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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논단] 크리스마스의 현대적 재조명

Mouses 2007. 11. 17. 00:17
[기독논단] 크리스마스의 현대적 재조명

해마다 12월이 되면 세계 여러 나라에 구세군의 종소리와 흥겨운 캐럴송이 울려 퍼진다. 이렇듯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고 사랑과 평화가 온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전 세계인의 축제’이지만, 나라와 민족에 따라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예수가 태어난 성지 베들레헴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많은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말구유 광장을 비롯한 시가지에서 캐럴을 부르고 폭죽을 터뜨리며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한다.

베들레헴만큼이나 세계의 눈길을 끄는 곳은 핀란드 북쪽에 자리한 작은 도시인 로바니에미다. 마음씨 좋은 산타클로스가 살고 있어 ‘산타 마을’이라 불리는 로바니에미에는 크리스마스를 산타클로스와 함께 보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전야에 촛불을 켜고 행운을 기원하며 ‘크리스마스 장작’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장작을 벽난로에 집어던지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산타가 흰 말을 타고 온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한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맞는 남반구는 어떨까. 아르헨티나의 경우 크리스마스를 ‘나비다드(Navidad)’라고 한다. 그리고 산타 대신 ‘빠빠 노엘’이 선물을 주며 온가족이 모여 파티를 열고 사과주를 마시며 소원을 빈다. 이밖에도 미국 켄터키 주에서는 선물을 가득 실은 ‘산타클로스 열자’ 가 운행되고, 필리핀에서는 12월 16일 새벽에 ‘환희의 종소리’가 교회마다 울려 퍼지는 동시에 크리스마스 축제가 시작된다.

“성탄절이 세계적 명절이 되었다”는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한편 마음이 착찹함을 금할 수 없는 알맹이 없는 것은 장식, 곧 본질을 잃어버린 축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성탄 때 교회당에서는 6m의 대형 전나무로 오색찬란한 트리를 장식하여 교회당 밖에 세웠을 뿐만 아니라 교회당 넓은 정원에 있는 각각의 나무마다 안개등을 총총히 달아서 12월 24일 저녁을 밝혔다. 온 교인들이 좋아하고 주위 동네사람들도 구경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이날 성탄축하식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다리를 저는 불쌍한 사람이 새끼 양 한 마리를 안고 찾아와서 구경을 하려 하였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 한분이 그 사람을 냉정하게 교회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주위의 교인들도 둘러 서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는 자가 없었다. 결국 불쌍한 사람은 새끼양과 함께 쫓겨나야 했다. 그런데 그 시간부터 교회당 종탑 맨 꼭대기에 장식한 별등의 불이 꺼진 것이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유 없이 그 성탄 별등에서는 끝내 성탄절이 지나갈 때까지 불빛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성탄절의 본질적 의미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세계에서 일어날 영적평화(눅2:14)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평화를 내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것이 퇴색된 오늘의 성탄축제는 사실상 세속화된 것이 아닐 수 없다.

한때 우리사회에 “크리스마스 베이비”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성탄절은 유흥퇴폐문화의 확산으로 인한 성적 범죄의 기회로 전락해 버리기도 했다. 성탄절의 기본정신이 바로 전달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의 목적과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그분이 왜 오셨는가?

첫째, 자기의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마1:20).

둘째,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눅2:14).

셋째, 당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죄인들을 섬기기 위해 오셨다(막10:45).

넷째, 인간을 사랑하사 친히 당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이 사건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막10:45, 눅2:14, 요3:16).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즐김만을 위한 날이 아니다.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신 날인만큼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해 오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우리의 사명을 더욱더 되새겨야 할 것이다. 참으로 이번 성탄절은 먹고 즐기는 것에서 뛰어넘어 ‘이웃들과 함께 하는’ 하얀 성탄절(white Christmas)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용환 목사 기자 등록일 2004-12-13



교계,성탄문화 바로잡기 캠페인 잇따라

 낮은울타리(대표:신상언)는 성탄절을 맞아 천안시기독교문화협의회, 청소년 사역자협의회 등과 함께 성탄절 문화 바로세우기 캠페인 '잃어버린 크리스마스를 찾아서'를 지난 7일부터 18일까지 서울 및 경기, 광주, 천안 지역에서 펼쳤다. 낮은울타리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산타와 루돌프가 아닌 예수님 나심의 의미를 전하는 카드와 장식을 골라서 사용'하고, '캐럴 중 산타와 루돌프만 등장하는 노래는 제외하고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가진 곡들을 골라서 부를 것'을 제안했다. 또한 가정에서는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정예배를 드리며, 교회에서는 성탄절 행사의 대상을 성도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로 맞춰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는 동시에 성탄 문화가 올바르게 회복되고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중보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한편 주최측은 성탄거리축제 '2000년 전 동방박사 길을 따라'를 오는 24일 저녁 7시에 소외된 이웃과 교회가 함께하는 연합예배를 오는 25일 저녁 6시에 각각 개최할 예정이다.



기자수첩/ 성탄의 의미 찾기

 유난히 따뜻한 날씨로 겨울이라는 계절이 무색한 요즈음이지만 올해도 성탄 장식은 어김없이 거리를 장식했다. 특히 서울 시내의 상점들이 11월부터 경쟁적으로 내걸기 시작한 화려한 장식과 이벤트들을 보면 이제는 교회보다 상점들이 더 성탄절을 기다리는 듯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교회에서는 최근 몇 년 간 성탄절 의미찾기 바람이 이어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점점 화려해지는 세상 속의 크리스마스. 지극히 상업화된 산타클로스가 주인공이 되어버린 성탄절을 거부하고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인 예수님을 주인공의 자리로 돌려놔야 한다는 것이 성탄절 캠페인의 요지. 기독교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낮은울타리는 그런 의미에서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만 나오는 캐롤은 부르지 말고, 산타와 루돌프가 아닌 예수님 나심의 의미를 전하는 카드와 장식만 골라서 사용하자는 일종의 '차별화'를 제안했다.
 이에 앞서 문화선교연구원은 '3R 운동(Return, Revival, Refresh)'을 해 온 갓피플과 함께 성탄절 캠페인 'The Christmas(더 크리스마스)'를 시작했다. 특히 이번 성탄절 캠페인은 성탄절의 의미에 맞는 공연을 관람하는 등 적극적인 문화 활동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또한 이밖에도 교단 차원에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 예장합동의 '성탄절문화 바로세우기 운동', C3TV의 '산타버리기 예수찾기' 등 다양한 주체들이 이 일에 나서고 있어 성탄절 의미 찾기를 위한 기독교인들의 움직임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성탄 장식과 선물을 사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성탄절이 기쁨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절기가 되어버린 것이 오늘날 미국 등 기독교 국가를 자처하는 선진국들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예수 나심의 기쁨과는 상관 없이 성탄절을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기독교인들 각자가 성탄절의 본래 의미를 찾기 위해 진지한 고민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임원진 기자




성탄의 뿌리를 찾아서

리나라에서 성탄절을 본격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 선교사들의 편지를 보면 이러한 사실들이 잘 드러나 있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서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던 사무엘 마펫 선교사는 1901년 12월 25일자 편지에서 평양에서의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전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하여 즐거운 성탄이 되기를 바라오. 우리는 오늘 아침 교회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소 아래쪽 연단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혼잡하지 않았소,여러 학교에 의하여, 교인들과 기타 반주에 맞춘 블레어 부부의 2중창에 의하여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그 프로그램의 대부분이었고, 기도와 성경봉독과 함께 스왈렌과 길선주 장로의 짧은 설교가 또 있었소,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꽃들과 어린이를 위한 사탕과 건과들의 꾸러미는 즐거운 모습을 연출했소, 예배 후에는 교회 직원들의 주도 하에 수많은 교인들이 달력을 가지고 평양의 각 대문으로 나가서 아직 전도 받지 못한 시골 마을마다 복음이 퍼지길 바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소."(김인수 역, 사무엘 마펫의 편지 중)
 마펫의 편지를 보면 1901년 평양에서는 성탄축하예배가 드려졌고, 캐롤송을 부르며 성탄축하선물도 나누는 등 오늘날과 비슷하게 성탄절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특기할 것은 성탄절을 맞아 교인들이 달력을 갖고 전도를 하기 위해 마을 곳곳으로 나갔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교회의 성탄절은 곧 한국교회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확대돼갔다. 사실 구속된 자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성탄의 기쁜 소식은 식민 치하의 암울한 시절을 살던 우리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 주는 기쁜 소식이었고, 자연히 성탄절은 교인만이 아니라 식민 치하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 전체의 명절로 다가왔던 것.
 이런 이유로 성탄절 새벽송은 일제에 의해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우리 민족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를 아울러 모두의 명절로 지켜졌다.
 본보 1965년 12월 25일자 신문을 보면 성탄절 풍습에 대한 교회 지도자들의 대담이 나온다. 한 참석자는 일제시대 성탄절 풍습을 떠올리며 성탄절이 기독인만의 명절이 아님을 말한다.
 "평양교회의 예를 들면 그 때 거기서도 엿을 주었어요 강냉이 튀긴 것하고 새벽 찬미대가 가면 불신자라도 손벽을 쳐주고 지구별성가대의 성가엔 불신자들도 만세를 불러주었어요. 축하예배때엔 술주정꾼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주정부린 사람은 보지 못했어요."
 성탄 새벽 성가대의 찬양에 불신자들도 함께 손뼉을 치고 만세를 부르는 성탄절의 모습을 보면서 식민치하에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와 해방에 대한 희망을 주는 성탄절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렇게 암울했던 일제시대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준 성탄절은 해방에 이은 민족분열과 전쟁 등 고난의 시기에도 희망으로 다가왔다.
 또한 전쟁 이후 교회 재건과 사회 재건 운동이 한창 전개되던 시기에 사치와 낭비를 경계하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성탄절 문화에도 변화가 일었다.
 성육신의 감격과 감사가 사라지고 소비와 낭비가 확산되는 세태에 대한 경고와 함께 불우한 이웃에 대한 나눔과 절제 운동에 대한 교회 지도자들의 권유가 이어졌다.
 실제로 60년대 초반 총회는 갈수록 세속화되는 성탄절의 본래 의미를 찾기 위해 성탄절을 예배 중심으로 지키고 성극과 새벽송을 금지시키기도 했었다.
 재미있는 것은 전쟁 이후 황폐화된 국토를 재건하는 차원에서 성탄 트리를 세우지 말자는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었다는 것.
 본보 1956년 12월 17일자는 서울용산교회 상록회가 전개한 '성탄목 배제운동'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서울용산교회 청년상록회는 크리스마스 튜리 배제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요지의 격문을 각 교회에 발송했다. 지금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산야는 필할 수 없을 만큼 황폐합니다. 이렇듯 불모의 산에서 크리스마스 튜리로 사용하려고 몇 주 남지않은 소나무 전나무를 캐버리거나 짜르고 있습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남한에 있는 교회가 3천이라고 하니 성탄절에 사용하는 크리스마스 튜리와 그밖에 학교 공공단체 기관 상점에서 사용하는 것을 합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수가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성탄목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신성하고 엄숙한 크리스마스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황폐화된 국토의 회복을 위해 성탄목을 세우지 말 것을 주장한 청년상록회의 활동 속에서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국토의 처참한 모습과 이의 재건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5ㆍ60년대를 지나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의 성탄문화는 또 다른 변화를 겪는다. 급격한 산업화로 빚어진 갖가지 문제들은 한국교회에 새로운 결단을 요구하고 있었고, 그러한 결단들은 도시산업선교, 인권운동, 빈민운동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됐다.
 이 시대의 성탄절 역시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군부독재에 의해 압박받는 민중들과 교회가 함께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보 1973년 12월 22일자 신문은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사는 가난한 우리의 이웃 찾아가자'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중랑천변, 송정동 빈민촌, 망원동 빈민촌, 성남 철거민촌 등 빈민촌에서 전개되던 선교와 구제활동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동시에 '자유, 정의, 평화, 사랑'을 주제로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성탄축하예배를 소개하며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중심에 선 한국교회를 소개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긴급조치를 발동, 수많은 목회자와 신학생을 수감했고 교회
는 어려운 과정 중에서도 이들의 자유와 석방을 촉구하는 각종 집회가 성탄절을 기해 열리고 또한 성탄 메시지 속에 자유와 인권을 촉구하는 성명을 함께 발표했다
 2003년 겨울 성탄절도 생존권 문제로 신음하는 노동자ㆍ농민, 이라크 파병, 외국인노동자 추방 등 갖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가운데 다가오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성탄절은 단순히 주님의 오심을 기념하는 절기만이 아니라 당시 우리 민족이 안고 있던 문제를 평화와 사랑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주님 앞에 고백하는 절기였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절기였다는 점에서 2003년 겨울을 보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족의 고난과 함께 했던 신앙의 선배들처럼 이번 성탄절 만큼은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하는 진정한 나눔이 있는 성탄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훈 shlee@kidokongbo.com







독자투고/ 대강절의 참된 의미

 갑신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송년의 석양처럼 사람들의 발검음이 바쁘게만 보인다.

 그러나 성탄절이 있기에 우리는 이유 있는 마음으로 희망의 새해를 숨쉰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기리는 대강절을 맞으면서 생각이 깊어진다. 대강절은 말 그대로 이 땅에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강절의 참 의미를 살리고 이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본래적 의미와는 달리 대강절은 퇴색해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자� 크리스마스 카드는 1843년 영국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장인 헬리 콜이 미술가인 그의 친구 존 호슬리에게 크리스마스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부탁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요즈음 손수 만들어 한 줄 한 줄 정성스레 적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카드에 심지어 인사말까지 인쇄된 형식적인 카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년 내내 편지 한 장 없다가 연말 인사를 대신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겠다.

 산타클로스는 또 어떤가? 3세기 터키의 성 니콜라스로서 원래 가톨릭 사제였던 그는 젊어서 양친을 여의고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자, 생활이 곤란한 이웃을 위해 구제활동을 펼쳤고 특별히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앞장 섰다. 이러한 실화들이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발전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는 상징으로 남게 됐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낮고 천한 말구유에 누이신 것처럼 우리가 가진 여유로 참 애정을 나누는 절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캐럴 송은 원래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담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입으로 구전되면서 대중적인 음악으로 변질됐다. 오늘날 대표적인 캐럴 송으로 불려지고 있는 '징글벨'이나 '고요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등은 모두 각 나라의 민요에 신앙적인 내용을 담아 만들어진 것이다.

 요즈음 시중에 나오는 캐럴 송 가운데는 대부분 예수님과 무관한 노래들이 젊은이들에 의해서 불려지고 있다. 교회 음악가들은 강림의 의미가 담긴 찬송들을 만들어 보급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에서 세심한 주의와 교육이 없다면 성도들은 자칫 세속적이고 상업적인 성탄절 분위기에 빠지고 말 것이다. 교회는 강림에 대한 적절한 말씀의 교육과 더불어 예수 오심을 나타낼 수 있는 적절한 상징과 예수 오심에 대해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부를 수 있도록 성도들을 이끌어야 한다.

황 필 순 / 광주월성교회 목사





크리스마스 새벽송과 카드의 유래

제주의 행복한 쉼터 소식

박재홍

제주사랑선교회 총회
주일(7일)에는 제법 굵은 우박이 내렸지요. 서울에는 어제 눈이 제법 왔는 모양이구요. 어제(8일) 제주사랑선교회 총회를 저희 교회에서 했는데, 서울 쪽에 있는 목사님이 축하한다며 문자를 보내면서 눈 소식도 함께 전하더라고요... 지금도 이곳의 날씨는 뭔가(?) 보여주기 위해 잔뜩 웅크린 듯 흐려 있습니다.

어제 총회 결과 회장, 총무, 서기 모두 유임되었답니다. 더 잘 할 때까지 계속하라고 하네요. 저는 좀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함께 계속 해 나아가야 뭐~ 별 수 있습니까? 아이고...그렇게 말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요? 알겠습니다...

제주사랑선교회에 대한 소식은 제가 가끔씩 전해 드리지만, 제사선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기를 원하시면 http://jejulove.org 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대방문 마무리
지난 한 달이 넘게 계속 되었던 대방문이 공식적으로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조금 늦은 11월에 시작해서 시간이 좀 걸렸네요.. 내년에는 10월경에 할 예정입니다.

새해에는 사업체를 중심으로 신년하례회겸 새해 첫째 주나, 둘째 주에 예배를 드릴 것이고요. 이러한 모임들은 주로 아침 일찍 드려질 것입니다. 첫해를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허리 수술
어제(8일)는 이레개발의 김우현집사가 허리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허리가 좋지 않아 계속 입원해 있다가 어제 드디어 수술을 받은 것입니다. 사실 누워있는 사람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수술을 하면서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지금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비용을 아까워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당장 건강을 위해 들어가는 모든 비용들을 손해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는 상태에서도 승리의 V자를 그리면서 웃는 집사님의 모습이 감사하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병원생활을 통해서 나타내시고자 하는 분명한 뜻을 발견하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입원
오늘(9일) 12경에 아내는 목포 본가에 갔습니다. 이유인즉 제 아버지가 중풍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신 것 때문입니다. 저는 저번 주에 목회계획을 수립하느라 자리를 비었기 때문에 제 아내 혼자서 간 것입니다.


내일 오후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요... 아버지의 병세는 심각하게 염려할 상태는 아니라고 하는데, 할아버지 또한 중풍으로 마비가 오셔서 오랫동안 고생했던 것을 보았던 터이라... 무엇보다 아버지의 마음이 심히 불안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막내 동생은 아버지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렇지만, 이제 이러한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닌 제 일이 됨을 볼 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제가 바라기는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향한 우리 가족의 모습이 더욱 귀하게 세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이든 총각, 처녀들
그리고 동생 말이 나온 김에 다시 한번 광고하는데, 좋은 처자있으면 소개를 부탁합니다. 제 동생뿐만 아니라, 한동안 선을 보았던 납읍교회의 김집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둘 다 35세의 건강한 청년들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에 편지에 기록했으니... 오늘은 생략하고, 필요하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조수교회 김목사님은 결혼시키고 싶으신 여집사님을 자세하게 소개해서 아시는 분들에게 메일로 보내시기도 하던데... 이 일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제사선에서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먼저 제사선에 속한 교회에서라도 사진이랑 프로필을 만들어서 청년들을 소개하는 곳을 만들자고요. 아무튼 개교회에 속한 청년, 처녀들을 연결시키는 좋은 곳이 있었으면 합니다.

수산봉 오름기도등반
주일(7일) 오후에는 애월읍 수산리에 있는 수산봉에 올랐답니다. 교회에서 찬양과 기도를 모은 후 수산리를 바라보며 수산봉 중턱에 이르렀지요. 정상에는 레이더기지가 있어 오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소개 자료를 여기에 안내합니다.


< 어원과 유래 >
수산봉은 본래 봉우리 위에 숲이 있는 못이 있어 물메오름·물미오름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물이 없고, 남동쪽에 큰 저수지가 조성되어 옛날부터 기후제를 지내는 오름이다. 또한 수산리는 물메오름 기슭에 형성된 마을로 오름에서 우래된 것이다.
옛날에 봉수대가 있어 동으로 도원(도두)봉수, 서로는 고내봉수에 교신했다. 봉수대가 있어서 수산망(水山望) 또는 수산봉이라 했다. 옛날에는 물메 마을을 수산리로 표기된다.

< 오름 소개 >
이 오름은 애월읍 일주도로변에서 극동방송국에서 서북쪽으로 3km에 위치하며, 애월읍 신엄리 해안도로 진입로에서 동남쪽으로 1km에 위치한다. 남서쪽에 수산유원지를 배경으로 남북으로 가로놓은 수산봉을 말한다.


남서쪽 사면에는 충혼묘지가 있으며, 동쪽 사면에는 화엄종인 대원정사와 원천사가 있다.
이 오름의 남쪽 아래 사면에는 수산유원지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400년된 곰솔이 있는데, 이 곰솔은 지방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높이 10m의 관목으로 수원지를 조망하는 정자나무와 같다.


정상부에 레이더기지가 설치되면서 '대원정사원천사'를 거쳐 정상 부근까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 만여 평에 이르는 수산저수지는 1960년대 조성되었는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각종 위락 시설을 갖춘 유원지로 활용하기도 했지만, 1995년 이후에 모든 시설이 폐쇄되었다.

2004년 목회계획
저번 한 주간 동안은 목회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잠시 짬을 내었습니다. 그렇다고 제주를 떠나 육지로 갔던 것은 아니고요. 비교적 교회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고 움직였습니다. 계속해서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모임에 참석하고, 수요예배도 제가 인도하고 했지요.


그래도 새벽예배를 전도사님이 인도하여 주셔서 제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대충 2004년도에 중점적으로 치중해야할 사업들과 기본적인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됐구요. 앞으로 1달에 하루는 반드시 시간을 내어 한 달을 계획하고,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 크리스마스 카드의 유래... >>
크리스마스 카드 이야기가 나와서... 이번 주에 교우들과 나눈 이야기를 옮겨 적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는, 1843년에 영국의 미술교육가 H.콜이 고안하여 왕립미술아카데미 회원인 존C.호슬리에게 보낸 것이 최초인 것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이를 '콜 호슬리 카드'라 하여 오늘날에도 그 복제품이 팔리고 있습니다.


이 카드에서 콜은 성탄을 즐기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 넣고,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to You"라는 문구를 적어 런던에서 1,000장을 팔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1860년에는 이 것이 온 영국에 퍼지게 되었고, 곧 미국으로 건너가 일반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1870년 이후에, 각국의 우편제도가 발달하고 그 우편요금이 싸지면서부터 크리스마스 카드의 교환은 세계적인 풍습이 되었습니다.

<< 새벽송의 유래 >>
19세기 상반기에 영국에서는 집집을 방문하면서 캐럴을 불러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부락의 모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쓸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11월말부터 시작하여 각 집을 돌아다니면서 캐럴을 부르곤 했습니다.


미국의 수필가이고 소설가였던 작가 어빙은 1820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크리스마스날 밤 창문 밑에서 들려오는 합창단의 아름다운 캐럴 소리에 잠이 깨었었는데, 이 합창단은 [십여 명의 동네 사람들로 구성되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창문 밑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 화음이 서투르긴 했어도 매우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는 캐럴링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기쁜 소식을 천사들이 찬양으로 전했던 것처럼,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집집마다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교회도 중고등부와 청년들이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 캐럴링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도 학생때 새벽송을 하기 위해 트럭 뒤에 타고 추운 날씨지만 기쁨으로 교우들의 집집마다 다니며 캐럴을 불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년 그랬습니다만, 이번 크리스마스 때에도 캐럴링을 하며,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귀중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듯이, 우리 또한 불우한 이웃에게 전할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여 새벽송을 할 때 선물로 주면, 그것들을 [외국인근로자센터]에 전달하여 외국에서 와서 수고하고 고생하는 외국인근로자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눈답니다.

그럼, 복된 크리스마스가 되시길!!!



크리스 마스의 시작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처음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의 일이다.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기 전에는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로 지켰는데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예수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이중 명절로 지켰고, 예루살렘에서는 같은 날 예수의 탄생만 경축 하였다.

# 로마 교회 #
로마에서는 4세기에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결정하고 이어서 1월 6일을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를 방문한 현현일 (Epiphany)로 기념하였다. 예수의 세례 기념일은 1월 6일로 부터 옥타브가 되는 다음주 같은날로 연기하여 지키는데 이날에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정도로 기억할 뿐 특별한 행사는 없다.

본래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보고 이날을 축제일로 삼아 농업을 주관하는 Saturnalia라고 불리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것은 주후 274년 Aurelian 로마황제에 의하여 되어진 일이다. 북구라파에서는 이전부터 "태양이 다시소생"하는 동지 (冬至)를 크게 기념하는 축제(Festival)를 전통적으로 지켜 왔었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요 1:9)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빛"의 탄생이다.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정한것과 기독교에서 "세상의 빛"이 탄생한날을 12월 25일로 결정한 것은 이교도들의 "태양의 빛"과 기독교의 "세상의 빛"을 일치시킴으로 기독교를 이교도들에게 더욱 의미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그 시대를 기록한 력기를 보면 주후 336년전에 이상과 같이 결정해서 지킨것을 알수 있고, 이날(12월 25일)을 교회력의 첫날로 기록하고 있는것을 볼수 있다.

# 이집트 #

이집트에는 희랍의 철학, 동양의 신비주의, 기독교의 교리등을 종합하여 얻은 "인간의 지식에 의하여 인간 영혼의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노시스(Gnostics)라고 하는 기독교의 이단 집단이 있었다. 약 200년경에 Clement (Clement of Alexandria)가 1월10일 (일부 사람들은 1월 6일 이라고도 함)을 그리스도의 세례를 기념하는 날로 지켰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집트에서 1월 6일을 교회의 축일로 정한 것은 그노시스 교도 보다 2세기 후인 380년에서 400년 사이에 결정된 일이다. 이집트에서는 이 날을 예수 의 탄생일 겸 세례 기념일로 지켰다고 그 무렵 이집트를 방문한 John Cassian이 기록하고 있다.

# 동방교회 #

동방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특정일로 정해서 지키기 시작한 것은 380년 Constantinople에서 비롯 되었고, Antioch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계속 반대해 왔었다. 동 로마제국에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1월 6일을 현현일로 명확하게 분리하여 지키게 된것은 431년 에베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에서 결정한 이후 432년 부터 이다.

# 예루살렘과 아르메니아 #

예루살렘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계속 부정해 오다가 6세기 이후부터 1월 6일과 12월 25일로 분리하여 경축하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Armenia 지방의 교회에서는 1월 6일에 성탄절을 지키고 있다. 이와 같은 전통 때문에 1월 6일 현현일을 "작은 크리스마스"(Little Christmas) 또는 "구 크리스마스"(Old Christmas)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개신교회에서도 현현일을 지킬수 있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동방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같은 날 천사들에 의하여 "기쁜소식"을 들은 목자들의 방문(눅 2:11)도 겸하여 경축하고 동시에 성경에는 동방박사가 언제 찾아 왔는지 확실한 날짜는 밝히지 않았지만 동방박사의 경배도 아울러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탄생과 목자만을 기억하고 동방박사의 경배는 현현일에 기념한다.



성탄절의 기원

"크리스마스"의 날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12월 25일 설은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됐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다음해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 교회의"로마"주교는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했다.
"크리스마스"를 교회가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 후반 부터이다. 고대 "로마"교회에서 기원한 "크리스마스"를 지키기 시작한 년대에대해서는 335년설과 354년설이 맞서있다.
"성탄일"은 그 후 동방 교회로 퍼져나가 "콘스탄티 노롤리스"(379년),"카파도기아"(382년)등에서 지키기 시작했고 교회력의 기원이 됴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력 기원의 시원이 되었다.
"로마"의 "액시그누스"(500-544)가 533년 부활절표를 작성할 때 기산한데서 비롯된 시력 기원의 기점인 "그리스도"의 탄생은 실제로는 현재보다4년이 앞당겨진다.
"성서"에는 예수님의 탄생 년도나 날자의 기록이 전혀 없다.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한 최고(최고)의 기록이라는 "안디옥" 주교의"데오필로스"기록(175-183)도 학자들간에는 위작(위작)이라고 단정되고 있다.
"그리스도"와 "미사"가 합쳐 구성된 용어인 "크리스마스"사건에 관한 성서적 근거로는 "마태복음 제 1 장"과 "누가복음 제 2 장"을 들 수 있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처녀 탄생은 천사의 고지, 이상한 별의 출현,"베들레헴"의 말 구유까지 박사들을 인도한 빛 등은 "그리스도"가 인간이된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 처럼 성탄에 널리 유행하는 "크리스마스 트리"의관습은 고대 "애급"에서의 동지제(동지제) 때의 나뭇가지 장식, "로마" 축제 행렬에서의 촛불을 단 월계수 가지 장식 등 옛날의 성목(성목) 숭배에그 기원을 두고있다.
흔히 "크리스마스 트리"로 전나무를 사용하게 된데는 전설이 있다. 8세기경 독일에 파견된 선교사 "오딘"은 신성하다는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바치는 야만적 풍습을 중지시키기 위해 옆의 전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가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한데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모든 성실한 종교개혁의 후예들, 정통 신앙의 말씀 중?의그??볕돛琯涌“?오늘 하나님께서는 말씀 하신다.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출23:1,2)

[[ "크리스마스" 축제의 기원 ]]

(1)농신제(Saturnalia)에서 미트라 탄생 경축제로

초대 교회의 교부 터틀리안은 당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위정자들과 일반 이교도들에게 호소하기를, "태양과 일요일을 가지고 우리를 비난하는 그대들은 우리와 친근해야만한다. 우리도 그대들의 사투른(Saturn) 신과 그대들의 쉬는날들과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 Tertullianus, Ad Nationes, bk.1,chap. 13, in ANF. vol.3,p.123. -하였다. 사투른 신은 로마 사람의 농경신으로 그 거룩한 혹성신은 토성이다. 시카고 대학교 라틴 고전학 주임 교수 레잉(Gordon J. Laing, AD.18
69-1945) 박사는 이 사투른 신을 위한 농신제에 관하여 진술하기를, "사투른 신의 경축제는 12월 17일 부터 시작되지만 그 7일 중 마지막 날에 축제 행사를 최절정으로 벌인다. 이 행사는 농경이 로마 사람들의 주활동이었던 때의 한 지방적 축제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행사는오래지 않아서 도회지 중심지에까지 번져 경축되었다. 이 축제는 마음대로먹고 마시는 식도락과 도박 등 방종의 기간이었다. 이 7일 동안은 시 재판소들이 그 어느 다른 시즌(season)에도 고발되지 못했던 음란 범죄 행위도관용을 베풀었다. ... 또 다른 특징은동지 후에 있는 햇빛의 증가하는 능력을 상징한 촛대를 서로 선물로 교환하는 것이다. ... 이 농신제의 그 많은 풍습이 어떻게 크리스마스에로 이전 되었는지 의문의 여지가 전혀없다"- G.J.Laing, Survivals of Roman Religion(New york:Longmans,1931),p.58
라고 증언했다. 세기적인 교회사가 샤프도 진술하기를, "크리스마스 축제는 농신제, ... 등의 그리스도교적 변형이거나 경질이다이 축제는 ... 정복되지 않는 태양을 존경하기 위해 로마에서 12월 달에경축했던 것인데, ... 이것과 관련해서 ... 아이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선물과 촛대 및 크리스마스 트리 조립 등은 이 크리스마스 시즌의 여러가지 풍습을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또 이 시즌은 세속적 욕정을 충족 시키는 크리스마스의 참 환락인 음탕한 성적 도착 행위 속에서 저질러지는 그못된 행습의 기원을 무심코 들어내고 있다. ... 결국 교부들은 동지 다음날인 12월 25일의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 경축일을, 의의 태양이시요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탄신을 경축한다는 상징적인 논설로 변증하려했던 것이다."-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on Church, vol.3(Michigan:WM.B.Eerdmans Publishing Company,1979),pp396,397.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일에 대해 성경에 기록이 없으므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처음에 1월 6일을 주의 탄신일로 경축했었다. 이는 아담이 제 6일에창조되었으므로 제 2 의 아담인 예수님도 그 날에 탄신 하셨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공현절(Epiphania)인데, 동방 교회에서 서방교회로 전래 되었었다.
그런데 태양신 숭배자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더 심해지자 몇몇교부들이 그리스도를 의의 태양으로 묘사했다.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시84:10),"여호와는 나의빛이요"(시27:1),"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사60:19), "여호와는나의 빛이요"(시27:1),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말4:2). 멜리토(Melito, Bishop ofSaedis, d. ca.190 AD.)는"만일 해가 달과 함께 대양에서 씻는다면, 왜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씻지 않으셨겠는가? 하늘의 왕이시며, 피조물들의 영도자이시고, 음부(Hades)속에 있는 죽은자와 이 세상의 산 자에게 나타나셨던 동방의 태양이신 이 태양만이 오로지 하늘에서 부터 떠 오르셨다.(thiss only Sun rose from Heaven) "De Baptismos, inJ.B.Pitra,Analecta sacra Spicilegio Solesmensi(1884 ed.),vol.2,p.5. 성경이나 멜리토는 그리스도를 단지 상징학적 태양으로 찬양했을 뿐이다. 그러나 클레멘스나 키프리아누스는 그렇지 않고 태양을 신으로 받들었다.>

특별히 클레멘스는 주장하기를,

"하나님은 태양을 ... 섬기도록 하시기 위해 주셨던 것이다. ..."- Clemens, Stromata, bk.5, chap. 14 in ANF., vol. 2, p.505

그래서 그는 강조하기를,

"솟아오르는 태양과의 교신을 위해 동쪽의 해돋이를 향하여 바라 보면서드리는 기도는 받으신 바 된다."- Clemens, Stromata, bk.7,chap.7 in ANF., vol. 2, p.535.
라고 했다. 클레멘스는, "만물을 네려다 보시는 분"은 "참되신 태양과 빛이신 그리스도"라고 힘주어 말했다.
- Clemens, Stromata, bk. 7, chap. 3.

키프리아누스(Cyprianus, Bishop of Carthago, d. ca, 258 AD.)도 주장하기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해돋이를(at sunrise) 향하여 기도할 것이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강림을 ... 위해 석양에(at the setting of thesun) 대고 기도하라."Cyprianus, De Dominica Oratione, chap. 35 in CSEL., vol.3, by ed. G.
Harter(1871), part.1,p.292.
고 역설했다. 오리게네스(Origenes, Bishop of Alexandria, ca. 185-254
AD.)는 진술하기를,

"그리스도는 의의 태양이시다. 만일 달이 그와 연합 한다면, 달은 곧 교회인데, 그리스도의 빛으로 말미암아 더욱 충만해질 것이다."Origenesr, In Numeros homilia, chap.23, pars.5 in GCS., vol.7, p.217.
라고 했다.
이상의 주장들은 이 시대의 대부분의 신학자들의 논거들 이었다. 단순히그리스도교의 높은 종교적 덕성과 신앙적 신비에 매료되어서 개종했던 신자들은 세속적 학식과 사회적 성행에 휩쓸려 이교의 축제 행사에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반대로 터틀리안이 근심스러운 어조로 다음과 같이 개탄하는 것이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월삭과 절기들이 농신제와 신년제, 그리고동지 축제가 성행하므로 무색해지고 있구나."- Tertullinus, De Idolatria, chap.14, in, ANFvol.3, p.70.
라고 술회했다. 그런데 주후 271년에, 여걸 제노비아(Zenobia)가이끄는 팔미라(Palmyra) 군대를 자기네 태양신 미트라의 고장인 이메사(Emesa)에서격파한 황제 아우렐리아누스(Lucius Domitius Aurelianus, 270-275 AD.)는, 전쟁의 신이며 {정복되지 안는 태양신 미트라}(Deus Invictus SolMithra)가 "자기백성 팔미라를 버리고 로마에 승리를 안겨 주었다"하여주후 273년 12월 25일을 {불패의 태양 탄신일}(Dies Natalis SolisInvicti) 이라 하였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국경일로 선포하고 대대적인경축행사를 명 하였다. 그래서 12월 23일에그 절정으로 끝났던 농신제가25일까지 연장되었다.

(2)미트라 탄생 축제에서 그리스도 탄신 축제로

몇몇 교부들이 그리스도를 태양신으로 교묘히 우화적으로 해석하여찬양함으로 백성들도 태양을 그리스도로 숭앙하니, 지금은 더 이상 그리스도교를 박해할 명분이 없어졌다. 드디어 역사적인 주후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교회 박해를 긔낸 쿤스탄티누스(Constantinus, 재위 306-337 AD.)는태양 숭배일인 Sun-day를 매체로 해서 그리스도교와 이교를 결합시켜 단일종교 체제하에서 동서 로마 제국을 통일 하려고 하였다.
드디어 그가 죽은 익년인 336년에 로마 교회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12월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일 곧 크리스마스로 경축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가장 오랜 문헌은 주후 354년에 펴낸 필로칼루스(FuziousDionysius Philocalus)의 {연대기}(Chronograph)라는 로마 문서에서 발견된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문귀가 있다.

"정월의 제 8일째 전날(12월 25일)에 그리스도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나셨다."Theo Mommsen, Chronography of Philocalus of the year 354(1850),p.631.
그러나, 이 "336년설" 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이 문서의 저술 연대가354년 이므로, 로마 교회가 12월 25일을 최초의 크리스마스로 경축한 것은353년 아니면 354년 이후라는 반론이다.
-J.Hastings, Encyclopaedia of Religion and Ethic, vol.3(New york:Cha-rles Scribner's Son.1928), p.602.art:"Christmas" 이에 대해 다른이는 주장하기를, 이 문서 속에 나타난 336년에서 부터 사용되었다는 달력(the Philocalian Calendar)의 12월 25일 "N.INVICTI" 즉"불패(자)의 탄신일"( N[atalis] INVICT)이라는 부호가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최초의 경축 연대는 주후 336년 이라는 논리이다. 만약 후자의 논증이 사실이라면 법왕 실베스테르 일세가 죽던해에 명령했을 가능성이 크다.
- Philip Schaff, Ibid., vol.3, p.395.

그러나 전자의 반증이 사실이라면 법왕 리밸리우스(Libelius, BishopAD. Rome 352-366 AD.)시대에 설정된것이 된다.
12월 25일이 쩐. 미트라의 탄생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일 곧 크리스마스로 둔갑해서 경축되기 시작하자 이제는 반대로 서방교회에서 점차로동방 교회에로 전래되기 시작하였다. 교회가 이렇게 그리스도교의 옷을 입은 태양신교로 변모되니, 주후 392년에 황제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I.
재위 AD.379-395)는 이를 정식으로 로마 제국의 국교로 제정하고, 이교를철폐하는 법령을 아래와 같이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신분상 어떤 계층에 속하거나, 관직의 고하를 불문하고, 또 어느 곳의도시에 살든지 빈부를 막론하고 그 누구나 아무도 무감각한 우상에게 순결한 희생의 제물을 드리지 못한다. 더 구체적으로 자상히 규명한다면, 라르[lar(Roma의 한 지방적 신령으로 안방이나 마당신)]를 위해 불을 밝히거나 수호신을 위해 술을 따른다거나 페나테스[penates(집을 지키는 신)]를위해 향을 피우고 화염을 밝힌다거나, 향로를 두거나, 화환을 매달아두지못한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그 어떤 형상이든지 거기에다 숭배함으로 어리석게도 자신의 작품에 경외심을 나타내거나, 또는 나무에 리본으로 장식하거나, 뗏장을 떠서 제단을 조립하여 세우는 따위의 미신에 흠뻑 빠져 버렸다는 사실이 나타나 보이는 자는 하인을 막론하고 그의 재산을 몰수하는형벌을받게 될 것이다. ...
누구를 막론하고 공공적인 사당이나 제단에서, 도는 사적인 것으로서 자신의 소유의 것이나 타인의 것이나를 막론하고 거기에서 우상 숭배를 위한제사를 수행할 경우, 금화로 20파운드의 벌금형을 받게 될 것이다."Codex Theodosiusi, lib.xvi,title 10, lex.12.trans., in Charles NorrisCochrane, Christianity and Classical Culture(Oxford Clarendon Press,1940),pp329,330.
라고 반포하였다. 이 법령에 대해서 논평한 필립 샤프는 그의 명저에서,"그(Theodosiius I)는 제국과 가토릭 종교의 최상권을 결합시키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Philip Schaff, Ibid., vol.3, pp63,64.
라고 하였다. 그 후 AD.533년 경에, 로마의 수도원장 디오니시우스(Dionysius Exiguus, Abbot of Rome, ca, AD.497-550?)가 법왕의 요청으로작성한 그리스도의 부활절 만년표에다가 그리스도의 탄신일을 12월 25일로산정해서 확산 보급시킨것이 복음과 함께 전 세게에 전래 되었던 것이다.
이제 이 모든 역사적 사실을 인정했던 천주교 신학자 바이제르(Francia X.
Weiser, AD1901-?)는 이렇게 달랜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이시며 참된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바로 이 날에 그분의 탄신일로 경축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 도 있겠는가? 법왕이 12월 25일을 택하게 된것은, 물질적인 태양 숭배에서부터돌이켜서 그리스도이신 주를 숭앙하도록 감화시킬 목적으로 그렇게 한것같이 보인다. ... 때때로 이것이 '나티비티'(Nativity - 성탄)라 불리우고있는데, 그것은 다만, '기독교화된 이교의 축제일'(Christianzed paganfestival)이라는 뜻일 뿐이다."F.X.Weiser, Hand book of Christian Feasts and Customs(Newyork:Harcourt, Brace and World, Lnc., 1958), p.61.
라고 변명한다.
이 크리스마스야 말로, 부활절(Easter)과 함께 인류 문화사에서 인간의태양 숭배를 통해 경배를 받아왔던 사단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을 기만하는 미혹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계에 뿐만 아니라전 문명 세계에서 어처구니 없는 안타까운 역사적 기정 사실이 되고 말았다.
(자료출처-벧엘컴퓨터선교회)



산타클로스의 유래

산타클로스라는 말은 AD 3C 경 소아시아 지방 미라의 대 주교였던 세인트(성)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라틴어로 상투스 니콜라우스입니다. 그가 살았을 때 자선심이 지극히 많았던 사람으로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으며 사후에는 아이들과 항해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12월6일을 그의 축일로 지켰습니다.

성 니콜라스의 전설은 노르만족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12세기 초부터 프랑스의 수녀들에 의해 니콜라스 축일 하루전날인 12월5일 가난한 이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겨났습니다. 성 니콜라우스의 이 같은 미담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 니콜라우스라고 불렀는데 특히 AD 17세기경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산테 클라스라고 불러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이 발음이 그대로 영어화했고 AD 19세기 크리스마스가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오늘날의 산타클로스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로,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효시였으며,

본래 날렵하고 키가 큰 모습에서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은 토마스 나스트라는 19세기의 만화가가 20년동안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면서 완성한 것이고,

현재처럼 빨간 옷을 입게 된 것은 1930년대의 일로,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 선전에 등장하고 난 뒤부터였다고 합니다.



캐롤송의 정의 및 유래

정의 및 유래

캐롤은 본래 불란서 말 carole에서 온 말로 주로 중세불란서에서 둥근 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던 원무(圓舞)를 일컫던 말이었다. 이 원무는 동지때 가졌던 축제에서 사용한 이교도들의 무곡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캐롤은 춤출 때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어서 캐롤이 모두 크리스마스와 반드시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그 음악이 캐롤인지 아닌지는 곡의 가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음악적 형식으로 판단하였다. 일반적으로 캐롤은 즐거운 노래로 된 것이 특징이고 대중에게 많이불려지도록 되어 있다. 캐롤은 본래 교회의 절기 때 마다 부르는 모든 노래를 일컬었지만, 특별히 크리스마스 노래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캐롤을 크리스마스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캐롤이 크리스마스를주제로 하여 씌어 졌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유쾌하瀛琯藥눗?유행되는 현대적이며 종교적인 노래"-이 말은 「옥스퍼드 사전」에 기록된 캐롤에 대한 정의다.
찬송가가 경건하고 엄숙하며 신학적인 요소를 지닌 반면캐롤은 유쾌하고 대중적인 성격을 지닌 성가이다. 서기 129년 크리스마스 때 로마 총독 텔레스 포러스가교회에 모인 신도들에게 <존귀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세>라는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에 부른캐롤의 시초로 추측되고 있다. 이때를 계기로 5세기까지크리스마스 때에는 의례 캐롤이 불려졌다고 한다. 초기에 불려지던 캐롤은 대개가 구전된 것이 많아서 가사나 곡이 일정하지 않지만 14세기 무렵부터 악보로옮겨져 오늘날에 전해지고 있다

캐롤의 발달사


5세기 이전에는 교회내에서 성가 이외의 노래를 부르거나 춤과 연극을 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실제로 캐롤이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시기는 15세기 경으로 보고 있다.
이때에 교인들은 설교풍의 지루한 찬송가 대신 부드럽고밝은 분위기의 캐롤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민요에 신앙적인가사를 붙인 캐롤이 유행했다. 민요풍의 전통적인 캐롤을 유지하는한편 창작 캐롤의 보급에 공헌한 사람으로 영국의 '리차드 힐'이 있는데, 그는 1536년까지 각종 캐롤을 자신의 일기장에 기록하여 후세에 남겼고, 그 일기장은 현재옥스포드 대학교 발리올 칼리지 도서관에 귀중한 자료로보관되고 있다.
16세기는 영국 캐롤의 전성기로 '조지 위더'와'라벌 헨릭'이 크리스마스 캐롤을 많이 쓴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한 것 이상으로 찬송가를 널리 알린 업적은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도 많이 불려지는 캐롤 가운데 <그 어리신 예수(Away In A Manger)>와<내 주는 강한 성이요(A Mighty Fortress Is Our God)>는 루터가 작시한 대표작이다.
바로크 시대 이전부터 불리워져 구전되어 온 것으로 알려진 가장오래된 캐롤로 <저 들밖에 한밤중에(First Noel)>가 유명하며,17세기 말엽 오스트리아 성가대 지휘자 '프란츠 그루버'가 작곡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 Holy Night)>이 캐롤의 고전으로 불려지고 있다.
19세기 들어 본격적인 캐롤집이 편찬되었는데, 1822년 영국에선 처음으로 '데이비스 길버트'에 의해 캐롤집이 발행된 것을 필두로 1833년엔 '윌리엄 신디'가 신·구 캐롤을 모아서 캐롤집을 발간했다.
1871년 '존 스테이너' 박사가 70여편의 곡들을 정리해 내놓은 것이 현재 불리어지고 있는 크리스마스 캐롤의 대부분이다.
그 후 수많은 팝가수와 악단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빙 크로스비 외에 스탠더드 팝가수들,즉 페리 코모, 팻 분, 호세 펠리치아노, 존 덴버, 보니 엠,웸,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부른 노래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언제 애청되고 있다.

Christmas와 캐롤 (Carol)

크리스마스의 전통과 관습 중에서 가장 즐겁고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캐롤를 부르는 것일 것이다. 캐롤은 본래 불란서 말 carole에서 온 말로 주로 중세 불란서에서 둥근 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던 원무(圓舞)를 일컫던 말이었다. 이 원무는 동지때 가졌던 축제에서 사용한 이교도들의 무곡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캐롤은 춤출 때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어서 캐롤이 모두 크리스마스와 반드시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그 음악 이 캐롤인지 아닌지는 곡의 가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음악적 형식으로 판단하였다.
그 곡에 버든(Burden)이라고 불리우는 후렴이 각 절의 가사 끝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 했는데 이것을 형식으로 보면 B, V1, B, V2, ... B의 형식이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개롤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캐롤은 우리가 현재 아는 바 대로 크리스마스 노래만을 한정해서 일컫는 말은 아니다. 그 시대의 캐롤은 다양하게 씌여져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캐롤이 동정녀 마리아, 아기 예수, 등을 주제로 한 연유로 크리스마스 노래인것 같으나 실상은 부활절 캐롤도 있고, 고난절, 승천일, 성령강림 주일,... 등등 1년 교회력의 모든 절기에 맞는 캐롤이 있다.
옥스포드 대학 에서 출판한 {The Oxford Book of Carols} 에 보면 모든 절기에 맞는 캐롤 200여곡이 실려 있다. 대부분의 캐롤이 라틴어와 영어 두 언어를 섞어 쓰고 있는 것이 캐롤의 또 다른 특색이다. "저들 밖에 ... 노엘, 노엘," "천사 찬송하기를... 글로리아(영광)," 등은 좋은 예이다. 15 세기에 있어서 캐롤은 대중적인 종교 가곡이었고, 불란서의 론도(rondeau), 비렐레이 (virelai), 발라드 (ballade)와 견줄 수 있는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고정된 음악 형식이었다.
캐롤음악의 중요성은 그 음악의 화성에 있지 않고 선율과 리듬에 있다. 일반적으로 캐롤은 즐거운 노래로 된 것이 특징이고 대중에게 많이 불려지도록 되어 있다. 캐롤은 본래 교회의 절기 때 마다 부르는 모든 노래를 일컬었지만, 특별히 크리스마스 노래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독일에서는 바이나흐트 리트(Weihnacht lied) 라고 하는데, 이는 영어로 Christmas eve song이란 뜻이고, 불란서에서는 노엘(No l)이라고 한다. 노엘이란 말은 영국으로 건너와서 노웰(Nowell)라 불려 졌다.


캐롤의 내용


성 프랜시스(St. Francis: 1181-1226)가 처음 시작 했다고 하는 마굿간 앞에서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행사를 가졌다. 여기에서 부른 노래와 춤이 캐롤이고 원무였다. 고대 캐롤이 수록된 한 雜記帳이 1850년 발견 되었는데 그 잡기장은 Richard Hill이란 영국의 한 식료품 가게 주인이 1500년부터 1536년 사이 자기가 기억해야 할 모든 것을 기록해 둔 것이었다.
무게 환산표, 장날, 약처방, 음식 조리법, 자기 아이들의 생일, 맥주 만드는 법 등과 수수께끼, 글 맞추기, 영어, 불어, 래틴어 詩 등을 기록해 놓고, 여기에 그 시대의 많은 캐롤을 수록해 두었다. 그외에도 조잡하게 인쇄된 낱장으로 된 캐롤이 남아 있는 것이 있고, 구전되어 내려오는 캐롤, 민속음악 수집가들에 의하여 수록 편집된 캐롤 등에서 옛 캐롤을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리스도의 탄생이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특별히 불란서 캐롤은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요소가 많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태리의 나폴리 같은 지방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언덕 위 목장에서 목동들이 내려와 마굿간이 설치되어 있는 앞에서 춤을 추며 캐롤을 부르는 풍 습이 있었다고 한다. Handel이 작곡한 [메시야]중에 전원 교향곡이 나오는 데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와 함께 빼 놓을 수 없는 들의 목자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 시대 목자들이 백파이프 (bagpipe)로 연주하는 음악을 그대로 전원 교향곡으로 만든 것이어서 밑의 저음은 같은 음이 계속되는 통주음(通奏音)에 다 그 위에 고음이 화려하고 맑고 조용히 움직이는 선율로 되어 있어 조용하고 평화로운 베들레헴의 들과 잠자는 양떼들, 차거운 밤하늘과 별빛을 잘 묘사했다고 보여진다. 이 음악이 끝나면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주께 영광" (Glory to God)을 노래 하는 순서가 이어 진다. 캐롤 중에는 천사들의 노래가 많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역사상의 첫 캐롤을, 천사들이 하늘에서 불렀기 때문이다. 천사들의 찬양이 주제로 된 것 중 우리가 쉽게 아는 것은 "천사 찬송 하기를..." "하늘 위의 천사들... 영광..." 등등이 있고, "Ding, dong, Meririly on High.... Gloria in excelsis Deo" 등을 들 수 있다.
목자들이 들에서 양을 치는데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 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고 찬양한 것을 그들이 처음으로 들었으나 그 음악, 그 멜로디와 리듬과 화음이 어떠 했는지는 애석하게도 우리가 알 길이 없다.
그 때 천사들의 합창이 어떤 것이었는지 실로 궁금하기 그지없다. 많은 작곡가들이 그 천사들의 찬송을 캐롤로 작곡해 놓았는데 과연 어느만치 그때의 천사 노래에 흡사한지는 모르겠다. 그 외의 많은 캐롤이 성경말씀 이외의 내용으로 된 것이 많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재미있고 진귀한 아이디어를 내용으로 한 것이 대단히 많은데 이런 것들은 본래 캐롤이 춤을 추기 위한 노래이고, 즐겁고 흥겹 고 경쾌한 기분을 노래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 예배에서 부를 수는 없는 곡들이다.
"Jingle Bells", "싼타클로스가 마을에 오네"(Santa Claus is Coming to Twon), "빨간코 루돌프"(Rudolf the Red-nosed Reindeer), "White Christmas", "I Wish You a Merry Christmas,"... 등등은 예배에서 부를 수 없는 즐거운 캐롤이다. 특별히 "The Holly and the Ivy"는 기독교적인 내용과 이교도적인 내용이 혼합되어 캐롤이 된 좋은 예이다.

캐롤링 (Carolling)

19세기 상반기 영국에서는 집집을 방문 하면서 캐롤을 불러주는 관습이 있었다. 부락의 모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쓸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11월말 부터 시작하여 각집을 돌아 다니면서 캐롤을 부르곤 했던 것이다. 미국 작가Washington Irving(1783-1859)이 1820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크리스마스날 밤 창문 밑에서 들려오는 합창단의 아름다운 캐롤 소리에 잠이 깨었다고 한다. 그 합창단은 십여 명의 옆 동네 사람들로 구성되어 집집마다 돌아 다니면서 창문 밑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화음이 서투르긴 해도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캐롤링은 그리스도 탄생의 기쁜소식을 천사들이 찬양으로 전했던 것 처럼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집집마다 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졌다. 한국에서도 6.25후 얼마 동안 까지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 캐롤링의 전통을 유지 했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밤이 너무 무질서하고 퇴폐적인데다가 새벽의 노랫소리가 옆집의 비기독교인 가정에 안면 방해가되어 기쁜 소식이 아니라 불쾌한 원성이 높다고하여 교회가 자진하여 캐롤링을 삼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크리스마스 캐롤 이외의 캐롤


캐롤은 크리스마스 캐롤만 있는것이 아니라고 이미 말 했다. {The Oxford Book of Carols}를 보면 1년 열두달 교회력에 따라 200여개의 무수히 많은 캐롤이 수록된 것을 볼 수 있다. 캐롤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야외에서도, 무도회에서도, 음악회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광범위하게 불려질 수 있는 음악이다.
우리가 캐롤을 크리스마스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캐롤이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하여 씌어 졌기 때문이다. 마치 요즘 대학생들이 기타에 맞추어 가스펠 송 (실제로는 포크송(folk song)이라고 해야 옳다)을 즐겨 부르듯이 캐롤을 계절과 교회력에 맞추어 교회의 모임과, 그룹 활동, 여전도회, 청년회 등의 모임과 예배에 두루 사용 한다고 하면 즐거운 기분을 북돋우어줄 뿐만 아니라 은혜와 감명도 받을 수 있어 장려할만 하다고 본다.
큰 교회에서는 대곡을 가지고 매주일 연주를 할 수 있지만 작은 교회 성가대는 대 합창곡을 하려고 힘겹게 애쓸 것이 아니라 캐롤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교회의 절기에 맞추어 부를 수 있는 캐롤이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애로가 많지만, 노래를 번역할 수 있는 교회음악가는 이와 같은 음악을 많이 번역하여 작은 교회를 위하여 봉사해 줄 필요가 있다.
큰 교회에서도 가끔 대합창곡 대신 캐롤을 연주한다든가 또는 예배 후 찬양대가 캐롤을 합창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후렴이나 또는 3,4,절을 함께 부르도록 하면 좋을 것 이다. 신앙 생활에서 즐거움을 증가시켜 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부활절, 추수 감사절 등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는 중요한 이유는 이 절기의 찬송가와 찬양대의 음악이 모두 즐겁고 흥겹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캐롤 복원 운동


17세기에 영국과 Scotland의 청교도들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종교적인 축제를 지키는 것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캐롤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를 금지 시켰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세력이 약해 지면서 1660년부터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축제 복원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Scotland의 장로교회에서는 계속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았고 그 대신 정월 초하루를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즐겁고 흥겨운 명절로 지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교회에서 신년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Scotland 교회의 영향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청교도들의 극심한 캐롤에 대한 핍박으로 캐롤의 본래의 의미가 희석 되기에 이르렀다가 1831년 J.W.Parker에 의해 [크리스마스 캐롤집] (Christmas Carols)이 출판되었고, 그 음악적인 수준이 미흡했음에도 불구하고 1857년에 재판되었다. 이곳에 수록된 캐롤이 훌륭한 캐롤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이때 영국 감리교회의 Charles Wesley를 중심으로 캐롤 부흥운동이 시작되어 많은 캐롤이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어 졌다.
예를 들면 "천사 찬송하기를..." 또는 "첫번 노엘" 등 찬송 스타일의 캐롤이 등장한 것이다. 미국 대륙에 건너간 청교도들도 처음에는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았고, 따라서 캐롤도 가지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캐롤을 부르는 것은 지극히 근대의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목사 J.H. Hopkins 가 "동방박사 세 사람..."을 쓰게 된 것이 1857년 경이고, Boston의 Trinity 교회의 목사였던 Philip Brooks가 "오, 베들레헴 작은 골..."을 쓴 것이 1868년의 일로 이때 부터 신대륙에도 옛 캐롤의 전통이 복원되어 전파되어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캐롤을 통해서 교회음악의 토착화 운동을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의 세속적인 축일로 결정한 것은 일종의 기독교 토착화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도 크리스마스 때 서양에서 온 행사만 답습할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토속적인 축제 행사가 크리스마스와 융합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월 대보름의 행사가 크리스마스 행사와 융합하여 기독교적인 신학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 부터 차츰 받아 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의 감사절 행사도 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미국의 감사절(Thanksgiving holiday)에 따라 11월에 지킬 것이 아니라 우리의 추석을 기독교의 감사절로 하고, 추석의 민속적인 놀이를 기독교화 하면 좀더 쉽게 토착화될 것이다. 이미 시내의 경동 교회에서는 추석날을 감사절로 정하고 몇년 전에는 마당놀이를 갖는 것을 보았다. 퍽 앞서가는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음악의 토착화운동도 캐롤음악으로 시작하면 구태여 예배에서 부르지 않아도 되는 음악이기 때문에 토착화 과정도 순조로울 것이다. 아무래도,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찬송가만을 교회에서 부르다가, 타령이나 판소리 같은 찬송을 부르게 되면 교인들로 부터 심한 반발을 받을 것은 확실하다. 역사의 변화과정을 이해하고 점차적이면서 은연 중에 한국 교회음악을 이끌어 가야할 것이다.




성탄절을 이렇게 만나십시오



한해의 마지막달 12월에 만나는 성탄절.
그렇게 많이 춥지 않은 날씨에 하얀눈을 만날 수도 있는 축복의 세절에 다가오는 성탄절. 생각만 해도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설레이고 기쁘다.
그러나 마냥 즐거운 기분만으로는 지내 버릴 수 얼는 성탄절이기에 가정과 교회에서는 올해의 성탄절 이벤트를 계획하느라 분주하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선물에 대하여 영접하고 감사하고 축하하는 거룩한 축제이다.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으로 만나뵙고 경건한 마음으로 경배드리는 예배의 날이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참 의미의 성탄절을 만날 수 있도륵 이제 몇가지를 제인하고자 한다.
● 성탄절은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날이야.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라고 말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 예수께서 탄생하신 사실이야기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읽어 주십시오. 잠자기 전에 자녀의 옆에 앉아 성경을 펴고 눅2:1-20, 마2:1-12을 편안하게 읽어 주십시오.
●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된 성경이야기책을 펴고 성탄절에 관계된 내용을 읽어 주십시오.
● 성탄에 대한 성경구절을 어린이들이 암송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 성탄절을 기다리는 동안 아침마다 성탄절 찬송으로 자녀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 때때로 성탄절 노래를 흥얼거리고 어린이들도 함께 부르도록 인도하십시오.
● 성탄절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어떻게 성탄절을 기다릴까에 대해 자녀들과 의논 하십시오.
● 성탄절에 관계된 그림이나 장식들을 현관이나 공부방에 달아 주십시오.
● 기독교용품을 파는 곳에 자녀들을 데려가 성탄절에 대한 물건이나 카드, 장식물들을 마음껏 구경하게 하고 원하는 것 한 두가지는 집으로 들고 오게 하십시오.
● 성탄절에 대한 퍼즐그림등을 맞추게 하십시오.
● 하루를 정해 가족이 둘러 앉아 서로에게 전할 성탄카드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성탄목 장식물도 만드십시오.
● 성탄절은 선물을 받는것 보다 주는 것이 더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고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게 하십시오.
● 자녀들과 기도할 때마다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는 감사기도를 계속하십시오.
●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온 날 저녁 가정예배를 드리십시오. 국민학교 2학년 이상이 되는 자녀가 있으면 가정예배 주보를 직접 만들게 하십시오.
● 기쁨-평화-사랑의 마음으로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 주십시오.
● 이번 성탄절에 꼭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친구를 정하고 집으로 초대하게 하십시오.
●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성탄절을 맞는 시간도 마련하십시오. 대강절 달력을 벽에 붙여 놓고 하루 하루 학습하며 스티커를 붙이면서 성탄절을 기다리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 성탄절 축하잔치를 이웃의 가정과 함께 여십시오.
● 성탄절에 이웃에 대한 사랑을 나누는 모임에 어린이들을 함께 참여시키십시오(무의탁노인, 고아원, 병원, 환경미화원, 소년소녀가장 위로모임)
● 거리에 나갈때 육교 위에 앉아 있는 걸인에게 구제하며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인사말을 전하게 하십시오.
● 어린이들 가슴에 성탄절에 관계된 장식들을 달고 지내게 하십시오.
● 산타클로스를 실제인물로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고 "산타 클로스는 꾸며진 행복한 우리들의 친구란다"라고 말해 주십시오.
● 성탄절에 케익이나 떡을 준비하고 그 앞에 둘러 앉아 예수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 오션서 참 기뻐요"등의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축하 인사말을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예수님께 하십시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참 의미의 성탄절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몇가지 제안(교회에서 반의 아이들과 함께 할 수있는 좋은 아이디어들도 있답니다.샬롬!)

자료출처 : 기독교교육연구원

기독교교육연구원 편집부
월간「교육교회」95.11월호(장신대 기독교교육연구원 제공)



크리스마스 전통과 관습
장동현

* 크리스마스 전통과 관습

크리스마스와 함께 오래도록 지켜 내려 오는 전통과 관습이 있다. 촛불예배라든가,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빨간 열매가 달린 초록색 담장(Holly)이라든가, 싼타클로스 할아버지, 마굿간 등이 그것이다. 이들 관습의 많은 부분이 비기독교적인 요소가 많다. 이것은 본래 12월 25일이 이교도의 축제일인데 이것을 기독교의 축일로 바꾸었기 때문에 이교도의 전통과 관습이 기독교의 관습에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 크리스마스 장작

고대 Scandinavia에서는 동짓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큰 화로에 불을 붙이는 전통이 있었다. 이것은 동지까지 해가 짧아 지다가 이 날로 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여 "태양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태양이 없는 겨울울 지내는 북극지방의 사람들에게 태양이 다시 살아 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심장한 일이다. 이 전통이 영국에 와서는 큰 장작(크리스마스 장작 또는 Yule log)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벽난로(fire-place)에서 불을 붙여 밤새도록 태워 방도 따뜻하게하고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도 돋구는 풍습으로 전해져 왔다.

- 촛불예배

예수는 "세상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요한복음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참 빛이시며... 그 빛이 어둠에 비치니 어둠이 이기지 못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주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전날밤에 자정 촛불 미사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의 빛"되신 예수가 이 세상 에 빛으로 등장하시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개신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자정 촛불예배를 별로 지키지 않는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이외에 촛불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경우는 고난주간의 세족 목요일 저녁예배이다. 이 경우의 촛불예배는 크리스마스의 경우과는 정 반대이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가 죽으심으로 밝았던 세상이 다시 어두어지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칠언을 한마디씩 읽고 명상하든가 또는 합창단이 노래하고 나면 촛불을 하나식 꺼 나가는 것으로 명상이 계속되 는 동안 촛불은 둘 셋 넷... 꺼져 종국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왕촛대의 불만 남기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예배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개 신교회 중에서 는 새문안 교회가 매년 크리스마스와 세족 목요일에 촛불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크리스마스 촛불예배는 1982년에, 고난음악 촛불예배는 1983년에 필자가 시작한 것이다.

- 상록 담장 넝쿨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를 파란 담장 넝쿨로 장식하고, 또 그렇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받는다. 이와같은 풍습은 북 유럽의 비기독교인들의 전통이 역시 영국에 전해진 것이다. 아리안 인종의 한 분파로 Ireland와 Wales 및 Scotland에 사는 겔트족과 독일족들은 동짓날 축제 때가 되면 상록 담장 넝쿨을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숭배 했었다. 이 식물을 숭배하게 된 이유는 태양이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질때 쓰신 가시 면류관이 담장 넝쿨로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담장 넝쿨은 본래 흰 열매를 맺는 식물이었는데 가시 면류관을 만들어 예수의 머리에 눌러 씌움으로 예수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쳐 나와 빨간 열매로 변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마스 때 담장 넝쿨로 화환을 만들어 교회와 집문에 붙이는 관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면류관의 상징이다.

- 크리스마스 츄리(Christmas tree)

크리스마스 츄리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에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이 독일에서 Martin Luther가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크 리스마스 전날 밤 하늘에 별이 빛나고 그 밑에 상록수가 서 있는 모습이 Luther의 마음속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상록수의 끝이 뾰죽하여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 같이 보여 이와같은 나무를 준비하여 자기집 방에 세우고 거기에 별과 촛불을 매 달아서 장식을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상록수는 이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의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이교도들?"생명의 상징"인 상록수와 기독교인들의 생 명의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나로 통합되어 이루어진 전통이 "크리스마스 나무"라는 것이다.

- 싼타클로스 할아버지

뚱뚱하고 배가 불룩할 뿐 아니라 기분좋게 "호! 호! 호!"하고 웃는 흰 수염이 있는 싼타클로스 할아버지는 4세기에 소아시아 지방의 조교로 있었던 좋은 일을 많이 행한 성 니콜라스(St. Nicholas)를 의미한다고 한다. 선물을 나누어 주는 싼타클로스의 풍습은 성 니콜라스가 평상시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많은 선물을 나누어 준 것을 기념하는 관습이다. 처음엔 소아시아에서 시작된 것이 구라파에 전해졌고, 그것이 화란 사람들에게 까지 전해졌는데 이들 중 많은 수가 미국으로 이민해 감으로써 미국에까지 전파되었다고 한다. 싼타클로스가 선물을 배달하면서 "호! 호! 호!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즐겁게 외치는데, 이것은 미국작가 Washington Irving이 싼타클로스를 항상 웃는 즐거운 인물로 묘사한 {Visit from St. Nicholas}를 1822년 Clement Moore가 작곡 함으로("T'was the Night before Christmas") 시작 되었다. 싼타클로스가 흰 털이 달린 빨간옷과 검은 벧트를 두르고 긴 고깔모자를 쓴 모습은 미국 만화가 Thomas Nast가 1863년에 그린 만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로마에서 쌔터날리아로 지키는 12월 17일 부터 24일 까지는 흥겹게 지내는 계절이었다. 이때는 집안을 상록수나 상록 담장넝쿨, 그리고 촛불로 장식을 하고 선물을 어린이들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종들에게 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와 같은 풍습이 크리스마스에 까지 영향을 미쳐 오늘날도 선물을 교환하고 있다. 또한 동방박사가 아기예수를 찾아와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드린 것을 본받아 기독교인들 간에는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풍습이 생겼을 것이다.

- 마굿간의 설치

크리스마스 때 한국의 개신교회 중에서 마굿간을 만들어 전시하는 교회는 별로 없다. 그러나 명동 성당에 가면 마굿간이 해마다 설치됨을 본다. 거기에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옆에는 요셉이 서 있고, 양과 짐승들도 있고, 동방박사 세 사람이 엄숙하게 경배를 드리고 있다. 교인들은 그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간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철이 되면 여기저기서 마굿간을 구경할 수 있다. 이와같은 마굿간은 13세기 아씨씨의 성 프랜시스(St. Francis of Assisi)가 처음 시작하였다고 한다. 성 프랜시스는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경축하기 위하여 그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도 권장하였다. 여기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시작 되었다.

- 기 타

이 외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볼수 없는 것으로 "Lord of Misrule"이란 것이 중세 크리스마스 때 행해 졌었는데 이것은 평민 또는 대 군주의 노예 중에 서 한 사람을 뽑아 그가 군왕이 되어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 동안 절대 권력을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게 하는 전통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의 대혼란 을 일으키곤 했는데 이 전통도 쌔터넬리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쌔터넬리아 축제기간에는 모든 노예에게 그들의 주인과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였었다.




산타 할아버지



'Santa 할아버지'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상이 되는 것들이 많겠지만,

인자한 표정과 여유로와 보이기까지 한 풍만한 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꿈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전해주는 Santa 할아버지는 어디서 나타나신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Santa는 아마 북부 추운 나라 어디에서

탄생했을 거라 믿는다.

실존 인물이던 상상속의 인물이던 말이다

그러나,

Santa는 과거 시이저로 하여금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했던 Turkey의 중앙, A natolia지방의 남쪽 Myra라는 곳,

그러니까 추운 곳이 아니라 오히려 사막지형에 가까운 기원전 4세기에

일생을 보낸 실존 인물 St.Nicholas가 모델이 된 것이다.

어린이들을 특히 좋아했다는 그는 갖가지 선행을 행했다는데 그 중에서도

세명의 자매가 구혼자가 있음에도 가난해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자 이들을 몰래

도와 주기 위해 저녁에 그 집 지붕에 올라가 금 주머니를 굴弩막?떨어뜨렸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그 금주머니가 우연찮게 벽난로에 걸어둔 양말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후 이를 전해들은 사람들이 기대치 않은 선물을 받았을 경우에는

항상 이 성인 St.Nicholas에게 감사하는 풍습이 생겨나게 되었단다

훗날 네덜란드인에 의해 미국의 뉴욕으로 건너가 이 이야기가 자본화,

상품화의 연금술사 미국인들에 의해 지금 모습의 Santa로 재탄생해 전세계로

역수출되었다고 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다고 여겨져 매년 전세계 어린이들이 편지를 보내는

Santa 본부는 원래 이 지역에서 구전되던 말을 타고 선물을 나눠줬다는

바이킹의 신 Odin과 염소를 타고 비슷한 일을 했다는 그의 아들 Thor의 전설이

미국식 Santa와 결합하여 그리 되었다 한다.

그러니깐, 터키에 살았던 St.Nichlolas와 염소를 타고 다녔다는 바이킹의 신이

미국에서 만나 스킨디나비아 반도에서 지금도 살고 있는것이

Santa 할아버지라는 것이다.

염소라..

어찌 보면 슬프기까지 한그 전설의 우여곡절이지만 그 모든 것이 섞이고 무쳐

오늘날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핵심은 바로

St.Nicholas의 인류애와 박애정신..

Santa가 어른들 마음에도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야기] 각국의 성탄 인사 모음

번호: 84 글쓴이: agaser
조회: 35 날짜: 2004/12/04 12:20







즐거운 성탄절을
영어로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브라질 말로는 펠리쓰 나딸(Feliz Natal)
헝가리어로는 볼록 카락소니(Boldog Karacsony)
이탈리아어로는 부옹 바딸리(Buon Batale)
스페인어로는 펠리쓰 나비닷(Feliz Navidad)
독일어로는 프뢸리히 베인아크텐(Frohliche Weinachten)
스웨덴어로는 글래드 율(Glad Yul)

프랑스어로는 조이유 노엘(Joyeux Noel)
희랍어로는 칼라 크리스토게나(Kala Christougena)
중국어로는 솅탄 쿠와일러(Sheng Tan Kuailoh)
일본어로는 메리 구리수마수
러시아어로는 스로체스토봄 크리스토빔(Srozhestvom Khristovym)
필리핀 따갈어로는 말리가양 빠스코(Maligayang Pasko)
멕시코어로는 펠리츠 나비대드 (Feliz Navidad)
베트남어로는 니언지엡 노엘 쭉 지앙신 부이베에(nhan dip noel chuc giang sinh vui ve)
태국어로는 쑥싸-ㄴ완크릿쓰마아쓰(ssuk ssan oan Christmas)
체코어로는 베셀레 바노체(Vesele Vanoce!)
미얀마어로는 뾰쉰 차미엣바세(Pyawshwen chanmyeitbazay)
우르두어로는 버리딘 무바랙 (호)" (Bari Din Mubaraik Ho)

표현하는 단어는 달라도 뜻은 하나임이 분명하다.
기쁜 성탄! 주 예수 나셨네!




크리스마스 용어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은
"크리스마스"란 말을 원래는 Christes Masse - 그리스도 미사(예배)라고 불러 오다가 중세 영국에 와서 두 말이 하나로 합쳐서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기록된 언어인 헬라어에 보면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단어인
(주 : 벧전1:1 이영제목사 주석)
헬라어 명사는 주격으로 쓰면 (시그마)가 붙여져 '크리스마'를 주격으로 사용하면 (크리스마스)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 '크리스마' 는 예수의 공적직함으로 구약에서는 제사장, 선지자, 왕에게 기름부음으로 그 직능을 수행한 것인데, 신약에서는 오직 예수께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아울러 예수께서는 이 세 가지의 직능의 완성자가 되신 것이다.

필자(이영제 목사)는 첫번째의 의미보다는 나중에 설명한 것이 더 신약성경적으로 근거가 분명하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설명되어오던 Christes Masse '그리스도 예배' 라는 말의 의미 변화를 설명하는데 더 신뢰할만한 것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어떤 단어이건 분명한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기념한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X-MAS
크리스마스가 가까와 오면 곳곳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써 놓은 것을 보기도 하지만 간단하게 X-MAS라고 쓴 것도 볼 수 있다.
이 표기를 영어의 X로 생각하여 어떤분은 X-MAS는 잘못된 표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표기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X-MAS을 알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에서 X 자는 영어 알파벳의 X자가 아니다.
헬라어의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자인 '크스'자로서 이 뒤에다 MAS자를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표기는 X-MAS로 할 수 있지만 읽을 때에는 반드시 '크리스마스'라고 해야 한다. 만일 이것을 표기한 대로 X-MAS라고 읽는다면 완전히 본 뜻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난 날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들은 표기대로의 X-MAS를 지켜왔던 것은 사실이다. 수학에서는 미지수의 표기를 X.Y.Z로 표시한다. 그것은 '모른다'는 뜻으로 성탄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지 하나의 축제로 지낸 우리들의 크리스마스는 곧 X-MAS였다.

이제 진정한 크리스마스로서 지켜나가야 한다. - 이영제목사 -





크리스마스의 참뜻

몇 년전 "가이드포스트"지에 실린 글입니다. 윌리라는 소년이 크리스마스 연극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능이 조금 떨어져 4학년에 다녀야 할 나이에 2학년에 다니는 아이입니다. 키가 크고 마땅한 배역이 없어 여관집 주인역을 맡았습니다.
문 앞에 턱 버티고 섰다가 마리아와 요셉이 오면 "방 없어요"하고 들어가 버리는 역입니다. 한 달이나 연습한 끝에 성탄절이 되어 공연을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왔습니다. "주인님, 방 하나만 빌려주세요.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아무데서도 안 받아 줍니다. 부탁합니다." 윌리는 퉁명스럽게 "빈 방 없어요, 딴 데나 가 봐요!"하고 맡은 역을 잘 소화해 냈습니다.
연극을 지도했던 선생님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안으로 퇴장해야 할 윌리가 처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요셉과 마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각본에도 없는 대사를 갑자기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요셉님, 마리아님, 가지 마세요. 사실은 우리 안방이 비어 있어요. 그 방을 쓰시란 말이에요!"
순간, 관객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그처럼 뜻깊은 성탄연극은 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안방을 그리스도께 내어 드립시다. 내 가장 소중한 마음의 방을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말구유에 오심은 무능해서가 아니고 천해서가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온유하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능력입니다. 생명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오늘 이 성탄일에 주님을 마음 가득히 영접하시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탄생하신다는 기쁜 소식이 제사장이나 혹은 권력 있는 유대총독에게 먼저 전하여지지 않고 구태여 목자에게 전해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예수님의 탄생소식이 전달될 때에 목자들은 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양 틈에서 양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목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양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진실로 우리의 참 목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죄를 짓고 불의하여 저주를 받아 마귀에게 찢기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무 죄도 없고 흠도 없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강림이 목자들에게 전해진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때로부터 영원토록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10:2-4) 여기서 보면 예수님이 통째로 양무리를 불러 인도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억하시고 부르시며 그 처지에 따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목자가 양을 치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2)라고 하였습니다. 목자가 양과 함께 있거나 인도하며 다녀도 소용없습니다. 반드시 양을 치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탄의 소식이 목자에게 먼저 전해진 이유가 있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예수 성탄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선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다는 것과, 둘째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불러 그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 즉 사람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리라는 것이고, 셋째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는 천사들의 캐럴 내용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가져온 역사의 선물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으로 바꾸어진 역사 속에서 그의 선물을 받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탄은 인간의 역사를 옛 것과 새 것으로 구별하는 분수령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변화된 역사 속에서 옛사람은 벗어버리고 성탄의 역사적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여 죄와 구별된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탄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의 탄생을 해마다 반복되는 축제로만 여긴다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들을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시켜 주실 구세주로 이 땅에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되신 하나님은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몸소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과 평안을 허락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 대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세월동안 우리들의 생활을 돌이켜 봅시다. 우리는 외식함이 없이 그리스도를 대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우리의 욕심과 생각에 이끌려 마음대로 살아보겠다는 잘못된 신앙을 가졌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고 바른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정한 크리스마스를 찾아야 합니다. 카드나 선물교환을 하고 불우이웃을 돕고, 밤을 지새우며 노래하고 좋은 음식으로 즐기던 것을 그치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크리스마스의 본질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아 우리 신앙을 반성하고 주님을 향한 마음자세를 어떻게 가질 것인지 삶의 태도를 결단해 봅시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니라"(눅2:7)

한 태 완 목사 지음, 요나출판사, "기쁨의 샘" 중에서





세계의 크리스마스 풍습

번호: 1049 글쓴이: 하이짱*^^*
조회: 111 스크랩: 1 날짜: 2004/12/06 06:55

1. 영국
영국에서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봉건제도 시대에 장원 영주의 저택에서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렸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풍습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영국 사람들은 대강절 기간부터 교회나 가정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른다.그리고 이를 축하하고 성탄의 기쁨을 나누려는 뜻에서 카드를 보낸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여왕의 성탄절 메시지가 크리스마스 아침에 영국 전역에 방송된다. 영국 트리팔가 광장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밤에 통나무를 통째로 들여다가 벽난로 옆에 갖고 놓고 옛날의 풍습대로 온 가족이 통나무 위에 앉아 본다. 그리고 나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새해에는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통나무를 벽난로 속에 넣기 전에 인사한다.
어린이들은 벽난로 또는 화덕 옆에 긴 양말을 걸어 놓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득 채워 주시기를 바란다. 또한 우편배달부, 우유배달소년, 신문배달 소년, 청소년들에게 장갑, 털구두 따위의 선물을 안겨 주면서 한 해 동안의 수고에 감사한다.
성탄절 아침에는 치즈를 발라서 요리한 공작새 고기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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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일
독일의 성탄절은 크리스마스 장난감으로 유명하다. 독일에서는 12월 6일 전날 밤부터 크리스마스 축제가 시작되는데, 교회는 대강절 예배를 드리고 사람들이 마음에는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기쁨이 가득찬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풍습으로 첫째는 선물을 주는 일이다. 아기 예수의 오심이 우리에게 기쁨이듯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의 물건을 만들어 선사한다. 한 예로 비누로 만든 장미, 종이로 만든 꽃(인형)등이 있다.
가정에서는 대강절 화환과 대강절 촛불을 켜둔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어머니가 장식한다. 12월이 되면 어머니는 혼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운다. 또한 크리스마스 식탁도 마련하는 것이다.
성탄절 전날 밤에 가족들은 어머니의 초대로 식탁이 마련된 방으로 초대된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아름다움에 환성을 지르기도 한다.
교회에서는 성탄절 전의 한 주간을 개방한다. 누구든지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갈 수 있도록 한다. 예배실 및 부속된 여러 방들과 기도실을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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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프랑스
비록 법적인 공휴일은 아니지만 12월 6일의 성 니콜라스의 날은 동부 프랑스에서 아주 널리 지켜지고 있다.프랑스에서 이 날은 아이들에게 선물과 캔디를 주는 행사로 간주되어 점차 성탄절을 대신하게 되었다.
종교적 행사와 가족 식사는 성탄절을 기념하여 축하한다. 성탄절 앞서 여러 주간 동안 파리의 큰 백화점의 상설 전시대에는 실물 크기의 전설적인 상들이 놓여진다.
가정에서의 축하의식은 성탄절 며칠전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함으로써 시작된다. 양초와 반짝이는 여러 가지 색깔의 별들이 장식에 사용된다. 성탄절 전날 밤에 어린이들이 잠들었을 때 작은 장난감과 캔디와 과일들을 가지에 매달아 '크리스마스 아버지'(Pere Noel)가 벽난로 옆 그들의 구두 속에 남기고 간 선물들에 추가시킨다. 구유에는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과 소와 나귀 그리고 목자들을 의미하는 작은 상(모형)들을 놓는다. '작은 성인들'(Santons, 본래는 인형 또는 동물상)이라고 불리우는 작고 채색된 토기상이 어떤 지역에서 사용되는데, 이것은 성경의 인물들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사람들도 나타내주고 있다.(즉 시장,사제,경관,도살업자,빵굽는 사람 등). '작은 성인들'의 세계적 중심지는 아우바그네(Aubagne)의 작은 마을이다. 비록 1224년 앗시스(Assisi)의 성 프랜시스가 구유(Crech3,구유 속의 아기 예수상)을 소개하였지만 16세기에 이르러서야 구유를 만드는 풍습이 널리 퍼졌다.
한밤 중에 세 차례의 미사가 집례된다. 이를 위해서 교회와 대성당은 아름답게 불을 밝히고,캐롤과 종소리와 차임(편종)의 멜로디가 메아리친다.
아침에 어린이들은 모두 흥분한 가운데 일어나서 벽난로와 성탄절 트리에 있는 선물들을 확인한다. 이어서 전 가족은 선물 교환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최초의 구유와 캐롤의 결합을 통해서 대성당의 광장에서 행하여지는 예배식의 드라마가 생기게 되었다.14세기 이후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탄생의 이야기는 "성탄절의 신비"와 인형극의 형태로 전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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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미국
크리스마스는 미국사람들의 마음과 뜻의 형상을 신앙적으로 이끌어 주었다. 미국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선물을 사고, 분주했던 생활 가운데서 시간을 내어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한다.
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열리는 음악회 행사에 참석하고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하는 축제 프로그램을 즐긴다. 한해중 가장 눈에 뜨이게 사랑이 넘치는 계절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여러 장식들을 집 안팎에 꾸민다. 대강절 넷째 주일되면 주부들은 빵,쿠키,푸딩 따위의 음식을 만들고 가족이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서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밤이 깊은 줄 모른다.
교회와 성가대원들은 크리스마스가 가까와 올 즈음에 각 가정을 방문하면서 캐롤을 불러 준다. 이때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한테 어울러 캐롤을 부른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들을 위하여 선물을 포장하여 양말을 채워둔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아무도 모르게 한다. 이튿날 어린이들은 양말에 든 선물을 받고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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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크리스마스는 11월말 대강절의 계절에서부터 시작된다. 교회와 각 가정에서는 대강절 찬송을 부르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린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세계의 성탄절 풍습 가운데서도 더 아름다운 풍습을 갖고 있다. 이 나라의 성탄절 축제는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때 집안의 창문이 있는 곳마다 촛불을 켜 놓는다. 그리고 창을 조금씩 열어둔다. 이것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호텔이나 빌딩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촛불을 켜서 창을 열어두는 것은 상징적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아기 예수를 낳기 위하여 마구간을 찾아 헤매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아침에 메리 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나 여인이 촛불을 끄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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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네덜란드
네덜란드에서는 산타할아버지가 흰말(백마)을 타고 온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실제로 산타할아버지가 흰말을 타고 이집,저집을 방문한다. 따라서 흰말의 먹이와 물을 준비해 두는 의미로 어린이들은 깨끗한 나막신에다 마른 풀,빨간 무우(홍당무)등을 달아서 창문 앞에 놓는다. 물도 한 그릇 떠다가 놓는다. 이렇게 하고서 잔다 성탄절 아침에 아침예배가 끝나면 마을은 온통 축제에 휩싸인다. 괴상하고도 우습기만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춤을 추면서 이집,저집으로 다니며 성탄노래를 불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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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르헨티나
남반부에 위치한 아르헨티나는 우리와 정반대의 기후를 갖는다. 즉 우리가 얼음이 꽁꽁 어는 영하의 추운 겨울을 맞이하면 그곳에서는 땀을 뻘뻘 흘려야 되는 영상 40도시의 무더운 여름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나비다드(Navidad-성탄절)라고 부른다. 성탄 인사는 "휄리스-나비다드(Feliz Navidad)"라고 한다.
이때는 온 가족 및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크고, 작은 휘에스따(fiesta,파티)를 갖는데 음악과 춤이 동반된 흥겨운 축연이 된다. 대표적인 음료로써 시드라(Sidra-사과주)를 마신다. 또는 비노블랑꼬(Vino Blanco-백포도주)나 비노 니그로(Vino Negro-흑포도주)를 차갑게 하여 축배를 드는데 살루드(Salud-안녕)를 빈다. 컵과 컵을 마주치며 '친 친 살루드(Chin-Chin -salud)' 라고 외친다.
축연이 계속되는 중 자정 12시에는 일제히 한 자리에 모여 하늘에 축포를 쏘아올린다. 연발되는 축포(권총 또는 화약을 사용)속에 자신들의 소원을 말한다.
아이들은 불꽃놀이와 함께 빠빠-노엘(Papa-Noel)이 가져오는 선물을 기다리며 나비다드 전날 저녁을 즐겁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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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카나다
카나다는 본래의 원주민들과 이주해 온 사람들로 구성된 나라다. 넓은 땅과도 같이 카나다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즉, 북극의 에스키모, 북 아메리카의 북동부에 있는 마브라도르, 뉴퍼들랜드 섬이 독특한 성탄절 풍습을 갖고 있다.
에스키모 사람들이 지키는 크리스마스 축제는 백인들에 의해서 전해진 것이다. 그런 에스키모에는"싱크덕크"라고 불리우는 한 겨울의 축제가 있었다. 이 축제는 정해진 날에 각 마을 사람들이 긴개의 행렬이 끄는 썰매를 타고 한 곳에 모여 춤과 선물의 파티를 즐긴다.
북아메리카 북동부 위치한 라브라도르 어부들에게는 축제가 없었다. 이곳에는 백인들이 세운 선교교회로 말미암아 생활양식이 변화를 일으켰다.
선교교회에서 시작한 최초의 크리스마스 행사에서는 아이들의 순무위에 세운 작은 촛불을 받는다. 이 촛불을 받는 축제에서, 지금은 수입한 양초를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사슴의 기름으로 만든 초를 썼다.
뉴질랜드 주민들은 성탄절의 고기잡이 축제를 지킨다. 그들은 교회를 의해서 고기를 잡았다. 교회는 그 고기를 팔아 교회의 운영기금으로 사용하였다.
노바 스코티아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성탄절 아침에 찬송을 부른다. 또한 예수 노래와 캐롤도 부른다.
벵쿠버에서는 크리스마스 축제가 오락과 술의 파티로 지켜진다. 특히 선창가에는 외국의 여러 뱃사람들이 몰려드는 까닭에 이들을 위로하는 프로그램들이 해마다 마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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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의 성탄절은 가정에서 시작한다. 그들의 가정이나 정원에는 크리스마스 크레쉬가 꾸며진다. 정원이 있는 집에서는 나무 아래에,그렇지 못한 집에서는 방안의 가운데에 아기 예수가 나신 말구유와 인형 따위로 아기 예수의 모양을 꾸미는 것이다. 그리고 방안 전체에 첫번 크리스마스의 장면을 재현한다.
성탄절이 가까우면 사람들은 이웃 가정을 방문한다. 그들은 각 가정에 꾸며진 크리스마스 크레쉬를 감상하면서 즐거워하고 아기 예수를 찬양한다.
최근에는 산타크로스 풍습이 등장하고 있다. 할아버지나 친척들 가운데서 한 어른이 산타크로스로 분장하여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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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멕시코
멕시코에는 포사다스라고 불리우는 축제가 있다. 포사다스는 12월 16일에 시작되는데 순례자의 축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12월 16일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포사다스의 본래 의미는 쉼,휴식이다. 즉,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그들이 기거할 장소를 찾기 위해서 고생하였던 일들을 기억하는 축제가 행해지는 것이다.
각 가정에서는 스페인 이끼와 상록수 가지로 집을 꾸민다.그리고 집안의 한 곳을 마구간처럼 장식한다. 소나무 가지와 이끼 따위로 작은 단을 만들고 여기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재현시킨다.
이들은 그 둘레에 마태복음 및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빈들의 양떼들과 밤을 지새우는 목자들, 큰 별, 동방박사를 꾸미기도 한다.
그런 다음에 이곳 사람들은 다른 집을 방문해서 "빈 방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을 하고 "다른 곳으로 가보시오"라는 대답을 그 집의 주인이 하는 등 요셉과 마리아의 베들레헴 순례를 재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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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칠레
동정녀를 기념하는 안타콜로의 축제와 말 경기가 칠레의 크리스마스 풍습이다. 칠레에는 안타콜로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는 3피트 높이의 동정녀 상이 세워져 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때가 되면 수천 명의 방문객들이 여기에 와서 동정녀상 앞에서 마리아를 경배한다.
크리스마스 축제 시즌에는 수많은 무용수들이 색색의 옷을 입고 춤을 춘다. 거리에는 인형과 각종의 장신구들이 넘실거린다. 한편, 그들은 경주 말을 타고 뛰어난 인디언의 솜씨로 경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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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필리핀
오랫동안 서구의 지배를 받은 필리핀은 성탄절이 가장 큰 종교적 축제이다. 더운 나라인 까닭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지는 않으나 파스토레스라는 종교극을 공연하고 축하 예배를 드린다.
성탄절 이브가 되면 모든 교회(개신교,구교)는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언제라도 들어와서 기도를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구교에서는 크리스마스 기간 중에 매시간마다 미사를 드린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도 이 기간에는 천주교회에 들어가서 미사를 드려본다.
필리핀의 시골 마을에서는 파스토레스 종교극이 무대에 올려진다. 이 종교극의 배우들은 청년 남녀들이 맡는다. 이들은 마을을 순뢰하면서 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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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디오피아
이디오피아의 크리스마스는 주후 330년경부터 축제로 지켜지고 있다. 이디오피아의 콥트 교회는 1월 7일에 성탄절 행사를 갖는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억하고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다. 이디오피아 사람들은 라리베라'라는 도시를 그들의 예루살렘으로 여기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디오피아의 사람들은 성지인 라리베라로 모여든다. 라리베라는 순레자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들은 성탄절 아침을 기다리고 1월 7일의 해가 떠오르면 근처의 산정에서 콥트교회의 예식에 따라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린다.
순례자들은 성직자들이 축복한 빵과 음료를 먹고 마시면서 기뻐한다. 예배 의식이 끝나면 성탄축하 연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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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집트
기독교의 성립 후 처음 300년 동안에는 성탄절 축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온 교회의 관심이 오직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성육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사상가들이 주님의 인성에 대하여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교회도 성육신의 심오한 의미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별히 동방의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사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교회는 성탄절을 기쁨과 경이로써 축하하기 시작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알려진 성탄절에 대한 기록 중 최초는 4세기 초기의 이집트 파피루스에 남은 기록이다. 이 파피루스에는 수많은 손자국들이 찍혀 있는데, 이것은 이미 그 파피루스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파피루스는 4세기 초의 성탄절이 1월 6일 저녁부터 7일까지 축하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왜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냈을까요? 2세기에 있었던 이단 분파인 알렉산드리아의 영지주의 추종자들은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날(1월 6일 또는 10일)을 축제일로 지켰다. 그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통하여 신성의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한편 정통적인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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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는 성탄절이 하루로 끝나지 않고 3주간의 성탄 시즌을 갖는다. 이곳에서의 성탄절 8일 전은 ‘9일 기도’의 시작으로 곧 성탄 시즌이 시작되어 성탄절 후 12일째 밤까지 계속된다.
이때 아이들은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성탄절 노래를 부르고 동전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 돈을 모아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다. 어른들 또한 악기를 연주하고 캐롤을 부르며 이웃들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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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일본
범신론을 믿고 있는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대단히 화려하게 성탄절을 준비하며, 즐긴다. 일본의 기업가들은 하나의 상품으로 성탄절을 취급한다. 그리고 일본의 많은 사람들은 “흥청거리며 놀 수 있는 날”쯤으로 성탄절을 인식한다. 그러나 이처럼 안타까운 일은 일본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크리스천이 전국민의 0.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일본에서는 성탄절이 공휴일은 아니지만 거리에는 캐롤이 울려 퍼지고, 젊은 사람들은 파티로 시끌벅적하게 보낸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 섣달 그믐이 되면 새해를 준비하는 대청소와 떡찧기를 한다. 대청소 후에는 소나무 가지 장식을 문에다 꽂고 짚으로 만든 것으로 현관을 꾸미며, 둥글게 빚은 떡을 불단이나 신붕(집안에 신령을 모시는 곳)에 올린다. 밤에는 백팔번뇌가 없어지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제야의 종이 108차례 울리고, 무병 장수를 기원하는 연월(음식)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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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스페인
성탄절은 스페인 전역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기념하는 몇 안되는 축제의 하나이다. 무엇보다는 성탄절은 가족들의 축제이다. 12월 24일은 예수 탄생전야인 Nochebuena (노체 부에나: 좋은 밤이라는 뜻)이다. 오후에는 스페인 성탄절의 한 상징인 성탄 인형(Bele’n)을 애들이 세우면서 좋아한다. Belen은 목동들, 양들, 낙타를 탄 동방박사 (los Reyes Magos)등의 형상들의 풍경을 나타내는 하나의 건축물이다. 중요한 요소는 portal이라고 불리는 마굿간과 소, 노새, 구유통에 누여져 있는 예수와 성 요한과 성모 마리아상이다. 사람들은 이런 Belen을 집이나 교회, 학교 심지어 상가 등에 세운다.
Cadiz 지방의 Arcos de la Frontera와 같은 어떤 마을에서는 이런 축제를 위해서 마을의 한 부분이 살아있는 Belen들로 구성을 한다.
저녁식사 후 어린 애들은 소형탬버린 등의 악기를 이용해서 크리스마스 캐롤 (villancicos)를 노래한다. Jerez에서는 집시들이 zambombas라는 악기를 이용한 축제행사를 연다. 이 축제는 밤새 계속되며 거리나 집의 안뜰에서 아랍음악을 연상케 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에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춘다. Navarra지방의 Lesaka나 다른 마을에서는 성탄을 축하하기 위해서 산에서 내려오는 숯장이를 상징하는 누더기 옷의 인형이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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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러시아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 아닌, 그보다 13일 늦은 1월 7일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유래가 있는데, 슬라브 정교의 전신이었던 동방정교회는 옛 동로마제국의 국교로 현 터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발달한 기독교 중 하나다. 1500년대 말까지는 동방정교회와 가톨릭 등 전 기독교계는 로마시절부터 내려오던 율리우스력을 따랐으나 가톨릭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제정에 의해 1582년 동방정교회를 제외한 서구세계가 개정된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게 됐다. 율리우스력은 그레고리력보다 매년 11분이 늦어 현재는 총 13일로 차이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율리우스력을 쓰고 있는 동방정교회권은 크리스마스 등 전통행사들을 서구보다 13일 늦게 맞고 있다.
이곳 크리스마스 축제의 가장 큰 행사는 서구와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해당하는 ‘사첼닉’이다.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옛 소련시절엔 무신론 원칙 때문에 없어지다시피 했으나 91년부터 소연방의 해체이후 가장 큰 축제가 되었다.
러시아에도 산타클로스가 있다. ‘데드 모로자(얼음 할아버지)’라는 러시아 산타클로스가 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닌 12월 31일에 온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러시아 산타클로스는 ‘스네구르카(눈의 아가씨)’라 불리는 여자 파트너와 함께 다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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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인도
여러 민족과 종교가 뒤섞인 인도에서는 일년을 통해서 수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어떤 것은 계절이 변해감을 축하하고 어떤 것은 인도의 문화와 깊이 관련되어있다.
축제의 규모도 전국적으로 성대히 행해지는가하면 일부 지역만으로 조용히 열리는 것도 있다. 그 중에 크리스마스 또한 큰 행사 중의 하나이다.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타 종교의 사람들도 크리스마스를 열광적으로 축하한다. 델리, 뭄바이, 켈커타와 같은 큰 도시들에서는 축제분위기로 고조되고, 크리스마스 바겐세일과 축제행사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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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콩고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 행사는 즐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트리로 쓸 만한 전나무는 전혀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콩고 사람들은 어린 바나나 나무나 야자나무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대신한다.
일반적으로 바하마인들은 정열적이고 신앙심이 깊으며 대부분 춤과 음악을 좋아한다.
국가최대의 축제는 연말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해서 연시에 2번 개최되는 ‘중카누(Junkanoo)’라 불리우는 행사로 아프리카 흑인노예들로부터 계승된 축제이다. 이 행사에는 화려하게 꾸민 수백명의 사람들이 큰 길로 나와 가 장행렬을 하면서 방울을 흔들고, 아프리카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즐긴다.


어떻게 성탄절을 가르칠 것인가?


박원호(교수, 장신대 기독교교육학) 월간「교육교회」96.12월호


성탄절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절기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성탄절은 아름다운 꿈과 소망을 가져다 주었고 많은 어린이들이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한 가장 귀한 은총의 절기였다 성탄 절기를 맞아 한 가난한 부부가 서로를
위해서 자신이 가장 아꼈던 머리카락과 시계를 팔아서 상대방의 머리빗과 시계줄을 샀다는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만큼이나 우리의 가슴깊이 새겨지는 절기이다.

하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성탄절이란 그저 화려하고 흥분되고 즐거운 기간과 같이 이해되
어짐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화점이나 유흥가에서 더욱 환영 받아지는 것 같고 세모의 한 부분처럼 여겨지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차츰 성탄의 절기에 대한 교회의 노력이 시들어진다는
사실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행사들이 축소되고 그저 하나의 진부한 연중 행사 정도로만
여겨지지 않는가,
이제 사용할 수 있는 자료들도 모두 다 사용했고 새로운 자료들도 개발되지 않고 있고 더구나
텔레비전이나 영화같은 대중 매체에 밀려 교회 교육은 더욱 위축되고 있지나 않은지 자문해
본다.
교회는 부활절과 더불어 성탄절을 가장 중요한 행사로 지켜 왔다.
주님이 부활하신 뒤 초대 교회가 당시 부활과 수난을 중심으로 삼았을 때에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에 나타난 복음의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탄에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구유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거처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강보로 상징되는 하나님 영접을 보게 된다. 이방인들이 가장
먼저 경배함으로 인해 예수의 탄생이 만민을 위한 구원의 사건임을 성탄의 이야기는 수난과
부활 못지 않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부활절이 소홀히 되는 지금 그나마 애써
지켜온 성탄절마저 소홀히 하게 된다면 우리는 참으로 중요한 신앙적 유산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어떻게 성탄절을 가르칠까라는 질문으로 성탄절을 올바로 지킬 수 있는 몇가지
방안들을 함께 생각하고자 한다. 먼저 이 글에서 두 가지 관점을 전제한다.

먼저 가르친다는 의미를 일상적인 의미보다 넓게 생각할 것이다. 흔히들 가르친다는 말은
학교식의 관점에서 규정한다. 교실이 있고 책과 책상이 있으며 가르치는 교사와 학생이 있는
그러한 상황을 연상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의 가르침은 이러한 제한된 의미에서 벗어나서 배움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의미한다. 단지 책을 통한 배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통한 배움, 참여를 통한
배움, 심지어 무의식적 배움까지도 가르침은 함축하고 있다.

다음으로 성탄절을 가르치는 목적을 신앙의 관점에서 볼 것이다. 신앙의 관점이란 성탄절은
교육적으로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신앙 성장의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의
성장은 엡 415절의 말씀과도 같이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함을 말한다.
여기서 범사란 말은 지적인 면, 정적인 면, 의지적인 면, 자아의 면, 공동체적인 면 사회적인
면, 그리고 초월적인 면을 통틀어서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성탄절을 가르치는 목적은
신앙의 모든 면들이 골고루 균형 있게 자라도록 돕는 사역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온전한 성탄절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 네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1. 전체 공동체의 신앙 고백적 행위 가장 먼저 성탄절은 공동체 전체의 행사가 되어야 한다.
성탄절은 시간이 갈수록 어린이 중심의 절기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어린이들의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라서 어른들은 그저 구경꾼
이 되거나 아니면 헌금하는 정도로 참여하는 부분적이고 간접적 절기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어쩌면 성탄절의 의미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퇴색되어 가는 것은 그 행사의 진행이 어린이
를 중심으로 되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성탄절은 아예 어린이 절기로까지 고정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나 성탄절은 교회 공동체 전체의 행사로서 어린이의 행사이자 어른
들의 행사이다. 오히려 어른들의 행사가 될 때 더욱 그 신앙적 의미는 깊어지고 어린이들은
이를 통해서 신앙의 더 깊은 배움을 갖게 된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에 가장 먼저 어른들이
찾아와 경배하였지 않는가? 어른들은 성탄을 통해서 다시금 주님에 대한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더 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도 성탄의 절기에
참석해야 한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성인은 성인대로 성탄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성탄절이 공동체 전체의 신앙 고백적 절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탄절기는 다른 절기와 함께 기독교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
하는 중요한 상징적 수단이며 공동체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구성원들로
하여금 강한 소속감과 유대감을 심어준다. 이러한 소속감과 유대감은 '소속이 곧 배움이다'
라고 말한 제롬 브루너(Jerome Brunner)의 말과도 같이 다른 어떤 방식의 가르침보다 더 효
과적인 배움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해 준다. 절기를 통해 어린이들은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고
소속하게 되며 공동체의 믿는 바를 체험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체험이 신앙적 삶과 인
격으로 나타난다. 단지 말이나 글로써 배워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로, 소속됨으로써 배워지는
강력한 방법이다.
동시에 오늘날 세대간의 단절이 심각한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절기는 다시금 세대를 이어주
는 중요한 방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성탄절을 공동체적으로 지켜야 하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2. 성탄절에 대한 비평적 성찰 다음으로 성탄절에 대한 비평적 성찰의 배움이 요구
된다. 성탄절은 하나의 행사가 아니다. 여기서 행사라는 말의 의미는 본래의 의미에 대한 깊
은 성찰 없이 그저 때가 되었으니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겠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미이다.

많은 교회들이 성탄의 깊은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하나의 행사로 보내고 있음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성탄절을 비롯한 모든 절기는 본래의 사건과 신앙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 사
건과 의미는 시대를 통해서 기억되고 재해석되어야 하며 그리고 새롭게 적용되어야 함을 요구
하고 있다. 이러한 재해석의 작업은 결코 간단한 일도 아니며 소외되어서도 안된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스러운 재해석을 통해 절기는 하나의 역사적 유물이나 생명없는 전통으로
남게되는 것을 거부한다. 과거의 전통이 오늘날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비평과 재해석이라는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따라서 성탄절을 너무 행사 위주나 들뜬 기분에서 지킴으로 인
해 본래적인 의미와 그 현대적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은 필히 재고해야
한다. 이로 보건대 우리는 이번 성탄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한가지
가르침의 방법이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성탄을 잘 알고 있느냐? 성탄에는 어떤 복음
적 메시지가 있느냐? 과연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성탄의 행사들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왜 장식을 하는지, 왜 선물 교환을 하는지? 이러한 모습들은 본래의 정신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이러한 질문들을 갖고서 비평적으로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크리스몬을 장식함에 있어서 화려한 것보다는 의미를 충분히 살린 크리스몬
을 만들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3. 상상력을 통한 충실한 재현

다음으로 성탄의 사건을 가능한 있는 그대로 충실히 재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대인들은 절기를 실제의 상황처럼 재연했다. 유월절을 지키면서 실제의 상황과도 같이 누룩
없는 빵을 먹고 과거의 복망을 입고 그럼으로써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고 그 사건 자체가 계시
하는 메시지를 들었다. 따라서 절기의 경우 사건 자체를 가능한 있는 그대로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첫번째 과제이다. 성탄절 또한 가능한 본래 모습 그대로 재현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대로 성탄의 의미를 찾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사용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구성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는 단지 말이나 글로서 배우는 모습을 벗어나서 우리의 감정, 자아, 그리고 상상력의 통로
를 통해서 성탄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성탄의 사건을 연극을 통해서나, 노래 극을 통해서,
또는 동화와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충실히 재현해 보도록 하자. 우리의 의미를 넣기보다
는 사건 자체가 갖는 의미가 저절로 나타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성탄의 사회적 책임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탄의 사건과 아울러서 사건이 담고 있는 의미의 현대적인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 바로 성탄절의 사회적 의미이다. 성탄절의 의미는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하며 나아가서 사회에 알리는 행위이다. 이 마지막 사회적 책임이야말로 성탄절 행사의
최종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성탄절 교육은 공동체 전체가 성탄의 의미를 비평적으로 성찰
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하며 마지막으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것으로 마무리 될
것이다.

이 마지막 노력이 없다면 예수님 탄생은 세상의 구주가 아니라 '교회의 구주'가 되려고 오신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교회 안팎에서 소외받는 이웃들, 연약한 지체들, 잊혀진 고마운 사람
들을 찾아서 작게나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이로서 주님의 사랑을 전한다면 그 어느 화려한 행
사보다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에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
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하신 주님의 말씀이
어느 때 보다 가장 소중하게 다가오는 절기이다.



크리스마스의 십계명




1)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라.

2)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그리스도에 대하여 감사하라.

3) 마리아와 요셉이 사관에서 방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주纛?위해 드릴 최상의 방은 너희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4) 교회가 벌이고 있는 크리스마스 행사에 즐거이 참여하라.

5) 교회가 이웃을 위하여 너희에게 요구하는 호소에 관대히 호응하라.

6) 시간을 내어서 너희 자신의 가정이나 친구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스스로 도울 시간을 짜라.

7) 크리스마스 예술이 주는 무한히 값비싼 유산을 음미하라.

8) 이웃에게 선물을 할 때 결코 의무감으로 받기 때문에,
혹은 너희 자신들의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하지 말고 기쁨으로 함께 나누려는 단순한 마음에서 하라.

9) 너희를 위해 수고한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라.

10) 너희 자녀들에게 크리스마스의 메시지를 가르치라.

출처 : 기독교문장대백과사전
성서연구사 편찬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1) 예언된 메시야

예언자 미가는 이미 기원전 8세기에 이 작은 마을 베들레헴을 두고 다음과 같은 신탁을 외쳤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미 5:2-5)고 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 11:10)




2) 예수의 출생 장소

예수가 나신 곳은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방으로 10키로 떨어진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옛적에는 에브랏이나 에브라타라고 불리었습니다. 베들레헴이란 말은 ‘떡집’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주위에는 비옥한 들이 있으므로 떡집이란 이름은 적합한 이름이었습니다. 이 마을은 높이 750미터 이상이나 되는 회색빛 나는 석회암 산등머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산등머리는 양쪽 끝으로 정상이 각각 솟아있고 그 가운데가 안장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이 위치를 잘 보면 산으로 된 원형극장 가운데 있는 마을 같이 보입니다.

베들레헴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거기서 장사하였고 그 무덤 곁에 돌비를 세웠습니다.(창 35:40 ; 48:7)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여기에서 살았는데(룻 2:1) 룻은 베들레헴에서 요단 건너편 자기 고향땅인 모압땅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며 그의 성이었습니다. (삼상 16:1 ; 17:12 ; 20:6) 다윗이 산 위로 도피해 있을 때 그가 사모하였던 베들레헴의 우물이 있는 곳입니다. (삼하 23:14-15) 후에 르호보암이 베들레헴을 방비하는 성읍으로 건축하였습니다. (대항 11:6).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나 그 백성의 마음에는 베들레헴은 유일하게 다윗의 성으로 기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위대한 구원자를 보낸 것은 다윗의 혈통에서 였습니다.



3) 박사들의 선물(황금, 유향, 몰약)


◈ 왕을 위한 선물로서 황금

- 세네카는 파르디아(Parthia)에서는 황금을 가지지 않고는 누구도 왕에게 나아갈 수 없는 관습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금속의 왕인 황금은 사람들의 왕에게도 적합한 선물입니다. 예수는 “왕 되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힘으로써가 아니라 사랑으로 통치하십니다. 그는 전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시되 왕좌로써가 아니라 십자가로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라는 것을 잘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우리와 평등하게는 도저히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완전한 순종과 완전한 복종이라는 태도에서 그를 만나야 됩니다.



◈ 제사장을 위한 선물로서 유향

향기가 좋은 유향이 사용되는 곳은 성전 예배와 성전 희생제에서 입니다.

제사장의 임무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제사장(priest)을 나타내는 라틴어는 폰티펙스(pontifex)인데, 이 말은 ‘다리를 세우는 자’(bridge-builder)란 의미가 있습니다.

제사장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교량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예수가 하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로 향한 길을 여셨습니다. 그는 인간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 죽은 자를 위한 선물로서 몰약

- 몰약은 시체를 썩지 않게 하기 위해 바르는데 사용했습니다.

예수는 이 세상에 사람을 위해 살다가 마침내 사람을 위해 죽으러 오셨습니다.
그는 사람을 위해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죽음을 바치러 오셨습니다.

왕을 위한 황금, 제사장을 위한 유향, 죽은 자를 위한 몰약들은 그리스도의 요람까지 가지고 온 박사들의 선물입니다. 그들은 그가 참된 왕이시요, 완전하신 최고의 제사장이시요, 마침내는 인간을 위한 가장 높으신 구주가 되심을 예언한 것입니다.

출처 : 기독교문장대백과사전
성서연구사 편찬



성탄절이 주는 메시지




1) 일방적 구원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들의 죄 때문에 눈이 어두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마땅히 그리스도 안에서 갈망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인간이야 어떻든 구원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과 이 죄악의 저주 받은 세계로 죄인들을 구원하는 지상의 사명을 띠고 한 분이 오셨다고 하는 영광스러운 진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2) 평화입니다.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는 관념적이고 타계적인 평화가 아니고 구체적으로 현실사회에서 구현되는 평화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함이라”(눅 4:18)




3) 사랑입니다.

사랑은 내가 있는 곳에 저를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가 있는 곳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저로 나같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저와 같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셔서 구유에 오신 것같이, 이제 우리가 또한 하나님의 고귀한 신분이 있으나 다시 땅으로 내려가 의인이나 죄인같이, 고귀하나 천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출처 : 기독교문장대백과사전
성서연구사 편찬





성탄절의 참의미

1) 첫 십자가의 희생

하늘의 영광된 자리에서 그는 지극히 낮아진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의 탄생은 결국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않으시고 젊은 생명을 고스란히 바치셨습니다.




2) 죄인들이 새생명을 얻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새생명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바로 보는 자들에게는 무한한 기쁨이요 평화입니다. 그래서 목청껏 감사의 찬송을 부르며 밤새워 형제들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3) 나의 왕에게 경배하고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드리는 날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진정한 자세는 그 분을 나의 왕으로 모셔들이고 온전히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왕에게 황금을 드리듯 나에게 가장 귀중한 것을 아낌없이 바치며 유향을 드리듯 순결한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고 시체의 방부제로 쓰였던 몰약을 드리듯 늘 주님의 대속적 죽음을 잊지 않고 십자가의 구원의 피가 약동하는 뜨거운 신앙을 보여 드려야 할 것입니다.

출처 : 기독교문장대백과사전
성서연구사 편찬


성탄절의 의의




1)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날입니다.

세계인구는 하루가 다르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지만 그와 함께 가난하고
병들고 억눌린 자들에 대한 무관심과 제도적인 소외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팽배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런 억눌린자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2) 하나님과 사람의 단절된 관계 회복의 날입니다.

아울러 이웃과의 단절된 관계의 회복 그리고 알게 모르게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활짝여는 계기가 됩니다.




3) 하나님의 전폭적인 사랑의 선물이 주어진 날입니다.

참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는 것이라고 볼 때에 먼저 사랑의 손길을 펼려고 하는 노력과 실천이 전개되어져야 합니다. 조그만 카드 한 장을 통해서나 보잘 것 없는 선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사랑을 베풀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약속하신 옛 약속을 이행한 날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약속에 대한 이행은 갈수록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신의가 없어지고 불신이 만연해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옛약속을 한치의 어김도 없이 이행시켰고 믿음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한 성탄절이라면 그것은 혼인잔치에 신랑 신부를 억지로 쫓아내고 축하객들끼리 소리지르며 판을 치는 모순과 하나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출처 : 기독교문장대백과사전



성탄절의 유래



“크리스마스” 는 그리스도의 모임 (The mass of Christ)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날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12월 25일 설은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다음해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교회의 "로마" 주교는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교회가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 후반 부터입니다. 고대 "로마"교회에서 기원한 "크리스마스"를 지키기 시작한 년대에 대해서는 335년설과 354년설이 맞서있다. "성탄일"은 그 후 동방 교회로 퍼져나가 "콘스탄티노롤리스"(379년),"카파도기아"(382년)등에서 지키기 시작했고 교회력의 기원이 되었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력 기원의 시원이
되었다.




"로마"의 "액시그누스"(500-544)가 533년 부활절표를 작성할 때 계산한 데서 비롯된 시력기원의 기점인 "그리스도"의 탄생은
실제로는 현재보다 4년이 앞당겨진다.




"성서"에는 예수님의 탄생 년도나 날자의 기록이 전혀 없다.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한 최고(最古)의 기록이라는 "안디옥" 주교의 "데오필로스"기록(175-183)도 학자들간에는 위작(僞作)이라고 단정되고 있다.




"그리스도"와 "미사"가 합쳐 구성된 용어인 "크리스마스"사건에 관한 성서적 근거로는 "마태복음 제 1 장"과 "누가복음
제 2 장"을 들 수 있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처녀 탄생은 천사의 고지, 이상한 별의 출현, "베들레헴"의
말구유까지 박사들을 인도한 빛 등은 "그리스도"가 인간이된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 처럼 성탄에 널리 유행하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관습은 고대
"애굽"에서의 동지제(冬至祭) 때의 나뭇가지 장식, "로마" 축제 행렬에서의 촛불을 단
월계수 가지 장식 등 옛날의 성목(聖木) 숭배에 그 기원을 두고있다.




흔히 "크리스마스 트리"로 전나무를 사용하게 된데는 전설이 있다. 8세기경 독일에 파견된
선교사 "오딘"은 신성하다는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야만적 풍습을 중지시키기 위해 옆의 전나무를 가리키며 " 이 나무 가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한데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모든 성실한 종교개혁의 후예들, 정통 신앙의 말씀 중심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 하나님께서는 말씀 하신다.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출23:1~2)


성탄절의 의미**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christ)와 ‘마스’(mass)의 두 낱말이 합하여
된것이다. ‘그리스도’란 구약 히브리어 ‘메시야’에 해당하는 헬라어로서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고 ‘마스’란 카톨릭의
‘미사’혹은 예배를 듯하는 말이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배한다는 뜻이 된다.



1. ‘평화의 주’로서 오신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 경제․사회적으로 극심한
위기의 상황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세계의 대국 로마의 식민지로서 억압속에
잇었으며, 경제적으로는 로망의 착취 뿜남 아니라 예루살렘 정치․ 종교 지도자
들에 의한 소외와 천대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억압과 불의, 가난과 기아, 그리
고 차별과 멸시의 세계 속으로 그리스도는 ‘평화의 주’로서 평화를 선포하러
오셨다.

폭력과 테러, 곰NS, 강도, 억압, 착취, 독재, 전쟁, 공해, 핵무기 등 뿌리깊은
미움과 갈등과 다툼의 세계에 그리스도는 어둠속에 비치는 밝은 빛으로 오신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화해케 하시기 위해, 하나님과 우리를 화
해를 선포하는 ‘평화의 주’로서 그리스도는 오셨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을 폐하셨으니” (엡2:14,15)



2.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오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1:22).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히브리어로 ‘임’(Im)은 전치사 ‘함께’(With)를
의미하고 , ‘아누’(Anu)는 ‘우리’란 뜻이며, ‘엘(El)'은 잘 아는대로 ’하나
님‘을 가리킨다. ’임마누엘‘이란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저 멀리,
혹은 저 높은곳에 계시는 종교적 신이 아니라. 오늘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우리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 그리고 기븜과 즐거움에 함께 참여하시고
그것을 나누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율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



3. ‘구원의 메시아’로 오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란 구약 히브리어 ‘메시아’에 해당되는 헬라어로서 ‘기름부음
받은자’라는 뜻이다. 구약시대에는 왕과 제사장들의 임직시에 그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그가 하나님에 의해 택함을 받고 사명과 전권을 위임받앗음을 알리는
상직적 의식이었다.

메시아란 우선 ‘왕’을 가리킨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자로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원하고, 평화와 번영, 공위와 자유를
실현하는 이상적 통치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가리켜 ‘다윗의 자손’
곧 ‘왕손’이라 불렀던 것이다.

동시에 그리스도는 제사장을 가리킨다.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의식을
행함으로 신이신 하나님과 백성을 화해케 하는 일을 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전
인류의 죄를 대속 할 ‘대제사장’‘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셧다. 그는 죄의 댓
가로 영원한 죽음속에 있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대속의 제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천사는 말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0,11)



잃어버린 아기 예수

성탄절 전날 밤 미국의 한 도시에서 시민 모두가 참석하는 성탄 파티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시 당국에서는 대형 성탄트리를 시청 앞 광장에 설치하고 아기 예수님의 모형을 만들어 전시했습니다. 시작 시간이 되어 시청 직원이 성탄 장식을 점검하다가 말구유 속의 아기 예수 모형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형으로 만든 요셉과 마리아,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은 다 있는데 아기 예수의 모형만 없어진 것입니다. 당황한 시 당국에서는 방송을 통해 시민의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시민 여러분! 성탄 파티가 30분이나 지연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아기 예수를 찾습니다. 누구든지 아기 예수를 가지고 가셨거나 있는 곳을 알고 계신 분은 즉시 연락 바랍니다.”
뒤늦게 누군가가 아기 예수를 갖다놓아 성탄 파티가 시작되었답니다. 오늘 우리의 성탄은 어떻습니까. 가장 낮고 천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평화의 주님을 모셔드릴 마음의 구유가 준비되어 있는지요.
/이영무 목사




유머

예수님이 산타보다 더 좋은 이유

예수님이 산타보다 더 좋은 이유

Christmas 하면 산타를 먼저 떠올리는 세태속에서
진정한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Merry Christmas !!!
"Why Jesus Is Better Than Santa Claus?"
"예수님이 산타 할아버지보다 더 좋은 이유"
Santa lives at the North Pole ...
JESUS is everywhere.

산타는 북극에만 살지만
예수님은 어디에든 계신다

Santa rides in a sleigh ...
JESUS can walk on the water.

산타는 썰매를 타지만
예수님은 물위를 걸을 수도 있다.

Santa comes but once a year ...
JESUS is an ever-present help.

산타는 오직 일년에 한 번만 오지만
예수님은 언제든지 도와주신다

Santa fills your stockings with goodies ...
JESUS supplies all your needs.

산타는 우리 양말을 좋은 것들로 채워 주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

Santa comes down your chimney uninvited ...
JESUS stands at your door and knocks, and
then enters your heart when invited.

산타는 불청객으로 굴뚝을 타고 내려오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대문 앞에 서서 문 두드리시며
우리가 초대했을 때에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신다.

You have to wait in line to see Santa ...
JESUS is as close as the mention of His name.

산타를 만나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된다.

Santa lets you sit on his lap ...
JESUS lets you rest in His arms.

산타는 자신의 무릎 위에 당신을 앉게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팔에서 우리를 쉬게 하신다.

Santa doesn't know your name, all he can say is
"Hi little boy, what's your name?" ...
JESUS knew our name before we did. Not only does He know our name,
He knows our address too. He knows our history and future
and He even knows how many hairs are on our heads.

산타는 우리 이름을 몰라서 "안녕 꼬마야, 이름이 뭐지?"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알기도 전에 먼저 우리 이름을 아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도 아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도 아시고, 미래도 아시고
심지어 우리 머리카락이 몇 가닥인지까지도 다 아신다.

Santa has a belly like a bowl full of jelly ...
JESUS has a heart full of love.

산타에게는 젤리로 가득한 그릇같은 똥배가 있지만
예수님께는 사랑으로 가득한 심장이 있다.

All Santa can offer is HO HO HO ...
JESUS offers health, help and hope.

산타가 줄 수 있는 건 "호 호 호" 하는 웃음뿐이지만
예수님은 건강과 도움과 희망을 주신다.

Santa says, "You better not cry" ...
JESUS says, "Cast all your cares on me for I will give you rest ."

산타는 "울면 안 돼" 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염려를 내게 맡기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하신다.

Santa's little helpers make toys...
JESUS makes new life, mends wounded hearts,
repairs broken homes and builds mansions.

산타의 도우미들은 장난감을 만들지만
예수님은 새 생명을 만드시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하시고,
깨어진 가정을 고쳐주시고 또 저택을 지어주신다.

Santa may make you chuckle but ...
JESUS gives you joy that is your strength.

산타는 당신에게 웃음을 줄 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능력이 되는 기쁨을 주신다.

While Santa puts gifts under your tree ...
JESUS became our gift and died on a tree cross.

산타는 당신의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선물을 놓아두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물이 되셔서 나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It's obvious there is really no comparison.
We need to remember WHO Christmas is all about.
CHRISTmas is there because of CHRIST.
Yes, Jesus is better, He is even better than Santa Claus.

확실히 산타와 예수님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누구의 날인지 기억해야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마스(그리스도날)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이 더 좋다, 산타 클로스보다 훨씬 더 좋다. ..