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곡: 찬송208장 주예수 내맘에 들어와 계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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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 리 다 굼 ◑
마가복음 5 : 35-43
2005. 1. 23.(주일낮)
*1950년대에 유명한 부흥사였던
박 재봉 목사님은 어렸을 때에 폐병으로 고생했습니다.
37년경부터 해방 때까지
약 8년간 결핵 증세로 고생했습니다.
그 정도가 어찌나 심하던지 동래에는
폐에 7개가 동공이 생겨 손가락이 드나들 정도였다 합니다.
그는 폐병으로 거의 죽게 되어
가마로 300리 되는 서울 총독부 병원에 갔었습니다.
의사는 탄식하며 빨리 내려가서
아버지, 어머니 얼굴이나 뵈라고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남대문 병원으로 다시 가보니
서양 선교사도 돌아가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독자인 목사님은
부모님에게 실망을 줄까봐 부모님 없는
곳으로 가서 죽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엎어졌습니다.
그는 산에 엎어진채로 죽음을 각오하고
절망중에 하나님께 생사를 건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 갔을까..
고요한 새벽에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얘야. 네 병에서 깨어나고 싶으냐?
만일 네 병이 나으면 너는 그래 무엇을 하겠느냐"
라는 질문에
"예 종신토록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뜨거운 불이 폐에 가득히
전류처럼 도는 것 같더니
시원한 것으로 충만했고 살았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순식간에 병에서 놓인 박재봉 군은
지팡이도 없이 집으로 돌아 와
집 마당을 돌면서 하나님 만세를 불렀습니다.
잠든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잠든 자는 아무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잠든 자는 아무 일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잠든 자는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마다 잠든 교인이 많습니다.
잠든 신앙인 들이 많습니다.
일어나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잠을 자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의 신앙은 지금 어떠한 상태에 있습니까?
깨어있습니까? 졸고 있습니까?
깊은 잠에 빠져있지는 않습니까?
빛 가운데서 열심히 심는 일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도다.”(롬13:11)
예수님은 당신을 향하여 명령하십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막5:41)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
“일어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행11:7)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합니다.
그러나 염소나 다른 들짐승은
목자의 음성을 바로 듣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도망합니다(요10:3-5).
오늘도 예수님은
그의 사랑하시는 양들을 위하여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주님의 큰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1.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당신은 두려워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사람은 나이가 어리고
세상을 모를 수록 두려움을 모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알고
영(靈)들의 세계를 알 수록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집니다.
두려움을 한 번도 느껴보지 않았다는 사람은
바보(백치)가 아니면,
신(神)과 같은 완전한 사람일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두려움과 불안,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도
자기의 사랑하는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손발의 맥이 풀리고
모든 소망이 끝나버렸다는
좌절과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당신이 만일 회당장 이라면 이런 때에 어떻하시겠습니까?
이런 때에는 회당장처럼 꿇어 엎드리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막5:36)
“내가 너를 도우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그러나 마귀는 말합니다.
“너는 안돼, 너는 할 수 없어, 이제 끝이야.”
그러나 주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측량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산이나 논리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확신하고
기도함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간 구하는 자여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너는 네가 간구 하는 대로 이루어 질줄 믿고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사41:10, 요15:7, 16:23,24)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외에는
아무도 회당장의 집에는 따라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잊지 마십시오.
두려워하는 자나 믿지 못하는 자는
예수님의 능력의 현장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자나 믿음이 없는 자는
나의 능력의 현장에 함께 할 수 없다.”
당신은 물 위를 걸어가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여 물에 빠진 베드로를 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자와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능력으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는 물 속에 빠지고 맙니다.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요1:3),
주장하시는 예수님(요3:35),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마28:18),
모든 인간을 심판하실 예수님(유1:15)은
지금도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지 못하는 자여
너희는 나를 따라올 자격이 없느니라.”(본문37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11)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2.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을 위로하며
회당장의 집에 들어가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훤화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12살 한창의 귀야운 나이에
꽃봉오리도 제대로 맺지 못하고
죽은 어린 아이를 생각하면
얼마나 불쌍하고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당연히 눈물이 나오며 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정이 있는지 없는지
울지도 않으시고 무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인생은 내일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아니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예수님이
그 소녀를 반드시 살리실 줄을 알고 믿었다면,
그 예수님이 지금 이 아이의 집으로 오셨는데
울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두 손들고 환영하며 예수님을 반기고,
우는 자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여 능력의 예수님이 오셨는데
어찌하여 우느냐?”
라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네 인간들이 원망하며
불평하며 울고 탄식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를 믿는다 하지만
확실히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썩어질 육신밖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무리는 울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도 울고 앞으로도 울고 아니 영원히 울 것입니다.
인간의 눈에 죽은 자가
예수님에게는 자는 자일 수 있습니다(막5:39).
그러나 인간의 눈에 산 자가
예수님의 눈에는 죽은 자일 수도 있습니다(계3:1).
모든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요14:6)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그런데도 오늘날 어리석은 인간들은
오히려 예수님과 그리스도인들을 비웃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차라리 네 주먹을 믿으라.” 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4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불신자들과 비웃는 무리들을
능력의 현장에서 다 내어보내게 하셨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비웃는 자, 불신자는
예수님의 능력의 현장에 동참할 자격이 없습니다.
(막5:40,고전1:18).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선언하십니다.
“비웃는 무리여
너희는 능력의 현장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다 나가라.”
당신은 예수님을 진실로 믿지 못하거나
비웃은 적은 없겠지요?
그런데 당신의 마음에 아픔과 통곡이 있습니까?
괴로움과 탄식이 있습니까?
근심과 걱정이 잠을 못 이루게 합니까?
회당장처럼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 분께 맡기고 구하여 보십시오.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구하여 보십시오(시40:1,눅18:1).
예수님께서 당신의 통곡을 멈추게 하실 것입니다.
당신의 아픔과 괴로움과 탄식을 멈추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이다.”
(시42: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30:11)
이 고백과 간증이 당신에게도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3. 달리다굼(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예수님은 소녀의 부모와 제자만을 데리고
죽은 소녀의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소녀를 향하여
방언(아람어)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그러자 죽었던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살아났습니다.
박재봉 목사님이 전라도의 한 장로교회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할 때에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한 것을 주제로 설교했더니
청년 두 명이 거짓말이라고 항의해 왔습니다.
목사님이
"여기 소경 없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마침 11년 6개월된 한 소년이 들려왔습니다.
두 청년의 비웃음 속에서
박재봉 목사는 담대히기도하고 외쳤습니다. “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소경된 소년아 눈을 떠라.”
잠시 침묵이 있은 후..
소경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소경은 눈이 보인다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두 청년은 공산당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두 청년은 6명의 공산당원을 데려와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수원 삼성 축구단 감독인 차범근 씨가
월드컵 예선전에서 출전하였다가
심하게 다친 오른쪽 다리가 너무 통증이 심해서
수술 받기 위하여 입원할 예정이었으나
이 영무 선수의 소개를 받아
한얼산 기도원 성회에 참석하여
성령의 불세례를 체험하였고 이 천석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은 뒤 다리가 거뜬히 나았다고 합니다.
소녀에게 “달리다굼” 외치시던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잠든자여 일어나라!”(막5:41,눅7:14,요11:13)
“병든자여 일어나라!”(막2:12,요5:8)
“지친자여 일어나라!”(왕상19:5)
“할 일을 잃은 자여 일어나라!”(행12:7)
“앉아만 있는 자여 일어나라!”(행3:6)
당신은 지금 지쳐있습니까? 낙망하고 계십니까?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사40:29)
능력의 주님이 당신의 손을 붙잡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지친자여 일어나라!”
당신의 신앙이 잠들어 있습니까?
당신의 기도가 잠들어 있습니까?
당신의 찬송이 잠들어 있습니까?
주님은 지금 당신을 깨우시며 말씀하십니다.
“잠든자여 일어나라!”
할 일이 없습니까?
왜 앉아만 있습니까?
주님은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빛을 발하라.”
마음이 병들어 있습니까?
육신에 병이 있습니까?
치료하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을 붙잡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열 두 해가 되었어도 일어나라.
38 년이 되었어도 일어나라.”
“내가 나의 능력의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나의 치료하는 광선으로 너를 치료하리라(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더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4:2)
그러나 아무나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잊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 만이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도하고 찬양하는 자가 일어납니다.*
설교자 김황제 목사
대전은평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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