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성도가 되는 길 (욥 28:12-28)
2007. 9. 23. 09:53ㆍ목양자료/2.설교자료
보배로운 성도가 되는 길 (욥 28:12-28)
이 시간에 [보배로운 성도가 되는 길]이라는 제목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이 세상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요, 둘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며, 셋째는 꼭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즉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흔히 거미와 같은 인생, 개미와 같은 인생, 꿀벌과 같은 인생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혹은 마이너스(minus) 인생, 이콜(equal) 인생, 플러스(plus) 인생이라고도 합니다. 성경은 신령한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고전2:14-3:1), 혹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 나무이나, 풀이나 짚 같은 믿음의 성도로 나눕니다(고전3:12).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두 신령하고 보배로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까 서양의 여왕들이 쓰던 보석으로 장식된 빗과 거울이 약 10억 원이라고 합니다. 거울치고는 아주 비싸지요? 또 2,000개가 넘는 다이아몬드와 10캐럿 다이아몬드로 만든 브로치가,,,놀라지 마세요. 65억 원, 그리고 18k 금과 6,263개의 화이트 다이아몬드와 2,484개의 블랙 다이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축구공, 이것은 과연 얼마일까요? 12억 6천 9백만 달러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1조가 넘는 액수입니다. 아마 가격으로 칠 수 없이 귀중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보다 비할 수 없는 보배가 있어요.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보배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보배롭게 보십니다.
그럼 보배로운 성도가 되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1. 보배로운 성도가 되려면 주를 경외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28절에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그랬습니다. 이 경외함이 얼마나 보배로우면 13절에 사람이 그 값을 알 수가 없고, 15절에 이것은 정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치 못하며, 또 그것이 무엇이기에 16절 이하에서는 온갖 보석과 어떤 귀한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했을까요? 그리고 주를 경외함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면 지혜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은혜가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34:10에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시84:11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잘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참으로 귀한 보배가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경외한 욥이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귀하고, 아브라함이 귀하고, 다니엘이 귀하고, 요셉이 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리아가 귀하고, 바울이 귀하고, 베드로가 귀하고, 요한이 귀합니다. 만약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빼버리면 귀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지금 궁창의 태양과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하나님을 만난 사람과 만나지 못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보다도 더 한 것입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날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했습니다. 경건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내셔서 복음 들려주시고 성령으로 만나주셨습니다. 학자들의 추측에 의하면 로마복음화의 주인공이 고넬료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적인 복음을 로마에 전할 사람은 아 사람 말고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니엘도 하나님 앞에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앞에 사자굴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 메대 파사의 가장 높은 곳에 두시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73:28에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했습니다. 우리도 그 믿음을 본받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가장 위대한 지혜인 이유는 경외함을 통하여 지혜이신 하나님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오랜 역사 동안 지혜를 찾아 헤맸습니다. 고전1:22에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으나” 그랬듯 그들은 지혜와 지식은 추구했으나 지금까지도 철학은 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혜를 얻으려면 속히 철학을 떠나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세의 위대한 설교자 탄셀름은 하루 종일 하나님께 자신에게 뭔가 성경 진리를 가르쳐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잠 들지 않고 기다리다 새벽 한 시쯤 되어서 예배당의 횃불 옆에 웅크리고 있는 거지에게 무심코 말을 던졌습니다. "잘 지내는가, 친구?" "저는 항상 잘 지냅니다." "그래, 자네를 지옥에 던져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자 거지는 서슴없이 "하나님이 없는 하늘나라보다는 그분이 계신 지옥에 있는 편이 더 행복할 겁니다." 탄셀름은 너무나 스스럼없이 대답하는 거지에게 다가가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거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왕입니다.", 탄셀름은 기가 막히다는 식으로 "그래 자네의 왕국은 어디 있는가?" 물었습니다. 거지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면서 말했습니다. "여기에 있습니다." 탄셀름이 놀라서 묻습니다. "자네는 그것을 언제 찾았는가?" 그러자 "내가 지혜를 찾아 사람들에게 가는 것을 포기하고 곧장 하나님께로 갔을 때입니다."라고 거지는 대답했습니다. 탄셀름은 비로소 거지를 통해서 기도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지혜를 얻으려면 속히 철학을 떠나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골2:8).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누군가 물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잃어야 다 잃은 것입니다. 혹시 건강 잃었어도 하나님을 잃지 않았으면 그 사람은 조금밖에는 잃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지 않았으면 소생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복구하는 줄기세포가 특수한 환경이 되면 다시 활동하여 뇌세포를 복원하고 심장을 복원하고 신장을 복원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 때가 바로 신유의 역사가 나타날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며 가장 보배로운 은혜와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보배로운 성도가 되려면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다시 28절에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했습니다. 여기 ‘명철’이란 영어 단어를 보시면 'understanding'입니다. 이 단어는 "이해하는 것", "깨닫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이해하고 깨달아야 할까요? 죄가 얼마나 악한 것이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알아야 하지만 악도 알아야 합니다. 악의 정체를 깨달아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죄 추한 줄 모릅니다. 그래서 죄 밭에 가서 뒹굽니다. 아주 죄를 먹고 마시며 친구하면서 놉니다. 죄가 얼마나 두려운지 그것을 모른다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그의 인생의 앞길을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이를 막습니다. 사람과의 사이도 막습니다. 자기 앞길도 막습니다. 모든 복과의 사이도 막습니다. 평강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은혜가 없습니다. 축복이 없습니다. 3-4대까지 자자손손 저주가 물려갑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은 죄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뇌성 치는 날 쇠붙이 들고 다니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제 서울 근교 북한산과 수락산에서 발생한 낙뢰 사망사고로 등산객들이 5명이 사망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소지한 '등산 스틱' 같은 금속제 등산도구에 벼락이 치면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처럼 죄를 붙들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명철한 사람은 죄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명철하려면 보혈을 믿어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회개하여 죄를 버려야 합니다. 날마다 오염된 마음의 죄악의 때를 씻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현명한 사람입니까? 그래서 잠28:13에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죄 떠날 때 온갖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악을 떠날 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영원한 평화와 형통도 찾아옵니다. 성공하는 인생이 됩니다.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악을 붙듭니다. 죄에 살아요. 이것은 자기 영혼을 죽이는 것이고 자기 인생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왕의 원수와 친합니다. 그러면 함께 멸망합니다. 그래서 잠24:21-22에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이 두 자의 멸망을 누가 알랴” 하나님의 원수가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죄 가까이하면 멸망한다는 교훈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 명철한 자입니다. 저도 이 사실을 깨닫고 죄 두려워서 즉 하나님 두려워서 죄를 짓지 못합니다. 그런데 미련하면 죄를 취합니다. 잠언을 보면 자식에게 이 깨달음이 없다면 매로 치라고 했어요. 잠22:15에 “아이의 마음에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했습니다. 잠23:14에는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했어요. 매를 때려서라도 불신앙과 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손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
194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s)’이라는 국제적십자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조약은 전쟁 포로의 대우에 관한 조약입니다. 이 조약에 따르면 “전투 중 백기를 들고 항복한 전투원은 포로로서 대우하여 아무리 적군이라고 할지라도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하며 음식을 제공하고 부상자는 치료를 해줘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 세계에서도 그러는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회개한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용서하시고 복되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회개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르게 됩니다. 사람들이 세상일에는 명철하지만 신령한 일에는 어찌 그리 어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행실의 세마포를 깨끗이 빨고 희게 한 자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영광을 누립니다. 하늘의 새 예루살렘의 복이 그의 것입니다. 이곳은 예수 믿어야 들어가지만 세마포를 깨끗이 씻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22:14-15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했습니다. 아직도 믿는다면서도 개와 같이 추한 가운데 뒹굴고 세상 사람과 같은 마음이라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히12:14-16에 "모든 사람?막?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경고합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십니까? 진실로 악을 버리면 영계도 활짝 열립니다. 하나님 나라가 충만하게 임합니다. 은사를 체험해도 말씀 안에서 회개하여 변화 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신비로만 나가다 보면 거기에는 곁길이 있어서 나도 모르는 순간에 사탄에게 붙잡혀 크게 잘못 됩니다. 이 이야기는 천로역정에도 나오는데 이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 의로운 길, 진리의 길, 회개의 길로 가야 합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신령한 영계가 활짝 열립니다. 그 길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복 되며 더욱 풍성한 생명과 능력 안에 거하는 길입니다. 시편 1편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장 복 있는 자라고 불러주고 있습니다. 죄만 버리면 복이 옵니다. 이렇게 악을 버릴 때 가장 보배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처럼 가장 귀한 지혜와 명철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악을 떠나는 것보다 더 귀한 보배는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를 가까이 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고 악을 떠나 이 땅에서나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사랑 받고 보배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 [보배로운 성도가 되는 길]이라는 제목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이 세상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요, 둘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며, 셋째는 꼭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즉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흔히 거미와 같은 인생, 개미와 같은 인생, 꿀벌과 같은 인생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혹은 마이너스(minus) 인생, 이콜(equal) 인생, 플러스(plus) 인생이라고도 합니다. 성경은 신령한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고전2:14-3:1), 혹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 나무이나, 풀이나 짚 같은 믿음의 성도로 나눕니다(고전3:12).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두 신령하고 보배로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까 서양의 여왕들이 쓰던 보석으로 장식된 빗과 거울이 약 10억 원이라고 합니다. 거울치고는 아주 비싸지요? 또 2,000개가 넘는 다이아몬드와 10캐럿 다이아몬드로 만든 브로치가,,,놀라지 마세요. 65억 원, 그리고 18k 금과 6,263개의 화이트 다이아몬드와 2,484개의 블랙 다이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축구공, 이것은 과연 얼마일까요? 12억 6천 9백만 달러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1조가 넘는 액수입니다. 아마 가격으로 칠 수 없이 귀중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보다 비할 수 없는 보배가 있어요.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보배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보배롭게 보십니다.
그럼 보배로운 성도가 되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1. 보배로운 성도가 되려면 주를 경외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28절에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그랬습니다. 이 경외함이 얼마나 보배로우면 13절에 사람이 그 값을 알 수가 없고, 15절에 이것은 정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치 못하며, 또 그것이 무엇이기에 16절 이하에서는 온갖 보석과 어떤 귀한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했을까요? 그리고 주를 경외함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면 지혜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은혜가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34:10에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시84:11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잘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참으로 귀한 보배가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경외한 욥이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귀하고, 아브라함이 귀하고, 다니엘이 귀하고, 요셉이 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리아가 귀하고, 바울이 귀하고, 베드로가 귀하고, 요한이 귀합니다. 만약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빼버리면 귀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지금 궁창의 태양과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하나님을 만난 사람과 만나지 못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보다도 더 한 것입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날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했습니다. 경건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내셔서 복음 들려주시고 성령으로 만나주셨습니다. 학자들의 추측에 의하면 로마복음화의 주인공이 고넬료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적인 복음을 로마에 전할 사람은 아 사람 말고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니엘도 하나님 앞에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앞에 사자굴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 메대 파사의 가장 높은 곳에 두시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73:28에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했습니다. 우리도 그 믿음을 본받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가장 위대한 지혜인 이유는 경외함을 통하여 지혜이신 하나님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오랜 역사 동안 지혜를 찾아 헤맸습니다. 고전1:22에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으나” 그랬듯 그들은 지혜와 지식은 추구했으나 지금까지도 철학은 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혜를 얻으려면 속히 철학을 떠나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세의 위대한 설교자 탄셀름은 하루 종일 하나님께 자신에게 뭔가 성경 진리를 가르쳐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잠 들지 않고 기다리다 새벽 한 시쯤 되어서 예배당의 횃불 옆에 웅크리고 있는 거지에게 무심코 말을 던졌습니다. "잘 지내는가, 친구?" "저는 항상 잘 지냅니다." "그래, 자네를 지옥에 던져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자 거지는 서슴없이 "하나님이 없는 하늘나라보다는 그분이 계신 지옥에 있는 편이 더 행복할 겁니다." 탄셀름은 너무나 스스럼없이 대답하는 거지에게 다가가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거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왕입니다.", 탄셀름은 기가 막히다는 식으로 "그래 자네의 왕국은 어디 있는가?" 물었습니다. 거지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면서 말했습니다. "여기에 있습니다." 탄셀름이 놀라서 묻습니다. "자네는 그것을 언제 찾았는가?" 그러자 "내가 지혜를 찾아 사람들에게 가는 것을 포기하고 곧장 하나님께로 갔을 때입니다."라고 거지는 대답했습니다. 탄셀름은 비로소 거지를 통해서 기도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지혜를 얻으려면 속히 철학을 떠나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골2:8).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누군가 물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잃어야 다 잃은 것입니다. 혹시 건강 잃었어도 하나님을 잃지 않았으면 그 사람은 조금밖에는 잃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지 않았으면 소생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복구하는 줄기세포가 특수한 환경이 되면 다시 활동하여 뇌세포를 복원하고 심장을 복원하고 신장을 복원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 때가 바로 신유의 역사가 나타날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며 가장 보배로운 은혜와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보배로운 성도가 되려면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다시 28절에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했습니다. 여기 ‘명철’이란 영어 단어를 보시면 'understanding'입니다. 이 단어는 "이해하는 것", "깨닫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이해하고 깨달아야 할까요? 죄가 얼마나 악한 것이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알아야 하지만 악도 알아야 합니다. 악의 정체를 깨달아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죄 추한 줄 모릅니다. 그래서 죄 밭에 가서 뒹굽니다. 아주 죄를 먹고 마시며 친구하면서 놉니다. 죄가 얼마나 두려운지 그것을 모른다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그의 인생의 앞길을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이를 막습니다. 사람과의 사이도 막습니다. 자기 앞길도 막습니다. 모든 복과의 사이도 막습니다. 평강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은혜가 없습니다. 축복이 없습니다. 3-4대까지 자자손손 저주가 물려갑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은 죄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뇌성 치는 날 쇠붙이 들고 다니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제 서울 근교 북한산과 수락산에서 발생한 낙뢰 사망사고로 등산객들이 5명이 사망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소지한 '등산 스틱' 같은 금속제 등산도구에 벼락이 치면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처럼 죄를 붙들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명철한 사람은 죄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명철하려면 보혈을 믿어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회개하여 죄를 버려야 합니다. 날마다 오염된 마음의 죄악의 때를 씻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현명한 사람입니까? 그래서 잠28:13에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죄 떠날 때 온갖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악을 떠날 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영원한 평화와 형통도 찾아옵니다. 성공하는 인생이 됩니다.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악을 붙듭니다. 죄에 살아요. 이것은 자기 영혼을 죽이는 것이고 자기 인생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왕의 원수와 친합니다. 그러면 함께 멸망합니다. 그래서 잠24:21-22에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이 두 자의 멸망을 누가 알랴” 하나님의 원수가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죄 가까이하면 멸망한다는 교훈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 명철한 자입니다. 저도 이 사실을 깨닫고 죄 두려워서 즉 하나님 두려워서 죄를 짓지 못합니다. 그런데 미련하면 죄를 취합니다. 잠언을 보면 자식에게 이 깨달음이 없다면 매로 치라고 했어요. 잠22:15에 “아이의 마음에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했습니다. 잠23:14에는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했어요. 매를 때려서라도 불신앙과 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손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
194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s)’이라는 국제적십자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조약은 전쟁 포로의 대우에 관한 조약입니다. 이 조약에 따르면 “전투 중 백기를 들고 항복한 전투원은 포로로서 대우하여 아무리 적군이라고 할지라도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하며 음식을 제공하고 부상자는 치료를 해줘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 세계에서도 그러는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회개한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용서하시고 복되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회개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르게 됩니다. 사람들이 세상일에는 명철하지만 신령한 일에는 어찌 그리 어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행실의 세마포를 깨끗이 빨고 희게 한 자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영광을 누립니다. 하늘의 새 예루살렘의 복이 그의 것입니다. 이곳은 예수 믿어야 들어가지만 세마포를 깨끗이 씻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22:14-15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했습니다. 아직도 믿는다면서도 개와 같이 추한 가운데 뒹굴고 세상 사람과 같은 마음이라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히12:14-16에 "모든 사람?막?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경고합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십니까? 진실로 악을 버리면 영계도 활짝 열립니다. 하나님 나라가 충만하게 임합니다. 은사를 체험해도 말씀 안에서 회개하여 변화 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신비로만 나가다 보면 거기에는 곁길이 있어서 나도 모르는 순간에 사탄에게 붙잡혀 크게 잘못 됩니다. 이 이야기는 천로역정에도 나오는데 이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 의로운 길, 진리의 길, 회개의 길로 가야 합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신령한 영계가 활짝 열립니다. 그 길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복 되며 더욱 풍성한 생명과 능력 안에 거하는 길입니다. 시편 1편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장 복 있는 자라고 불러주고 있습니다. 죄만 버리면 복이 옵니다. 이렇게 악을 버릴 때 가장 보배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처럼 가장 귀한 지혜와 명철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악을 떠나는 것보다 더 귀한 보배는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를 가까이 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고 악을 떠나 이 땅에서나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사랑 받고 보배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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