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2. 17:43ㆍ일반자료
바벨탑의 의미
(창 11:1-9)
오늘은 바벨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바벨탑 사진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진이 나왔습니다. 이 사진은 지금 우리나라의 삼성물산이 건설 중인 버즈 두바이라는 건물입니다. 버즈라는 말은 아랍어로 타워라는 뜻인데 두바이의 타워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 건물은 160층 건물에 618m이며 첨탑을 세우면 818m라고 합니다. 이 건물이 세워지면 현재 세계 최고의 건물 1위가 되겠고, 2위가 타이페이 101, 3위가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인데 이 세 개의 건물 모두가 삼성물산이 건설한 것이 되겠습니다. 우리나라 대단하지요? 벌써 내부 분양이 다 끝난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 옆에 버즈 두바이보다 약 600m 더 높은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하버&타워 랜드마크 빌딩”인데 높이가 1400m 정도가 될 예정입니다. 그건 또 약과입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제일 왼쪽에 울티마 타워라고 보입니까? 사진을 보면 높이가 에베레스트 산 높이보다 더 높은 걸 알 수 있습니다. 100만 명이 거주할 수 있고, 삼투압으로 물 공급이 되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곳입니다.
바벨탑의 모습
바벨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금 이 그림은 16세기 브뤼겔의 바벨탑 그림이며, 다음 그림은 루카스 반 발켄보르흐라는 사람이 그린 바벨탑 그림입니다. 중세 시대에 그린 그림이라 그런지 피사의 사탑과 좀 비슷한 모양 같습니다. 실제 바벨탑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대부분 고고학자들은 당시 바벨탑은 지구라트라는 신전의 모양과 같았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게 지구라트의 유적 사진입니다. 특히 바벨탑이 있었던 바벨론 지역의 우르(아브라함의 고향)에서 발굴된 지구라트 사진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잘 모르겠죠? 이걸 도면으로 그린 그림이 다음 그림입니다.
초가잔빌 지구라트를 모형을 만든 걸 찍은 사진입니다. 얼핏 보면 피라미드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피라미드와의 차이점은 피라미드는 내부에 무덤이 있는 반면 지구라트는 내부가 꽉 차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탑들이 이런 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조금 특이한 것이 니므롯의 지구라트인데 이건 중세시대의 그림과 비슷하게 올라갑니다.
최근에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사막 가운데 현대판 지구라트를 만들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사진을 보시면 여기에 약 100만 명 정도가 들어가서 자급자족이 가능하며, 자동차 대신 이동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날씨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환상적인 도시입니다. 모양은 피라미드처럼 생겼는데, 이름은 고대 바벨론의 지구라트라는 이름을 쓴다고 합니다.
제가 바벨탑을 검색했는데 왜 이런 사진들이 나왔을까요? 아마 사람들은 하늘 꼭대기까지 높이 건물을 지으면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 지구라트 모양으로 만들어서 환상적인 도시를 건축하는 것이 현대판 바벨탑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건물을 높이 지으면 그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바벨탑의 참된 의미를 성경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벨탑을 통해 나에게 개인적으로 주시는 말씀을 듣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목적 (1-4)
1절에 당시에 언어가 하나밖에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2절에 그들이 동방으로 계속 이동하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에 정착했다고 말씀합니다. 시날 평지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비옥한 바벨론 지역으로 추측합니다.
아마 이 정도로 비옥한 땅이라면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났던 사람들의 눈에 딱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3절에 벽돌을 만들어서 성과 대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바벨론 지역에는 돌이 많지 않았고, 대신 점토진흙이 많아서 벽돌을 구워서 건축에 이용했다고 합니다.
4절에 성과 대라는 말은 지금 식으로 표현자면 “도시를 건설하고, 탑을 세우자”라는 뜻입니다. 원문은 도시가 초점이 아니라 탑에 초점이 있습니다. 도시를 건설하고 특별히 탑을 세우자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보시면 그 특별한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을 때까지 중단하지 않고 끊임없이 쌓자는 뜻입니다.
이렇게 특별히 하늘에 닿을 때까지 탑을 세우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 이름을 내고, 둘째는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이름을 낸다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영광 대신 자기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뜻입니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되는 삶을 살겠다는 뜻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노아의 홍수 이후 남은 8명의 새로운 인류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흩어지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절대 못 흩어진다는 말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우리 이름을 내자는 말은 인간의 교만을 의미하고, 흩어짐을 면하자는 말은 인간의 불순종을 의미합니다. 바벨탑은 하나님까지 높아지려는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내 뜻대로 살겠다는 인간의 불순종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왜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싫어하셨는지 알겠지요? 단지 높은 탑을 쌓았기 때문이 아니라, 높은 탑을 쌓은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인간의 교만이며, 인간의 불순종입니다.
바벨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5-9)
5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교만하게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이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걸 보시려고 내려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천국에서 보니까 잘 안 보여서 내려오신 것 같습니다. 개미가 짓는 집을 보려고 우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웅크리는 것과 같이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6절을 보시면 일이 이렇게까지 된 원인에 대한 하나님의 분석이 나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기 때문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어디까지 나갈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인간들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7절에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서로 말이 안 통하니까 8절에 그들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고 성을 쌓는 것은 중단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동네 이름을 “바벨”이라고 했는데 “혼잡, 혼란”이라는 뜻입니다. “도저히 혼란스러워서 안 되겠다 이제 그만 찢어지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완전하게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결국 인간의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왜 인간이 이렇게 변했는가?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바벨탑을 지을 당시에 노아가 아직 살아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창 9:28에 노아가 홍수 후에 35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리고 10장 전체에 노아의 후손들의 족보가 나오는데 5절, 25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32절에 보시면 세상과 나라가 나뉘어졌다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바벨탑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흩어지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때가 언제냐고 하면 노아의 손자뻘 정도 될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홍수 심판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후에 인간들이 또 타락해서 하나님을 떠난 상태가 되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아직 노아가 살아있을 때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만큼 인간은 신속하게 하나님을 떠난다는 말입니다. 심판받을 때에는 무서워서 벌벌 떨지만, 평안할 때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하나님을 떠나고, 대적하고, 불순종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성경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노아와 그 자녀들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이런 경험이 없었습니다. 결국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지 못하니까 인간은 갈 데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지난주에 성경번역선교회(GBT) 박민하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한 뒤에 성경을 번역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완전히 이상한 종교가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10년 동안이나 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말을 배우고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수련회에서 은혜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계속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배우지 않고,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변질되고 이상한 신앙이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분명한 믿음 위에 설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쌓은 바벨탑은 없는가?
바벨탑의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교만과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라고 말했습니다. 교만이란 하나님 없이도 내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순종이란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이 더 전문적이고 확실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인간이 교만하면 불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한밭교회에 온지 2주째 되는 날 고등부 모임 시간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 몇 명이 있기에 왜 고등부 모임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걔네들이 즉각 대답한 것이 “고3인데요?” 무슨 말입니까? 고3이니까 건드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중에 한 명하고는 아주 심각한 토론까지 벌였습니다. “신앙도 좋지만 현실을 무시할 순 없지 않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신앙생활을 착실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세상에서 중요한 일을 다 마쳐놓고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고3 때에는 신앙생활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필요 없고, 말씀도 필요 없고, 내가 더 유능하고 내가 더 똑똑하기 때문에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바벨탑을 높이 쌓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탑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과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불순종의 합작품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바벨탑이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잠시 좀 비켜주시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제발 답답한 소리는 집어치우시고 좀 현실적인 이야기나 좀 해주시죠?” 이게 솔직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당시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을 때 이런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신 것입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만약 그냥 내버려두셨다면 그냥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징계를 내려서라도 인간을 바르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벨탑을 계속 쌓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흩으셔서라도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길로 가고 있지 않는지 걱정되는 친구들 있습니까? 어느 대학에 가야 하는지, 무슨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지 기도해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친구들 있죠?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해도 잘 몰라서 엉뚱한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처럼 고의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로 인도하시는데, 기도하며 결정한 친구들은 은혜로 인도하시고,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처럼 교만과 불순종으로 결정한 친구들은 때려서 인도하신다는 점입니다. 맞으면서 바른 길로 가겠습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바른 길로 가겠습니까?
결론
오늘 우리는 바벨탑 사건을 보면서 두 가지 적용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늘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사건의 경험이 생생하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처럼 신속하게 하나님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이 없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아무리 은혜를 크게 경험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쉬는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꼭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둘째는 교만과 불순종의 마음을 버리고 겸손과 순종의 마음을 품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 말씀보다 내 생각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결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고, 말씀을 떠난 성공은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1:1-3 말씀을 읽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겸손히 순종하여, 말씀의 능력으로 믿음 위에 굳게 서고, 늘 형통한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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