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강해

2005. 11. 28. 17:36신학자료/5.성경신학자료

사도요한이 유배당했던 터키의 밧모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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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에스라하우스 노우호목사)


사도요한이 계시를 받은 밧모섬의 동굴

밧모는 터키의 소아시아 지방의 남서쪽 해안에서 55km 떨어져 있는 돌로 이루어진 화산 섬이다. 사도요한이 신앙의 박해를 받아 도미티안(Domitian)황제로부터 이 곳에 유배를 당하여 동굴에서 18개월 지내며 계시를 본 곳이다(계 1:9). 밧모의 역사는 3000년 뒤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A.D. 11세기에 수도원이 많이 생기면서, 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부유한 수도원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 15세기의 변두리의 하얀색 골목길, 정원이 있는 상인들의 집들은 이 곳을 찾는 여행 객들을 매료시키는데 크게 한 몫을 한다. 중심 항구인 Skala는 다양한 음식점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도요한에 관하여

세베대의 아들이며 사도 야고보의 형제이다. 요한복음, 요한 1, 2, 3서, 요한계시록의 저자이다. 사도 요한에 대해서는 성경 기록에 의한 것과 전설에 의한 것을 구별하여 살펴 본다.

1. 복음서 이전 시대

요한은 갈릴리 출신이다. 갈릴리 사람들은 정열적이고 용기가 있으며호전적인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영향이 큰 유대 지방 사람들에 비하면 일반적으로소박하고 편견도 적고 늠름하다고 한다. 12제자 중 가룟 유다를 제외한 전원을 갈릴리사람 중에서 택한 것은 흥미롭다. 요한은 갈릴리의 한 어촌에서 자랐다. 벳새다라고도하고 가버나움이라고도 한다.
그의 가족은 성경에 나오는 사람만도 네 사람 있다. 먼저 어부인 아버지 세베대(막 1:19,20)와 어머니 살로메(마 27:56,막 15:40)이다. 살로메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자매라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그녀도 열심히 예수를따랐으나 그 아들들을 영광의 자리에 앉힐 것을 구하여 어머니다운 이기심을 보인 적도 있다(마 20:20,21). 야고보는 그의 형일 것이다. 요한과 더불어 사도로 택함 받았으나,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죽임을 당하여 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로 되었다(행 12:1,2). 그리고 요한 자신이다.

2. 복음 시대

요한은 처음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나,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다음 예수의 제자로 되었다(요 1:30-). 즉, 갈릴리해변에서 아버지와 형제 야고보와 같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를 만난 것이다(마 4:21,막 1:19). 그 때 예수께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부르시니 그들 형제는 즉시 배와 부친을 버려둔 채 예수님을 따랐다. 바울과 같이 극적인 회심을 체험한 일도 없지만, 예수님과 행동을 같이 하거나 또 집으로 돌아가기도했지만, 곧 문자 그대로 일체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게 되었다(눅 5:1-11). 예수께서갈릴리 전도를 시작하자 요한은 주님과 같이 동행했으며, 직접 훈도(薰陶)를 받았다(막 1:21,22). 또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선택되어(마 10:2,막 3:17,눅 6:14) 그 중에서도 가장 예수의 사랑을 받았으며, 베드로와 야고보와 더불어 항상 예수님 곁에 있었다. 야이로의 딸 사건(눅 8:49-56), 산상의 변화(마 17:1-8),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막 14:32-42) 등, 그는 특별한 때에 주님 옆에 있는 것이 허락되었다.

또 최후의만찬 준비 명령을 받은 것도,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었던 것도, 십자가상에서 최후의 순간 주님께로부터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받은 것도 이 요한이었다(눅 22:8,요 13:23,19:26,27).요한에게서 모순되는 두 가지 성격을 볼 수 있다. 첫째는 내성적이다. 요한복음에서도그는 거의 말하지 않았으며, 부활하신 날 아침 정경에서도 그의 소심할 정도의 신중성이 엿보인다(요 20:1-10). 사도행전에서도 그는 항상 베드로의 보좌역을 하고 있다.둘째는 동시에 또 정열적이고 과격한 성격의 일면도 보인다. 예수를 받아 들이지 않는사마리아인의 촌에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하자고 제안하고(눅 9:54), 예수를 따르지않는 사람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 내는 것을 금지시켰다(눅 9:49).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에게 `보아너게(우뢰)'란 이름을 붙였다(막 3:17).
그는 십자가까지 예수님을 따라가 그 최후를 지켜본 유일한 남자 제자이다. 그는 부활의 날 아침 베드르와같이 무덤에 갔고, 그 후 몇 차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말씀을 오해하여 그는 죽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졌다(요 21:23).

3. 사도행전 시대

사도행전에는 과히 등장하지 않는다. 성전에서의 기적(행 3장),사마리아인에게성령 강림(행 8:14-25) 때 등장하나 모두 베드로의 보좌역으로서이다.아마 그는 예수님의 유언을 충실히 따라 마리아의 시중에 골몰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美問)에서 앉은뱅이 거지를 고쳐 주었을 때, 또 예루살렘의 대중에게 기탄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나사렛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증거를 했을때, 그 표면에 서는 이는 베드로였으며, 그를 붙들어 세운 이는 요한이었다. 유대인들이 그들을 위협하여 앞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며 가르치지말라고 경계하자,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대담하게 대답하였다(행 4:19,20). 바울이 회심후 14년만에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AD50년 경)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었던 야고보, 게바, 요한의 세 사람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했다고 갈라디아서 2:9은 쓰고 있다. 그 밖에 요한복음에는 요한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다른 복음서의 기사, 혹은 전후 관계로 미루어 사도요한에 대해서라는 것은 1:35의 `세례 요한의 제자인 두 사람 중 하나', 18:15의 `다른 제자 하나', 13:22, 25, 19:26, 20:2, 21:20, 24의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되어 있는 것 등이다.X참고〉

전설로서 알려진 요한전설에 의하면, 요한은 십자가상에서 하신 예수님의 당부에 의해 마리아를 보호함에있어서 마리아를 예루살렘에 있던 자기 집에 모셔다가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보호했다. 요한은 바울의 활동에 의해 복음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세력을 얻게 되자, 에베소 교회의 초빙을 받아 요한은 에베소에 갔다. 이 전설은 이레니우스(Irenaeus), 에베소의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등의 저서에 근거한 것이다. 이레니우스(제 2세기 말 프랑스 리용의 감독)의 `배이단'(排異端)에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세웠다. 요한은 그들과 같이 영주하여 트라야누스조(朝)에이르렀다"(제 3권 제 3장), "주의 제자 요한은 전에 주의 품에 의지했던 사람인데, 아시아의 에베소에 살면서 일부의 복음서를 썼다"(제 3권 제 1장)는 기사가 있다. 폴리갑은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또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과 교제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에 의해 서머나 교회에서 아시아의 감독에 임명되었다. 요한이 트라야누스(Trajanus, 53- 117, 로마 황제, 재위 98- 117) 황제 때까지 살았다면 극히 고령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에베소에는 감독 요한이 있었기 때문에 이사도 요한을 장로 요한으로 보는 이도 있다. 여하튼 전설에 의하면, 그 후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형되었다에베소에 있는 요한의 무덤는 것이다(이 해설은 계 1:9"나 요한은…하나님의 말씀과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에 근거한 것일 것이다).

요한이 밧모 섬에 간 것은 묵상을 위해(와이스의 설), 또는 박해를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설도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고령에 달할 때까지 에베소에 있다가 거기서 고요히죽었다고도 하나, 이와 정반대의 전설도 있다. 그것에 따르면 "히엘라폴리스의 파피아스(Papias) 감독은 `주의 교훈' 제 2권에 요한은 유대인에게 피살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운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제 9세기에 생존한 게오르기우스 하다르톨로스(Georgius Harmartolos)의 저서에 있다고 한다. 여하튼 이와 같은 전설이 있었다는 것은,예를 들면 수리아의 교회력에 12월 17일은 요한과 야고보의 순교 기념일로 되어 있다는 것 등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사도 요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전설도 남아 있다. 그는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51-96, 로마 황제, 재위 81 96) 황제 때 박해를 받아 독배를 마셨으나 아무런 해를 받지않았다고 한다. 또 그는 펄펄 끓는 기름솥에 던져졌지만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했다고도 한다. 아폴로니우스는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죽은 자를 소생시켰다"고 말했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는 타락한 신자로서 강도의 무리에 빠진 자를 구출하기위해 삼림에 들어가 마침내 그를 신앙으로 복귀시켰다"고 말했다.

그 밖에 세린사스의이단을 극복하기 위해 소아시아에서 제 4복음서를 썼다거나, 노경에 이르러서는 자고새를 벗삼아 노는 것을 일삼았다거나, 또 입버릇처럼 "활을 늘 휘어 두어서는 안된다"느니 하는 전설도 있다. 그는 종종 교회에 부축을 받고 출석했으나, 나이 많아 말도변변히 할 수 없게 되어 겨우 "젊은 아들아, 서로 사랑하라"은 말을 한데 불과했다고제롬은 말했다. 그가 죽자,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잔다고 전해졌다는 이야기도남아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 21:23의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를 반영한것이리라.

* From 메튜헨리 주석

[참고 사항] : 요한계시록주석    요한계시록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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