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代 敎會의 異端들

2005. 11. 27. 22:54목양자료/1.기독교자료

 

고대교회의 이단들

 

 

 

 

   차 례

 

 

 1.서  론 -------------------------------------------   2
 2.본  론 ---------------------------------------- ---  3
  1) 에비온파 ---------------------------------------   3 
  2) 영지주의 ---------------------------------------   4 
    (1)이원론 ---------------------------------------   5 
    (2)구원론 ---------------------------------------   5 
    (3)창조주 ---------------------------------------   5 
    (4)가현설 ---------------------------------------   5 
    (5)인간관 ---------------------------------------   6
    (6)부활과 최후심판의 부정 --------------------------   6 
    (7)비밀전통 ----------------------------------------   6 
  3)마르시온주의 ------------------------------------   6
  4)몬타누스주의 ------------------------------------   7
 3.결  론 --------------------------------   8 
 참 고 도 서 -----------------------------------  10 

 

 

1. 서   론

 

   복음이 이 땅위에 전파되어진 이래로 기독교는 각종의 수많은 이단과의 싸움 속에서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 초기의 유대교적 이단 사상에서부터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떠들고 있는 사이비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거짓 논리들이 기독교의 복음을 오해 혹은 변질시키려는 적대 행위가 끊이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이렇게 많은 각종 이단들의 방해와 적대 행위가 끊이질 않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볼 때 크게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생명력과 권위를 가지고 이땅의 모든 족속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인간의 인식 능력의 한계, 무지, 불순종 등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변질시킨 때문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속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자세히 주의를 기울인다면 오늘날 도처에 나타나고 있는 이단 사상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뿌리가 고대 교회 시대의 이단 사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갖가지 이단에 대응하는 교회의 대책을 생각함에 있어서 그 뿌리로 돌아가 고대 교회는 어떻게 정통성을 지켜 왔는가를 알아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고대 교회에 나타난 反기독교적 (유대적 기독교인 에비온주의, 영지주의, 마르시온주의, 몬타누스주의) 움직임과 공격으로부터 기독교를 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속사도 교부들 시기에는 로마의 클레멘트,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서머나의 폴리캅등은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 많은 서신들을 통해 바른 대응책을 일러주었고 그 시대의 변증가들은 철학적, 사색적으로 기독교를 변증했다.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은 反이단 신학으로서 이단 사상에 대응하며 어거스틴의 교회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 키프리안의 교회론은 제도적 정통성 수호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삼위일체 논쟁을 통하여 기본적인 신학의 완성과 어거스틴의 도나투스,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수많은 도전 속에서 결국 흔들림 없는 교회의 형태를 갖추고 신앙을 지키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역사적 흐름속에서의 교회의 이단에 대한 대응을 통해 오늘의 다양한 문제 속에서 어떤 기본적 기준을 가지고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아는게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단들에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단들의 사상을 먼저 아는게 순서일 것이다. 

 

 

2. 고대교회의 이단 사상들

 

   아주 오래 전부터 교회는 신앙의 핵심이 되는 결정적인 부분들을 다양하게 해석 함으로서 신앙 그 자체까지도 위험스럽게 만드는 이단적인 요소들과 대항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고대 교회 이방 개종자들은 수없이 많은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따라서 다양한 사상을 가진 신앙인이 생겼으며 이들 가운데는 상당히 많은 수가 모순을 가진 이론을 펼침으로 정통 기독교 신앙을 혼란스럽게 했다. 잘못된 교리상의 다양성은 이미 신약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한 것을 볼 수 있다.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요한서신들과 베드로 전서등에서 기독교인들인 이러한 잘못된 교리들과 어떻게 투쟁하였는가를 보여준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무리들과 대항하여 싸웠으며, 그후 저스틴이 거짓 교사라고 간주했던 사람들을 공격했다. 뿐만 아니라 2세깅에 일어난 대부분의 변증신학자들이 이단들을 대적하여 글을 썼다. 특히 2세기 후반부터는 이단 교리들이 너무나도 널리 퍼졌기 때문에 교회로 하여금 광범위하게 대응책을 펴게 했는데 여기서 교회의 대응들을 알아보기에 앞서 이들이 공격하며 싸웠던 이단사상에 대해 알아보자. 고대교회의 이단적 종파운동을 살펴봄에 있어서 그들이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주된 근원으로부터 연유한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첫째는 기독교밖에 있던것으로서 유대교와 이교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것이였으며, 둘째는 기독교 자체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다양한 종파로 구분할 수 있다. 즉 (1)본질적으로 유대교에 근원을 둔 유대주의적 기독교, (2)이교 계통에서 유래한 노스틱주의, (3)이교와 기독교에 반반씩 근원을 둔 마르시온, (4)주로 기독교에 근원을 둔 몬타누스주의 등이 있다.

 

  1) 에비온파
   원시 기독교가 직면했던 최초의 교리적 문제는 유대교와의 관계였다. 이단적, 유대주의적인 에비온파가 기독교와 상반되는 원리는 민족주의와 율법 두가지를 들 수 있다. 횐네케 (Hoennke) 는 유대주의적 기독교의 특징을 다음 두가지로 보고 있다. (1) 바울의 세계적 전도, 율법을 초월한 복음과는 반대되는 것, (2) 오직 유대교의 중개를 통해서만 온전히 구원이 확보된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리하여 예수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과 더불어 유대주적, 민족주의의 결합이 유지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 속에서 에비온파는 이단적 기독론을 주장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단순히 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의 처녀 탄생을 부인하였으며 기묘하게도 여성으로 생각되었던 성령이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 때에 처음으로 그에게 임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사명은 예언자나 가르치는 자의 사명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그러한 사명에 의해서 예수는 기적을 행했다고 보다 더 엄격한 교훈으로 율법을 더 부연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에비온 주의자들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선의 원리와 악의 원리가 있다. 후자는 현 세상을 다스리지만 전자는 장차 올 세상을 통치한다. 한편 선의 원리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차례 성육신이다. 그러나 아담 이후 계속해서 선의 선지자가 성육신 할 때마다 악의 원리도 또한 상대역으로 따라 다녔다. 가인, 이스라엘, 세례요한 등은 악의 원리의 현현으로 또한 여성 원리라고 부른다. 이러한 사상 체계에서 볼 때 예수는 남성 원리의 선지자이며 무엇보다도 뛰어난 선의 원리이다. 이것을 떠나서 보면 예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알리시기 위해서 선택한 인간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상의 유대교적 기독교인 에비온파는 엣세네파 유태교의 한 변형이라고 보며 다만 예수를 그 신학적 체계 내에 인정하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에비온주의는 널리 퍼지지는 못했고 교회의 구성원중 이방인들이 많아지고 유대인이 줄어들면서 자연히 소멸된 듯 했다. 그러나 이 사상이 고대 교회에게 큰 도전이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다.

 

 

  2) 영지주의 


 특히 2세기와 3세기에 있어서 교회 주변에서 활동하던 가장 영향력 있던 세력중의 하나가 영지주의였다. 이것은 같은 사상을 가졌으면서도 조직이 없던 소종파 혹은 학파를 총괄하여 지칭하는 이름이다. 영지주의는 건전한 사도적 가르침을 이교 철학과 뒤섞은 것이거나 심지어는 점성술과 희랍의 밀의 종교까지 뒤섞어 놓은 결과로 생긴 탈선적 이단이라고 하였고 사도행전 8장에 언급된 시몬(Simon Magnus)이 그 이단을 시작했다고 하였다. 이 사상이 최대의 영향력을 가진 기간은 A.D 160년 사이였으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이는 역사적 그리스도 신앙을 뒤엎을 만큼 위협적이었으며 이로인해 기독교회는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바울의 투쟁이 있은 후로 가장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 사상이 기독교회에 위협적이고 심지어 기독교에 혼합되고 나가서 뿌리를 흔들 정도로 된 것은 초대교회의 상황이 기독교 정통을 교리적으로 확립시키지 못하였고 조직 면에서도 허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 위기를 극복하였고 더 나아가 치밀한 조직과 기독교 정통의 확립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 영지주의의 일반적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원론(二元論) : 노스틱주의의 이원론은 조로아스터 종교의 영향하에서 형성된 시리아 사상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페르시아의 이원론은 신화적인 것이었으며 두가지의 상반되는 원리 즉 빛과 어둠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스틱주의에 있어서는 이러한 빛과 어두움의 신화적 이원론이 정신과 물질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으로 발전되었다. 즉 악의 원리에 의해서 지배되는 물질의 세계는 선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지배되는 정신의 세계와는 태초부터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충돌에서 정신적 원리 가운데 일부가 물질의 세계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계와 인간이 시작되었으며 죄와 고통이 생기게 된 것이다.
  (2) 구원론(救援論) : 기독교는 '신앙' 이 구원을 얻는 방도이나 영지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지식이 구원을 얻는 방편이었다. 그들의 지식은 정신적 활동의 이성적 지식이 아니라 신비한 영혼의 광명에 의해서 주어진 '초자연적' 지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신적인 일에 대해서 일반 신도들보다 더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처하였다. 이러한 신비사상은 대중적 신조를 가지고 있는 당시의 기독교보다 더 심오한 것처럼 보였다.
  (3) 창조주(創造主) : 신들의 계보에서 가장 마지막이 되는것은 창조의 신 혹은 데미우르지(Demiurge) 였다. 그는 영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의 중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되었으며 일반적으로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시 되었다. 그는 비록 전적으로 악하고 적대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그러나 비교적 열등하고 적대적인 존재 - 즉 맹목적 지성이였으며 선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무의식 중에 세계와 인간을 있게 만든 존재였다. 그러한 창조신은 악의를 완전히 초월하지 못했으며 일종의 천사와 같은 존재라고 간주 되었다.
  (4) 가현설(Docetism) : 영지주의는 성육의 교리를 부인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서 물질은 불결하기 때문에 신성이 물질에 속하는 육을 취할 수 없고 그리고 또 취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타락이라고 주장한다. 절대적인 존재는 유한한 상대적인 존재와 결합할 수 없으며 또 타락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는 예수라고 불리워진 심오한 영적인 인간에게 일시적으로 깃들었다가 떠난것이라 주장하며 예수가 탄생할 때나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가 잠시 깃들었다가 십자가 처형 직전에 분리되고 떠나간 것이라고 주장한다.
  (5) 인간관(人間觀) :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구원이 가능한 '영적' 인간과 사상의 전수가 불가능한 '물질적' 인간으로 인간을 구분하였다. 후기 영지주의 발렌티누스(Valentinus) 학파는 이에 한 부류를 첨가하여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부류인 '영적' 인간만이 신앙을 가질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구원이 가능한 '정신적'(Psychical) 인간, 구원의 가망이 없는 '물질적' 인간등 세 부류로 구분하였다.
  (6) 부활과 최후 심판의 부정 : 노스틱 사상에 있어서는 물질을 본래부터 악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부활이 용납될 여지가 없었으며 또 최후의 어떠한 심판도 있을 수 없었다. 노스틱주의는 가르치기를 해탈한 영혼은 단순히 그것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모든 신비적 의식을 다시 행하게 되며 결국에는 충만한 신적 존재 속으로 다시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노스틱주의는 개체의 인격적 불멸에 대한 소망을 주장하지 않았다.
  (7) 비밀전통 : 영지주의자들은 주장하기를 조물주(Demure)에 얽매인 인간의 육적본질의 구원을 위해 Pleroma 세계에서 오셔서 구원의 지식을 권했고 그 구원의 지식이란 조물주의 세계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신비스런 지식이며 보이지 않는 위대한 최고신에 관한 지식이라고 했다. 이 지식이 완전한 구원이라고 한다. 영지주위자들은 자기들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이 완전한 지식이 있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제자들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이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비밀을 말씀 하셨으며 이 비밀의 계시는 베드로와 바울과 도마 등을 거쳐 자기들에게 전해 졌다고 하며 이 비밀 전통은 일반적인 육적인 신자들에게는 감춰진 것이라고 했다.

 

 

  3) 마르시온주의


 마르시온(Marcion) 은 소아시아 북쪽 지방인 시노페(Sinope)에서 출생하여 AD 140년경 쉬프스리더(Schiffsreeder) 의 초청을 받고 로마로 건너갔다. 거기서 로마 교회에 막대한 헌금을 하고 정착하여 세력을 부식하러 했으나 AD 144년경에 이단신앙으로 파문 당했다. 로마에서 그는 크레도(Credo)라는 사람의 영지주의에 크게 감화를 받았다. 이레니우스(Irenaeus)에 따르면 크레도의 으뜸되는 가르침은 다음의 교리였다.
 " 율법과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선포된 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전자의 하나님은 알려졌으며 후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분이 의로우신 반면 다른 한 분은 자비로우시다."
마르시온의 신학은 영지주의와 동일한 파생적 의미의 이론이다. 이 물질적 세상에서는 율법과 공의가 통치한다. 이러한 힘들에 대항해서 은총을 기독교 복음이란 '전혀 다른분' 혹은 '아주 생소한 하나님'을 수식하는 말이며 이 세상을 다스리는 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을 뜻한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은 유태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시며 피의 제사를 요구하며, 그 백성을 전쟁터로 내 보내며 전 주민을 학살하라고 명령하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보복적인 하나님 위에 전혀 다른 '알지 못하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계신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은 구약 성경의 하나님과 다르며 외계로부터 이땅에 오신 분임에 틀림이 없으시다. 따라서 율법적이며 무자비한 진노의 하나님이 기록되어 있는 구약 성경은 성경으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제외시키고 신약 성경 가운데서도 바울의 서신 10개와 누가 복음서를 개편해서 전혀 새로운 성경의 묶음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마르시온의 정경(Marcionite Canon) 라고 부른다. 그는 율법을 혐오하는 입장에서 기성 교회를 배격하였다고 볼 때에 그의 주장에는 율법적인 요소가 없고 자비의 하나님의 복음만 있으므로 인하여 무 율법의 복음주의에 치우쳐 버림으로 공의의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마르시온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기독론에 있다. 그는 예수에 대하여 몸이 물질이 아니었고 물질을 입은 것 같이 보였고, 그는 직접 하늘로부터 오셨으며 인간 역사나, 인간 부모를 두지 않았다고 생각함으로 그리스도가 '참인간' 이었음을 부정하는 가현설을 주장한다. 그리고 물질 세계는 모두가 악하다고 봄으로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 肉食이나 性交는 창조신의 손에 놀아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4) 몬타누스주의


 몬타니즘(Montanism) 이라고 하는 운동은 근본적으로  그 성격상 기독교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교회의 신앙 그대로 창조자 하나님과 구속자 그리스도를 믿었다. 이 접에서 몬타니즘은 영지주의나 마르시온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성령의 사역에 대한 몬타누스의 잘못된 이해 때문이었다. 몬타누스는 그를 통하여 보혜사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선지자 몬타누스 자신과 그를 도우는 두 여인을 통하여 성령은 말씀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페푸자(Pepuza) 라는 도시 근처에 서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일에서 떠나 페푸자로 가서 종말을 기다려야 된다고 했다. 새롭게 폭발한 예언자적 열정과 결합되어 형성된 성령의 특별한 섭리에 대한 사상과 임박한 종말에 대한 확신등이 몬타니즘 속에 나타나고 있다. 이 운동은 그리스도교를 규칙과 같은 것에 고정화 시킨데 대한 영(the spirit) 의 반동이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소아시아 감독들은 AD160년 직후에 일차 또는 그 이상의 회의를 열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공회(Symod) 였다. 이 공회에서 몬타누스는 정죄 되었다.
 이상과 같이 네 부류의 이단 사상들을 살펴 보았으나 이 외에도 많은  유사한 이단 사상들이 끊임없이 일어남으로 교회는 이에 대처하여 다방면으로 대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결론

 

 지금까지 고대 교회에 나타난 기독교 정통 수호의 방법으로서 먼저 이단 사상들을 알아 보았다. 물론 기독교를 지키고 끝까지 인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으로서 그분의 섭리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달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 신앙의 뿌리를 더듬어 볼 때 거기에는 수많은 인간의 오류와 시행착오 속에서 진리인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지켜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렵게 얻은 신앙의 방법을 우리는 더 깊이 연구하고 다듬어서 오늘의 우리 신학이 갈 길의 지표로 삼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고대 교회에 있어서 신앙의 선구자들이 이단에 대응하여 기독교 정통을 지켜 온 방법을 열거하면 다음 몇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마귀의 세력에 대항하는 무기로서 성경이다. 비록 속사도 교부시대에는 성경보다 오히려 사도적 전통에 더 의지한 감이 없지 않으나 그것은 성경의 권위를 격하시킨 때문이 아니요, 아직 완전한 정경의 기준이 없었으므로 성경의 권위를 앞장 세우지 못했을 뿐 사실은 이단들의 공격으로 인하여 성경으로 돌아가는 노력이었다. 교회는 이단들의 '비밀전통'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성경에만 권위를 두며 기독교의 정통을 수호해 왔던 것이다. 성경은 예나 지금이나 정통성 수호의 근본이다.
 둘째는 사도적 전승이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통로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느날 갑자기 계시를 받는데서 들리는 신비주의적 가르침이 아니요 교회를 통하여 감독을 통하여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내려오는 사도적 계승인 것이다. 이것은 이레니우스에게서 보듯이 율법주의나 제도주의적 전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회를 통한 예수의 바른 가르침의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난 독단적 선민의식이나 기도원 중심의 신비사상은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감독중심의 교회 체제를 통하여 이단에 대응했다. 고대 교회에 있어서 감독은 이단에 대한 방패요 유용한 무기였다. 또한 감독을 중심으로 한 군주적 직제로서 이단이 세력을 얻을 때마다 그들의 결속은 더둑 강하고 교회직제가 확립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깊이 뉘우쳐야 할 부분에 대한 교훈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많은 개 교회 내부의 분열의 문제인 것이다. 이단이 난무할수록 교회는 더욱 결속을 다져야 한다.
 넷째는 교회의 일치로서 기독교 정통의 수호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시공을 초월하여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분리보다는 사랑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단들의 세력 앞에서 우리는 수많은 종파로 갈라질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켜나갈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는 신앙규범의 확립으로 정통성을 지켜 왔다. 이단이 난무할 때 신비한 사상으로 유혹받기 쉬운 교인들은 많은 신앙사상의 가르침 보다는 진리의 핵심을 요약해서 가르침 받음으로 이단을 물리쳤던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신학적 문제에 부딪힐 때도 교회는 신조를 제정하여 신앙을 요약한 것을 볼 수 있다.
 여섯째는 좀 특수한 대응으로서 신학의 발전을 말 할 수 있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이단 사상의 전개로 인하여 교회 역시 논리적인 방법으로 제반 이단 사상을 물리쳤다. 그러나 여기서 오리겐처럼 비약적인 사상의 전개로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은바 아니지만 그러나 신앙규범의 테두리로서 핵심 신앙의 담장의 역할로서 정통수호에 이바지 했다.
 이상으로 고대 교회의 이단 사상들을 알아봄으로서 고대교회의 정통성 수호에 대한 하나의 방편임을 알아 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단사상들을 하나의 지식으로 치부해 버린다거나 비판을 가하기 위해서 이단사상들을 연구한다는 것은 퇴색해가는 낙엽과 같은 하나의 학문으로 끝나버리기 쉽다. 그렇기에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라면 이런 역사적 고찰들이 현실에 바로 적용되도록 실제적 접근에 대한 연구가 더더욱 필요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 참고도서 ※

 

 ㅇ 주재용, 역사와 신학적 증언 (서울;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1)
 ㅇ Gonzales, Justo. L,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이 형기 차 종순 역 '기독교 사상 사 I' (서울; 대한 예수교 총회 출판국,1989)
 ㅇ Walker, Williston,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ruch, 김 근환외 3인역 '세계 기독교회사' (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1990)
 ㅇ 김황중, '초대교회에 있어서 기독교 정통확립 과정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 논문; 연세대,  1991)
 ㅇ 탁명환, '기독교 이단연구' (서울; 국제종교 문제연구소 1986)
 ㅇ 차종순, '교회사' 신학 연구도서 시리즈5, (서울;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교육국, 1992)
 ㅇ Paul Tillich, '그리스도교 사상사' 송기득 역, (서울; 한국신학 연구소,1983)
 ㅇ 박석동, '어거스틴의 교회론' (석사학위 논문; 감신대, 1985)
 ㅇ J. N. D. Kelly. '고대 기독교 교리사'. 김광식 역. (서울; 대한 기독교 문화 연구소  
    출판사, 1980)
 ㅇ J. L. Neve. '기독교 교리사' 서남동 역.(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1991)
 ㅇ 박성덕, '교회의 사도적 본질과 평신도 사명'(석사학위 논문;고신대학,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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