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통변의 은사
2007. 9. 20. 18:32ㆍ운영자자료/1.운영자 자료실 1
방언 통변의 은사
고전12:10에 통역이란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hemeneia'이다.
학자들은 그 말은 '번역하다'라고 하기 보다는 '말한 것을 설명하다'라는
의미라고 봄이 마땅하다.
이 은사는 성령을 통한 초자연적인 계시로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미 '방언'으로 말하여진 내용을, 그에 대한 역동적인 동의어를 사용하여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가 가능한 언어로 전달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 은사는 외국어를 통역하듯 분명한 말씀으로 통변되는 것이 아니다.
방언의 통변은 직관적으로 주어지는 느낌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한마디의 방언이 열 마디의 통변으로 주어질 경우도 있고,
열 마디의 방언이 한마디의 통변으로 주어질 경우도 있다.
1) 통역은 통역자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통해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2) 통역은 방언을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주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3) 통역이 없다면 '방언'으로 교인들을 교화할 길은 막히고 말 것이다.(고전14:19)
4) 통역자가 사용하는 말은 단순한 직역이 아니라 역동적인 동의어다.
방언 통변은사의 목적
통역의 은사는 방언의 은사가 말이나 노래를 통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타났을 때
회중들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치유사역에서는 심령의 비밀을 밝혀 냄으로 감추인 질병의 원인을 해소하는데
활용된다.
성령에 깊이 사로 잡혀 방언 기도하게 되면 자신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
와 성령께서 책망하시거나 권면하시거나 안위하시는 방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기도의 깊은 경지에 도달하면 통변으로 연결되어 성령과의 영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더 나아가 예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방언 통변은사의 사용
1) 통역을 하기 위해서는 '방언'을 말하는 것에 비하여 더욱 큰 믿음이 필요하다.
방언은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보퉁이나, 통역은 전체 회중들의 교화
를 위하여 공개적으로 행하여지며, 그것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일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2)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또한 '통역하기를 '기도 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그 사람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어야 한다.
3) 통역의 은사를 구하여 기도함으로써 그 은사를 받는 체험,
그리고 입을 열어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어떤 다른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과 똑같은 맡씀을 전하는 것을 듣는 체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확신을 불러 일으켜 준다.
우리는 그러한 체험을 통해 성령의 임재와 그 역사하심을 놀랍게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4) 때로는 어떤 사람에게는 통역의 처음 부분이 주어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에 이어지는 부분 또는 끝 부분의 말씀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주의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서로 통역에 있어 다른 사람들을 '압도' 하려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통역을 하는 것이 좋다
(고전14:27).
5) 통역을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길이, 단어,
모든 것이 다를 수도 있다.
6) 통역을 하는 사람은 일어서서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7) 또한 '큰 소리로 분명하게' 발음해야 한다.
8) 긴장함으로 인해 처음에는 통역이 다소 '불분명'할 수도 있다.
조언(참고)
1) 방언을 말하는 일이 적절히 행하여질 경우, 지도자는 통역을 위한 시안을
반드시 마련하여야 한다.
2) 각각의 방언에 대하여 오직 한 사람만이 통역을 하도록 한다(고전14:27).
3) 통역을 하는 사람들이 경쟁을 해서는 안된다.
4) 방언 통역이 자기가 받은 것보다 적절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잠잠히 있는
것이 좋다.
5) 통역이 끝이 났는데 같은 맥락에서 추가적인 계시를 받는 경우
2차적인 통역은 보충할 수 있으나 1차적인 통역과 상충되어서는 안 된다.
6) 어떤 통역과 상충되는 내용을 전하라는 진정한 명령이 있을 경우
그것은 '영분별의 은사'를 통해 오게 된다. 이때 그것을 통역의 형태로
행하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은사의 가치를 격하시킴과 동시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7) 어떤 방언이 그릇된 것이거나 공개적인 자리에 은혜되지 않을 경우
그것을 통역한다면 단지 혼란을 더할 뿐이라고 판단될 경우, 지도자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중지시켜야 한다.
8) 그와 비슷한 경우로서, 통역이 그릇된 것이어서 영 분별의 은사를
사용할 때도 있다. 통역이 분위기와 사람들의 마음을 냉담하게 만들거나
불안하게 하면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
9) 대 집회에서는 외부로부터 온 사람들보다는 지도자가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통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10) '기름 부으심'을 충만히 받았다고 해도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날 수는 없다. 또한 어떤 집회에서도 세 사람 이하의 사람에게만
'방언' 및 통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성경적이다(고전14:27)
고전12:10에 통역이란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hemeneia'이다.
학자들은 그 말은 '번역하다'라고 하기 보다는 '말한 것을 설명하다'라는
의미라고 봄이 마땅하다.
이 은사는 성령을 통한 초자연적인 계시로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미 '방언'으로 말하여진 내용을, 그에 대한 역동적인 동의어를 사용하여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가 가능한 언어로 전달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 은사는 외국어를 통역하듯 분명한 말씀으로 통변되는 것이 아니다.
방언의 통변은 직관적으로 주어지는 느낌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한마디의 방언이 열 마디의 통변으로 주어질 경우도 있고,
열 마디의 방언이 한마디의 통변으로 주어질 경우도 있다.
1) 통역은 통역자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통해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2) 통역은 방언을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주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3) 통역이 없다면 '방언'으로 교인들을 교화할 길은 막히고 말 것이다.(고전14:19)
4) 통역자가 사용하는 말은 단순한 직역이 아니라 역동적인 동의어다.
방언 통변은사의 목적
통역의 은사는 방언의 은사가 말이나 노래를 통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타났을 때
회중들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치유사역에서는 심령의 비밀을 밝혀 냄으로 감추인 질병의 원인을 해소하는데
활용된다.
성령에 깊이 사로 잡혀 방언 기도하게 되면 자신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
와 성령께서 책망하시거나 권면하시거나 안위하시는 방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기도의 깊은 경지에 도달하면 통변으로 연결되어 성령과의 영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더 나아가 예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방언 통변은사의 사용
1) 통역을 하기 위해서는 '방언'을 말하는 것에 비하여 더욱 큰 믿음이 필요하다.
방언은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보퉁이나, 통역은 전체 회중들의 교화
를 위하여 공개적으로 행하여지며, 그것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일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2)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또한 '통역하기를 '기도 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그 사람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어야 한다.
3) 통역의 은사를 구하여 기도함으로써 그 은사를 받는 체험,
그리고 입을 열어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어떤 다른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과 똑같은 맡씀을 전하는 것을 듣는 체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확신을 불러 일으켜 준다.
우리는 그러한 체험을 통해 성령의 임재와 그 역사하심을 놀랍게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4) 때로는 어떤 사람에게는 통역의 처음 부분이 주어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에 이어지는 부분 또는 끝 부분의 말씀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주의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서로 통역에 있어 다른 사람들을 '압도' 하려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통역을 하는 것이 좋다
(고전14:27).
5) 통역을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길이, 단어,
모든 것이 다를 수도 있다.
6) 통역을 하는 사람은 일어서서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7) 또한 '큰 소리로 분명하게' 발음해야 한다.
8) 긴장함으로 인해 처음에는 통역이 다소 '불분명'할 수도 있다.
조언(참고)
1) 방언을 말하는 일이 적절히 행하여질 경우, 지도자는 통역을 위한 시안을
반드시 마련하여야 한다.
2) 각각의 방언에 대하여 오직 한 사람만이 통역을 하도록 한다(고전14:27).
3) 통역을 하는 사람들이 경쟁을 해서는 안된다.
4) 방언 통역이 자기가 받은 것보다 적절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잠잠히 있는
것이 좋다.
5) 통역이 끝이 났는데 같은 맥락에서 추가적인 계시를 받는 경우
2차적인 통역은 보충할 수 있으나 1차적인 통역과 상충되어서는 안 된다.
6) 어떤 통역과 상충되는 내용을 전하라는 진정한 명령이 있을 경우
그것은 '영분별의 은사'를 통해 오게 된다. 이때 그것을 통역의 형태로
행하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은사의 가치를 격하시킴과 동시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7) 어떤 방언이 그릇된 것이거나 공개적인 자리에 은혜되지 않을 경우
그것을 통역한다면 단지 혼란을 더할 뿐이라고 판단될 경우, 지도자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중지시켜야 한다.
8) 그와 비슷한 경우로서, 통역이 그릇된 것이어서 영 분별의 은사를
사용할 때도 있다. 통역이 분위기와 사람들의 마음을 냉담하게 만들거나
불안하게 하면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
9) 대 집회에서는 외부로부터 온 사람들보다는 지도자가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통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10) '기름 부으심'을 충만히 받았다고 해도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날 수는 없다. 또한 어떤 집회에서도 세 사람 이하의 사람에게만
'방언' 및 통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성경적이다(고전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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