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0. 4. 22:50ㆍ신학자료/1.신학자료
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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Ⅶ.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
Paul L. Lehmann에 의하면 성경 해석에 있어서 칼빈은 루터보 다더 명료하고
단순하며. 성경 해석사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43) Kemper Fullerton은 할인은 기독교 역사 에 있어서
최초로 성경을 학문적으로 해석한 사람이(the first scientific interpreter in the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라 했다. 44) Fullerton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칼빈과 루터는 모두 문법적 역사적 의미를 성경 해석의
원리(exegetical principle of the grammatic-historical sense)로 삼았다. 루터는 모든 성경 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왜서 역사적 콘택스트를 무시하고 모든
성경의 텍스트에서 그리스도를 찾고자 하는 무리한 기 독론 중심의 해석은 반대했다. 45) 칼빈의 성경 해석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칼빈의
성경의 필요성, 성경관, 인문주의 영향. 말씀과 성령 의 관계, 해석자의 자질을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의 성경 해석 의 논리는 성경에서
도출했기 때문이다.
1.성경의 필요성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양심과 종교의 씨앗을 심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다. 때문에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그나 름대로의 종교성을 갖고 있다. 부적, 섬 지방에 있는 많은 미신,
고사 지내는 행위 등은 왜곡된 종교성의 표출이다. 사실 무 신론이라는 언어 자체가 모순된 말이다. 이미 그 말 속에는 신의 존재 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여준다(롬1 : 19).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은 고의적인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위엄은 인간의 이해력을 능가함으로 하나 님을 탐구하기보다는 예배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창조 역 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생각하도록 하셨다. 성경은 창조의 세계를 보이지 않은 것들의 표상(representation)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는 표상이 아니면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은 세계를 우리에게 표상하기 때문이다(롬 1:20, 히
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있는 양심이나 종교의 씨앗을 통해서 는 참다운 하나님의 지식을 알 수 없다. 우리가
부패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타락을 우리의 책임으로 돌리게 할 뿐이다. 구속주이시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서 성령님이 선지자 와 사도를 감동시키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성경은 안경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46) 이 말은 메타포(은유)이며 우리 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눈이 아프거나 시력이
약하면 실제로 잘 볼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은 타락으로 인해서 참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이 해할 수 없는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한 다. 성경이 안경이라는 은유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연 이성을 보 충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케 하여 교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중생 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이성은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만이 우리에게 참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하고 가르쳐 준다.
2.칼빈의 성경관(Calvin's View of Scripture)
i) 성경의 저자
칼빈은
『강요』에서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지식 (1. 6-9), 성령과 구 원에 관계 (3.2) , 성경의 권위와 영감(4.8)을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구약을 다 포함한다 성경 66권은 표면 상으로 보면 다 그 저자가 있다. 오경은 모세가 저자이다. 이사야
선지 서는 이사아가 저자이다. 사도 바울 서신은 사도 바울이 저자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은 자기의 말이라고 하지 않았다. 선지자들 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도 성경을 자기의 말이라고 하지 안했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해 주는가?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 이시라는 것을
반증해 주지 않은가? 만약 하나님이 저자가 아니라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겠는가? 그렇다. 성경의 저자 는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어떤 부분은 거칠고 잘 다듬어지지 아니한 문체 (a rude and unrefined style)도 있다. 47) 이것은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은가?
성경에 거칠고 잘 다듬어지지 아니한 문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순된 것은
아니다. 칼빈은 이 모순을 조정 이론 (accommodation theory)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정과 능력을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성경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케 하시 고 어머니가 어린애를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의 능력에 맞게 표현하게 하셨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쉬운
말로 알기 쉽게 기록된 것이다. 이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이다. Lewis Battles에 의하면 조정
이론(God's Accommodation to human capacity/caput)은 칼빈이 창안해 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교회사를 볼 때
Origen, Augustine, Chrysostom, Hilary of Poitiers사 용했다. 그러나 칼빈의 경우는 이들과 달리 이 원리를
일관성 있게 성 경을 해석하는 원리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매 꿀 수 없는 갭을 매꾸는데 적용했다고 말했다. 48)
칼빈에 의하면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선지자와 사 도들을 성령님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케 하신 것이다. 성경이
인간의 언어로 쓰여졌지 말 성경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들어 있는 책이 아니 라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사상과 감정이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 씀이다. 49)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은 절대 무오하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숨결이시며 하나
님 자신이 성경 안에서 말씀하신다(딤후3: 16).
성경은 우리 에게 진정한 하나님을 보여준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경 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쳐 주며 율법과 선지서, 복음을 통하 여 우리에게 구속주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쳐 준다. 칼빈은 신정통주의 에서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예수님과 증거로써 하나님의 말씀 (Neo-orthodox conundrums in driving a wedge between
Christ as the Word and Scripture as Word in the sense of witness)을 구분하지 않는다. 성경을
삼위일체적으로 설명한다. 성경 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 마음에 성경의 권위와 진리를 증 거하며 동일한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성경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주시며 , 하나님의 지혜요 말씀으로 증거하며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본질적인
말씀인 그리스도 의 복음을 발견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배우며 우리 마음에 부음 바 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다. 50)
ii) 성경의 진위
성경의 권위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 다. 칼빈이 성경의 권위를 들고
나온 이유는 성경이 신적인 권위가 없 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로마 카톨릭에서는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의 권위가 아니라 믿음과 진리의
은행으로서 교회가 성경 권위를 인정하 고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베드로의 뒤를 이은 교황이 교회의 수장이요 성경 해석의
최후 재판관이 된다고 믿었다. Paul Lehmann에 의하면 우리 장로교에서는 성경은 믿음과 앙안의 궁극적인 규범이 성경이지만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경의 권위는 교회예 의해서 주어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구원 의 확실성도 성경 자체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부여한 것 처럼 보여지므로 성경의 신적 권위를 약화시킨다.
성경이 절대 무오한 진리가 되는 것을 교회가 결정하게
된다면 절 대적인 성경의 권위를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가 성경 위에 있 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성경의 기초 아래 세워진다고 칼빈은
말했다. 51) 그렇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성령님의 내적인
증거에 의해서 확신 되어진다. 성령님은 성경에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고 계심을 증거한다.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이 우리의 지성에 계시하시고 마음에
인을 치 셔서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으로 증거하며 확신케 한다. 이보 다 더 완벽한 증거는 없는 것이다. 52)
성령님의
증거나 조명을 통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한 사람에게 성경의 권위는 교회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서 이루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성경의 자 증에 기인하는 것이다. 53) 성경의 자증성은 성경의 신적 권위를 가장 완 벽하게 말해 준다
성경이 스스로 그 권위와 진실성을 말한다 자증성 이란 성경에서 하나님이 스스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스스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게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성경 해석이나 설교는 말씀 자체가 말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 로 말씀하시는 설교나 해석은 자연스럽고 분명한 것이다.
iii) 성경의 내용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 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τα δυναμενα οε σοφιαι ει οωτεριαν δια πιστεω τη εν Χ ριω Ι ηου, 딤후3:15).
칼빈은 분들 주석에서 "구원에 충족한 지 혜를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대한 아주 귀한 찬 사로 다음 구절은 그 의미를
더욱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우리를 성경의 핵심이요, 알맹이가 되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 로 이끄는 것은 당연하다". 54)
칼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핵심이요 설계다. 또한 성 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 를가르치는 책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성경의 설계요 핵심이라 는 말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구약을 볼 수
있도록 설계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구악의 핵심 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신구악의 통일성을 이루는 설계요
신구약 통일성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신구악의 통일 성을 이루는 핵심이 없이는 신약과 구약을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신구약을 하나로 묶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성경의 모형론적 해석 이나 구속사적인 해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Von Rad는 신구약을 두개의 찬양대로 비유하면서 두
개의 찬양대가 하나의 핵심인 예수를 지칭하면서 부르는 두 개의 찬양대라고 했다. 55)
iv) 성경의 명료성과 단순성
성경은 왜 단순하고 명료한가? 두 가지로 대답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배려 혹은 조정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제약 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감정을 이해하고 그에 따 라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게 쓰여졌을 경우, 우리가성
경을 잘 이해할 수 없다고 보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 에 맞게 언어를 선택하시고 쉬운 말로 기록토록 하셨다. 환언하면, 하
나님의 말씀은 명료하고 분명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에 맞추어서 어린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처럼 우리의 능력에 맞추어서 인 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없다 이것이 칼빈의 조정 이론이며 바로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배려로 말미암아
단순하고 명료하게 쓰여져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단 순하고 명료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해석 방법이 라고 할 수 있다. 56)
둘째는, 성경은 인간의 사상이나 논리로 쓰여진 것 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어느 곳을 읽 어도 성령님의 감동이
안된 것이 없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통일성이 있고 각성경의 개체성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배려와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단순 하고 명료한 것이다 성경은 구원의 메시지이다. 따라서 성경 해석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는 칼빈의 성경관에 기초해
있고 성경으로부터 도출해 낸 것이다. 57)
3.인문주의 사상과 성경 해석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은 프랑스
인문주의 자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그 당시 최고의 학문을 배운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의 스타 일을 자쿠에스 레페브레의 서클(the
circle of Jacques Lefevre)로부터 배웠다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이 교부들의 경건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 은 사변적인 논리나
전문적인 변증법에 의해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자세를 지양하고 단순성과 명료성을 중요시하는 자세였다. 58) E.David
Willis에 의하면 칼빈의 사상은 dialectical diastasis라기보다는 수사학적 상관관계(rhetorical
correlation)라고 했다. 칼빈은 두 가지 수사학 전통에 영향을 입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변호나 토론하는 자가 토 론이나 변호하는 것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기술로서 수사학이며 다른 하나 는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서 듣는 자가 이해토록 설득하는 수사학이다. 후자의 수사학적인
전통이 칼빈의 사상 형성에 더욱 영향을 주었다. 더군 다나 칼빈이 법률가로서 훈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수사학에 능통한가를 시사해
준다. 칼빈의 사상에 후자의 수사학은 믿음을 설득으로 지식을 효과적인 진리로 계시를 하나님의 능력을 낮추어서 인간의 능력에 조정한 것을 통해서
보여 진다고 월리스는 말했다. 59)
칼빈은 당대의 최고의 학문을 배웠고 인문주의 학문을 배웠다. 수 사학적 방법이란 고전 문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성 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세상적인 수사학(rethorique frivole)은
무가치한(worthless rethoric) 것이다. 그러나 세례 받은 수사적인 방법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 된다 세상적인 지식이
성경을 해석하는 데 직접적으로는 도움이 안되지만 성령 세례를 받은 좋은 방 법은 간접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칼빈에 의하면 모든
학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향에 목표를 두고 공부 해 야 한다고 본다.
Heinrich Bullinger는
"올바른 성경해석의 의미"(Of the sense and Right Exposition of Scripture)라는 설교에서 다섯 가지 성경
해석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성경 해석은 우리의 믿음에 동 의해야 한다. 둘째, 성경 해석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도록 해야 한 다. 셋째,
성경 해석은 콘택스트를 고려해야 한다. 넷째. 성경은 성경 에 의해서 해석해야 한다 다섯째, 성경 해석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 람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60)
칼빈은 인문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이것은 알게 모르게 칼빈의 사 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 사회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했다는 말은 아니다. 인문 사회학을 통해서 인문 사회학의 장단점을 알게 되고 성경에서 도출되는
성경 해석 방법과 다 르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4.칼빈의 성경 해석 원리
i) 성경 해석
목표(the goal of Biblical Interpretation)
칼빈은 1539년에 강요 2판을 발행한 후에 로마서 주석을
출판했 다. 이 주석의 서문에서 주석자의 가장 좋은 목표를 두 가지로 말한다. 첫째, 성경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성경의 단순성과 명료성에
기 초해야 한다(lucid brevity). 둘째 해석자는 성경 저자가 의도하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61) 그리고 칼빈은
갈라디아서(4:22) 주석에 서 성경의 진정한 의미는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verum Sensum scripurae, qui germanus
esc et simplex)라고 말하고 우리는 이 사실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성경 해석자의 목표는 성경에서 저자가
말하는 단순하고 명료한 의미 혹은 자연스럽 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는(to show) 것이 중요함을 말해 준다.
칼빈은 로마서
주석에서 당대의 석학들의 성경 해석 방법을 비판하 면서 맡하기를 멘랑톤의 로마서 주석은 성경의 주된 개념을 중심으로 성경을 주석을 함으로써
로마서 전체를 보기가 힘들며 부커의 주석은 너무 현학적으로 흘러서 평신도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자신의 성경 해석은 성경에서 단순하고
명료한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그 의미 에 기초하여 살기를 원했다.
Imbaart de la Tour도 말하기를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을 해석하 는 것은 단순하게 그러고 자연스러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62) Hans-Joachim Kraus도 칼빈의 성경 해석의
목표는 하나님의 말 씀의 통일성 가운데 나타난 성경의 살아 있는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 고 하면서 여덟가지 성경 해셔 방법을 제시했다. 63)
칼빈은 성경 속에서 성경 해석의 원리를 찾았고 성경 스스로 말하도 록 했다.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는 누구나 다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반은 사람이 발견하는 것이다.
5.성경 해석과 성령의 조명
성령과 성경 해석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칼빈에 의하면 성령의 조 명이 없이는 올바로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 칼빈은 문자 자체의 말씀 은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아무런
효과도 유익도 줄 수 없다(the bare word has no effect or profit without the illumination of
the Holy Spirit). 64) 성령에 의한 영감은 종교개혁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모든것
위에 있다. 루터도 성경과 신자 관계를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어 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그Ǻ 40; 의하면 말씀과
성령이다. 이 맡 을 칼빈은 더 명료하게 설명했다. "성령 없이는 말씀은 죽은 문자이다. 말씀이 없이는 성령을 환상처럼 떠다닌다"(Without
Spirit, the word is a dead letter: without the Word, the Spirit flutters as an
illusion). 65)
성령은 성경의 기자를 감동시켜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 동일한 성령님은 오늘 날에도 우리를 조명하사
하나님의 말씀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깨닫게 한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확신케 한다. 66) 성령의 검으로서
말씀(ρακαιραν του πνευματο Ο εστιν ρεpα θεου )은 말씀과 성령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령의 검 곧 하
나님의 말씀을 가지라(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 엡 6:17)에서 논리적으로
되면 말씀은 검이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말씀이 검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말씀은 검은
검이로되 쓸모가 없 는 검이 피는 것이다. 말씀의 칼을 날쌔게 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 성령 의 역사이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바로 이 때 문에 세상의 해석학이 아무리 좋고 길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 는 데는 무용지물이 된다. 다만 세상 학들이 성령에 의해서
세례를 밖 는다면 성령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칼빈은 에베소서 6:17주석 에서 성령과 말씀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에배 소서 6:17말씀은 그것을 설명하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만 이 라고 주장하면 신비주의에 흐르며 말씀만 이라고 하면 이성주의 빠지
며 말씀과 설령을 통해서 라야 진정으로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칼빈은 히브리서 4장 10절 주석에서도 성령님의
역사를 중요시했 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토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 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칼빈은 본문을 주석 하면서 하나님의 말 씀의 능력은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선포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했다. 67)
6.성경 해석과 해석 자의 자질
성경을 해석하는 데는 두 지평이 있다. 성경과
해석자이다. 성경 해 석은 이 두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성경과 성경을 해석하는 자이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이 두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이
두 관계를 Anthony C. Thiselton은 두 지평이라고 했다. 68) 여기서 지평이라는 말은 은유로 해석 자의 한계성을 의미한다. 두
지평은 동일하지는 않지 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상관관계에 의해서 서고의 지평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했다.
69) 그러나 칼빈의 입장 에서 보면 성경과 해석자의 관계는 상관관계라기보다는 성경과 성령에 의존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다. 해석자는 늘 성경에
의존하려 항상 성 령의 조명을 받아서 해석자의 관점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새로워 져야 한다. 성경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지만
해석자의 관점은 항 상 바꾸어져야 한다. 해석 자가 살고 있는 시대 상황은 변하기 때문이 다 해석자는 항상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그 시대에 주시는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야 하긴 때 문이다.
칼빈은 1451년 그의 강요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태양과 같아서 모 든 것에 비추지만 소경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우리 인간은 타 락으로 말미암아 성경을 이해하는 데
소경이며, 그래서 우리 내적인 선생님이신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 (the Word of God cannot
enter into our spirit unless the Spirit of God, who is the inner master, give us
access to it by his illumination). 70) 중요한 것은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 씀은 인간의 하락성에 의해서
소멸되지 않는 한 본질상 항상 명료하다 ( Still it remains a fixed principle, that the word of God
is not obscure, except so far as the world darkens it by its own blindness). 71)
이 말은 성경을 해석하는데 아주 중요한 변 할 수 없는 원리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스럽고 분명한 성경의 의미는 성경의 진정한 의미가 될
수 없다. 이 말은 칼빈의 성경 해석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명료하고 분명하다. 그래서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잘 이해 못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타락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잘 이해 못하는 것은 성경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 경을 해석하는 인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 에 의해서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가 거듭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른 경 건한 생활을 하면 우리는 성경에서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의미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본다"는 말은 철학적인
이론이나 논리에 의해서 추론해 낸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의 언어가 본문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은 아 무나 갖는 것은 아니다. 눈이 나뿐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사람만이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면 해석자의 관점이 늘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가?
i) 성경의 제자(a disciple
of Scripture)가 되어야 한다. 72)
성경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어떤 자세 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가령 우 리가 어떤 유명한 사람의 제자라고 할 때 제자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 는가? 그
선생이 누구인가를 속속들이 알며 선생의 삶의 스타일을 배우 며 또 그렇게 가르치고 사는 사람을 말하여 제자라고 할 것이다. 제자 의 특성은
선생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제자가 된다는 것 은 무엇일까? 칼빈은 자기를 소개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종이라고 소개 했다. 때문에
그는 일생 동안 말씀을 주석하고 가르치고 선포하며 일생 을 살았다. 이와같은 삶이 성경의 제자로써 사는 삶이다
성경에는 두 가지
하나님의 지식이 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 식이요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지식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성경을 이해 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나님 의 지식을 알 수 있는가? 성경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말하 면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칼빈도 하나님의 올바른 지식은 순종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73) 다른 말로 말하면 성경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ii) 성령의 학교(School of Holy Spirit)에서 배워야 한다.
칼빈은 성경은 성령의 학교라 했다.
74) 성경은 학교이다. 그러나 이 학교는 성령님이 운영하시고 주관하시는 학교이다. 학생은 성경을 배 우는 자이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성경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충만하 게 배우도록 도와 주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선생이다. 학교를 누가 운영하느냐에 따라서 학교의 발전과 학생들의
질이 달라지는 것 처럼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이해한 그것에 의해서 신자의 생활을 유 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
하시도록 해야 한다.
성경이 성령의 학교라는 말은 인문 교육이나 신학 교육이 필요 없 다는 말은 아니다. 선지자와 사도를 감동시켜
성경을 기록케 하신 분 이 성령님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만 되는 것이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지 않은 성경 해석
설교, 가르침은 생명력을 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문자적인 의미는
성령의 학교에서 배운 사람에 의해서 선포되어지고 가르쳐 지고 해석되어진다 고 할수 있다.
ⅲ)경건한 생활
칼빈은
경건을 다음과같이 정의했다. "경건의 요점이란 하나님의 심판을 기꺼이 피하고 싶은 두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으므로 이 심판 앞에서 두렵고 떠는 마음과 태도에 있다. 오히려 참 경건이란 하나님을 주님으로 존경하며 그의 의를 수 용하고 죽을 지언정 그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은, 순수하고 참된 열심 에 있다. 이러한 열심을 소유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의 몰염치가 원 하는 대로 하나님을 날조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구하되 하나님이 자기를 저들에게 계시하고 선포하신 대로 이해한다". 75)
칼빈에게 있어서 경건이란 단순히 외적인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신 앙 생활 전체를 의미한다. 참 경건한 생활이란 매사에 하나님을
주님으 로 존경하며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그렇게 살 도록 변증하고 험증하는 자이다. 특별히 성경 해석과 연관하여 마지막
절에 있는 말씀을 우리는 깊게 영접해야 할 것이다 성경을 안다는 것 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계
시하고, 선포 한대로 이해한다는 말은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 이기 때문에 그대로 혹은 성경대로 이해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존경 하고
두려워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한대로 이해하는 것이 다. 경건한 살은 성경 해석이요 성경 해석은 곧 경건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7.성경 해석 방법
i) 역사적 문법적 성경 해석(historical grammatical
interpretation of the Bible)
Kemper Fullerton은 그의 저서 예언과 권위 (Prophecy
and Authorety)에서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은 문법적, 역사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여기서 문법적이라는 말은 성경의 문법적인 구조와
언어를 중요시하며 역사적이라는 말은 성경 콘택스트의 역사적인 상황을 중요시하며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를 말한다. 그러면서 칼빈은 신학적인 전제와
석의적인 방법의 조화가 아니라 석의적인 방법이 신학적인 전제를 컨트롤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는 전제가 성경
해석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법적 역사적인 성경 해석 방법이 주도한다는 말이다. 이 점에 있어서 성경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루터와 다르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신학적인 전제가 성경 해석의 방법을 인도하는 원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성경을 문법적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방법을 컨트롤하는 것은 신학적인 전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말은 인위적으로
루터처럼 모든 성경 구절에서 예수를 찾는 것은 아니다. 환언하면 칼빈은 구약을 해석할 때 모형론적으로 해석하지만 그 가운데 있는 루터처럼 문법적
역사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해석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창세기 3:15에서 여자의 씨는 루터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칼빈은 여자의
씨()는 삼인칭 여성 단수이지만 집단 명사로써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볼 수 없다. 칼빈에 의하እ 2; 집단적 단수 명사가 한
사람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때문에 직접 여자의 씨를 예수님이라고 말하지 아니했다. 교회사를 보면 본문은
Protoevangelium(원시복음0이라고 해석한 것이 통례이다. 칼빈은 이들의 해석에 동의하면서도 본문의 지정한 의미는 사탄과 인간 사이의
계속적인 갈등이 있을 것이며 결국은 인류가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제시한다고 했다.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로서 오심을 말한
거이지 직접 여자의 씨를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것은 본문의 문맥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76) 여기서 우리가 칼빈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칼빈은
얼마나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그의 문법적 역사적인 방법에 투철하였으며 동시에 성경의 핵심은 그리스도라는 신학적인 전제아 조화를 일고
있는가를 배울 수 있다. 캄빈에 의하면 루터처럼 모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려는 지나친 예수님 중심의 성경 해석은 구약의 역사적인 의미를
약화시킨다. 구약의 메시지는 구약 시대의 언약 백성에게 약속과 희망을 주며 동시에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미리서 맛을 보게 하는 것이다. 77)
칼빈은 성경에 알레고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알레고리를 알렉산드리아 학파처럼
역사적인 콘택스트를 무시하지 않았으며 그 알레 고리에서 문자적인 의미, 즉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 도라 했다. 칼빈은 고후
3:6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 이라"의 주석에서 발레고리의 부당성을 말한다. 풍류적으로 성경을 해 석한 자에게 의문은 성경의
문법적 문자적인 의미를 말하며 영은 알레 고리칼 의미를 말했다. 따라서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는 의문과 같으며 알레고리칼 의미는 영적인 의미로
봤다. 그러나 칼빈에 의하면 본문은 오리겐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본문의 의미가 왜곡되었다. 그들은 성경을 풍유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고 하지 만 그것은 성경의 자연스러운 의미를 불순하게 하며(germanum scripturae sensum adulterandi)
알레고리칼 해석을 성경 해석의 규범으로 만들게 했다고 말한다. 78) 그리고 주석 하기를 하나님의 말씀 을 단순히 입으로만 전하면 그것은 죽게
하는 것이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마음에 받아들이므로 전하면 생명을 준다는 말이라고 주석했 다. 79) 따라서 칼빈은 고후 3:6은 성경의
해석 방법을 제시한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결과를 말하며 사도 바울이 발레고리를 해석하 는 키를 제시했다고 봤다(Paul here
furnishes us with a key for expounding Scripture by allegories) . 여기서도 볼 수 있듯 이
칼빈은 알레고리칼 해석과 알레고리를 역사적 문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구분하고 있다. 80)
칼빈은 비유(알레고리)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비유에서 예수님 이 가르치고자 하는 비유히 목표(finis, scopus)를 찾는 것이 중요하 다고 했다. 그러면 비유의 의미는
분명해진다고 했다. 크리소스톰도 마태복음 20:1절 주석에서 우리는 비유에서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말 고 비유의 목표(skopon)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We should not waste labour to explain all the details in a parable but
having learned the aim[or mark :Greek skopon] for which the parable was
constructed, to get hold of that and not to bother oneself with anything
further). 칼빈에 의하면 비유는 비교와 같은 것이다. 마태복음 13:34-35 말씀을 잘 보 면 비유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 씀하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 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I will open my mouth in parables, 1 will
utter things hidden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 주님은 창세 때부 터
감추어진 것을 비유로 진술한다는 말이다. 창세 때부터 감추어진 것 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 주님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했 다.
비유란 이 말씀에서 보면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to show)것이 다. 이것이 비유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천국 은
이다(the kingdom of heaven is)가 아니라 이와 같다(the kingdom of heaven will
like(NIV:KJV:shall be compared to(RSV))이다. 천국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비유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유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진리를 보여준 다. 81)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메타포를 통하여 묘사하 고 있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I am the door of the sheep, 요10:7), "나는 선한 목자이다"(I am
the good shepherd: 요10: 11)에서는 천국 비유와는 다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선한 목자인 경우는 보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 국은 잘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천국 비유는 이와 같다라는 말을 썼고 선한 목자의 경우는 이다인 것이다. 언어의
사용에 따라서 그 언어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언어의 사용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야 한다 칼빈은 은유적인
표현을 해 석하는 데 있어서 은유적 해석은 알레고리칼 해석이 아니다. 알레고리 는 믿음의 규칙을 벗어나지 아니하는 방향에서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 를 드러내야 한다.
칼빈은 요한 복음 1:1=5에 대한 설교에서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경 의 언어가 어떻게 문장에서
사용되는가를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을 모르면 성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For it is
important to know how Holy Scripture uses words, Surely we need not stop simply
at words, but we cannot understand the teaching of God unless we know what
procedure, style and language he uses.). 82) 여기서 성 경 언어의 사촌은 문맥과 문법적인 구조를 살피는
것이며 언어의 스타 일이라는 말은 성경의 장르를 말하는 것으로 본다 성경의 장르와 언어 의 사용을 보는 것은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는 데 있 어서 필수적이다. 현대 성경 해석학에 있어서 이러한 사항은 아주 중요 하다. 칼빈이야말로 현대 성경 해석학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다.
ii) 모형론적 성경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
Gerhard von Rad는 구약의 모형론적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Old
Testament)에서 모형론(typology) 에서 중요한 것은 반복이 아니라 상관관계(correspondence)에 있으 며 이 상관관개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라 했다. 여기서 일시적이라는 말은 예언의 성취라는 점에 있어서 일시적이라는 말이 다. 환언하면 원시적인 사건은
마지막에 이루어질 사건의 모형이라는 말이다(the primal event is a type of the final event). 83) 알레고리
(한국인 성경은 비유로 나와 있음)는 예표된 것과 이루어질 사 건 사이에 인위적인 관계를 설정하지만 모형론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관계이다.
Rad에 의하면 칼빈은 구약을 모형론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을 유지했다고 했다. Rad는 모형론적인 해석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한 한 하나님이 구약의 언약 백성들 의 역사 속에 그의 발자취를 남겼다는 상관관계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신구약은 한 하나님의
계시로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믿음의 조상들에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 하신 것이다. 그래서 신구약은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따라서, 모형론 적인 해석은 그리스도와 관계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신구약의 통일성을 이루는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는 신구약이라는 두 개의 찬양대를 통해서 이해될 수 있다고 했다. 두개(신구약)의 찬양 대는 양편에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Rad에 의하면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의 지식은 구약 없이는 불완전한 것이라고 했다. 84) 동시에 신약 없이는 구약의 이해는
의미가 없다
칼빈에게 있어서 모형론은 진정한 에언이다. 모형론은 구약의 예언 과 신약의 성취라는 역학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주 석하면서 칼빈은 모든 제사 제도는 모형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그 의미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The whole cultus
of the law, taken literally and not as shadows and figure[umbras et figuras]
corresponding to the truth, will be utterly ridiculous). 85)
칼빈은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맡아서 내가 열조에게 명함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렘17:22)를 해석하면서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도록 하기 위해서 명해졌으며 사도바울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 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정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 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 16-17)에서 말함과 같이
안식일이나 절기나 월삭은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types) 혹은 그림자(umbras/shadow)이며 그리스도는 모형과 그림자의 본 체라고
했다. 여기서 그림자라는 말과 본체라는 말은 서로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그림자란 본체(substance)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
이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본체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며 그림자는 본 체가 그대로 드러나면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 제도나 예 식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폐하여 진 것이다.
칼빈은 로마서 5:14절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 의 표상이라"(επι τω ομοιωματι τη παpαβαοεω Αδαμ ο τυπο του
μελλοντο)는 주석에서 알레고리칼 해석을 반대하면서 아담은 그리스도 의 모형이라고 했다. 어떤 점에서 모형인가? 유사성의 모형이 아니라
대조적 인 모형이라고 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온 세상에 들어 오고, 사망이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것처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의 가
회복피고, 그리고 생명이 의로 말미암아 회복되었다. 86) 아담 한 사 람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한 사람으로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의로
말미암아 회복되었다 이 점에서 아담과 그리스도는 다르지만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 아담이 죄의 모형이 라거나
그리스도가 의의 모형이라고 하지 않은 것이다. 칼빈은 복음은 율법이 모형 아래 감추어진 것을 손을 가지고 지적해 준다고 했다( the
gospel points out with finger what the law foreshadowed under the types). 87)
칼빈의 모헝론적인 해석을 안 디옥학파의 Theoira라고 비교한다면 칼빈의 theoira의 의미는 성령 의 내적인 조명을 통해서 성경의 텍스트를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의 진정한 의미란 성령의 내적인 조명에 의한 성경의 자연 스럽고 분명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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