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 제대로 알고 읽기

2006. 5. 17. 01:10참고자료/7.이단·타종교

『다빈치 코드』 제대로 알고 읽기
                                 산드라 미셀 미국 가톨릭 저널리스트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에서 사용하셨다고 하는 잔, 곧 성배(聖杯, Holy Grail)에 관한 이야기는 아서왕 전설과 같은 서양의 각종 전설에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던 것이 최근 미국 소설가 댄 브라운의 메가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에 등장해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설은 루브르 박물관장 자크 소니에르의 살해 사건으로 시작되고, 하버드대 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과 소니에르의 손녀이자 암호 해독가인 소피 느뵈는 주인공으로서 이 사건에 참여한다. 이들은 소아마비를 앓는 백만장자인 역사학자 레이 티빙과 함께 경찰과 오푸스 데이의 미친 알비노 수도승 사일래스를 따돌리고 파리를 떠나 영국으로 도망친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서 성배에 관한 여러 가지 전설을 음모 이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곧 성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사람이며 여자이고, 그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성배는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를 의미하며 막달레나는 자신의 자궁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을 품은 그릇이며, 예수의 아이를 낳은 인물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성배 수호자들은 진실을 보호하고 그리스도의 혈통과 물질적 그릇이 아닌 막달레나의 유골을 보호해 왔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성배를 찾아 떠난 원정은 말 그대로 마리아 막달레나의 뼈 앞에 무릎을 꿇기 위해 떠난 원정”이었던 것이다.
뉴욕 타임지의 베스트셀러로 등장한 이 충격적인 책은 스릴러와 로맨스 소설의 기법을 결합시킴으로써 상업주의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왜곡된 허위의 사실(史?)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도서들을 전거로 하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통해서 “모든 신앙은 꾸며낸 거짓말에서 비롯된다.”를 반복적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위험성이 있다.
 
『다빈치 코드』의 수많은 오류들
저자는 금성(Venus)의 움직임이 여신을 상징하는 별 모양(이른바 이슈타르 모양)을 그린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올림피아드의 주기와 상관이 없다. 고대 올림픽 경기는 아프로디테가 아니라 제우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올림피아에서 4년마다 개최되었고, 현대 올림픽의 오륜기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고리가 여신에게 찬사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 또한 잘못된 것이다.
한편, 미술과 문학 작품, 심지어 디즈니 만화에서까지 여신의 의미를 찾으려는 저자의 노력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소설은 메로빙거 왕조가 파리에서 세워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교황들이 한때 아비뇽에 살았던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마녀 사냥의 일환으로 5백만 명의 여자들을 화형에 처했다고 하는 저자의 주장은 역사 기록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마녀 사냥과 관련한 최근 기록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마녀 사냥 기간 동안 3-5만 명의 희생자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교회의 처형을 받은 것이 아니며, 여자만 처형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또한 모든 사람이 화형에 처해진 것도 아니다. 교육 받은 여성들과 여사제 그리고 산파들이 마녀 사냥꾼들에게 잡혀갔다는 저자의 주장은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신 우호적인 자료들과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오류는 고딕 건축물을 다루는 저자의 태도에서 볼 수 있다.
저자는 고딕 건축물을 여신 숭배를 상징하는 완벽한 양식으로 보고, 초심자들이 혼동을 느끼도록 메시지를 암호화한다. 『다빈치 코드』에서 주인공은 “대성당의 길고 빈 본당은 여자의 자궁에 대한 은밀한 이교도의 헌사입니다. (…) 입술 모양의 용마루와 통로 위에 있는 음핵 모양의 작은 다섯 잎 꽃 장식으로 완성된 겁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이교 사원과 같이 고딕 성당도 여신의 몸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내용은 소설의 주인공 랭던의 의견으로만 무시될 수 없다. 랭던은 샤르트르 대성당의 돌들에 숨겨진 여신 숭배에 관한 강의에 대해 언급한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해석은 고딕 양식 건물의 실제 발전과 건설 과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한편 템플 기사단원들은 그 시대 대성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전 유럽의 성당들은 주교들과 교회법에 따라 운영되었다. 그들은 “성스러운 기하학”의 천재가 아니며 성당을 직접 짓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석공의 대가들도 아니었다. 템플 기사단의 모든 교회가 둥근 모양이었던 것도 아니며, 둥근 모양이 교회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둥근 모양은 성스러운 여성에 대한 헌사가 아니라, 성묘의 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실제로 고딕 양식 교회는 여성을 상징하는 개념과 관련이 없다. 중세시대 대성당들은 일반적으로 서쪽에 세 개의 앞문이 있으며 북쪽과 남쪽에 트랜셉트(transept, 건축용어로서 십자형 교회당에서 본당과 부속 건물을 연결하여 주는 공간을 말한다.`-`편집자 주)로 들어가는 세 개의 입구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여성의 몸 가운데 어떤 부분이 이 트랜셉트를 상징하고 있는가?
템플 기사단이 설립되기 전에 건설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에도 입구 위에 비슷한 아치 장식이 있다. 고딕 양식 교회와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는 모두 로마 시대 건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대 바실리카식의 긴 직사각형의 회중석이 있다. 저자와 『다빈치 코드』에 영감을 준 자료들은 데니스 성인과 윌리엄 두란더스와 같은 중세 성직자들이 교회 건축물에서 읽었던 상징주의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것은 확실히 여신 숭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잘못된 주장들
앞에서는 소설 속에 나타난 사소한 오류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이 책이 얼마나 불성실하게 쓰였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저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로 문헌 역사를 계획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댄 브라운은 자신이 영감을 얻은 수많은 자료들을 모아 제멋대로 결합시켜 버렸다. 마이클 배전트 외 2인의 공동 저작인 『성혈, 성배』(Holy Blood, Holy Grail)의 내용을 토대로 저자는 상그랄(Sangraal, 성배)이라는 중세 불어를 제멋대로 Sang(피)와 raal(왕의, royal)로 분리함으로써 성배의 개념을 ‘성스러운 혈통’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소설에 따르면 이 성스러운 혈통은 예수와 그의 부인 마리아 막달레나에서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중세시대 프랑스의 메로빙거 왕조에까지 이르며, 이 왕조가 몰락한 이후 현재까지 그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프랑스에 있다고 한다. 시온 수도회의 지도자 피에르 플랑타르도 이 혈통에 속한다고 한다. 시온 수도회는 1956년 프랑스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한 단체로서 템플 기사단을 지지하며 고대성을 주장하였다. 이 수도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직되었으며 1962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섰다. 한편 이 책에 묘사된 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의 명단은 영화 감독 장 콕토를 제외하고 나머지 뉴턴, 보티첼리, 빅토르 위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위조된 문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저자는 시온 수도회의 정치적 동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템플 기사단의 폭로』(The Templar Revelation: Secret Guardians of the True Identity of Christ)에 나타난 이 조직에 대한 견해를 끌어들였다. 곧 이 수도회는 고대 영지주의 학문과 그리스도의 본래 사명에 관한 기록을 보호하고 있는 은밀한 여신 숭배자들과 같은 이교도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 나오는 또 다른 가설들, 곧 그리스도와 마리아 막달레나는 혼인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맺은 사이로서 이시스의 성적 비밀 의식을 행한다는 내용은 생략했다.
『성혈, 성배』와 『템플 기사단의 폭로』에서 저자는 성서와 예수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이미지를 가져왔다. 곧 예수는 메시아도 아니며 가난한 목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부유하고 교육받은 종교 지도자로서 다윗의 왕좌를 다시 얻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그의 권한은 벤자민 왕족의 부유한 여인 마리아 막달레나와의 관계로 확대된다. “그리스도에 관해 우리 아버지들이 가르쳐왔던 모든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다빈치 코드』의 등장인물은 슬퍼한다.

그러나 저자의 잘못된 그리스도론은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저자는 현재의 신약성서가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후에 위조된 문서로서 진짜 복음서는 현재 영지주의 문서에만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신성을 인정받았다. 그런 다음 평생 태양 숭배자였던 콘스탄티누스는 모든 오래된 성서 본문을 없애도록 했다. 이러한 이유로 완성된 복음서가 4세기까지 나올 수 없었다. 어쨌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교 교리가 갑작스럽고 전격적으로 변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그럴듯한 변명을 토대로 보자면, 구약성서 또한 근거가 없는 내용이 될 수 있다. 히브리어 성서가 완성된 것은 단지 천 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 원문은 매우 정확하게 전해져 왔고, 천 년 전 사해에서 발견된 구약성서의 두루마리와도 일치한다. 단편적인 내용들과 인용 부분들을 비교하여 성서 원문의 가계도와 역사적 상관관계를 분석하면, 정통 복음서는 기원 후 1세기에 시작되었으며 이는 영지주의 문서들보다 더 일찍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바오로 성인의 서간은 복음서들보다 훨씬 일찍 쓰였다.

초기 교회 문서들과 니케아 공의회 이전 교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늘 예수를 주님, 하나님, 구세주로 믿었으며, 심지어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이 죽음을 의미했을 때도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성서 단편에는 2세기 후반의 날짜가 적혀있고 이미 영지주의 작품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콘스탄티누스가 예수의 신성을 받아들인 것이 저자에게는 못마땅한 일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태양 숭배를 고수해 왔던 콘스탄티누스는 태양 숭배를 새로운 신앙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알렉산더 히슬롭과 같은 반가톨릭주의자들은 가톨릭이 구약 바빌론의 이교의식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다고 비난해 왔으며, 19세기 합리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단지 또 다른 죽은 구세주로 보았다. 『다빈치 코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오래된 비난을 계속해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신 숭배와 마리아 막달레나
댄 브라운은 무엇보다도 쾌락과 성, 그리고 여성을 혐오하는 교회가 여신 숭배를 억압하고 거룩한 여성상을 없애버렸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여신 숭배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에서 지배적인 것이었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히에로스 가모스(hieros gamos, 신성한 혼인)라는 중심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출산이 아니라 성관계 때문에 다산 의식에 집중한다.
놀랍게도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초대 유다인은 솔로몬 사원에서 종교적 매춘을 통하여 야훼와 그의 상대인 여신 세키나를 숭배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은 솔로몬 이후 부패된 왕국의 모습일 것이다(1열왕 14,24; 2열왕 23,4-15). 더군다나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사자음(四字音) YHWH는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야(Jah)와 이브(Eve)의 히브리어 이전 이름인 Havah(하와)가 자웅동체의 물리적 결합을 한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호와란 실제로 16세기 아도나이(주님)의 모음이 YHWH의 자음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여신 숭배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로마 종교들에서가 아니라, 이집트나 히에로스 가모스가 행해졌던 셈족의 땅에서 성행했다. 또한 이시스 여신의 이 비밀스러운 그리스풍 의식은 성의식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저자의 주장과 달리, 타로 카드는 여신의 교의를 담고 있지 않다. 타로 카드는 15세기 순수한 놀이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18세기 말까지 신비적인 모임을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또한 카드의 네 패(스페이스, 하트, 클로버, 다이아몬드)는 성배와 관련된 상징이 아니다. 별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의 개념은 영국의 신비주의자 A. E. 웨이트가 고의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한편 저자는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 『다빈치 코드』에서 막달레나는 참회하는 창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훌륭한 배우자이자 그분의 교회의 의도된 머리로서 베드로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성직자들에게 모욕당한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녀는 자식을 데리고 프로방스 지방으로 도망을 갔다. 그곳은 중세의 이단인 가타리파 신자들이 예수의 살아있는 최초의 가르침을 지키고 있던 곳이다. 시온 수도회는 지하 지성소에서 템플 기사단이 발굴한 막달레나의 유골과 족보를 보호하고 있다. 이 수도회는 또한 이 책의 여자 주인공과 같은 막달레나의 후손을 보호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막달레나를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죄 많은 여인으로 그리고 있으며 베다니아의 마리아와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지만, 이러한 혼합된 내용이 등장한 것은 대 그레고리오 성인의 후기 작품에서이다. 동방교회는 위 두 가지 내용을 분리해서 생각했으며, “사도들의 사도”인 막달레나는 에페소에서 죽었다고 전하고 있다. 막달레나가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했다는 전설은 9세기 이후에 생겼으며, 13세기까지 성녀의 유골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볼란드파를 비롯한 가톨릭 비평가들은 17세기 이후 그 전설의 정체를 폭로하고 세 명의 여인을 구분하였다.

저자는 영지주의 문서인 『필립의 복음서』와 『마리아의 복음서』를 이용하여 막달레나와 예수가 성관계 상대를 의미하는 ‘동료(Companion)’이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사도들은 예수가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고 자신들보다 그녀를 더 좋아하는 것을 질투했다. 저자는 『성혈, 성배』, 『템플 기사단의 폭로』에 나왔던 부분을 똑같이 인용하였으며, 심지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을 인용하기도 한다.
 
템플 기사단
게다가 저자는 템플 기사단의 역사를 잘못 전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종교적 군사 단체인 템플 기사단은 1118년 성지순례를 보호하고자 세워졌다. 이 회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의 힘으로 1128년에 회칙의 승인을 받았고, 수많은 유럽 사람들이 이들을 지원하고자 많은 토지를 기부했다. 1291년 마지막 십자군의 근거지가 함락당한 후 템플 기사단은 자신들의 과다한 자존심과 부로 사람들의 적개심을 사게 된다.
저자는 템플 기사단이 억압받게 된 이유를 ‘군주적’인 교황 클레멘스 5세의 탓으로 돌렸다. 기사단은 클레멘스 5세에게서 성배의 비밀을 얻어낸다. 클레멘스 5세는 “교묘한 계획”을 세워 갑자기 모든 템플 기사단원들을 잡아들여 악마 숭배, 남색, 신성 모독 죄를 뒤집어씌운다. 이들은 고문을 당하고 이교도라는 이유로 화형 당한 뒤 “그대로 티베르 강에 던져졌다.”
그러나 실제로 템플 기사단이 몰락하게 된 원인은 프랑스의 필립 왕과 관련이 있다. 필립 왕은 1307년 이단자라는 자백 때문이 아니라 그랜드 마스터 자크 데 몰리와 관련하여 기사단원들을 체포하고, 지방 종교 재판소에서 약 120여 명에게 화형 선고를 내렸다. 템플 기사단은 1312년에 폐지되었으므로 다른 곳에서 죽음의 고통을 받은 단원들은 거의 없었다. 클레멘스 5세는 자신의 왕에게 조종당하는 나약한 교황이었다. 당시에 그는 아비뇽을 통치한 최초의 교황이었기에 로마에서는 아무도 화형에 처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템플 기사단원들은 다산과 관련 있는 돌을 숭배한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하지만 이는 백여 개의 자백 가운데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남색은 수도회에 수치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우상숭배 의식은 아니었다. 템플 기사단은 신비주의자들의 찬사를 받는다. 성스러운 지혜와 믿어지지 않는 보물의 주인으로서 그들의 신화는 18세기 신비주의와 합쳐지게 된다. 프리메이슨단과 심지어 나치조차도 이들을 형제로 인정하고 있다.
다시 돌아보는 다빈치
다빈치에 대한 저자의 재해석은 그의 다른 주장들처럼 왜곡되어 있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세비야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는 동안 “암굴의 성모(Madonna of the Rock)”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책의 내용은 이미 『템플 기사단의 폭로』에 나오는 것이다.
한편 다빈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분석 또한 우스울 뿐이다. 저자는 “모나리자”를 남녀 양성의(androgynous) 자화상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그림은 지오콘도의 프란치스코 디 바르톨로메오의 부인으로 널리 알려진 마돈나 리자라는 실제 여인의 초상화이다. 또 모나리자라는 이름은 이집트의 다산 신 아몬과 리사(이탈리아어로는 이시스)의 아나그램(anagram, 철자를 순서를 바꾸어 다른 문자를 만들어내는 일-편집자 주)을 흉내 낸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템플 기사단의 폭로』의 저자가 제기한 이론, 곧 “토리노의 수의”가 다빈치의 자화상이라는 이론을 어떻게 놓칠 수 있는가?

저자의 주장은 주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집중한다. 저자는 이 그림을 예수와 성배의 진실을 드러내는 암호화된 메시지로 보고 있다.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테이블 중앙에 잔이 없는 것은 성배가 물질적인 잔이 아닌 증거라고 한다. 그러나 다빈치의 그림은 예수가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요한 13,21)라고 경고한 순간을 극화한 것일 뿐이다. 또한, 예수 옆에 앉은 사람은 저자의 주장처럼 마리아 막달레나가 아니라 세례자 요한 성인과 비교되는 나약한 다빈치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닮은 사도 요한 성인이다. 예수님은 그림에서 한가운데에 앉아있고 양쪽으로 세 명의 사도들이 두 무리로 앉아있다. 다빈치가 정신적으로 동성애의 문제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자신의 그림을 통해 반 그리스도적인 메시지를 암호화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힘없는 결론
결론 부분에 이르자 저자는 뒤죽박죽된 조사 내용을 토대로 형편없이 글을 써 내려간다. 그런데 왜 이처럼 가치 없는 소설을 성가시게 읽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다빈치 코드』는 숨겨진 역사 들추어내기 시리즈에 해당하는 책이다. 『다빈치 코드』는 『아발론의 안개』(The Mists of Avalon)에 나오는 이교도의 영지주의를 이용해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결국 얼마나 많은 평범한 독자들이, 묻혀버린 진실이라고 떠들면서 내놓은 내용들이 명백히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을까?
게다가 거짓된 학설로 『다빈치 코드』는 독자들이 가톨릭에 대해 적대감을 갖도록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거짓말로 가득 찬 수많은 신비주의 역사책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등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가톨릭 교회에 대한 댄 브라운의 공격은, 빈정대는 찬사일 수도 있지만 분명 즐겁게 견뎌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최후의 만찬 , 1495~1498년작,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 (복원된모습)
 
*작품설명
 
이 <최후의만찬>은 유월절(과월절)을 기념하려고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모인 장소에서 제자들중 한명이 자신을 배반할것이라 알린후 성체 성사를 했던 일화를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레오나르도는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주제를 나타내고 있는데 레오나르도는 배반자가 누구인지를 나타냄과 동시에 배반의 소식을 듣고 놀라는 제자들의 반응도 잘 표현하고 있다.
제자들은 예수에게"제가 배반할것인가요?주님" 하고 묻고 있으며 배반자가 누가 될것이지 모르는 제자들은 자신만은 무죄라는 표정으로 서로에게 질문하며 웅성이고 있다.
그 동안에도 예수는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앉아있다.
레오나르도가 <최후의만찬>을 이러한 모습으로 표현한데에는 이유가 있다.
표정과 행동으로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는 인상학을 연구했던 레오나르도는 사람의 성격과 나이에 따라 서로 다른 표정과 행동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제자들이 서로에게 묻는 장면들 만들어서 동일한 사실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표현한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다양한 만큼 사람들의 행동도 여러 가지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그래서 마치 무대위의 배우를 다루듯 레오나르도는 만찬장에 제자들을 적절히 배치했다.
특정적인 배치방법은 드라마틱한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  제자들을 세사람씩 한 그룹으로 결속시키는 방법으로 배치를 했는데 세 사람과 다음 사람의 그룹을 어떤 인물의 팔이나 제스처로 다음 그룹을 연결시키고 있는것을 알수 있다.
이처럼 레오나르도는  예수를 중심으로 좌우 여섯명의 제자를 연관시켜 감정이나 동작, 체스처등 극적 효과를 높이는 기능을 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예수가 희생되기전날 저녁 열두제자들이 느꼈던 기분을 다시 느낄수 있도록 했다.
 
이 작품은 식당의 건물 구조를 고려해 그린것이기 때문에  레오나르도가 이 작품을 만들때 바닥에서 4미터 높이에서 스케치를 했는데 레오나르도가 작업한 높이인 4미터의 높이에서 <최후의 만찬>을 바라보면 그림의 중심에 있는 예수의 머리 부분으로 원근선이 모아지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다.(제일 위에 그림 참고)
그러나 그보다 휠씬 낮은 위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실제 공간과 그림속의 공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똑같이 받는데 이와같은 신기한 효과는 레오나르도가 그림의 장면을 사람들이 무대를 보는 것처럼 구성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는 그림을 경사지게 그려 식탁의 윗면을 볼수 있도록 했으며 원근선을 조정해 깊이감을 주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수도원의 식당 왼쪽에 있는 실제 창문에서 빛이 비추는 것처럼 처리해 그림속 장면을 더 실감나게 표현했다.
 
 
*최후의 만찬장 인물의 앉은 순서 (그림의 왼쪽부터 차례대로 정렬)
 
<바르톨 로메오> <큰형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유다> <요한> <예수> <작은 야고보>
<토마> <필립보> <마태> <유대> <성 시몬>
 
*작품속의 인물특징
 
<바르톨 로메오> - 만찬식탁의 맨 끝의 식탁에 두 손을 짚고 몸을 지탱해 서 있다.
 
<큰형야고보> - 요한의 큰형 야고보는 팔을 펴서 베드로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있다 .  
 
 <안드레아> -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유다 뒤에서 열 손가락을 펴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는데 두 손을 들어 관찰자를 향해 손바닥을 보이고 있는것이 마치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멀리하려는듯 행동하고 있다.
 
<베드로> - 성질이 급한 베드로는 요한의 어깨를 잡고 누가 배신자인지 물어보려는듯 일어서고 있는데 베드로의 오른손에 식사때 쓰는 칼을 쥔채  앞에 있는 가룟 유다의 옆구리를 본의 아니게 건드려 유다는  놀라 앞으로 팔꿈치가 넘어지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베드로의 오른손에 칼을 쥔 손이 익명의 손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다> - 예수외에 유다만이 이 사건의 비밀을 알고 있는데 어둡게 그려진 유다는 유일하게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유다는 배신의 댓가로 받은 30개의 은화가 담긴 주머니를 움켜쥐고 있으며, 베드로의 칼이 옆구리를 본의 아니게 건들린 것에 조금 놀랐다는듯 앞으로 넘어지면서 소금 그릇을 엎지르는데 이 장면이 멋진 긴장 효과를 내고 있다.
 
<요한> - 예수가 사랑하는 요한은 예수의 오른쪽에 앉아 식탁위에 손을 가지런히 놓고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다빈치코드"에서는 이 요한을 막달레나로 보고 있다. 흐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과 섬세하게 모아쥔 손, 그리고 살짝 솟은 가슴으로 보아서.. 또한 예수와 막달레나가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처럼 앉아서, 서로 반대쪽으로 몸을 슬며시 내밀고 있어서 V모양, 즉 성배와 잔, 여자의 자궁으로 나타낸다고 보고 있다. 또한 예수와 막달레나가 부부임을 나타내는 증거로서, 막달레나는 파란색옷에 붉은 가운을, 예수는 붉은 옷에 파란 가운을 입었다는 즉 현대판 커플룩이라는데....
 
 
<예수> - 자연스럽게 보이는 예수와 제자들의 위치도 실은 레오나르도가 치밀하게 계획하여 배치한것인데 제자들은 자신만은 무죄라는 표정으로 서로에게 질문하며 웅성되고 있지만 그 동안에도 예수는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앉아있다.
 
<작은야고보> -그리스도의 왼편에 예수의 용모와 제스처를 닮은 동생 야고보가 양쪽팔을 벌리고 비극을 예감한듯이 공포스럽게 앉아있다.
 
<토마>의심많은 토마는 야고보 뒤에서 검지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설마 나는 아니죠? 라는듯이 자기 머리를 가리키고 있다.
 
<필리보> - 레오나르도는 필립보를 매우 슬퍼하는 모습으로 그렸는다 가슴에 두손을 모으고 자신의 순결을 주장하고 있다.
 
<마태오> - 마태오는 두 동료에게 얼굴을 돌리고  그리스도 쪽으로 두 손을 뻗은채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식탁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두명의 제자를 바라보고 있다.
 
<유대> - 작은 야고보의 동생 유대는 갑작스런 사태를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손으로 식탁을 짚고 다른손은 식탁을 내리칠 듯이 들어올리고 있다.
 
<성시몬> - 식탁맨 끝에 앉은 성 시몬은 대단한 위엄을 보이고 앉아 있는데 옆에 앉은 유대와 같은날에 순교해 같은날 기념하고 있다.
 
모나리자
 
*<모나리자>에 대한 "다빈치 코드"의 해석
 
"다 빈치는 왼쪽의 수평선을 오른쪽보다 일부러 낮게 그렸습니다."
"사실 이것은 다 빈치가 살짝 장난을 친 것입니다. 왼쪽에 있는 시골풍경을 낮게 그려서, 오른쪽보다 왼쪽의 모나리자가 커보이게 한 겁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때, 남자와 여자라는 개념은 한족씩을 차지하는 거였습니다. 왼쪽이 여자, 오른쪽은 남자였지요. 다 빈치는 여성이 가진 본질을 매우 아꼈기 때문에, 오른쪽보다 왼쪽에서 보이는 모나리자를 더 크게 보이게 한 것입니다. ....... 모나리자와 다 빈치의 초상화들을 컴퓨터로 비교 분석해 보면, 얼굴에서 놀랄 만큼 일치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 빈치가 무엇을 하고자 했든, 그이 모나리자는 남자도 여자도 아닙니다. 즉 모나리자는 남녀양성을 모두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 둘을 섞고 있든지요.... 이집트 신인 '아몬(AMON)'은 양의 머리를 가진 남자로 그려집니다. 아몬의 난교와 곡선 뿔은 현대 우리 사회의 성적 속어인 '호색한(뿔을 나타내는 단어 hom에서 호색을 나타내는 속어 homy가 나오게 된 것)이라는 말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 아몬의 상대는 다산을 상징하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입니다. 이시스는 고대 그림문자로 한때 '리자(L`ISA)라고 불렸습니다. AMON L`ISA... 이는 모나리자의 아나그램입니다. 모나리자는 얼굴만 양성처럼 보이는 게 아니고, 그녀의 이름 또한 남자와 여자의 신성한 결합인 아나그램인 것입니다.
 
 
* <암굴의 마돈나>에 대한 "다빈치 코드"안의 해석
<암굴의 마돈나>를 그린 다 빈치의 원래 보수는 '순결한 관념의 협회'라고 알려진 단체에서 지불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협회는 밀라노의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있는 제단의 세 폭짜리 그림 중 중앙에 들어갈 그림이 필요했다. 수녀들은 레오나르도에게 구체적인 치수와 그림에 들어갈 주제도 미리 알려주었다. 성모 마리아, 아기세례요한, 우리엘, 아기 예수가 동굴에 몸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다 빈치는 그들의 요구대로 그림을 그렸지만, 작품을 전달했을 때 협회의 반응은 공포에 가까웠다. 다 빈치는 폭발적이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세부적인 묘사들로 그림을 채워 놓았던 것이다. 그림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로 보이는 갓난애를 팔에 두르고 앉아 있다. 마리아의 맞은 편에는 우리엘이 앉아 있는데, 마찬가지로 아기 요한과 함께다. 예수가 요한을 축복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그림에서 예수를 축복하는 것은 요한이다.... 그리고 예수는 자기의 권위를 양도하고 있다. 더욱 심란한 것은 마리아가 아기 요한의 머리 위에 한 손을 높이 들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독수리의 발톱처럼 보이는 마리아의 손가락들은 보이지 않는 머리를 쥐고 있는 것처럼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분명하고 놀라운 이미지는 마리아의 굽은 손가락들 바로 아래에 있다. 우리엘이 자기 손으로 뭔가를 자르는 모습이다. 마치 마리아의 손 같은 발톱에 잡힌 보이지 않는 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말이다. .......<암굴의 마돈나>의 묽어진 버전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정설대로 배열되어 있다. 이 두 번째 버전은 <암굴의 성모>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런던 국립 박물관에 걸려있다.
 
댄 브라운

한때는 평범한 교사였던 댄 브라운은 《다 빈치 코드》로 일거에 세계적 베스트셀 러 작가가 되었다. 그는 1998년에 Digital Fortress를 출간한 이후, 《Deception Point》《천사와 악마Angels&Demons》《다 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를 펴냈다. 《천사와 악마》와 《다 빈치 코드》에는 댄 브라운이 창조한, 지성과 모험심을 두루 갖춘 주인공 로버트 랭던이 등장한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이며, 인류의 비밀을 파헤치는 핵심 인물이다.댄 브라운은 《천사와 악마》에서도 실제와 허구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소설의 상상력이 얼마나 방대할 수 있으며,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주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래서 미국 언론은 그를 두고 '소설계의 빅뱅'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