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리사

2014. 11. 27. 20:29신학자료/3.교의신학

제 1장 서론

1. 교리사의 주제

(1)교의라는 용어의 유래- Dogma라는 단어는 도케인에서 유래했다. 도케인 모이는 “그렇게 보인다”라는 뜻인데 이것이 나아가서 “나는 그렇게 명확히 정했기 때문에 그것은 내게 기정 사실이다”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2)성경의 용법 - 에스더3:9 단2:13 6:8 눅2:1 행17:7 (70인경)에서는 정부의 법령으로 엡2:15 골2:14 에서는 구약의 법도로 행 16∶4에서는 규례, 회의 결과, 교회적 결정이란 의미로 쓰였다.

(3)신학에서의 용법- 교의(dogma)라는 용어가 ‘교리’와 실제적인 동의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지만, 교의는 일반적으로 좀 더 제한된 의미를 지닌다. 종교적 교의(교리)는 권위에 토대를 두고서 공적으로 교회회의에서 제정된 종교적 진리이다.

2. 교리의 기원과 성격

1) 카톨릭의 교리 개념- 카톨릭은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성직자단이 연구하여 결정하여 정의된 진리를 교의라고 본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이고 이 몸이 카톨릭 교회와 동일하다고 본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로 본다. 교의는 동일성과 연속성을 가진다. 그래서 성경 또는 전승에 의해서 가르쳐진 교리를 교회가 결정하면 모든 신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교회는 교리와 관련된 문제에서 무오하다고 한다.

2) 개신교의 교리개념-개신교는 모든 교리를 오직 성경에서 끌어오고 기록되지 않은 말씀이나 전승을 교리의 출처로 인정하지 않는다. 교리는 성경에서 직접 가져온 진술은 아니고 교회가 계시의 진리들을 성찰한 결과물로 본다. 즉 교리들은 교회의 공의회들이나 회의들이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서 최종적으로 만들어졌기에 치열한 논쟁의 흔적을 지닌다. 그런 교리들은 무오하지는 않지만 고도의 안정성을 지닌다. 개신교는 교회를 신자들의 무리로 보지 성직자들만의 무리로 보지는 않는다. 교리가 권위가 있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교회에 의해서 정의되었고 내용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결정으로서의 교의는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고 여러 교회들이 형성하고 채택한 신앙고백이라고 불리었다.

3) 오늘날의 교리개념 - 슐라이에르마허, 리츨, 비네- 기독교적인 의식, 경험, 신앙, 삶을 교리의 실질적 내용의 원천으로 본다. 교회의 교리들은 단지 교회가 객관적 요인에 의해서 자극받아서 하나님의 계시라고 인식된 자신의 경험, 정서, 신앙들을 지적으로 표현한 것들뿐이다. 신앙 공동체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인식된 그 신앙적 경험들을 성찰하고 최종적으로 자격을 갖춘 집단에 의해 그런 경험들에 지적 표현을 부연해서 교리들로 변화시킨다. 이런 것은 카톨릭 교회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단지 성경과 연속성을 더 강조할 뿐이다.

4) 하르낙의 교리 개념-하르낙은 그의 ‘교리’』에서 고대 교회의 교리 전체는 헬라철학과 기독교 진리가 부자연스럽게 혼합된 것이고 이질적인 철학적 요소가 지배적인 요소로 되어 있다고 보고 그 교리들 전부를 불신한다. 그래서 교리사는 거대한 오류의 역사라고 하였다.

2. 교리사의 과제

: 교회의 교리의 역사적 기원을 서술하고 그 이후의 변화들과 발전들을 추적하는 것.

1) 교리사의 전제들

a. 교리는 변할 수 있다 - 교회의 교리는 변할 수 있고 실제로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개신교 신학은 교리가 고도의 안정성을 갖고 있지만 역사 과정 속에서 새로운 요소들을 통하여 풍부해져 왔으며 좀 더 세련된 표현을 부여받았고 실질적인 변형도 겪었다고 본다.

b. 카톨릭은 교리가 변할 수 없다고 본다 - 카톨릭 교회의 신조는 과거 시대들에 존재하였던 것과 지금도 동일하다. 어떤 신조도 더해지거나 뺄 수 없다. 그러나 카톨릭도 조선시대의 제사 문제에 대해서 카톨릭 선교사들의 정책을 제사 반대에서 제사 찬성으로 바꾸었다.

교리사는 계시된 진리들은 객관적이고 영속적이고 불변하지만 그 진리들에 대한 주관적 파악과 외적 표현에 있어서는 발전이 인정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교리 자체가 발전하지 않기 때문에 교리사는 엄격한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c. 유기적 교리의 발전 - 교회의 교리적 발전은 유기적인 계통을 따라서 움직여 왔는데 때로 오류도 있었지만 주된 흐름에 있어서는 중단 없는 성장을 계속해 왔다는 것이다. 특별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모형적인 지식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구속이라는 사상을 점진적으로 펼쳐보이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내적으로 서로 연결된 유기체를 점점 더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교회의 교리는 어느 정도 연속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전제한다.

d.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온 교리 - 신앙생활의 조건들이 변화할 때마다 새로운 교리가 필요하므로 그 때 마다 옛 교리를 폐기한다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교리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교회가 탈선을 겪어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가 있었을지라도 과거의 교리적 발전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오지는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고대 교부들의 글을 인용했다. 심지어 중세시대의 학자들의 글도 인용했다. 즉 사상의 연속성이 있는 것이다.

2) 교리사의 내용

a. 교리만이 교리사의 유일한 자료는 아니다 - 교리사는 특별계시가 끝나가는 무렵에 등장한 사도 교부들에 대한 연구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교리사는 신학적 교리들의 추가적인 형성의 토대를 준비한 교리적 진리의 추가적인 발전들을 검토하고 살펴야 한다. 즉 결과만이 아니라 그 중간단계들도 고찰해야 한다.

b. 교리 논쟁에 대한 고찰 - 교회의 교리 논쟁들은 주류적인 사상으로부터 이탈한 교리들도 다루는데 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진리를 좀더 분명하고 예리하게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c. 사상의 내적 발전 - 교리사의 주된 대상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교회의 의식 속에서의 신학적 발전이다. 즉 성경 속에 내재된 사상의 발전을 추적해야 한다.

4. 교리사의 방법론과 내용구분

1) 교리사의 내용 구분

a. 일반 교리사와 특수 교리사 - 일반 교리사는 각각의 시대에 있어서 교리적 연구의 전체적인 철학적 배경, 주요한 논제들, 전체적인 방향을 다루고, 특수 교리사는 개별적인 교리들, 특히 주변적인 교리들의 형성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친 중심적인 교리들의 기원과 발전을 추적한다. 특수 교리사는 주제별 서술방법론이라고도 불린다.

b. 후기의 구분법- 교리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좀 더 통일된 견해를 제시하고자 함.

2) 서술방법론

a. 수평적 방법론과 수직적 방법론 - 수평적 방법론은 교리의 역사 전체를 각 시대별로 나누어서 그 안에서 각 주제의 발전 단계를 다루는 방법이다. 수직적 방법론은 교회의 관심의 초점이 된 순서대로 각각의 교리들을 차례로 선택해서 그 교리가 최종적인 형태에 도달할 때까지 발전과정을 추적한다. 벌코프는 후자를 따른다. 왜냐하면 사고의 흐름이 끊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교리의 발전과정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b. 순수 객관적 방법론과 신앙고백적 방법론의 구별 - 전자는 어떤 선입견도 없이 교회의 교리의 기원과 발전을 서술하는 것이다. 동방정교회, 로마 카톨릭, 루터파, 개혁교회 등으로 나누어서 차례로 서술한다.

후자는 자신의 선호하는 신앙고백을 기준으로 다른 주장들을 펼쳐 나간다. 거의 모든 면에서 저자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성경과 자신이 교회의 판별기준으로 역사의 사실들을 판단한다.

5. 교리사의 역사

1) 독립적인 분과학문으로서의 교리사를 탄생시킨 요인들

a. 교리사의 기원 - 교리사의 연구를 위한 소중한 자료들은 종교개혁 이전에 여러 세기 동안 축적되었으나, 카톨릭 교회는 교리가 변할 수 없다고 하였으므로 교리사가 불가능하였고, 종교개혁이 교리사를 비평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개혁자들은 교리들에 대해서 성경의 빛 아래서와 고대 교부들에 의거해서도 그런 의문들에 대답하고자 함으로써 교리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위한 직접적이고 강력한 동기를 제공해주었다.

b. 경건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 - 경건주의는 개신교 스콜라주의가 종교개혁의 살아있는 진리들을 화석화한다고 확신하고 영적인 체험을 강조함으로 교리를 반대하기 위해 교리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합리주의도 교리에 대해 적대적이었는데 교리가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권위를 토대로 인간 지성의 자유로운 연구를 억압한다고 여겼기데 교리의 허구성을 밝히려고 교리사를 연구했다.

c. 역사의식의 영향 - 제믈러는 성경에 대한 현대적인 역사적 연구를 창시하였다. 모스하임은 교리사 연구에 추진력을 부여했다.

2) 교리사에 관한 초기 작품들 - 교리사 연구의 진정한 발단은 랑게와 뮌셔였다. 랑게의 저작은 방대한 규모로 시작해서 끝내 완성하지 못했고, 뮌셔는 1797년에 네 권으로 된 저작을 썼고 후에 요약편을 내었다. 그는 기독교 교리가 어떻게 점진적으로 현재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답하고자 했다. 최초로 교리사를 일반 교리사와 특수 교리사로 나누었다.

헤겔의 발전사관은 교회의 교리들의 생성에 있어서 명확한 순서와 발전과정을 추적하는데 도입되었다. 교리사의 목적은 공인된 증인들에 의해 증언된 사실들을 그 실제적 배경 속에서 확인하는 것과 그 사실들을 내적 전개의 정확한 법칙에 따라 해석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클리포드는 교의를 교리와 구별해서 교의를 교리사의 고유한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고, 토마시우스는 중심적인 교리와 주변적인 교리를 철저하게 구별하였다. 중심적인 교리는 신론, 기독론, 죄론, 은혜론이다. 그의 관점은 루터파 교회의 신앙고백적 관점이다.

3) 교리사에 관한 후기 저작들 - 하르낙은 전반적인 문화적 발전과의 연관 속에서 기독교 전체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측면들을 고려한다. 주제별 서술방법론과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에는 고정된 진리들이라고 할 수 있는 교의는 없고 오직 신앙의 가르침만이 자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는 고대 교부들이 이교의 영향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제베르크는 두 권으로 된 교리사 교본이라는 책을 1905년에 썼다. 그의 저작은 각 저술가들의 교리를 다룰 때마다 가져온 무수한 인용문들을 싣고 있어서 자료집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제

2장 교리의 예비적 발전

1. 사도 교부들과 그 교리적 견해

* 교부란 2세기 이후 기독교 신학의 주춧돌을 놓은 교회 지도자들을 일컫는다. 교부는 2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기독교의 이론을 세우고 또한 이단과의 열띤 논쟁을 벌여 사도로부터 계승된, 거룩한 보편교회를 수호하는 데 앞장섰다.

* 교부들의 구분

사도 교부: 사도들의 제자 혹은 그들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교부 (1세기 말 - 2세기초).

니케아 공의회 이전의 교부 (2 - 3세기).

니케아 공의회 이후의 교부 (4 - 8세기).

1) 사도 교부들이 썼다고 하는 저작들

바나바- 바울의 동료로 알려진 바나바와 동일인물로 추정됨. 바나바 서신이 있다.

헤르마스- 롬 16:14에 나오는 허메로 추정됨. 헤르마스의 목자서: 일련의 묵시들, 명령들, 비유들을 담고 있다.

로마의 클레멘스- 빌 4:3에 나오는 바울의 동역자 글레멘드와 동일인물.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썼다 초기 기독교의 진품 문헌 중에서 가장 초기의 것이다.

폴리갑- 서머나의 감독,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짤막한 편지를 썼다.

파이아스- 요한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있음. “주의 말씀에 대한 강해”를 썼음.

이그나티우스 -15편의 서신이 있는데 그 중의 7편 만이 진정한 서신으로 여겨짐.

*디오그네투스에 보내는 편지-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교사상과 유대교를 버린 이유를 설명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성품과 행실의 주된 특징을 서술함. 기독교 교리를 잘 요약했음.

*디다케- 주후 100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 제 1부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2부 예배와 교회 정치에 관한 지시들이 나옴.

2) 사도 교부들의 가르침이 보여주는 형식상의 특징들

a. 독창성, 깊이, 명료성의 결여- 사도 교부들의 글은 무오한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존된 작품이기에 독창성이 없고 깊이도 없다.

b. 내용의 빈약함- 전체적으로 성경에 부합한 내용이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더해주는 것이 없고 체계화 되어 있지도 않다. 이때까지 신약정경은 결정되지 않았다. 그래도 사도교부들의 저작들은 신약의 정경성과 무흠성을 잘 증언해지고, 주후 2세기에 나타난 변증가들의 사변적인 저작들과 신약을 교리적으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c. 명확성의 결여 - 사도 교부들은 요한의 케뤼그마에 대한 선호를 보여준다. 이들은 기독교를 일차적으로 획득되어야할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순종의 원리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설교에 나오는 계시의 진리들을 정의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점대로 그 진리들을 다시 설명하고자 했다.

3) 사도 교부들의 가르침의 실질적 내용

a.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만유의 통치자시며, 창조 시와 옛 시대에 걸쳐 활동하신다. 신약에서 하나님은 육체로 나셨는데 이분이 그리스도다.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자 사람이라고 한다.

b.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 그리스도는 그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했다. 또한 그는 아버지를 나타내셨고 새로운 도덕적인 법을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칭의의 토대가 아니라 회개의 은혜를 가져다 주고 새로운 순종의 길을 열어 놓은 것으로 본다.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바울 관점의 뉴 퍼스펙티브의 고전적인 뿌리라고 볼 수도 있다.

c. 성례에 대해 - 세례는 새 생명을 주고, 모든 죄들, 혹은 오직 과거의 죄들을 사해준다.

성찬은 인간에게 영생을 전해준다.

d. 믿음과 선행에 대해 -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인식한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 신뢰, 헌신에 있다. 이신칭의는 말해지지만, 칭의와 새 생명과 믿음의 관계는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믿음은 단지 개인을 도덕적인 성장으로 이끄는 생명으로 들어가는 첫 걸음일 뿐이다. 죄사함이 세례를 통해 이뤄지고 믿음에 의해서 인식된 후에 인간은 선행의 공로에 의해 축복을 받는다. 총체적인 구원은 믿음과 선행으로 이루어지고, 선행은 새로운 법을 순종하는 것이며, 이 순종은 사랑이 주도한다.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선행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런 경향은 사실 카톨릭의 전통이 되었다.

e. 교회에 대해 -교회가 은사들을 소유한 것을 기뻐하지만 교회의 직분들에 대해 점차 공경심을 갖게 되었다. 몇 몇 경우에 감독이 장로들보다 우월한 것으로 부각되었다.

f. 종말에 대해

그들은 종말이 아주 가까이 왔다고 생각했다. 천년왕국이 먼저 있은 후에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상급을 받고 악인들이 정죄되어 영원히 멸망에 처해질 것을 강조한다.

2. 복음의 왜곡들

1) 외부의 위험들

a. 유대인의 박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기독교를 신성모독으로 여겼다.

b. 로마의 박해- 황제 숭배에 동참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 주로 인정함.

c. 이방 철학자들의 공격- 루시안, 켈수스, 폴피리가 글로 기독교를 공격하였다.

2) 내부의 위험들

a. 유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한 왜곡

가. 나사렛파 - 유대 그리스도인들로서 오직 히브리어로 된 마태복음만 사용함. 바울을 진정한 사도로 인정함. 예수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믿음, 율법을 스스로 엄격히 지켰지만 이방인들에게는 그것을 요구하지 않음. 진정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나. 에비온파 - 사도 바울을 인정하지 않고 바울을 율법으로부터 변절한 배교자로 여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도 예외 없이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함. 그리스도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부인함. 예수는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여 메시야로 선택받음. 수세 시에 성령을 받고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깨달았으며 성령께서 그로 하여금 선지자와 교사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게 했다고 함. 그리스도가 고난과 죽음을 겪었다고 생각하기를 꺼려했다.

*비판: 바울은 참된 사도임. 이방인은 할례받을 필요없음.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고 있고 동정녀 탄생했음. 선지자와 교사일 뿐 아니라 왕과 제사장임. 고난과 죽음 부활을 겪었음.

다. 엘케사이파 - 금욕주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거부하고 그리스도가 사람에게서 태어났다고 봄. 그리스도를 좀 더 높은 차원에 속한 영이나 천사라고 함. 이상적인 아담의 현신 혹은 최고의 천사장으로 부르기도 함. 할례와 안식일을 존중히 지킴. 결례를 지켰는데 결례가 죄를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는 주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술과 점성술도 행해졌다. 골로새서, 디모데전서가 언급하고 있는 이단이 이 분파일 가능성이 있다.

b. 이방 그리스도인에 의한 왜곡들: 영지주의 -영지주의는 구약과 신약을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1) 영지주의의 기원

가. 신약에 나타난 영지주의

유대교의 영향을 받아서 천사와 영들에 관한 사변에 빠졌고, 잘못된 이원론(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으로 인해서 한편으로 금욕주의, 다른 한편으로는 비도덕적인 방종으로 흘렀다. 부활을 영적으로 해석해서 육체의 부활에 대한 교회의 소망을 조롱하며 비웃었던 이단적인 교사들이 있었다. 케린투스 이단은 인간 예수와 수세 때에 인간예수에게 임하였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다시 예수를 떠난 그리스도를 구분했다. 즉 그리스도가 육체로 탄생하신 것을 부인했다.

나. 주후 2세기의 영지주의 - 온갖 종교 사상들을 흡수해서 일반화하고 조화시키려는 열심을 갖고 동방의 종교들을 열렬히 받아들였다. 좀 더 높은 지식에 대한 갈증, 하나님과의 신비적 연합에 대한 요구, 죽어서 영혼이 윗 세상으로 올라가는 확실한 통로를 확보하고자 했다.

2) 영지주의의 본질적인 성격

가. 사변적인 운동으로서의 영지주의 - 영지주의자들은 신적인 것들에 대해 일반 신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지식을 지닌 것으로 자처했다. 그들은 절대적인 존재와 악의 기원 문제에 집착했다.

나. 대중운동으로서의 영지주의 - 상징적인 의식들, 신비적인 예식들, 주문을 가르쳤다. 이런 주문들과 의식들은 죄와 죽음의 세력들을 막아내주는 필수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자 내세의 지극히 복된 삶으로 들어가는 수단이라고 여겼다. 복음을 종교철학과 신비의 지혜로 변질시켰다.

다. 혼합주의적인 운동으로서의 영지주의 -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전기를 만든 인물이자 절대적인 진리를 가르친 스승으로 본다. 기독교를 심각하게 헬레니즘화하였다.

3) 영지주의의 주요한 가르침

가. 이원론이 영지주의 체계를 관통함

고등한 것과 열등한 것, 선한 것과 악한 것으로 나눔.

최고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아이온들(중간존재)이 뭉쳐서 만든 충만계,

데미우르게-구약의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 열등하고 제한적이고 성미 급하고 보복하는 존재. 물질계는 이 데미우르게에 의해 창조되었다.

나. 구원론 - 선한 영혼이 물질인 육체와 결합한 것이 사람이다. 구원의 길은 영지주의 자들의 집회에서의 은밀한 의식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그리스도와의 혼인, 특이한 세례, 주술적인 이름들, 특별한 기름부음에 의해 최고신에 대한 비밀스런 지식을 얻는 것이 구속의 길이다. 영혼의 구원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어둠의 세상에서 빛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이다.

다. 교회론

교회는 세 부류로 구성된다.

영에 속한 사람-엘리트 계통-더 높은 차원의 지식을 통해 최고의 복을 얻음,

혼에 속한 사람-일반지체-믿음과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음- 열등한 복만 받는다.

물질에 속한 자들 혹은 이방인들 - 멸망 받는다.

라. 종말론 - 부활교리를 인정하지 않음. 영혼이 물질로부터 최종적으로 해방되어서 충만계로 돌아가면 그것이 종말이고 구원이다. 육체가 물질이기에 악하고 감옥이라는 생각은 칼빈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성경은 육체는 하나님의 성전이고 의의 병기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다고 한다. 모든 물질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다. 믿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4) 영지주의의 역사적 의의

a. 영지주의의 실패 - 교부들의 반박,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대한 짤막한 서술들, 신약에 대한 합리적 해석, 신약정경의 제한 등으로 영지주의는 곧 사라졌다.

b. 교회에 남겨진 영지주의의 흔적 - 카톨릭 교회에서 성례에 관한 특이한 개념-화체설과 같은 신비적 의식, 매개자들(성인들, 천사들, 마리아)을 통해 하나님께 접근함, 교회내의 계급 개념, 금욕주의에 대한 강조.

c. 영지주의로부터 얻은 유익 -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대립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됨.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이온들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중보자다. 가현설이 아니라 참된 인성이 옹호됨. 동정녀 탄생과 부활, 고난과 죽음이 유지되고 분명하게 조명됨.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에 대한 가르침이 제시됨. 비밀스런 지식에 의한 특권계층만의 구원이 아닌 누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이 주장됨.

3. 교회의 개혁운동들

1) 마르시온과 그의 개혁운동

a. 그의 인물됨과 목적 - 마르시온은 교회를 개혁하고자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자 추종자들을 모아 적극적인 전도활동을 펼쳐서 분파를 형성했다. 그는 영지주의자가 아니라 구원론에 집중했다. 순수한 복음과 믿음을 강조했고, 율법주의화 되는 당시의 기독교회를 바울의 참된 복음에 의해 개혁하고자 했다.

b. 그의 주된 가르침들 - 마르시온은 복음이 율법과 섞이면서 부패되었다고 보고 율법과 복음을 분리해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루터가 한 것과 유사하다. 마르시온은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 아니며, 창조주이지만 완전한 신이 아니라고 했다. 여호와는 가혹함과 공의로 통치하고 분노로 가득차 있으며 은혜라는 것을 도무지 모르는 신이다.

*반박: 출 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구약의 하나님은 열등한 신이다. 반면에 구약도 하나님의 계시라고 인정했다. 신약의 하나님은 선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다. 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다. 그리스도는 구속주에 관한 선지자들의 묘사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구약의 메시야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선하신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오셨는데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고 겉보기에 몸 같이 보이는 것을 입었을 뿐이다(가현설). 그는 데미우르게의 모든 일들을 폐하였고 처형을 당하셨지만 실체가 없는 몸을 입었기에 전혀 해를 입지 않았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하심으로 지하세계에 있는 악인들을 위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마르시온은 바울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한 유일한 사도였다고 믿었다. 누가복음과 바울이 쓴 열편의 서신만을 신약의 정경으로 인정했다.

2) 몬타누스주의자들의 개혁

a. 몬타누스주의의 기원 - 몬타누스는 주후 150년 경에 브루기아에서 나타났다. 두 명의 여 선지자 브리스가와 막시밀라와 함께 행동했다. 요한복음을 계시의 최종적이고 가장 높은 단계가 도래되었다고 보았다. 보혜사 성령이 몬타누스를 통해서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말했다.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율법적인 금욕주의였다.

b. 주된 가르침들 - 자신의 시대를 보혜사의 시대며, 영적인 은사들, 예언의 시대라고 했다. 두 여선지자들은 새로운 계시를 전하는 마지막 선지자들로 여긴다. 전체적으로는 정통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종말이 가까웠음을 강조했다. 독신생활, 금식, 엄격한 도덕생활, 순교를 강조했고, 통상적인 직분자들을 무시하고 특별한 은사들과 은사자들을 숭상했다.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을 중시했다.

c. 교회의 평가 - 영지주의자들을 대적한 것, 종말에 대한 강조, 성령의 은사의 강조, 성결함을 강조한 것은 좋아했으나, 열광적인 것과 신약보다 더 높은 차원의 계시를 주장해서 거부했다.

4. 변증가들과 교회신학의 출현

1) 변증가들의 과제

a. 목표

*진리를 분명하게 진술하고 변호함 - 저스틴, 타티안, 아테나고라스, 데오빌루스 등. 이들은 기독교를 가장 고상하고 확실한 철학으로 묘사했고, 자연 종교의 위대한 진리들, 즉 하나님, 미덕, 불멸을 강조하였고, 기독교가 유대교와 헬레니즘에서 발견되는 모든 진리를 완성시켰다고 했다.

b. 세가지 과제

첫째, 변호하는 것- 기독교인들이 혐오스러운 일들을 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은 품성과 삶에 있어서 순결하다.

둘째, 공격- 유대인들은 율법의 그림자와 모형의 성격을 보지 못하고 율법의 잠정적인 요소들을 영속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이다.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이므로 율법의 성취임을 그들은 모른다. 이교사상은 터무니없으며 부도덕하다. 타티안은 헬라철학에는 거의 선한 것이 없다고 했으며, 저스틴은 로고스 덕분에 헬라철학에도 일말의 진리가 있다고 했다.

셋째, 기독교의 성격을 정립- 계시의 실재를 입증하기 위해 예언에 의거한 논증에 의존하였고,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자들의 성품과 삶이 변화된 것을 그 근거로 제시함.

2) 진리를 적극적으로 구성함

a. 철학과 계시에 대한 견해 -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항상 분명하게 구별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모든 참된 철학자들이 연구하는 질문에 만족스런 대답을 줄 수 있다는 면에서 기독교를 철학으로 보았고, 기독교가 초자연적인 계시로부터 유래하였기 때문에 철학과는 정반대된다고도 했다.

b. 하나님과 로고스에 대한 개념 -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고 변함이 없으며 영원한 존재이자 세계의 제 일 원인으로 보았다.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자다. 성자는 로고스이다. 관심은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 높아진 그리스도에 있었고, 인간 예수에게 있지 않았다. 로고스는 단지 신적인 이성으로 인식했다. 신적 이성으로서 그는 세계를 창조할 때와 구약에서만이 아니라 이교 세계의 지혜로운 자들 속에서도 활동하였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로고스와는 달리 독립적인 위격이 있었다.

c. 그리스도와 구원에 관한 견해 - 로고스는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인간본성을 입음으로 신인이 되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한분 하나님, 미덕의 삶을 요구하는 새로운 법, 영생, 상벌이 수반되는 부활이다. 사람은 자유롭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은혜는 오직 가르침이나 법을 계시한 것이지 성령의 감화는 아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구약의 성취일 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은 펠라기우스의 주장과 같다. 그러나 사람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죄와 마귀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당한 고난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d. 새 생명, 교회, 내세에 대해 - 변증가들은 새 생명이 전적으로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얘기하기도 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 달려 있는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세례는 새 생명의 시작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참 이스라엘, 대제사장이 낳은 세대로 구성되고 엄격한 도덕성, 거룩한 사랑,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고난을 당하고자 하는 태도를 특징으로 한다. 타티안과 데오빌로는 영생을 의인들에 대한 상급이자 악인들에 대한 징벌로 보았다. 저스틴은 장래의 삶에 관한 묘사에서 천년왕국이 종종 나타난다.

3) 교리사에 있어서 변증가들의 의의

a. 변증가들에 대한 하르낙의 평가 - 하르낙과 루프스는 변증가들이 기독교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지 못했다고 보았다. 로고스론을 통해 기독교에 지적 성격을 부여한 것은 믿음을 교리로 변질시킴으로써 복음을 헬레니즘화 시켰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부당하다.

b. 신학 발전에 있어서 변증가들의 의의 - 교부들은 기독교의 진리들이 이성적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그 진리들의 합리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단점은 철학과 신학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았고, 로고스에 대한 설명은 헬라철학사상이 다소 섞였다는 것이다. 변증가들의 저서는 기독교 신학의 시작을 보여준 것이다.

5. 반 영지주의적 교부들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터툴리안 등이 있다. 터툴리안은 헬라철학이 이단의 온상임을 드러내었고 철학을 철저히 반대했으며 말년에는 몬타누스를 받아들였다. 이단자를 만나면 자리를 뜨라고 했다.

1) 하나님, 인간, 구속사에 관한 가르침

a. 신론 - 구약의 창조주와 신약의 구속주는 한분 하나님이라고 주장함. 이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고, 복음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시다. 세 위격과 한 본질로 이뤄졌다. 터툴리안은 삼위일체라는 말을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다(시험). 그러나 그는 한 위격이 다른 두 위격에 종속되어 있다고 이해하였으므로 적절한 삼위일체적 진술에 도달하지 못했다.

b. 인간론 - 악이 물질에 내재되어 있다면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순종을 통해서 불멸에 이를 수 있었다. 죄는 불순종으로서 죽음을 가져온다. 온 인류는 아담 안에서 죽음에 종속되었다. 우리의 죄와 아담의 죄 사이의 관계는 분명히 파악되지는 않았다. 아담이후 인간은 날 때부터 악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은 온 인류에게 대물림 된다. 최초의 원죄론이라고 할 수 있다.

c. 구속사 -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이 인간을 낙원에서 쫓아낸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해악이 영원토록 지속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세 가지 언약을 주장했는데 첫째는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진 법이다. 족장들은 이 법을 충족해서 의인이라 인정받았다. 둘째 언약은 십계명이다. 이스라엘의 죄악된 속성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위해 의식법이 더해졌다. 바리새인들은 이 의식법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을 빼버림으로 그 법을 무력화 시켰다. 셋째 언약에서 그리스도는 원래의 법인 사랑의 법을 회복하셨다. 이 언약은 자유를 준다. 앞의 두 언약의 종의 관계다. 이 언약은 성부와 성자에 대한 믿음을 요구한다. 범위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선다. 그리스도인은 더 엄격한 법을 받았고, 믿을 것도 더 많고 받을 은혜도 더 많다. 터툴리안은 여기에 성령의 시대를 추가했다.

3)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가르침

a. 이레니우스의 기독론 - 로고스는 영원 전부터 존재했고, 성부하나님을 계시하는 도구가 되었다. 기독론의 진정한 출발점은 역사적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는 하나님과 연합된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어서 중심적인 요소는 아담의 불순종을 무효화시키는 그의 순종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언급되기는 하지만 강조되지는 않는다.

b. 터툴리안의 기독론 - 로고스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실재적 존재이자 독립적인 위격이다. 로고스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성부하나님과 동일본질이지만 구별되는 위격으로서의 존재 양식에 잇어서 성부와 다르다. 성부는 본질 전체지만 성자는 성부에게서 나왔기에 단지 그 본질 전체의 일부다. 이런 면에서는 성부에 대한 성자 종속설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본질과 위격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로고스는 원래 하나님 안에 있던 비인격적이던 이성이었다가 창조 때에 인격이 된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해서 두 본성을 분명하게 구별하되 각각의 본성이 고유한 속성들을 유지한다고 했다. 두 본성은 서로 혼합(fusion)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결합(conjunction)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극히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형벌적 대속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고 단지 죄인 편에서의 회개의 필요성만을 강조했다. 응보적 요소를 강조하면서도 하나님의 긍휼을 강조한다. 세례 이후에 범한 죄들을 회개나 고백을 통해서 속죄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죄인은 금식이나 고행을 통해서 영원한 형벌을 면할 수 있다고 함으로 카톨릭의 고해성사의 기초를 놓았다.

c. 구속론에 대한 이레니우스의 견해 - 그는 두 가지 견해를 갖고 있었다. 첫째, 사람은 자기가 여전히 할 수 있는 선을 자원해서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간다. 그리스도는 그가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지식을 인간에게 가져다 줌으로 인간의 자유를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둘째, 로고스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 속에서 인성과 하나가 되어, 인성을 거룩하게 하고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서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로고스는 자신 안에서 인류를 재현하여, 인류가 첫째 아담의 타락 이후로 걸어온 길을 다시 반전시킨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누룩을 인류전체에게 전한다. 이것은 성육신에서 시작되어서 인간의 신격화를 가져온 신비적인 과정에 의한 속죄를 가르치는 것으로 해석되기 쉽다. 그가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 요한의 저작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그리스도와 백성의 연합을 강조하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신 순종을 드렸다거나,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함으로써 우리가 진 빚을 갚고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구속했다고 한다.

4)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a. 이레니우스의 구원론 - 세례를 받기 위해 믿음이 필수적이라고 가르쳤다. 믿음은 영혼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 세례를 통해서 사람은 중생하고 죄는 씻어지고 새 생명이 탄생한다. 믿음은 필연저그로 계명들의 준수로 이어져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한다. 성령은 새 생명을 수여하고 선한 행실을 통해 의의 열매를 맺게 한다. 카톨릭의 믿음과 선행을 통한 의인화와 비슷하다.

b. 터툴리안의 구원론 - 죄인은 회개를 통해서 세례를 받고 구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하나님은 재판장으로서 범조에 대해 배상을 요구한다. 세례 이후에 범해진 죄들은 회개의 배상이 요구된다. 배상이 이루어지면 형벌은 피해진다. 고해성사의 기초가 되었다.

c. 교회론 - 교부들은 영적모임이 교회라는 개념을 외적인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대체했다. 이것은 유대교의 입장이며 카톨릭의 견해가 되었다. 구원의 축복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교회의 지체가 되어야만 한다. 무형교회와 유형교회가 같다고 본다. 사도직을 머리로 하는 교회를 떠나면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으로 본다.

d. 종말론 - 육체의 부활에 관한 가르침을 옹호했다. 그 근거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내주다. 마귀가 배교자의 무리를 적그리스도에게 넘겨줄 때에 그리스도가 재림하고 첫째 부활이 오며, 천년왕국이 오고 신자들은 중동에서 풍요롭게 살 것이다. 천 년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다. 신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예비된 집에서 서열을 따라 살게 될 것이다.

6. 알렉산드리아의 교부들

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 클레멘스는 이레니우스나 터툴리안처럼 정통이 아니었다. 철학을 기독교 전승과 결합시키려고 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원천을 성경과 이성에서 찾았는데 이성을 지나치게 높였고 알레고리적인 성경해석을 했다. 헬라철학을 부분계시라고 하거나 히브리 선지자들을 표절했다고도 했다.

2)오리겐 -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금욕생활을 함. 클레멘스의 뒤를 이어 요리문답 교사가 되었다. “원리들에 관하여”라는 책은 명확하고 균형잡힌 신학체계를 보여주는 최초의 사례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표준을 해석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했다. 성경에 어긋난 것은 아무 것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3) 신론 - 오리겐은 하나님은 해아릴 수 없고, 평가할 수 없음, 고통을 느끼지 않는 분이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분이라고 했다. 선한 신과 데미우르게를 구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에서 동일하다. 모든 일의 원인은 하나님이다. 창조는 영원히 계속된다고 보았다.

4)로고스론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로고스의 위격적 실존, 성부 하나님과 하나됨, 영원한 발생을 강조하지만 로고스를 신적인 이성으로서 성부 하나님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하나님의 진정한 로고스를 육체로 나타난 성자 로고스와 구별한다. 로고스는 태초부터 창조 사역에 하나님의 지혜를 각인하고 사람들에게 이성의 빛을 나눠주며 진리를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함으로써 하나님의 계시를 매개한다. 로고스의 빛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좀 더 온전한 빛으로 나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한다.

오리겐은 한 분 하나님은 일차적으로 성부 하나님이지만, 성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하고 위격이며 한 번의 영원한 행위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에게서 낳음을 입은 로고스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일하신다. 성자의 온전한 신성을 인정하긴 하지만 종속설을 보여주는 일부 표현들을 사용한다. 영원한 발생이란 말을 성부 하나님께 대한 성장의 경륜상의 종속만이 아니라 본질상의 종속을 의미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종종 성자를 이류신이라고 부른다. 선재했을 때 순전하였던 로고스는 성육신을 통해서 인간의 영혼과 연합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두 본성은 계속해서 구별되어 있지만 로고스는 그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그의 인성을 신적인 것으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루터의 두 본성의 교류, 즉 인성의 신성화라는 주장과 유사하다. 개혁신학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변화되어서 다소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보지만 신성화 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여전히 사람의 본성을 갖고 있다. 비록 벽을 통과하지만 뼈와 살이 있는 존재다.

5) 성령론 - 오리겐은 성령을 성부 하나님이 성자로 말미암아 지은 최초의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성부와 성령의 관계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만큼 밀접하지 않다. 성령은 피조세계 전체 속에서가 아니라 오직 성도들 속에서만 활동한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성령은 온 우주에 역사한다고 본다. 일반은총으로. 성령은 본성상 선을 소유하고 있고 죄인들을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며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다.

6)오리겐의 인간론 - 그는 인간의 선재론을 가르친다. 인간의 현재 상태는 인간이 선재의 때에 거룩함에서 죄로 떨어져 타락한 사건을 전제하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의 물질 세계가 창조되는 계기가 되었다. 영들은 이제 혼들이 되었고 몸을 입게 되었다. 물질은 타락한 영들의 거처가 되고 그들을 훈련시키고 정화시키는 수단이 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되었다고 한다.

7) 성육신론 - 클레멘스는 로고스가 성육신을 통해서 몸과 영혼을 다 취하여 신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음식을 먹은 것은 음식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인성을 부정하지 않도록 조심한 것이라고 했고, 그리스도는 기쁨이나 슬픔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오리겐은 그리스도의 영혼은 다른 모든 영혼들과 마찬가지로 선재했고, 선재했을 때도 로고스와 연합되어 있었다고 하였다. 즉 성육신 이전 때도 로고스와 이 영혼은 상호 침투가 일어났었다고 했다. 로고스로 충만한 영혼은 몸을 입었고 몸은 로고스가 침부하여 신적인 것이 되었다. 부활하여 영광을 받았을 때에 그리스도는 편재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루터의 속성교류와 유사하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서로 뒤섞여서 육신조차 편재한다는 것이다.

8)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가르침 - 클레멘스는 그리스도가 대속물로서 자신을 내어주었다고 말하지만 인류의 죄를 위한 화목제였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입법자이자 교사, 영생에 이르는 길로서의 그리스도에 훨씬 더 강조점을 둔다. 구속은 인간을 타락 이전보다 더 높은 상태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오리겐은 그리스도가 죄인을 고치는 의사, 깨끗하게 된 자들의 교사,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는 법을 주신 입법자, 제자들에게 덕있는 삶의 완전한 모범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이 신의 본성에 참여하게 한다. 구원은 그리스도가 사탄을 보기 좋게 속임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죄를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사탄에게 바치고 사탄은 자기가 죄 없으신 분이신 그리스도를 붙잡아 둘 수 없을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대속물을 받는다. 이것을 사탄 배상설이라고 부른다. 로고스에 의한 구속의 효력은 현세를 너머서 과거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오리겐은 이 세상에서 죽은 자들 만이 아니라 모든 타락한 영들, 사탄과 그의 악령들조차도 구속의 효력아래 있고 만물도 다 회복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 주장을 만유회복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리겐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9) 구원론 - 클레멘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한다. 이 자유의지로 선을 지향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알미니우스와 웨슬리는 이런 견해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오리겐은 믿음을 인간의 행위라고 설명하면서도 믿음이 은혜의 결과라고도 했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최초의 행위일 뿐이기에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깨달음으로 승화되어야 하고 선행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구원을 가져다 주는 믿음은 선한 행위를 낳는 믿음이다. 이 견해는 성경적이다. 오리겐은 두 가지 구원의 길을 말했는데 하나는 믿음에 의한 구원이고 다른 하나는 지식에 의한 구원이다. 믿음보다 더 필수적인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이다. 오리겐은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는 것은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한 전도의 핵심으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10) 교회론 - 오리겐은 교회를 신자들의 회중이라고 보고,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한다. 본래의 교회와 경험상의 교회를 구별한다.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별개의 사제단이 특별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오리겐과 클레멘스는 둘 다 세례를 통해서 교회 안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죄사함이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클레멘스는 그리스도인의 낮은 삶에서 인간은 두려움과 소망으로 인해서 거룩함에 도달하지만, 높은 단계에서는 두려움은 완전한 사랑에 의해서 쫓겨난다. 후자는 신비들을 계시받은 자가 누리는 참된 지식의 삶이다. 성찬은 신자들을 영생에 참여하게 해준다.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성령과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오리겐은 성례들은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들을 나타내는 것이며 신적인 감화력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11) 종말론 - 오리겐과 클레멘스는 죄인의 삶 속에서 정화의 과정은 죽음이후에도 계속된다고 보았다. 오리겐은 죽어서 선한자들은 낙원에서 추가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보았고 악인들은 심판의 불을 경험한다고 가르친다. 클레멘스는 불신자들은 음부에서 회개할 기회를 갖게 되고 그들에 대한 시험은 심판의 날까지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직 소수의 신자들만 죽어서 곧장 하나님을 뵙는 지복의 삶으로 들어가고 대다수의 신자들은 죽은 후에도 정화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은 후에 연옥교리의 기반이 된다. 두 교부는 천년왕국설을 반대했다. 오리겐은 부활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몸의 부활을 믿었다. 영혼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서 거기에 맞는 몸을 갖게 된다.

7. 군주신론

이 이론은 주후 3세기의 두드러진 이단이다.

1) 역동적 군주신론 - 에비온주의나 유니테리언주의와 전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 이 주장을 최초로 한 사람은 로마의 감독인 빅토르에 의해 출교되었던 비잔티움의 데오도투스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주장은 안디옥의 감독 사모사타의 바울에 의해서 부활했다. 그는 로고스는 성부하나님과 동일본질(호모우시오스)지만 신격 안에서 하나의 구별되는 위격은 아니다. 로고스는 인간의 이성이 인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 안에 존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일시될 수 있었다. 로고스는 단지 모든 사람들 속에 현존하고 특히 인간 예수 안에서 활동했던 비인격적인 힘이다. 로고스는 예수와 관련해서는 점차 그 인성에 침부하였고 인성을 점차 신적인 것으로 바꿨다. 그래서 인간 예수는 신적인 존재가 되었고 공경을 받을 자격이 생겼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아니다. 로고스와 성령은 하나님의 비인격적인 속성들일 뿐이다. 즉 로고스는 하나님의 이성이고,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이나 영향력으로 보았다. 참 하나님은 본성과 위격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뿐이다. 예수님은 진정한 인간일 뿐이다.

2) 양태론적 군주신론

a. 사벨리우스주의 - 사벨리우스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전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 위격을 하나님이 세 가지 양태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양태적 군주신론이라고 불렸다. 성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난을 당하셨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성부수난설로 알려졌고, 동방에서는 사벨리우스주의로 지칭되었다.

b. 프락세아스와 노이투스 - 프락세아스는 성부 하나님이 고난을 당하였다고 단언하는 것을 피하였지만 노이투스는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이고 성부 하나님이 태어나서 고난을 받고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성부하나님은 자신의 존재 양태를 바꿔서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했다. 성부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 성부라고 부르는 것은 옳다. 그러나 성부가 이 땅에 태어났을 때 그는 성자, 곧 자기 자신의 아들이 되었다.

c. 사벨리우스 - 그는 위격이라는 말을 드라마에서 배우가 맡은 역할 또는 현현의 양태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성부, 성자, 성령은 단지 하나님의 한 본질이 나타난 세 가지 서로 다른 양태를 가리키는 명칭일 뿐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창조와 율법을 주실 때에는 성부로서 자신을 계시하였고, 성육신에서는 성자로, 중생과 성화에서는 성령으로 계시하셨다.

제 3장 삼위일체론

1. 삼위일체 논쟁

1) 배경

a. 삼위일체 논쟁의 출현 - 아리우스와 나타나시우스의 싸움으로 전면에 대두된 삼위일체 논쟁은 사실 그 이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터툴리안이 하나님의 세 위격을 분명하게 말했고 이 세 위격이 본성상으로 단일하다고 최초로 주장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의 단일성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군주신론이 등장했다.

b. 오리겐의 삼위일체론

그는 영원한 발생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설명한 최초의 인물이었지만 본질과 관련해서 제 2위가 제 1위게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성부는 성자에게 ‘호 데오스’(유일신)이 아니라 ‘데오스’(일반적인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열등한 신성을 주었다. 그래서 성자는 이류신으로 불렸다. 또 다른 결함은 성자의 발생이 성부의 필연적인 행위가 아니라 성부의 주권적인 의지로부터 나왔다는 주장이다. 성령은 성자에게 종속된 존재며 심지어 성자에 의해서 지음 받은 것들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성령의 신성은 거의 고려되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2) 논쟁의 성격

a. 아리우스와 아리우스주의 -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다. 아리우스는 나지도 않았고 유래하지도 않았으며 존재의 시작도 없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했다. 하나님 안에 내재해 있는 신적인 에너지에 불과한 로고스와 마침내 성육신한 로고스를 구별했다. 성자에게는 시작이 있었다. 성자는 성부에 의해서 발생되었다. 이 말은 성자가 성부의 피조물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성자는 세계 창조 전에 무로부터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영원하지도 않고 신적 본질도 없다. 성자는 모든 피조 된 존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이고 최초로 피조 된 존재다. 세계는 이 성자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성자는 장차 보여줄 공로들로 인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그가 장차 얻게 될 영광에 비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렸다. 성자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의 주장의 근거는 잠 8:22; 마 28:18; 막13:32; 눅 18:19; 요 5:19; 14:28; 고전15:28이다.

b. 아리우스에 대한 반박 -성부와 성자에 대한 아타나시우스의 견해 - 성부와 성자는 신적인 동일본질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 안에는 나뉨이나 분리가 존재하지 않고, 하급신을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의 단일성 안에 세 구별된 위격이 있다. 성자의 독립적이고 영원히 인격적인 실존을 주장하였다. 세 위격은 어떤 식으로는 분리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삼신론이 되기 때문이다. 성자가 발생에 의해서 성부로부터 낳음을 입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내적인 행위, 따라서 하나님의 필연적이고 영원한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입장은 구원론적인 확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시키는 것이 구원에 필수적인 것인데 이 일을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중보자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본질이다. 즉 하나님이신 로고스가 인성을 입어서 신인이 될 때만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서 구원이 성취된다.

3) 니케아 공의회(A.D. 325)

a. 쟁점

아리우스파는 아타나시우스

영원한 발생이란 개념을 거부했고 아타나시우스는 인정함. 아리우스는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피조되었음. 아타나시우스는 성자가 성부의 동일본질로부터 발생했음. 아리우스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 아님. 아타나시우스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임.

b. 공의회의 결정 - 대다수가 중도파였는데 중도파의 대표는 유세비우스였다. 이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오모우시오스)이라는 가르침에 반대했다. 대신 유사본질이라는 말 ‘호모이우시오스’를 사용했다. 그러나 결국 황제가 개임해서 아타나시우스파의 손을 ?어주었다. 지음받지 않고 나셨으며 성부와 한 본질에 속하는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다.

4) 회의결정이 가져온 결과

a. 불만족스러운 결정 - 설득이 아니라 황제의 힘으로 결정이 되어서 앞으로 황제의 변덕이나 황제가 바뀌면 결정이 바뀔 수 있는 전례를 만들었음.

b. 동방 교회에서 준 아리우스주의의 일시적인 득세

가. 공의회의 결정을 반대한 자들 - 대담하고 정직한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가 성부와 다른 본질이라고 했고, 일부는 성자가 성부와 같지 않다고 했고, 준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가 성부와 유사본질이라고 했다. 주로 동방교회에서 그랬고, 서방교회는 터툴리안의 전통을 이어서 아타나시우스의 교리를 받아들였다.

나. 앙키라의 마르켈루스 - 이 사람은 발생이라는 용어를 선재한 로고스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을 성육신한 로고스에 국한시켰으며, 부활 후에는 성부에 대한 세계 창조 이전의 관계로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을 더 넓혔다.

다. 화해의 시도들 - 안디옥 공의회는 유사본질과 성부의 의지적 행위를 통한 성자의 발생을 강력히 주장했다. 콘스탄티우스가 황제가 되어 서방교회 감독들이 아를과 밀라노 교회회의에서 서방교회 감독들이 유세비우스파에 동조하도록 하였다.

c. 반전된 흐름

가. 반대파의 붕괴 - 아리우스파와 준아리우스파는 서로 견해가 달랐고 후자도 통일되지 않았다. 시르미움 공의회(357)에서는 우시아(본질),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의), 호모이우시오스(유사본질의) 같은 용어를 배제함으로써 분파들을 결합시키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정한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준아리우스주의자들을 친 니케아진영으로 내몰았다.

나. 갑바도기아의 세 교부 -이들은 대 바실, 닛사의 그레고리, 나지안의 그레고리다. 이들은 휘포스타시스(위격)을 ‘우시아’(본질) 및 ‘프로소폰’(인격)의 동의어로 사용하는데서 오해의 소지가 발생했다고 보고서, 휘포스타시스를 성부와 성자의 위격적 실존을가리키는 데에만 사용하도록 그 용법을 제한 하였다. 이들은 신격 안에 있는 세 휘포스타시스(위격)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이 위격들을 신적인 우시아라는 개념아래 통합하고자 하였다. 그레고리우스 두 명은 신격 안에 있는 위격의 관계를 공통의 인성에 대한 세 명의 사람들의 관계에 비유하였다. 이로써 양태론은 완전히 극복되었으나 자칫 삼신론의 오해를 살 수 있다. 단지 로고스가 가진 인격성은 충분히 보호된 것이다.

d. 성령에 관한 논쟁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아다나시우스의 견해를 따라서 성령의 동일본질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인 마케도니우스는 성령이 성자에게 종속된 피조물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성령이단론자들이라고 불렸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우리는 성부로부터 나와서 성부 및 성자와 함께 영광을 받으시게 되어 있고,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 주, 생명을 주시는 이를 믿는다.”

e. 삼위일체론의 완결

가. 성령이 성자로부터 나온다는 문제- 콘스탄티노플 회의는 두 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 첫째, 호모우시우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아서 성령이 성부와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직접적으로 단언되지 않았다. 둘째, 다른 두 위격에 대한 성령의 관계가 정의되지 않았다. 성령이 성부에게서 나온다는 진술은 있지만 성령이 성자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부정되지도 긍정되지도 않았다. 성령이 오직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말하면 성자와 성부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고, 성령이 성자로부터도 나온다고 말하면 성령을 성자보다 더 의존적인 지위에 두어서 성령의 신성을 침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다나시우스, 바실, 닛사의 그레고리는 성령이 성자로부터도 나온다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성부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단언했다. 서방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주후 589년에 톨레도 회의에서 필리오케(그리고 아들로부터)라는 말이 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첨가되었다. 동방에서는 다메섹의 요한이 오직 하나의 신적본질이 존재하지만 세 위격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세 위격은 신적인 존재 안에 있는 실체들로 여겨져야 하지만 서로에 대해 세 명의 사람의 관계 같은 그런 관계로 있는 것은 아니다. 세 위격은 존재 양태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하나다. 성부는 비발생, 성자는 발생, 성령은 발출이 그 특징이다. 위격간의 상호관계는 혼합됨이 없는 상호내재다. 동방교회는 결코 필리오케를 채택하지 않았다. 성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원천이고 성령은 성자로 말미암아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나.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어거스틴은 삼위일체론에서 세 위격은 각각 본질 전체를 소유하고 그런 한에서 본질 자체와 동일하고, 다른 위격과 동일하다. 세 위격은 세 사람의 인격과 같지 않은데, 이 경우 각 사람이 인간 본성의 총체 중 일부만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세 위격은 다른 위격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 세 위격간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성부는 발생시키고 성자는 발생되고, 성령은 영감을 통해서 존재한다. 세 위격 간에는 상호침투와 상호내주가 있다.

2. 후대의 신학에 나타난 삼위일체론

1) 라틴 신학에 나타난 삼위일체론

a. 로스켈리누스의 삼위일체론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위격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세 개의 개체들로서 오직 발생론적으로 보거나 이름에 있어서만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세 위격의 단일성은 의지와 권능의 단일성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삼신론으로 귀결된다.

b. 프아티에의 길버르의 삼위일체론- 신적본질과 하나님을 구별하고, 이 둘의 관계를 인성과 구체적인 사람들의 관계에 비유했다. 신적 본질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만드는 그 무엇이나 하나님의 형체다. 이 것을 포르마라고 하는데 포르마가 세 위격에 공통적이기에 세 위격은 하나라고 하였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세 사람들은 사람이란 면에서 하나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삼신론 혹은 신적본질과 세명의 신이 존재하게 되므로 사신론을 가르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c. 아벨라르의 삼위일체론 -세 위격을 능력, 지혜, 선이라는 속성들과 동일시한다. 성부는 능력이고 성자는 지혜며 성령은 선을 나타낸다.

d. 토마스 아퀴나스의 삼위일체론- 당시의 교회에서 통용되던 지배적인 견해였다.

2) 종교개혁시대의 삼위일체론

a.칼빈의 삼위일체론 -칼빈은 신격 안에서 세 위격의 절대적인 동등성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성부로부터 발생된 것은 성자의 본질이 아니라 성자의 위격적 실재라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칼빈은 세 위격이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영원 전부터 존재하여 왔는데 지속적인 발생의 행위를 상정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b. 소시니안들과 알미니안들의 삼위일체론 -16세기에 소시니안들은 세 위격이 공통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교리가 이성에 반한다고 보았다. 성자는 선재하지 않았으며, 성령의 특별한 충만과 하나님을 아는 특별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고, 승천할 때에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수여받기는 하였지만 본성에 있어서는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성령은 하나님에게서 사람들에게로 흘러가는 미덕 혹은 에너지라고 하였다. 소시니안들은 유니테리언들과 현대주의자들의 선구자들이었다.

3)종교개혁시대 이후의 삼위일체론

a. 클라크의 삼위일체론 -그는 성부를 최고신이자 유일신으로 보았고, 성부와 나란히 태초부터 성자라 불린 두 번째의 신적 위격이 존재했는데 성자는 성부의 임의적인 의지의 행위를 통해서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성부 및 성자와 나란히 제 3위가 존재하는데 그의 본질은 성자로 말미암아 성부로부터 나온다. 성령은 본성적으로 성부의 뜻에 의해 성자에게 종속되어 있다.

b. 뉴 잉글랜드 신학자들 -에몬스는 영원한 발생론을 영원한 넌센스라고 했다. 스튜어트도 명백한 모순이라고 했다. 성부,성자,성령느 구속의 경륜 속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구별들을 가리키는 단어들이고 하나님 자신 속에서의 하나님의 영원한 관게들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 아니다.

c. 오늘날의 삼위일체론 - 스웨덴보리는 성부,성자,성령은 단지 성자 안에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령을 통하여 활동한 영원한 신인 안에서의 구별일 뿐이라고 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만물의 근저에 있는 미지의 통일성으로서의 하나님 자신이 성부이고, 예수 안에서 의식적인 인격을 지니게 된 하나님이 성자이며, 교회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인 하나님이 성령이라고 한다.

제 4 장 기독론

1. 기독론 논쟁들

교회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했다.

a. 그리스도의 참되고 고유한 신성. b. 그리스도의 참되고 고유한 인성 c. 한 인격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 d. 한 인격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고유한 구별

1) 논쟁의 제 1단계

(1) 배경

A. 기독론적 문제의 발생 -에비온파, 알로고스파, 역동적 군주론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고, 가현론자, 영지주의자들, 양태론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했다.

아리우스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되 성자-로고스가 절대적 신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부정했다.

B. 아폴리나리우스주의 -라오디게아의 감독(390년경에 죽음). 그는 그리스도의 참되고 고유한 인성을 부정했다. 그는 인간이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로고스가 인간의 영을 대신했다고 보았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인격적 단일성을 확보하기가 쉽다고 본 것이다. 아리우스에 대항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을 옹호하였고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다고 보았다. 그는 영이 죄의 거소(seat)라고 보았는데 인간의 영을 로고스가 대신했으니 죄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가 이렇게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부정한 이유는 완전한 인성이란 죄성을 포함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이성)을 취했지만 그것은 타락한 인간이성이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인간의 영을 그리스도께서 취하셨다. 마리아에게서 인성을 취하셨을 때, 마리아의 태를 성화시킴으로 오염이 전달되지 않았고 요셉의 씨로 난 것이 아니므로 원죄가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C. 아폴리나리우스주의에 대한 반대 -세 명의 갑바도기아 교부들과 푸아키에의 힐라리는 로고스가 인성 전체를 입지 않았다면 우리의 완전한 구속주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전인으로서 죄인전체가 새로워져야 하기에 그리스도는 인성전체를 취하셔야 했다. 아폴리나리우스의 주장은 그리스도가 인간의 의지가 없게 되고 그러면 진정한 시험과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닛사의 그레고리는 그리스도의 육체가 신성과의 연합을 통해서 변모되어 그 원래의 속성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결국 이런 논쟁은 주후 362년 알렉산드리아 교회회의에서 혼이라는 말이 아폴리나리우스가 말했던 이성적 요소를 포함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2) 논쟁에 참여한 분파들

A. 네스토리우스파

가. 테오도르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성의 존재를 부정하고 “성육신하신 경배받으실 말씀”이라는 표현들과, 마리아는 ‘테오토코스’ 즉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안디옥 학파는 정반대로 테오도르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간이었다는 것과 인간적 경험들이 완전한 실재라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데오도르는 그리스도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을 그가 죄없는 상태로 출생한 것과 그의 인성이 신적인 로고스와 연합되어 있었다는 것에서 찾았다. 로고스가 그리스도 안에서 본질적으로 내주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내주했다고 했다. 즉 그리스도안에 하나님의 내주와 신자들 안에 하나님의 내주는 정도의 차이지 본질적 차이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로고스와 그의 인성은 너무 밀접하게 연합되어서 남편과 아내를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듯이 하나의 인격과 같다고 하였다.

나. 네스토리우스와 네스토리우스주의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는 로고스를 수반한 한 인간을 낳은 것에 불과하므로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시릴은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성육신은 단지 한 인간인 존재가 로고스와 사귐을 갖게 된 것에 불과하고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도 변질되어서 그리스도는 더 이상 인류에 대한 구속주가 되지 못한다고 보았다.

다.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대한 평가 -네스토리우스주의는 두 본성이 연합하여 단일한 자의식을 이룬다고 말하는 대신에 두 본성은 단지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연합을 이룬 채 서로 나란히 공존하다고 말한다. 인간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닌자(테도포로스)였다. 그리스도가 예배의 대상이 된 것은 하나님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닌 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부인한 것이다.

B. 시릴파 -시릴은 로고스는 인성 전체를 구속하기 위해서 인성 전체를 입었지만 동시에 신인이라는 존재속에서 오직 하나의 인격적 주체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존재하고 이 두 본성은 각각의 본성에 있어서 그 어떤 변화도 없이 로고스의 한 인격 안에서 분리될 수 없이 연합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속성들 간의 상호 교류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성이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그리스도가 단일한 인격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에베소 공의회는 테오토고스라는 용어를 마리아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C. 유티케스파 -유티케스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사실상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거나 두 본성이 융합되어서 일종의 제 3의 존재가 탄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의 인성과 다르다고 보았다. 주후 448년에 이 견해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단죄되었다. 그러자 그는 로마의 감독이었던 레오에게 도움을 청했고 레오의 견해는 칼케돈 회의의 결정에 지대한 여향을 미쳤다.

(3) 칼케돈 공회의의 결정

a. 전지와 제한된 지식 등과 같은 두 본성의 속성들은 한 인격의 것으로 돌릴 수 있다.

b. 이 신인이 지닌 신성은 고통을 느낄 수 없지만 그의 감수성은 진정으로 무한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c. 그리스도의 인격의 뿌리이자 토대를 이루는 것은 인성이 아니라 신성이다. d. 로고스는 개별 인간이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와 결합되어 하나가 되었다. e. 먼저 한 개별 인간이 있었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가 자신을 그 인간과 결합시킨 것이 아니었다. 이 연합은 동정녀의 태중에서 인성의 실체와 이루어졌다. 위에서 인간 본성 자체와 결합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의미는 그리스도가 성육신에서 택자들의 인성전체와 연합을 이루신 것이고 택자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객관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그리스도의 행위는 곧 택자들의 행위가 된다. 그의 완전한 순종이 택자들의 순종이 되고 그의 완전한 제사가 택자들의 제사가 되고 그의 부활과 승천과 좌정이 택자들의 것이 된 것이다. 성경구절들에서는 명료하지 않은 것이 칼케돈 회의 결정에 대한 벌코프의 해석에서 명료해진 것이다.

2) 논쟁의 제 2단계

(1) 칼케돈 공의회 결정 이후의 혼란

A. 단성론자들 - 시릴과 유티케스의 추종자들은 그리스도의 하나의 합성된 본성을 주장하였으며 두 구별되는 본성을 인정하는 것은 두 개의 인격을 인정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테오파시크파는 하나님이 고난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프싸르톨라트라이파는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의 인성과 마찬가지로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부패한 것을 숭배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프싸트토도케아타이파는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와 동일한 본질을 지니고 있지 않았고 신적인 속성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죄가 없으시고 썩지 않으며 타락할 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B. 비잔티움의 레온티우스 -레온티우스는 칼케돈 신조에서 구성된 기독론에 한 가지를 더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성육신이 이루어진 순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위격속에서 그 인격적 실존을 지니키에 무인격적인 것이 아니라 이녁이 된 것이라고 하였다.

(2) 단의론 논쟁 -단의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는 오직 하나의 의지만이 존재한다고 단언하였다. 인간적 의지가 신적 의지에 녹아들어가서 오직 후자만이 활동하게 되었다는 견해와 신적 의지와 인간적 의지가 융합된 결과 합성된 의지가 되었다는 견해로 형태를 RKWUTEK. 양의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존재한다고 보았고 두 의지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의지는 스스로 결정하며 선택하는 능력 뿐만 아니라 욕구, 욕망, 애착을 포함하는 감정적 요소도 들어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 인간적 의지가 없다고 하면 가현설에 기우는 것이다. 제 6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은 두 개의 의지(텔레마)와 두 개의 힘(에네르기아)가 존재한다는 교리를 채택하였다. 인간적 의지는 신적의지와 연합해 덜 인간적인 것이 된 것이 아니라 승화되고 완전해졌으며 두 의지는 항상 조화속에서 활동한다고 했다.

(3) 다메섹 요한의 기독론 -요한은 인간 예수가 로고스를 입은 것이 아니라 로고스가 인성을 입은 것이므로 두 본성의 연합에 있어서 로고스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로고스는 한 개별 인간이나 일반적인 인성을 입은 것이 아니라 아직 하나의 인격으로 발전되지 않은 잠재적 개별인간, 하나의 인성을 입었다. 마리아의 태중에서 이 잠재적 인간은 로고스와 연합해서 인격적 실존을 얻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독자적인 인격을 지니고 잇지 않고 로고스 안에서 인격적 실존을 지니고 있어서 인격적인 것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과 인성의 상호 내재가 있어서 신적 속성들이 인성에 전달되기 때문에 인성은 신적인 것이 된다. 이것은 예수의 인성을 로고스의 도구로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두 본성의 협력이 존재한다는 것과 한 인격이 각각의 본성 속에서 활동하고 의지를 행사한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4) 서방교회의 기독론 -우르겔라의 감독이었던 펠릭스는 그리스도가 신성과 관련해서는 로고스이기 때문에 본성상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양자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라고 보았다. 인자는 수태된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위격과 하나가 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인격의 단일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 이론은 본성적인 아들을 로고스에 적용하고 양자를 그리스도의 인성에 적용했다. 이들은 근거로 다음을 제시했다.

A.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있다는 것은 두 가지 형태의 아들이 있었음을 내포한다.

B. 인간 예수는 성부에 비해 열등하다는 성경구절들

C. 신자들이 양자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데 그리스도의 형제들이라고 불린다는 점.

반박: 앨퀸은 양자론자들은 그리스도를 두 아들로 나누었다고 비판함.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입양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일종의 이질적인 지위를 부여한 것이라고 함.

2. 후기의 기독론적 논의들

1) 중세시대 -토마스 아퀴나스는 공인된 신학에 충실했다. 로고스의 인격은 성육신 때의 연합 이후에 합성적인 것이 되었고, 이 연합은 인성이 독립적인 인격에 도달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로고스와의 연합덕분에 두 가지 은혜를 나눠 받았다. a. 인성이 신성과 연합됨으로 존엄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인성도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 b. 성화의 은혜가 그리스도에게 주어져서 인성을 계속 떠 받쳤다.

2) 종교개혁시대

(1) 루터의 기독론: 속성들간의 교류 -루터는 로고스의 인격 안에 두 본성이 분리될 수 없게 연합되어 있다는 교리를 굳게 견지하였다. 그러나 성찬과 관련하여 실재적 임재설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승천 후에 그리스도의 인성은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견해를 필요로 하였다. 이것을 ‘속성들 간의 교류’라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각각의 보성은 다른쪽 본성에 스며들고(페리코레시스=상호충만), 그의 인성은 그의 신성의 속성들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지, 편재, 전능이 인성에 돌려졌지만 인성의 속성이 신성에 돌리는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였을 때에 자기를 비웠다는 표현에 대한 해석을 놓고 루터파 내에 갈등이 생겼는데, 기센학파는 그리스도는 성육신 때에 받은 신적 속성들을 옆으로 제쳐 놓거나 가끔씩만 사용하였다고 주장했고, 튀빙겐학파는 신적 속성들을 항상 지니고 있었지만 숨겨 놓았거나 오직 은밀하게만 사용하였다고 주장했다. 일치신조는 전체적으로 기센학파에 기울어져서 루터파의 보편적인 견해가 되었다. 켄스테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엄밀하게 신적인 능력들은 단지 잠재적으로만 존재했다고 말한다. 오늘날 루터파의 일부 학자들은 개혁파의 견해를 따른다.

(2) 개혁파의 기독론: 제 2차 스위스 신앙고백(1566) -하나님의 아들은 그의 신성에 관하여 성부와 동등하고 동일본질이이며..양자에 의해서나 특별한 은총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질과 본성에 있어서 참 하나님이시다...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아리우스의 신성모독적인 교설을 혐오한다..우리는 에비온이 주장하듯이 어떤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순결하게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믿는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포릴나리스가 가르쳤듯이 감각이나 이성없는 영혼이나, 유노미우스가 가르쳤듯이 영혼 없는 육신을 지닌 것이 아니라 이성을 지닌 영혼과 감각을 지닌 육신을 지니셨다. 우리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는 두 본성-신성과 인성-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두 본성이 삼켜지거나 혼동되거나 뒤섞이지 않고 한 인격 안에서 연합되어 있는 방식으로 된 한 분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예배한다...한 분 그리스도를 둘로 만들어서 인격의 단일성을 해소한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혐오하고, 인성의 타당성을 뒤집어 버리는 유티케스와 단성론자들과 단의론자들의 광기를 혐오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이 고난을 당했다거나 인성을 따라 도처에 편재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부활 후에 그의 몸이나 영혼이 신적인 것이 되어서 인성을 벗어버리고 신성이 되어 오직 하나의 본질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가르치지도 않는다.

3) 19세기의 기독론

(1) 슐라이에르마허의 견해 -그는 예수를 인간이상의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다. 예수는 신적인 것과 연합에 의한 완전하고 중단없는 의식을 소유하고 있었고, 죄가 없고 완전한 그의 인격 속에서 인간이 나갈 길을 깨닫고 있었다. 진정한 사람이었고 계속해서 죄가 없었고 순종이 완전했다. 인류의 새로운 영적 머리로서 온 인류의 좀 더 높은 차원의 삶을 활성화시키고 지탱해 줄 수 있는 존재다. 그의 초월적인 존엄성은 그의 지고한 신의식,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로 설명된다. 예수는 완벽한 종교적 인간이며, 모든 참된 종교의 원천이다. 예수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은 완벽하게 종교적이 될 수 있다. 예수의 특별한 인격은 그가 죄악된 성향을 만들어내는 유전적인 영향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일은 동정녀탄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본성을 이상적이고 완전한 차원으로 끌어올린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에 의해서 된 것이다.

(2) 칸트와 헤겔의 인식

A. 칸트가 생각한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단지 추상적인 윤리적 완전의 이상이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이 이상에 대한 믿음이지 하나의 인격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어른거렸던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렸던 이 윤리적 이상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 이상이 완전한 인성을 통해서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는 정도만큼 성육신되었다. 이 윤리적 이상이 합리적 신앙의 내용이고, 예수는 이 합리적 신앙의 가장 탁월한 선구자며 전도자였다. 이런 견해는 신적인 주님을 없애고 도덕을 설파한 예수만 남겨둔다.

B. 헤겔이 생각한 그리스도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이성의 자기 전개 과정으로 본다. 이것이 성육신의 유일한 의미다. 하나님은 인성을 입고 성육신되는데 성육신은 하나님이 사람과 하나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의 절정이다. 신앙은 예수를 신적인 조재로서 하나님의 초월성에 종지부를 찍은 분으로 인식한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친히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우리와 접촉하여 우리를 신의식으로 이끈다.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에서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이 범신론적으로 동일하다고 한다.

(3) 케노시스론

A. 케노시스론의 토대 -케노시스라는 용어는 빌2:7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라고 한 내용에서 유래했다. 비워는 ‘에케노센’이다.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가 성육신 때에 그의 신성을 비우거나 벗어 버렸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반론: 여기에서 표현된 행위의 대상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니라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등한 그리스도 자신의 존재다. 영광의 주는 자신을 종의 형체를 취함으로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만들었다.

B. 케노시스론의 여러 형태

이 이론의 두 가지 동기

a.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사실이고 진정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보전하고자 하는 욕구, b. 부요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었는지를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나왔다.

*토마시우스: 신적인 로고스는 절대적 능력과 도덕적 속성들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전능, 편재, 전지라는 상대적 속성들만 일시적으로 버렸지만 부활 후에는 그런 속성들을 되찾았다.

-게스: 로고스는 성육신 때에 자신의 우주적인 기능들과 자신의 영원한 의식을 버리고, 자신을 절대적으로 인간의 조건과 한계로 축소시켜서 그의 의식은 순전히 인간 영혼의 의식이 되었다.

*에브라르트: 로고스는 한편으로 자신을 인간의 차원들로 축소시켜서 순전히 인간적 의식을 소유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어떤 중단도 없이 삼위일체적인 삶 속에서 그의 완전한 신적 속성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행사했다. 동일한 자아가 영원한 형태와 시간적 형태로 동시에 존재하고 무한함과 동시에 유한하다.

C. 케노시스론에 대한 반론들 -이 이론은 삼위일체론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불변성에 어긋나며, 역사적 예수에게 신적 속성을 돌리고 있는 성경구절들과 부합하지 않는다.

(4) 도르너의 성육신 개념: 점진적인 성육신 - 하나님의 본성 속에는 자신을 인간에게 나눠주고자 하는 충동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역사적으로나 초월적으로 필연적이었다. 죄가 없었어도 성육신은 반드시 발생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새로운 인성으로서 신성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리스도는 구속받은 인류의 머리가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이었다. 창세전에 하나님 안에 있던 계시와 자기 수여의 원리였던 로고스가 이 인성과 결합되었다. 그러나 로고스가 새로운 인성에 자신을 수여한 것은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성육신은 점진적인 성격을 지녔다. 각 단계에서 신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성의 수용성이 얼마나 커졌느냐에 따라 결정되었고, 이 과정은 부활 때에 최종적인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 이론은 성육신을 단순한 한 인간이 출생해서 점진적으로 신인이 되어간 것으로 보기에 잘못된 것이다. 성경은 성육신을 처음부터 신성과 인성이 한 위격 안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단지 인간 인성이 보통 사람처럼 자라면서 한 위격 안에서 신성의 지식과 능력을 전달받았다고 본다. 그 전달이 인간의 성장과정에 따라 점진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것을 점진적인 성육신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는 탄생 시 아기일 때도 하나님으로 경배와 찬양을 받았다. 신성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러나 인성적으로는 죄 없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인성의 성장속도에 따른 신성의 지식과 능력의 수용은 점차적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의 인성이 우리와 같은 인성이라는 것을 부정하게 된다.

(5)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리츨의 견해 - 리츨은 그리스도의 인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을 출발점으로 삼고 사역을 인격보다 더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의 인격의 존엄함을 결정짓는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한 인간이지만 그가 이룬 사역과 섬김으로 인해 우리는 그에게 하나님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일을 하였기 때문에 그를 하나님이란 관점에서 묘사할 수 있다. 그는 그의 은혜와 진리와 구속의 능력 속에서 하나님을 계시하였기 때문에 인간에게 하나님의 가치를 지니고 신적인 공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6) 오늘날의 신학에서의 그리스도 - 하나님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것이 기본적인 사상이다.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단지 자기 안에 내재해 있는 하나님을 더 잘 의식해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 최고의 존재를 가장 높은 차원에서 계시하였다는 것 뿐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은 신적인 존재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오직 정도에 있어서만 그리스도와 다르다. 그리스도는 신성을 받아들이는 더 큰 수용성과 최고의 신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만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

제 5장 죄론과 은혜론, 그리고 관련된 교리들

1. 교부시대의 인간론

1) 인간론적 문제들의 중요성 - 인간론적 문제들은 죄와 은혜, 자유의지, 신적인 예정과 같은 문제들인데 이런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곳에서는 참된 경건이 많이 나타나지 않았고, 참된 경건이 약해지면 인간론의 오류가 늘 나타났다.

2) 헬라 교부들의 인간론

(1) 헬라 교부들의 죄론 -그들은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을 때에 인간의 윤리적 완전성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단지 인간 본성이 도덕적으로 완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만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강조했다. 아담은 범죄할 수 있었고 실제로 범죄하였기 때문에 사탄과 죽음과 죄악된 타락의 세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런 육체적 타락은 인류 속에서 유전되었지만 그 자체가 죄는 아니고, 인류가 죄책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았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원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류가 아담과 육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이 연결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유전되는 육신적이고 감각적인 본성에만 적용되고, 모든 경우에 있어서 더 높고 이성적인 인간 본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영혼은 하나님이 직접창조하셨다. 죄는 언제나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유래하고, 연약함과 무지의 결과다. 유아들은 오직 육체적 타락만 물려받았기 때문에 죄책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유아가 죽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 카톨릭은 유아림보, 알미니우스는 지옥에 간다고 함.

(2) 오리겐의 인간론 -오리겐은 모든사람이 태어날 때에 유전적인 부패를 가지고 나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출생 이전에 혹은 시간 이전에 영혼이 타락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함으로 원죄론에 접근했다.

(3)헬라 교부들의 은혜론 -중생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이다. 의지가 중생과정을 개시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그 과정을 완성할 수 없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의지와 협력하여 인간의 의지가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을 행할 수 있게 해준다. 헬라 교부들은 자연인이 행할 수 있는 선과 성령의 능력의 개입이 반드시 요구되는 영적인 선을 항상 분명하게 구별하지는 않는다. 웨슬리는 이것을 선행은혜와 칭의시키는 은혜로 연결시켰다.

3) 서방 교회에서 또 다른 견해의 점진적인 출현

(1) 라틴 교부들의 인간론 -주후 3,4세기에 터툴리안, 키프리안, 힐라리, 암브로시우스의 저작들에서 점진적으로 출현했다.

(2) 터툴리안의 공헌 -터툴리안은 헬라신학의 창조설 대신에 영혼 유전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영혼이 유전되면서 죄도 유전된다고 했다. 하나님은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일반적 인간 본성을 창조한 후에 그것을 생식과정을 통해서 개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인간 본성은 그 독특성을 잃지 않고 모든 시점에서 개별화된 인간 존재 안에서 계속해서 지적이고 자발적이기에 이성적이고 책임있는 활동을 한다. 본래 인간 본성이 지닌 죄는 모든 개인들에게서 죄로 남는다. 유아들은 자범죄로부터 자유롭다고 보지만 자유의지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종종 중생과 관련된 협력설을 풍기는 표현을 사용한다.

(3) 키프리안, 암브로시우스, 힐라리 -키프리안의 저작에는 인간의 본래적인 죄성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영혼의중생과 관련된 가르침을 향하여 점점 더 나가는 경향이 존재한다. 원죄의 죄책은 자범죄의 죄책만큼 크지 않다고 본다. 암브로시우스와 힐라리는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범죄하였기 때문에 죄 가운데서 태어난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인간의지가 전적으로 타락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중생과 관련된 협력설을 지지한다.

2.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의 죄론과 은혜론

1)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1) 어거스틴의 초기의 삶

어거스틴은 도덕과 신앙의 길에서 멀리 떠나 방황하면서 마니교에서 도피처를 구하다가 덫에 걸려 넘어질 뻔 하다가 마침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그의 회심은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깊은 고뇌와 통곡과 기도 후에 일어났다. 395년에 히포의 감독이 되었다.

(2)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비교 -펠라기우스는 불타는 야심이나 신비주의와는 상관없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영국의 수도사로서 엄격한 삶을 살고 흠 없는 성품과 한결같은 기질을 지닌 인물이었기에 어거스틴이 겪었는 영혼의 갈등, 죄와의 싸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은혜에 대한 깊은 체험 같은 것에 낯설었다.

2) 펠라기우스의 죄론과 은혜론

(1) 죄론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원래의 상태는 거룩하지도 죄악되지도 않으며,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중립의 상태였다. 선과 악 중 어느쪽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롭고 전혀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 범죄할 수도 있었고 범죄를 피할 수도 있었다. 선악과를 먹고 안먹고는 죽음과 상관이 없었다. 그는 원래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아담은 범죄했어도 자신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았고 인간 본성도 전혀 타락하지 않고 변함이 없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은 유전되는 부패성은 없었다. 인간의 본성에는 필연적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악한 성향이나 욕구 같은 것은 없다. 단지 아담은 후손들에게 나쁜 선례를 보였을 뿐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한 것을 행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은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 한도 내에서 책임을 진다. 죄가 보편적이라면 잘못된 교육, 나쁜 모범, 범죄의 습관 때문이다. 이런 사상은 불신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어서 일반 교육의 전제가 되었다.

(2) 은혜론- 악에서 선으로 돌이킬 때에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은혜는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성령의 감화를 말한다. 펠라기우스가 말하는 은혜는 단지 인간의 이성적 본성, 성경속의 계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 같은 외적인 은사들과 천부적으로 수여받은 것들을 말한다. 펠라기우스는 유아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성별의식내지 장래의 죄 사함을 앞당겨 미리 선포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영생이라는 낮은 차원의 복된 삶으로 갈 수 있지만 천국으로부터는 배제된다고 했다. 아마도 자발적인 복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3) 어거스틴의 죄론과 은혜론 -어거스틴은 죄의 자발적 성격을 강조한다. 죄로 인해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끊어져서 악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고 믿는다. 죄의 결과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둔 참된 선에 대한 의욕을 더 이상 가질 수 없고 자신의 참된 운명을 실현할 수 없으며, 속박의 상태로 점점 더 빠져들어간다. 죄는 어떤 적극적인 것이 아니라 결여 혹은 결핍이다. 죄는 선의 결핍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애로 대체해 버린 것이 죄의 뿌리가 된 원리다. 인간의 타락은 이성과 반대되는 육욕과 같은 감각적니 욕구들이 인간의 영혼에서 횡행하게 된 것이다. 죄의 결과로 죽음이 왔다. 인간은 죽지 않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거룩함 속에서 견고해졌을 것이고 범죄하지 않고 죽지 않을 능력의 상태로부터 범죄할 수 없고 죽을 수 없는 능력의 상태로 옮겨갔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했고, 그 결과 범죄하지 않을 수 없고 죽지 않을 수 없는 능력의 상태로 들어갔다. 아담은 타락한 본성을 죄책과 부패와 더불어서 그의 후손들에게 물려준다. 온 인류는 아담 안에 배아로 존재했기 때문에 아담 안에서 실제로 범죄했다. 이것이 실재론적 의미다. 인류는 개인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아담 안에 존재했던 원래의 일반적 본성의 유기적 부분들인 수많은 개별화된 존재들도 구성되어 있다. 죄의 결과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서 어떤 영적인 선도 행할 수 없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의지가 어느 정도의 본성적인 자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의지는 자연적으로 선한 행위들,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할 수 있다.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죄책을 짊어지고 있으며 악의 지배아래 있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에 대한 의욕을 가질 수 없다고 본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동기에서 나오는 것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다.

(2) 은혜론 -인간의 의지는 새롭게 될 필요가 있고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어거스틴이 불가항력적인 은혜라는 말을 할 때, 인간의 의지를 강제한다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인간의 의지를 변화시켜서 인간이 자발적으로 선한 것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혜는 모든 선의 원천이다. 어거스틴의 중생론은 철저하게 하나님 단동력적이다. 그는 은혜를 세 단계로 나누었다. 선행적 은혜에서 성령은 율법을 활용해서 죄의식과 죄책감을 낳고, 작용적 은혜에서 복음을 사용하여 칭의 및 하나님과의 화목을 가져다 주는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사역에 대한 믿음을 낳으며, 협력적 은혜를 통해서 인간의 새로워진 의지가 하나님과 협력하여 일생에 걸친 성화 사역에 참여하게 된다. 은혜의 역사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과 죄인이 성도로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포함한다.

(3) 예정론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원의 유효한 원인이라고 설명하였다. 처음에 그는 예정을 하나님의 예지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예정은 실제로 예지된 인간의 자유의지에 종속되어 버렸다. 그러나 후에 성경구절들을 통해서 인간이 선을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효과라고 보았다. 예정은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본 죄인의 구원이라고 하였다. 택함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것을 간과하기로 작정했다고 하였다. 유기는 의도된 결과를 확보하기 위한 하나님의 어떤 직접적인 개입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선택과는 다르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중생의 은혜는 다시 상실될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중생하고서 끝까지 신앙을 지킨 자들과 중생의 은혜를 상실한 후에 다시 회복한 자들만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택함받은 자들은 중생되지 못한 상태로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였다.

4) 펠라기우스 논쟁과 준펠라기우스 논쟁 -동방교회는 운명 같은 이교적 사상에 반대하여 인간 본성에 있어서의 자유의 요소를 강조하기를 좋아했다. 그들은 인간의 의지가 부패하여, 사탄과 감각과 관련된 시험이나 유혹들, 죽음에 종속되게 하였고, 세례를 통해서 새로운 삶이 전해진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대체로 헬라 교부들은 은혜와 자유의지를 나란히 열거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1) 펠라기우스의 전파와 단죄 -펠라기우스의 체계는 그의 제자였던 켈레스티우스에 의해서 북아프리카 교회에 소개되었다. 동시에 펠라기우스는 팔레스타인에서 자신의 견해를 전파했다. 주후 412년에 케레스티우스는 카르타고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견해를 철회하지 않자 출교 당했다. 펠라기우스는 예루살렘과 디오스폴리스의 교회회의들에서 이단으로 고소되었지만 자신의 일부 발언들을 수정하고 그럴듯하게 해명해서 이단정죄에서 벗어났다(주후 414-416). 416년에 밀레브와 카르타고 교회회의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었고 418년에 로마의 감독 조지무스가 재가했고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단죄되었다.

(2) 준펠라기우스주의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 양쪽이 모두 인간을 새롭게 함에 있어서 대등한 요인이라는 것들을 인정하고, 예지된 믿음과 순종에서 예정론의 통대를 찾음으로써 모든 난점을 비켜나가고자 했다. 인간의 부패를 부정하지 않았고, 인간의 본성이 타락에 의해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니라 약화되었고 병들었다고 보았다. 타락한 본성은 자유의지의 요소를 갖고 있고, 이것 덕분에 은혜와 협력할 수 있다. 중생은 이 두 요인의 협력의 산물이지만 중생의 역사를 개시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다.

(3) 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진 어거스틴주의 -준펠라기우스주의를 받아들인 인물은 마르세이유의 대수도원장이었던 카시안과 레기움의 파우스트, 마실리아의 겐나디우스 등이었다. 그러나 오렌지 공의회에서 단죄되었다. 그래서 결국 어거스틴의 죄론과 은혜론이 서방교회의 인간론으로 채택되었다. 레오, 그레고리, 비드, 앨퀸 등과 같은 인물들이 어거스틴의 이론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거스틴만큼 강하게 유기자들의 간과(Preterition)와 유기를 단언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인간의 의지가 노예 상태라서 인간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대단히 강조했다. 예정에 의한 불가항력적 은혜에 대한 가르침은 성례에 의한 성례적 은혜에 관한 가르침으로 대체되었다. 아울러 이중 예정-악으로의 예정-도 주후 529년에 폐기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동방교회에서는 준 페라기우스주의가 견고하게 자리잡았고 서방교회도 헬라교회의 인간론을 채택했고 그 이후로도 그 인간론을 지지했다. 이중예정의 폐지는 결국 동방교부들을 깊이 연구하고 받아들인 웨슬리에 의해서 악마의 교리라고 비판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웨슬리는 알미니우스의 영향을 받고 예지 예정을 선택했다. 그리고 다른 면에서도 준펠라기우스주의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몇 가지 면에서 다르다.

3. 중세 시대의 인간론

1) 대 그레고리의 견해 -주후 540년경에 태어난 대 그레고리는 어거스틴, 제롬, 암브로시우스에게서 배운 부지런하고 성실한 연구자였다. 부친이 죽은 후 자기 재산을 좋은 일, 수도원건축에 바쳤다. 주후 590년에 만장일치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어거스틴 다음으로 교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권위자다.

(1)인간론 -그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했다. 아담이 범한 최초의 죄는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영적인 맹목과 영적인 죽음에 굴복했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정죄되었다. 그는 이 원죄로 인한 부패성을 죄책이라기보다는 연약함이나 질병으로 보았고, 타락으로 인해 자유를 잃은 것이 아니라 의지의 선함만을 잃었다고 했다. 은혜 없이는 어떤 구원이나 공로도 없다고 했다. 구속의 역사는 은혜로 말미암는다. 선행적 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선에 대한 의지를 갖게 하고 후속적인 은혜는 선을 행할 수 있게 만든다. 인간 속에서의 변화는 믿음을 생기게 하고 과거의 죄들이 지닌 죄책을 무효화시키는 세례에서 시작된다. 의지는 새로워지고,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게 되어서, 인간은 하나님에게 공로에 의해서 뭔가를 얻게 된다.

(2) 예정론 -그는 예지 예정을 믿는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일정한 수를 정하는데 이는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선택받았다는 것을 아무도 알 수 없다.

2) 고트샬크 논쟁

(1) 고트샬크의 예정론 -세비야의 이시도르도 어거스틴과 같이 이중예정을 주장했다. 그러나 7-9세기에는 그레고리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지예정을 믿었다. 이때 고트샬크라는 인물이 이중예정, 멸망받을 자들의 예정과 구원받을 자들의 예정을 열렬히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구속의 일과 거룩을 만들어 내는 일로 제한하고 죄는 허용의 작정으로 했다. 예지예정은 거부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을 인간의 행위들에 의존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거절되었다.

(2) 고트샬크에 대한 반대 -그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죄의 원천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주후 848년 마이앙스에서 단죄되었고 채찍질당하고 종신형에 처해졌다. 프루덴티우스, 라트람누스, 레미기우스는 이중 예정론을 옹호했고, 라바누스, 앨스의 앙크마르는 이중 예정론을 맹렬해 공격했다. 후에 이들은 결국 성례적 은혜라는 개념에 동의했고, 엄격한 예정론이 성례의 영적 가치를 빼앗아 버리고 단순한 형식들로 만들어 버릴 것을 두려워했다. 이들은 퀴어시의 교회회의와 발랑스의 공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의 택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긍휼이 선한 공로보다 선행하며, 멸망받을 자들의 정죄에 있어서 악한 공로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보다 선행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예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긍휼이나 의로운 심판에 있어서 오지 그 자신이 행하고자 하시는 것들만을 결정하셨다...그러나 악인에 있어서 하나님은 악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그 악을 예정하시는 것이 아님을 고백한다.

3) 안셀무스의 기여

(1) 죄론 -원죄에서 원이란 인류이 기원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에 있어서 개인의 기원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원죄는 본성적 죄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죄책을 지니게 되고 부패하게 되었다. 이 죄책과 부패는 아버지로부터 자녀로 전해진다. 자범죄든 원죄이든 모든 죄는 죄책을 구성한다. 모든 아이는 아담 안에서 실제로 범죄했고 죄책이 있고 부패된 것이다. 죄악된 본성이 생식을 통해서 번식된다. 그는 직계조상의 죄는 아담의 죄가 전달되듯이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2) 자유의지론 -자유는 범죄하거나 범죄하지 않을 힘, 혹은 양쪽 모두의 가능성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천사들은 완전한 도덕적 자유를 지니고 있지만 범죄할 수 없다. 외부의 강제없이 스스로 옳은 것을 행하겠다고 아주 단단히 결심하여서 옳은 길을 떠날 수 없게 된 의지는 자유롭다. 아담은 범죄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범죄했다. 그는 옳은 것을 행하는 참된 자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아담의 타락 후에 참된 자유는 상실되었지만 의지의 능력은 상실되지 않았다. 의지의 참된 목적은 선을 택하는 것이다. 의지의 참된 자유는 거룩을 향한 의지의 자기결단에 있다. 잘못된 것을 선택하는 능력은 불법적인 선택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의 완전함으로부터 제외된다.

4) 로마 카톨릭의 인간론이 지닌 특징들

(1) 원의론 -인간이 창조될 때, 육신과 영혼으로 구성되었는데 육신에 있는 육욕이 영혼의 이성과 양심을 거스리는 상태였다. 이때 영혼이 육신의 야수성을 지배할 수 있도록 주신 초자연적인 은사가 있는데 이것이 원의다.

(2) 원의의 상실에 대한 견해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원의는 상실되었다. 그리고 육신과 영은 다시 갈등상태로 빠져들었다.

(3) 원죄론 -아담은 모든 후손들의 대표자요, 후손들은 모두 아담 안에서 범죄하였고 원죄를 짊어진 채 세상으로 들어온다. 원죄는 원의의 결여이다. 아담의 원죄는 보편적이고 자발적인 성격을 지닌다. 원죄는 육욕이나 인간 속에 있는 악한 욕망이나 정욕들과 동일시되어서는 안된다.

(4) 신인협력설 -인간은 영혼을 영적으로 새롭게 함에 있어서 하나님가 협력한다는 설. 인간은 주입된 의라 불리는 칭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스스로를 준비시킨다.

4. 종교개혁시대의 인간론

1)종교개혁자들의 인간론

(1) 아담과 그의 후손들의 관계에 관한 견해 -베자는 아담의 본성에 있어서 인류의 자연적인 머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와 맺은 언약의 대표자였고, 그 결과 그의 최초의 죄는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죄책으로 전이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책을 지기 때문에 그들은 부패된 상태로 태어난다.

(2)죄론 -원죄는 아담의 죄일 뿐아니라 인간 본성의 전적부패다. 원죄는 영혼과 육체 전체에 자리잡고 있다. 부패성으로서의 원죄는 단순히 죄의 연료가 아니라 죄다. 그것은 죄책이 있고, 정죄를 받게 만드는 내주하는 죄들이다.

(3) 전적 타락설 -타락의 결과로 어떤 영적인 선을 할 수 없고 회복을 위해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중생하지 못한 자라도 여전히 시민적 의, 즉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를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멜란히톤은 인간이 시민적 의를 행하게 해주는 하나님의 보통은혜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4) 은혜의 필요성 -루터, 칼빈, 쯔빙글리는 인간이 중생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 전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멜란히톤은 의지가 일정정도의 실질적인 자유가 있어서 중생시에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다고 하였다.

(5) 예정론 -루터는 유기에 관한 가르침을 부정하거나 유기는 예정에 의한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쯔빙글리는 유기를 유효한 작정이라고 하였다. 언약개념은 불링거, 폴라누스, 고마루스, 크로펜부르크, 코케이우스의 저작들에서 나타났다. 아담은 본성적으로 인류의 머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와 맺은 언약의 머리, 그의 모든 후손들의 도덕적 법적 대표자였다. 대표자의 죄로 인한 죄책은 후손들에게 전가되고 부패된 채로 태어난다. 실재론은 루터파에서 여전히 인기가 있지만 개혁파에서는 일반적으로 폐기되었다.

2)소시누스의 입장 -하나님의 형상은 단지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을 의미한다. 인간의 의와 거룩이 아니다. 아담의 타락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손상시키지 않았다. 인간이 죽는 것은 아담의 죄 때문이 아니라 죽을 존재로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아담의 잘못은 후세에게 나쁜 모범을 보였다는 것이다. 사람은 아담과 같은 상태로 태어난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데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알고 그들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오면 언제든지 죄를 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3)알미니우스주의자들(알미니안들)의 인간론

(1)죄론 -아담의 죄로 인한 부패는 대물림되지만 죄책은 전달되지 않는다. 부패는 죄가 아니고 질병이나 연약함이다. 전적부패를 믿는 척하지만 실제로 믿지 않고, 인간은 자유의지, 즉 영적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자기 속에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 하나님에게서 돌이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고 함.

(2)은혜론 -선행적 은혜, 보통은혜 나. 복음적 순종의 은혜 다. 견인의 은혜가 있다.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부패의 효과를 상쇄시키고 중생에 있어서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충족적 은혜를 수여한다. 중생하고 못하고는 본인의 의지가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렸다. 충족적 은혜를 잘 사용하면 유효한 은혜의 대상이 되고, 순종하면 복음적 순종의 은혜를 받고, 여기에 순종하면 견인의 은혜를 받고 순종하면 견인된다. 은혜에 순종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므로 중생하고 못하고는 인간에 달렸다.

(3)예정론 -이들은 선택과 유기를 믿지 않고 믿음과 순종과 견인을 예지하여 선택하고, 불신앙, 불순종, 죄 안에 머무는 것을 예지함으로 예정하는 유기를 주장했다.

4) 도르트 교회회의의 입장 -1618년에 84명의 정식회원과 18명의 총대로 구성된 총회, 48명은 네덜란드, 그 외 영국, 스코틀랜드, 독일의 팔츠, 헤센, 블멘, 나사우, 엠덴, 그리고 스위스를 대표하는 외국인들이었다. 총 154번의 회의가 있었다. 알미니우스주의의 주장을 거부함.

(1) 예정론 -선택과 유기는 둘 다 절대적이다. 선택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정죄아래에 있는 인류 가운데서 선택이고, 유기는 그들의 죄로 인한 멸망과 정죄 가운데 내버려 두는 것이다.

(2) 원죄와 인간의 타락 -아담은 모든 후손들의 법적 대표자였음로 죄책과 부패성이 후손에게 전달되었다. 모든 부분이 부패되었고 어떤 영적 선도 행할 수 없고 본인들의 힘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 그러나 자연적인 희미한 빛이 있어서 선악을 약간 분별할 수 있고, 미덕, 사회의 선한질서, 단정한 외적인 행실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

(3)중생론 -중생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다. 선택된 자들을 성령께서 중생시켜서 내적 소명을 듣게 하심으로 중생되어 회심에 이른다. 그러나 외적 소명도 진지하게 의도된다. 도르트 회의 결정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작성하는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5) 소뮈르 학파의 입장 -아미랄두스는 보편적이고 조건적인 작정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보편적 구원을 마련하였고, 제한적이고 무조건적인 작정을 통해 택한 자들에게 믿음과 회개를 위해 필요한 위한 은혜를 주기로 하였다고 주장했다. 플라카이우스는 아담의 죄가 후손들에게 직접 전가되는 것이 아니고 아담으로부터 부패한 죄성을 끌어오고 이것이 후손들에게 죄책으로 전가된다고 주장했는데 1644년에 샤량통 교회회의에서 거부되었다. 이 두 사람의 주장에 대항하여 스위스 일치신조가 하이데거, 투레틴, 게넬러에 의해 작성되었다.

5. 종교개혁 이후의 인간론적 견해들

1) 종교개혁의 가르침과 다른 견해들

(1)웨슬리파 알미니아니즘

가. 원죄는 실제로 죄며, 인간이 죄책을 갖게 만든다고 본다. 이 죄책은 후손에게 전가 된다.그러나 이 죄책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모든 사람 안에서 무효화되었다.

나.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로 필요하다. 구속의 보편적 은혜에 의해서 각 사람에서 구원받기에 충분한 선행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이 은혜에 협조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선행은혜는 원죄의 용서, 자범죄를 확신시키는 은혜, 하나님의 뜻을 행할 능력, 양심이라고도 불린다.

(2)뉴잉글랜드에서 나타난 개혁파 견해들의 수정

a.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타락의 관계 -조나단 에드워즈- 인간의 타락에는 하나님의 유효적 행위가 없다. 홉킨스, 에몬스, 드와이트, 테일러-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과 연관성이 있긴 하지만 최소한도다. 이성적인 피조물들은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죄는 가능하지만 반드시 죄가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b. 인간의 자유의지 -에드워즈는 도덕적 존재들의 자유는 섭리의 확실성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간의 의지는 선과 거룩의 방향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이 진정한 자유를 죄로 말미암아 상실했다. 후대의 학자들은 정반대의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자유롭고 책임있는 도덕적 존재의 한 속성이라고 했다.

c. 죄의 전이 -에드워즈는 실재론을 선택했다. 가지들이 한 나무에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는 아담과 연결되어 있다. 그 결과 아담의 죄는 우리의 죄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가된다. 이런 견해는 루터파, 스미스, 쉐드 같은 개혁파 학자들에 의해서도 지지받고 있다. 우즈, 타일러는 프라이카이우스의 간접 전가설을 옹호해서 인간은 본성에 있어서 아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부패성을 물려받고 이 부패성이 인간에게 죄책으로 간주되며 인간이 정죄되기에 합당하게 한다.

2)오늘날의 죄론

(1)철학적 죄론

*라이프니츠-죄는 피조물이 지닌 필연적 한계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고 함.

*칸트- 인간 속에는 근본적인 악에 이끌리는 소질이 있고 이것이 자유의지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죄책을 내포한다. 근본적인 악을 아담의 죄에서 왔다고 보지는 않는다.

*헤겔- 원래 인간의 상태는 짐승과 같은 상태였다. 지식을 습득함에 따라서 인간은 이 상태에서 도덕적 상태로 이행되었다. 이 지식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가능했다. 자의식이 생기면서 자기중심적이 되며 악하게 되었다. 자기중심은 죄악된 것이지만 자기발전과정의 필수적인 것으로 자기중심성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기 전에는 죄책이 되지 않는다. 자기중심성과 싸우는 것이 덕으로 가는 길이다.

(2)신학적 죄론

*슐라이에르마허- 죄는 인간의 육체적 욕구들이 영혼의 기능을 방해하고 주도적이 될 때 발견된다. 죄는 우리의 의식속에만 존재한다. 신의식에 대한 결핍감이 죄의식을 유발한다. 결핍감을 느끼는 것은 사람에게 구속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원죄는 단지 점진적으로 형성되어 온 획득된 습성이며, 자범죄의 원천이 된다.

*율리우스 뮐러- 죄는 도덕법에 불순종한 의지의 자유로운 행위라고 한다. 죄의 기원을 조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죄는 무시간적인 상태 혹은 시간 이전에 이루어진 의지의 결단에서 이루어졌고 인간은 그 때문에 죄책을 지니고 타락한 채 태어난다.

*리츨- 죄는 일종의 무지라고 함. 완전한 선에 대한 무지 속에서 정반대의 것을 행한다. 즉 자범죄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것이다. 이상을 아는 지식이 늘어갈 수록 죄의식도 늘어간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계시는 인간이 죄의식으로 말미암는 죄책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하나님이 죄인에게 화가 나 계시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상상이다.

*테넌트- 인간 안에 있는 야수적인 충동들과 욕구들은 죄의 재료일 뿐 죄가 아니다. 인간은 발전과정 속에서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의지를 지닌 윤리적 존재가 되었고, 이 의지가 죄의 유일한 원인이다. 죄는 “개인의 양심, 선하고 옳은 것에 대한 개인의 관념, 도덕법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개인의 지식에 어긋나는 생각이나 말, 또는 행위를 통해서 표현되는 의지의 활동이다.

제 6장 속죄론 혹은 그리스도 사역론

제 1절 안셀무스 이전의 속죄론

1.헬라 교부신학의 속죄론

⑴속사도 교부들의 구속 사역론 - 속사도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 대체로 성경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요한 표현을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볼 수 있는데, 인간의 죄는 형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속상물로 주셨고, 그 결과 그리스도의 의로 인간의 죄는 사함을 받는하고 하였다.

⑵이레네우스의 속죄론 -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중간 입장에 섰던 이레네우스는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으므로 인간을 해방시켰다는게 그의 견해였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에게 연합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며, 그가 순종하심으로 아담의 불순종을 배상하셨다.

⑶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의 속죄론 - 클레멘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인간의 부채를 배상하시는 속상물로 나타내고 있다. 그에 반에 오리겐은 몇가지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통하여 자기 희생의 최고의 모범을 보이셨으며, 그로인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셨다.

*오리겐의 새로운 설 - 사단이 계약에 속았다는 것, 그리스도의 인성을 미끼를 삼키고 신성의 갈고리에 걸려 들었다는 것, 그 때문에 지옥에 있는 영혼들까지도 모든 영혼들이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

⑷아다나시우스이 속죄론 - 속죄사역에 관한 최초의 논문은 아다나시우스의 성육신론이었다. 로고스는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하나님께 대한 참 지식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성육신하였다. 죄의 형벌을 참으심으로 인간의 빚을 갚으신 대속자로 표현되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말씀과 모범으로 역사하신다.

⑸닛시의 그레고리와 나지안제의 그레고리의 속죄론 -닛시의 그레고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논문 대요리 문답의 저자이며, 사단이 기만당했다는 설을 주장하였고, 그 근거로 두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로 기만자가 기만당하는 것은 당연한 보응이며, 둘째로 사단 자신을 그 기만으로 자신이 구원 받는 유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한편 나지안제의 그레고리는 속상설을 거부하였으며, 성부 하나님께서 속상을 요구하셨다는 설도 부인하였다. 그 외에 사상들은 사실상 아다나시우스의 사상을 되풀이 하였다.

⑹다메섹사람 요한의 속죄사역론 - 요한은 이미 있던 사상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였고 자신의 독창적인 어떠한 사상을 이룬 것은 없다. 그리스도 사역론이 헬라신학에서 두 가지 중요한 관점에서 나타나고 있다.

①구원이 성육신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새 생명을 부여해 주셨다.

②구원은 어떤 객관적인 조건을 성취하는데서 오는 결과인데 그 조건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신적공의 만족케 하는 것이라는 것, 사단에게 지불하는 속상과 같은 조건을 의미한다.

2.라틴 교부신학의 속죄론

⑴터툴리안의 구속관 - 라틴 신학은 터툴리안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선교의 정점이요, 참된 종결로 봄으로 이레네우스보다 그 중심적인 의미를 강조하였다. 그의 공헌은 그리스도의 사역론에 대한 신학에 큰 역할을 하였던. “유죄” “속상” “공로”등의 법률적 명사들을 소개하였다는 것에 있다.

⑵힐라리와 암부로스의 구속관 - 헬라사상을 서방에 전해준 힐라리와 암브로스, 힐라리는 인간성이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회복되었다는 헤라사상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 드리는 속상이며, 그리스도는 그 형벌의 의무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으셨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 암부로스는 그리스도가 사단에게 속가를 지불하고 사단을 속였다는 오리겐의 사상을 되풀이 했다. 동시에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었다로 말하고 있다.

⑶어거스틴의 구속관 -서방교회 위해 일했던 교부 어거스틴 그리스도의 사역론에서는 크게 기여하지를 못했다. 이미 있던 사상들을 총괄하여 다양한 견해들을 나타냈다. 성육신을 통하여 인성인 신화(神化)하였다는 관점을 가졌다. 사단은 인간에게 대해서 주장권을 가졌으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무효화 되었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의 사상은 헬라 신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중심사상은 원죄, 은혜로 말미암은 칭의,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오는 화목등의 관념이다.

⑷대 그레고리의 구속관 - 어거스틴의 신학에 강하게 감화를 받은 대그레고리는 인간은 자발적으로 죄와 죽음의 지배하에 떨어졌으니 오직 제사만이 그 죄를 소멸할 수 있다. 오직 죄없는 인간만이 할 수있는데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의 인성 때문에 죽을 수 있었고, 그의 의 때문에 정결케 하실 수 있었다.

제2절 안셂으로부터 종교개혁까지의 속죄론

1.안셂의 속죄론 - 켄터베리의 안셂(1033-1109)은 속죄교리를 일관성있게 설명하려고 했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의 저서『왜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나?』신학연구에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형이상학적이 깊이의 표현과 명료성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 안셂은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속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셂의 명확한 입장은 그의 죄와 속상의 개념을 통해서만 이해 할 수 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그의 의지를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의무하에 있지만, 인간이 반역하여 거절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혔으며, 죄의 부채를 지게 되었다. 인간이 실패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했던 것을 신인(神人)으로서는 행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스도는 성부에게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쓰디쓴 수난과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함으로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렸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죄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여분의 사역이었다. 값없이 주시는 은사는 보상되어야 한다는 것을 공의는 요구하였다. 이러한 안셂의 이론은 속죄론의 발전에 중요한 진전을 가져다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아베랄드의 속죄론 - 아베랄드의 이론은 사단 배상설을 부인한 것외에는 안셂의 이론과 공통되는 것이 없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속상물로 여기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속상으로도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떠한 속상도 받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죄인들의 회개이다. 사죄는 우리의 가슴속에 불붙는 사랑이 직접적인 결과이며 그리스도의 죽음의 간접적인 결실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죄는 가슴속에 불타는 사랑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아베랄드는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안셂의 속죄 교리와는 달리 아베랄드의 교리는 철저히 주관적다. 오늘날 도덕적 속죄론, 또는 도덕적 감화설의 전형적인 표현을 볼 수 있다. 하나님에게는 사랑만이 중심적이며, 사랑만이 모든 속성의 근원이 된다는 잘못된 원리에서 출발하였다. 만일 하나님께서 속상을 요구하지 않고도 죄를 사해 주실 수 있었다면 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수난을 당하게 하셨는가? 아베랄드의 이론은 그리스도의 수난의 구속적 의미를 박탈하고, 인간에게 교훈과 모범을 통하여 감화를 주는 단순한 교사로 전락시켜 버렸다.

3.아베랄드에 대한 버나드의 반동 - 버나드는 아베랄드가 기독교를 이성적으로 해석하였다고 비난하였으며, 그리스도의 모범이 우리를 성도로 만든 것을 아담의 모범이 우리를 죄인으로 만든 것과 같이 적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계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원적 현현도 보았다. 버나드의 이 사상은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변형하시어 인간성 속에 들어옴을 의미하는 것이다.

4.혼합적 속죄관 - 롬바드 피터나 보나벤튜라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학자들은 안셂과 아벨랄드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사상적 요소룰 취했으나, 그것을 결합시켜 내적 통일을 이루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피터의 속죄관 - 그리스도의 속죄론의 출발을 그의 공로에 두고 있다.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 원적으로 하셨으며, 죄인을 위하여 하셨다. 그리하여 죄와 형벌로부터 인간들을 구출하시어 낙원에 들어가게 하였다.

*보나벤튜라의 속죄관-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강요 된 속상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피조물은 속상물이 될 수 없고 이 속상을 행하는 것은 신이며 인간이어야 했다. 이 속상은 실천과 수난에서 얻어진 그리스도의 공로로 되어졌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속죄론 - 스콜라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인 아퀴나스는 중세기의 어느 신학자들보다 선배들의 사상을 완전히 흡수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역론에서 통일성이 없음을 보게 된다. 이레네우스와 아베랄드를 연상케하는 표현들을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구속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온전한 구속을 이루신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니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이루시고 최대의 가능한 효과를 보증하는데 있다 는 것이다.

제3절 종교 개혁기의 속죄론

1. 안셂의 교리를 수정한 개혁자들 - 개혁자들과 안셂 사이에는 사상의 일치점이 있다. 속죄의 객관성을 주장했고, 그것을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개혁자들이 발전시킨 속죄론은 하나님의 율법의 위범(違犯)으로 보았으며, 형벌을 받아야 할 죄책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속죄는 형벌을 통하여 이루어진 속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인(神人)은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언약적인 면에서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렸다. 마지막 아담으로서 최초의 아담이 하지 못한 것을 그리스도는 하셨다.

2. 소씨니안파의 속죄론 - 소씨누스는 개혁자들의 교리에 관하여 공격을 가하였다. 그는 하나님 안에 “죄는 절대적으로 형벌을 받아야한다”는 공의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하나님의 특성이신 영구적이고 불변적인 공의는 단적으로 그의 도덕적 공평과 정직은 나타내는 것으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에는 어떠한 부패나 불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소씨누스는 사죄가 단순히 회개와 순종에 기초를 둔 자비의 행위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죽으신 후에 즉시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이 죽음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하였다.

3. 알미니안파의 속죄론 - 그리스도의 죽음을 희생 제물로 보면서도 이 희생이 부채의 지불로서나 공의의 완전한 속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알미니안 견해의 특색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일반적 혹은 보편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그것은 그가 인류의 죄를 일반적으로 속하셨다는 것과 개인의 죄를 특수적으로 속하셨다는 것이다.

**도르트대회의 제한 속죄론- 알미니안파의 잘못을 반대하여 도르트 대회에서는 그리스도의 구원이 효과적으로 적용된 사람들 즉 선택된 자들만을 위하여 의도되었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속죄의 효과적인 적용은 죄인들의 결정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결정되어 진다고 주장하였다.

제 4절 종교개혁 이후의 속죄론

1.스코틀랜드의 매로우 논쟁 -18세기 초에 신율법주의가 스코틀랜드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가능케 하여 그들을 모두 구원 얻을 만한 상태로 이끌어 오셨다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을 속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행위언약의 모든 조건에 응하시고 신율법 즉 신앙과 회심을 요구하는 복음을 소개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름만 바꾼 알미니안주의에 불과한 주장이었다. 매로우인의 속죄론은 그리스도가 선택 된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칼빈주의를 시인하면서도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구원의 보편성을 주장하였다. 그들의 주장은 1720년에 이단의 정죄를 받고 1733년에 분리 되었다.

2.슐라이막허와 릿츌의 속죄론

*슐라이막허- 형벌적 속죄교리를 전적으로 부정하였다. 성육신을 그리스도의 대 구속적 행위로 보았던 초대교부들의 사상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인간성의 완전한 모본인 원형적 인간으로 보고, 하나님과 연합의식을 소유하였으며, 무죄 완전한 성격으로 인하여 인간의 운명을 만족히 실현시켰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특수성을 찾았다.

*릿츌-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가치를 소유하였던 한 인간이었으며, 그의 사역으로 인해서 그에게 신격이 주어졌다고 하였다. 그는 대리속죄의 사실과 그 가능성도 부인하고, 화목은 전적으로 죄인의 태도 변화에서 생겨진다고 하였다. 릿츌은 도덕적 감화설과 달리하여 사죄의 객관적 근거를 가정하였다.

제 7장 은혜의 적용론 (구원론)

제1절 교부시대의 구원론

*1.초기 3세기 동안의 구원론 - 초대교부들에게서 공통적이이며, 명확하고, 체계화된 구속사역의 적용론을 찾는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들의 표현은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며 불충분하였다. 초대교부들의 신앙관은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들이기에 탁월한 기구이며 때때로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율법의 일보다 칭의의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이 관념들은 속사도교부들에 의해 거듭 강조되었다. 이레네우스와 오리겐과 같은 후대 교부들은 인간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견해에 공감하였고, 래틴의 교부들은 인간의전적 부패와 이신칭의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전자들을 더 능가했다.

*2.3세기 이후의 구원론

⑴펠라기우스의 은혜관 - 펠라기우스는 다른 초대교회 교부들보다 구속의 적용을 표현함에 있어서 성경적 입장에서 탈선하였다. 초대교부들이 신성하게 보았던 성경적 기초를 버리고 이교 철학의 “자아충족원리”를 재주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은혜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전적으로 생각하였다. 자연의 은혜는 보편적이며 절대적으로 보질적이며 필연적인 것이다. 복음의 은혜는 보편적인것도 필요한것도 아니며 다만 인간이 구원을 얻는데 쉬울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은혜가 주어질 때 조명하여 주는 것을 인간이 이해 할 때만 작용하는데 인간은 이 은혜의 역사를 거절 할 수 있다. 하였다.

⑵어거스틴의 은혜관 - 그는 자연인은 전적으로 부패하여서 영적 선을 전혀 행할 수가 없다고 보았다. 그는 또 은혜를 객관적 의미에서 말하고 복음과 세례와 용사(容赦)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예정의 열매인 이 은혜는 하나님의 주관적 선에 따라 대가 없이 주어지며 인간의 어떤 공로에 따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은혜는 불가항력적이어서 인간을 강제로 반대하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닌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⑶어거스틴의 신앙관 - 그는 신앙이 죄인의 칭의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워진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칭의와 성화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하였고 성화를 칭의에 속하게 하였다. 어거스틴의 교리 체계에 있어서 주목할 것은 그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린다는 것이다.

제2절 스콜라 시대의 구원론

1.스콜라 신학의 은혜관 - 스콜라 신학자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견해는 어거스틴주의에 일치하였다. 일반적으로 인간으로서는 충족한 은혜의 도움 없이는 신앙을 자라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2.스콜라 신학의 신앙관 - 스콜라 신학 시대의 일반적인 경향은 신앙을 진리에 대한 단순한 동의인 지식의 한 형식으로서의 신앙과 선행을 하게 하며 영적인 감동으로서의 신앙으로 구별하는 것이었다.

3.스콜라 신학의 칭의관과 공로관 - 어거스틴이 칭의와 성화를 혼동한 것은 스콜라 신학자들에 의해서 수정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그들의 고통적이 사상은 칭의는 하나님께서 성화의 은혜를 인간의 영혼 속에 주입함으로써 발효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칭의를 단순히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되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콜라 신학자들의 공로관은 무상 은혜의 교리와 함께 칭의의 교리와 관련하여 공로의 교리가 표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사람은 칭의 후에 하나님의 은혜의 도움으로 당연한 공로를 받을 수 있다.

제3절 종교 개혁기와 종교개혁 후기의 구원론

1.루터가 본 구원의 순서 - 처음에는 삼요소만으로 되어 있던 루터파의 구원의 순서가 17세기의 루터파의 대신학자들에 의해 다듬어지게 되었다. 소명, 계발, 회심, 중생, 칭의, 정화, 영화 등의 순서로 만들어 졌다. 복음하에 사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세례를 받거나 말씀의 선교를 통하여 충만한 은혜를 받기 때문에 그들은 중생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2.개혁파의 구원의 순서 -개혁파신학에 있어서 구원의 순서는 좀 다르다 그것은 칼빈이 일관하게 그의 출발점을 영원한 선택과 구원의 약속에서 설정된 신비적인 연합에다가 두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이 기본적인 입장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축복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칼빈은 회개를 신앙보다 앞서는 것으로 보았지만 이 회개가 필연적으로 신앙으로 인도하지는 못하며 신앙의 본질적인 준비로서도 생각 될 수 없는 법적 회개와 최초의 공포만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구원의 순서는 루터파와 다르지만 이신득의의 교리의 성질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치하고 있다.

3.알미니안파의 구원의 순서 - 알미니안파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를 주셨다고 가르쳤는데 이 은혜는 죄인으로 하여금 믿게 하며, 복음을 순종케 하는데 충분하다고 하였다. 쏘우물학파의 견해는 중생과 회심에 있어서 요구되고 또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마음의 효과적인 계발뿐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인간의 의지에 일하는 성령의 초자연적 공작은 없다는 것이다.

신율법주의의 견해는 그리스도는 온 인류릐 죄를 속하였는데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가능케 하였으며 그들을 구원 얻을 수 있는 상대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웨슬레파의 견해는 율법의 가르침으로 죄인을 넘어뜨려 절망의 벼랑으로 몰고가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다가 갑자기 영광스런 구속의 복음 앞으로 인도해 내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받도록 호소한다는 것이다.

4.군소파들의 구원의 순서의 개념 - 신앙지상론자들은 구원적 은혜의 축복을 얻게 하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것을 적용시키는 성령의 사역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우리가 마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비주의파들의 구원론은 사람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기 전에 먼저 율법의 공포 밑에 들어가서 영적고투를 하며 가슴을 찢는 통회가 있어야 하며 처절한 고통을 체험하여야 한다. 그들은 어떤 성령의 특별한 보증이 없이는 믿음을 허락 받지를 못한다.

제 8장 교회론과 성례론

제1절 교회론

1.교부시대의 교회론

⑴초대교부의 교회론 - 교회론도 그 근거를 초대교회의 문헌에다 두고 있다. 속사도 교부들과 변증가들은 교회를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소유로 삼으신 하나님의 백성 즉 거룩한 단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교회의 외적인 특징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을 알게 되었으며 그 결과 교회는 사도들의 직접 계승자인 감독이 다스리는 유형적인 조직체요, 참 전통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지교회들은 개별적 단위로 생각지 않고 감독제도 아래 있는 보편적 교회의 부분들로 생각되었다. 지교회들은 전체로서의 공동교회에 충성하며, 예속되는 한에 있어서 참된 교회라고 생각되었다.

⑵여러 분파의 교회론 - 2세기 중엽의 몬타누스주의와 3세기 중엽의 노바티안주의, 그리고 4세기 초의 도나티스트주의에세는 참된 교회의 표지는 교회원 성(聖)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분파들의 교회의 세속화와 부패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몬타누스주의는 교회의 부패에 대해서 비난 하면서 금욕생활의 고행을 실천할 것을 주장하였다. 도나티스트파들도 엄격한 교회적 훈련과 순수한 교회원의 자격을 주장하고 무가치한 교직자들을 거절하였으며, 종교 문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에 반항하였으며, 동시에 황제의 총애를 얻고자 애를 썼다.

⑶키푸리아누스의 교회론 - 교부들는 모든 분파들과 논쟁하였으며, 교호의 감독제도를 강조하였다. 터툴리인의 제자인 키푸리아누스는 감독교회의 교리를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감독을 주님께서 친히 택하신 사도들의 참된 계승자라고 생각하였다. 성직자의 실제적 사제직을 제사 행위와 결부시켰으며, 교회의 통일성을 감독의 통일체에다 두었다.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더욱이 성령을 받은 지도자-다만 교회 안에서 성령을 받은 자- 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바로 커닝함이 말한 “교회의 오류와 부패를 조장케 한 키푸리아누스의 대역할” 이었다.

⑷어거스틴의 교회론 - 어거스틴이 교회의 본질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된 것은 도나티스트파와 투쟁 때문이었다. 그는 교회를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선택자들의 단체라고 생각하는 예정론자였다. 이 단체를 통하여 죄가 사해지며, 성도의 연합이 교회의 연합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이것을 무형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참된 교회는 공동교회인데 사도적 권위는 감독의 계승에 의해 계속 유지된다.

2.중세기의 교회론

⑴교황 사상의 발전 -4세기와 5세기에는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다른 사도들을 지배할 수 있는 우월권을 주었으며, 그리하여 베드로가 로마의 초대 감독이 되었다는 사상이 신임을 얻었다. 더구나 이 우월권은 로마시의 감독들인 그 후계자들에게 계승되었다. 대 그레고리는 세계적 감독이라는 칭호를 거절하였으나 그의 제자인 보니훼이스는 그 칭호를 받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로마의 감독을 계승하는 그 영적 우월권은 동방에서는 강하게 반대를 받았으나 서방에서는 일반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⑵로마교회의 교회관 -종교개혁 후까지도 로마 캐톨릭의 교회관은 공적으로 형성되지 못하였다. 캐톨릭의 교회관을 명확하게 정립한 벨라민 추기경은 “같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같은 성례를 받으며, 합법적인 지도자와 그리스도의 지상 대행자인 로마교황의 지배 아래있는 모든 자들의 일단”이라고 하였다. 로마 캐톨릭의 교회관은 교회의 유형적인 것을 강조하였다.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하였다는데 있다. 이 말씀은 인간들 사이에 오셔서 지금은 유형적인 인간을 통해서 그 사역을 이루고 계신다. 교회에 대한 중요한 구별이 이루어 졌는데 가르치는 교회와 가르침을 받는 교회로서의 구별이다. 전자는 교황을 머리로 하여 전 성직자로 구성되었으며, 후자는 합법적인 성직자의 권위를 존경하는 성도들로 이루어졌다. 교회도 사람처럼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졌다. 교회의 영혼이란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부름을 받아 초자연적인 은사와 은혜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의 단체”를 의미한다.

3.종교개혁기와 그 후의 교회론

⑴루터파의 교회관 -루터는 교회의 무오성, 특별사제직, 또는 마술적으로 행해지는 성례의 개념을 거절하고 신자는 누구나 다 사제직의 의무가 있다는 성경적 입장을 정당한 위치에 부활시켰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영적 집단을 교회라고 하였고 그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세워지며, 그리스도에 의하여 유지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그의 성령으로 교회를 모으시되 말씀과 성례 등의 선택 된 방법으로 이루신다. 악스벍 신앙고백서는 유형교회를 정의하기를 교회는 “복음을 올바르게 가르치며, 성례를 바르게 행하는 성도들의 회중”이라고 하였다.

⑵재세례파의 견해 - 재세례파는 로마 캐톨릭교회의 형식주의를 극단적으로 반대하였으며, 그들은 신자만으로 구성된 교회를 주장하였다. 어린아이는 신약교회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신앙을 고백하거나 표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와 정치는 절대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극단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공무원이 될 수 없으며 전쟁에도 참가해선 안된다고 하였다.

⑶개혁파의 견해 - 몇가지 중요한 점에서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루터파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교회의 참 본질을 영적 실재로서 무형교회에서 찾는다. 개혁파들 중에는 구원의 가능성은 유형교회의 테두리 밖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하였으며 하나님의 성령은 절대로 평범한 은혜의 방법을 쓰지 않고 그가 원하시는 때와 방법을 따라 역사하시며 구원하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개혁파는 교회의 무형성을 몇 가지 의미에서 설명하였는데 교회를 장소나 시간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보편적 교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참된 표지는 말씀과 성례전을 진정으로 행해야 하며 교회의 규율을 성실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제 2절 성례론

1.성례 개관

⑴초대교회 성례론 - 싸크라멘트라는 말이 초대교회에서는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해 준다. 신성하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에는 무엇이든지 이 말을 사용할 수 있었다. 터툴리안은 이 말을 창조주의 사역과 성육신한 성자의 사역, 특히 성자의 죽음에 적용하였다.

⑵스콜라시대의 성례관 - 그들은 대체로 어거스틴의 성례관을 따라 성례를 무형적 은혜의 유형적 표시요 매개라고 보았다. 어거스틴은 때때로 성례의 작용은 성례를 받는 자의 신앙에 달려 있으므로 외형적 성례란 인간 영혼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에 불과할 뿐이라 말했다. 스콜라 신학은 성례는 객관적 시행에 의하여 그 효과를 발한다고 말한다.

⑶트렌트 회의의 성례관:

①성례는 구원에 필요하니 구원받은 성도는 모두 성례를 받아야 하며 그러나 성례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하다고는 할 수 없다. ②성례는 은혜를 내포하고 있으니 객관적 시행이나 완전한 행동을 통하여서 죄나 마음에 거리낌이 나타나지 않는 자에 대해서 은혜를 주신다. ③사제는 교회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하며 치명적인 죄가 있어서는 안된다. ④세례, 견신례, 성직임명의 성례는 수령자의 영혼 속에 지워버릴 수 없는 특징을 남겨 놓기 때문에 그것들은 다시 반복 될 수 없다. ⑤사제만이 성례의 합법적인 시행자이다. 견신례와 성직임명은 감독이 할 수 있고 세례는 때에 따라 평신도가 할 수 있다.

2.세례

⑴초대교회의 세례관 - 세례는 성례들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으로서 입교의 첫 의식이다. 우리는 속사도 교부들에게서도 세례가 사죄를 가져오며 중생의 신생활을 가져다주는 기관이라는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초대교부들은 세례에서 중생을 가르쳤다고 말할 수 있다. 세례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 이었으나, 이단자들이 행한 세례에 대해서도 유효하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가 없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사람을 다시 세례를 주지 않기로 하였다.

⑵어거스틴의 세례관 - 어거스틴은 신앙과 회개를 성인의 경우에는 세례의 필요 조건이라고 말했다. 유아의 경우에 있어서는 세례는 객관적 시행에 의하여 그 효과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듯 하다. 일반적으로 세례는 필요하다고 생각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 보아 유아 세례가 일반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⑶스콜라 신학자의 세례관 - 그들은 세례는 객관적 시행에 의하여 효과를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주관적 상태의 중요성을 경시하게 되었다. 세례는 중생과 신회원이 되는 성례인 것이다. 이 세례는 은혜를 포함하고 있다.

⑷루터파의 세례관 - 루터파 신학자들은 유아신앙의 교리를 지지하였다. 성례는 객관적 시행에 의하여 역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례는 중생을 일으키며 죄책과 죄의 세력을 몰아내지만 죄의 오염을 전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한다.

3.주의 성찬

⑴초대교회의 성찬론 - 처음에 성찬식은 보통의 식물로 시행되었으며, 성찬을 위해서 사람들은 필요한 식물을 가지고 왔다. 성찬 자체는 사제에 의해 행해지는 희생의 성격을 띠었다. 이것이 나중에는 성찬의 합일체를 표현하게 하였다. 성찬의 상징적이며 영적인 개념은 오리겐과 유세비우스,바실, 나지안제의 그레고리와 기타 인사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 성례에서 어떤 방법으로 빵과 포도주와 연합되었다는 교리로 대신하였으며, 이것은 다시 화체설로 변하였다.

⑵어거스틴의 성찬론 - 서방교회에서의 성찬교리의 발전은 늦었으나 그 결과는 동일하였다. 성찬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경적 용어에서는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말한 것은 어거스틴은 받아들였다. 동시에 그는 표징과 상징하는 사물과를 명백히 구별하였으며 떡과 포도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다고 주장하였다.

⑶루터의 성찬관 - 개혁자들은 모두 성찬 희생설과 중세기의 화체설을 부정하였다. 루터는 공재설을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떡과 포도주로 먹고 마시도록 재정되었으며, 또 주어졌다. 불신자라도 성례에 참여하면 받을 수 있으나 그것은 오히려 그를 정죄하에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⑷쯔빙글리의 성찬관 - 성찬의 말씀들을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하였다. 성례 자체는 한 기념의 행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성찬은 기념(記念)이외에는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의미가 그 속에 있다고 지적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의 입장이 분명치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⑸칼빈의 성찬관 - 칼빈은 중간적 입장을 취하였다. 칼빈은 성례에서 하나님의 은사보다 신장의 행위를 더 강조하여 성찬을 일방적으로 신앙고백의 행위로 보았고,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 다는 것은 그의 이름과 그의 죽으심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고백하는 일 외에는 아무 뜻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제9장 종말에 관한 교리

제1절 중간상태 - 종말에 관한 교리는 관심의 중심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상세한 논의를 필로로 하지 않는다. 그 주요 요소들은 확고하여 미래사에 관한 교회의 전교의(全敎義)를 실제적으로 구성하였던 것이다.

1.중간상태(中間狀態)에 관한 사상적 발전-속사도 교부들은 아직 중간상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일반적인 견해에 의해 경건한 사람은 죽은 즉시 하늘의 영광을 상속받으나 악인은 죽음과 동시에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그 생각들이 바뀌기 시작하여 중간상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어거스틴과 같은 후대교부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죽은 사람이 음부에 내려가서 심판 날까지 그들이 충분히 정화 될 때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오리겐은 그리스도는 모든 전 시대의 의인들을 음부로부터 낙원으로 옮겨 오셨기 때문에 그때부터 낙원은 세상을 떠난 모든 성도들의 거처가 되었다고 명백히 가르쳤다. 후기의 희랍 교부들와 라틴교부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은 중간상태에 연옥의 불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2.연옥설의 발전 - 연옥 사상은 특히 서방교회에서 발전하였다. 대그레고리는 이것을 의심없이 믿어야 하는 사실이라고 강조하였다. "가벼운 죄를 받는데는 심판 전에 연옥의 불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중세기의 스콜라 신학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은 연옥을 분명하게 묘사하였으며, 그들 중 대다수는 연옥의 불을 실제적인 불이라고 생각하였다. 연옥의 위치는 지옥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음부의 구역이라고 간주되었다. ‘낙원’이나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부르는 림보가 있는데 이곳을 구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음부에 내려가시기까지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였다. 연옥교리는 1546년 트랜트회의에서 결정되었는데 이 교리와 관련하여 속죄표가 판매되는 악습이 교회 안에서 자라나게 되었던 것이다.

3.연옥설에 대한 반대-중세말기에 위클리후나, 후스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이 언옥설을 반대하였다. 루터는 이 교리와 관련해 교회 안에서 자라난 악습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난하였으며, 개혁자들은 이 연옥설이 성경에 위배 된다고 하여 반대하였다.

제2절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소망 - 1초대교회의 천년왕국설(千年王國設)-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초대교부들은 계시록 20:1-6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을 구분하였으며, 그 사이에 천년왕국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이 몇세기가 흐르고 교회에 대한 박해도 사라지자 초대교회의 천년왕국설은 힘을 잃게 되었다. 어거스틴의 강력한 영향으로 교회와 신국을 동일시함으로써 교회의 사상을 미래에서 현실로 돌이키게 하는데 공헌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천년왕국을 현기독교시대에서 찾으라고 가르쳤다.

2. 중세기의 천년왕국설 - 중세기에는 일반적으로 천년왕국설을 이단으로 보았다. 10세기에는 세계의 종말이 가까웠다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스도교 예술은 종말론에서 자주 그 주제를 채택하였다.

3. 종교개혁시대의 천년왕국설 - 이 시대의 천년왕국설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반대를 받았으나 광신적인 재세례파나 제5왕국설자들과 같은 종파들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루터는 심판 날에 앞서 그리스도의 지상왕국이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배척하였다. 악스버 신앙고백에서는 “죽은 자의 부활이 있기 전에 경건한 자들이 세상의 나라를 차지하고 악인은 어디서든지 억압은 당한다는 유대사상을 퍼트리는 자는 정죄되었다.

4. 17세기의 천년왕국설과 후천년기설 - 17세기에 와서 다른 형태의 천년왕국설이 거론되었다. 천년왕국의 영적개념을 옹호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전에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교회에 임재하시는 시기가 있는데 이 시기에 성도들은 비상한 체험을 하게 되며, 세계적으로 종교적 각성이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그 후에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후천년설을 주장하는 초기의 형식이었다.

5. 18. 19세기의 천년왕국설 - 18. 19세기에 들어와서 어떤 계층들에 의해서 천년왕국설은 다시 환영을 받게 되었다. 벵겔학파와 에어랑겐학파의 옹호를 받았다. 그리스도의 재림후 일시적인 지상 통치가 있으리라는 것이 오늘날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으나 신학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후천년기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날까지 천년왕국설은 어느 한 신앙고백에서도 구체적으로 표현 된 적이 없으니 이것을 교회의 교의로 간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3절 부활

1. 교부시대의 부활론 - 대부분의 초대교부들은 육체의 부활을 믿었으나 내세의 육체와 현세의 육체를 동일시하였다. 대체로 동방교회는 서방교회보다 부활을 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였던 것으로 보여 진다. 천년왕국을 믿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시대에 경건한 사람들이 부활하고 마지막에는 악인이 부활한다고 하는 이중 부활설을 주장하였다.

2. 스콜라 신학의 부활론 -스콜라 신학자들은 그들이 통상적인 방법에 따라 부활체를 생각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는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먼저 죽어서 이미 죽은 자들과 함께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하였다.

3. 종교개혁 이후의 부활론 - 종교개혁시대의 신학자들은 부활한 몸이 현세와 똑같을 것이라는 견해에 일치하였다. 이 교리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의 표준으로 구체화 되었다.

4절 최후심판과 최후보상

1.교부들의 최후 심판관(最後 審判官)-대부분의 교부들은 성도들이 지상에서 행한 선에 맞는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후대의 교부들은 세계의 종말에는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 천국의 축복과 지옥의 고통은 둘 다 영원한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2. 스콜라 신학자들의 천당관과 지옥관 - 스콜라 신학자들은 천당을 3부분으로 나누었다. 1)보이는 천당 2)영적 천당 성도들과 천사들이 거하는 곳 3)지적(知的)천당, 축복받은 자들은 여기서 하나님을 직접 뵙는 즐거움을 누린다.

3. 종교개혁 후기의 심판관 -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리라는 단순한 성경적 교리를 단정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세상 끝에 있을 일반적 심판과 각 개인이 죽을 때 받는 특수한 심판을 신중히 구별하였다. 전자의 목적은 하나님의 공의를 널리 입증하려는데 있다. 천국의 영원한 축복과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공통적으로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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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신론)  (0) 2013.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