 쭉정이를 확실히 가르는 추숫날이 다가오는 때에
따가운 햇볓과 바람으로 성령의 사람과 거짓영의 사람을 분별하여야 하지요.

우리의 일은 더욱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하여
참 이치로의 하나님을 알아가며 그안에서 주와 함께 행하되
종교단체교인들중 들을만한 귀가 있는 자들을 구하여
성령의 검으로 무장시키길 힘쓰되
불속에서 구하듯 안타까움과 간절함으로 혼신하여야 할것입니다.

에큐메니칼을 경계합시다/ 믿음안에 새 은혜님의 글이었습니다.

 

PS)

세계교회를 지향함 ( 펌 )


에큐메니칼 운동은, 비록 그 지도자들이 자주 그렇지 않다고 부인해옴에도 불구하고, 한 세계교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분석

교파의 부당성을 강조함

첫째로,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교파의 부당성을 강조한다. 그들은 교파들의 분리의 현실을 부끄러운 사실로 본다. 리처드 니이버는 교파주의를 "인정치 않는 위선"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이러한 반(反)교파주의적 정신이 에큐메니칼 운동에 흐르고 있다. 1982년 리마에서 모인 신앙과 직제 회의는 선언하기를, "우리의 분리들은 주님의 뜻을 거스리고 있다"고 했다(Toward Visible Unity, p. 41).

교회의 유형적 일체성을 강조함

둘째로,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교회의 유형적 일체성을 강조한다. 세계교회협의회의 1948년 암스텔담 창립총회는 "우리의 의도는 함께 머무는 것이다"라고 선언하였고, 1954년 에반스톤 총회는 "우리의 의도는 연합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1961년 뉴델리 총회는 "교회의 유형적 일체는 하나의 완전히 묶여진 교제(one fully committed fellowship)에서 나타난다"라고 선언하였다.

또한 1968년 웁살라 총회는 "보편적 에큐메니칼 협의체적 형태의 일체성"을 언급하였다. 1975년 나이로비 총회는 "참으로 연합된 지교회들의 협의체적 교제"라는 표현을 쓴 후, 그것은 완전한 유기체적 일체성과 동일하며 하나의 분리되지 않은 교회의 일면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첨가하여 말하였다. 1983년 뱅쿠버 총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표는 하나의 거룩한, 공동적, 사도적 교회의 유형적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진술하였다.

하나의 조직체, 즉 하나의 세계교회를 지향함

셋째로,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하나의 조직체, 즉 하나의 세계교회를 지향한다. 1975년 나이로비 총회는 선언하기를, "우리는 하나의 세계적 공동체를 갈망하며 그것을 위해 싸운다"고 했고, 그들이 추구하는 "참으로 연합된 지교회들의 협의체적 교제"는 완전한 유기체적 일체성과 동일하며 하나의 분리되지 않은 교회의 일면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1983년 뱅쿠버 총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표는 하나의 거룩한, 공동적[세계적], 사도적 교회의 유형적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고 진술하였다.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한 세계교회를 꿈꾸지 않는다고 종종 말하곤 하였지만, 위의 진술들이 결국 하나의 세계교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는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1993년 5월 한국장로교협의회(회장: 한영제--예장 통합측 총회장)는 회원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다섯 개 교단의 이름으로 교회 일치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그 선언문은 다섯 개 교단이 궁극적으로 한 장로교단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을 천명했다. 그 선언문은 한국교회의 분열이 신학적 정당성을 갖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우리 한국의 장로교단들은 신앙의 본질적인 항목들에 있어서 결코 분열될 만큼 의견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남은 문제는 우선 협의회를 통하여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지향해야 하고, 결국은 하나의 한국 장로교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5개 장로교단 총회장 공동선언문," 기독교연합신문, 1993년 5월 30일, 3쪽; "'하나된 장로교' 향한 첫걸음," 크리스챤 신문, 1993년 5월 29일, 3쪽.)

연합된 교회의 성격에 관해서는 두가지 견해가 있음

넷째로,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는 연합된 교회의 성격에 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이들은 연합된 교회가 하나의 신학과 정치구조를 가진 한 교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연합된 교회가 각 회원 교회의 신학과 정치구조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한 교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평

교회의 일체성은 교리적이어야 함

첫째로, 우리는 교회의 일체성이 교리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교회의 일체성(一體性, unity)이 영적, 교리적, 유형적임을 가르친다. 교회는 영적으로 이미 하나이며 그 영적 일체성은 결코 파괴될 수 없다. 또한 교회는 가능한 한 유형적으로도 일체성을 표현하고 유지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고전 1장, 엡 4장). 그러나 오늘 시대에 보다 중요한 바는 교회의 일체성이 교리적이라는 점이다. 교회의 교리적 일체성은 영적 일체성의 외적 표현이요, 유형적 일체성의 내적 기초이다.

요한복음 17장(특히 9-11절과 20-21절)과 에베소서 4:3-6은, 교회의 일체성의 대상과 성격에 관하여, 교회의 일체성이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사시고 성령께서 인치신 자들의 일체성이며, 또한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의, 그리고 진리 안에서의 일체성임을 분명히 보인다. 다시 말해,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일체성은 바른 진리와 바른 교리 안에서의 그리고 그 위에서의 일체성인 것이다.

에베소서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는 말은 그들의 교리와 교훈을 가리킨다. 사도적 교리가 없이는 교회도, 교회의 일체성도 생각할 수 없다.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적절히 표현하였다: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인의 일체성은 신자들의 공통적 기독교 신앙 위에 기초했다. 그리스도 안의 일체성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한 불신실함 위에 세워질 수 없다"("True Church Unity: What It Is," in Selected Shorter Writings of Benjamin B. Warfield, p. 302).

자유주의와 천주교회의 오류를 포용하는 교회 연합은 잘못임

둘째로, 우리는 자유주의와 천주교회의 오류를 포용하는 교회 연합이 잘못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물론 조직체적 연합의 개념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건전한 교리와 정치 원리에 입각한 교회 연합을 반대할 자가 누구이랴! 불필요한 분열을 극소화하고 필요한 연합을 극대화하는 연합주의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의 한 세계교회 개념은 기독교계 안의 배교적 구성원들인 자유주의자들과 천주교회를 배제하지 않고 추구하는 연합이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말이다. 교회의 일체성이라는 구호가 이단을 포용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교회의 배교와 혼란의 상황 속에서, 교리적 순결을 무시한 연합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바르게 말하였다: "거짓이 종교의 성채 속으로 침입해 들어오자마자, 요긴한 교리의 요점이 뒤집어지자마자, 교회의 죽음이 초래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 . . 교회가 사도와 선지자의 교리 위에 기초해 있다면 . . . 그 교리가 파괴될 때 교회가 어떻게 계속 존속할 수 있겠는가?"(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IV. ii. 1).

교파적 확신들의 차이를 포괄하는 연합은 바람직하지 못함

셋째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교파적 확신들의 차이를 무시하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초교파적 연합 교회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교회 연합의 과정에서 모든 이단적 요소들을 배제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세계교회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리적, 언어적 간격으로 인한 불편은 놔두고라도, 많은 교회들이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중요한 교리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그리스도의 속죄의 범위, 세례의 대상과 방식, 목사직의 성격,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와 방식, 천년왕국과 휴거의 의미 등에 대해 견해의 심각한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차이들은 진리들에 대한 무지나 오해에서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이러한 교파들간의 차이점들을 고려할 때, 초교파적 한 교회는 하나님의 모든 진리에 대한 충실한 고백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설교자가 어떤 특정 교리에 대한 확신 있는 설교를 할 때 그것이 어떤 교회 회원들의 양심을 억압할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목사 양성을 위한 신학교는 어떤 교리적 신념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교파적 차이점들을 무시하거나 포괄하는 초교파적 한 교회란 진리의 신념과 확신의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한 일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사실, 한 신앙고백이 없는 한 교회란 참으로 하나가 아니다. 마틴 로이드-죤스는 다음과 같이 바르게 말했다: "단순히 하나의 외면적 조직체 때문에 그들이 '하나'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단지 교회 밖에 있는 세상을 오해케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거짓말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D. Martyn Lloyd-Jones, The Basis of Christian Unity, p. 61).

우리는 전제주의적 교회를 두려워함

넷째로, 우리는 무엇보다 전제주의적 교회를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여하튼 하나를 만드는, 인간이 만든 하나의 세계적 조직체는 모든 회원을 그것의 통제 아래 놓는 전제주의적 교회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하나님을 바로 경외치 않고 순종치 않는 사람은 교만해져서 남을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에게 교회의 일체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이다. 우리는 전제주의적 천주교회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피흘려 싸웠던 선진들의 투쟁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누리는 귀한 신앙의 자유라는 종교 개혁의 이 유산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 : 행복 충전소(大名*大明*大命)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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