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솔로몬과 시바 여왕

2007. 3. 4. 00:47사진·동영상 자료/3.성화자료

 

The Queen of Sheba Before Solomon

 

Demin Giovanni - Solomon and The Queen of Sheba

Delen Dirck Christiaensz Van  - Solomon Receving The Queen of Sheba

 

귀스타브 도레 - 솔로몬과 시바여왕

 
 

솔로몬의 여인 시바 여왕   


에티오피아의 여왕으로도 알려지고 있는 시바여왕의 왕국은 에티오피아가 아닌 실제로 예멘의 내륙부에 실재했던 왕국이었다. 시바왕국이 가지고 있었던 교역로는 유향의 길, 스파이스 로드 라고 불리고 이 교역로를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했던 나라가 시바왕국이었다. 이 시바왕국이 왜 번성했었던가 하면 동남아시아에서의 향목(香木), 중국에서의 비단, 아프리카에서의 신비한 새의 날개, 거기에 아라비아 반도의 남부에서 채취된 유향이라고 하는 이름의 향료 등의 물건들을 고대 이집트나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등에 공급하는 통상로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유향은 지중해세계, 특히 이집트 주변에서 상당히 중시되었다. 왜냐하면 이 향은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필요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향에는 [男乳香 남유향] [女乳香 여유향]이 있어 여신을 부를 때는 남유향, 남신을 부를 때는 여유향을 피우도록 되어 있어서 이것 없이는 제사자체가 불가능했었던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제사자체가 불가능하다라고 하는 것은 즉 정치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유향은 무게로 재어 금과 같은 가치로 거래가 되었다.  남 아라비아의 상인들은 이 유향을 소재로 한 여러 가지 전설을 만들어 내어, 신화, 온축(충분히 연구해서 간직한 깊은 지식), 신비라는 베일에 쌓아 부가가치를 덧붙여 비싸게 강매하는 것에 성공했다. 유향은 나무의 줄기에 흠집을 내어 거기서 흘러 나오는 수액을 고형화한 송진과 같은 것으로 아라비아 상인들은 고객이었던 유럽, 지중해세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서 채취되는 가를 알리지 않고 원산지를 명확히 하지 않았었다. 단 그것을 채취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라는 것을 강조했었다. 때문에 지중해세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등장하기도 했었다.  유향나무는 날개를 가진 푸른 뱀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가까이 갈 수 없다. 이것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숫소의 가죽을 쓴 남자가 여러 가지 기술을 구사해야만 겨우 채취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이것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의 기술(記述)된 내용으로 아라비아 상인은 이러한 전설을 만들어 내어 부가가치를 높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바왕국의 여왕을 둘러싼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구약성서열왕기 상 10장 에는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왕을 찾아 온 얘기가 기록되어 있다.  현명하고 지혜가 넘치는 왕으로서 이름 높은 솔로몬왕은 어느날 짐승과 새와 정령(인간과 천사 사이에 위치하는 것)들을 데리고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다. 매일밤이 되면 모두 모여 그날의 활동을 보고했었는데 어느날 야쯔가시라라고 하는 새만이 모이는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서 솔로몬 왕은 대단히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고 있을 때, 야쯔가시라가 돌아와서 하는 말  “늦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남쪽으로 날아가 여러분들이 아직 들어보지도 못한 것을 보고 왔습니다. 남쪽에 시바왕국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여왕이 다스리고 있는 대단히 풍요로운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고 태양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보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렸다? “ “ 예, 사실입니다.”  “좋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늦게 온 너를 용서해 주겠지만 거짓이라면 그냥 두지 않겠다.” 라고 솔로몬왕은 말하고 야쯔가시라에게 시바왕국에 편지를 가지고 가도록 명령했다. 그 편지에는 “당신의 나라는 대단히 풍요로운 나라라고 들었다. 그러나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고 태양을 숭배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앞으로는 여호와를 숭배하도록 하시오” 라고 적혀 있었다. 야쯔가시라는 편지를 가지고 시바왕국으로 가서 상공에서 편지를 떨어 뜨렸다. 편지를 받은 시바여왕은 장로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우리들 앞으로 솔로몬이라는 왕이 편지를 보내 왔어요.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써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얘기를 해보세요” 하자 장로들 중 어떤 이는 “건방진 녀석 같으니, 전쟁을 일으켜서 혼을 내줍시다.” 또 어떤이는 “무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우리나라와 같이 풍요로운 나라는 없을 테니 토산물을 보내어 그들을 놀라게 하여 회유하는 것이 어떨지요?” 라고 진언했다. 그때 시바여왕은 그게 좋겠다 라고 말하고 대량의 금, 은, 보석을 이스라엘에 보냈다. 이것을 받은 솔로몬왕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물건들은 산처럼 쌓여 있어 기쁘지도 아무렇지도 않다. 만약 당신들이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겠다고 하면 군대를 보내어 전쟁을 일으키겠다.” 라고 회신을 보냈다. 이러한 회신을 받은 시바여왕은 “알았다. 그렇다면 직접 만나러 가겠다” 라고 직접교섭에 나설 것을 결정했다.  시바여왕은 토산물을 가득 싣고 가신, 장군 등을 거느리고 솔로몬왕을 만나러 출발하였다. 이 낙타의 대열(CARAVAN)은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가장 선두의 낙타가 출발한 후 마지막 낙타가 출발하기까지는 3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구약성서에 의하면 이때 시바여왕이 솔로몬왕에게 가지고 간 금, 은, 보석은 이제껏 없었던 양이었고 그 이후에도 그 정도의 양이 보내진 적은 없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상당한 수량의 귀중한 토산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향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솔로몬궁에 다다르자 시바여왕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내어 솔로몬왕이 정말로 지혜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려고 했다. 예를 들면 시바여왕이 여행에 나선 후, 정령들에게 명을 내려 시바왕국의 궁전에서 여왕의 옥좌를 이스라엘까지 가지고 오게 해라라고 한 후, 여왕이 왔을 때 “이것은 당신의 옥좌입니까? “ 라고 질문했다. 여왕은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 라고 대답했는데 구약성서에 의하면 여기서 아니요 라고도 그렇다 라고도 대답하지 않았던 것이 지혜의 증표라고 쓰여 있다. 또 솔로몬의 궁전에는 푸른 수정으로 깔려 있는 마루가 있었는데, 여왕은 솔로몬에게 다가갈 때 그 푸른 수정을 보고 물이라고 생각해서 옷자락을 약간 들어 올려 걸으려 했었다고도 쓰여져 있다. 어떻든 이러한 서로의 대화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지혜에 감탄했고 서로 마음이 끌리게 된데다 동침 조건을 건 지혜겨루기 내기에서 진 시바여왕이 솔로몬과 동침하여 서로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마지막에 솔로몬은 시바여왕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주었고(열왕기 상 10:13), 꿈같은 몇 달의 세월을 보낸 후 아쉬운 사랑의 빈 가슴을  달래며 여왕은 뱃속에서 자라는 사랑의 열매를 안고 귀국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시바여왕의 귀국 코스가 재미있다. 여왕은 갈 때는 향료의 길을 따라 아라비아반도를 북상하여 갔었는데 귀국할 때는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를 경유하여 남하하여 이디오피아까지 갔다. 그리고 이디오피아에서 구슬 같은 남자아이를 낳았는데 이것이 솔로몬과 시바여왕 사이에서 만들어진 아이로, 이 아이가 이디오피아를 1974년까지 지배한 하이레세라시에 황제집안의 시조 메넬리크 1세가 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즉 이디오피아 황제집안은 솔로몬과 시바여왕 사이에서 만들어진 가계(집안)인 것이다. 그 후 시바여왕은 홍해를 건너 예멘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커피가 마시는 음료가 되기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이지만, 여기에 이디오피아와 예멘이라고 하는 커피에 얽힌 2명의 등장인물이 갖추어진 셈이다. 커피의 원생종이라는 것은 에티오피아가 기원이다. 그것이 예멘에 전래되어 커피가 음료가 된 것인데 시바여왕의 전설에도 나타나있듯이 예멘과 이디오피아는 대단히 친밀한 관계였었다. 홍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동료. 당시의 시바왕국은 대단히 강대했기 때문에 이디오피아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어 솔로몬과 시바여왕의 전설 중에도 에티오피아가 등장했던 것이다. 이 의미에서 시바여왕은 마시는 음료로써의 커피의 탄생의 밑바탕을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잠깐 주의를 기울일 것은 시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러 갈 때 처녀여왕의 신분이었느냐 남편이 있는 결혼한 몸이었느냐 아니면 이혼한 채 혼자 몸이었느냐  그도 아니면 남편이 먼저 죽은 과부의 신분이었느냐 하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시바여왕이 굳이 본래 왔던 길로 해서 아라비아 반도 남단의 자기 나라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항해술이 아직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 굳이 멀리 돌아서 식민지로 있던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로 돌아서 갈려고 했을까 하는 점이 얼른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솔로몬의 아들을 낳은 것을 보면 아무리 여왕의 신분이라고 해도 외국에 수뇌회담하러 갔다가 상대방 왕과 바람이나 피우고 배가 불러 자기나라로 돌아 오는데 대한 부담감이 대단히 컸기 때문에 뱃머리를 그리로 돌렸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식으로 솔로몬 왕의 정비로서 왕비가 된 것도 아닌 관계에서 사생아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도덕적 비난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의 귀중한 선물-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에 대한 안전 보장을 위하여 시바여왕으로 하여금 에티오피아 식민지로 뱃길을 돌렸고 그곳에서 아들을 낳아 솔로몬에게서 받았던 많은 보석과 재화를 가지고 아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왕국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하여 메넬리크 1세로 에티오피아를 통치하기 시작하여 장장 3,000년 왕조를 누리게 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솔로몬 왕이 늙어 가면서 이방 여인들로 더불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범죄함에 따라 솔로몬이 죽자마자 하나님께서 다윗 왕국을 르호보암의 유다와  여로보암의 이스라엘로 나누고 바빌론에 멸망 당하게 하였으나 기묘하게도 하나님은 시바여왕을 통하여 솔로몬의 또 다른 왕국이 에티오피아에 건설되어 그 위가 끊이지 않게 하고 있음을 성경 밖에서 보게 된다 (출처 : 미술관 옆 도서관 )

출처 : 성화사랑
글쓴이 : bae sung so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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