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디올러스 / 모든 것을 주의하라
옛날 마음씨가 나쁘기로 이름난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의 외동 딸 공주에게는
모든 정성을 다 하는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와는 남달리 마음 착한 공주는 몸이 무척
약한 것이 큰 걱정 거리었습니다.
궁전에서 한참 뛰놀 나이에 공주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병을 앓는 것입니다.
공주가 병을 앓으면 성밖의 백성들은 몹시 불안한
큰 시름에 잠기게 되고 하였는데 그것은 임금님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공주가 아플 때마다 임금님은 잔인하게도
사람의 목을 치거나 아주 흉악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백성들은 공주가 건강해져서 임금님을 달래며
불쌍한 백성들을 돌봐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공주가 없는 이 나라는 평화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 백성들은
하루 빨리 공주가 건강을 되찾기만을 기도하였습니다.
그만큼 공주는 잔인한 아버지의 성격을 달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습니다.
하루는 성지기에게 이끌려 한 소년이 붙들려 갔습니다.
단지 성문 앞에 있는 꽃을 꺾었다는 죄로 붙들려 간 것입니다.
성안으로 붙들려 들어가면 살아 나오는 법이 없기 때문에
백성들과 소년의 어머니는 울음으로 지냈습니다.
“너, 듣거라!
성문 앞의 꽃을 꺾었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지?"
임금님의 한 마디에 소년은 위엄에 눌려
아무런 말을 못하였습니다.
“여봐라!
이놈을 당장 감옥에 가두어 굶어 죽게 하라!
하하하······. "
임금님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더 가볍게 생각하며
신하들에게 명령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먼발치에서 듣고 있던 공주는 깜짝 놀라서 뛰어왔습니다.
“아바마마······. 용서하셔요.”
“용서라구? 하하하······."
임금님은 기쁘다는 듯이 한바탕 또 크게 웃었습니다.
“용서라..., 하하하······."
“용서해 주세요, 아바마마.
그 소년은 아무 것도 모르고 한 짓입니다.
제발 그 소년을 용서해 주세요····."
공주는 울면서 애원하였습니다.
단 하나뿐 인 공주의 간청을 모른체하고 지나칠 수 없었던
임금님은 눈을 크게 떴습니다.
“아바마마, 용서해 주세요.”
공주가 거듭 간청하자, 옆에 있던 신하도 말을 거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심이 지당하신 줄 아옵니다. 전하!”
“으하하하·····. ”
임금님은 더 큰소리로 웃고는 공주를 바라 보았습니다.
"그러지 그래.
우리 공주의 간청이라면 내 어찌 모른체 할 수 있겠나.”
“고맙습니다. 아바마마···”
“여봐라, 저 소년을 풀어 주어 집으로 돌아 가게 하여라!”
그 후 마음씨 착한 공주의 이야기가 성 밖에 퍼졌습니다.
백성들은 우리 공주님이 제일이라고 모두 칭찬하였습니다.
이렇게 착한 공주가 자꾸만 아프다 하니 백성들에게는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기도도 보람이 없이 공주는 자리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저녁놀이 유달리 고운 어느 날
그만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이 슬픔을 어디다 비할까요!
백성들의 슬픔은 더하였습니다.
“그렇게 착한 공주님이 흐흐흑···”
“공주님이 죽기 전에 임금님에게 향수병 두 개를
함께 묻어 달라고 했대요.
가엾은 우리 공주님······.”
공주는 죽기 전에 임금님에게 해 둔 부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중히 간직해 오던 두 병의 향수였습니다.
“아바마마, 이 병의 뚜껑을 절대로 열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이 불효 자식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공주의 장례식날이 왔습니다.
예쁘고 마음씨 착한 공주님이 땅속에 묻힌다고 생각하니
성밖 백성들은 그 슬픔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아! 가엾은 공주님.”
“불쌍한 백성을 놔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습니까!”
“복도 지지리도 없으시지·····.”
장례를 지켜보던 백성들은 제각기 한 마디씩 하였습니다.
이윽고 공주의 장례 행렬이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임금님은 시녀에게 공주가 부탁한 향수병을 공주와 함께
묻어 주도록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열어 보지 말라고 당부를 받은 시녀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겨 남몰래 향수병 뚜껑을 열어 보았습니다.
“아!” 코끝을 스치는 향기.
이 세상에서 처음 맡아 보는 향기였습니다.
넋을 잃고 냄새를 맡고 있던 시녀는
향기가 벌써 말라 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어머나!”
시녀는 황급히 병마개를 막고 얼른 향수병을
무덤 옆에 묻었습니다.
다음해 봄이 왔습니다.
말랐던 가지에도 새싹이 돋고, 돌아갔던 새 떼들도
다시 찾아왔건만 한 번 간 공주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공주의 무덤에는 아름다운 꽃
두 포기가 피어났습니다.
그런데 한 송이는 향기롭고 한 송이는
아무 향기가 없는 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임금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시녀를 불러 놓고 그 까닭을 캐물었습니다.
‘바른대로 대렷다.
필시 이것은 무슨 곡절이 있으렷다.”
시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온몸을 벌벌 떨었습니다.
“상감마마, 굽어 통촉하옵소서.
제가 그만 향수병 마개를 열어 보았습니다.”
“무엇이라고!
그래서 향수가 없어졌단 말이냐?”
“그러하온 줄 아옵니다.”
시녀는 사실대로 털어놓았습니다.
“발칙한 것 같으니·····.”
임금님은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가쁜 숨을 몰아 쉬었습니다.
임금님은 시녀를 그자리에서 죽였습니다.
그 후에 이상하게도 공주의 무덤에 핀
향기 없는 꽃송이는 차츰 변하여 갔습니다.
꽃잎이 서서히 빨갛게 물들며 뾰족하게
칼끝 처럼 변하였습니다.
이 향기 없는 꽃이 바로 글라디올러스입니다.
공주의 무덤에서 피어났다고 하여 이 글라디올러스를
처녀의 무덤에 바쳐 그 영혼을 위로해 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글라디올러스의 꽃말은 ‘모든 것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임금님의 말에 주의하지 않았던 시녀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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