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육체에 부어주시는 성령 (행 2:17-21)
2007. 9. 23. 09:27ㆍ목양자료/2.설교자료
육체에 부어주시는 성령 (행 2:17-21)
이 시간에 [육체에 부어주시는 성령]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 중에 아주 두려운 말씀이 있습니다. 마18:6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하신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남을 실족시키는 것도 큰 죄지만 나 자신을 실족케 하는 것 역시 큰 죄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구성요소가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어서 어느 한 가지만 잘못 되어도 그 인격은 중대한 결함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듭난 영혼일지라도 그 육체는 무지와 연약함에 싸여 있고 추구하는 욕망이 세상적인 것이 다분해서 알고도 범죄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가진 우리로서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도우시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선물이 바로 성령의 은사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셔서 영적으로 어두워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귀에 들리게 말씀하시고 눈에 보이게 나타나시고 체험이 가능하도록 말씀과 사랑과 기사와 이적으로 역사해주심과도 같은 은혜입니다. 지금 주님은 떠나가셨지만 주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보혜사 성령으로 이 일을 계속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실족치 않고 영육 간에 도움 받고 성공적인 사역을 위해서 무엇보다 육체에 부어주시는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그럼 육체에 성령은 왜 부어주시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것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죄악 세상에서 성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그랬습니다. 여기 말세란 보통 세상 끝 날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주님이 오신 그 때부터를 말세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부터 세상은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 점점 우리 마음에서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의 뜻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세상에서 구원하여 마음에 세상을 처리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충만한 사람들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말세에 위로부터 강한 성령의 은사를 육체에 부어주셔서 회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명 부흥의 역사라고 합니다. 부흥의 역사란 강력한 성령의 은사가 죄인들에게 부어짐으로 가슴 치며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 성령의 부어지심을 통해서 철저히 세상과 죄를 몰아내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무지와 완악과 연약함에 싸인 육체를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7절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그랬습니다. 이렇게 육체에 부어주시는 것은 사람들이 육체의 무지와 완악함에 싸여서 하나님께 순복치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시고 복음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체험을 통해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며 성도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지도해 주시는 은혜를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은사인 것입니다. 마치 육체를 입고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받게 하셔서 구원 받고 큰 일군이 되게 하신 것처럼 성령께서 그 일을 지금 성도들의 체험 가운데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육체에 성령을 주시는 것은 육체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우리 육체 얼마나 연약합니까? 그래서 성령께서는 육체에 임하셔서 질고를 다스려 주시고 병마를 몰아내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에 병 고침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잘 해보세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평안과 육체의 건강을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실족할까봐 배려해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인 것입니다.
3. 각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17절에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예언과 환상과 꿈이란 양상만 다를 뿐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 속에 이미 꿈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둔한 인생은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언의 은사를 통해서 우리의 앞날을 예언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내 꿈을 내가 꾸기도 하고 혹은 꿈은 내가 꾸지만 이루기는 다른 사람이 이루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꿈만 꾸었습니다. 그러나 이루기는 우리 시대에 이루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 주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귀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로 충만해야 하나님의 뜻하신 길로 인도 받을 수 있고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방황하지 말고 성령의 은사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믿을만한 예언은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별 없이 귀히 사용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8절에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했습니다. 여기 남종과 여종이 나오는데 이 말씀은 자유자든 종이든 혹은 남종이든 여종이든 동일하게 부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일반적인 원칙은 남녀를 구별합니다. 딤전2:11에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는 것이 바울의 교훈입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서 보여준 대로 여성은 지도자로서 결함을 남자보다 비교적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말씀에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말씀합니다.
딤전2:15에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성령과 말씀 안에서 거룩하게 화하면 여성에게도 지도자로서 사회적 기회를 열어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헌법이나 제도상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머리에 수건을 쓰고라도 성령의 은사로 충만하여 귀한 사역에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사는 빈부귀천 남녀노소 구별하지 않고 임해서 귀한 사역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은사는 대개 여성들이 더 충만한 것을 봅니다.
5.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19절에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했습니다. 은사가 임하면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피와 불과 연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전쟁이 극렬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현상은 엄청난 화력이 집중 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럼 이 전쟁은 어떤 전쟁일까요? 성령이 임하는 전쟁이니 영적 전쟁입니다. 구약의 전쟁사는 대부분 신약에서 복음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승리를 위해서 막강한 능력으로 은사를 부어 주셔서 개인의 승리는 물론 복음전파에 큰 승리를 가져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하면서 은사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라면 그것은 무기 없이 전쟁에 임하려는 대단히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막16:17-18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셨고, 막16:20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6. 두렵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20절에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했는데 이 주의 날은 초림이나 재림 혹은 성령강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영화로운 날이 무서운 날로 나와 있습니다. 정말 그 날이 우리에게 두려운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이 부어지면 하나님을 두렵고 경건함으로 섬기게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은사 받았다고 함부로 행하는 것은 은사의 본질을 모른 처사입니다. 성령께서는 은사로서 성도의 우둔한 눈을 열어 거룩한 것을 보게 하시고 두려운 것을 보게 하시고 조심할 것을 보게 하시고 협력할 것을 보게 하십니다. 초대 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도 교회를 혼란시키는 죄가 얼마나 두려운 줄 알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는 두렵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7. 그래서 결국은 나와 모든 자로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에 은사의 최종적인 목적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입니다. 요20:30-31에도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것이 은사의 최종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능력과 은사를 주셔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은사를 부정하지 말고 간절히 사모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자에게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2000년 전 우리 주님이 육체로 나타나셨듯 주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성령으로 우리의 육체에 임하셔서 돕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무지하고 연약하고 완악한 육체로 실족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은사로 충만하여 더욱 바른 믿음, 더욱 바른 사역, 더욱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 [육체에 부어주시는 성령]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 중에 아주 두려운 말씀이 있습니다. 마18:6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하신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남을 실족시키는 것도 큰 죄지만 나 자신을 실족케 하는 것 역시 큰 죄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구성요소가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어서 어느 한 가지만 잘못 되어도 그 인격은 중대한 결함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듭난 영혼일지라도 그 육체는 무지와 연약함에 싸여 있고 추구하는 욕망이 세상적인 것이 다분해서 알고도 범죄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가진 우리로서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도우시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선물이 바로 성령의 은사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셔서 영적으로 어두워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귀에 들리게 말씀하시고 눈에 보이게 나타나시고 체험이 가능하도록 말씀과 사랑과 기사와 이적으로 역사해주심과도 같은 은혜입니다. 지금 주님은 떠나가셨지만 주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보혜사 성령으로 이 일을 계속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실족치 않고 영육 간에 도움 받고 성공적인 사역을 위해서 무엇보다 육체에 부어주시는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그럼 육체에 성령은 왜 부어주시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것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죄악 세상에서 성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그랬습니다. 여기 말세란 보통 세상 끝 날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주님이 오신 그 때부터를 말세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부터 세상은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 점점 우리 마음에서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의 뜻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세상에서 구원하여 마음에 세상을 처리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충만한 사람들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말세에 위로부터 강한 성령의 은사를 육체에 부어주셔서 회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명 부흥의 역사라고 합니다. 부흥의 역사란 강력한 성령의 은사가 죄인들에게 부어짐으로 가슴 치며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 성령의 부어지심을 통해서 철저히 세상과 죄를 몰아내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무지와 완악과 연약함에 싸인 육체를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7절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그랬습니다. 이렇게 육체에 부어주시는 것은 사람들이 육체의 무지와 완악함에 싸여서 하나님께 순복치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시고 복음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체험을 통해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며 성도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지도해 주시는 은혜를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은사인 것입니다. 마치 육체를 입고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받게 하셔서 구원 받고 큰 일군이 되게 하신 것처럼 성령께서 그 일을 지금 성도들의 체험 가운데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육체에 성령을 주시는 것은 육체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우리 육체 얼마나 연약합니까? 그래서 성령께서는 육체에 임하셔서 질고를 다스려 주시고 병마를 몰아내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에 병 고침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잘 해보세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평안과 육체의 건강을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실족할까봐 배려해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인 것입니다.
3. 각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17절에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예언과 환상과 꿈이란 양상만 다를 뿐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 속에 이미 꿈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둔한 인생은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언의 은사를 통해서 우리의 앞날을 예언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내 꿈을 내가 꾸기도 하고 혹은 꿈은 내가 꾸지만 이루기는 다른 사람이 이루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꿈만 꾸었습니다. 그러나 이루기는 우리 시대에 이루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 주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귀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로 충만해야 하나님의 뜻하신 길로 인도 받을 수 있고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방황하지 말고 성령의 은사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믿을만한 예언은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별 없이 귀히 사용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8절에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했습니다. 여기 남종과 여종이 나오는데 이 말씀은 자유자든 종이든 혹은 남종이든 여종이든 동일하게 부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일반적인 원칙은 남녀를 구별합니다. 딤전2:11에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는 것이 바울의 교훈입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서 보여준 대로 여성은 지도자로서 결함을 남자보다 비교적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말씀에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말씀합니다.
딤전2:15에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성령과 말씀 안에서 거룩하게 화하면 여성에게도 지도자로서 사회적 기회를 열어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헌법이나 제도상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머리에 수건을 쓰고라도 성령의 은사로 충만하여 귀한 사역에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사는 빈부귀천 남녀노소 구별하지 않고 임해서 귀한 사역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은사는 대개 여성들이 더 충만한 것을 봅니다.
5.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19절에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했습니다. 은사가 임하면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피와 불과 연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전쟁이 극렬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현상은 엄청난 화력이 집중 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럼 이 전쟁은 어떤 전쟁일까요? 성령이 임하는 전쟁이니 영적 전쟁입니다. 구약의 전쟁사는 대부분 신약에서 복음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승리를 위해서 막강한 능력으로 은사를 부어 주셔서 개인의 승리는 물론 복음전파에 큰 승리를 가져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하면서 은사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라면 그것은 무기 없이 전쟁에 임하려는 대단히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막16:17-18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셨고, 막16:20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6. 두렵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20절에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했는데 이 주의 날은 초림이나 재림 혹은 성령강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영화로운 날이 무서운 날로 나와 있습니다. 정말 그 날이 우리에게 두려운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이 부어지면 하나님을 두렵고 경건함으로 섬기게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은사 받았다고 함부로 행하는 것은 은사의 본질을 모른 처사입니다. 성령께서는 은사로서 성도의 우둔한 눈을 열어 거룩한 것을 보게 하시고 두려운 것을 보게 하시고 조심할 것을 보게 하시고 협력할 것을 보게 하십니다. 초대 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도 교회를 혼란시키는 죄가 얼마나 두려운 줄 알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는 두렵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7. 그래서 결국은 나와 모든 자로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에 은사의 최종적인 목적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입니다. 요20:30-31에도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것이 은사의 최종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능력과 은사를 주셔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은사를 부정하지 말고 간절히 사모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자에게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2000년 전 우리 주님이 육체로 나타나셨듯 주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성령으로 우리의 육체에 임하셔서 돕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무지하고 연약하고 완악한 육체로 실족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은사로 충만하여 더욱 바른 믿음, 더욱 바른 사역, 더욱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인터넷로고스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 Old Testament |
'목양자료 > 2.설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례식 설교 (0) | 2007.09.23 |
---|---|
보배로운 성도가 되는 길 (욥 28:12-28) (0) | 2007.09.23 |
명절의 만남 중요한 것은... -추석설교 (0) | 2007.09.23 |
추석명절 설교 (여러편 모음) (0) | 2007.09.23 |
추석설교-전천후 감사생활을 하라. (0) | 2007.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