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직 신앙고백(The Belgic Confession A.D. 1561)

2010. 9. 22. 14:28참고자료/2.신조와 신앙고백

벨직 신앙고백(The Belgic Confession A.D. 1561)

1. 벨직 신앙고백의 역사적 배경
이 신앙고백은 남부 네델란드(화란)의 벨기에 지역에서 Guido de Bres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다. 
특히 화란은 1618년에 도르트 총회를 개최하는 중요한 개혁교회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개혁교회의 총회가 집행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이 지역의 교회들이 사도적인고 어거스틴적이며 
또한 칼빈주의적인 개혁신앙을 뿌리 깊게 받아들이고 정립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1561년에 이미 이 화란에서는 개혁교회에서 공적으로 인정받게 된 본 신앙고백서를 작성할 정도로 
깊은 신학적 내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또한 16-17세기를 거치면서 유럽의 혼란한 정치, 
종교적인 배경 속에서 많은 개혁신학자들이 화란으로 이주해 오면서 화란은 보다 더 철저한 개혁신앙을 
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먼저 정치적인 배경으로는 찰스 5세가 공적으로 이단(개혁교회)을 처형하는 칙령을 발표하고 대대적으로 
개혁교회의 성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미 1523년에 어거스틴파의 수도승이었던 
헨리 보에스(Henry Voes)와 요한 에쉬(John Esch)는 브리쉘에서 말뚝에 묶여 화형을 당하는 순교의 
역사가 화란에 있었다. 이들은 죽어 가면서도 "사도신경"과 "Te Deum"을 부르며 죽어 갔던 역사는 개혁교회에 
있어서 신앙고백서를 채택하고 지켜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정신인지를 깨닫게 한다.112) 
이런 핍박의 역사는 스페인의 필립 2세에 와서는 더욱 심해져서 그 절정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이런 핍박 속에서 화란의 많은 개혁교회들이 독립교회를 세우는 열매들을 낳게 하였다. 
이와 같은 순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본 신앙고백서는 아드리안드 사라비아(Adrien de Saravia)113)와 
모데투스(Modetus)와 윙켄(G. Wingen)의 도움을 받아서 가이오 드 브레스(Guido de Bres)가 프랑스어로 
작성한 것인데, 후에 엔트웝의 왈룬(Walloon)과 보르쥬(Bourges)의 프렌시스 쥬니우스(Francis Junius)114)에 
의해서 좀더 분명한 칼빈주의적 정신이 포함된 형태로 완성되었다.115)
이렇게 작성된 본 신앙고백서는 개혁신앙에 매우 비관적인 필립 2세에게 보내졌다. 
이것을 필립 2세에게 보낸 이유로는 당신의 개혁교회의 성도들이 필립 2세의 핍박 정책에 항거하는 중요한 
저항의 방식이기도 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즉 이들은 그가 이것을 읽고 관용 정책을 베풀어줄 것을 기대함과 
동시에 거절될 때에는 참되고 바른 신앙정신인 무엇인지를 순교를 각오하고서라도 보여주고자 한 강한 저항 
정신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개혁교회의 신자들이 반역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고 있었으며, 
그래서 10만명 이상이 달하는 자들이 죽임을 당하였으며, 또 앞으로도 더욱 극심한 핍박이 예상되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표현을 통해서 합법적인 것이라면 정부의 모든 명령에 묵묵히 복종하지만 그렇지 않고 
참된 신앙의 정신을 파괴시키는 도전이라면 "이 신앙고백에 표현된 바의 진리를 거부당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등에 
채찍을 받고, 혀를 짤리며, 입에 재갈이 물리며, 온 몸이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편이 더 낫다"고 할 정도로 이 신앙고백을 
통한 저항 정신을 매우 분명히 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116) 
여기서 우리는 개혁교회에서 신앙고백서의 채택에 대한 정신 중에 매우 중요한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저항의 원리로서 신앙고백을 표명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즉 일반 사람들처럼 무력이나 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진리인 말씀의 순수성을 지키고 드러내기 위해서 이런 신앙을 파괴하는 것에 
강력하게 저항하고자 했으며, 또한 이때 저항하는 방식으로 신앙고백을 표명하고 드러내었던 것이다. 
결국 이런 정신은 개혁신학에 있어서 성경관에 중요한 핵심적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즉 이미 사도바울이 우리가 
싸우는 것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직 참된 병기로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한 것이 
있다(고후10:4)고 지적하면서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성도에게 있어서 이 땅에서 
핍박과 고난을 당할 때 이 땅의 방식대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는 
방식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처럼 교회가 신앙적으로 위협을 받고 도전을 받을 때마다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 고백하고 표명하는가가 중요한 
개혁신학의 저항의 원리로 제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본질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고 오늘날 교회가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또한 자신의 신앙고백을 어떻게 표명해야 할지도 모르고 오히려 이렇게 중요한 신앙의 원리로 
제시되고 있는 신조의 채택을 버리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런 저항의 방식으로서 신조가 채택이 되면서 신조의 신앙적 표명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신조의 역사를 함께 만나게 된다. 즉 신조의 표명을 위해서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처럼 
신조의 채택이란 것은 성경의 참된 의미를 확정하고 또한 제시하는 최고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은 
이 신조의 순수한 표명에 대해서 위협을 받으면 순교를 통해서라도 그 순수한 정신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신조의 채택 정신이 역사적 개혁신앙의 순수성임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처럼 엄밀하고 순수한 역사적 개혁신앙을 너무 과격하다고 하거나 또는 "신조우상주의"라고 
치부하면서 신조를 채택하더라도 너무 엄밀하게 채택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완화시키고 또한 
느슨한 채택을 장로교 안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이들의 이런 정신은 역사적 개혁교회의 순수한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인본주의적인 정신에 의해서 성경보다는 인간의 화합을 더욱 중요시하는 정신을 제시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본 신앙고백의 가치는 개혁주의 교회 안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본 신앙고백서는 1566년의 엔트웹 회의와 1568년 베셀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채택이 되고 보다  더 
공적으로 채택이 된 것은 1571년 엠덴 총회와 전국 도르트 총회(1574), 미델부르그 총회(1581)과 1618-1619년에 
있었던 도르트회의에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함께 개혁교회 중요한 신앙고백으로 채택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특히 도르트 총회에서는 이 신앙고백서를 개혁교회의 규범 교리의 하나로서 채택하였고, 모든 교회의 책임자는 
반드시 이에 서명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렇게 됨으로 본 신앙고백서는 개혁교회에서 중요한 신앙고백서로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117)
또한 1584년에는 로마교회의 광신자에 의해 암살을 당한 윌리암 오렌지(William Orange)공은 자신의 둘째 아들과 
투쟁을 벌이면서 성경과 함께 벨직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영적인 안내자와 위로자로 삼고 원수들의 
공격을 맞서 나가기도 했다. 이처럼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칼빈주의 사상은 스페인의 정치적, 
종교적 독재와 맞서 승리를 얻게 하는 중요한 정신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처럼 본 신앙고백서는 화란의 교회와 정치, 
사회의 모든 부분에 걸쳐서 깊은 영향력을 끼쳤던 것을 알 수 있다.118)
그리고 본 신앙고백서도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함께 알미니안주의 자들에 의해서 강력한 도전을 받으면서 
1618년 도르트 회의 당시에 수정을 강력하게 요구 받았다. 왜냐하면 본문에는 철저한 개혁교회의 신앙 정신이 
잘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알미니안주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도르트 총회에서는 오히려 이 벨직 신앙고백서을 더욱 높이 평가하고 프랑스, 라틴어, 
화란어 개정판을 출판하게 되었다.119)
2. 벨직 신앙고백의 교리적 특징.
먼저 본 신앙고백서의 구조는 프랑스 신앙고백서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몇몇 중요한 부분들을 요약하면서 교리적인 특징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① 성경론.
성경론에 대한 내용은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까지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제시되고 있다. 
마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1-10절 까지의 내용이 요약되어 있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 특히 7장에 "유일한 신앙의 규범으로서의 성경의 충족성"이란 제목으로 제시되고 있는 성경론에 대한 
깊은 신학적 이해는 개혁교회의 성경론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이 구원을 얻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분히 그 속에서 
지시하고 있음을 믿는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모든 태도가 그 속에 다 기록되어 있으므로, 
심지어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성경 외의 것을 가르치는 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합당한 일이 아니다. 이 책의 말씀 외에 무엇을 더하거나 제하여 버린다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은 모든 면에서 
성경의 말씀이 완전하고 충분한 것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본 고백서에서는 인간에게 있어서 구원과 신앙의 삶에 있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 정도에 있어서도 완전한 충분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말씀이 신자의 구원과 삶의 규범으로서 충분함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정신 기초해서 
개혁신앙의 성경론은 성경 이외에 그 어떤 것도 함께 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못박고 있는 것이다.
특히 후반부에서는 인간의 형태에서 만들어진 그 어느 것도 신앙과 삶의 규범으로서 허락되어지지 않음을 밝히고 있는 
것은 아주 깊은 신학적 이해인 것이다.120) 이러한 자세는 성경을 단순히 율법주의적인 태도로 적용하는 것 아니며, 
오히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인간의 구원과 삶을 다스리시는 최고의 주권자로 고백하는 자세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런 정신에 의해서 칼빈에게서도 보았던 것처럼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성경만을 통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개혁신앙의 참된 신앙의 정신임을 알 수 있다. 
그래야만 그 영광이 인간에게 돌아오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되돌아가기 때문인 것이다. 
② 신론(삼위일체론)
신론에 대한 부분은 1장, 8장, 9장, 10장, 11장 등에서 제시되고 있다. 본 장들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는 사변적인 
사색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경신앙의 정신에 머물러서 이해해야 하는 방식임을 못박고 있다. 즉 8장에서도 
"우리는 진리되신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 성부,성자,성령을 믿는다"라고 고백하고 있으며, 9장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 모든 것을 볼 때에 신적인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신 세 인격이 계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이 가르침이 모든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장차 이 온전한 가르침을 깨닫고 하늘 나라에서 이로 인해 즐거워할 것을 믿는 바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교리적인 정립도 단지 자신의 시대에 국한되어서 정립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개혁교회가 늘 그렇게 해 
왔듯이 철저하게 이런 교리적인 정립은 사도적인 전통을 따라서 제시된 것임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삼위일체에 관한 가르침은 사도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참된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여 늘 확증되었고 주장되어 
왔으며 이는 유대교나 이슬람교 또한 마르키온파, 마니교, 프락세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테누스, 아리우스 등 정통 
교부들에 의하여 거짓 기독교로 또는 이단들이라고 정죄 받은 자들의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기꺼이 세 신경, 즉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받아 들이는 바이며, 이것은 고대 교부들에 
의하여 확증된 바와 일치하는 것이다.
이런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역사적 개혁교회는 항상 사도적인 전통에 서 있는 교회이며, 또한 사도적 전통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표현할 때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교회에서부터 존중되고 또한 우리의 
신앙을 명확하게 고백하고 제시한 신조 채택의 정신을 따라서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고 지켜가는 것이 참된 
개혁교회의 신앙 정신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③ 교회론
교회론에 대한 것은 27장, 28장, 29장, 30장, 31장, 32장, 33장, 34장, 35장 등과 같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는 교회의 본질과 행정직무, 그리고 교회의 직제로서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 중에서 29장의 내용이 좀더 주의를 요하는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즉 "참 교회의 특징 및 거짓 교회와의 차이점"을 
제시하면서 교회의 표지로서 말씀과 성례와 권징이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위에서 소개되었던 
비슷한 년도의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와도 동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마땅히 성실하고 주의 깊게 참 하나님의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 알아야만 한다고 믿는 바인데, 
그 이유는 이 세상에 모든 이단도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교회라고 부르는 온갖 이단들로부터 참 교회의 하나됨이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 교회임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다. 만일 복음의 순수한 교리가 전파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성례가 순수하게 이행되며,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해 죄를 징벌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는 참 교회에 속하는 것이다.
본 항목을 통해서 우리는 역사적 개혁교회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즉 비(非)개혁교회를 향한 
개혁교회의 정신이 얼마나 철저하고 확고한 가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더욱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이단들도 자신들을 교회라고 칭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교회의 정체성은 성경의 참된 신앙을 통해서 더욱 
명확하게 타협이나 양보없이 드러나야 함을 강력하게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계속되는 내용에는 이런 내용이 
더욱 깊이 제시되고 있다. 
거짓 교회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권위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능력과 권위를 내세우면서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르고자 하지 않는 교회이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대로 성례를 시행치 않고 그들 스스로의 
생각에 맡긴 채 말씀에서 무언가를 더하는데,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보다는 사람에게 더 의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사는 자를 핍박하며, 그들의 죄와 욕심과 우상 숭배를 책망하는 자를 핍박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교회는 쉽게 알 수 있고 구별할 수 있다.
여기서도 보게 되면 역사적 개혁교회는 늘 비(非)개혁교회로부터 따돌림과 핍박과 고통을 받아 왔음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형편은 단지 화란 지역뿐만 아니라 역사적 개혁교회는 초대교회 이후부터 늘 이런 형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도 여전히 참된 역사적 개혁교회의 정신을 되찾으려고 하며, 또한 그 정신을 지켜 가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격게 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개혁교회는 선조들로 내려온 참된 성경신앙의 정신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이 개혁신앙을 지켜 가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 진리를 지켜 왔던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신앙 정신은 철저한 
칼빈주의적 신앙 정신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칼빈은 이런 개혁신앙의 정신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끈질기게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양면의 전쟁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 하나님의 종들은 죽음의 두려움에 대하여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용맹을 견지해야 한다. 비록 죽어야만 하고 
목을 매달아야 할지라도 그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목을 내놓고 자신들의 피로써 [그 교리]를 수호하여야 한다. 
한편 하나님의 종들은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의 적들은 종종 아첨하면서 침입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런 방향으로 들어오는 침입이 더 위험하다.121)
④ 국가관
마지막으로 본 신앙고백서에서 제시되고 있는 국가관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당시 필립 2세가 공식적으로 
개혁교회를 핍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화란 지역은 매우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왕과 군주와 행정 장관을 세우셨음을 믿는데, 
이는 세상이 특정한 법과 정책에 의해 다스려짐으로 인간의 방종이 제어되고 만사가 선한 질서와 순서에 따라 
움직여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직무는 국가의 안녕에 관심을 갖고 이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뤄나가도록 하는 것이므로 이 신성한 직무를 잘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어디서나 복음서의 
말씀이 전해지도록 옹호해야 하는데, 이럼으로써 주께서 말씀 가운데에 명하신 대로 누구나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게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형편과 자격 또는 조건이 어떠하든지 간에 국가를 다스려 나가는 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주어진 의무이다. 
세금을 내며 하나님의 말씀에 그릇되지 않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을 높이고 존경하며 순종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보게 되면 개혁교회의 국가관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선 왕의 출처를 인간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찾는 것이 그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폐하시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국가의 질서에 순종하고 의무를 다하는 것을 "하나님을 경배"하는 행위로 인식하도록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가장 핍박과 고통의 시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그릇되지 않을 때에는 절대적으로 국가의 질서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임을 명확히 하므로 어거스틴과 칼빈에 이어지는 영역 주권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개혁신앙의 정신에 위배되는 재세례파를 "여기에서 우리는 권세자요 통치자들을 배격하고 공의를 무시하며 
재산의 공유를 내세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우신 선한 질서와 순서를 깨뜨리는 재세례파와 그 외의 거짓을 선동하는 
자들을 철저히 배격하는 바이다"라고 비평하면서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 것이 그 주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 한 부분 있다. 그것은 "신성한 직무"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 부분이 국가의 의무에 대한 자리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중요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처음 원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었다.
그들의 직무는 국가의 안녕에 관심을 갖고 이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이 신성한 직무를 지켜 나가야 하는데, 
즉 모든 우상과 거짓된 예배를 배격함으로 적그리스도의 왕국이 멸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뤄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122)
이 부분에 대한 문제는 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3장 3절에서 국가 위정자의 총회 소집권에서도 또 비슷한 
내용이 제시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1647년 판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3:3은 1729년에 성경적인 입장으로 다시 수정되게 되었으나 본 신앙고백서의 내용은 
1910년에 종교 회의에서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총회에서 수정한 정신이 과연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수정 정신인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1729년은 철저한 개혁교회의 신앙 정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형편 속에서 수정이 되었지만 1910년은 
이미 미국에서도 1903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알미니안주의적으로 수정되었던 시기인 만큼 화란이나 
미국에서 급속도로 역사적 개혁교회가 소멸되고 도전을 받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화란에서는 1905년에서 네덜란드 교회 총회에 의해서 이 부분이 수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 수정의 목적이 종교의 
자유에 관하여 와 그리고 거짓 종교를 억압하기 위해 국가의 의무에 관해 규정한 이 부분이 비(非)성경적이라고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1910년과 1938년에 또다시 위의 표현대로 수정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1729년에 수정된 것은 국가 위정자의 총회 소집권에 대해서 문제를 삼은 것이지 
거짓 종교를 막고 교회를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폐지시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저자는 1905년도에 네덜란드에서 수정한 정신은 1903년에 미국에서 알미니안적으로 수정한 것처럼 
본 조항도 거짓 종교에 대해서 유보적이고 완화된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왜 이렇게 추적을 하는가 하면 그것은 거짓 종교에 대해서 교회에서 해야 할 의무가 있는 반면 국가는 국가 나름대로의 
공적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개혁교회에서는 소중하게 지켜왔다는 이유 때문에 이렇게 추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거짓 종교에 대한 공적 의무를 완화 시키게 되면 칼빈이 세르베투스의 처형과 관련되어 취했던 행동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칼빈은 당시의 국가 위정자들이 거짓 목사를 공적 의무를 가지고 반드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성경적임을 주장했고 또한 이후의 제자들도 이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이 정신이 후에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 안에 그대로 들어 왔기 때문인 것이다.123) 그러나 이런 추측을 할 수 있어도 본 항목에 대한 
자료가 워낙 없기 때문에 보다 분명한 입장과 내용은 뒤로 미뤄두기로 하겠다. 
미주
112) Philip Schaff, op. cit., p. 169.
113) 라이덴 대학의 신학 교수이다.
114) 쥬니우스는 칼빈의 제자이다.
115) Ibid., p. 170.
116) Ibid., p. 171.
117) 김의환, 개혁주의 신앙고백집, 생명의 말씀사, 1994, pp. 175-176.
118) Philip Schaff, op. cit., p 169.
119) Ibid., p. 171. 알미니안주의 자들에 의해서 강력한 수정을 요구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다른 방향의 수정을 채택하였다. 
그것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수정 정신이 아니라 철저한 칼빈주의 신학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보더 성경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초판본은 1562년에 나왔으며, 후에 1669년에 개정판이 나왔으며 1787년, 
1850년에도 제시되었다. 그리고 라틴어 판은 1581, 1612년 판이 있다.(Ibid., p. 172). 
120. Ibid. 7장에서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왜냐하면 진리는 그 모든 것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요, 
성경은 모든 인간이 거짓되고 무가치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그 어떤 영이라도 배격한다.
121) J. Calvin. Comm, vol. 27. p. 335.
122) 이장식, op. cit., p. 269. 여기서 김의환 교수의 번역은 수정된 부분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장식 교수의 번역은 
원문을 채용하고 있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