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성경적인 결혼관
2006. 1. 26. 01:11ㆍ목양자료/2.설교자료
아내의 키가 작으면 남편 쪽에서 키를 줄이라 (탈무드)
하나님이 결혼제도를 세우신 목적은 결혼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실재하심과 행복한 결혼 속에서만 주어지는 비밀스러운 기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불행한 결혼속에서는 나와 하나님의 하나됨이 느껴지지가 않을지라도 행복한 결혼 속에서는 " 이토록 아름다운 반려자" 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이 너무도 감사해 하나님의 실재하심이 느껴지는 법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그를 대신하여 일할 일꾼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셨다. 그리고 서로를 돕도록 하셨다.
남자와 여자의 성을 다르게 하신 것은 서로에게 끌리게 하기 위함이요 서로의 상이한 것을 통해 보완적인 관계를 갖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부부는 자신의 것으로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행여라도 불평하며 원망하는 사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27)
본문에서 우리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라고 하신 말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되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으셨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거룩을 말하는 것이요 그것은 외형적인 어떤것이 아닌 영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레11:45)고 하셔서 부부의 삶 속에는 거룩함이 있어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
결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나님은 이 제도를 통해 우리로 하나님의 기업의 풍성함을 얻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결혼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풍성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가 있는데 모든 면에서 부부의 하나됨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요건이다.
부부가 불화하게 되는 것은 죄의 탓이요 부부 사이에 거룩함이 없기 때문이다. 부부의 불화는 사단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으로 사단은 부부가 싸울때 '잘한다. 더 싸워라. 그래야 내 자식이지' 하고 즐거워 한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물을 지배하라고 다스리고 관리하게 하기 위해 사람에게 그의 것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 그런데 죄로 인해 부분적으로나마 인간은 그 권세를 잃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
보완적인 관계란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므로 성숙해 가는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은 부부 서로를 완성시키려고 하나되게 하셨고 또 동반자의 길을 걷게 하셨다.
동반자의 관계란 함께 불화를 극복하고 외로움을 극복하는 관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결혼한 사람은 자기 중심을 떠나 상대를 먼저 생각 해야 한다.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와의 관계를 상징하는데 성경은 이 사실을 비밀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인도하고 사랑하고 보호하여 주시는것과 교회는 그에게 순종하는것을 통해 하나님은 남편이 아내를 인도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시고 있다. 또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느낄 수 있기를 원하시고 있다.
결혼은 '하나됨'의 신앙의 모형이다.
결혼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주어진 기본되는 원리가 있다. 그것은 '분리와 불변과 결합과 친교'의 4가지 원리로 창세기 2:24-25의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하신 말슴에서 찾을 수 있다.
본문의 '부모를 떠나'는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 '아내와 연합하여'는 변할 수 없는 항구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도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는 나뉠 수 없는 결합을 의미한다. 그리고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하니라'는 더없이 가까운 친교를 의미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의 분리는 새로운 관계를 위해 옛 사람과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의미는 부모나 친구보다 배우자가 더 우선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가졌던 관심이나 친구에게 가졌던 관심을 이제는 배우자에게 돌려야 한다.
또 부모는 결혼과 동시에 자녀를 놓아 주어야 한다. '부모를 떠나'는 부모로부터 주어졌던 안정감이나 보호감이나 경제적인 뒷받침이나 육체적인 욕구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이후 부터는 책임을 갖는 독립성을 지닌 성숙한 존재로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부부의 보다 성숙한 관계를 위해 부모나 친구와의 관계에 분명하게 선을 긋는것이 좋다. 물론 이말은 부모에게 불효를 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친구에게 등을 돌리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더이상 의존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로 부모 때문에 부부 사이가 멀어져서도 안되고 친구 때문에 부부 사이가 멀어져도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부부의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뿐이다.
불변이라고 하는 말은 바뀔 수 없는 영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결혼은 바로 이 '바뀔 수 없는 영속성'으로 맺어지는 것으로 이 영속성은 '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시는 것'이므로 나누지 못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19:6)라고 하였다.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의 '연합하여'는 '달라붙다, 풀칠하다'라고 하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결혼은 서로간에 '달라 붙는것'을 의미하는데 전에는 개체였으나 이제는 합쳐져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혼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부도 의견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다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의로 헤어질 수는 없는게 기독인의 결혼이다.
'아내와 연합하여'의 연합은 부부가 사랑의 관계를 맺고 한 몸을 이루는것을 말한다. 한몸을 이룬다고 하는것은 즉각적인 사건이요 과정으로 그것은 이제는 함께 일하며 함께 생활 하는 위치에 선다고 하는것을 의미한다. 한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제나 사랑과 순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늘 용서와 용납과 섬기고 이해하는것이 뒤따라야 한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구속이 없는 친교의 기쁨을 말한다.친교의 기쁨은 분리와 영속성과 결합의 바른 이해 가운데 주어지는 것이어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는 비밀이나 숨김이나, 주저함이나, 두려움과 같은 것이 없는, 아주 친근하고, 성실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완전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결혼은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시고 준비하신 것으로 십계명 중 세계명 이상이 가정 생활과 연관 되어 있고 주님의 첫 이적이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였다고 하는 사실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는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배우자를 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부부의 하나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를 신뢰할때 서로를 완벽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셨는데 이 원리는 부부 생활이 아름다워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가가 이해가 된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하였다. (엡5:23) 이 의미는 힘이 있고 완력이 있으니 육체적으로 아내를 지배하는 머리가 된다고 하는 의미가 아니다.
영적인 질서 가운데 남편이 먼저 본을 보이는 삶을 사는, 삶의 모델이 되는 머리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남편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다운 본을 보여야 하고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아내에게 주어진 위치는 남편을 돕는 배필의 위치이다. 아내는 남편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 주기 위해 지음 받은 짝으로 남편의 삶이 완전해 지도록 협력하고 돕기 위해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아내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하여 남편을 잘 도울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럴때 자신이 완전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때 남편은 아내가 돕는 배필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내가 아내다운 역할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는 남편의 무관심이나 부도덕함이 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아내가 자신을 잘 도울 수 있도록 아내를 이끌어주고 보호하고 본을 보여야 한다.
'돕는 배필'의 바른 개념은 배우자를 이해하는 것이요 배우자에 대한 책임을 깨닫는 것이다. 배우자는 인생길을 함께 걷는 동반자임으로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 배우자를 평안하게 해주라. 배우자의 아픔이나 괴로움을 위로 해 주라.지금 두사람은 공유하고 있는 삶이라 불리는 한 배를 타고 있다. 그러므로 조심하지 않으면 요동을 쳐 기우뚱 기울거나 침몰을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주는것을 통해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크리스천 카운셀링 (2004. 7 - 8 월호) 중에서 발췌 --
하나님이 결혼제도를 세우신 목적은 결혼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실재하심과 행복한 결혼 속에서만 주어지는 비밀스러운 기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불행한 결혼속에서는 나와 하나님의 하나됨이 느껴지지가 않을지라도 행복한 결혼 속에서는 " 이토록 아름다운 반려자" 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이 너무도 감사해 하나님의 실재하심이 느껴지는 법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그를 대신하여 일할 일꾼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셨다. 그리고 서로를 돕도록 하셨다.
남자와 여자의 성을 다르게 하신 것은 서로에게 끌리게 하기 위함이요 서로의 상이한 것을 통해 보완적인 관계를 갖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부부는 자신의 것으로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행여라도 불평하며 원망하는 사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27)
본문에서 우리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라고 하신 말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되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으셨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거룩을 말하는 것이요 그것은 외형적인 어떤것이 아닌 영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레11:45)고 하셔서 부부의 삶 속에는 거룩함이 있어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
결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나님은 이 제도를 통해 우리로 하나님의 기업의 풍성함을 얻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결혼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풍성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가 있는데 모든 면에서 부부의 하나됨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요건이다.
부부가 불화하게 되는 것은 죄의 탓이요 부부 사이에 거룩함이 없기 때문이다. 부부의 불화는 사단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으로 사단은 부부가 싸울때 '잘한다. 더 싸워라. 그래야 내 자식이지' 하고 즐거워 한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물을 지배하라고 다스리고 관리하게 하기 위해 사람에게 그의 것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 그런데 죄로 인해 부분적으로나마 인간은 그 권세를 잃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
보완적인 관계란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므로 성숙해 가는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은 부부 서로를 완성시키려고 하나되게 하셨고 또 동반자의 길을 걷게 하셨다.
동반자의 관계란 함께 불화를 극복하고 외로움을 극복하는 관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결혼한 사람은 자기 중심을 떠나 상대를 먼저 생각 해야 한다.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와의 관계를 상징하는데 성경은 이 사실을 비밀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인도하고 사랑하고 보호하여 주시는것과 교회는 그에게 순종하는것을 통해 하나님은 남편이 아내를 인도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시고 있다. 또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느낄 수 있기를 원하시고 있다.
결혼은 '하나됨'의 신앙의 모형이다.
결혼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주어진 기본되는 원리가 있다. 그것은 '분리와 불변과 결합과 친교'의 4가지 원리로 창세기 2:24-25의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하신 말슴에서 찾을 수 있다.
본문의 '부모를 떠나'는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 '아내와 연합하여'는 변할 수 없는 항구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도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는 나뉠 수 없는 결합을 의미한다. 그리고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하니라'는 더없이 가까운 친교를 의미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의 분리는 새로운 관계를 위해 옛 사람과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의미는 부모나 친구보다 배우자가 더 우선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가졌던 관심이나 친구에게 가졌던 관심을 이제는 배우자에게 돌려야 한다.
또 부모는 결혼과 동시에 자녀를 놓아 주어야 한다. '부모를 떠나'는 부모로부터 주어졌던 안정감이나 보호감이나 경제적인 뒷받침이나 육체적인 욕구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이후 부터는 책임을 갖는 독립성을 지닌 성숙한 존재로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부부의 보다 성숙한 관계를 위해 부모나 친구와의 관계에 분명하게 선을 긋는것이 좋다. 물론 이말은 부모에게 불효를 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친구에게 등을 돌리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더이상 의존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로 부모 때문에 부부 사이가 멀어져서도 안되고 친구 때문에 부부 사이가 멀어져도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부부의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뿐이다.
불변이라고 하는 말은 바뀔 수 없는 영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결혼은 바로 이 '바뀔 수 없는 영속성'으로 맺어지는 것으로 이 영속성은 '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시는 것'이므로 나누지 못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19:6)라고 하였다.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의 '연합하여'는 '달라붙다, 풀칠하다'라고 하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결혼은 서로간에 '달라 붙는것'을 의미하는데 전에는 개체였으나 이제는 합쳐져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혼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부도 의견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다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의로 헤어질 수는 없는게 기독인의 결혼이다.
'아내와 연합하여'의 연합은 부부가 사랑의 관계를 맺고 한 몸을 이루는것을 말한다. 한몸을 이룬다고 하는것은 즉각적인 사건이요 과정으로 그것은 이제는 함께 일하며 함께 생활 하는 위치에 선다고 하는것을 의미한다. 한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제나 사랑과 순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늘 용서와 용납과 섬기고 이해하는것이 뒤따라야 한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구속이 없는 친교의 기쁨을 말한다.친교의 기쁨은 분리와 영속성과 결합의 바른 이해 가운데 주어지는 것이어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는 비밀이나 숨김이나, 주저함이나, 두려움과 같은 것이 없는, 아주 친근하고, 성실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완전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결혼은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시고 준비하신 것으로 십계명 중 세계명 이상이 가정 생활과 연관 되어 있고 주님의 첫 이적이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였다고 하는 사실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는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배우자를 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부부의 하나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를 신뢰할때 서로를 완벽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셨는데 이 원리는 부부 생활이 아름다워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가가 이해가 된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하였다. (엡5:23) 이 의미는 힘이 있고 완력이 있으니 육체적으로 아내를 지배하는 머리가 된다고 하는 의미가 아니다.
영적인 질서 가운데 남편이 먼저 본을 보이는 삶을 사는, 삶의 모델이 되는 머리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남편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다운 본을 보여야 하고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아내에게 주어진 위치는 남편을 돕는 배필의 위치이다. 아내는 남편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 주기 위해 지음 받은 짝으로 남편의 삶이 완전해 지도록 협력하고 돕기 위해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아내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하여 남편을 잘 도울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럴때 자신이 완전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때 남편은 아내가 돕는 배필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내가 아내다운 역할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는 남편의 무관심이나 부도덕함이 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아내가 자신을 잘 도울 수 있도록 아내를 이끌어주고 보호하고 본을 보여야 한다.
'돕는 배필'의 바른 개념은 배우자를 이해하는 것이요 배우자에 대한 책임을 깨닫는 것이다. 배우자는 인생길을 함께 걷는 동반자임으로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 배우자를 평안하게 해주라. 배우자의 아픔이나 괴로움을 위로 해 주라.지금 두사람은 공유하고 있는 삶이라 불리는 한 배를 타고 있다. 그러므로 조심하지 않으면 요동을 쳐 기우뚱 기울거나 침몰을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주는것을 통해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크리스천 카운셀링 (2004. 7 - 8 월호)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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