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제자연구 1

2007. 7. 12. 23:46신학자료/5.성경신학자료

열두제자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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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의 사나이;시몬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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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4,눅5:4-5)

들어가는 말

보논 그라운즈(Vernon Gronuds)박사는 신학교 졸업생들에게 격려사를 하면서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조그만한 선물을 하기로 하였다. 졸업식장은 조용한 긴장이 있었다. 그런데 듯밖에도 그 선불은 ‘흰손수건’이었다. 그 조그만한 손수건은 제자들에게 추일히 섬기는 삶을 살지 못하였기에 예수께서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밤을 상기시키는 설교였다.
주님이 발을 씻겨 주시려던 것을 처음에 성급하게 거절하였던 베드로는 꾸중르 들었다. 이 사건은 떠다니는 모래가 굳은 반석으로 변하는, 베드로에게 영향을 준 여러가지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몸 말

Ⅰ.소명(Calling)

1.삶의 배경

*고향과 직업//고향인 벳세다에서 동생 안드레와 가버나움으로 옮겨와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였다(마8:14/ 눅10).
*학력//회당에서 공부한 정도의 교육수준을 갖고 있었다.(행4:13)
*가정//아버지 요나는 사망하고 안드레와 공동으로 소유한 집에서 아내와 장모와
함께 살았다.
*육체적으로는 건강하였으나 정신적으로는 나약하였다.

2.인격

*충동적이고 성급하고 경솔하고 무모하여,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명랑하며 반응이
대단히 빠른 사람이다. 항상 질문을 잘하여 12제자의 대변인이기도 했다.
(심사숙고하는 요한이 무던밖에서 서성일 � 베드로는 곧장 들어갔다.)
*의리있는 사나이//
*용기와 비겁, 강함과 나약함이 함께 있었다.(말고의 귀를 짜름//주님을 세번 부인)
*조용히 생각해야 할 때 말을 꺼내고 깨어 있어야 할 때에 잠들어 있었다.
*바다위를 걷겠다고 용감하게 시도하다가 가라 앉고, 신앙고백을 한 후에 주님
일을 반대하기도 한다.

3.소명

(요1:42)게바=== 베드로?
난장이를 골리앗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변덕스러운 형을이렇게 부르는 주님을 의아히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는 바라본 후(1:42)에 말했다. 이 새로운 이름은 불안정한 성격을 가진 것을 이해하시고 큰 은총을 베푸신 것이다. 잠재능력을 보셨다.

4.갈고 다듬으신 주님

세월이 흐르면서 베드로는 점점 반석으로 변하고 있었다.
떠다니는 성급한 모래가 요동치 않는 반석으로 변하는데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Ⅱ.주님의 부르심

1.고기잡던 날//*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던 밤이 지나고 새벽에 주님이 오시어 좀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신다.(눅5:4-5) 그러나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다.

2.물위를 걷던 날//(마14:22-33)
오병이어의 사건 후, 주님은 폭풍우를 만날 것을 아시면거도 제자들에게 건너 편으로 가라고 하셨다. 여섯시간동안 노를 저었으나 5KM 밖에 가지 못한, 새벽 4시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물거품 일어나는 산 같은 파도 위를 당당히 걷는 자태를 보고 놀란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생각한다.
(27절)“물 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주님은 시몬의 충동적인 변덕을 잘 아시기 때문에 믿음을 깊게하는데 이용하시낟. 세차게 부는 바람을 보고 당황한 그는 물 속에 가라앉게 되었고 살려달라는 외침에 주님은 손을 내밀어 붙잡으시면서 “왜 의심하였느냐?”(30-31)하시며 건져 주셨다.
주님은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적은 믿음을 꾸짖으셨다.
다른 제자들은 큰 믿음을 보이지 않았고 물 위로 걸을 생각도 않했고 오직 베드로만 걸으려고 했다. 물 위로 걷지는 못 했어도 주님의 손을 잡고 흔들리는 파도위를 걸었다는데 그 얼마나 큰 경헙이었는가? 이 사건은 분명 베드로의 믿음 성장에 전환기 였다.

3.위대한 신앙고백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제자들은 엄청난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자기들이 알고 있는 수준에서 대단한 인물인 세레요한, 예레미야, 선지자라고 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이이다.”라고 고백했다.
네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리라고 한다. 이 고백에 복음의 열쇠를 받았다.이 사건이 제자들의 이름 중에맨 처음에 나오게 되는 이유이다. 그는 오술절 유대인에게(행 2:14-41), 사마리아인에게(핸 8:15-17), 고넬료 이방인의 집에서(행 1:25-48) 제일 먼저 복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 그러나 축복의 사건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만류하다가 사탄이라고 질책을 받았다. 하나님으로 부터 계시를 받고 축복을 받았으나 주님의 목적을 좌절시키려 했기에 사탄의 도구가 되어 이용당했다.

4.그리스도를 부인

*모든 제자가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베드로!!
주님은 연약한 인간의 몸을 지닌 베드로 장담도 교만할 수 있는 가능성도 아시면서, 오늘 밤 닭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하리라 하셨다. 시몬은 힘차게 주와 함께 죽을 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말한다.
주님은 그가 그런 일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엄청난 노력과 기도를 하여 하늘의 도움을 구하여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영적으로 나태함을 빠짐을 질책하셨다. 겟세마네동산에서 자고 있는 그에게 “(막14:37/ 한시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구짖었다.
인간적인 용기로 말고의 귀를 자르긴 했어도 전신적인 비겁함이 멀리 도망쳐 어느 집 마당으로 들어가 군중들의 틈에 끼어불을 죄고 있게 했다. 그느 요한 처럼 주님의 옆에 있어야 했다. 숨지 말고 군중들에게서 나와야 함에도 3번 부인한다.
①단순하게 부인 ②맹세하며 부인 ③저주하며 완강히 부인(마26:69-75)
닭이 두번 울고 주님이 가실 때 슬피 울었다. 거의 진흙과 같은 보잘 것 없는 반석인 자기를 보면서..............

5. 새로워진 베드로

한 잠도 못잤다. 거짓말에, 책임회피에, 은혜 모르고 비겁하고 경건하지 못한 그!
주님과 함께 3년을 살았는데 자랑스럽기만 하던 그가 절방 속에서 허덕인다. 부활절 아침, 주님은 타락한 그의 심령을 위로해 주셨다. 무덤을 향해 달려가게 하셨다.
고향으로 돌아가 고깆바이 다시하는 베드로에게 내양을 먹이라고 기회를 주셨다. 오순절의 성령충만함을 부어 주시고 한번 설교로 3000명이 회개하는 역사를 이루셨다.

변덕스럽던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용기있는 지도자로 변화되었다. 준미이 베드로를 변화 시키시는데는 오랜 시간이 흘렸다.

Ⅲ.베드로의 최후

전설//박해가 너무 심해서 도망하려고 로마에서 나오다가 시자가를 지고 들어
가시는 주님을 만났다.
“퀘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너가 버린 십자가를 다시 지러간다.” “그럴수 없습니다. 제가 지러갑니다.”
그 길로 로마에 다시 들어가 전도하다가 잡히어 십자가에 순교한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내가 그대로 못 한다고 하여 꺼꾸로 못 박혀 죽었다고 한다.

춘원 이광구의 책 「麻依太子」에 나오는 글에
“의리없는 놈의 친구가 되기 보다는, 의리없는 놈이 원수가 되는 것이 안전하다.
의리없는 친구는 언제 나를 배신하여 해칠지 몰라도,
의리있는 원수는 내가 의리를 지키는 동안 내 의리를 알아 준다.”
초대교회의 교부이며 순교한 폴리갑 감독은 처형 직전에 그를 존경하던 집행관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나 주님을 부인하고 생명을 구하라고 했으나

“주님은 나의 80평샌 사는 동안 한번도 배신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찌 배신하리요”
시몬은 주님을 만남으로 성품이 변할 수 있었다.우리도 주님께서 두드리시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믿음이 강한 사람으로 주님 쓰실만한 인물이 될수 있다

 

위대한 전달자;안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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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8-44)

들어가는 말


본 론

Ⅰ.주님의 부르심(요1:38-39)

안드레는 처음엔 세례요한을 존경하며 그의 제자가 되었었다. 그러나 세레요한을 존경하며 그의 제자가 되었었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세례받으러 오신 에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양, Messiah」라고 하자, 가장 먼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날 주님과 대화를 한 후, 그리스도로 확신하고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예수님을 믿게 된, 주님의 선택을 받은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 뒤를 이어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이 믿게 된다.
고기잡이로 돌아가긴 하였으나 몇달 후, 주님께서 ‘고기잡이를 그만 두고 나를 �으라. 사람낚는 어부가 되라’하시며 제자직분만 행하라는 부르심을 응답한다.


Ⅱ.(요 1:40-42) 전달자 안드레

안드레는 베드로 같이 훌륭한 설교자는 아니었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잘 낚는 어부가 되었다. 그는 사람을 주님께로 소개하는 일을 잘해서 ‘전달자’ ‘소개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1.자신이 깨닭은 진리= 예수님이 Messiah라는 것=를 형 Simon과 빌립에게 전달
시몬은 침착하고 믿을 만한하고 견고한 행동을 하는 동생 안드레를 은근히 존경하고 있었다. 그가 밝고도 홧니에 찬 어조로 ‘메시야를 만났다. 와서 보라”고 소리쳤다. 이 확신에 찬 소리는 요한까지 주님꼐로 데리고 오는 역사를 이룬다. 물론 가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가지기 까지는 많은 기도와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분은 가족을 전도하기가 헌금 100만원을 내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
(예화)
어느 사업가가 레스토랑을 지나가다가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갖다데고 열심히 들여다 보고있는 거지 소년을 보았다.
“애, 배가 고프니?” 소년은 수줍은 듯이 대답했다.
그는 소년을 식당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음식을 넉넉하게 주문하여주었다. 그러자 그 소년은 계속해서 창 밖만 바라볼 뿐 맛있는 움식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왜 않먹니? 배고프다고 해잖아?” 뜻 박에도 소년은
“창 밖에 들여다 보는 아이가 내 동생이예요”라고 했다. 신사는 창 밖의 소년도 데리고 왔다. 두 소년은 풍성한 음식를 �었다. 아직도 믿음의 밖에있는 가족들을 이와같이 복음의 축제에 초대될 필요가 있다.

Ⅱ.(요8-9)오병이어의 기적때 보여준 사랑과 믿음

a.갈릴리 해변 그의 고향옆 벳세다 광야에는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였다가 3일동안 굶주린 민중들이 있었다. 안드레는 이들의 먹을 것을 염려하여 예수께서 건의하는 사랑의 소유자이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줄 아는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b.뿐만 아니라,
보잘것 없는 것이지만 예수께 갖고 가기만 하면 분명히 문제가 해결 되라고 믿은, 좋은 믿음의 소유자 이다. 그래서 겨우 떡5개와 물고기 2마리 밖에 없는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믿음을 보았다.

Ⅲ(요12:20-22)Halla 인을 주님꼐로 인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헬라인이 예수를 만나고 싶어서 찾아 왔다. 그는 예수께 소개해 주는 폭넓은 사람이었다. 유대인만이 위대하다는 당시인들 처럼 편협한 민족주의자는 아니었다. Andrew는 에수가 세상을 구할 구주이시요, 예수의 복음이 온 인류를 위한 것이요,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임을 알았다. 이 위대한 진리를 깨달았을때 그 진리를 열렬히 받아 들였고, 다른 사람들도 이 진리를 알게 되길 원했다. 그래서 죽기까지 열심히 전도하고, 복음 전파 하는데서 기쁨을 찾고 살았다.

Ⅳ.둘째자리에 만족하는 안드레

󰠆�󰠏�󰠏�󰠏� 마가,행전// 4번째 자리󰠏�󰠈�
󰠌�󰠏�󰠏�󰠏� 마태,누가// 2번째 자리󰠏�󰠎� 그는 중요한 사건에서 제외되었다.
(주님의 산상변화. 주님의 고뇌의 기도현장,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Pater가 큰 인물이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임을 알자. 그는 자기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그를 주님께 인도해서 지도자가 되게 했다. 자신은 3대제자 축에 못들고, 뒤로 물러섰다. 자기가 인도한 형 Peter 와 동료 John과 James 형제가 주요제자가 되고 자기는 소외 되었어도 섭섭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 불평없이 뒤로 물러나 둘째자리에 앉는 겸손을 보였고, 단지 주님을 섬김으로 만족하고 충성되고 성실히 사는 사람 이었다. 높은 지위의 열망은 있으나 뒷전에서 조용하게 주님께서 생각해 주시는 것만 감사하면서 만족하고 뒷전에 처진 것을 괴로워 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기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한 사람씩 주님을 믿는 승리자가 되도록 인도하였다. 교회에서는 베드로 같은 몇 명의 용감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더 필요한 사람은 눈에 뜨이지 않는 뒷전에서 일을 하는, 깊은 신앙을 가진 많은 안드레가 요구된다. 참으로 능력 없으면서도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것을 던져주는 「사나이다운」 제자 였다.

Ⅴ.그후 안드레의 삶

*유대의 역사가인 Eusebius의 책 「HistoryⅢ」
1)Ephesus 지방에서 열심히 전도하였다.
2)그런데 가롯유다 대신 제자로 뽑힌 맛디아가 식인종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를 구하려고 기적적인 항해를 하여 흑해연안 코가스 산맥이 있는 스구디아(南Russia)에 도착한다. 기적으로 맏디아를 구출하고, 식인종도 거의다 교회 시킨다. 그래서 스구디아와 비잔티움(터기의 수도 이스탄불)에 교회까지 세운다.
3)그후에 그의 전도 공헌은 위경인
‘안드레 행전’에 의해 알게 된다. Greece에 와서(드레이스, 마케도니야,고린도,파트라스)에서 열심히 전도한다. 그런데 그지역 총독인 ‘애기아테스의 부인’까지 전도하여 에수를 믿게 한다. 그러자 총독은 그 분풀이 Andrew에게 에수를 피투성이가 된 Ancrew를 고분하고, 끝내 X형의 십자가에 밧줄로 묶여서 일동안 둔다. 고통속에서 Andrew는 A.D69년 11월말에 이렇게 기도하며, 하늘 나라로 갔다.
“그리스도이신 에수님!
내가 뵈었고, 내가 사랑하고, 그안에 있는 나를 받으소서.
당신의 영원한 나라에 내 영혼을 받으소서 아멘”

그래서 Catholic에서는 오늘날에도 X를 「St. Adrew †」라고 부르며, 11월 중에 하루를 󰡔�안드레의 날󰡕�로 지키며, 열심히 전도한다.
전도 방법에 있어서도 안드레 처럼 가장 친한 사람을 전도하는 것을 󰡔�안드레식󰡕�전도라고 불리어 진다. 이렇게 순교한 안드레는 336년 - 콘스탄틴대제가 비잔티움에 세운 「거룩한 사도들의 성전」에, 그의 아들 콘스탄티어스가 365년 「디모데, 누가,안드레」의 유해를 모셨다.(성물 권위자 마시다켄의 증언)

결 론

안드레의 일생은 자기를 바로 볼 줄 알았고,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천거하는 미력을 보이며 살았다. 예수의 능력을 조금도 의심없이 믿는 큰 믿음과 사랑의 소유자로 살았다. 그리고 남을 인도하기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는 폭넓으면서도 정열적이었고, 사랑과 믿음이 철철 넘쳐 흐르게 살다간 위대한 제자이다.
*예수의 제자된 여러분!
①자기를 바로 봅시다. 주님의 사업을 위해서는 더 좋은 사람을 천거 합시다.나보다 늦게 믿은 친구일 지라도 좋은 신앙가지면 칭찬하고 인정해 주자. 이렇게 사는자가 주님을 기쁘게 하느자요,에수의 제자입니다.
②변치 않는 굳센 믿음과 어려운 사람과 함께 괴로워 할줄아는 사람이 됩시다.이러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과 동행하며, 에수님과 함께사는 사람입니다.
③예수를 전하된 정열적으로 전하며, 그 기쁨속에 사는 자가 되자, 우리가 체험하고, 깨닫는 진리를 꼭 전하는 사람이 되자. 이렇게 사는 사람이 바로 예수의 제자요, 작은 안드레인 것이다.

첫 순교자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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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1-2)

들어가는 말

1.생활환경
갈릴리 지방에 zevedee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배도 소유하고 가정에 종을 두고 살만한 부자였다.(막1:19-20) 그에게는 아버지의 일을 돕는 두아들, John과 James가 있었다. 그는 두 아들이 다른 가정처럼 자신의 가업을 이어 가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이들이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던 어느날, Peter와 Andrew와 함께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예수의 제자가 되어 따르게 된다. 야고보에 대해서는 안타까울 정도로 적게 기록 되어 있으나(막 5:37, 14:3) 그는 훌륭했기에 그는 훌륭했으므로 「3대 제자」중 하나가 되었다.

2.성격
*형//요한 *동생//야고보
이 두 형제는 너무조 폭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주님께서 “우뢰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보아너게의 아들‘이라고 별명을 지어 주셨다. 폭풍우 같은 기질을 가졌으며 태풍과 같은 정열이 있었고 불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잠잠하다가도 노여움을 화산처럼 폭발시키곤 하였다.
그러나 주님과 관계를 가지면서부터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었고 야고보는 의를 위하여 기꺼이 순교한 첫 사도가 되었다.

우리는 그의 일생이 보여주는 교훈을 얻고,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 갈것인지 알아보자.

본 론

1.성격은 급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

그에게는 불타는 복수심(눅9:51-56)이 있었다. 갈릴리 지방과 산상변화가 있는지 어마 안되어 주님은 제자들과 여행을 하셨다. 먼지 투성이와 좋지 않은 도로 사정 피로가 겹쳐 쉬고 싶은 때, 사마리아인들에게 쉴곳을 간청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 당하였다. 시장하고 피로에 겹친 제자들은 불친절한 접대에 화가 머리까지 나서 분노한다.
“주여!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나이까?”여쭈었다.(눅9:45)
소돔의 불과 유황으로 화풀이 하기를 원했다.
*사마리아인들은 앗시리아인들로서 유대인과 혼혈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번역한 성경에따라서 생활을 하며 그리심에 있는 성전에 나가서 경배하기 때문에 주님과 제자들이 나타난 것을 당황해하고 있었다. 이들이 자기를 냉대한다고 적들로 규정하고 모두 불 속으로 쓸어넣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으로는 도무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만한 자질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꾸짖으시면서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셨다.
(눅9:56)“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 왔노라”
그러나 야고보는 위대한 사도이다.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행1:8)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까지” 증인이 되라 하셨을 때, 사마리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행8:25) 실수한 일을 지적하여 주신 주님의 교훈을 곧 바로 실천하는 사도였다. 옛날 자기를 거절했던 사마리아 촌에 까지 순회 설교를 했다. 하늘로 부터 멸망의 불이 내리는 대신 성령의 불꽃이 강림하여 이들의 가슴에 안주하도록 하였다.

2. 질투와 원한을 모른 성자

안드레가 형 Peter의 그늘에서 일한것 같이, 야고보도 형 요한의 그늘에 가리워 있었다. 유명한 형 밑에서 일하기도 어렵지만 예수님이 특별히 사랑하신 유명한 동생밑에서 일하기는 더 어렵다. ‘요한과 야고보’라고 호칭, 야고보는 꼭 요한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끝내에는 요한의 형제라고 기록되어 있기 까지한다(마10:2). 혼자 기록한 곳은 유일하게(Acts12-2)에만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야고보는 12사도의 명단 중에 모두 요한보다 앞에 기록되어 있다.
주님은 주요한 세사도 가운데 하나로 야고보를 택하신 것을 보면 그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 베드로// 선천적으로 지도자의 자질이 있었다면
󰠉�󰠏�󰠏� 요 한//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제자였다면
󰠌�󰠏�󰠏� 야고보// 유능하고 유망한 인물로 큰 잠재력을 가진 신앙 깊은 사람
이상의 3사람은 다른 제자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특권이 있었다.
여러분
그러나 자기의 소명을 잘 감당해 낸 인물로 유명하다. 우리는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너무 훌륭한 사람이 많아 내갸 할일이 표시나지 않아도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이 되자. 그가 바로 「성자」인 것이다.

3.휼륭한 신앙가

야고보는 巨富인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을 많은 유산을 팽개친채 예수를 따랐다. 내일 아침걱정 안하는 사람이 없이 굶주리는 사람 많던 그 당시에 이 거대한 상속을 포기하고 따른에는 그들이 초기 신앙이 얼마나 컸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제자들은 남출신 유다를 제외하고 모두 가난했다. 그래서 내버릴 것이 별로 없어서 어려움없이 예수를 따를수 있었다.
그러나, James와 요한은, 특히 야고보는 모든 제산을 물려 받을수 있었던 형이던 그의 결단은 굉장한 신앙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결단이었다. 그렇기에, 이것을 아신 예수님은 요한과 함께 “우뢰의 아들” (The sons of Thunder, Boaneqe)라는 별명도 지어 주셨다. 이 열성을 초지일관 식지 않고 활약하여 최초의 순교한 제자가 된다.

훌륭한 신앙기가 되길 원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포기 하는것이 있어야 한다. 내 할것 다하고, 예수를 따를순 없다. 내가 하고 싶던것 다하고, 못된 이기심, 자존심, 그대로 가지곤 주일날 놀려 갈곳 다가고는 남는 시간에 예수 믿는다는 자세는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없지만 쪼개어서 예배하고, 귀찮더라도 이것을 이기고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은 우리가 쓰고 남은 시간 받기를 원치않으신다. 가장 귀한 시간을 쪼개어 바치길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할것 다하고 나서, 할일없고 심심하여 봉사하는것은 원치 않으신다. 해야 할일 많고, 바쁜 속에서 시간을 쪼개어 바친것을 귀한것을 가장 좋아 하신다. 예수님은 최상의 것을 원하시지, 적당히 하는것 마지 못해 하는것을 원치 않으신다. 야고보처럼 자신의 최고의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바치며, 예수님을 위해 삽시다.

처음에 가졌던 그 열심을 그대로 유지하십시요!!
하나님의 일은 요령에 있지 않고, 최선의 열성과 최상의 봉사에서 빛나면, 열매 맺게 된다. 이러한 사람이 예수님의 3대 제자가 될수 있다.

5. 위대한 첫 순교자

우리는 Herod이왜 제일 먼저 야고보를 체포하였는지 궁금하다. 그것은 열성과 야망이 있는 야고보는 격하기 쉽고 유은하며 뒤어난 지도자이기 때문에 힘찬 소리로 외치는 야고보의 입을 막고자 했을 것이다.
헤롯은 에수님이 탄생하실 때, 죽이려다 베들레헴 주변에서 태어난 어린 생명 수을 죽인 흡혈귀 같은 폭군 「대 Herod」의 손자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것을 체험한후, 그는 Spain에 가서 전도하였다(12제자전)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 되라(행 1:8)’에 예수의 유언을 실천키 위해 당시에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Spain까지 배를 타고 가서 오랬동안 머물면서 그곳에 많은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였다고 한다. 그는 Spain에 있는 유대인 거류민과 유대인 노예들에게 복음전도와 위문을 목적으로 갔을 것이다. 주로 바다의 순레를 하면서 전도를 하였기에 「조개」는 그의 상징이되었다고 한다. 유대인 노예들은 독립 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갔거나, Herod에 속아서 팔려간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야고보가 예루살렘에 들어오자 폭로될까 두려워 하여
①유대인 노예들을 「선동했다는 터무니 없는 죄」를 씌웠다.
② Jr에서 놀라운 성장을 보이는 Xty운동을 독립운동으로 두려워 했고
③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저지른 인기 장난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야고보가 체포되었을 때, 그를 고소했던 자가 그의 요기와 자제력에 깊은 갑동을 받아 세레받기를 원하였고 교회의 일원이 되어 야고보와 함께 죽었다고 한다. 야고보 사도는 Herod Aqippa Ⅰ라고 기록된 사람에 의해 칼로 목을 베이는 참수형에 처해진다. 그의 유골은 지금의 Spain 「콤로스 텔라」라는 성전에 묻혀 있다고 전해진다.

12제자 중 성경죽음이 기록된 사람은 예수님을 팔고 양심에 가책으로 자살한 가롯유다와 순교자 야고보 밖에 없다.
순교는 외형으로 보면 ‘남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타살이지만 그러나 배교하면 안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스스로 부득부득 우겨서 죽는 것이기에, 순교는 원해서 죽는 타살이다. 그러나 이 순교는 큰 용기 없이는 못하는 죽음이기에 확고한 신앙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가장 먼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스스로 찾아간 죽음의 길, 순교의 길을 간 James는 분명히 용기 있는 사람이요, 솔선수범의 사람이었다.
예수를 맏기로 결심한 여러분!
우리도 ‘죽느냐, 사느냐’하는 갈림길에서 설때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비굴하게 배신하여 살기보다는 나를 버리지 않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의 뒤를 따라가는 순교의 정신으로 살아가자. 하늘 나라에서의 상은 「순교의 상」이 가장 크다고 한다. 우리 모두 순교의 정신으로 전도하며 열심히 살아가자(예/주기철, 이기풍, 이기선, 이원형)

맺는 말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은 어려움을 무릎쓰고, 예수님을 전했기에 모진 고통속에 순교의 길을 갔다. 처음의 열정으로 일하시길 원하신다. 우리도 열심히 전도하자. 그러다가 챙피도 당하고 망신도 당하라, 자존심 포기하고 전도하라. 이것이 순교를 향해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세리장 : 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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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1-2)

들어가는 말

진실한 교인인 한 청년과 그의 아내는 가까운 이웃과 친분관계를 가지면서 자기 아파트에 초대하여 기분전환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들은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한달에 한 번씩 구원받지 못한 친구와 이웃들을 식사에 초대하고 무디협회에서 제작한 영화를 보기도 했다. 항상 대화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의 촛점이 맞추어졌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것은 “식사전도”라는 증거 방법의 하나이다. 그러나 식사전도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독특하게 생겨난 방법이 아니라 열 두 사도 중 하나인 마태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자 즉시 사용했던 증거 방법이다.


본 론

1.마태의 이름

마태도 다른 몇몇 사도들처럼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마태’로 불렸으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처음에 ‘레위’로 부르다가
세관에서 일할 때는 마태라고 불렀다. (막2:14/3:18/눅 5:27/6:15).
그의 첫 이름은 레위였는데 그리스도를 믿은 후 예수께서 마태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셨다. 레위라는 이름은 고향 사람들이 불렀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그는 사도들 가운데서 일곱번째,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여덟번째에 자리잡고 있다(행1:13).

2. 경멸받는 마태의 직업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경멸받는 마태의 직업을 점잖게 표현하였으나 마태는 자신을 세리라고 했다.(마 10:3) 경멸받는 자신의 직업에 대하여 말하면서 마태는 “나는 더 이상 경멸받는 직업에 종사할 수 없다. 사도직분으로 일하고 싶다”고 고백하였다. 마태의 사회적 신분은 현대의 마피아단이나 또는 마약 판매자와 거의 비슷할 정도이다. 그는 스스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세리의 일
탈무드에 의하면
󰠆�󰠏� 하나는 보통 세금을 징수하는데 술, 또는 과일이나 이와 비슷한
󰠐� 품목에 대한 세금을 거둔다.
󰠌�󰠏� 하나의 세리는 마태가 속하여 있는 세관관리이다. 세관의 세리들은 사람들을
정지시켜 검색하거나, 짐을 시간을 끌며 조사하고, 날카로운 쇠꼬창이로
밀수품을 색출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많은 미움을 받았다.

2)마태의 근무처

가버나움의 교역하는데 참으로 좋은 위치였다. 다메섹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간선도로로 짐을 가득 싣고 내려오는 대상들은 마태가 근무하는 세관에게 멈추어 2-12%에 달하는 관세를 지불해야 한다. 또 갈릴리 바다 근처에서 어부로부터 세금을 받아 들였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가끔 마태에게 세금을 바쳤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눈으로부터 크게 시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들의 짐을 검색하는 세리들을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세리들이 미움을 받는 데는 더 많은 이유들이 있다.

3)세리의 죄악

대부분의 세리들은 정직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기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로마당국에 일정한 금액을 바친 후 그 이상으로 주머니를 채우고, 가능하면 더 많은 돈을 사람들로부터 긁어 모았다.
세리의 행동에는 탐욕과 부패와 착취와 협작이 뒤따랐다. 로마제국이라는 권력을 배경으로 하고 로마 군사의 힘을 빌어 강제징수하고 사람들을 협박하여 감언이설로 속여 빼앗았다. 높은 세금 수탈에 서민들이 고통을 당하는 동안 세리들은 점점 부자가 되었다. 로마제국에 봉사하는 직업 때문에도 미움을 받는 세리들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더러운 사람들로 보였고, 외국 정부와 야합하는 공모자로 간주되었다.

세금징수는 가장 추악한 직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세리들은 이방인이나 창기와 한 통속으로 취급되었다.(마 18:17/21:31). “세리와 죄인”은 최하층 사람의 통칭이었다(마9:9). 더구나 이들은 재판정에서 증언할 자격도 없었으며, 일반 죄인을 조롱할 자격도 없었고, 회당에 들어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리의 돈은 연보로 받아주지도 않았다. 이들은 사회적인 문둥병자의 지위로 버림을 받았다.

마태는 빛나는 황금에 유혹되어 그는 양심을 팔고 자신의 조국을 배신하였고 속이면 속인 만큼 재산이 불어났다. 그러나 그는 종교적인 특권도 박탈당하고 버림을 받았다. 그가 세리로 출발할 때는 정직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것이지만 점점 자신이 몹시 싫어하는 직업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마음은 과부나 고아들의 울부짖음을 듣지 못할 만큼 강팍해졌다.

3. 은혜로운 그리스도의 부르심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활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마태도 예수의 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쳤는데 그 때문에 베드로의 문 앞에는 예수님에게서 병을 고치려는 가버나움 사람들로 몰려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태는 형제와 사촌들과 함께 시몬이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자신의 직업을 포기한 이야기와 지붕을 통하여 수족이 마비된 사람이 예수께로부터 고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중풍환자에게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3-5)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도 내심으로는 자신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기를 바랬을 것이다.

마태가 “경멸받는 세리도 예수께서 받아 주실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사무실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았다. 자세한 질문을 받은 마태는 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태는 마음 속으로 자신이 대단히 더러운 인간임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께서도 그를 “세리, 배신자, 죄인, 또는 사기군”이라고 하셨을까?

예수께서는 자비로운 말씀으로 “나를 좇으라”(마 9:9)고 하셨다. 예수님의 부름에 압도당하고 영접하심에 너무도 기뻤던 마태는 그 자리에서 성결을 느꼈다. 그의 마음은 평강으로 충만했다. 마비된 사람을 고친 것을 비난하는 사람에 대하여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자기의 죄를 용서하면서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마 9:6)하신 말씀을 상기 했다.
그는 즉시 순종하여 나와서 사무실의 문을 닫았다.
누가는 예수께서
“그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묻는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눅 5:27-28)
다른 제자들은 죽은 후 묻힐 곳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거나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어떤 지위에 대하여 토론도 했지만 마태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순간적이었다.

예수께서 마태를 택하실 때에는 서로 깊은 관계가 없었던 것같다.

1)마태의 등장은 그 때까지의 사도들의 조직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다.
마태가 두 가지의 명단에서 일곱번째로 기록된 것을 보면 안드레, 베드로, 야고보, 요한, 빌립과 나다나엘은 마태보다 먼저 사도로 불리었다. 이들 여섯은 모두 애국자이거나 어부들이었다. 혐오를 받는 가버나움의 배신자 세리가 사도들의 틈에 끼어들어 친숙한 동료들에게 긴장을 유발시켰을 것이다.

2)마태를 택하신 예수님의 정책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거리감을 주었을 것이다.
도덕적인 문둥병자를 부르신 것은 무분별한 정책처럼 보인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으며,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비난하면서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눅15:2)고 불평했다. 제자들 가운데 중요한 제자로 마태가 등장하여 유대인의 편견을 막지 못하고 군중들의 불만을 해소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태를 택하신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사악한 사람일지라도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선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며 그 은혜는 모든 인간에게 고루 베풀어 진다. 모든 사람들이 마태를 질시하고 있을때 예수께서는 사랑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한 사나이, 마태를 보신 것이다. 이와 똑같은 사랑의 은혜는 죄짓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문이 열려 있다.
베푸시는 예수님의 계획적인 정책이었다. 만일 교회에 여러층의 사람들이 있다면 어부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복음전파에는 다양성이 있는 것이 좋다.

4. 마태의 풍성한 잔치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직후 마태가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을 때 세리와 다른 사람들도 함께 앉아 있었다(눅 5:29). 잔치의 내용이나 넓은 집은 많은 손님들의 접대하는 데 충분했으며 모든 것은 마태의 재산정도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마태의 이 잔치는 훌륭하게 돈을 쓰는 것이었으며 또 여러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1)축하하기 위함이다.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는 모두 가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 마태는 무척 기쁜 일이었다. 마태가 구세주와 영원히 혼인하는 것을 기념하여 마태의 영적인 결혼잔치라고 부리어 왔다. 마태는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잔치를 베푼 것이다.

2)작별하기 위함이었다.
마태는 자신의 과거를 불사르고 있었다. 마태는 자신의 직업을 떠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간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일종의 송별파티였으며 옛 생명의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중생함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3)증거하기 위함이었다.
옛 친구에게 증거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잔치에 친구들을 청하였다. 만일 그가 신앙깊은 사람들을 초청했다면 그의 집에 세리와 죄지은 자들이 모일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마태를 기피했을 것이다. 갈릴리와 유대의 모든 죄인들이 참석했는데도 예수께서는 마태의 초청을 쾌히 수락하셨다. 이 잔치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마태는 주인의 자리에 앉고 예수님은 상석에 앉으셨다.

셈 슈메이커는 「그리스도인이 택하여야 할 가장 좋은 자리는 구원의 문 바로 안쪽」이라는 글을 썼다. 안쪽에서 너무 깊숙하게 떨어져 있으면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 어려우며 문으로부터 너무 멀리 가서 있으면 입구를 더듬어 들어오는 소경을 맞이할 수가 없다.
칠레의 한 교회에서 시민들의 큰 환영을 받는 철야 집회가 있었다. 밤마다 도둑들이 기쁜 찬송가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놓고 집집마다 털었다. 그러나 어떤 도둑은 예배석에 몰래 숨어 들어와 죄를 깨닫고 회개했다. 일 년이 지난 후 이 도시의 경찰은 복음전도 역사상 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진기한 일을 하였다. 경찰은 24명의 범인들의 사진과 함께 목사 앞으로 연하장을 보냈다. 경찰은 목사님의 복음전도를 듣고서 범인들이 도둑질에서 손을 떼었기 때문에 이들의 사진을 교회의 기록에 함께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5.마태의 저술

마태 시대의 사람들은 세리는 변화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마태의 잠재능력을 보셨다. 마태는 예리했고 훈련되어 있었으며 용모가 출중하고 헬라인과 라틴 사람과 아랍인에 대하여는 정통하였다. 미래가 인생의 목적에서 돈을 단념하려 한다는 걸 알아차리신 예수께서는 그가 신약의 첫째권을 쓸 수 있도록 변화시키고 감동을 주셨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겨냥하여 쓴 것 같다. 마태는 구약 속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약속된 참 메시야가 예수임을 증명하려는 결심을 하였다. 이를 위하여 마태는 복음서를 쓰면서 몇 군데에서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1:22)는 것과 마태복음서 2장 15,17,23절 등은 그 형식과 내용이 비슷하다.

마태는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다윗왕의 혈통을 조사하여 그리스도 가계를 추적하였다. 조심스럽게 14대에 걸쳐 세 그룹을 만들어서 마태는 그리스도의 혈통을 밝혔다. 마태가 체계화하기를 좋아한 것은 언제나 모든 것을 정리하는 성품에 기인하였다. 마태복음의 거의 절반 정도가 마가복음처럼 활동의 기록으로 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의 특징은 위대한 논술이란 점이다.
마태는 언어이든 상징적인 묘사이든 문서전도의 방법을 사용하는 시인이나 저술가, 신문기자 , 편집자, 서기, 장부 기록자와 회계원의 선구자였다.
마태는 복음을 쓰면서 일생을 살았다. 마태가 에디오피아와 바사에서 복을 전파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의 사도로소의 상징은 본래의 직업을 뜻하는 “세개의 지갑”이다. 그는 이 세상 끝까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증거할 수 있었다. 아마 마태는 여리고의 세리장인 삭개오에게 예수께서 여리고를 방문하면 예수님을 만나라고 권하는 글을 보냈을 것이다.

맺는 말
구원 받은 우리도 마태처럼 식사전도를 하여 올해를 마무리하자.

사랑하는 제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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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3-10)

들어가는 말

1.요한의 이름

레오날도 다빈치(Leonardd da Vinci)는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소녀처럼 미소지으며 부드럽게 흰 손을 겹치고 있는 요한의 얼굴을 그렸다. 십대의 말기에 주 예수를 만났을 때에는 비록 사도들 가운데서 나이가 가장 어리며 나약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으나 요한은 용감하고 영적으로 강건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를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 부르셨다(막 3:17). 이 형제들의 활화산 같은 성품은 주님에게 겸손하지 못한 사마리아인에게 불을 내리기를 원했을 때 잘 나타났다. 또 이 형제는 앞으로 올 왕국에서 높은 자리 둘을 주십사고 예수께 간청하는 절제 없는 야망을 갖기도 했다. 주 예수는 이들의 불 같은 열망과 경건하지 못한 욕심을 꾸짖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을 삼 년간 훈련시켜 폭풍 같은 성격을 잠재웠으며 우뢰를 조용하게 변화시겼다.

2.요한의 초기 생활

형제인 야고보와 함께 요한은 가버나움에서 베드로, 안드레와 고기를 잡았다. 요한의 아버지는 세베대였다(마 10:2). 고기잡이는 근육을 발달시키는 힘든 노동이었다.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노를 젖기 때문에 손바닥에는 못이 박혔다. 또약볕 아래서 그물을 수선하는 일은 청년들을 구리빛으로 만들었다.

안드레와 함께 요한은 밥티스마 요한에 의해서 예수님께 인도되었다. 예수님과 몇 말씀을 나눈 요한은 그가 구세주임을 확신하였다. 요한은 육십년이 지난 뒤에도 처음으로 예수님과 대화한 감격적인 시간인 시간을 회상하였다. 이 순간부터 에수님은 요한의 생애에 빛이 되셨다. 사랑이란 서로 주고 받는 보완관계이다. 요한은 “예수의 가장 사랑받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과 처음 만난 후 요한은 고기잡이하러 돌아왔으나 나중에는 예수님과 동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기잡이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요한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야고보,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하여 큰 마음을 먹고 아버지와 배와 고기와 직업을 버렸다.

본 론

1.편협한 마음(막 9:38-40, 눅 9:49-50)

어느 마을로 복음을 전하러 가던 중에 요한은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동요하는가 보려고 요한은 앞으로 다가갔다. 귀신들린 한 소년이 땅 위를 뒹굴면서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이 미처 손도 쓰기 전에 낮선 사람이 귀신을 쫓아냈다. 그 소년은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뒤틀다가 조용해지더니 고쳐졌다.
요한이 귀신을 쫓으려 했을 때 깜짝 놀란 낯선 사람에게 큰 소리로 “감히 어떻게 당신이 주님의 이름을 쓸 수 있단 말이오? 도대체 당신은 무슨 권능이 있길래 그런 일을 하오?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권세도 받지 못한 사람이요. 나는 주님의 가까운 사람 중에 한 사람이요. 이전에 나는 당신을 본 일이 없오. 결코 주님의 이름을 쓰지 마시오”라고 했다.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말할 수도 없으며 예수의 이름으로는 일도 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요한은 몰아쳤다. 요한은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열ㅆ나이다”라고 여쭈었다(막 9:38).
예수께서는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한자니라”(눅 9:50)고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의 이야기로 미루어 보면 병고치는 이 사람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처럼 전문적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임을 예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행 19:13-14). 이 사람은 어디에서인가 예수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성실한 사람이었으며, 곤고한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흉내내어 보려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사도들과 동등한 영적 은사를 받은 사람이었느지도 모른다.

요한의 성격이 외곬수적인 것은 가장 높은 자리에 대한 그의 야망이 연장된 결과였다. 그는 사도로서의 자부심을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막 9:39). 요한은 주 예수의 이름을 의탁하여 주 에수의 일을 행하는 데 제자 아닌 사람을 제외시키려는 계획을 성공하지 못하였다.
열 두 사도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부인하지 않은 것은 성도들에게 대단히 훌륭한 교훈이 된다. 마치 사도들이 예수를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따르며 무리를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우리는 믿음의 근본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을 행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 말년에 예수께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행위에 대하여 강경한 경고를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과 똑같이 행하면서도 신학적인 문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마음을 용서하고 관대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속한 종파만이 오직 진실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우리들과 꼭같지 않다고 하여 침례교이든, 감리교이든, 루터란이든, 오순절 계통이든, 성공회이든 배척할 정당한 근거는 없다.

2.요한의 변화

어느 정원사가 정원의 흙을 보고 “너는 어떻게 그처럼 좋은 향기를 풍기느냐?”고 물었더니 진흙은 “사람들이 나를 장미꽃 옆에 두었기 때문이랍니다”라고 대답했다.
항상 주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성급한 청년 요한은 성인이 되어 온유한 성격으로 변하였다. 요한의 야망은 줄어들었다. 편협한 외곬수적 성격도 사라졌다.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격렬한 성격의 청년에서 마음 착한 성인이 된 것이다.
신학자들은 요한이 복음서 뿐만 아니라 서신과 계시록도 썼다고 믿는다. 약 일 세기 전에 일부 학들이 “요한서신을 쓴 사람이 과연 사도 요한이냐”하는 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복음서의 요한과 서신의 요한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네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요한을 야망으로 가득 차 있고 화를 잘 내며 도량이 좁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하여 요한서신의 기록자인 요한은 사랑의 정수라고 설명되어 있다. 요한은 주 예수에 의하여 우뢰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하였다.

요한이 이렇게 변하는 데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의 인격 속에는 타고난 성격이 항상 깃들어 있기 때문에 폭발적인 잠재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함께 해주시는 권능과 근엄한 용모는 여러 갈래로 찢어진 요한의 옳지 못한 정력을 온유한 길로 인도하였다. 유리들의 정력은 결코 옳기만 하지더 않고 나쁘기만 하지도 않은 그 중간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쓰일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요한의 강력한 정신이 거짓 교리나 사악한 행동에 대하여 단호히 규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의 성품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격려를 해 준다.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며 불평하기 좋아하는 청년이라 해서 반드시 고집세고 이기적이며 잘 투덜대는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영적인 성장법칙에 따라서 떫고 시퍼런 과일이 달콤하고 맛좋은 과일로 익을 수 있는 것이다.

3.요한이 보여준 사랑

우뢰와 같은 요한의 성격이 온유하게 변한 것은 십자가와 초대교회에의 성심과 용감성도 설명해 준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어느 사도보다도 먼저 예수님에게로 다시 돌아온 사람이 요한이었다. 베드로가 멀리 떨어져서 뒤따르고 있을 때 요한은 용감하게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갔다(요 18:15-16). 아마 대제사장은 요한의 아버지인 세베대의 사업과 롼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과는 서로 아는 사이였을 것이다.
대제사장을 알고 있던 덕택으로 요한은 베드로도 뜰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따. 그러나 대제사장의 종을 해쳤기 때문에 겁에 질려 베드로가 숯불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 요한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재판장에게로 곧장 들어갔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비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때 요한은 진실 속에서 살고 있었다.

모든 사도 가운데서 오직 요한만이 십자가 옆에 서서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그리스도의 적들이 악의에 찬 독설을 내뿜을 때에도 요한은 도망치지 않고 적들의 한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들은 제자도 유일하게 요한뿐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바라보시면서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고 하시고 요한에게 그 어머니를 가리키며 “보라, 네 어머니라”하셨다>(요 19:26-27)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마리아를 모셔온 후 요한은 다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려고 서둘럴 되돌아갔다. 오직 요한만이 “내가 목이 마르다” 또 “다 이루었다”는 최후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께서 고개를 떨구시고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는 것을 지켜 보았다.
군병이 에수님의 옆구리를 찌를 때 피와 물이 나온 것과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사한 사실을 말한 것도 요한 뿐이었다.(요 19:38-42). 요한은 용감하였으며 최후까지 예수님께 헌신하였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살인마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어린 양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4.서로 사랑한 에수님과 요한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몇몇 사도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셨던 것같다.
예수님과의 우정을 갖는 게 기뻐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끼리 점점 친밀해진 것은 큰 무리들로부터 더욱 독자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에수를 따르는 사람이 오백여 형제이며(고전 15:6), 모인 무리의 수는 일백 이십 명이고(행 1:15), 예수께서는 칠십 인을 제자로 세웠다.(눅 10:1). 이들 가운데 열 두 사도가 있으며 사도 가운데 핵심이 되는 세 사람이 있으며 이 중에서 사랑받는 요한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로 자주 불리워졌다(요 13:23/20:2/21:7). 요한은 “여호와의 은총을 받는다”는 이름의 뜻 그대로 일생을 살았다.
분명히 요한은 제자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세 제자의 한 사람일 뿐아니라 에수의 사랑받는 제자로 불리워진 유일한 사람이며 다락방에서는 그리스도의 품에 앉았다(요 13:23). 초대교회의 문헌을 보면 요한을 에수의 가슴에 기댄, 사랑을 의미하는 “에피스테티오스”(The Epistethios)라고 자주 부르고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라는 부탁을 받은 요한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예수의 마지막 말씀을 들은 사람이 되었다.

1)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요한은 “하나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요3:16) 유명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겼다. 요한은 책임감으로서의 사랑 뿐만 아니라 사도직의 징표로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ㅏ”(요 13:34-35)하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상기시켜 주었다. 요한은 그의 저술에서 오십 번 이상이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사랑받는 요한은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믿었으며 밤을 새워 고리를 잡은 후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본 제자였다(요 20:8/21:7). 요한은 하나님 계시의 환상을 포함한 영적 진리를 알 수 있는 놀라운 지혜를 받았다.

2)요한의 사랑은 강했다.

사랑에 대햐어 요한이 요약한 말은 사랑의 근간을 이루었다. 진실한 사랑이란 그 사랑의 대상을 해롭겔 할 모든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하며 결코 꺽이지 않는 강한 것이어야 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나운 개로부터 아장아장 걷는 자기의 아이를 보호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진실한 사랑이다. 요한은 일반적으로 그릇된 가르침이 어린 아이들에게 크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요한은 거짓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서슴치 않고 경고했다(요일 1:6/2:4).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당부했다.(요이10). 또 디오레베는 교만하여 사악한 말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세상에 공개했다(요삼9:10). 요한의 우뢰 같은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의 강경한 어조도 사랑과 겸손으로 많이 부드러웠졌다.
(이야기)// 어떤 전설은 요한이 에베소에서 공중목욕탕에 갔을 때 영시주의자인 세린도를 만난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요한은 그를 보자마자 목욕도 하지 않은 채로 목욕탕을 뛰쳐나오면서 “모두 도망치자, 진리의 적이 들어있는 세린도 때문에 목욕탕이 무너질런지도 모르니 우리 모두 도망가자”고 외쳤다고 한다. 어떤 기회에 요한은 세린도를 “마귀의 맏아들”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뢰와 같은 그의 성격의 단면을 잘 반영하고 있다. 요한은 온유하면서도 강했다. 박식하면 격한 마음이 가라앉지만 요한의 사랑은 예리한 통찰력과 지식에의하여 퇴색하지 않았다. 그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다섯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다. 요한복음의 서문은 로고스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요한에게는 “그리스도인 플라톤”(ChristianPlato)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삼 세기의 교부들은 계시록의 필자에게 “신학자”란 칭호를 붙였다.

5.말년의 요한

소아시아 태생으로 요한의 제자이면서 폴리갑(Polycarp)과 잘 아는 이레니우스(Irenaeus)는 요한은 주후 98년까지 에베소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을 독살시키려는 음모에서 하나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셨다고 한다. 이 전설은 뱀이 그려진 성찬배가 요한을 상징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또 다른 전설은 핍박받는 동안에 끓는 목욕탕에 던져졌으나 요한은 그 속에서 살아났다고 한다.
에베소에서 멀지 않은 에게 해 복판에 있는 아름다운 섬인 밧모에 요한이 유배된 일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요한은 계시록의 인사말에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에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1:9)라고 썼다. 밧모섬에서 도미시안 황제에 의하여 추방된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책에 대한 멧세지를 받고 환상을 보았다. 순교자와 성도와 하늘의 승리를 본 요한의 마음은 기뻤다. 계시록의 마지막인 22장에서 요한은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라고 썼다(계22:8)

트라얀(Trajan) 황제는 요한이 밧모를 떠나서 에베소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소아시아에서 그를 따르는 자들의 선교사업은 그의 목숨이 다할 때 성취되었음을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에서 알 수 있다. 요한은 자기의 영적인 자식들이 진리 가운데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요한은 충분한 보응을 받을 것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이들에게 충고했다. 요한은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의 선행과 디오드레베의 교만함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요한은 그의 영적인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증거하기를 원했다. 요한은 대단히 오래 살았다. 예수를 처음 따를 때 가장 어린 소년이었던 요한은 열 두 사도 가운데서 제일 장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형제인 야고보는 사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죽었다.

은혜 속에 살고 성장하는 것에 관하여 요한의 생애는 많은 교훈을 준다. 요한은 불 같은 성급한 성격을 서서히 가라�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권세에 순종했다. 여든 살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며 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 론

요한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성도들에게 그의 삶을 통해서 어떤 문제와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를 보겠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논한다면 “사랑의 훈련”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는가? 세 가지만 강조하겠습니다.

1.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랑의 주님과 깊이 교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처럼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고동을, 그 사랑의 심장을 느껴 본적이 있으신지요? 글분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절에 사도 요한이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의 가슴에 깊이 기대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면서 그 주님의 호흡을 느낄 때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2.주님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랑의 확인과 확신없이 사랑의 지속이 어려운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3.사랑은 실천할수록 증가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줄수록 늘어납니다. 사랑의 생리는 사랑을 줄수록, 내 사랑의 창고를 계속 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격정적이고 사나웠던 성격의 소유자 요한은 그 격정이 주님께 포로가 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주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을 때, 그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도로 변모하게 되었느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구스타프 도오르라는 유명한 화가가 주님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려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어떻게 주님의 초상화를 그릴까라고 안탔까워 하고 있을 때에 그를 사랑했던 , 예수를 잘 믿는 믿음의 친구가 그에게 찾아와서 이런 유명한 충고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자네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나, 그러면 자네는 주님의 형상에 더욱 가까운 주님의 모습을 그릴 수가 있을 것이요“

여러분의 삶 속에서 주님의 형상을 그리고 싶으십니까?
충고는 하나입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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