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Livingston
2007. 5. 4. 10:31ㆍ선교자료/5.선교자료
아프리카 선교사, 탐험가
데이비드리빙스턴
(David Livingston 영국 1813 - 1873)
<출생>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장사꾼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 났지만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였다. 그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 까지 방직공장에서 중노동을 하면서도 공부하는 것을 쉬지않았다.
또한 그의 가정은 경건한 가정이었으며 영국교회를 떠나 독립교회로 전향하였다. 그도 10대 였을 때 회심하고 고학으로 의학을 공부하며 신학도 함께 공부하였다.
<선교사로서의 준비>
그의 공부는 27세에 마칠수 있었고 그는 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하였다.
1839년 런던선교회에 지원하여 선교사로서 허락을 받았으나, 중국으로 가려는 그의 꿈은 중국내의 불안한 정국 때문에 좌절되었다. 런던선교회가 아편전쟁으로인해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는 탐험가로 알려져 있지만 누구보다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적으로 준비하는 자였다.
또한 가난하게 태어나 고생하였던 그는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역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하면서 자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지역선교>
아프리카 선교사인 로버트 모팻을 소개받고 아프리카에 대한 강한 자극을 받아 1840년 12월에 큰 기대를 갖고 아프리카로 떠난다.
견습선교사로 쿠루만에서 2년반을 머무르면서 1년 이상을 탐험을 위해 선교기지를 떠나있게 된다(최대의 탐험의 꿈은 아프리카 횡단하는 것이었다).
1. 아프리카중앙에서 시작하여 강을따라 북서쪽으로 향해 루안다 해안에 이르른다
2. 정부의 공식 탐험대의 일원으로 아프리카를 탐험하지만 그는 복음 전파에 대한 사명은 포기하지 않고 서부해안에 살아서 도착하여 역사적인 탐험을 마무리한다.
3. 1865년 나일강의 근원을 밝혀내기 위하여 세번째 이자 마지막 탐험을 시작하며 힘든 시기를 보낸다. 육체의영양부족,열병,빈혈등으로 쇠약해지기도 했다.
-16년 간 아프리카 선교사로 일하다가 영국에 일시 귀국했을 때 글라스고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이때에 그는 심한 열병과 풍토병으로 고통을 당해서 볼 수 없을 정도로 야위어 야해진 모습이었고 팔은 사자에게 습격을 받아 부자연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고 한다.
그는 그가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이해심이 전혀 없고 핍박을 가하는 원주민 가운데 있으면서 그가 그들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도우신 하나님 뿐이라고 말하였다
-1873년에 그의 생을 마감했을 때 그는 탕가니카 호 근처의 우지지에서 그의 아프리카 하인에 의하여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런던의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 묻혀 있는 그의 묘비에 이렇게 씌어 있다고 한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선교사,탐험가, 1873,5,1 잠들음. 30년 동안
그의 삶은 중앙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되다'
라고 씌어있다고 한다.
Daivid Livingston박사
1870년도 Oxford대학에서 선교비 모금을 위한 모임의
주강사로 초청되었을 때 그의 모습은 처참한 길거리
구걸하는 자의 모습보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육신과
행태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놀라운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도전과 복음의 능력을
실감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품 안에 계신
한 하나님의 멋진 청지기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해 봅니다..
시간이 흐른 후..
난
내 묘비위엔 무엇이라 쓸까?
당신은
무엇이라 쓰시겠습니까?
first of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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