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교회의 신학사상

2006. 4. 23. 22:59선교자료/2.중국선교자료

삼자교회의 신학사상
                                                                                      안대욱

‘중국삼자교회는 어떠한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는가’?(중국삼자교회 지도자들은 삼자교회라는 이름으로 저들의 교회나 교단을 부르는 것보다 중국교회 혹은 중국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그들의 교회가 중국전국의 교회 전체의 대표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므로 본고에서는 편의상 삼자교회라고 지칭하기로 한다.)
  이 문제는 한편으론 단순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리 단순하지 않은 요소도 있는 문제이다. 삼자교회의 신학사상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그 배경이 되는 중국의 몇 가지 전통사상과 현대 사상을 우선 간단히 논하고, 그 신학 자체에 대해 논하기로 하자. 


I.중국교회 신학형성의 배경
 
  현대의 중국삼자교회나 독립가정교회가 중국 전통적 사상가들로부터 그 무엇을 직접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으로 현재의 그들의 신학사상을 형성했다고는 볼 필요는 없으나, 신학자들을 포함한 모든 중국인들의 사고방식과 사고구조 자체는 수천 년간 그들의 사상과 문화전통의 배경 및 모든 관련된 사회 환경 하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삼자교회 신학의 경우 직접적인 사상의 배경이 되는 것은 중국공산당의 종교정책이다.
  독립가정교회의 신학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강한 영향을 준 사상은 현대중국의 토착기독교회 지도자들의 사상임을 우리는 알지만, 옳든 옳지 않든 그 어느 쪽 교회의 사람들 모두 중국 전통사상과 그들의 민족성과 기질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어느 계통 사람들이건 직접 혹은 간접으로 중국의 정치 환경에까지 사회 환경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학자체가 곧 성경 자체는 아니며 신학 자체가 곧 우리들의 문화를 통해서 나온 사고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는 더욱 그렇다.   
   
  여기서 그럼 먼저 중국교회 신학형성의 배경이 되는 것을 하나하나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A. 중국의 전통사상

  중국은 고산과 고원, 대 사막과 해양에 의해 폐쇄되고 고립된 지역과 광활하고 자원이 풍부한 대륙의 땅을 가지고 있어서 자아 중심적인 세계관과 내부지향적인 철학사상이 형성되었으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 및 내세보다는 현실을 중시하는 사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더욱이, 거대한 농경사회 하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기후와 계절의 변화를 포함한 자연의 이치 앞에서 조화와 순응의 이치를 터득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가운데서 중용(中庸)과 조화를 중시하는 사상이 중국 사상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춘추말기 시대인 기원전 6세기경 당시 중국은 노예사회에서 봉건사회로의 전이(轉移)는 기존가치와 질서에 대한 일대 혼란을 야기하게 되었다. 이 때 지역봉건제후의 정치적 야심은 새로운 질서와 가치추구와 함께 다양한 사상의 출현을 낳았다. 중국 전통사상의 대부분은 주로 이 춘추전국시대에 출현한 것이다. 이 때 출현한 사상가들은 유가(儒家)를 비롯하여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음양가(陰陽家) 명가(名家) 종횡가(縱橫家) 잡가(雜家) 농가(農家) 소설가(小說家) 병가(兵家)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후대에까지 존속하면서 영향을 끼친 주요 사상으로는 유가(儒家) 도가(道家) 법가(法家) 묵가(墨家)의 네 가지 사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전통사상 가운데 유가사상(儒家思想)과 노장사상(老莊思想) 또는 도가사상(道家思想)이라고 불리는 사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1. 유가사상(儒家思想)

  유가사상(儒家思想)은 춘추시대의 魯나라 사람으로서 시대의 홍탁함을 개탄하면서 도덕성의 회복을 설파했던 공자(孔子: BC 551-479)에 의해 시작되어 맹자(孟子)와 순자(筍子)에 의해 발전된 사상이다. 공자는 유가사상(儒家)의 핵심사상으로 仁의 구현을 강조하고 그 실천방안으로 ‘중용(中庸)’의 사유방식을 제창했다.   
   
  유가(儒家)를 비롯한 중국철학 사유의 기반은, 본체론적인 형이상학에 기초한 순수사변이나 이지론(理智論)에 둔 것이라기 보다는, 현세에서 사람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심을 둔 ‘현실가치 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윤리문화 사상이었다. 중국문화는 희랍의 형이상학적 순수사변을 즐기는 전통과는 달리 경험적이고 현세적이며 공리적(公利的)인 윤리관이 사유의 기본이 되어왔다. 이러한 중국의 인문주의정신에 입각한 문화전통은 주(周)나라 초기에 유가사상(儒家思想)을 통해 형성되어 춘추 말에서 전국 말까지의 제자백가의 백가쟁명을 거쳐 이론의 심화를 거친 후 한(漢)나라 이후 중국전통문화의 정통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청나라 말기까지 계승하여 유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문주의적 혹은 인본주의적 윤리문화를 주축으로 발달해왔다(조경현, 1997: 21).

  공자(孔子)는 격변의 시기인 춘추말기시대 周나라의 통치원리로서 공자는 周禮 즉, 주나라의 사회질서의 회복을 제기하였고, 그것을 강조하고 깨우치는 것을 天命으로 생각하였다. 나라 질서가 뿌리에서부터 해체되기 시작했던 사회에서 그는 군자라고 불리우는 세습귀족들과 사회 변화를 통해 영향력을 획득한 지식층 사람들로 하여금 禮를 통하여 새로운 사회건설에 앞장서 줄 것을 주창했다. 혼란한  시대적 상황과 관련되어 나나탄 유가사상은 현실, 인생, 도덕, 지식, 교육 등을 중시하며, 만민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등 인간세상의 도덕적 규범을 담고 있으며 ‘효(孝)’와 같이 가족간에 지켜야 할 덕목을 중시한다. 또한 사회정치와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결합시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濟家治國平天下)의 통치원리도 제공하였다. 유가사상이 2천년 간 중국사회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상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사상이 ‘기존의 질서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보수적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치자(治者)를 위한 통치이론으로서 기능할 수 있었기 때문’(강준영, 1997: 38-39)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가(儒家)의 이러한 윤리사상과 통치원리는 그 나름대로의 현세 중심적이고 가치중심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가(儒家)는 이와 같은 장점이외에 인간 중심적 혹은 인본주의적 사고와 문화의 왜곡에서 오는 치명적 약점을 또한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런 사상은 평화롭고 문제가 없는 시대가 아닌, 난세나 혼란기에는 그 장점보다 약점이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키는 작용을 하게 되었다. 즉 시대가 어려울 때 이러한 사상은 명분만 이용될 뿐 모든 정치와 현실을 권력가나 득세가의 야심을 합리화 혹은 정당화시켜주는 수단으로 전락되는 양상을 보여주었고, 따라서 사회혼란을 가중시켰다. 유가의 이런 성격은 봉건주의적 군주나 사회의 각 지배계급 가운데서 더 환영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조경현, 1997: 21-22). 
  2. 도가사상(道家思想)

  춘추시대 때 씨족공동체의 해체 및 신분질서의 동요 혹은 변화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동시대의 사람들인 공자와 노자는 각기 그 관점이 달랐다. 천하의 안정과 평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선 같았으나, 공자는 사회혼란 혹은 변화를 周禮의 붕괴로 보았고, 노자는 그것을 人爲가 초래한 문명의 소산 즉 人爲的인(자연적이 아닌) 문명의 소산으로 보았다.
    또한 혈연적 도시국가에서 관료적 군주국가로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부조리와 사회모순 및 현실비판을 莊子는 그의 저서(莊子)에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도가사상 즉 老子와 莊子의 노장사상은 위와 같은 유가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인간사회를 자연 그대로 혹은 본래적 기능으로 회복시키는 방법으로 無爲自然의 道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유가의 사상이 현실 긍정적인 사상이라면 노장사상은 문명 비판적 不正精神이다. 유가의 사상이 ‘자연의 인간화’를 추구한다면, 도가는 ‘인간의 자연화’를 추구한다고 본다. 인문정신에 입각한 가치추구를 지향해온 유가와 이에 대한 상호역할로서 인간을 자연으로 귀환시키고자 한 이러한 도가(道家)의 사유체계는 공자사상과 함께 중국문화의 양대 조류를 형성하였다. 유가사상이 체제유지와 통치를 위한 사상이라면, 도가는 반체제사상이며 탈지배사상이라고 본다.   
  ‘道’란 우주만물을 탄생시키는 근원적 우주의 본질로서 항구 불변하는 것이며, 그 작용(역할)은 無爲, 즉 인위적인 것이 없는 자연 그대로를 말한다. 바로 무엇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인간이 인위적으로 무엇을 함에 있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 즉 무위자연의 사상이 그들 사상의 핵심이다. 이 사상은, 사람의 생사여부마저도 자연계의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은 그 문제에 있어서도 자연과 동화해야 한다는 철저한 자연주의로
발전하였다(조경현, 1997: 21-22).     

  도가사상(道家思想)은 한 때 유가(儒家)나 법가사상(法家思想)에 의해 배척받았으나 그후 장기적인 혼란이 있었던 위진남북조시대에 이르러 다시 성행하였다. 그 이유는 도가사상이 현실로부터 도피하거나 곤란 중에 처한 사

람들이 쉽게 의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도가사상은 나중에 다른 사상뿐 아니라 신비적인 요소들까지 가미하여 점차 미신을 종교화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長生不老를 실현하기 위해 도를 닦는 것으로 변질되어 더 이상 학문적 발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체제에 혐오적인 지식인이나 안정을 추구하는 일반 백성들에게 쉽게 받아들여 유지되어 온 중국인의 대표적인 사상이다(강준영, 1997: 40-41).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唐逸은(중국을 주께로, 1993년 9,10월호 P36~P39) ‘중국의 기독교와 문화’에 대한 세미나에서 “위와 같은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적 세계관 및 가치관은 대다수 중국인의 생활태도와 정신적 습관적 사고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인격적인 부름보다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며 정의되기 어려운 그 무엇이다. 유가(儒家)나 도가(道家)에서는 자연에 대한 원리들을 믿으며 그들의 자연관이 인간의 의식 체계를 이룬다고 믿는다. 즉,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고 인간의 의식 방향과 자기 방어들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개개의 사물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세속적 정신과 자주적 인간관과 자연관이 중국인의 가치형성의 근거가 되어왔다“고 한다.

  게다가 부단히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그들의 이러한 사상은 어쩌면 價玉銘이나 玉維蕃
이 말하는 것처럼, 중국인의 철학이 곧 ‘信이

나 知보다도 行을 중시’하는 일종의 ‘경험주의적 철학’(王維藩, 1992:82)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3.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서의 전통적 관념

  중국공산당의 종교정책 형성의 배경을 논할 때 또한 언급해야 할 내용은, 중국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서구에서 이해하는 것과 같은 종교와 국가의 분리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중국인들은 국가의 종교지배권을 결코 의문시하지 않았다.

  B. 중국의 현대사상

  중국 삼자교회의 신학사상 형성의 배경이 되는 사상은 아래와 같이 4 가지를 들 수 있다.

  1. 신문화운동 기간에 일어난 반 기독교운동사상

  1919~1923년에 일어났던 5.4운동(신문화운동)의 산물로 나타난 반종교적 사고와 반기독교운동은 현 중국공산당 정권하의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토착교회운동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으며, 삼자교회도 중국교회 역사를 논할 때나 자기들의 현재 입장을 논증할 때나, 과거 토착교회의 발흥과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논할 때 역사적인 사실과 그러한 사상을 적지 않게 언급하였다. 

  2.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종교관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역사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종교를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종교가 인류의 생산방식의 발전에 상응하여 생산의 연속 소멸될 것’이라고 보았다. 즉, 공산주의 이상사회가 실현되어 경제생활이 절대보장되고 착취투쟁이 없어지면 종교는 저절로 그 가치를 잃고 소멸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黃恩炬, 1994: 12).
       
  그들은 종교를 ‘인간의 주관적 의식이 황당하고 허망하여 왜곡된 모습으로 현실세계속에 반영된 것’이며,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외부적인 그 어떤 힘에 대한 환상이 사람의 머리속에 나타난 것’(마르크스엥겔스선집III, 354)으로 그것은 일종의 ‘자아분리 현상으로 보았다. 또한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생활에 직면할 용기를 잃게 하여 일종의 거짓된 상황에 빠져들게 하는 사상’이며, ‘착취계급이 피착취계급을 잠식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독’이며 ‘착취계급이 인민을 핍박하는 방법’이고, ‘인민의 아편’이라고 묘사한다(마르크스엥겔스선집II, 2)       

  3. 모택동의 모순이론과 종교관

  (1) 모순이론

  모택동의 모순이론은 사회내에 존재한다고 보는 ‘두 가지 모순’에 관한 것으로, 정치적 이념적 적대적 모순인 1차적 모순과 인민들간의 종교적 차이와 같은 비적대적인 2차적 모순이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모택동의 모순이론을 통일전선정책에 적용할 때, 공산당의 과제는 1차적인 모순들과 투쟁하여 승리하기 위해서는 2차적인 모순들과 연합하거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전략에 따르면 2차적인 모순으로서의 종교가 공산주의와 연합하고 있을 동안 종교인들은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그들의 세계관과 ‘종교적 미신’을 포기하고 점차적으로 ‘객관적인’ 유물론적 세계관을 갖도록 교육하여 결국은 공산당 편에 서게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과정에서 당(黨)의 관대한 교화적 설득을 거부하고 자신의 관점을 고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판이나 위협의 보다 공격적인 방법으로 대처한다. 그리고 필요시에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완강히 저항하는 자들을 결국 격리시켜 그들의 영향력이 감소되도록 한다는 것이다(趙天恩, 1991: 74-75). 
  (2) 종교관

  그의 종교관은 마르크스레닌의 종교관에서 나온 것으로 그 외에도 더욱 실효적인 측면에서 종교에 대한 해석을 발전시켰다. 그는 말하기를 “종교는 국가사회에 공헌할 때는 존재가치가 있지만 만일 국가를 침해한다면 투쟁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불평등조약에 의해 중국에 침투한 기독교는 제국주의의 침략적 도구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기독교를 제국주의의 앞잡이로서 대항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가 거부한 것은 기독교신앙의 내용이 아니라 기독교와 제국주의의 연계성에 있었다.
 
  그는 통일전선이론으로 기독교에 대항하였는데, 이 이론은 공산당은 더 강한 적에 대항하기 위해 일시동안 다른 비공산세력과 연합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연합전선을 펼쳐 공동의 적을 대항해 나가기 위해서는 통일된 행동노선을 취하고 있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서로를 용인할 수 있다거나 서로를 향한 투쟁의 필요가 소멸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1차적인 적이 소멸된 후에 2차적인 적은 곧바로 1차적인 적이 되는데, 종교가 바로 그러한 2차적인 적이다. 이와같이 제국주의와 같은 1차적인 적이 소멸된 후에는 곧바로 1차적인 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黃恩炬, 1994: 11-18).           

  4. 중국공산당내의 종교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입장

  종교정책에 관한 두가지 큰 흐름은 강경노선과 온건노선이다. 문화대혁명 혁명이 끝나는 기간과 4인방의 집권기간인 약 1963~1976년 사이의 기간은 종교에 대해 강경노선을 취하였던 때이다. 등소평 집권이후 강택민시대에 해당하는 지금은 온건노선을 나타내는 기간이라고 할 수있다(趙天恩, 1991: 73-76).

  이 둘 중, 강경파가 원하는 것은 종교를 철저히 말살시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보였던 문화혁명기의 공산당정부는 기존의 어용교회인 삼자교회마저도 완전히 문을 닫게하였다. 그러나 문화혁명이 끝난 후,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에 대해 어느 정도 온건한 입장을 표명하는 등소평과 개혁개방파가 정권을 잡게 된 시대부터는 다시 ‘삼자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문이 새롭게 열렸다. 중국의 공인삼자교회는 이러한 새로운 정치환경에 걸맞고 자신들의 통일전선정책에 부합되는 교회만을 허용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 가운데 중국공산당과 관련된 문제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1980년 이후부터 중국공산당은, 꾸준히 적극적으로 현 사회에 부응하는 사회주의적 기독교회설립 및 기독교신학형성을 위한 환경조성을 직간접적으로 지시 혹은 격려해왔다. 직접적으로는,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문을 새롭게 열어주어 정치환경에 맞는 교회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또한 기타 종교정책과 신학사상을 중심으로 1981년에 재개한 남경의『금릉협화신학원』을 필두로 13개의 공인 신학교가 재개 운영되었으며 중국삼자교회의 신학운동을 형성해가는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하였다.
  간접적으로도 중국공산당의 종교정책을 기독교회와 신학에 반영시키기 위한 노력을 공산당원 사회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그 한 예로, 중국공산당정부의 종교문제 연구부문의 대변 기관의 하나인 중국사회과학원의 한 연구원은 최근 자신의 연구를 기독교의 신학에까지 연결시켜 주장하면서 제안하기를, “종교(기독교)가 사회발전에 순응하는 것은 일정한 진보라고 규정하고, 기독교교리로부터 사회주의에 유리한 해석을 끌어내어 중국적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에 걸맞는 신학을 창조, 발전시키자”(江平, 1983: 142, 146)고 말하기 시작했다.       


  C. 중국공산당의 종교정책:
그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5가지 사    상과 종교정책의 흐름 및 특성

  1. 직접적 배경이 되는 5가지 사      상과 공산당의 중국 진입사건

  중국공산당 종교정책 형성의 ‘직접적’ 배경이 되는 주요 요소로 5가지를 언급할 수 있다. (1)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던 전통(위에서 언급) (2) 1919~1923년에 일어났던 신문화운동의 산물로 나타난 반종교적 사고와 반기독교운동 (3)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종교관 (4) 모택동의 모순이론과 통일전선정책 (5) 중국공산당의 종교에 대한 다른 두 가지 입장인 강경노선과 온건노선중에서 공산당 정권을 잡은 자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하는 것으로 이 5가지 중에서 마지막 세 가지는 모두 공산당이 중국땅에 들어간 사실과 관련된 사상들이며 삼자교회 설립과 직접 관련된 사상이다. 그러므로 단적으로 말해서, 중국공산당과 그 종교정책은 자타가 공인하는 삼자교회 신학사상의 핵심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1948년 중국대륙에 공산당이 들어선 사건은 실로 어떤 관점에서 보든지 기독교선교사들이 중국에 입국하여 전한 복음과 신학사상, 토착교회 지도자들이 견지해 오던 사상이 중국교회 전체의 신학사상 형성에 급격하고 상당한 변화를 가져다준 사건이었다. 근본적으로 무신론적인 공산당과 정부는 기독교를 부르주아적 서구제국주의의 앞잡이 혹은 인민의 아편으로 묘사하여 정죄하였다.
  1950년경부터 중국공산당은 공산당혁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기독교의 일부 급진적 인물들(자유주의 신학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소위 기독교혁신운동을 일으켜 새로운 사회주의 정치현실에 따라 전통적인 신앙과 기존 신학의 재사고를 주창하였다. 또한 사회주의 체제를 지지하며 그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신학사상을 구축할 것을 추구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1954년 중국의 기독교와 제국주의 관계를 끊고 ‘중국의 교회를 중국사회주의의 현실에 맞게 개조시킨다’는 명목으로 당과 정부의 지도 감독 하에 정식으로『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소위 ‘삼자교회’)인 공산당의 어용교회를 결성하였다. 그리하여 그 조직 내에 중국의 모든 교회와 기관들과 지도자들로 하여금 귀속을 강요하고 본격적으로 중국교회를 강제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2. 중국공산당 종교정책의 흐름 
  문화혁명 이후의 삼자교회 신학사상의 정치적 배경과 관련된 종교정책의 흐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1978년 12월의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중공 11기 3중전회)의 결정을 들 수 있다. 동 회의 이래로 중국정부와 공산당은 개혁개방을 추구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결심을 분명히 하였다.
  과거와 같은 종교탄압은 지양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초한 종교이론과 종교정책을 새로이 강구해야 하는 시대를 맞은 그들은 종교사상에 대하여 온건한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 예로, 1982년에 발표된 소위 중국 정부의 ≪19호 문건≫은「세계관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는 어떠한 유신론과도 대립이 된다. 그러나 정치행동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자와 애국적 종교신도는 참으로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위하여 함께 분투하는 통일전선을 결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반드시 결성해야 한다...」라고(重要文獻選讀, 432) 언급하고「종교는 아편과 같이 사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성격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사회주의 정신문명과 물질문명 건설에 협조적일 수 있으므로 종교의 경우는 애국하는 것이 필수이며 정부는 종교에 대하여 온건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필수」(熊述碧: 1986, 109)라고까지 주장하는, 이른바 새로운 종교에 대한 온건한 입장의 해석을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산당의 종교사업 평가기준을 과거의 ‘신도수 감축여부’에 맞추어오던 것을, 198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종교신도들을 연합하여 사회주의 4개 현대화 건설에 적극 투신케 하는 것에 초점을 둬야한다’는 중대한 인식변화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내에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기독교인과 그들의 역량은 그들 스스로 발표한 세계인구의 60%’(樂峰: 1985, 102)인 40여 억 명(吳少榮: 1989, 17)의 세계 각종 종교인구와 그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독교인구의 영향력을 무시하고서는 현 ‘사회주의 초기단계’의 중국의 절대 명제인 4개 현대화 계획의 실현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하는 판단 하에서 이러한 견해들이 나온 것이다. 


  3. 중국공산당 종교정책의 특성   
  중국공산당의 종교정책은 중국의 헌법과 중공중앙의 19호문건(1982), 6호문건(1991)과 국무원령 144호와 145호(1994)에 잘 나타나 있다. 그 특성은 전제성, 제한성, 정치성,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주의 사상과 시대성, 인치성, 지역성의 7가지로 묘사할 수 있으며(黃恩炬: 1994: 12-14) 아래와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 專制性: 모든 종교활동을 정부의 관할하에 둔다.
  (2) 制限性: 중국공산당정부의 모든 법(예를 들면 헌법, 19호문건, 6호문서, 국무원령 144, 145호 등)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거기에 명시된 종교관련 규정의 목적은 국민 개개인의 마음속에 신앙의 자유를 갖는 것만 허용할 뿐 결코 실제적인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3) 政治性: 19호문건에 잘 나타나는 것처럼 교회에서 ‘反帝 愛國 愛敎’의 구호를 외치며 신도들의 사상을 개조하여 정부에 복종하여 공산당정권을 지지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하도록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4)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주의적 사상: 이 것은 19호문건이나 6호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종교소멸론과 무신론, 유물변증법이론과 통일전선이론의 성격을 띄고 있다.
  (5) 時代性: 역사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정치형태와 권력자의 변천에 따라 종교정책의 시행에 있어서 각기 다른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6) 人治性: 법이 아무리 어느 정도 종교의 자유를 표면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할지라도 실제로 그 법이 시행되고 있는 전국 각지에서는 정부관리들이 종교에 대해 무질서한 반대와 탄압 제재 핍박을 하는 등 법 규정과는 무관하게 그들 마음대로 행해지고 있는데도 별 뚜렷한 법적인 조치들이 제대로 취해지지 않고 단지 그들 나름대로 종교인을 다루고 있다.
  (7) 地域性: 개혁개방에 의한 무역 성장에 따라 중국의 연안지역은 비교적 느슨한 종교정책을 취하는데 반해, 내륙 외진 곳의 종교정책은 상당히 긴축된 상황으로 신도들을 핍박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II.중국 삼자교회의 신학사상

   
  공산당이 들어선 초기에 공개적으로 출현한 신학은 서구열방의 제국주의적 기독교를 축출하고 오직 공산당을 중국사회 전면(全面)의 절대 지도사상으로 받아들이는 데 공헌하는 정치적인 신학사상으로 여겼다. 그들이 주장하는 신학은 공산당치하의 새로운 현실을 무조건 지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상황화(contextualization)’와 ‘토착화(indigenization)’라는 개념을 이용하기 시작한 신학(물론 상황화나 토착화 자체는 좋은 것이고 또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이 그 중심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상황화적 신학사상이 실제로 중국 전국의 삼자교회의 모든 부분과 지도자들 및 성도들의 생각을 모두 사로잡거나 인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에 그들의 신학 자체를 논할 때 다루겠지만 이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여하간, 1950년대의 소위 삼자교회의 ‘기독교혁신운동’은 우야종을 비롯한 친 공산당계 기독교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정치적 기독교운동이다. 이 운동은 공산당치하에서 공산당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지만, 당시의 기존 교회와 신학에 큰 충격과 함께 새롭게 바뀐 현실에 대한 각성을 촉구했던 운동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서명운동’ ‘공소운동’ ‘사회주의식 개조운동’ ‘삼자조직 가입운동’ ‘교회연합운동’ 등은 중국전국의 기독교인과 교회에 어떠한 동기와 모습 속에서건 소위 ‘거듭남’과 ‘새로운 빛’을 받고 체험하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거듭남’이란 사회주의 정치현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각함으로서 얻게되는 사상적 각성을 의미한다. ‘거듭남’의 참 결과는 모든 제국주의와 장개석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배척과 척결 그리고 그들의 관점에 의한 ‘인민의 입장’과 ‘애국주의의 입장’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로운 빛’이란 사회주의 정치현실의 상황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에 갖게 되는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말한다.
  우야오종을 비롯한 삼자운동 즉 ‘기독교혁신운동’(삼자교회 초기)의 인물들은 곧 삼자교회신학사상의 특성과 기초를 세운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신학은 사회주의 정치현실의 관점에서 모든 전통적 신앙과 신앙을 재 사고하여 새로운 해석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결국 중국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조화를 이루기를 원하는 공산당이 공인하는 ‘삼자교회신학’은 중국의 정치적인 신학의 기초를 세웠다(왕쓰웨, 1996: 73).            A. '신학'의 개념

  삼자교회 신학자들의 공통적인 신학은 ‘기독교인의 영성체험의 총결’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신학은 기독교인의 영성체험에 따라 항상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중국교회의 신학이란 중국기독교인의 영성체험의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신학의 정의에 대한 근래 삼자교회의 주요 지도자들이 표현한 정의를 살펴보면, ‘역대의 많은 문화배경이 다른 기독교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영성체험의 총결’ ‘교회가 사고하고 있다’(띵광쉰), ‘교회 영성체험의 총결’(천저민), ‘교회신도의 신앙실천 혹은 영성 실천에 근원을 두는 동시에 역시 그것을 지도하는 기독교이론’ ‘교회 혹은 크리스천 개인이 교회와 자기 민족(인민대중)에 대한 관심과 양들과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하나님과 대면하는 일종의 숙고’(왕웨이환), ‘상황화의 사고’(선이환, 깐바오핑) 등으로 표현한다(왕쓰웨, 1996: 102-106).


  B. 신학의 임무 및 주요 과제

  중국공산당정부의 수립으로 달라진 중국사회의 정치현실은 교회로 하여금 새로운 영성체험을 갖게 되거나 갖도록 요구받게 되었고 특히 정통신앙과 신학에 대한 재고, 내지는 회의를 하도록 강요받게 되었다. 삼자교회 신학자들은 모두 신학사상의 재사고와 새로운 신학사상의 수립이 시대적 요청에 의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삼자신학자들은 이렇게 달라진 그들의 현실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주어진 신학연구의 주제와 임무가 ‘화해’라는 것에 있다고 본다(띵광신, 1984:10, 1986:6). 그리고 이 화해란, ‘이전에 인민과 떠나있던 그리스도인이 다시 많은 인민과 하나가 되고 화해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통해, 기독교가 인민과 정치적으로 하나가 될 때 즉 인민의 편에 설 때 비로소 ‘화해의 기초가 형성된다‘고 한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신학의 주제와 임무를 ‘화해’에 두고 한쪽으로는 하나님과의 화해와 한편으로는 인민과의 화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인데 그래야만 기독교와 그 메시지는 존속이 되기 때문이다(왕쓰웨, 1996: 106-109).   

  여기서 ‘인민의 편에 선다’라는 말은 바로 마오쩌뚱이 규정한 인민 즉, ‘노동자 농민 도시소자본가와 민족자본계급’을 말한다. 즉 삼자교회신학의 출발점은 곧 노동자 농민의 신학이고 따라서 자본주의 계급의 신학과는 반대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은 삼자교회의 신학도 역시 계급투쟁의 신학 즉 하나의 이데올로기의 신학으로 하락하고 말았다고 볼 수 있다. 
  선이환은 “중국신학사상이 어떻게 현대중국이 처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거대한 변혁에 대하여 응답하느냐가 현재 중국신학에 있어서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하면서, ‘신학적 대답이 요구되는 9가지 질문’과 ‘신학적 재고가 요구되는 4가지 내용과 과제’를 아래와 같이 제시하였다(沈以藩, 1985).
   
  1. 신학적 대답이 요구되는 9가지 질문 
 
  (1) 하나님의 사랑이 단지 그가 구원한 사람에게만 해당이 되는지, 아니면 모든 인민에게도 베풀어지는지?
  (2) 하나님은 오직 그를 믿는 자를 통해서만 그의 사랑을 표현하시는지, 아니면 모든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을 통해서도 그의 사랑을 표현하시는지?
  (3) 인간의 본성이 모두 죄악으로 타락하고 충만하게 되어 어떠한 문화창조와 사회의 발전도 불가능한지, 아니면 인간의 본성가운데 여전히 어느 정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지?
  (4) 모든 물질적 발전과 성취는 사탄의 일이고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곁을 떠나게 하는 노력인지, 아니면 이런 성취나 발전도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구현으로 보아도 되는지?
  (5) 인간은 마땅히 현실세계와 모든 물질 세계를 버리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한 노력도 포기해야 비로소 히나님과 가까워지는지, 아니면 인간의 현실생활 속으로 들어가 물질과 문화생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6) 사람이 재난과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되기 때문에 재난과 고통은 합리적인 것이며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재난과 고통의 제거와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 기도와 노력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를 배우게 되는 것인지?
  (7) 하나님과 죄악세력의 충돌가운데서 오늘의 세계가 모두 다 죄악의 세력에 의해 통치되었기에 반드시 전세계를 멸망시켜야 천국이 강림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은 최고 높은 분으로서 시종(始終) 역사의 발전을 주관하시고 계신지?
  (8)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은 단지 사람과 하나님사이만의 화해인지, 아니면 전 인류사회를 포함해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인지?
  성육신은 단지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체적인 삶과 교회생활에도 의미가 있는 것인지?
  (9) 믿음과 사랑, 신앙과 행위, 구원과 도덕, 신인관계와 인간관계는 절대적으로 대립되는 것인지, 아니면 융화되어 일치를 이루어야 하는지?


  2. 신학적 재고가 요구되는 4가지 내용과 과제

  (1) 신(新) 중국 수립 후 나타난 사회변화와 생활수준의 형상, 그리고 사회 출현이 ‘새로운 인간’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이 공산당원이라는 사실 등을 신학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2) 소수의 교회목사와 사역자들이 여전히 이러한 사회변화가 신학에 가져다 준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친미반공(親美反共)적으로 설교하는 것에 대해 재고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식민지주의적 잔재는 반드시 그리고 우선적으로 재거해야 될 것이다.
  (3) 1950년 가을에 일어난 삼자운동에서 제기한 소위 자전(自傳)은 ‘누가 전하느냐’의 문제뿐만 아니라 ‘무엇을 전하느냐’의 문제로서 이전의 중국기독교의 현실 도피적인 사상을 재고해보아야 한다. 또한 중국기독교인에 의한 신학사고의 길을 개척하여야 한다.
  (4) 기독교인의 윤리문제로 세상을 초월하고 정치초월의 사상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수를 사랑해야 되는지 등의 문제도 재고해 보아야 한다.


C. 신학의 방법론

  삼자교회가 그들의 신학연구의 방법론으로 이미 공식 발표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간접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분명한 신학방법론과 틀을 가지고 있다(왕쓰웨,1996 :108-113, & 金陵神學文選, 1992).

  1. 그 출발점으로서,
  (1) 중국기독교인의 영성체험 특히, 일반적이고 대중성 있는 영성체험으로부터 시작하라.
  (2) 서재에서 시작하지 말고 역사실천의 현장에서부터 시작하라.
  (3) 인민의 입장에서 시작하라.
  2. 중국공산당의 노선과 국가의 방향과 일치해야 한다.
  3. 사회주의라는 새 환경에서 얻어진 새로운 빛(新的陽光)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4. 상황화작업을 통해야 한다.
  5. 서양신학의 틀을 벗어버리고 중국대륙의 성도들이 해야 하며, 이전의 기성교회의 현실도피적인 이원론적 사상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신학체계(즉, 사회 혹은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D. 그들의 신학

  1. 삼자(三自)사상

  1980년 10월에『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는 ‘중국공산당과 인민정부의 영도아래 전국의 기독교신도들은 단결하여 조국을 사랑
하면서 국가의 법령을 준수하고 자치 자양 자전의 3자(三自)를 지지해나가자”고 하는 주요 취지를 발표하였다.
  3자(三自)란, 중국교회관리에 있어서 제국주의와의 관계를 철저히 차단하고 중국인이 직접 중국교회를 관리해 나가는 自治와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제국주의와의 관계를 철저히 단절하고 중국인이 직접 중국교회의 경제를 담당하는 自養, 복음전파의 면에 있어서 제국주의와의 관계와 제국주의의 잔재적인 사상을 철저히 제거하며, 복음을 중국인이 스스로 전하려는 自傳을 말한다.
 
  그들은 ‘애국애교(愛國愛敎)’를 항상 강조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애국(愛國)’이란 공산주의 정권을 지지하며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적극 건설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사랑하자는 것이다. ‘애교(愛敎)’는 그들이 원하는 바 삼자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 중국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즉, 공산당과 공산당 정부의 종교정책을 철저히 시행해나가는 방법을 통한 애교(愛敎)를 의미한다.     

  평가 : ‘삼자운동’의 사상은 공산당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강제적 환경 속에서 나온 정치운동적 성격의 사상이다. 겉으로는 그들도 예수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됨을 일관성 있게 표현하는 것이 아님을 위에 언급한 삼자의 주요 취지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중국 성도들이 일치단결 해야 할 환경에서 영도자는 중국공산당과 인민정부이지,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이 아니다. 아무리 과거 기독교선교사들이 제국주의적 환경과 성향 속에서 일한 부분들이 어느 정도 분명히 있었다고 할지라도, 공산당의 정책과 관점에 의해서 모든 사실을 판단한다.
 
  중국교회를 중국인들 스스로 관리하고 재정을 스스로 책임지며 스스로 복음을 전하는 수준 정도가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되지 못한 결과에 대해선 과거 선교사들의 책임이 물론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과거를 반성하고 토착화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중국교회와 외국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인 세계의 보편적 교회내의 순수한 교제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또한 바울과 초대교회 사역자들이 이방인지역에 가서 스스로 교회를 세우는 일에 구체적이고 주도적으로 관여하여 스스로 장로를 안수(물론 장로의 회에서) 하고, 그가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사역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였던 많은 사실들을 간과하는 그런 우를 범치 않아야 할 것이다.     

  2. 그들의 신학표현 즉, 상황화
    신학의 예

  (1) 성경관

  띵광쉰(金陵神學文選, 1992)은 삼자교회의 성경관과 관련된 그들의 신학적 전제를 대략
아래의 7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ㄱ. 공자사상의 영향으로 형성된 인본주의적 윤리문화의 전통과 종교에 대해서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긴 하면서도 종교란 별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사상.
  ㄴ. 이전의 서구선교사들과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은 특별히 성경을(좀 지나치게?) 중시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ㄷ. 과거 몇 년간 특히 문화혁명 기간의 중국교회와 세계교회의 교류가 중단되었다가 현재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ㄹ. 중국교회는 현 교회구조상 종파관념을 이미 없애버렸다. 광범위한 연합이 형성되었지만 동시에 신학의 창조성을 연합하고 또 제한한다.
  ㅁ. 최근 몇 년간 중국은 종교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하고 있다. 종교를 아편이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중국종교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사회주의와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ㅂ. 또한 그 동안 중국내의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성경에 대한 그들의 관념이 새롭게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성령께서 항상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롭게 주실 수 있는 ‘새로운 조명’을 강조한다.
  성령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성경본문 이해의 어떤 특정한 면만을 강조하는 선을 넘어서, 이제 참으로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고 존중하며 연합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데 있어서 그들도 이제는 적극적이다.
  ㅅ. 성경 전체가 중요하지만 실제적으로 성경의 특정 부분이 상황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지난 40년 간 중국 기독교인들은 특히 아래 4가지 종류의 성경구절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성경 구절들을 통해서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았다고 본다.
 
  1) 고난 중에서의 구원에 관련된 구절들.(마 5:11-12, 시 23) 문화혁명 때 혹은 그 후의 시기에 큰 은혜를 받음.
  2)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구절들(오랫동안 중국교회에는 2가지 관점이 있었다. 첫째는 개인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고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것, 둘째는 지식인들의 입장에서 개인영혼 구원보다는 산상보훈과 같은 교훈은 가르치시는 교사이신 예수를 경배하는 것 (산상보훈, 골 1:16-17, 히 1:3, 요 1:9). 
  3)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구절들(요 3:16, 요일 4:16, 마 6:26-29. 지나치게 죄와 타락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아직도 지니고 있으며, 그래서 범죄는 은혜를 초월하지 못한다(롬 5:15-20)).
  4) 그리스도인의 연합에 관한 구절들(요17, 고전1, 엡4:1-4. 중국인은 종파주의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연합을 원한다).
 
  평가 : 정주교가 표현한 성경관을 보면 상당히 교묘한 방법으로 공산당을 지지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애쓴 흔적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중국내 복음주의자들(그가 근본주의자들이라고 표현하는)의 성경관 중에서 ‘새로운 조명’ 마저도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한다. 물론 그가 여기서 말하는 어떤 근본주의자들이 의미하고 설명하는 바와 같은 ‘새로운 조명’이 실제로 ‘신앙의 타협을 보이는 복음주의자 혹은 근본주의자들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위의 성경관과 관련된 정주교의 표현 이외에, 중국교회와 신학적 입장과 관련된 13인의 글을 모은 기독교와 중국현대화(殷琦, 1995)라는 책에 나타난 삼자교회의 신학을 대략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2) 신론

  전 인류의 신관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는 신학사상은 하나님을 단지 그리스도인들만의 하나님으로 보는 편협한 관념에 반대한다. 종파주의적 이원론의 영향을 받아 신도와 비신도, 영적 신도와 비영적 신도로 사람을 구분하여 하나님을 영적 신도의 하나님으로만 묶어두던 태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은 전 인류의 하나님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교회지도자들은 신도들이 교회 밖의 모든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사물을 보고 그것들도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평가 : 온 세계의 정통적 기독교회는 하나님을 단지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으로만 보지 않는다. 실제로 하나님은 온 세상을 사랑하시며, 우리도 하나님이 그러하신 것처럼 세상과 세상의 사람들과 세상의 것들을 -- 그것이 성경에서 분명히 언급하는 죄악된 행동이나 사고가 아닌 한 --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받아야 할 참 사랑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구속사역과 그 것을 받아들임을 통하


지 않고는 참으로 완전한 의미에서의 사랑을 맛볼 수 없다.
  더욱이 한사람 한사람이 개인적으로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제공해주시지 않았다. 물론, 중국 전통적 기독교회가 어느 정도 이원론적, 피안적인 천국만을 소망하는 듯한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적인 성격을 다분히 나타낸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은 하나님을 단지 그리스도인들만의 하나님으로는 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교회지도자들은 신도들이 교회 밖의 모든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사물을 보고 그것들도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의 동기 배후에는 잘못된 이원론을 고치려는 뜻도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그 목적보다는 오히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을 바로 알게되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절대적 방법을 간과하고, 단지 보편 구원설과 자연신론적 구원관이나 종교 다원주의적 구원관적인 결과를 연결시키려는 목적의 신관으로 여겨진다.         

  (3) 기독론

  ‘우주적 그리스도’의 사상은, 그리스도가 전 인류를 구원한 것이지 단지 신자만을 구원한 것은 아니라고 여긴다. 택자(擇者)에 대한 관심으로, 제한된 그리스도의 관심을 ‘우주적인


그리스도관’으로 확대해서 보아야 한다.
  중국신학은 특별히 기독론 중심의 신학이다. 즉 먼저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나서 그의 계시로부터 출발하여 아버지 하나님께로 추급해가야 한다. 이에 따라 성령도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면에 치중해 있다. 이러한 기독론은 형제 사랑을 만인사랑으로 확대하고 예수의 형상이 신도들과 사회와 국가인민을 위해 공헌하도록 고무시킨다. 

  평가 : 위에 평가한 내용이 거의 그대로 연결된다. 

  (4) 인간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담의 범죄(원죄)를 초월하며, 인성이 결코 완전히 몰락해버리지 않았다. 본래 중국 전통문화에는 ‘원죄’라는 개념이 없고 오히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본성이 선하다고 믿기 때문에 중국교회는 지난 30~40년 간 원죄론을 강조하지 않았다.
  중국사람들이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원죄를 강조하는 대신,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가진 존재로서 아담의 범죄가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인간의 본성이 완전히 손상되진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현재 중국의 이러한 인간론은 중국 전통문화의 인성론과 부합될 뿐 아니라 중국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소극적이며 염세적, 비관적 정서를 벗어버리고 적극적인 인생관을 갖게 하며 자발적으로 현실 사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고무해 준다. 

  평가 : 적극적 인생관과 적극적 사회관을 가지고 사는 것은 성경적이고 지금까지 정통적 복음주의적 기독교회들이 믿어왔으며 동시에 더욱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죄를 거론치 않고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예수를 통해 죄 문제를 해결치 않고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경의 교훈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 자유의지를 가지고 범죄할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났고 그것으로 인해 범죄하였으며 그 결과 사망이 생겼다. 그 사망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를 개인적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 

  (5) 구원론

  사람이 구원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는 인간의 죄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기초 위에 달린 것이다. 즉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고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다. 중국교회는 복음의 기초를 죄악에 두고 교회의 앞길을 인류의 절망 위에 둔 구원론을 반대한다. 오히려 ‘인간이 완전히 손상되어야 하나님을 찾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의 면류관이며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어졌으며, 하나님을 대신하


여 세계를 관리하기 때문에 인류는 하나님이 구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陣澤民)라고 믿는다.

  평가: 위의 내용을 보라.

  (6) 종말론

  전 천년설에서 후 천년설로 바꿔야 하는데 후 천년설이 더욱 중국상황에 맞는 이론이다. 세상은 점점 더 좋아져 갈 것이고 우리는 거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1958년부터 중국교회의 각파는 연합예배를 실시함으로써 ‘교파후시대’에 들어섰는데, 이는 세계초유의 일이다. ‘장래에 우리 주님의 양들이 한 무리로 모이는 것은 아마도 중국에서부터 시작될 것이고 중국기독교회가 연합의 발단이 될 것이다’(賈玉銘). 중국교회가 순조롭게 교파후시대로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은 중국교회가 비교적 젊은 교회로서 서구의 배타주의적이고 교파주의적인 영향을 덜 받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교회의 연합원칙은 중국문화가 ‘구대동존소이’(求大同存小異--큰 공통점을 추구하면서 작은 차이점도 보존한다.)의 사상을 주창하는 것에 기초한다. 교회가 내세운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사람에게 유익’이라는 내용의 구호는 중국기독교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영성과 경건을 배양하도록 고무한다.

  공의는 하나님의 의도와 요구이며, 사회주의는 바로 공의가 실천되는 사회를 모색하는 것으로 ‘성경정신에 위배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당히 부합된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사회주의를 옹호할 뿐 아니라 사회주의건설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가난함과 부족함은 절대로 기독적이 아니다. 가난과 고행, 가난할수록 영성이 강하다는 신조는 해롭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진정한 기독교란 생산과 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지 빈곤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평가 : 후 천년설은 지금까지 점차적으로 신학계에서 가장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사회주의 이론과 너무나 흡사하므로 그들이 이용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교회의 연합이 아무리 중요해도 기본적인 사도적 신앙의 공통적 고백이 없으면 무조건 연합이 될 수 없다. 실제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닌데도 사회주의에서의 인민을 위하는 일과 성경에서의 이웃사랑이 모든 면에서 같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상황화는 필요한 것이고 지혜롭게 해야 할 일이지만, 성경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교훈을 그저 하나의 이데올로기 정도로 전락시키는 것은 큰 범죄이다. 이미 언급된 삼자교회신학은 정치적 혼합주의적 신학이지 제대로 된 상황화신학이 아니다.

  (7) 교회론

  중국교회는 최근 10년 간 신학사상이나 교회 조직에 있어서 그 초점을 사회참여의 방향으로 대폭 조정하여 시대조류에 적응하고 사회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상황화 방면에 있어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중국교회에 있어서 남은 문제는 현재 갖추어 놓은 기초 위에 어떻게 하면 남미의 해방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처럼 완전하고 국정에도 적합한 신학체계를 세우느냐, 어떻게 하면 중국정세에 알맞은 교회체제를 창출해낼 것이냐 하는 것이다.     
 
  평가 : 교회의 머리가 예수그리스도라고 그들도 말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신학과 실제 조직, 행정에서 공산당의 종교정책과 통일전선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시녀역할을 하려는 것이든지 아니면, 그 분위기 속에서 그저 목숨이나 유지하려는 정도의 사상이다.
  앞으로의 그들의 방향은 성령님의 특별한 간섭이 없다면 더욱 그런 생각을 확실한 이론으로서 공고히 하는 과정을 걷게 될 것이다. 복음의 핵심을 빼고 사회참여를 말한다든지, 사랑과 구원, 평화와 화해를 말하는 것은 성경의 절대영감과 권위를 믿지 않는 인본주의적 신학으로부터 나온 결과이며 사회주의와 성경교훈을 무조건적으로 융합시키려는 잘못된 시도이다. 

  E. 삼자교회 신학의 전체적인 평가: 그 성격과 영향력
 
  필자는 이미 위의 모든 부분의 내용을 논하는 중에 삼자신학에 대한 평가를 꾸준히 어느 정도 제한 되게나마 논하긴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는 삼자교회의 신학을 과연 어떻게 평가해야 되는가? 요즘의 삼자신학의 동향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신학적 발전을 보여주는가 아니면 퇴보나 기형적인 모습인가? 바른 상황화신학인가 아니면 정치적 혼합주의인가? 이런 질문은 어쩌
면,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에게 물어왔던 질문과 상당히 비슷한 종류의 질문이라고 본다. 무슨 말인가?

  1. 삼자신학의 성격--긍정적인
    부분

  비전문적인 각도에서 말할 때, 대략 다음 두 가지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1) 삼자신학이란 이전에 주로 거의 서양식으로만 표현되었던 중국기독교회의 신학이

비록 강요된 정치적인 현실일지라도 중국에 맞는 토착화 및 상황화 신학의 구현을 위해 재 사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아주 없다고는 볼 수 없다. 
  (2) 시대 발전적 위기의 시대에 나타난 한 종류의 신학으로 생각하고 내. 외부에서 계속 긍정적 변화의 요소를 만들어가도록 직. 간접으로 자극할 필요를 보여주는 그런 위기적인 시대상을 보여주는 신학이다.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부재에 의해 생긴 정치적 변수와 관련된 긴장감 속에서도 강택민은 계속 강력한 지도체제를 구축해가려고 애쓰는 때이기 때문에 요즘 중국은 정치적 보수파사람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자신들의 개혁개방의 방식으로 사회주의 사회목표를 성취해보려고 애쓰는 ‘과도기적 정치시대’이다. ‘정치나 사상(종교 포함)은 철저한 사회주의로, 경제는 시장경제로’라고 특징 지워질 수 있는 요즘 중국사회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여러 가지 부패 및 범죄의 증가와 사회주의 이상의 멸절의 위험성이 계속되는 문제로 보수파지도자들은 잔뜩 겁이나 개혁개방정책에 대해 직. 간접으로 많은 제재를 가해왔다.
  그러한 보수정치인들을 쉽게 단지 숙청해 버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또 그렇게해서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달래고 한편으론 사회정화와 실추된 민심과 보수파와의 관계회복을 위해서라도 최근 중국정부는 겉으로는 개방적인 것 같으면서도 더욱 보수적인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느낌을 주는 때이다. 
 
  어쨌든 정치적으로 수많은 변화를 겪어온 중국사회에 적응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더 개방되어 가는 것 같으면서도 아주 ‘위기적인’ 그런 시기임에 틀림없다. 이런 위기적인 시대의 모습은 삼자교회와 신학교가 바른 모습으로 선다면 점차적으로 갱신되고 또한 해외교회들과 총체적인 관계회복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기회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즘, 그 동안 공산당에 의해 이용 당해온 대부분의 삼자교회 및 신학교 지도자들은 새로운 사회현실에 대처하느라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기독교를 이용한 사회주의치하의 통일전선정책 운동의 일환인 ‘삼자애국운동’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지지를 표현하는 통일전선정책의 신학이론화 작업을 철저히 해 나가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대내외적으로 그들의 목적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라도 열악한 삼자신학교육의 현실적 환경을 개선해보려는 목적으로 ‘경제적’으로 혹은 ‘대외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이전보다는 외국교회와의 관계와 교류의 문호를 조금씩 더 넓혀왔다. 외국교회의 자본, 인력과 배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외국교회 특히, 세계교회협의회 소속 교회들과 교류를 더욱 증진시켜왔다.
  긍정적인 결과들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외국의 신학계와 공식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는 다소 긍정적이다. 외국교회와 신학교들의 관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야말로 더욱 적극적이고 공식적인 방법으로 중국삼자교회와 신학교육 현장을 접촉하여 교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중국정부가 개혁개방을 강조하고 경제를 강조한다할지라도 요즘의 삼자교회와 신학교의 좀 더 개방적인 것 같은 흐름이 그들의 근본을 바꾼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작금의 정치현실과 그 분위기에 맞추어가려는 시도 이상으로 보기엔 분명히 아직은 이르다.

 
  2. 근래의 삼자신학의 성격
 
  근래의 삼자신학의 성격은 어떠한가? 간략하게 말해서, 근본적인 변화가 아직도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신학’이며 ‘새로운 정치적 현실속에서의 자기변호’와 ‘공산당에 대한 계속적인 지지’, ‘미래의 변화에 안전하게 대처하기 위한 자기보호적’인 성격과 동기를 가진 ‘상황화신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1) 근본적인 변화가 아직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신학’

  문화대혁명 이후 소위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의 신학교육의 모습은 이와 같은 사실이 증명하듯이 현재의 삼자교회 신학은 외부적으로는 관점과 표현이 상당히 온건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우선적으로 주의해야 할 사실은,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구조적인 정치의 한계로 인해 그들의 신학환경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삼자교회를 공식 대표하여 발언을 하거나 글로써 발표해온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이나 신학자체를 위해서든지 간에 다양한 신학적 언어를 사용해가며, 지금도 직. 간접으로 공산당을 지지하고 대변하는데 심혈을 쏟기 때문에 그들의 동향과 표현을 조심스럽게 주시하고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국정부가 아무리 개혁개방을 강조한다할지라도 이전보다 개방적인 듯한 요즘의 삼자교회와 신학교의 모습을 근본입장이 변화된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아직도 삼자교회의 신학은 이데올로기적 신학사상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공산당종교정책의 특성을 반영한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신학사상과 그 활동은 첫째, 정부와 공산당의 감독과 관할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하에서 표현된 신학으로 완전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학문활동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둘째, 신도들의 사상을 개조하여 공산당정권을 지지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공산당에 의해 이용당하는 신학활동이며 신학사상이다. 세째, 종교소멸론과 무신론, 유물변증법론과 통일전선이론적인 성격의 신학이다. 네째, 개혁개방시대의 변화속에서 근본은 변하지 않고 단지 개혁파공산당적 정치형태와 정치가들 즉, 등소평과 강택민 등의 정신에 의해 인도받은 신학이다.


  (2) ‘새로운 정치적 현실속에서의 자기변호’, ‘공산당에 대한 계속적지지’ 그리고 ‘미래의 변화에 안전하게 대처하기 위한 자기보호적’인 성격과 동기를 가진 상황화신학

  등소평과 그 후기시대 사회에서 대답을 요구받는 새로운 신학적 질문과 과제는 위에서 언급한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동기와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교회가 사회에서 어떻게 무조건적으로 공산당을 지지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설명과 둘째, 이미 시작한 그들의 공산당사회 현실과의 융합의 요구를 피할 수 없이 계속 만족시켜야 된다는 사실이다. 셋째, 언제 어떻게 다시 바뀔지 모르는 사회체제와 상황 변화에 대해 자기들(즉 삼자교회 사람들)이 큰 어려움없이 대처할 확고한 구실을 강구하기 위함 등이 그 주요한 과제로 들 수 있다.
   
  본래 시작부터 정치적인 성격과 배경을 지닌 삼자교회 신학은 1980년대 이후 특히, 1990년대에 겉으로 보기에는 정치적인 면을 배제(?)하고 제대로된  ‘신학적인’(?) 신학으로 발전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까지 이르렀다. 그 사실에 대한 공적인 표현의 한 예로, 중국전국기독교협회의 총간사인 Su Deci는 1950년대의 삼자운동과 요즘의 삼자운동의 차이를 1950년대 삼자가 더욱 ‘정치적’ 성격을 지닌 운동이라면, 요즘의 삼자는 ‘삼자원칙에서 신학적 중요성이 강조되는’ 즉, ‘더욱 신학적’인 성격을 지닌 운동이라고까지 표현한다(Su, 1997).
 
  이와 같은 사상적 흐름과 배경속에서 남경신학원을 포함한 전국 13개의 삼자신학교들은 최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신학적인’ 특히, ‘중국 상황화신학’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신학을 더욱 체계화하고 국제화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데 최근의 신학교육에서 그것을 더욱 꾸준히 강조해왔다.

  왜 그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상황화신학(이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을 그들의 신학의 전부로 표현하며 더욱 강조하고 있는가?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이유와 동기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국교회와 공식적인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교회와 신학이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명분만 표현하면(누가 믿든 말든)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지 개혁개방으로 외부 교회와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될 피치못할 상황에 놓여졌기 때문에 그들의 그러한 동기를 표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3. 이러한 신학이 실제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와 그 의의

  위에 소개한 현대 사회주의 중국내의 삼자교회의 신학사상은 중국 삼자교회의 공식적 표현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이러한 신학사상이 중국 전국 삼자교회의 구석구석에 실제로 영향을 깊이 미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나중에 이 면에 대해서는 또 더 분명히 살펴보며 연구할 수 있는 주제이겠지만, 필자가 그 동안 직. 간접으로 관찰해본 바에 의하면 실제로는 강한 영향을 미치는 영역과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부분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거나, 이 사상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 공식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 외에 -- 남경신학교와 전국양회 주변의 지도자들과 교회들을 언급할 수 있다. 또한 전국 각지의 양회 간부들과 각 지역의 교회와 신학교일꾼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사상을 직.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삼자신학교나 교회 안에 주님을 사랑하고, 실제적으로 위에 언급한 삼자신학 사상을 대부분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일하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적지 않은 귀한 일꾼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정부가 규정한 범위 내에서는 공개적인 목회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그 상황속에서 정말 얼마나 타협하지 않고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큰 도전일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삼자교회의 목사가 된다고 할 때 그들에게 요구되는 선서해야 될 사항이나 목사가 된 후에도 계속되는 그들의 기타 요구가 무엇이고 그들이 그것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들에게 주어진 도전의 내용의 복잡성이 정해질 것이다.
  그런 신학배경의 교회에서 목회한다는 것이 그들의 공식적 정치적 신학적 입장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것인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러한 교회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은 위에서 묘사한 그들이 표현하는 신학적 입장들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정말 가능 한 것인지...? 또한 그러한 위기를 잘 모면하여 목회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해도 얼마나 그 가운데서 지혜롭고 순결하게 일을 감당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삼자교회를 갱신시키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과제로 남아있다.

 
  결론

  이미 우리가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삼자교회’의 신학은 공산당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강제적 환경 속에서 나온 정치적 성격의 신학사상이다. 겉으로는 그들도 예수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됨을 일관성 있게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을 위에 언급한 삼자의 주요 취지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중국 성도들의 일치단결을 위한 영도자는 중국공산당과 인민정부이지,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이 아니다. 아무리 과거 기독교선교사들이 제국주의적 환경과 성향 속에서 일한 부분들이 어느 정도 분명히 있었다고 할지라도, 공산당의 정책과 관점에 의해서 모든 사실을 지나치게 판단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중국교회를 중국인들 스스로 관리하고 재정을 스스로 책임지며 스스로 복음을 전하는 수준 정도가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되지 못한 선교역사에 대해서는 과거 선교사들과 우리 모두가 회개하고 함께 반성할 일이다.
  이제는 중국교회의 바른 토착화를 이루는 목회와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고 적극적으로 우리 몫을 바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동시에 중국교회와 외국교회, 또 우리 모두는 보편교회의 일원으로서 서로 교제하는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바울과 초대교회 사역자들이 이방인지역으로 가서 스스로 교회를 세우는 일에 구체적,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그 스스로 장로를 안수임명하고, 그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사역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였던 많은 사실들을 간과하는 그런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바른 성경적 상황화적 신학은 몰라도 신학을 그들처럼 하나의 정치체제를 지지하는 도구로 만들거나 신학을 이데올로기화시킨 것을 회개하고 바른 신학을 하여야 할 것이다.

  주여, 중국 삼자교회의 지도자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의 생각이 참으로 성경적으로 순수한 사상을 표현하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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