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검은 여자 (아 1:5-6)
2006. 1. 26. 11:08ㆍ목양자료/3.강해설교
얼굴이 검은 여자 아 1:5-6 자기 발견론 자료보관:http://cafe.daum.net/agaser 요 약 사람들이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약속의 음성을 듣고 사랑하지만 인격적인 만남을 갖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불신앙과 추한 죄악의 성품 때문이다. 중요한 원리는 아담 안의 것은 그 무엇도 악하나 그리스도 안의 것은 그 무엇도 선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연단을 통해서 우리의 전적부패를 알게 하시고 오직 예비하신 예수 안에서 참된 성화를 누리게 하신다. 그러므로 정죄하고 괴롭히는 율법과 연단을 불평하지 말고 그 목적하는 바 교훈을 순종해야 한다. 설 명 1. 배 경 ⇒ 술람미가 목자가 찾아오지 않는 원인을 발견함이다. 2. 적 용 (진단) 부부 화목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해결) 불평하지 말고 문제를 먼저 내 안에서 찾으십시오. 3. 인간의 두 본질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5절) 1) 검은 본질 - 아담 안의 죄의 본질(롬3:10, 롬5:12, 엡2:1). 2) 아름다운 본질 -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영화롭게 된 의의 본질(고후5:17, 롬8:30). 4. 문제의 원인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6절) 1) 초신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음 2)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기 위한 율법과 연단의 과정 (결과) 죄인임과 부족함을 알게 하신다. 5. 내 어미의 아들들 ⇒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뜻한다. ① 시련의 연단을 통하여(약1:2-4). ② 율법을 통하여(롬3:20, 롬5:20, 롬7:5, 고전15:56). ③ 파트너를 통하여(눅12:52-53) 아가 1:5-6 5 (술람미)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6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원 문 5 쉐호라 아니(내가 매우 검도다) 웨나와(그러나) 베노트 예루솰라임(예루살렘의 딸들이여) 케오홀레 케다르(게달의 텐트와 같이) 키리오트 쉴로모(솔로몬의 휘장과 같도다) 6 알 티르우니(당신들은 나를 경시하지 마소서) 쉐아니 쉐아르호레트(내가 까무잡잡한 것 때문에) 쉐쉐자파트니(나를 태워서) 핫솨메쉬(태양이) 베네 임미(내 어미의 아들들이) 니하루 비(내게 노하여) 사무니(그들이 나를 두었도다) 노테라(파수하는 자로) 엨 핰케라임(그 포도원의) 카르미 쉘리(내게 속한 포도원은) 로 나토르티(내가 지키지 못하였도다) 스 토 리 목자를 그리워하는 술람미는 그가 자기를 배우자로 호감 갖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내었다. 그것은 만났을 때마다 자신의 검게 그을은 피부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 일은 궁중으로 간 후에도 술람미에게는 악몽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술람미는 마음속으로 왕을 보필하는 시녀들에게 나의 겉모습은 집시들의 장막처럼 검지만 실상은 솔로몬의 휘장처럼 아름다운 여자이며 얼굴이 햇볕에 검게 탄 이유는 오빠들이 강압적으로 그들의 포도원지기를 삼았기 때문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키지 못했다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강 해) 오늘 저는 "얼굴 검은 여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6절에 포도원지기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술람미의 본래의 직업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누구나 포도원지기가 되어야 소망이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교회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모든 것이 이 포도원에서 시작합니다. 포도원지기가 되어야 술람미처럼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의 자녀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 되어 영생과 영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5-6절의 스토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목자를 그리워하는 술람미는 최근 목자를 만나지 못하자 전에 목자의 배려는 놀라웠지만 목자가 자기를 배우자로 호감 갖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전에 만났을 때 자신의 검게 그을은 피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심히 괴로웠습니다. 이 사실은 그녀가 나중에 궁중에 온 후에도 자기를 괴롭히는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술람미는 마음속으로 왕을 보필하는 시녀들에게 나의 겉모습은 집시들의 장막처럼 검지만 실상은 솔로몬의 휘장처럼 아름다운 여자이며 또 얼굴이 햇볕에 검게 탄 이유는 오빠들이 강압적으로 그들의 포도원지기를 삼았기 때문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변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스토리를 통하여 대략적인 그 줄거리를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영적인 교훈을 말씀하기 전에 이 술람미의 짝 사랑을 부부생활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혹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지만 남편이 무관심합니까? 앞에서 나왔듯 남자의 배려하는 사랑과 이성적인 사랑은 다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이성적으로 무관심하다면 본문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남자는 시각적인 매력에 의해 부부생활이 좌우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술람미의 전원생활과 같이 너무 자유만 추구한 나머지 자신을 가꾸거나 단장하지 않을 때 남편은 아내에 대한 매력을 잃어버립니다. 우리 나라 여인들의 문제점은 처녀 때는 미용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다가 결혼만 하면 완전히 천받한 전원생활로 돌아가 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여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에 대한 배려는 가능하나 이성적인 사랑은 흥미 없게 됩니다. 여러분은 퇴근하여 돌아오는 남편을 맞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그럼,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의 손길에 관한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전능하셔서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놀라운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온전케 하시려고 귀한 손길을 베푸십니다. 1. 고난의 연단을 통하여 교회에 나오게 하십니다. 6절에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술람미의 변명이지만 이 구절에서 술람미가 솔로몬을 만나게 된 배경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술람미가 오라버니들의 포도원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문맥을 보니까 오라버니들이 술람미에게 강압책을 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누가 약혼조차 하지 않은 처녀로서 그 힘들고 어려운 포도원지기를 하고자 하겠습니까? 그런데 오라버니들은 술람미를 강제로 포도원에 내 몰았습니다. 여기 "내 어미의 아들들"에 관해서 어머니가 재혼하여 얻은 이복형제나 사촌오빠라는 견해와(Umbreit, Ewald), 이복형제는 아니나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어려운 형편에서 완고한 오빠들이 그녀가 얼굴이나 매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있고(Redford), 본서에 술람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몇 번 언급되나(3:4, 6:9, 8:2), 아버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음을 보아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와 오빠들과 함께 살았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복이든 이복이 아니든 술람미에게 그들은 이복과 동일하게 여겨지는 힘겨운 대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8:8-12을 참고하면 오라버니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고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치 에스더의 외삼촌 모르드게와 같이 술람미를 황후에 책봉하기 위하여 숨은 최선의 노력을 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 수고가 8장의 술람미의 동생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점을 참고하면 철저한 순결을 고수토록 안팎으로 지켜주고, 아름다운 체형을 유지토록 끊임없는 훈련을 시킵니다. 그러기 위해 철저히 외갓 남성과 접촉을 금하고 힘든 훈련을 계속해야 했기 때문에 술람미에게는 그것이 심한 학대로 보였습니다. 이처럼 연단이란 뜻은 있으나 말은 없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아마 당시 남매간이지만 대화가 원활하지 못한 시대의 배경이었기 때문에 오해는 불가피했을 것이고 또한 그 목적을 가르쳐 줄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 큰 비밀을 발설한다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여 비웃음을 살 것이고, 또한 소문이 먼저 나서 일이 되기 전에 그르칠 염려가 있고, 그러나 가장 염려되는 것은 너무 엄청난 일이라 동생이 믿지 않고 순종치 않거나 반대로 교만하여 그 마음의 순수성을 잃을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유는 설명치 못하고 그 엄청난 목적을 이루려고 했으니 얼마나 오라버니들의 노력과 수고와 간섭이 심했겠습니까? 그들을 마치 신병훈련소의 교관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자는 것, 깨는 것, 앉는 것, 걷는 것, 얼굴 표정 하나, 말하는 것, 먹는 것, 먹기 싫어도 몸에 좋다면 먹어야 하고 배불리 먹으려고 해도 비만할까봐 맘대로 먹을 수도 없고, 몸가짐, 마음가짐, 대인관계, 대물관계, 교양, 지식, 등 그 가지 수는 셀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하스에로 왕의 신부 준비에서 보는 것처럼 그 엄격함이란 한 마디로 완전을 요구하는 대단한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아무렇게나 해서 왕의 마음에 들겠습니까? 거기에서 술람미는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오라버니들은 쉬면서 일할 수 있는 술람미 소유의 포도원을 무시하고 강제로 엄격한 자기들의 포도원의 포도원지기로 삼았습니다. 정말 술람미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러나 다 술람미를 위해서였습니다. 아8:11을 보면 오라버니들의 포도원은 다 솔로몬의 소작이었습니다. 당시 왕이나 신하들에게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업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라버니들이 그 이윤이 박한 소작농을 자청한 이유는 그 목적이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동생의 앞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솔로몬이 자기 포도원인 고로 간혹 방문하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술람미는 그 이유도 알지 못하고 그 포도원에 강제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거역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가장에게는 가족의 사활이 달린 막강한 권세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어 오라버니들이 그것을 대신 했기 때문에 이제는 오라버니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의 다른 일이 아니라 포도원을 지키는 포도원지기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 포도원지기는 주야로 근무하면서 포도원에 접근하는 도적은 물론 포도원에 해를 주는 여우같은 짐승까지도 지켜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조상의 유업을 방문한 솔로몬을 일대 일로 만나게 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오빠들의 지혜는 적중하여 술람미는 드디어 솔로몬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오라버니들은 신령한 의미에서 누구일까요? 그들은 약 두 가지인데 먼저 환난이나 연단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내 어미의 아들들이라고 복수형을 썼습니다. 이것은 연단의 종류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바로 여러 가지 연단을 통하여 택하신 자들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신다는 비밀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 세상 사람들이 고난과 고통 없이 순수하게 예수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술람미는 자신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포도원에서도 포도주가 생산됩니다. 포도와 포도주는 성경에서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에 비유되었습니다(시104:15, 전10:19). 즉 그들은 그들이 따로 만족하고 즐기는 자기들의 세속의 기쁨의 포도원이 따로 있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 안의 참된 은혜의 포도주의 맛을 알기까지 신앙생활이란 그들에게 있어서 따분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많은 시련을 통하여 자기 포도원을 내팽개치고 그리스도의 포도원인 교회에 위로 받기 위하여 나오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교회라는 포도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포도원에도 극상품의 포도주가 생산되는데 그것은 성령의 감동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전파하는 말씀을 통하여 감동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선 무엇보다 교회는 성령 감동으로 충만해야 하고 성도들은 열심히 교회에 나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놀라운 십자가 사랑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포도원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포도원지기는 포도원을 떠나지 않습니다. 낮에는 포도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포도원을 지킵니다. 사람에게서 지키고 짐승에게서 지키고 해충에게서 지킵니다. 그러니까 술람미가 솔로몬을 만나지 못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지기란 교회 출석 잘하는 사람입니다. 출석만 잘할 뿐 아니라 말씀도 잘 듣는 사람입니다. 말씀만 잘 들을 뿐 아니라 그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깨달을 뿐 아니라 그 사실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포도원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술람미만 부러워 마시고 우리가 바로 술람미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다. 2. 율법의 연단을 통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십니다. 다시 6절에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했습니다. 여기 내 어미의 아들들의 다른 의미는 율법입니다. 오빠들은 구약 즉 율법을 암시합니다. 율법은 오빠들과 같이 죄인들을 대하여 노하고 정죄하고 박해하는 세력입니다. 이 고통을 통하여 술람미가 솔로몬을 만났듯이 성도는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게 됩니다. 즉 율법의 역할은 죄를 깨닫게 하고(롬3:20), 범죄를 더하게 하고(롬5:20), 인간적인 의인들도 율법 앞에서는 그 본질이 드러나서 검고 추한 죄인으로 나타나고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더욱 역사하며(롬7:5) 결국은 영원한 사망에 처해지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15:56)고 했습니다. 그래서 술람미가 오빠들의 강압에 상처받고 그 마음이 찌들대로 찌들었던 것처럼 우리가 율법 아래 있었을 때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구세주가 필요한 존재임을 철저히 느끼고 오직 자력이 아닌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방도를 절실히 깨닫게 합니다. 이것을 얼마나 깨닫느냐가 그리스도에게로 옴을 결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몽학선생의 기능입니다. 우리는 율법 안에서는 게달의 장막과 같이 부정한 존재입니다. 이 율법 남편을 섬기고 있는 한 그리스도에게 시집올 수 없습니다(롬7:3). 저는 남자이지만 술람미를 볼 때 여인들이 얼굴 때문에 갖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혹시 자기의 얼굴 때문에 연모하던 남자가 떠나갔다면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상처일 것입니다. 이처럼 이 율법의 결론은 우리가 율법의 지배를 떠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빛나는 자녀가 된 후에도 늘 악몽처럼 다가오기 일수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참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공로와 성령의 확증을 의지합니다. 왜냐하면 이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이 의롭고 영광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셨고, 롬3:24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했고, 골3:10에서는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했으며, 엡5:27에는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3. 죄인의 본질을 드러내어 자아를 처리하십니다. 5절에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므스름 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했습니다. 문자적인 의미로는 술람미가 본래는 얼굴이 희고 몸이 솔로몬의 휘장처럼 훤출하지만 원치 않게 햇빛에 그을려 집시들의 장막처럼 검고 너절하기 그지없다는 변명입니다. 간혹 우리는 억울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가령 나는 선하고 착한 사람인데 악한 시험 때문에 내가 악해지고 온갖 실수를 하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여기 검게 태우는 일광은 시험이나 환난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의 본질을 발견하게 하셔서 처리하시기 위한 섭리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스스로 의로울 수 없음과 스스로 의롭기 위한 마음을 포기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허락하신 것들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500년간이나 율법을 주사 대표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깨닫고 포기할 때 처리의 기초를 이룬 셈입니다. 나머지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아담 안에 속한 것은 악도 악이요 선도 악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혹은 연단의 손길을 통해서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죄악의 잔재를 발견한다해도 스스로 의로워지려고도 하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속하신 그 복음에 서서 그냥 믿고 시인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놀라운 승리와 성결한 삶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나를 내려놓고 이미 구원하여 주신 복음을 믿고 감사하며 찬송함이 나의 삶의 비결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믿고 시인하므로 구원을 얻는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롬1:16-17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결론에 긍정하게 된 것은 연단과 율법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나를 내려놓지 못한 부분을 처리하시기 위하여 시험을 붙이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기는 비결은 변함없이 복음에 서는 것입니다. 만약 시험을 통한 연단이 없었다면 복음보다는 내 힘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여 자아만 기르는 격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성도에게 주어지는 율법과 연단은 알고 보면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이 연단을 통하여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었고, 나아가 이 연단을 통하여 자신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하여 믿어 승리의 삶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예수를 영접하지 못하신 분은 이 예수님의 포도원에서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으시고 말씀을 통해서 더욱 주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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